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윤철호 교수님의 논문

<리쾨르 이후의 탈근대적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전적 접근> 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리쾨르 이후의 탈근대적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전적 접근> 윤철호

 

삶을 변화 시키는 성경 해석

<리쾨르 이후의 탈근대적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전적 접근>. 윤철호

 

  처음에는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서 매달리며 읽었는데, 두 번째는 학문적 정리보다 논문의 큰 의미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슈나이더스는 텍스트 앞의 세계와 선포된 예수에 초점을 두고, 계속 ‘변화’를 향하라고 하는 것 같다. 영성도 초월적 존재를 경험함으로 일어나는 변화이고 성경읽기도 자신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책읽기의 족적에도 나타난 것들을 발견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읽어보는 헨리 나우웬이나 리차드 포스터의 책을 보면서 나는 그 책의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 책에서 제시하는 것을 내가 일상에서 적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여러번 있다. 이해되면 따라하게 되고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근거를 대고, 이름을 붙여 명명하는 슈나이더스의 학문에 박수를 보낸다.

 

  여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가 의미론적 자율성을 통해 ‘의미의 잉여’가 가능하므로, 변화가 일어날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후여서 그런지 일을 결정하기 전까지의 말씀들을 모두 “내가 마음대로 해석”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의문이 들 때 마다 혼자 있지 않았다는 안정감도 드는데 이 부분이 ‘의미의 잉여’부분이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한 해석(텍스트의 세계), 영향사(텍스트 앞의 세계) 부분 등 여러곳 에서, 문화 안에서의 해석이 계속 맴돌았다. 새로운 문화에 부닥칠 때 마다 이전의 기준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준들이 발생한다. 계속적인 이 변화에도 무조건 이전의 문화가 맞다고 고집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월이 다하여 사라지면서 계속적으로 "변화"는 점점 우리를 장악해 간다. 인간이 피조물이라고 알려주시는 선악과와 같은 것이 "발전과 변화"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영성지도 수퍼비전 시간의 리딩 자료에서 ‘아하’ 부분이 나왔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고 생각, 감정, 느낌 모든 부분을 열어 관상적으로 바라볼 때 발견하게 되는 임재이다. 그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는데, 말씀가운데서도 ‘아하’가 발생 하는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같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경험할수록 십자가가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서 성경 뒤의 세계도, 성경의 세계도 앞의 세계도 잘 알아가면서 깊은 보화들을 캐내며 점점 더 예수님 닮아가다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질문] (195) 의미의 잉여를 통해서 다의적인 정당한 해석이 가능한데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표현을 논문에서는 했으나 교수님은 사적 해석의 문제를 잠시 말씀하긴 하셨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그런가 정말 바람직 하기만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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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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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머니즘

Ⅲ. 레이 커즈와일이 전망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Ⅳ. 인공지능

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브라이도티를 중심으로

Ⅵ.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Ⅶ.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대책

   1. 과거에 대한 반성

   2. 미래를 위한 제안

Ⅷ. 결론: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 신앙

   1.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2.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3.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윤철호 저.  <인간>.  새물결플러스 . 2017.

Ⅳ.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인간이 규칙을 가지고 정보를 주어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반응 할 수 있도록(예 : 자율주행) 하는 자율성과 빠른 계산 뿐 아니라 추론 및 전략적 사고(알파고)까지 가능하다.(머신러닝, 클라우드, 빅데이터) 2017년 EU에서는 지능형 자율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킬 스위치(kill switch)’를 작동하는 것과 함께, ‘전자 인간’의 지위를 부여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4월에 일론 머스크는 pager 라는 원숭이가 조이스틱 게임을 하는 동안 뇌의 정보를 학습해서 조이스틱 없이도 게임이 가능한 실험을 했다.* 이것으로 신체 마비 장애인이 뇌파만으로 핸드폰을 사용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후에는 하반신 마비 환자들도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양자 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1만년이 걸리는 것을 200초 안에 해낼 수 있다. 양자 컴퓨터와 일론 머스크의 센서 칩이 연결되면 앞으로 공부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있다.

증기기관으로 인한 1차 산업혁명, 전기로 인한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인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인공지능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초기에는 모두가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코딩보다 생각하는 법(“컴퓨팅 사고력”)을 배워야 하는 시대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일자리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을 예측한다.

