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비 (제임스 프레이저 전기, 에일린 크로스만)

 

  ’산비’를 3월 초부터 읽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3/23일 까지 읽었으니 책 한권을 거의 20일을 읽은 샘이다. 숙제가 발표되자 마자 책들을 훑어 봤고 다른 책들은 (딘 셔만이나 피터와그너 등을 통해서) 약간씩은 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책은 완전 선교현장에서의 실전 내용이 기록된 책일 것이란 기대로 빨리 읽을 것을 기대했는데… 프레이져가 8년동안 힘들었던 것 만큼 나도 그 부분 까지는 진도가 진짜 느리게 진행되다가 8년째에 영접자가 50명으로 갑자기 늘어날 때부터 나도 읽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이렇게 지루하게 읽다니..’ 평소 나 답지 않은 자세였다. 나름 ‘영적전쟁’이라는 주제로 읽어서 그러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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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리플렉션을 적으려고 보니 어쩌면 그 20일간은 ‘영적전쟁의 실습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래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한 편이 아닌데 ‘아 이건 (사탄이 거는) 시비다’ 싶을 정도의 감정적으로 다운되려고 하던 날들이 있었다. 외형적으로 문제되거나 변화된 것들이 없음에도 내 안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전쟁이 나를 괴롭게 했다.

 

  대표적인 날이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튜토리얼의 ‘가정 기상도’에서 처음으로 구름이 조금 보이는 날일 뻔했다. 다행히 이성이 먼저 작용(‘지금 어떤 상태 인가’, ‘이런 생각들과 내가 무슨관련이 있는가’)하여 나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속임수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언능 빠져 나올 수(쉽지는 않았지만..) 있었다. 그래서 튜토리얼 때는 약간 구름이 있어보이는 것 같다가 심야기도회 때는 완전 화창한 봄날이 되어 있었다. 그날 하루를 되돌아 보며 (선교지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같은… 공격중의 하나?) ‘이게 승리인거죠?’하고 감사로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또 하나.. 지난주 화요일에 알러지로 수업을 2번이나 (그룹토의 시간이긴 했지만) 참석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아스팔트 언덕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에 살점이 쌀짝 떨어져 나갔다. 한주에 2번 이상의 사건으로 이전 같으면 아주 민감하게 문제분석을 하고 하나님앞으로 가지고 가고 난리를 폈을텐데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 할 정도로 평안을 빼앗기지 않고 있었다. 병원에 누워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이 계속 생각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감사하고 있었다.

 

  ‘산비’를 정리하면서.. 닐앤더슨("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의 책에 줄쳐진 부분들을, 그리고 강의 자료에 적어 놓은 내용들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 안에서 어둠의 권세보다 위에 있는 장소를 점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시비들 속에서 상황과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산비’의 내용은 지난주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타문화 석의’[1]와 ‘타문화 선교전략’수업의 내용과 계속 해서 같은 부분들이 언급이 되었어서 ‘산비’를 오래도록 읽은 것이 도리어 많이 씹어 먹는 효과가 된 것 같다.

  

  평소에 가장 강조하고, 스스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예방신학”이다. 의학계의 ‘예방의학’처럼 (신학이라고 붙이는게 말이 안되긴 하는데 “예방 영성??”) 평소에 아버지와 관계, 경건의 생활을 해야 비상시에 영적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이론인데 ‘산비’, 강의자료, 닐 앤더슨의 책의 앞부분에서도 계속 강조되고 있는 것이었다. 

 

  강의자료에도 ‘선교사들을 위한 적용’에서 “개인적 경건/예배 생활 및 연합된 예배생활의 지속”에 별표가 쳐져 있다. 프레이져도 “예방접종”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현지에 있을 때 새벽기도, 큐티, 저녁정시기도를 기본으로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었다. 도리어 훈련원 들어와서는 ‘육적 건강의 충전’이라는 이유로 새벽시간 확보를 양보했던거 같다. 허드슨테일러의 영성관리(튜토리얼), 프레이져의 영&생활 관리를 보면서 아버지 앞에서 다시 나를 추스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협하는 과정에서 대적의 문이 열림을 인지하며…

  

  Y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랬고 한국에 교회의 후배들을 만나서의 경우를 들어봐도(임상실험 결과^^) 가장 많이 ‘평안’을 빼앗기는 경우가 ‘정체성’을 잃었을 때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비하, 원망, 자신감 상실, 무기력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 ‘복음을 소유한 자의 정체성’을 생각나게 해 주었을 때 모두들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를 봤었고 닐 앤더슨의 책에서도 많은 예화가 나오고 있다.

 

  프레이져의 이 책이 나오기 까지 가장 많은 자료가 ‘기도편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레이저 처럼 나도 후방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지에 가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모두 듣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안 전한다고 안 듣는 것이 아니었다. Y대 같은 공동체에서는 한 학생을 향한 자연스런 팀웍이 가능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한다. 특별히 한학생에게 여러 교직원이 몰리기도 하고 2-3년이 지나도록 한교직원도 접근 하지 않는-사각지대-학생들이 있다. 또 어떨 때는 전혀 생각지 않은 학생들이 너무 쉽게 변화되는 것을 보기도 하면서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미리미리 기도를 쌓아놓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를 기다리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한영혼 한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우선시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관심있는 기도 동역자들이 매일 매일 학생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매일 한명씩 학과의 학생들의 사진과 근황을 홈페이지에 공유한다. (물론 나는 이메일로 보내고 중간에 도우미가 한국의 보안된 싸이트에 게시하고, 계속 기도 하는 몇 사람들만 찾아온다) 이번학기는 내가 한명도 만날수 없지만 기도로 06학번(3학년) 학생들을 매일 만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불모지인 06학번 가운데 역사하실 것들이 기대가 되고 있다.

 

  프레이저 처럼 나도 낮시간에는 사무실로 계속 해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잔무들로 중요한 수업준비며 양육준비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이 너무 바빠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프레이저와 리수 여인과의 대화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 내내(심지어 밤 11시넘은 시간까지도) 학생들이 약속하고 혹은 불식간에 찾아온다. 어느 시점인가부터 ‘아이들에게 바쁜 티를 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이저가 말한 것 처럼 “어떤 경우든 누가 찾아오면 환영을 해야 합니다. 어느 때에라도 손님이 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태도를 길러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지혜를 아버지께서 내게도 주셨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사무실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좋아하는 한국 노란맥심) 커피와 차와 (학생들이 언제와도 먹을 수 있도록) 맛난 과자를 권하며 편안히 이야기 할수 있도록 사무실 분위기를 조성해 두었다. 그럴때 내가 의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반응들과 친밀함, 사각지대 학생들이 생기를 얻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책이라도 읽을 시간이 좀더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 혹은 case study에서 처럼 ‘이러한 열매’를 바라는 것 등은 프레이저의 말처럼 ‘육신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바쁘고 힘들 때 도리어 지금 이 시간을 주장해 주시는 아버지를 기대하며 그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도 유익이고 아버지의 사업(^^)에도 유익인 것들을 경험했고, ‘산비’를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무리 해도 내가 따라 갈수 없는 것. 프레이저의 헌신(환경을 초월한 삶), 그리고 엄청난 기도의 시간은 예수님을 대면하는 그날까지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1] 프레이저의 리수 족에게 접근하는 여러 방법들과 기다림이 타문화 석의의 적용 같았다. 그들에게 맞게 들어갈 메시지(리수족 같은 경우 정령숭배 관련..)와 그들에게 맞춘 삶의 전반이, 평안과 안일을 추구하는 내 욕심 차리는 선교사인 나를 부끄럽게 했다.

‘타문화 선교전략’의 연구(프레이저 같은 경우 계속 관찰하고 기다리던.. 물론 초반의 조급함과 실수도 있었지만..)와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선교사의 본부와의 자세(진로)등에 대해서도 쉽게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순종’하는 모습은 영적전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이었다.

 

 

 

족자비안 나이트 (손창남)

 

일자 : 2009. 3. 4

 

 

밀리의 서재

 

1. 현지 언어 습득

  이번학기에 한국에 나와 있으면서 C국어를 공부해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선족 사역이었고 들어가자마자 사역해야 했기에 언어공부가 우선순위에서 밀리고 있었다. 최근 2년동안 신입생들 수업, 1:1면담을 하다보니 아직 조선말이 어눌하고 중국어가 편한 그 학생들을 위해서 단어라도 더 많이 알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가능하면 평소에 학생들 만나서 대화할 때 모르는 단어들을 알아가려고 생활속에서 직접 배우는 시도를 하고 있는데 (학생들도 너무 좋아한다^^) 밥먹으면서 배우는 단어는 아주 많은 반복이 필요했다.(-.-)  이미 시작된 사역에서 현지에서 시간을 내서 공부한다는 건 그 만큼 사역을 포기해야 하는데 현지에서의 시간을 미리 계획 할 자신이 없다. 그래도 일이 좀 없다는 방학때도 시간이 안되서 아침에 7:30분에 출근해서 학생으로부터 과외를 받았던 때가 있다. (그 학생의 여행경비 마련을 위해서...)

 

  손선생님처럼 언어 습득의 기간이 따로 있었던 것이 아니고 현지어로 수업하는게 아니라서 부담은 덜하지만 P로 가는 것이 아니라 계속 Y에서 수업하게 된다면 C국어로 수업하기 위한 장기 계획을 세워야 겠다.

 

2. 초문화적 가치의 추구 & 외국인에게 거는 기대

  학생들이 외국인인 교수들에게 거는 기대가 보일 때가 많다. “아무도 보는 이 없을 때 나는 누구인가”란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그 배경은 학생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 지켜보고 있을 때가 여러 번 있었던 후였다. 대화중에도, 시내에서 길을 갈 때도, 식당에서 점원들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학생들은 항상 지나고 나면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아이들의 태도가 나를 따라서 변하는 것을 본다. 그러다 보니 이런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면 C국사회에(혹은 본인 직장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본보기가 될 수 있겠단 생각을 해봤다.

 

  내가 있는 곳에 있는 사람들은 길에 쓰레기를 마구 버리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다. 시내에 나가면 바람따라 쓰레기가 날라다니지만 학교에서는 CIM(Campus Integrity Movement)을 하기 때문에 아주 가까운 거리에도 쓰레기통들이 비치되어 있다. 학교에서 워낙 눈에 보이는 쓰레기들을 줍고 다녀서 한국 와서도 자꾸 길에 큰 쓰레기가 있으면 주으려고 한다. (사실 한국에 길에 쓰레기가 버려져 있는 걸 볼 때마다 실망스런 맘이 생겨서 적응하는데 고생중이다.) 학생들이 나를 지켜보고 점점 변하는 모습이 초문화적 가치를 추구하는 본성이라는 것을 이번에 알게되었다.

 

3. 관련기초 지식 소유 : 현지 관련 정보 (공산주의 이론, 관련 국가 등..)

  내가 있는 곳은 공산권이다. 아이들과 이야기 하는 중에 공산주의 역사나 기본 이론, 현재 법령이나 공산주의에서 추구하는 가치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된다. (사실 공산주의 이야기가 나와야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학생들이 많다. – 당원학생들) 지난 학기도 아는 것 하나도 없이 은혜로 당원학생들을 만나고 그들에게 우선 ‘하나님이 계시다’(무신론에서 유신론으로)라는 이야기가 되었던 것 같다.

