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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 (1/2)

by 말씀묵상과 영성지도 2023. 12. 28.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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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작하는 말

2 경교의 기원

   2.1 네스토리우스의 후예

    2.2 여러 이름의 중국 기독

3. 중국에서의 확장

    3.1 당나라 때의 경교

    3.2 원나라 때의 경교

4. 사라진 경교

    4.1 당나라 때의 경교

    4.2 원나라 때의 경교

5. 경교가 사라진 원인의 고찰

    5.1 내부적 원인

    5.2 외부적 원인

6. 마치는 말

7. 참고도서

 

1. 시작하는 말

  아시아 교회사를 수강하면서 알지 못하던 많은 기독교의 역사들을 알게 되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열심히 찾아가면서 매주 읽기 자료를 읽었고, 이어진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려지지 않았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알로펜의 이야기나 라반 사우만의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였고, 강의를 들은 후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니, 신라시대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물론 강의시간에도 교수님이 언급하셨다.) 600년대에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온 자료가 남아있다니.. 그렇다면 그 전에도 들어올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특히 중국에 들어온 기독교를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는데 계속 의문이 남았다. 그 기원을 찾아 보고 싶었으나 학기말의 페이퍼로는 역부족일 것 같아,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를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경교와 네스토리안의 관계를 조금씩 알아갈 계획이다.

 

  수강 신청할 때 한 치의 고민도 안하고 아시아 교회사를 선택했는데 그 배후에 이렇게 나의 학구열을 자극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아시아 교회사는 고전 자료가 아니고는 최근의 도서로 출판된 것이 많지 않아서 강의로 듣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 과제를 하면서 한국인이 쓴 아시아 고대 기독교사나 다른 자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족하지만 여러 책과 논문을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본다.

 

사무엘 H. 마펫,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용어에 대해서는 중국내에서는 네스토리안 보다는 경교라는 말이 (개인적으로) 익숙해서 주로 경교라고 했다.(물론 중국내에서는 3가지 명칭으로 불렸기에 통일해서 네스토리안이라 불러도 된다고 생각한다.) 경교人일 경우는 네스토리안이 편하므로 중국내에 있는 경교人의 경우는 네스토리안이라고 했다. 용어를 섞어 사용함으로 인해 이해해에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2. 경교의 기원

  국내에 나와 있는 동방 기독교자료나 아시아 기독교 자료들은 경교에 대해서 아래의 두 가지 내용으로 소개한다. 네스토리우스의 후예들이 시련과 박해 속에서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중앙아시아로 향했다는 주장과 네스토리우스 사건 이후로 정치적인 문제로 동방 시리아 교회가 로마 제국내의 교회들과 결별한 이후의 교회들을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2.1 네스토리우스의 후예

콘스탄티노플 교회 감독이었던 네스토리우스(381∼451)가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주장하고 마리아 신모설을 반대한 이유로 이단으로 몰렸다.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이단 판정을 받고 이집트에서 유배 생활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따르던 사람들이 페르시아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그들을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5] 조금더 자세한 내용으로는 페르시아의 열정적인 대감독 바르사우마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사용하여 네스토리우스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페르시아에 네스토리우스의 신앙고백을 공포하므로 페르시아 교회가 네스토리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로마제국내의 교회들이 동서 분열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사산왕조 영내에 있는 동방 교회는 로마제국 교회와 나뉜다. 이러한 시리아 교회는 동방 시리아 교회(이하 ‘동방 경교‘)와 서방 시리아 교회로 나누는데, 동방 경교는 중앙아시아, 중국 등으로 동진한 경우이고, 서방 시리아 교회는 페르시아, 터키, 중근동에 현재까지 활동 중인 시리아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열심히 동진한 동방 경교는 왜 사라졌으며 서방 시리아 교회는 어떻게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가를 공부해 보는것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2.2 여러 이름의 중국 기독교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시기인 16세기 이전에 중앙아시아와 중국 안에서 파사교(波斯敎), 경교(景敎), 에르케운(也里可溫)이라고 불렸던 기독교 신앙공동체 전체를 통칭하여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사교(波斯敎), 경교(景敎), 에르케운(也里可溫)의 문헌들을 연구해 봤을 때 이들이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의 신학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연구이다. 도리어 상기한 중국의 기독교는 동서방 교회의 분열 이전 ‘원시 기독교’의 모습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 마테오 리치 이전에 전해진 기독교를 통칭해서 부를 때 네스토리우스와 상관없이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중국에서의 확장

3.1 당나라 때의 경교

  635년 페르시아 시리아 교회에서 파송된 알로펜이 당 수도 장안에 도착한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에는 당태종의 적극적 지원으로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 교회를 건립하고 21명의 사제들이 활동했다. 고종때는 경교 사원이 넘쳐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685년부터 섭정했던 불교도인 측천무후에 의해 경교는 첫 번 시련을 경험한다. 이후 713년에는 도교에 의해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현종 즉위 이후에는 아라비아로부터 기독교 사절단이 입국하기도 하는등 중흥을 이룬다. 그러던 중 756년에 당나라 황실의 문제거리였던 안록산의 난을 정벌하는 과정에 경교인 이사 장군이 공을 세운다. 또한 이사 장군은 티벳군대의 공격으로 당대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한다. 이것으로 황실에서는 경교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었으며, 바로 이때 이사 장군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건립을 계획한다. 그는 경교 선교의 150여년 역사를 기록하게 했다. 이것이 중국 고대 교회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 이다. 이 비문은 주교였던 경정(景淨)이 작성했으며 실재로 경정(景淨)의 존재는 여러 문헌에서도 확인이 된다.

 

3.2 원나라 때의 경교

  경교는 9세기 후반부터 중국에서 사라지고 경교인들은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면서, 소그드인과 투르크인에 의해 유지되기 시작했다. 744년에서 842년까지 중앙아시아 평원을 지배했던 위그루는 마니교가 국교였고, 이후 케레이트와 나이만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다. 이들은 이미 중국에서 나온 경교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칭기스칸이 중앙아시아 전체를 재패했을 때는 이미 칭기스칸의 민족인 웅구트 족은 기독교였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중국에서 도피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개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칭기스칸이 세력을 확장하고 쿠빌라이칸이 원나라를 세울 때 그의 어머니는 기독교있이었고 그들은 에르케운(也里可溫)으로 불렸다. 원나라의 황실이 기독교이므로 경교는 다시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13세기 중반 유럽의 수도회 신부들이 원나라에 도착했을때 네스토리안과 다양한 접촉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도 네스토리안 존재와 활동 기록이 있다. 그러나 몽골제국과 원나라는 경교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관용 정책을 폈기 때문에 경교는 다시 위기를 맞는다.

 

(2에서 계속)

 

[참고도서]

(1) 김상근,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왜 중국에서 사라졌는가?,” 「신학논단」 43, 2006.2,

(2) 사무엘 마펫, 『아시아 기독교회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3) 이장식, 『아시아고대 기독교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0.

(4) 이재화, “동방 경교와 서방 시리아 고대교회 - 망각과 투쟁의 역사, 랍반 바르 사우마의 생애를 중심으로,” 「Muslim-Christian Encounter」 10(2), 2017.9,

(5) 이현모. "경교는 실패한 선교 모델인가?." 복음과 실천 43.1 (2009).

(6)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7) 편집부, "이야기 교회사/ 경교로 불려진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 교육」 (통권401호(2002년 10월)),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8) 김광수, “경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2293, 2018년 11월 24일 방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