 

* https://twitter.com/khbae/status/1382196330630582281,

일론 머스크의 원숭이 영상 리트윗, 2021. 5. 26일 접속 (1:33초에 신경망 학습 기록)

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브라이도티를 중심으로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은 비이원론, 지역 주체적 보편주의를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캐서린 헤일즈(Katherine Hayles) 등이 있다.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에 대한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편 그녀는 포스트휴머니즘이 과학 기술의 발달 등의 휴머니즘의 가치들을 도입하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기계들이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것에 대한 기계 윤리와 법적인 문제들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한다.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자아와 타자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확장된 의식을 제안”하는데 개인은 타자들과의 상호 흐름 안에서 자신을 위치시키는 유대관계를 제안하면서 “세계시민적 유대”를 갖기 위해 각 주체들의 자리를 명확히 알도록 하는 것을 비판적 포스트휴먼 이론의 과제로 보고 있다.

 

Ⅵ.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포스트휴머니즘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마음대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성을 마음대로 변화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화와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가 머지 않았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야 좋겠지만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는 피조물의 유한성과 관계된다.

 

  포스트 휴머니스트들은 “컴퓨터의 인간화 또는 인간의 컴퓨터화를 정당화”한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 같은 지적 장치로 이해하며 정신과 뇌의 관계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관계로 인식하는 이원론적 접근법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인간의 노화와 질병은 “존중되어야 할 운명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불행”으로 간주된다. 또한 이들은 인간의 몸을 컴퓨터의 2진 코드의 정보로 환원하고자 하는 환원론적이다.

 

  2004년의 신경학 연구는 인간 정신이 몸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인간 정신은 육체, 환경, 타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작동하는데 컴퓨터에게 이것이 있을까를 문제로 제기한다. (2021년까지의 발달 상황을 본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 사랑’등의 감정이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지는 모르겠지만 학습을 통해서 표현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발제자의 입장이다. 지난 2016년 MS의 챗봇 ‘테이’(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채팅 프로그램)가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여성비하와 유색인종 비하등의 내용이 학습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양자 컴퓨터 기술이 적용된다면 기계학습의 결과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Ⅶ.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대책

1. 과거에 대한 반성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 졌는가 측정은 불가능하다. 기술발달로 혜택을 누리지만 인간의 고통의 총량이 줄었다고 할 수 있는가? 소득 대비 우울증과 자살률은 어떤가? 도덕, 사회, 정치적으로도 점점 살기가 좋아졌는지? 이에 비해 눈에 보이는 빈부격차, 생태계 오염 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포스트휴머니티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존중’하고 ‘윤리적 자세를 생각’하며, 현재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윤리적 가치가 잘 지켜질 것인지를 고민이 필요하다.

 

2. 미래를 위한 제안

  저자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현실의 과제라고 표현한다.(과연 가능할지.. 기준이 '행복'이라는 것에 발제자는 동의되지 않는 내용이다.) 헤일즈는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포스트휴먼의 창조에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이 육제척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도와줄 수 있지만 인류 전체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으므로 어디까지 허용 할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경제적 이유로 기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규범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불멸을 획득할 수 있더라도 인간의 유한성에 동의하므로 기술의 사용을 스스로 제어 하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의 영역에서 대안을 제안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과연 가능할까?**

 

*영화 '승리호'에서 "악마의 거래"

**영화 '블랙머니'(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서 김나리 변호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이 불법임을 밝힐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의 돈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에 투자된 사실을 아는 순간 사실을 덮어버린다. 김나리 변호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으로 인한 투자수익으로 국제통상업계에서 한국을 도울 로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Ⅷ. 결론: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 신앙

1.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저자는 창조질서 내에서의 과학의 발전은 선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원칙이 필요하므로, 과학 철학과 기술 윤리에 이 원칙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말하므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오버하는 바리새인이나 포스트휴먼을 막으려 하는 자세나 마찬가지 아닌가.)

"확신 하는 순간부터 왜곡이 발생한다.“

 

2.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과 진화과정 중 창발되었다는 주장은 모순이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12장에서 언급되었던 '공감적 사랑'이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이므로 이것이 인간의 참된 존엄성의 원천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포스트휴먼은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기독교 인으로서 주어진 분야에서 먼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공격적인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을, 혹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어디까지 '공감적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혹은 받아들일수 있을까가 발제자의 고민이다.)