 

4. 현지화 : 녹아들어가기

  나는 아직도 C국 모든 음식에 들어가는 향이 강한 쑥 같은 야채를 못 먹는다. 숨을 못 쉬겠다. 그래서 아이들과 식사할 때 마다 많이 미안하다. 손선생님에게서 바왕메라의 냄새가 베어있다는 이야기에  나는 창피했다. 여러가지로 까칠하고 쪼잔한 나를 현지에 보내시고 쓰시는 아버지께 항상 감사해서 현지에서 항상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동역자들 중에 나를 안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그 야채는 힘들다. 그 야채는 못 먹더라도 손선생님 처럼 좀더 학생들안에 더욱 스며들어갈 수 있는 은혜를 구해야겠다.

 

  평소에도 필요하다고 느꼈던 어학학습과 현지 관련 정보에 대한 학습이(지난 3년 동안도 필요함을 느꼈지만^^) 이번 Case study를 통해 더 구체적인 필요를 갖게 되었다. 이제 조금씩 어학학습부터 실제적으로 실천해 갈수 있길 바란다.

 

** 실제적인 교훈 **

1. 현지 언어 완벽할수록 좋다.

  - 족자에 있는 학원에서는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는 외국인

2. 겸손하게 배우는 자세 – 낮은자세

  - 학생들에게 교정 받기

3. 전문성 : 교수로서 학생 실력 관리의 전문성 - 와완짜라

  - 대강주의 배격, 전체 성적 관리와 1:1 면담

4. 외국인에게 거는 기대에 부응하라 (아웃사이더의 역할)

  - 교수회의에 바른말 하기

5. 초문화적 가치(진실..)의 추구

  - 원로회의 부총장 선임

6. 전문성 : 맡겨진 분야의 전문성

  - 학생사역의 전문성 : 베끼고 싶은 사람들 되기

7. 관련기초 지식 소유 : 현지 관련 정보 (공산주의 이론, 관련 국가 등..)

  - 인도네시아, 이슬람, 코란, 이데올로기…

8. 현지 문화 습득, 이해, 배려, 노력

  - 바시바시(사라의 한국포기 사건), 웃으면서 화내기

9. 현지에서 제 3 국인과의 문제해결 방법 : 오해풀기

  - ‘졸라’의 뜻 풀이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10. 시간내어 드리기 : 나의 바쁜 일정에 쫓기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의 필요 채워주기

  - 유도와 아셉과의 아침식사

11. 하나님을 기대하기 :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하시길 기대

  - 유도의 요가

12. 현지화 : 녹아들어가기

  - 바왕메라의 냄새

“우리 사이를 거닐던 사랑”(폴 밀러)을 읽고..

 

일자 : 2009. 2. 24

 

“문화적 갈등과 사역”이 필독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읽고 싶었던 “복음 전달의 원리와 적용”다음으로 손이 가는 책은 “우리 사이를 거닐던 사랑”이었다.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내 인격에 하실 말씀이 있으셨구나… 저자는 성경을 근거로한 예수님의 예에서도 많이 분석했지만 완전 솔직하게 자신과 가족의 경험속에서의 심리전을 묘사하므로 내가 했던 동일한 ‘의도된 잘못’들을 되돌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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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시몬)의 집에서 눈물로 발을 씻긴 여인을 거부하지 않고 받아들이심으로 여인안에 평화와 자신의 존엄성을 찾게 하셨다.

 

여인을 그렇게 놔둠으로써 본인이 처하게 되는 시선의 문제와 사회적인 평가 등 희생 할 것이 많다.

내가 그 입장이라면..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장기사역’이라는 말을 많이 한다.(다른 사역지에서는 어떤지 몰라도 내가 있던 곳에서는 그랬다)  ‘장기사역 하려면 평판 조심해야지.. 예수님은 3년밖에 안 하셨잖아.. 조심해 여기 공산권이야’ ‘장기사역하려면 몸 사려야지. 일이년 하고 말꺼야? 몸 좀 챙겨’ 1-2년차 때 나를 혼돈스럽게 했던, 많이 들었던 이야기이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위해 설교를 보류하셨다.(나인성 과부의 아들을 살리실 동안 회중을 기다리게 하심) “사랑은 효율성이 아니다”(선교훈련에 들어 와서 계속 다시 생각해 보는 단어이다 “효율성”) 그렇다면 내가 현지에서 예수님과 같은 상황일 때 선교사로써의 삶이 이 사건으로 ‘완료’되더라도 한 사람의 가치를 되돌릴 수 있다면 과연 내가 예수님처럼 행할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 한 무리들의 식사를 생각하셨다. 그들의 상황이 되셔서 그들의 입장이 되셨다.

 

선교일반, 마태복음 성경공부와 선교문화인류학 시간 등 계속해서 강조되고 있는 바로 ‘성육신’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오셨을 뿐 아니라 나의 정서적인 상태까지 보시고 나의 입장이 되어 주신다는 것이, (이 ‘성육신’의 상황화가) 우리의 본보기라는 이야기를 계속 들었고 책에서 보았더라도 실제 상황에서 적용하기 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까 생각해 본다.

 

  폴 밀러는 가족안에서의 있었던 예들을 계속 해서 솔직하게 보인다. 대화 속에, 작은 몸짓 속에, 눈빛 속에 실제적으로 의미하고 있는 것들은 전해지기 마련이다.(폴은 너무 솔직하게 썼다. 사실 책 읽는 내내 배우자를 만나게 되면 꼭 읽어보라고 해야 할 책이라고 생각했다. )

 

  너무나 자동적으로 나의 입장에서 행하게 되는 그런 눈빛, 단어 선택, 화술, 행동…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몰두하는 나의 성향과는 반대로 상대의 필요를 생각하셨고 그에 따라 행동하셨다. 이 부분에 대해 남목사님의 사도행전 시간에 해주셨던 해석이 아직까지 맘에 깊이 남아 있다.(책에도 일부 소개됨)

  예수님은 요한의 죽음 소식을 듣자마자 본인의 맘을 추스릴 시간도 없이 제자들의 승전 보고를 받아야 했고, 치하해 주셔야 했고, 그 제자들을 쉬게 해주시려 하다가 또 무리에게 말씀을 전해주셔야 했고, 그리고 (본인의 정서도 참 힘든 상황이셨을 텐데) 그들의 배고픔 까지 챙겨주시고, 집에 가는 것까지 챙겨주셨다. 그리고 나서야 아버지와 함께 하는 시간을 가지실 수 있었다. (누가 예수님께 일중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책을 읽는 내내 폴과 그의 가족들의 몇몇 실수들이 내 삶에도 똑같이 있어지는 것을 되돌아 보며 ‘이제는 정말 조심해야 겠다’고 몇번이나 다짐 했는지 모른다.(이런 식으로 현지에서도 했을꺼 아닌가 그리고 그들은 나의 의도를 느꼈을게 아닌가… 아찔 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어제 점심시간 식사당번 동료가 식사당번인거 모르고 늦게 와서 밥먹는데 ‘아직 안먹었어요?’하고 너무나 ‘자동적으로’ 물어본 내가 그 순간 얼마나 창피했는지 모른다. (아 이거 맨날 다짐하면 모해요~~~ ㅠ) 꼭 책안에 나와있는 내용을 내가 재현한것 같았다.

 

  예수님은 자신의 필요보다 사람들의 필요를 먼저 생각하시고 그들을 배려해 주셨는데.. 그냥 내가 좀 빨리 움직이면서 준비하면 될 것을.. 늦게 와서 미안해 하며 밥먹을 사람 체하게 내가 무슨 말을 한 것이란 말인가!! 아무리 책을 읽고 다짐을 해도 완악한 나를 다시 보게 되었다.

 

  나인성의 과부를 통해서 예수님은 사랑은 “보고, 느끼고, 도와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셨다. 나는 현지 있을 때 아이들을 만나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보았다. 예수님은 내게 도와주는 것 까지 하라고 하신다.

 

  하지만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을 내야 할까..‘ 생각할 때 스펄전의 예가 나왔다. “예수님은 한 사람을 위해 설교를 보류하셨고 스펄전은 설교를 위해 한 사람을 도외시 했다.” 과연 현지에서 한 학생(사람)을 위해 (다른 건 다 보류한다고 하더라도) 수업준비를 보류할 수 있을까…싶다. 역시 예수님처럼 잠을 줄이는 수 밖에 없겠다… (이후 답을 찾게됨. 마태복음 11:28)

 

  예수님께서는 먼저 삭개오의 짐을 덜어 주셨다. “먼저”… 예수님은 “간섭”하셨다. 사람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않으시고 간섭하셨다. 내가 있는 곳에는 많은 선교사들이 모여있다보니 때론 의도하지 않게 ‘영역’이 생기게 되는 것 같다. 지도교수가 자신의 지도학생(영역?)과 수업으로 자주 만나지 않을 경우, 학생의 깊은 필요를 알려면 개인적으로 자주 만나야 하는데 대부분의 교수들이 학생들을 1:1로 자주 만날 수 없는 상황이라 지도교수가 아닌 수업하는 교수가 우연하게 학생의 깊은 내면을 알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럴 경우 아버지의 인도하심으로 알고 그 학생에게 ‘간섭’을 하게 되는 경우를 봤는데 간섭한 교수와 지도교수 사이에 뭔가 있었던 것 같다. (방법의 문제도 있었겠지만..)

 

  베드로가 세계선교를 꿈꾸시는 하늘 아버지의 뜻을 도리어 제한했던 것처럼, 어쩌면 우리도 예수님이 만들지 않으셨던 ‘영역’을 만들어 ‘먼저 간섭’해야 할 상황들을 제한 하고 있지 않나.. 그래서 도리어 아버지가 일하시기 힘들게 하는 게 아닐까 되돌아 본다.

 

  예수님의 의사전달 법… 을 중심으로 읽었어야 했지만 솔직히 이 책은 꼭 나에게 “결혼 준비 지침서”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예수님의 의사전달 법이라기 보다 “예수님의 사랑 법”(?)같았기에 이 땅 가운데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가정을 이루기 위해 준비해야 할 마음을 미리 알려주는 책 같았다.

 

  예수님은 사랑하셨기에 낮은 자세를 취하셨고, 더러움을 묻히셨다.(나인성 과부의 관에 손을 댐, 삭개오, 죄많은 여인, 사마리아 여인을 상대하심) 폴은 부족함을 보면 볼수록 더 겸손하게(과연??) 정직해야 한다고 하고 루이스는 사랑하는 것은 약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면 아플테지만 아프고 싶지 않으면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말라는게 꼭 지금의 나에게 하는 말 같았다.

맞다.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하셔서 그 많은 대가를 치르셨다. 예수님을 닮겠다고 그렇게 큰 소리 치면서도 아직 예수님과 함께 죽는 것을 나도 모르게 피하고 있나 보다.

 

일자 : 2009. 2. 18

 

  사역 철학 과제물에 나열된 책들은 많은 흥미를 주었다. 스크루테이프의 편지 말고는 읽어본 책이 없었어서 비저니어링을 결정하기 까지 많은 고민을 했다. 평소에 ‘전방향 리더쉽’을 생각하고  주장하던 터라 ‘CEO도 반한 평사원 리더’라는 제목도 유혹되었었다. 훈련한지 한달인데 그동안 내가 겪거나 생각해 보지 못했던 좋은 책들을 많이 알게 된 것 같아 자주 감사가 된다.

 

  내가 섬기고 있는 Y대의 학생들은 한국어 책을 읽을 수 있다. 특히 기독 서적은 일부 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아서 책을 구입할 때는 아이들이 읽을 수 있는 것들을 위주로 사게 된다. ‘소명’ (오스 기니스) 같은 경우는 나에게 뿐 아니라 학생들에게도 도움이 클 것 같아 우선 구입했다. 이번 과제물로는 평소 느헤미야의 사역과 기도에 관심이 많았어서 비저니어링을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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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외의 문제가 발생했다. 평소 하나님께서 내 인격, 성품, 습관, 심지어 목소리 톤과 말의 속도, 걸음걸이 까지 세심하게 하나씩 고치고 계시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훈련에 들어온 후에 잔잔한 폭풍이 일고 있다. Y에서 고치시던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 아니라 너무 오랫동안 고질적으로 깊이 뿌리내려 나도 인식하지 못 할 정도의 나의 일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들을 드러내서 수면위로 떠오르게 하신다.