 

3.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피조물로서 인간은 유한하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 유한성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악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니버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좋은 것이지만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켜 포스트휴먼을 만든다면 문제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계가 아주 모호하다. 생명연장의 기술이 있음을 알면서도, 생명이 위급한 자신의 자녀에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기독교인 부모가 몇이나 될까? 이 기술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쓸 것 같다.) 그러므로 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인생을 삶으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성취하는데 인생의 의미를 두라고 제안한다.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영원에 참여하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처럼 자신의 기술이 어려운 사람들 도울 수 있다면 기술자는 열심히 기술을 개발 할 것이고(side effect 때문에 만들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고쳐서 살릴 수 있는데 그 기술을 쓰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만들어진 기술이 하나님의 "은혜"일수 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물물교환에서 돈으로, 돈에서 카드로 카드에서 가상화폐로 변하는 문화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너무 빨리 변해서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더 빠를 것이라고 예측된다.)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집중하며 사는 삶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이 아닐까...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이 쳇봇을 학습시켰던 것처럼 포스트휴먼 사회가 된다면 깨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공감적 사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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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머니즘

Ⅲ. 레이 커즈와일이 전망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Ⅳ. 인공지능

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브라이도티를 중심으로

Ⅵ.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Ⅶ.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대책

   1. 과거에 대한 반성

   2. 미래를 위한 제안

Ⅷ. 결론: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 신앙

   1.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2.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3.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내가 컴퓨터를 전공한 이유는 컴퓨터를 통해서 세계 종말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앞뒤 안보고 전공을 정했다.(내가 원더우먼인줄 알았나보다.)

 

컴퓨터학과에 입학하고 엄청 후회했다. 수학을 제대로 안 배운 상고 출신이라 죽을 뻔 했다. 문과적 소양을 하나도 안 키우고 살다가 신학교 와서 또 죽을 뻔했다. 그런데 신학을 하면서 알았다. 죽어야 산다. 그래서 컴퓨터를 통한 종말을 막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누군가에게 그것이 사명이면 해야겠지만.) 현재 내게 주어진 장소와 시간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그곳이 비록 오해의 소굴이고 십자가이고 죽음일지라도) 그게 성육신이 내게 말씀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포스트휴먼의 기술을 제한(이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싸움과 유혈이 낭자할까.. 십자군 전쟁일 것이다.)해야 한다는 의미의 글들에 동의가 안 되서 끝부분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썻다. 내 생각이 너무 쎄서 쏀 주장 앞에서 죽지 않는 것 같다.

 

윤철호 저.  <인간>.  새물결플러스 . 2017.

Ⅰ. 서론

  과학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미래에 기독교는 어떻게 상황을 읽어가야 하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기독교의 인간론은 성경에 근거한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창 1:27) 창조되었으며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났다. 신약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선언했으며(롬3:8-9, 엡 2:8),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계승했다. 이제 기독교 신앙은 과학혁명으로 인한 인간 미래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 나갈 것인가.

 

  유발 하라리는 약 7만년 전에 인지혁명, 500년 전에 과학혁명, 250년 전에 산업혁명, 50년 전에 정보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정보혁명으로 인해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다른 학문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생명공학 혁명이 진행 중이다. 직립 보행, 뇌 용적의 확대, 도구와 언어사용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생물학에서 현생 인류를 가리키는 말인 호모 사피엔스(라틴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 한국어 '슬기사람')는 자신의 뇌를 활용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현재의 속도로 발달한다면 인류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한계를 초월하며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존재로 대체 될 것을 예측하며 포스트휴먼으로의 진화를 말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이 말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를 알아보고,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해 기독교 신앙의 응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이유이다.

 

Ⅱ.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머니즘

  ‘포스트휴먼’(posthuman)이란 호모 사피엔스가 변화되어 다른 상태가 된 존재를 말한다. 포스트휴먼을 지향하는 사조나 운동을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상 뿐 아니라 인간도 변화 시킬 수 (외모와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인간의 욕망에 따라) 있는 도구가 되었다. 이들이 그리는 포스트휴먼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정도로 능력을 키우고, 생물학적 제약을 넘도록 재설계 하는 것이다. 포스트휴먼의 경계선은 계속 새롭게 그려진다. (by. 캐더린 헤일즈 )

 

  인간의 자발적 진화 과정은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유기, 무기물의 결합), 비유기물 공학 기술에 의존하는데 이에 따라 미래의 포스트휴먼의 유형을 추론해 볼 수 있다.

 

1. 생명공학 기술에 의한 복제인간      (ex) 캡틴 아메리카

  유전자 이식과 조작 등으로 불치병 치료와 수명연장 뿐 아니라 인간 복제까지 기대한다. 염색체 구성 변경으로 우등한 형질을 만들어 출생 시킬 수 있다. 나노기술의 발전은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의 변형과 목제가 가능할 것을 예측하므로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창조 될수 있다는 것이 포스트휴먼에 포함된다.

 

2. 사이보그 공학에 의존한 기계화된 인간 (ex) 아이언맨

  생체 일부가 기계로 만들어지거나, 기계와 결합된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뇌와 컴퓨터의 연결함으로 둘 사이 송수신이 가능한 것이 최종 목표이다. 인간이 창조한 인공물로 자신이 대체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기계와 결합시킴으로 포스트휴먼을 창조한다. 여기서 인공두뇌 기계와 생물학적 유기체,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찾을 수 없다. “2050년이 되면 인간은 중앙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서로 연결된 사이보그가 될 것”이라고 케빈 위웍이 예언했다. (이렇게 되면 ‘중앙 컴퓨터’, ‘모두 서로 연결’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정보를 장악한 ‘중앙 컴퓨터’(빅 브라더)의 정보 조작 뿐 아니라 전 인류의 리모트 컨트롤(‘맨인블랙’에서 기억을 지우듯이..)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3. 인간화된 기계 (ex) 울트론, 비전,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가상현실에서의 포스트휴먼의 출현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것 (뇌 의식, 기억, 인성, 정신)이 복사되어 컴퓨터에 존재한다.

 

Ⅲ. 레이 커즈와일이 전망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1. 레이 커즈와일 (1948~ )

: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천재발명가”(월스트리트저널), “최상의 생각기계”, “토머스 에디슨의 부활”

지휘자 아버지와 음악 선생님인 어머니인 유대인 부모가 오스트리아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가정에서 태어나 15살에 클래식 음악을 분석하여 그와 비슷한 스타일로 합성하는 패턴인식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든 것으로 시작해, 16세에 국제과학박람회(International Science Fair)에서 발명가로 상을 받았다. MIT에서 컴퓨터와 문학 학사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회사를 설립했따. 장애인을 위한 책읽어주는 프로그램인 Kurzweil Reading Machine, 그랜드 피아노같은 소리를 내는 신디사이저를 만드는 회사인 Kurzweil Music Systems, 맹인, 난독증, ADHD 등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기술을 적용한 Kurzweil Educational Systems 등을 설립하였다. 2012년에는 구글의 ‘머신러닝과 언어처리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었다. 저서로는 ⌜마음의 탄생⌟, ⌜특이점이 온다⌟, ⌜영원히 사는 법⌟, ⌜노화와 질병⌟, ⌜21세기 호모 사피엔스⌟ 등이 있다. (생물학적 진화와 기술적 진화를 포함하는 진화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여섯 시기로 구분한다. 5시기에 특이점 발생)

 

2. 특이점 (Singularity)

  레이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시점으로 이를 통해 인간은 육체(몸, 뇌)의 한계를 극복할 것을 말한다. 현재는 10년에 두 배씩 발전하는 기술혁신이 가속화 되고, 1년에 두 배씩 증가하는 정보기술이 빠르게 증가하고, 뇌 스캔 기술이 발전하여 뇌의 작동 법을 알게 되고, 2020년대 말에는 컴퓨터와 인간 지능을 구별할 수 없게 되는데, 컴퓨터의 지능은 스스로 빠른 속도로 진화(기계학습)한다. 또한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분자 수준의 물리적 실체를 만들고 그렇게 되면 분자크기의 나노봇 제작이 가능하고, 이 나노봇을 뇌의 모세혈관으로 이식함으로 인간의 지능이 확장 될수 있다. 인간 뇌 속의 나노봇으로 인해 기계 지능이 가능해 진다.