 

  지난 주중엔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정한 – 내 나름 매우 성경적이고 예수님 닮은 생각이라고 생각하고 오랫동안 기도하고 기다리던 – 것들이 ‘틀렷어’라고 문제 제기가 되었다. ‘바꿔야 하나? 하나님 이게 제 고집이에요? 저는 경외함인 줄 알았는게 그게 자유하지 못한 건가요? 진정한 가치의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까요?’ 연이은 질문이 지난 목요일부터 계속되었고 난 계속 답을 구하고 있었다. ‘이미 확정한 것 들인데 이렇게 칼이 대어진다면 –세상으로부터 온 화두 였다면 큰 고민이 안 되었을텐데..- 이거 고치라는 싸인이신가요?’ 정말 이렇게 편협하게(고쳐야 하는건가라는 생각)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생각을 다 뜯어 고쳐야 하는구나… 근데 어려운 거 아시죠?’

 

  문제(? 답?)는 비저니어링을 읽은 것이다. 특히 11장 ‘비판에 대응하기’에서는 ‘나의 예’들이 있었다. 주변의 말들에 비전을 품었던 사람들은 하나하나 포기했다. “스테파니는 그녀의 비전을 포기했다”, “크리스는 그의 비전을 포기했다. 그러나 그는 바로 그 순간에 제니의 비전도 함께 사라져버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책 읽은 것 만으로는 부족했을까?

 

  교수님과의 점심 식사자리에서 본인과 가족의 ‘부르심’을 따라 (세상의 기준기준 봤을 때) 멋져 보이고 많은 재정이 지원되는 안락하고 대우 받는 여러 자리들을 버리고 이곳 목동으로 오신 이야기를 들었다. ‘부르심’을 따른 교수님 가정의 이야기는 목록에서 사라지려는 내 기도의 제목들을 다시 생각나게 했다.(아직까지 교수님 가정의 결정에 대한 의문을 계속 하나님께 제시하고 있지만..). ” 교수와 그 가족은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 (현재까지는..)

 

  비판에 대한 느헤미야의 반응은 기도하고, 비전의 원천이 어디인지 다시 기억하고, 계획을 보완했다. 계획이 실패할 때 비전을 재고해 보라고 했는데 나의 지난 한 주는 여러가지 상황과 대화속에서 ‘비전을 재고 해 봐야 하는’ 상황을 만들어 주신 것 같다. ‘비저니어링’이라는 가이드 북과 함께…^^

 

  스테파니 같이 가정을 영적으로 이끌어갈 책임감 있고 성실한, 성숙한 인격의 그리스도인을 만나 하나님께서 이 땅 가운데 이루길 원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가정의 샘플이 되고 싶다.(물론 나또한 지금 책임감있고 성실한, 성숙한 인격으로 만들어 지고 있는 중이라 생각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이라면, 성령님의 도우심과 지혜로, 육체적 뿐 아니라 정신적 영적 도덕적 성적 순결을 지켜갈 수 있다는 것을 – 이 것이 나의 상처에 기인한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내 상처는 치유하시고 - 이 세상의 젊은이들에게 (작게는 내가 속한 Y의 청년들에게, 내 주변의 외로워 하는 영혼들에게) 샘플로 보여주고 도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수님을 대면하여 만나러 가는 그때 “여디디야는 비전을 포기하지 않았다”라고 말 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

 

  아주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행한다면,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도덕적 권위’와 ‘불가해한 삶’은 자동적으로 따라 오게 되는 것 같다. 나 같은 경우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은 (물론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실까’를 생각 못하고 본능적으로 부도덕하고 가해한 삶을 여전히 살고 있지만 계속 훈련 중) “방해물”들이다.

 

  교수님과 그 가족이 잘 뚫고 나온 ‘기회’라는 방해물과 ‘밝혀 지지 않은 일에 대한 두려움’(이런 두려움은 정말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에 기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안 된다. 이 부분도 곧 손을 봐주실 것을 기대한다.)은 정말 내 안에서 믿음을 서서히 몰아내는 것 같다. 스테파니나 크리스 같이 눈에 보이는 상황은 없지만 나도 이 맛없는 ‘기회’들과, 가까이 할 가치가 없는 ‘두려움’들에게 “나는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고 의지적으로 큰 소리 치는 연습을 해야 할 것 같다.

 

 

  지난주에 문제로 떠올랐지만 아직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남아 있다. 하지만 ‘비저니어링’을 보면서 위의 2가지 비전을 다시 확인 한 것 처럼 그 남아 있는 부분도 답이 어렴풋이 보이는 것 같다.

 

  선교훈련에 1월에 들어오게 된 것, 이 책을 결정 하게 인도하신 것, 지난 주에 문제제기를 확실하게 하신 것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아래서 된 것이라는 것을 느끼며 계속 감사하게 된다. 앞으로도 계속 하나님의 열심을 보며 내게 맡기신 비전들을 느헤미야처럼 일궈 갈 수 있기를 바란다.

 

 

“현대선교의 이해”(이현모)를 읽고.. 

일자 : 2009. 2. 12 ()

 

  370여 페이지의 책이 약 30장의 a4 워드로 정리되었다. 어쩌면 이 자료가 내가 혼돈(혹은 어떤 방법이 필요할 때)에 빠졌을 때 도움이 될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가능하면 그런 나쁜 이유료 이 자료를 찾지 않기를 기대한다.

 

참고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001386016

 

 

  “왜”가 정리되지 않으면 행동하기 힘든 나에게 ‘선교학 총론‘의 강의와 ’현대 선교의 이해‘는 선교학과 선교신학을 왜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깨우쳐 주었다. (여기까지 들은 강의와 책으로 만족한다^^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비본질(학문을 숭배)에 빠질 우려가 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수업 후에 책을 부리나케 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네 분의 강의자에게서 들었던 강의들은 책 읽는데 속도와 이해를 더 하여 주었었다.

 

또, 몇 가지 어렴풋하던 용어들과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명확하지 않았던 주요 선교 역사들도 선교 전략, 정책, 방법론 등에서 다시 분석되고 활용되면서 진정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뤄지는 모든 것들이 버릴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역사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실패 혹은 문제(예루살렘교회의 핍박)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나 부적당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서 열매 맺는 경우들을 보며 상황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회의 강제 철수등의 사건은... 선교지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과연 그렇게 끝난 걸까란 의문도 제기하게 되었다.(예수회가 철수한 그 자리에서 아직도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

 

  하나님과 인간의 동역차원에서 볼 때 인간의 고의적 범죄와 욕심(예수회 내부 문제들과 타 단체의 시기)들로 인한 결과일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나,

더욱 나를 비우고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는다면

예수회와 같은 결과는 누구에게든 나타날 것이다.

 

  선교계에서 많이 들어봤던 ‘상황화’가 기독교 역사에서는 토착화, 상황화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을 중세에 수도사들이 '문화수용'이라는 이름으로 적용 했던 것 들 이었고 어쩌면 이제 와서 새로운 것 인 것처럼 봤던 것이라는 이해도 갖게 되면서 최선의 답은 성경에 있고 우리가 고민하는 대부분은 이미 예수님이 보이신 본에 있었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결국 선교지로 나가는 내가 먼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고 매순간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너무도 기초적인 자극이 남았다.

 

  현재 사역하는 곳은 300여명의 선교사라 이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물론 본교회로부터 후원받는 것 말고는 선교사라는 감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책에서는 윌리엄 캐리의 공헌을 크게 4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캐리의 그 노선을 따라 사역을 준비하고 사역을 일으켰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내가 있는 곳 에서도 많은 일들이 요구되고 또 그 일들을 할 때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주어진 모든 일들을 열심히 할수 있는 이유는 ‘왜’라는 질문에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한 infrastructure라는 답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선교지)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지 않는다면 전혀 예수님을 모르던 학생들이 4년 후에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가장 best의 예^^)

 

  밤새워 수업준비를 철저히 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없고, 호감도 받을 수 없다. 당연히 학생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어지고, 수업외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기회도, 전하더라도 둘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유통되어 지지도 않는다. 그저 단방향의 메시지만 될 뿐, 학생의 삶이나 사고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Y대를 통한 사역이 캐리와 같은 결과가 되려면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사람 한사람들이 사역의 infrastructure를 구성해야 한다.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직접 한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 해도,

지금 당장 열매를 볼 수 없다고 해도

한알의 밀알이 썩어져야 생명이 잉태되듯이

주어진 자리(HERE & NOW)에서

한알의 밀알이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탁발 수도회_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개관

일자 : 2009. 4. 30 (목)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이탈리아어: San Francesco d'Assisi, 1181년~1226년)

- 로마 가톨릭의 수도사

-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꼬, 프란시스(영어식 표현) 등으로도 음역

- 13세기 초에 프란체스코회(프란체스코 수도회) 설립으로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 운동을 이끈 교회개혁가

-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교 교파들에서도 존경, 대한 성공회의 수도원 중에도 성 프란시스 수도회라는 성공회수도원이 있다.

- 로마 가톨릭의 성인. 축일은 10월 4일.

- 갈색 수도복에 밧줄 허리띠를 맨 모습

- 상징물은 비둘기·5개의 성흔·프란체스코회 수도복·십자가·해골

 

 

- 1181년 이탈리아의 아시시 출생

-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

- 어머니 피카

- 아버지가 사업상 프랑스로 간 사이 태어나서 산 루피노 대성당에서 조반니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으나 프랑스에서 유래한 프란체스코라고 다시 지어줌

 

교회사핸드북, 생명의 말씀사 (앗시시의 프란시스, 로버트 클라우즈)

  1219년 중동으로 여행하여 이집트의 회교군주(술탄)을 개종시키려 애썼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그의 생애의 여러 장면이 묘사되어 있는 그림의 왼쪽 맨아래 그림에서 그는 술탄에게 설교하고 있고 그 위의 그림에서 그는 새들에게 이야기 하고 있다.

‘작은 형제들’에서 본래의 이상을 고수하던 프란시스는 그의 지도권을 버리고 몬테 알베르니아의 은둔지로 물러갔고 거기서 성흔(stigmata,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상처와 같은 모양의 것이 몸에 나타나는 것)을 받았다고 한다.

 

  세상의 도피처로서 자연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창조된 사물들 가운데서 창조주를 가리키는 사랑의 대상들을 보았다. 이러한 이유로 고독한 삶을 즐겼고 새들과 동물들도 그의 설교를 즐겼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주요한 관심사는 성장하는 도시들이었다. 거기서 그는 보통 사람들 중에서 철저한 청빈을 실천하며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그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생존했던 가장숭고하고 그리스도를 닮은 인물들 가운데 한사람으로 존경을 받고있다.