 

3.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커즈와일은 유전학, 나노 기술, 로봇공학이 단계적으로 혁명이 발생할 것을 예측한다. 유전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장기를 교체하고 유적자 복제로 인간 복제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나노기술은 세상을 분자 단위로 조립 가능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나노봇을 통한 치료와 노화 방지가 가능함을 예측한다. 나노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는 인공지능이 포스트휴먼 시대를 만들어 갈 것다. 또한 인간 몸에 생물학적 부분보다 생물학이 아닌 부분(비생물)이 많게 되면서 죽음을 제어 할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불멸을 예측한다. 커즈와일은 이 비생물적 존재가 지능은 물론 감정적 반응*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Her' (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 : ‘사만다라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남자 이야기

 

4. 희망적이기만 할까..

  인간들안에 들어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네트웍으로 연결된, 프로그래밍된 나노봇, 비생물) 생물학 바이러스 무기의 가능성을 인공지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예측 할 수 있다. 인간에게서 만들어진 비생물학적 지능은 작자의 가치를 반영할 것 이므로 이를 막을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인간 사회에서 미리 인간적 가치(자유, 관용, 인간 존중 등)를 극대화 하는 것과 한편으로는 인류가 방어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단히 걱정된다. 내 주변의 천재 프로그래머들은 좀 마음들이 이상하다...)

 

 

<인간> 1장.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나타난 인간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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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성서에 나타난 인간이해

Ⅱ.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론

Ⅲ. 고대 그리스 철학과 초기 교회의 인간론

Ⅳ. 중세의 인간론 : 토마스 아퀴나스

Ⅴ. 종교개혁자들의 인간론 : 인간론 보다 “중간기” 에 대한 논쟁

Ⅵ. 16-17세기 개혁교회의 인간론

Ⅶ. 근대 이후의 인간론 : 이원론적 인간론에 대한 도전

Ⅰ. 성서에 나타난 인간이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성서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로 표현된다.(시 8:4-5) 그 이유는 구약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창 1:26-27) 이러한 구절은 기독교 인간론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며,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한다.

 

윤철호 저.&nbsp; <인간>.&nbsp; 새물결플러스 . 2017.

1. 초기 교회 교부

. 창조자가 직접 주신 인간의 영혼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네샤마,the 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 living soul)이 되니라 )

. 영혼과 몸의 분리 (플라톤의 이분법)

. 유스티누스 :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이성적 동물

. 고전적 기독교 인간론에서의 하나님의 형상 : 플라톤적 개념인 ‘이성적 영혼’과 동일시 함.

. 플라톤적 인간 개념 : 영혼만이 참된 자아

.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

  -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이며, 생명의 원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 정신-육체의 통일체로 이해했으나, 인간의 영혼은 스스로 존재,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음

 

2. 구약성서

. 네페쉬 하야(생령, 살아있는 영혼) : 몸과 분리될 수 없는 몸의 생명 원리

. 네페쉬 : 영혼, (해부학적)목구멍, 목, 위장 / 활력, 생명력 / 비물질적 부분이 아닌, “전체 인격” 나타냄 ∴ 비물질적 실체인 ‘영혼’보다 인격, 자아, , 나 자신 등으로 해석되는 것이 적합

. 영혼(네페쉬)은 하나님의 영을 필요로 함

. 하나님의 영은 은유적으로 숨(생기, 네샤마) 이나 바람(루아흐)로 표현

  : 영혼(네페쉬)를 생기(animate)있게 하므로 몸을 생기 있게 ∴ 생명의 기원은 신적 영에 있다.

  : ‘생령’(살아 있는 영혼(존재))이 되는 것은 오직 영을 통해서 이다.

.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 다른 동물들도 네페쉬를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속에 존재하고, 다른 피조물에 대해 ‘창조주를 나타내도록 부름 받았다’

 

3. 지속적 창조와 진화 (창발적 진화*)

*창발적진화 : (네이버 국어사전) 진화는 각 단계마다 그 전 단계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면서도, 그 전 단계에 있었던 요인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이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며 발전한다는 학설 

 

. 창 1장의 창조기록은 BC 6, 바빌로니아의 지혜로 하나님을 세계의 창조자로 증언 한다.
  ∴ 현대의 자연과학으로 하나님을 창조자로 증언 할 것이 요구됨

. “성서는 진화의 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를 통해 출현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 진화 개념이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지속적 창조(사48:6 ) 개념과 양립되기 위해서는 진화 과정에서의 새로움과 우연성의 요소를 인정해야 한다.”(p24)

. 생물학자 로이드 모건의 “창발적(emergent, 유기적 organic) 진화“ 개념 : 진화 단계에서 과거 조건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창발’, 진화 과정의 변이 보다 유기 조직의 새로운 설계필요

. 판넨베르크(1928.10-2014.9, 독일 개신교 루터교회 신학자)는 진화론을 생명이 새로운 것을 산출하는 창발 과정으로 이해할 경우 신학적 해석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 창발적 진화 개념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가 진화 과정에서 하나님의 창조활동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 창발적 진화론은 다윈의 기계, 환원주의적 진화론의 방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창조 개념과도 양립 가능 (인간 영혼의 유신론적 창발론, 후성적 진화 개념 )

 

 

Ⅱ.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론

. 구약성서 : 히브리적 일원론적 인간론 (통일체)

. 신약성서 : 헬레니즘의 이원론적 영향 존재 (플라톤)

∴ 서구 기독교 역사는 이원론과 비이원론이 공존하므로 통일적이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

 

기독교 역사 속 이원론적 영혼 불멸사상

(1) 이원론적 영혼 불멸사상 : 몸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 하나님께 간다.

(2) 몸이 부활한다.

→ (종합) 몸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며 마지막 날에 영혼은 부활한 (혹은 변화된) 몸을 받는다.

 

1. 낸시 머피 (Nancey Murphy) : 기독교에서 인격 구성에 대한 3시기

(1) 히브리에서 주변 지중해로 퍼져가는 시기 : 비이원론 (통일체)

(2) 아리스토텔레스 부흥기 : 이원론, 영혼 중심 이지만 육체와 밀접한 관계

(3) 성서 비평학과 비판적 교회 역사학에 대한 응답의 시기

  (예) 18-19C 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적 연구 (계몽주의 확산 시기) : 기적의 역사성이 의심받고 사후 영혼 불멸만이 기독교의 유일한 희망 (영혼-몸 이원론에서 영혼의 가치 )

 

2. 로빈슨 (Wheeler Robinson) - 20C 초

(1) 구약(히브리적) 인격 이해 : 영혼이 아니고 생기 있는 몸(animated body)

(2) 신약 인격 이해 : 일원론적 (통일적) - 몸이 죽은 후에도 영혼(psyche, pneuma)은 존재한다는 믿음.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몸 없이 일시적 존재(완전하지 않음)

 

3. 신정통주의자(칼 바르트) & 성서신학 운동가 (20C 중반) : 히브리적 사고지지

4. 불트만 : 인격을 가리키기 위해 바울이 몸(soma)을 사용

 

5. 쿨만 : 성서에서는 전체적 죽음과 전체적 부활을 말함

 

 

Ⅲ. 고대 그리스 철학과 초기 교회의 인간론

1. 히브리의 인간 이해

. 긍정적, 통전적 인간 이해

. 인간의 몸과 영혼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았다고 믿음

. 영혼은 몸과 분리 할 수 없는 관계 (생명의 원리로 이해)

 

2. 그리스-로마의 인간 이해

. 이원론 : 몸과 영혼을 대조적이며, 역설적으로 결합된 존재로 이해 (구원 : 영혼의 해방)
. 플라톤 : “불멸의 영혼이 사멸하는 몸에 갇혀있다“ 영혼의 3계층이 조화 될 때 인간은 행복함
   (1) 이성 (지배 계급) : 이성적 영혼은 죽음 후에 이데아(형상, 영원한 실재)로 돌아감
   (2) 영 (군인 계급) : 동물도 소유
   (3) 욕구 (소비자 계급)
. 아리스토텔레스 : 영혼은 인간의 속성을 제공해 주는 생명의 원리 (형상>영혼>이성>누스)
    . 영혼 : 영양적(성장, 번식의 힘), 감각적(운동과 지각의 힘), 이성적(인간만이 가진)힘이 있음 (p31)
    . 누스(nous, 이성의 한 부분) : 사후에도 존재, 비인격적, 이성적 능력이므로 불멸과 관계없음
    . 영혼과 몸은 시력과 눈의 관계이므로 영혼(몸의 기능을 위한 원리)은 몸과 함께 죽음
    . 모든 물질은 물질(몸)과 형상(영혼)으로 구성
    . 형상 : 물질적 존재의 본질적 성격, 힘을 부여하는 내재적 원리 (영혼은 형상의 하나)

 