 

 == 천년의 불확실의 시대(AD500-1500) 인물연구 ==

탁발 수도회_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2/2)

일자 : 2009. 4. 30 (목)

 

 

3. 인물중심의 역사적 배경과 역사적 사실 [13]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 (San Francesco d'Assisi, 1181년~1226년) : 로마가톨릭 수도사

- 성 프란치스코, 성 프란치스꼬, 프란시스(영어식 표현) 등으로도 음역

- 13세기 초에 프란체스코회(프란체스코 수도회) 설립으로 세속화된 로마 가톨릭교회의 개혁 운동을 이끈 교회개혁가[14]

- 1181년 이탈리아의 아시시 출생 (아버지는 부유한 상인)

- 1202년 페루지아 전쟁에서 포로로 1년 생활

- 1204년 아풀리아 군사 원정 참전

- 1207년 아버지와 결별, 빈민 & 교회 재건 시작

- 1208년 마태복음 10:7-10절 말씀으로 정비

- 1209년 수도회 승인 (교황 이노센트 3세)

- 1212년 프란시스 시리아 선교시작, 클레어 수녀회 시작   

- 1216년 도미니크 수도회 시작

- 1219년 이집트의 회교군주(술탄)을 개종시도

- 1219년 프란시스회 북아프리카에 파송   

- 1220년 수도회 지도자 자리 사임           

- 1221년 ~ 기도와 찬송과 명상에 몰두 [15]

- 1226년 10월 3일 사망

- 1228년 성인 칭호 받음

- 1245년 프란시스 수도회 재산 소유 시작

  (엄수파(Rigorists, 스스로 성령파라 부름)들 리더쉽에서 제외되기 시작)

- 1255년 클레어 성인 칭호 받음

- 1256년 어거스틴 수도회 (교황 알렉산더 4세)

- 1540년 예수회 (이그나티우스 로욜라)

 

4. 동시대 다른 인물과 대조, 비교, 종합

  프란시스와 동시대에 ‘도미니쿠스회’를 창립한 도미니쿠스가 있다. 도미니쿠스회와 프란시스회는 거의 무한한 대중적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들의 사역으로 평신도들의 신앙이 크게 강화 되었고 동시에 주교와 일반 성직자들의 영향력이 축소 되었다. 도미니쿠스는 프란시스에 비해서 조직력은 뛰어났으나 프란시스회의 급속한 성장은 따를 수 없었다. 프란시스회는 대학 도시들에 자리를 잡아 저명한 학자들에게 많은 영향력을 끼쳤으나 도미니쿠스보다 더 가난한 자들의 수도회로 남았다.[16]

(클라라는 2.2에서 거론됨)

 

5. 선교적, 개인적 적용

  여러 책이나 웹싸이트에서 보아온 프란시스의 유명한 시[17]나 어록들이 있다. 최근 어떤 책[18]에서 “언제나 복음을 전하되 필요하면 말을 사용하라”는 프란시스의 글을 인용한 것을 보았다. 짧지만 깊은 생각을 하게 하는 말이었다.  4년 전부터 자주 들으면서 ‘자아’를 죽이는데 도움이 되던 CCM이 있다. 강명식의 ‘승리’

 

승리가 무엇인 줄 아는가. 

하고싶은 말 그 많고 많은 말 힘겹게 잠재우고

오직 주님만 말씀하게 하는 것 바로 승리라네

 

라는 곡이다. 프란시스가 사용한 말과는 약간 차원이 다르지만 바로 이 곡으로 나의 급하고 불 같은 성격이 조금씩 사그라 들고 하나님께서 직접 하실것에 대한 믿음을 키워나갔다. 어쩌면 그렇게 조금씩 주인되신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드리는게 예수님을 닮아가는 한걸음이 되고, 삶에서 복음을 드러내는 (=’언제나 복음을 전하는’) 작은 시도가 되지 않을까 한다.

복음을 전함에 있어서도 내 방법, 내가 급한데로 ‘논쟁’으로 ‘내’가 뭔가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시도록’ 기대하고 자리를 내어드리는 것이 많이 필요함을 느꼈고, 프란시스의 말에 많은 동감이 되었다.

 

십자가의 예수님께서도, 그리고 십자가에 오르시기 까지 예수님도 결코 논쟁하지 않으셨고 단지 ‘진리를 증거’(요한복음 18:37)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말씀만 하셨다. 나의 삶에서도 많은 말이 아닌 나의 삶으로 ‘진리를 증거’할 수 있기를 이번 과제를 하면서 다시 한번 간절히 바래본다.

 

처음에 의도하지 않았던 수확이 있었다.

  프란시스의 경건 생활과 그 경험에 대해 자주 접하게 되면서, 그에게 경건의 모양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이 나타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름 faith mission을 하겠다고 하지만 그럴수록 내 안에 믿음이 없음을 보게 된다. ‘탁발 수도승’으로서, 아주 작은 것 조차 소유할 때 생기게 되는 인간의 욕심을 싹부터 잘라버리려던 그의 이야기들을 읽으며 나의 모습을 되돌아 본다. 나의 연약함을 알기에 싹부터 잘라버리려는 나의 각오와는 달리, 세상과 비교하면서 나의 각오를 조금씩 타협하면서도 내 안에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을 기대했었다. 이런 아이러니 속에 있던 나를 프란시스의 삶과 얼마전의 큐티(롬12:3-8)말씀과 더불어 다시 세상과 비교하지 말고 타협하지 말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디모데후서 3장과 같이 경건으로 인하여 박해를 받더라도 프란시스와 같이 경건의 능력이 삶에서 드러나는 한 사람, 그런 선교사가 되고 싶다.

 

 



[1] 세계선교역사, J. 허버트 케인, 기독교 문서 선교회

[3] 기독교 선교 역사 개관, 남전우, (web site download)

[4]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 스티븐 B. 베반스 & 로저 P. 슈레더, 크리스천헤럴드

[5] 영화를 찾아서 보고 과제를 하려고 찾다가 결국 웹에 있는 일부 만 볼 수 있었다.

[6] 교회사핸드북, 생명의 말씀사

[7]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 스티븐 B. 베반스 & 로저 P. 슈레더, 크리스천헤럴드

[8] 중세교회사, 유스토 L. 곤잘레스, 은성출판사

[9] 영화에서는 인노센트 3세가 프란시스의 발에 입맞추며 부와 권력의 횡포를 부린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회개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10] 당시 교황 인노센트3세의 고백과 프란시스 수도회가 승인되는 과정, 그리고 이후의 돈과 명예를 멀리하려는 프란시스의 삶과 그의 흔적들, 당시 대중이 프란시스 개인과 수도회에 보인 존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프란시스의 신비한 경험들을 많이 다룬 것 등.

[11] 영화(Brother Sun, Sister Moon)에서는 클레어가 원래 프란시스의 약혼녀였다고 표현되어 있고 ‘예언자적대화의 선교(크리스천헤럴드)’에서는 클레어가 어릴 때부터 영적은사가 있었고, 클레어의 수녀원이 지역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2] http://www.francis.or.kr : 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 홈페이지

[13] 동시대의 주요한 수도회의 설립 연도 함께 표기 (볼드체)

[14] ‘프란시스 본인은 그런 생각이 있었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는 후대가 내린 평가가 아닌가 한다.

[15] 이 기간 중 성흔(예수님의 십자가 상처)를 받았고 죽을때 까지 그 상처의 통증이 컸다고 한다.

[16] 기독교회사, 윌리스턴 워커, 크리스찬다이제스트

[17] “평화의 기도”는 모 교회에서 몇 년간 예배의 마지막에 부르기도 했다.

[18] 21세기 제자도 사역핸드북, 스티브&로이스 레이비, 복있는 사람

 

 == 천년의 불확실의 시대(AD500-1500) 인물연구 ==

탁발 수도회_아시시의 성 프란시스  (1/2)

일자 : 2009. 4. 30 (목)

 

1. 인물 선택 이유

  선교 역사 과목에서 맡게 되었던 500-1500년대는 갓 로마제국이 기독교화 되고 교황권이 확립된 시기에 이어져 있다.

로마제국 내부에서 기독교가 살아 남기만도 힘들다가[1] 500년도 초반(529년)에야 초대교회의 영성과 열정을 되찾고자 베네딕트에 의해서 수도원이 시작되었다. 몽트카지노(Mount Cassino)에서 시작된 베네딕트 수도원에서는 엄격한 훈련과 경건생활을 실천하며 자발적 선교 훈련으로 개인영성훈련과 복음전도 활동을 했다.[2] 선교 역사에서 거론되는 콜럼바, 콜럼반, 어거스틴 등 18세기 윌리엄캐리에 의해서 본격 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3] 선교는 대부분 카톨릭의 사제 들에 의해서 이루어 졌다. 그래서 시대를 바꾸어 개신교의 선교사들을 연구 할까 하다가 ‘타문화 선교 전략’과목에서 이슬람 수업 중, 십자군 전쟁 당시 많은 카톨릭 사제들과 다른 방향을 제시했던 ‘사랑의 사제’인 프란시스와 레이몬드 룰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선교지에서 뿐 아니라 이 땅에 사는 가운데 예수님을 닮은 모습으로 살면서 삶에서 복음을 드러내는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수님을 닮은 ‘사랑’의 삶을 사는 것은 ‘나의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점점 더 알아 가는 것 같다. 몇 년 전에 담임목사님이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를 자주 언급하셨던 것과 ‘사랑의 사도’라는 그의 명칭이 이번 선교역사에서 인물 탐구로 프란시스를 선택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2. 역사적 의의

  프란시스의 삶은 여러 다른 각도에서 많은 의미가 있겠으나 본인은 크게 사랑을 기반으로 한 선교방식(그 당시 이슬람을 대하는 방식)과 탁발수도회(Friars Minor, 겸허한 형제단)의 시작에 의의를 두었다.

 

2.1 사랑의 사도 (이슬람 술탄과의 만남)

대부분의 사람들이 십자군 정신에 사로잡혀 있을 시대에 프란시스는 무슬림에게 다가서기 위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의 최초의 두 시도인 시리아와 모로코로 가려는 시도는 실패했으나 1219년 ‘성령강림헌장(Whitsun Chapter)’을 재정한 이후로 프란시스는 좀 더 평화적인 선교 방법을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그리고는 일부 수도사들을 튀니지와 모로코로 파송하고 자신은 이집트로 가서 십자군의 전선을 뚫고 술탄 알 말릭 알 카밀(Al-Malik al-Kamil)에게 갔다. 술탄은 프란시스가 십자군으로서가 아닌 종교인으로서 자기에게 왔다는 것을 알고 무슬림식으로 예의바르게 영접하고 며칠 동안 기독교 신앙에 대한 프란시스의 자상한 이야기를 들은 뒤 그를 십자군으로 안전하게 돌려보냈다. 프란시스는 술탄을 개종시키거나 전쟁을 종식시키지는 못 했다. 그러나 적대 관계에 속한 두 사람의 인간 대 인간으로서의 만남에서 두 사람은 우정을 나누었다고 한다.[4] 이 경험으로 그는 선교사의 태도에 대한 모범과 규훈을 구체화 했는데, 나에게 감명 깊었던 것은 ‘기독교인의 현존(presence)과 증거(witness)는 “논쟁”으로 시작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위해 모든 사람들을 섬긴다는 것”에 기초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타문화 선교전략’에서 엄목사님이 실제로 무슬림과 경험했던 이야기에서도 그렇고, 또 내가 섬기고 있는 공산권에서도 “논쟁”이 결코 복음의 훌륭한 도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경험한 바이기도 하다.

 

2.2 탁발 수도회 (Friars Minor)

  조사를 하던 중 “Brother Sun, Sister Moon”이라는 영화가 프란시스의 청년시절 인간적인 모습에 초점을 두어서 제작되었고, 수도회와 그 사역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프란시스”라는 영화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5]

프란시스는 젊은 시절 부자 아버지 아래서 풍족한 가운데 즐기는 삶을 살았다. 또한 기사로서의 삶이 보장되어 있던 중 이웃도시에 전쟁포로 잡혀갔다가 거의 죽은 몸을 끌고 다시 아시시로 돌아와서는 (여러자료에서 프란시스의 변화에 영향을 미친것에 문둥이와의 만남, 전쟁 참석, 포로생활 등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가난을 칭송하고 자연과 벗삼게 된다.[6] 부자인 아버지는 프란시스가 재산을 관리할 능력이 없게 되자 성직자들에게 문제의 해결을 요청하고 아시시의 주교는 유산을 포기해야 한다고 결정한다. 이에 프란시스는 자기가 입고 있던 옷과 신발까지 벗고 성밖으로 나간다. 그는 초기에는 자발적 빈곤과 이를 통해 발견한 기쁨을 추구했다.