3. 초기 교회 교부 : 신구약 중간기에 헬레니즘의 영향이 커짐 → 신약성서, 초대교회에 이원론 영향

A. 교부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플라톤 주의자들 (몸은 죽고 썩지만 영혼은 불멸한다는 믿음)
B. 초기교회 : 삼분설과 이분설


(1) 삼분설(삼원론) : 몸, 혼(영과 몸 중재하고 연결), 영(하나님과 관계 갖는 본질적 자아)

.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교회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이론 : 현대 신학적 인간론 수립에 중요한 방법론적 함의 제공
  - 인간에 대한 진리가 모든 이성적 인간을 위한 진리가 되야 하므로 하나님 형상의 기독교 인간 이해를 그리스-로마 철학과 과학, 의학에서의 인간 이해와 연결시키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이해(식물적, 동물적, 지성적 힘으로 구분)를 받아들임
  - 바울이 몸, 혼, 영으로 구별한다고 주장(살전 5:23)

(2) 이분설(이원론) : 서로 다른 형이상학적 실체인 영혼과 몸으로 구성
. 라틴 교부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립), 서방 교회의 표준적 인간론
. 아우구스티누스 이론 : 별개의 두 실체인 영혼(참된 인간의 자리)과 몸(도구)으로 구성
  - 인간의 자아는 영혼과 동일(플라톤), 몸에 갇혀 있지 않은 영혼은 불멸한다.

  - 영혼 : 의지, 지성, 욕구의 계층적 질서를 이루며, 몸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몸을 움직일수 있게 하며,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 구원의 수단으로 몸에 갖혀 있는 영혼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 가질 수 있도록 계발. 몸은 영혼에 의존하지만 영혼은 의존하지 않으며, 영적 실체로 영혼은 몸의 사후에도 불멸한다.

 

C. 인간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인간 존재, 삶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까지는 안식이 없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중)

 

D. 교부들의 인간 이해는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 중심 (다른 피조물과 구별/그레고리오스)

 

E.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 여러 관점에서 이해

(1)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정신적, 영적 존재 (자연의 일부이지만 다른 피조물과 구별)

-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정신(영혼)의 활동 : 하나님 알고 사랑 하기

- 아우구스티누스 : 영혼만 하나님의 형상. 정신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할 때 하나님께 이끌림

(2) 하나님을 유비적으로 나타냄 : 인간의 정신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론적 동일성이 있음

- 아우구스티누스 : 삼위일체와 동일성을 인간 정신 안에서 발견(인간의 기억, 이해, 사랑(의지))

- 모든 교부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정신에만 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몸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지는 않았음.

(3) 인간의 자유 : 신적 본성이 인간의 본성에 각인된 것 (그레고리오스)

- 자유의 본질 :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 되는데 있음. 의지에 의해 자유가 행사된다. 의지는 삶의 목적을 이루도록 하며, 탁월함(덕)과 번영을 지향하도록 한다. 덕이 성장함에 따라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므로 자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4) 죄와의 관계안에서 하나님의 형상 발견 : 죄로 인해 흐려지고 망가짐 (훼손, 손상)

(5)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된다.

- “첫 번째 창조에 나타난 인간과 완성의 때에 나타날 인간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둘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스)

- 형상과 모양 구별 : “형상”창조 때의 인간, “모양”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 회복된 인간

- 신화(theosis, divinization, deification) : 인간이 하나님 “같이(like)“되는 것

  ∴ 인간 삶의 목적 : 하나님과 교제, 신적 삶의 공유

  →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성령의 선물을 통해서만 가능“

. 동방:”우리가 신적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아타나시오스

. 서방:“하나님이었던 그가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이었던 자들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 아우구스티누스 (바울의 양자 개념과 유사)

(6) 하나님의 형상을 육체와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육체를 중요시 하였다.

- 그레고리오스 : 영혼은 육체 없이 생명을 가질 수 없다. 영육은 함께 만들어짐.“동일한 시작”

- 막시무스 : 영육이 전인적 인간을 위한 분리 할 수 없는 부분이다.

- 신앙고백(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 육체적 부활로 육체의 중요성 강조

- 아우구스티누스 : 몸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속한다.(p37) 몸과 연합하지 못하는 동안 영혼은 자신이 되지 못함

- 부활신학 : “영혼이 다시 이 몸을 받을 때에만..영혼은 완전한 자신의 존재를 갖게 된다.”

정신-육체 통일체로서의 기독교 인간론의 토대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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