  “프란시스, 가서 내 교회를 수리해라!” 프란시스가 성 다미아노의 교회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다가 들은 음성이다. 그는 그 음성을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아시시 근교의 예배당을 수리했었다.[7] 그러던 중 마태복음 10장 7-10절의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는 가난과 설교를 연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 한 후에 자기가 처할 곳이 조용한 고독의 장소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법석대는 곳으로 들어가 이들을 교훈하고 빈자와 병자들을 도와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8] 그와 뜻을 같이 하는 소수의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해서 결국은 본인이 의도하지 않게 새로운 수도회가 창설되게 되었다.

탁발 수도회가 프란시스가 처음은 아니었다. 탁발 수도회의 선구자는 리용 출신의 상인으로서 극도로 청빈한 생활을 실행하였던 수도사의 이야기를 듣고 이에 감동하여 스스로 가난과 설교의 길에 나섰던 Peter waldo 라고 한다. 그 주위에 여러 추종자들이 모여들었으나 대주교는 이들의 활동을 금지시키고 신학자들은 그들의 무식을 조롱하여 이들은 결국 계곡 속으로 들어가고 이후에는 개신교가 되었다. 이러한 초기 분위기에서 프란시스 수도회는 왈도파와 흡사하여 교황 인노센트 3세는 처음에는 반대하다가 프란시스와의 면담에서 그의 요청을 수락하게 된다. [9]

프란시스의 역사적 의의 중의 하나를 탁발 수도승으로 택한 이유는 두 가지 이다. 첫째, 여러 자료들에서 중세의 경건의 대표자[10] 그를 뽑는 것과 둘째, 동일한 지역 아시시에서 클레어 (Clare)[11]라는 여성의 대표적인 수도승이 나타난 것이다.(현재 : Poor Clares, 청빈한 클레어회) 프란시스와 동시대 인물로 알려진 클레어는 프란시스의 가장 충실한 제자라는 의미로 “작은 식물”로 불리기도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녀에 대한 평가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많은 탁발 수도회들이 생겨났지만 프란시스회는 아직까지도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으며,[12] 프란시스의 많은 어록들이 개신교 설교와 책에서도 많이 쓰이고 있다. 당대에 선교 활동은 프란시스 수도회와 도미니크 수도회의 활동이 주축이었다.

 

 



[1] 세계선교역사, J. 허버트 케인, 기독교 문서 선교회

[3] 기독교 선교 역사 개관, 남전우, (web site download)

[4]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 스티븐 B. 베반스 & 로저 P. 슈레더, 크리스천헤럴드

[5] 영화를 찾아서 보고 과제를 하려고 찾다가 결국 웹에 있는 일부 만 볼 수 있었다.

[6] 교회사핸드북, 생명의 말씀사

[7] 예언자적 대화의 선교, 스티븐 B. 베반스 & 로저 P. 슈레더, 크리스천헤럴드

[8] 중세교회사, 유스토 L. 곤잘레스, 은성출판사

[9] 영화에서는 인노센트 3세가 프란시스의 발에 입맞추며 부와 권력의 횡포를 부린 우리를 용서해달라고 회개하는 내용으로 전개되었다.

[10] 당시 교황 인노센트3세의 고백과 프란시스 수도회가 승인되는 과정, 그리고 이후의 돈과 명예를 멀리하려는 프란시스의 삶과 그의 흔적들, 당시 대중이 프란시스 개인과 수도회에 보인 존경,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프란시스의 신비한 경험들을 많이 다룬 것 등.

[11] 영화(Brother Sun, Sister Moon)에서는 클레어가 원래 프란시스의 약혼녀였다고 표현되어 있고 ‘예언자적대화의 선교(크리스천헤럴드)’에서는 클레어가 어릴 때부터 영적은사가 있었고, 클레어의 수녀원이 지역공동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한다.

[12] http://www.francis.or.kr : 성공회 프란시스 수도회 홈페이지

[13] 동시대의 주요한 수도회의 설립 연도 함께 표기 (볼드체)

[14] ‘프란시스 본인은 그런 생각이 있었을까’란 생각을 해 보았다. 그러나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는 후대가 내린 평가가 아닌가 한다.

[15] 이 기간 중 성흔(예수님의 십자가 상처)를 받았고 죽을때 까지 그 상처의 통증이 컸다고 한다.

[16] 기독교회사, 윌리스턴 워커, 크리스찬다이제스트

[17] “평화의 기도”는 모 교회에서 몇 년간 예배의 마지막에 부르기도 했다.

[18] 21세기 제자도 사역핸드북, 스티브&로이스 레이비, 복있는 사람

 

(빅터 프랭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_A. 일반 실존 분석 

 

Ⅱ. 정신분석에서 실존분석으로 A. 일반 실존 분석

 

빅터 프랭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유영미 역. 청아출판사 by 밀리의 서재

 

1. 삶의 의미에 대하여

. 정신분석과 로고테라피(의미치료)의 차이점 : 영적인 것을 의식하게 하고자 함

. 로고테라피 : 실존적 본질상 (의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에게 의식시키고자 함

. “삶의 의미”

 

존재 의미 묻기

. 인간만 실존을 의문하고 존재적 의심을 경험

. 영적 곤궁과 정신질환 사이에 배타적인 관계의 증거 :

내분비성 우울증이 발현할때는 우울하지 않다가 건강한 시기에만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환자

. 촛불은 연소과정으로 보아도 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와 다른 “역사적 존재” - 의미에 의해 좌우됨

개미무리의 움직임과는 다른 목적 지향적(의미 있는) 인간 ∴ 역사적

.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올라오는 시기 : 병적이라고 할수 없음

  (1) 사춘기

  (2) 충격적 경험을 할 때 운명적으로 생김 : 충만한 삶을 갈구하는 정신적 곤궁과 영적 투쟁

  ∴ 로고테라피의 대상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지만 임상적으로 병들었다고 볼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함

    ‘영성에서 출발하는 심리치료’

    .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에게 불안의 상쇄를 위해 영적 뒷받침 제공이 필요

    . 영적 문제를 ‘증상’으로 취급하지 말고 함께 이루어야 하는 ‘성취’로 해석 (오스발트 슈바르츠)

    → 외적인 이유로 정신적 균형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

    . 삶을 긍정하는 세계관의 중요성 : 장수 노인들의 특징 등..

 

초의미

. super-meaning : 세계의 목적은 세계외부에 놓여있으므로 초월적이다. 세계전체의 의미는 파악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므로, 한정적으로 만 파악 할 수 있다. (신앙으로만 해결 가능 : “동물이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신앙 안에서 영감으로 뻗어 나가지 않는 이상 인간도 초세계를 파악할수 없다.”)

. 초인간적 차원으로 나가는 것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짐 (ex) 치료받는 강아지, 모성애 등..

∴ “초의미에 대한 믿음이 심리치료와 정신건강에 효과를 발휘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헛되게 보이지 않으며, ”예정되지 않은 일이 없다“(빌트간스, Wildgans)”

. 인간(삶)의 유한성인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해석하므로 삶의 의미와 가치에 손상을 입히지 못한다.

(해석!! 과거에 이미 행한 현실, 미래는 ‘책임’앞에 열려 있는 지금)

 

쾌락 원리와 상쇄 원리

. 개인적인 삶의 의미

.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의 쾌락을 중요하게 보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쾌락 원리는 심리학의 인위적 산물

. 인간이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른데 쾌락원리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목표를 평준화 하는 것

 

내 안에 접힌 날개(리처드 로어 외)_3부 내적 차원들

 

1. 회개와 재교육

  1 2 3 4 5 6 7 8 9
함정 과민증 아첨(자상) 허영(피상) 의기소침(우울) 감정적 인색 겁/무모함 계획 복수 무기력(안락)
초대 성장 자유(은총) 희망(신의 의지) 독창성(신일합일) 지혜(섭리) 믿음(신뢰) 현실주의(신과협력) 자비(진리) 사랑
근원죄 분노 자만 거짓 질투 탐욕 두려움(불안) 무절제(폭식) 파렴치함(욕망) 게으름
성령의 열매 평안(인내) 겸손 진실함(정직) 일관성(조화) 객관성 용기 즐거움 순진함 행동
성유형 질투 유혹/공격 남성/여성성 경쟁 확신 강함/아름다움 민감 소유추구/헌신 일치
사회유형 융통성없음 야심 명성 수치 토템 의무 희생 우정 참여
자기보존 걱정 특권 안전 저항 은둔 온화 방어 만족스런 생존 식욕
이상화 정직
열심
규칙
사랑
헌신
도움이될 때
성공
유능
효력 발휘
독창적
예민
교양있을 때
지혜
현명
잘 받아들일 때
성실
순종
충실할 때
낙천적
행복
멋있을 때
공정
강하고
지배적일 때
침착
조화
균형잡혀 있을 때
자기이미지 옳다 돕는다 성공한다 다르다 꿰뚫어본다 의무를다한다 행복하다 강하다 만족한다
유혹 완벽 도움 효율성 정체성 지식 안전 이상주의 정의 스스로 경시함
회피 욕구 실패 평범 공허 부적절한 행동 고통 약함 갈등
방어 반응(반동)형성 억압 동일화 예술적 승화 후퇴(분할) 투사 합리화 부정 마취(혼수)상태

 

2. 삼각 연속체

2.1 미성숙-일반-성숙

  1 2 3 4 5 6 7 8 9
미성숙한태도 아는 체하고
위선적이고
걱정이 마음 좀먹음
조종
지배적
공생
기회주의적
속이고
출세지향적
자기연민
퇴폐적
죽음에 심취
고립
허무주의적
괴짜
의존적
공격적
겁이많다.
무절제
예술 애호가
고집세다
권력에 사로잡혀있고
포악하고 폭력적
숙명론자
목표없고
고집이세다
일반적 태도 완벽주의자
동요
빈틈없다
자애롭고
베풀고
활동적
실용주의적
지위의식
역할 지향적
심미적
낭만적
말쑥
분석적
거리두기
추상적
의무 자각
주의깊고
(반)권위주의적
활동적
쾌락주의자
피상적
지배적
경쟁적
직접적
순응주의자
별로 걱정없고
결단성 없다
성숙한
태도
비판적으로 인식
침착
윤리적 고양
잘 돌봐주고
친절하고
독창적
유능하고
진실하고
믿을 만하다
창조적
자연스럽고
교양
창의력 풍부
지혜롭고
활동적
충실하고
용기있고
자신감있다
행복
재주많고
진지
관대
힘있는 지도자
보호한다
잘 받아들이고
평온하고
목표있다.

 

 

2.2 두 개의 날개 (p398) : 양 날개 작업이 전인격 통합으로 가는 것, 3개의 숫자 중 중간 것이 실제 유형인 경우가 많다.

 

2.3 화살표 (p399)

. 거짓 위안 : 화살표 방향, 퇴행과 분열 (정신적 혼란, 소동, 어둠, 혐오, 의심, 이기심으로 표출됨)

. 참된 위안 : 화살표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이 인격 융화의 길 (성령의 불길, 감사, 평화의 체험으로 드러남)

 

3. 에니어그램을 통한 성장

: 자아학습, 애정관계, 권위 및 가족 관계, 종교적 수련과 영성 지도 등... (416-423)

4. 예수와 에니어그램

  1 2 3 4 5 6 7 8 9
예수 가르침 ,관용, 인내 염려, 동정, 연대감 야망, 에너지, 전망 창조성,민감성,단순성 거리두기, 건전, 지혜 충성, 복종, 신뢰 흥겨움, 삶의 기쁨, 고통 대결, 명철, 권위 침착, 평온, 사랑

 

5. 에니어그램과 기도예

(1) 머리 : 외부에서 나에게

(2) 가슴 : 내부에서 외부로 (말, 그림)

(3) 장 : 비움, 정적에 이르기 위해 내외의 충동을 사라지게 함

 

6. 결정론의 종말

. 에니어그램은 확정적으로 말하지 않고 비유적으로 말하지만 ‘율법’의 일부이다 그러나 자유의 이정표가 될수 있다.

 

7. 성탄절 에니어그램 강론(461)

: 9가지 죄의 성화(분노, 자만, 허위, 질투, 탐욕, 두려움, 방종, 폭력, 나태)

 

8. 아무도 후회하지 않는 회개 (462) :

. 회개는 내 노력과 하나님의 노력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과정

(1) 영혼의 숨겨진 얼굴을 보기 위한 에니어그램 : 자아의 확장, 더 넓게 용해됨

(2) 에니어그램을 통해 자유롭게 되지만 그 전에 두렵게 하고 상처를 준다. 영적 실체를 전해준다.

(3) 자신의 변화를 위해 도덕적 성찰보다 자신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468 시) 모두를 그대로 받아주시는 하나님께 가야, 자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위험하지 않다.

(4) 회개를 통해 영을 식별(자부심vs자만심, 기쁨vs쾌락, 아첨vs복종, 회개vs연민,.. ∴기질을 영적전쟁에 투입하지 않음)

“자신의 죄를 보고 통곡할 수 있는 자가 모든 것을 가진 것”(476), 영적 성숙의 척도는 겸손

(5) 모든 것을 감싸는 사랑의 넓은 세계로 들어간다. : 진정한 자아에 대한 선지적 갈망이 일어나고 내적 관찰자가 나타나서 관찰함..아가페의 세계 속에서 정죄의 늪에 빠지지 않고 천국(사랑에 의한 융합을 무한히 펼치는 곳)으로 간다.

하나님의 도성_21권(2/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14. 인간성이 받아야 하는 금생에서의 일시적인 벌들에 대하여

. 무지와 교육이 없는 것은 큰 벌이다. 교육 시켜야 한다. (cf. 현대 행복도 조사 결과 ?)

. 이 땅에서 일찍 죽더라도 그것이 내세의 행복에 해를 주지 않는다.

 

15. 뿌리깊은 악에 빠져 있는 우리를 구출하려고 하나님의 은혜가 하는 일은 모두 내세에 속하며, 내세에서는 모든 것이 새로워진다.

. 우리의 속성인 죄와 죽을 운명을 버리고 본석에 주입하신 선한 속성을 보존하고 그의 선한 본성에 참가함으로 최고선으로 충만하게 하려 하심 – 하나님이신 한 사람이 우리를 의롭게 함으로 높은 행복 얻음

. 죄와 싸우는 것이 죄에 굴복하는 것보다 낫다. 인간성은 하나님과의 평화를 유지하려하지 않았기 때문에 불행한 가운데서 싸우고 있다. (원복?)

 

16. 은혜의 법은 중생한 자의 전 생애를 주관한다.

. 어릴때는 하나님의 계명을 이해할수 없지만, 계명을 이해하고 법의 지배에 복종할수 있는 시기부터는 죄와 격렬히 싸워야 한다. 매일 승리하는 사람에게는 더 쉽게 극복된다.

.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정복해야만 죄악은 정복된 것으로 인정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신다.) : 은혜 앞으로 피신하여 영혼이 육신을 지배하게 함으로 승리자가 된다.

 

17. 영원히 벌을 받는 사람은 없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 인정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논쟁

. 오리겐은 마귀까지도 벌을 받은 후에 고통에서 풀려 천사들과 연합할것이라 믿음 – 정죄

 

18. 성도들이 위하여 기도하므로, 아무도 최후 심판에서 정죄를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 심판 때가 오면 자비가 더 우세하리라고 주장한다. (자비의 하나님, 니느웨)

. 그것이 마귀까지도 용서하고 해방 받는 것은 아니다.

. 하나님의 특별한 자비를 전 인류에 확대함으로 자신들의 패역한 생활도 벌을 받지 않으리라는 헛된 소망

 

19. 이단자들도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했기 때문에 벌을 받지 않으리라고 약속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 생활이나 이단이나 불경견과 상관없이 성찬에 참여했으므로 (요 6:50-51) 영생을 누린다고 주장한다.

 

20. 이 용서를 모든 사람에게 약속하지 않고, 정통 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국한하며, 그들이 후에 많은 죄와 오류에 빠져도 그것은 상관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 악한 생활을 했다고 해도 정통 교회에 속해 있으면 그리스도의 몸에 결함되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고전 10:17)

 

21. 믿음을 지키는 정통 그리스도인은 비록 그 패악한 생활이 지옥불을 받기에 합당할지라도, 그들의 믿음의 ‘터’가 있기 때문에 구원을 받으리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 악한 생활을 했을지라도 정통 교회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약속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22. 자선 행위를 하면서 지은 죄는 최후 심판에서 정죄를 받지 않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 행위를 고치지 않았을지라도 악한행동과 자선행위를 섞은 사람은 심판받지 않는다고 주장

 

23. 마귀나 악인들이 받는 벌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논박함.

. 마귀는 영영한 불에서 타리라는 것을 명백히 말씀하셨다. (마 25:41, 계 20:10)

. (마 25:46) 영생과 영벌은 둘 다 영원하다.

 

 

24. 하나님의 심판에서 죄인들은 성도들의 기도의 힘으로 모두 용서받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논박함.

. 교회가 악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아직 살아있는 동안 회개할 기회가 있기 때문이다.

. 마귀나 이미 죽은 영벌에 처한 사람을 위해 교회가 기도하지 않는다.

. 하나님은 노하심중에도 자비를 베풀기 멈추지 않으시지만, 이미 영벌을 받고 있을 때는 관련시킬 필요가 없다. 니느웨의경우와 같이 회개에 의해서만 사람들의 죄만 파기되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는 그에게 희망을 두는 자들에게 선하심을 완성하신다.

 

25. 이단파의 세례를 받고, 후에 악한 생활에 빠진 자들, 정통적인 세례를 받고, 후에 이단과 분파로 넘어간 자들, 정통 교회에서 세례를 받고, 그 안에 머무르면서도 부도덕한 생활을 계속한 자들 – 이런 자들은 성전례의 덕택으로 영벌을 면할 것인가?

. 성찬의 말씀(요 6:50-51) 은 정통 신자들에게만 하신 약속이다. “많은 우리가 한 떡이며 한몸이라”(고전 10:17) 성찬으로 몸의 지체가 된 사람을 말하는데 이단 분자의 사람들은 이 몸에서 분리되었으므로 엄격한 심판을 받는다.

.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영벌 외에 있을 곳이 없다.

 

26. 그리스도가 터가 되셨다는 것은 무슨 뜻이며, 불로 얻은 것 같은 구원을 약속받은 것은 누구인가?

. “그리스도를 터로 모심”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누구냐 : 그리스도보다 더 중요시 하지 않는 사람

ex) 교훈을 멸시하고 금지된 행실을 한다면 그리스도를 끝에 두는 것이다.

. 그리스도를 터로 모시지 않은 사람들은 건물과 함께 불에 타서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안에 계신 사람들은 건물만 타서, 손해는 보아도 사람은 구원을 얻으며, 어떤 건물은 영원히 남는 재료를 썼기 때문에 타지 않는다.

 

27. 자선 행위와 함께 계속된 죄는 자기들에게 해롭지 않으리라는 신념을 반박함.

.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약 2:13)

. 극악한 죄를 태연하게 지으면서 면죄부를 사는 것은 자신에게 아무 유익도 되지 못한다.

. 하나님은 누구에게 선물을 주는 것 보다 어떤 정신으로 주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에게 자선을 행할 때에 그리스도 앞으로 나가는 것과 같은 정신으로 한다.

. 매일 주기도를 하면서도 또 죄를 지으므로 용서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하며, 동시에 우리에게 죄를 지은 사람들을 용서해서 우리도 용서를 받도록 해야 한다.

. 생활을 고치지 않고 개선되지 않은 사람이 맘몬으로 성도들을 도왔다고 해서 영생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 어떤 죄가 천국을 막는지, 친구가 된 성자들의 공적을 이용하는 것이 허락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고 위험한 일이다.

. 내세에 대해서 성경의 교훈보다 자기 소원대로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대답했다.

하나님의 도성_21권(1/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개요

. 지옥에서 불타는 고통을 받으며 죽지 않는 것에 대한 설명(기적과 더불어 설득)

. 영벌에서 옮겨질수 있는가에 대한 설명

 

1. 논술 순서. 멸망할 자들이 마귀와 함께 받을 영원한 벌을, 다음에 성도들의 영원한 행복을 논한다.

(1) 마귀들이 받을 벌에 대하여

(2) 성도들의 행복에 대하여

이 순서로 정한 이유 (1) 고통에서 구출된 성도들의 몸이 영생하리라는 것이 믿기 쉬우므로. (2) 성경의 순서

 

2. 몸은 타는 불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 지옥 불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화염과 온천에서 사는 벌레들을 사례로 벌레들의 존재는 믿으면서 왜 지옥은 안 믿는가 질문함.

 

3. 몸이 고통을 당하면 반드시 죽게 되는가?

논지1. 고통을 당하면서도 죽지 않는 몸은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 고통은 생명의 표시 (살아있는 것만 고통 받는다.)

. 첫째 죽음 : 영혼을 몸에서 축출 (13권 2장)

. 둘째 죽음 : 영혼을 몸 안에 가둠 (21장 11장)

. 영 : 몸 안에 있어서 몸을 살리며 지배하는 것,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죽지 못함, 신체적 고통은 영혼이 당한다. 영혼을 떠나서는 몸은 고통을 느낄 수 없다. 고통이 있는 곳에 죽음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면 고통은 영혼에 속한 것이니, 고통을 느끼는 영혼이 죽을 수 없으므로 몸이 고통을 받는다고 죽을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근거가 없다. (논지1)

 

논지2. 고통을 일으키는 것이 반드시 죽음도 일으키는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불이 고통은 주지만 죽음은 주지않을 수 있다. (예) 몸이 영혼에 고통을 일으키면서도 죽음은 일으키지 않음

 

4. 살아 있는 몸이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는 자연계의 실례들.

. 불에 타는 것이 반드시 없어지는 것은 아님을 보이는 예 : 불도마뱀, 시칠리아의 산들

. 고통을 느끼는 것이 모두 죽을수 있는 것은 아닌 예 : 영혼

- 만물에 적절한 속성을 부여하신 하나님 (예: 공작 고기, 왕겨, 불, 나무, 석회, 자석..과학 사례)

 

5.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없어도 사실인 것이 매우 많다.

. 아우구스티누스가 Solinus에서 얻은 자료를 그대로 채용한 내용

. 인간 이해력을 초월한 기적을 설명할 수 없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다. 때로는 이상한 일들이 어떤 곳에서는 항상 있는 세상의 기이한 일들 몇 가지를 소개 (자연과학) → 이러한 일들이 설명할수 없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과 같이 불타는 지옥에서 죽음 없이 산다는 것도 가능함

. 인간 이해력으로는 하나님의 기사를 설명할 수 없음.

 

6. 놀라운 일들이 모두 자연의 산물은 아니며, 인간의 재주나 마귀의 간계로 생긴 것도 있다.

. 꺼지지 않는 등(베누스 신전)을 예로 설명 : 마술, 귀신, 마귀의 일 (과학 이용한 신기한 일, 석면, 자석)

. 거룩한 천사들은 훨씬 더 위력이 있을 것이고 천사들이 기적을 할수 있게 만드신 하나님은 더 큰 힘 가지심

 

7. 기적을 믿는 궁극적인 근거는 창조주의 전능이다.

. 자연법칙에 어긋나는 여러 가지 자연 현상 설명 (가라만타이 산중의 샘물, 석면에 붙은 꺼지지 않는 불 등)

. 반대론자들이 인정하는 저자들의 책에서도 거론된 자연의 기적들을 예로 들며, 성경에 예언한 실현된 일들로 부활과 지옥도 믿을만 하다고 설득

 

8. 우리가 잘 아는 물건의 속성이 갑자기 변하더라도, 그것은 자연에 반대되지 않는다.

. “인간의 몸들이 항상 불에 타면서도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말을 반대론자들이 믿지 않는 이유 “인간의 몸은 전혀 다르게 생겼다”고 주장 (?)

. 우리의 대답 : 인간의 육신은 죄가 있기 전에는 죽을수 없게 생겼고, 죄가 생긴 후에는 죽을 운명의 상태

. 바로의 ‘로마 민족사’에서 이변을 설명한 것을 예로 들어 ‘이변’이 자연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따라 발생하는 것이므로 자연과 반대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이 자연인 줄로 안 것과 반대인 것임.

.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자연 법칙도 자신의 뜻 대로 변경 가능하심 (여호수아 수 10장, 히스기야 사 38장) → 그러나 인간은 마술로 해석함

. 하나님을 방해하는 어려움이나 제한하는 자연 법칙이 있을 수 없다.

 

9. 지옥 그리고 영별의 성격에 대하여

. 지옥의 불과 벌레(사 66:24, 막 9:43, 48)의 지옥에 대한 설명이 막9장에서는 세 번이나 말씀하신다. (강조)

. (집회서 7:17) “불경건한 자의 육신이 받는 벌은 불과 벌레”

. 온전한 것이 올 때 까지 부분적으로 알고 있다. (고전 13:9-10)

 

10. 지옥의 불이 물질적인 것이라면, 비물질적인 악령들인 귀신들을 태울 수 있을까?

. 악한 영은 불에 고통을 받을까? 사람과 마귀 벌하는데 사용되는 것이 동일한 불이므로 가능 (마 25:41)

. 마귀가 비물질적이더라도 불에 고통 받을 수 있다. 형언할수 없는 방법으로 귀신들은 불에서 고통받게 될 것 이다. (인간 이해를 초월, 몸을 가지지 않았으면서도 불에 탐, 눅16:24절의 지옥의 부자, 눈과 혀)

. 동일한 분ㄹ이 몸와 영을 괴롭힐 것이다.

 

11. 처벌 기간이 범죄 기간보다 오래지 않아야만 공정한가?

. 단시일에 지은 죄에 대해 영원한 벌을 가한다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고 반대자들이 주장

. 순간의 과오를 장시간의 속죄로 갚고, 지속하는 고통으로 순간적 기쁨을 갚게 함.

. 첫째 죽음의 처벌이 현세의 도시에서 끊어버리고

. 둘째 죽음의 처벌은 영원한 도시에서 끊어버린다.

 

12. 구주의 은혜에서 제외된 사람들이 영벌을 받는 것은 처음 범죄가 중대하기 때문이다.

. 영원한 행복이 될 수 있는 자기 안에 있는 것을 파기했으므로 영원한 재난을 받아야 함

. 자비와 은혜에 의해 구원 받은 사람은 예외

 

13. 악인들이 사후에 받는 벌은 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논박한다.

. 플라톤 파는 벌의 목적이 개선/정화에 있다고 함

. 일시적 벌은 최후 심판 이전에 있는 것이다.

. “어떤 사람들은 금색에서 용서를 받지 못한 죄를 내세에 용서받는다. 그들은 내세에 있을 영원한 벌은 받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의 도성_18권(2/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13. 사사시대의 황당한 설화들

. 바로는 ‘로마 민족사’의 2권을 트로이(행16:8) 전쟁으로 끝내는데 전쟁이 있던 시대까지 사람들은 사실을 기록한 역사서들에서 재료를 얻어 신들을 훼방하는 말과 결부해서 황당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유피테르가 금이 쏟아져 내리는 가운데서 다나에의 침상을 나누려 했다는 것은 여자의 정조는 금으로 더렵혀진다는 뜻이고 인간 왕의 죄를 신에게 돌려 표현하기도 했다.(탄탈루스의 죄를 유피테르에게 돌린 것)

. 사람들이 이런 거짓말들을 참고 들을 거라는 지성을 멸시한 이야기들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야기들을 환영하며 즐겼다.

. 라토나가 아폴로 출산(신탁 아폴로 아니고 헤라클레스와 아드메투스 왕을 섬긴 사람)

. 성좌에 이름 붙이기 : 페르수스와 아내가 죽은 후에 하늘에 올라갔다며 별을 찾아 이름붙임

 

14. 신학적 시인들

. 신학자/시인 : 동시대에 신들에 대한 노래를 지은 사람들

. 이들이 노래한 것은 위대한 사람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 것이 아니다. 유일신에게만 드려야 할 경배를 다른 신들에게 드리고, 신들에 대해 부끄러운 거짓말을 피하지 않았다.

. 신학적 시인들 : 오르페우스(모독적 의식의 선두에 이름을 둔다.), 무사이우스, 리누스

 

15. 아르고스가 멸망할 때, 사투르누스의 아들 피쿠스가 라운렌툼 왕국을 얻음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드보라 사사로 다스림(삿4-5장) 아시리아 23대 람파레스
아르고스 멸망
아가멤논의 도시 미케네로 세력이 옮겨짐
라우렌툼 왕국
초대 왕 사투르누스의 아들 피쿠스, 이탈리아 지배
2대왕 파우누스 -> 3사람 모두 사후 신화

 

* 죽은 사람들에게 신으로 영예를 돌린 것은 트로이 전쟁 전의 일들

 

16. 트로이 멸망 후에 신으로 추대된 디오메데스와 새가 된 동료들

. 트로이 패망은 시의 주제가 됨

. 그리스 사람들이 승리하고 폐허가 된 트로이를 떠나 고향으로 오는 길이 위험해서 신의 벌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디오메데스 : 신이 됨

. 그의 동료들이 새가 됨 : 새들이 그의 신전 주변에서 살며 신전에 경의를 표시하고, 그리스사람에게는 아양을 부리고 다른 민족 출신에게는 공격했다고 함.

 

17. 인간의 믿지 못할 변형에 대한 바로의 이야기

. 사람이 사람의 고기를 먹고 짐승이 되었다가 일정 시간 후 다시 사람이 되는 이야기들

 

18. 귀신들의 술책으로 사람들이 동물로 변한 것을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 아폴레이우스 ‘황금 당나귀’라는 자신의 책에서 약을 먹고 당나귀가 되었으나, 인간적 지성은 잃지 않았다고 말했고, 이런 신화들이 여렇있음

. 저자는 사람에게 환상, 환영이 있기에 설명할수 없는 방법으로 몸은 살아서 누워있더라도 감각은 마비되면서도 자기는 자면서도 상상하는 대로 동물이 되어 짐을 나르는 것 같아 보일수 있다.

. 누워서 꿈속에서 말이 되어 군량을 옮겼는데 실재로 군량 운반이 있었기도 하고

. 한 사람이 자면서 꿈에 본 것이 깨어 있는 다른 사람에게 환상을 통해 나타나기도 함

. 저자는 악한영이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 조작하는 것으로 해석함. 거짓 여러 신들을 숭배하므로 참된 신을 욕보이게 하기 휘함

 

19. 아이네아스가 이탈리아에 왔을 때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압돈 사사(삿 12:13) 트로이 멸망후 아이네아스가 생존자들을 이탈리아로 이주 : 라티누스왕
시키온 폴리피데스
아테네 메네스테우스
아시리아 타우타네스
삼손 사사(삿 15:20) 라티누스 사후 아이네아스가 3년 다스림
시키온 펠라스구스
엘리 사사(삼상 1:9) 라티움 3대 아이네아스의아들 아스카니우스, 4대 실비우스
시키온 959년 멸망
아시리아 29대 오네우스
아테네 16대 멜란투스

* 아테네왕 코드루스가 펠로폰네소스 사람들에게 죽음으로 아테네가 자유를 얻었다. (펠로폰네소스사람들이 아테네 왕을 죽이지 않아야만 최후 승리를 얻을것이라는 신탁을 받고 있었다. )

 

20. 사사시대 이후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이스라엘 초대왕 사울 라티움(라틴) 실비우스들 (실비우스 이후 가명(家名) 추가)
아테네 코드루스왕 이후 공화국 체제
이스라엘 2대 다윗 40년 라틴족 알바 건설 – 알바 왕
이스라엘 3대 솔로몬
4대 르호보암 - 분열
 

 

21. 라티움의 역대 왕중 초대왕 아이네아스와 12대 아벤티누스의 사후 신화

. 아시리아는 메디아(왕하 17:6)로 이양되고

. 아벤티누스 시대부터 로마는 탄생중

. 로마 건설한 로물루스도 신화

 

22. 로마 건설시 아시리아 왕국이 끝나고 히스기야가 유다왕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약속의 땅에 718년 동안 거주
. 27년은 사사시대
. 362년 왕정
. 남유다 : 아하스-히스기야
. 북이스라엘 : 호세아
로물루스 시기 :
로마는 조금씩 발전했고 많은 저항을 이겨내고 세력을 확장했다.

 

23. 에리트라이Erythrae의 여예언자는 그리스도에 대해 뚜렷한 예언을 많이 했다.

. 여예언자는 여럿이었을 수 있다.

  . 에리트라이의 시빌 : 아테네나 트로이 부근

  . 쿠마이의 시빌 : 이탈리아 중부 해안 도시, 로마 유피테르 신전에 신탁 내용 보관하고 국가위기 시에 조언

. 총독 플라키아누스에 의한에리트라이의 여예언자의 시(그리스어) 번역본(라틴어)

. 시의 모든 줄의 첫 글자를 순서로 이르면 그리스어로는 다섯 단어 :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 다섯 단어의 처음 글자를 순서로 연결하면 : 익투스 (물고기)

  ∴ 이여예언자들은 하나님의 도성의 사람들로 인정

. 락탄티우스의 저서에서 이 예언을 삽입하여 해석함

. 예언자들의 시기 모호 : 로물루스 시기 or 트로이 전쟁 시기

 

24. 로물루스왕 때에 일곱 현인, 북이스라엘이 갈대아 포로로 끌려갈 때 로물루스 사망

. 로물루스 왕이었을 때에 탈레스 생존 : 현인들을 소포이(지혜 있는 사람들) 철학자

. 로물루스 까지는 존경을 받을만 했기 때문이나 카이사르 때에는 아첨위해 신으로 ㅜ대함

. 고대인들이 만들어 놓은 신을 숭배

. 로물루스의 후계자 누마Numa는 로마시 방위위해 거짓 신들을 유포함

. 사모스 섬의 여예언자 존재

. 히브리왕 므낫세 즉위

 

25. 남유다 함락, 성전 파괴, 시드기야왕과 로마의 타르퀴니우스 프리스쿠스왕때의 철학자들

.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바벨론 포로시기 탈레스, 피타쿠스와 함께 5현인은 살아있었음

. 현인 : 신학적 시인 이후, 생활방식 훌륭, 간결한 격언으로 도덕적 교훈, 문헌 없음

. 솔론 : 아테네 법률제정

. 탈레스 : 자연연구가, 글로 남김

. 피타고라스 때부터 철학자(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부르기 시작함

 

26. 70년, 유대인 포로 생활이 끝나고 로마 국민은 왕정에서 벗어났다.

. 페르시아왕 고레스가 유대인 일부 해방 – 귀국 - 원수 공격에 대항할 힘 없어 건축은 기초만 놓음

. 로마 7대왕 타르퀴니우스 시기 – 로마 왕 축출 왕정 폭압에서 벗어남

. 27장 부터는 예언자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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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_18권(1/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개요

. 성경과 현실의 역사를 함께 짚어보면서 여자예언자들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도 마지막에 언급한다. 호세아, 아모스, 이사야, 미가 등은 로마가 건국된 후에 글을 썼다.

. 기록의 중요성. 기록이 전해지는가 사장되는가의 문제도 있으나, 켈틱이 로마에 비해 훨씬 오래되고 널리 퍼져있고 우수했더라도 기록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은 것으로 치부되고 기록된 로마는 켈틱보다 짧아도 더 오래되고 우수한 것으로 평가된다. 기록한 그들이 자신이 우수하다고 기록했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우리가 믿음의 선조들이 될 텐데 우리의 선조들의 기록이라도 잘 남겨야 겠다. (WLF : Women Leadership Focus, 2021)

 

1. 17권 까지 구세주 시대 이전의 사건들

. 책의 방향 : 하나님의 도성과 세상의 도성 기원과 발전과 예정된 종말

. 10권까지 : 하나님의 도성에 대적하는 것에 대한 논박

. 14권까지 : 두 도성의 기원

. 15권 : 처음 사람부터 홍수까지

. 16권 : 아브라함까지 두 도성의 과정 -> 두 도성이 인류에서 병행하고 시대적 변천을 함께 함

. 17권 : 그리스도의 강림까지

* 저자의 참고자료

(1) 유세비우스의 연대기 (BC61년 까지 기록)

(2) 제롬(히에로니무스)의 라틴어 연대표

(3) 로마 역사 첨가하여 AD378년까지

(4) 바로(varro, 신관)와 고대 사가들의 문서 참고

 

2. 아브라함 탄생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아브라함 탄생 아시리아 제국(동방) cf) 아시리아 이후 로마 제국(서방)
* 첫째 로마였던 바빌론(아시리아), 둘째 바빌론인 로마 (계 18:2)
. 아브라함 출생
. 아시리아 갈대아 출생
1) 아시리아 벨의 아들 니누스 (2대왕) : 아시아 전역 정복(인도 제외)
2) sicyon(시키온) 오래된 작은 나라 : 바로의 ‘로마민족사’의 시작
. 시키온(고린도 부근 도시국가)-아테네-라티움-로마
. 시키온의 유롭스Europs
. 아브라함의 약속 1) 아시리아 4대왕 니니아스 Ninyas
2) 시키온 5대왕 텔크시온 Telxion : 왕 사후 신화

* 제국의 탄생 : 우세한 부분이 열세한 부분 압박, 정복, 정복자들은 권력, 자유까지 단념하고 평안히 살아남기 위해 정복자의 뜻에 복종한다. (ex. 알렝드 보통 ‘불안’)

 

3. 아브라함, 이삭, 리브가의 쌍둥이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이삭 출생 1) 아시리아 5대왕 아리우스 Arrius
이삭 60세, 쌍둥이(아브라함160)
아브라함 175세 사망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1) 아시리아 발레우스Baleus (크세르크세스 Xerxes)
2) 시키온 7대왕 투리아쿠스, 투리마쿠스
3) 아르고스 Argos 이나쿠스Inachus 초대왕
야곱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1) 아시리아 9대왕 벨로쿠스Belocus
2) 시키온 8대왕 아르마미트레스와 레우키푸스
3) 아르고스 2대왕 포로네우스Phoroneus, 법률제정, 재판소 운영 신화

 

4. 야곱과 요셉의 시대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이삭 180세 사망
쌍둥이 120세 (야곱, 신의도성)
요셉 팔림(이삭 생존)
아시리아 10대왕 발레우스Balaeus
시키온 7대왕 메사푸스Messapus/Cephisus
아르고스 3대왕 아피스Apis
야곱 130세 이집트 행
요셉 39세
 

 

5. 아르고스 아피스왕을 이집트 사람들은 세라피스라고 부르면서 신으로 숭배함

. 이시스와 세라피스 신전에 입술을 손가락으로 눌러 잠잠하라는 신호 : 사람이었다는 것을 말하지 말라

 

6. 야곱이 이집트에서 죽었을 때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야곱 147세 이집트에서 사망 아시리아 발레우스
외국에서 종자 얻어다가 농사지으면서 소에 멍에 메워 밭 갈기 시작

 

7. 요셉이 이집트에서 죽었을 때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요셉 110세 이집트에서 사망
이후 145년동안 이집트 생활
아시리아 12대 마미투스
시키온 11대 플렘메우스Plemmeus
아르고스 아르구스

 

8. 모세 출생 시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모세 출생 아시리아 14대 사프루스Saphrus
시키온 12대 오로토폴리스
아르고스 5대 크리아수스
모세가 이스라엘 출애굽 할때 이 시대에 그리스에 신화가 많이 생겨남
아테네시 호칭 생겨남, 그리스의 무지한 관습과 미신으로 사후 신화화
   

* 사람들에게 혜택을 주어 편리하게 만들고 나면 사후 신으로 숭배 받게 된 경우가 많음 (미네르바, 헤라클레스 등등...)

 

9. 아테네가 건설된 때와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한 바로의 설명

. 로마신화의 미네르바, 그리스어로 아테나

. 도시의 감람나무가 갑자기 나타나고, 다른곳에서 샘물이 터져 나와 아폴로신에게 물어봤더니 아폴로가 감람나무는 미네르바여신을 상징하고 샘물은 넵튠(바다신, 그리스 포세이돈)인데 시민들이 한쪽을 택하여 이름하라고 했는데 시민중에 여자가 한명 더 많아서 미네르바가 시 이름이 되었다.

. 넵튠이 노해서 클 해일로 아테네를 황폐하게 하고 여성들은 (1) 투표에 참가 못함 (2) 자식을은 어머니의 이름을 붙이지 말 것 (3) 아무도 그들을 아테네 여자라고 부르지 말것이라는 벌을 받음

. 남녀 신의 경쟁에서 여성이 승리해서 이름을 얻었으나 여성들이 벌을 받으므로 미네르바도 패배한 결과가 됨(여성들을 돕지 못했음)

 

10. 아레오바고라는 이름과 데우칼리온의 홍수에 대한 바로의 견해

. 아레오바고 : 행 17장에서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과 토론한 장소

. 아레오파기타이 : 아레오바고에 있는 사회

. 케크롭스가 아테네의 왕위에 있을 때 홍수 피해가 가장 심했던 지역을 지베하던 사람이 데우칼리온이어서 데우칼리온 홍수가 되었다.

 

11. 출애굽과 여호수아가 죽은 시대

하나님의 도성 세상의 도성
출애굽
. 옛 언약 : 지상적 약속
. 새 언약 : 예수 그리스도 통해올 하늘나라 약속
*개인이 하나님 향해 전진하게 되는 순서 : 지상약속-하늘약속
아테네의 케크롭스 치세 말년
아시리아 아스카타데스
시키온 마라투스
아르고스 트리오파스
여호수아 사망 아시리아 18대 아민타스
시키온 16대 코락스
아르고스 10대 다나우스
아테네 4대 에리크토니우스

 

12. 출애굽부터 여호수아 사망까지 그리스 왕들이 제정한 거짓 신 숭배

. 전원신의 제사장들이 거룩한 길을 오르내리는 것 : 홍수때 물피해 올라갔다 내려온 것 표현

. 델피의 아폴로 위한 음악 경연회 제정하여 아폴로의 노여움 풀기, 미네르바 위한 경기 시작

. 신들의 노염을 풀기 위해 시인들의 시와, 극장에서의 주제로 표현됨

. 시리아의 헤라클레스 : 여러명의 헤라클레스

. 부시리스 왕 : 에파푸스의 딸 리비아와 넵튠사이의 아들, 폭군

. 에리크토니우스 왕 : 불카누스와 미네르바 사이 아들, 이 왕의 말년에 여호수아 사망

  . 에리스 다툼, 크톤 땅 : 두신이 다투다가 불카누스가 흥분해서 씨를 땅에 흘려 사람이 났다는 신화

. 시와 연극이 거짓일 텐데 그 거짓을 재밌게 생각한다는 것 자체는 참으로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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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_14권(2/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14. 범죄 행위 자체 보다 범죄자의 교만이 더 나쁘다.

  . 죄인줄 알면서도 핑계 찾아 도피하려는 교만이 더욱 악하며, 정죄 받아야 한다. (ex) 아담과 하와 : 용서아 치유를 간청함이 없음

  . 여자의 교만 – 뱀의 비난, 남자의 교만 – 여자를 비난 : 자신에 대한 정죄가 됨

 

15. 처음 사람들의 불순종에 대한 벌은 공정하였다.

  . 불순종에 대해 제시된 벌은 엄하고 창조주의 명령은 쉬웠는데 불순종한 것은 중대한 악이다.

vs 아브라함의 이삭 제사

  . 사람의 불행은 순종하지 않은데 있다. : 할 수 있는 일을 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 수 없는 일을 하려고 한다.

 

16. 정욕이라는 말은 여러 가지 죄를 의미 할 수 있지만, 특히 음욕을 의미하며, 그런 의미에서 정욕은 악하다.

. 정욕 : 신체 일부가 흥분하게 만드는 욕심

.A 생각지 않은 때 흥분하기도 하고, 정욕이 타올라도 몸이 반응이 없을 때 있다.

  ∴정욕은 자녀 생산 의욕에 이바지 않고, 음욕에도 봉사하지 않는다.

 

17. 처음 사람들은 죄를 지은 후에 자기들이 벌거벗은 것을 상스럽고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 눈을 뜨고 있었지만, 나체 상태를 상스럽게 생각하지 않았으나, 은혜를 잃고 불순종에 대한 벌을 받았을 때에 신체에 부끄러운 것이 생기고, 나체가 흉하게 생각되었다.

. ‘눈이 밝아’는 보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선과 얻게 된 악을 구별 할 수 있게 되었다.

. 하나님을 믿고 말씀에 순종했다면 모르고 있는 것이 행복했을 일을 알게 되고

.A 사람의 의지가 불순종에 대한 벌을 받았고, 의지가 금해도 순종하지 않고 움직이는 지체를 부끄럽게 생각해서 적당히 앞을 가리게 되었다.

 

18. 성교에는 부부간이거나 난잡한 것이거나 수치감이 따른다.

  . 정욕의 충족을 이한 어둡고 비밀스런 곳이 필요 : 매음 뿐 아니라 합법적인 부부관계도 동일하다.

  . 합법적 부부관계는 바른 행위로 알려지기를 원하지만 보이기는 원하지 않는다. ∵벌로써의 수치감을 동반

 

19. 범죄 전과 달라서 지금은 분노와 정욕이 마음을 격동시켜 사람에게 해를 주므로, 지혜로 억제해야 한다.

  . 신플라톤파(진리에 비교적 가까이 온 철학자들)의 정의 : 분노와 정욕은 악한 부분

  → 혼란하게 움직여서 지혜가 금지하는 행동을 하며, 합리적인 마음을 통제할 필요가 있다.

  . 영혼의 셋째 부분인 지성은 다른 두 부분을 지배하며, 영혼의 모든 부분 사이에 공정한 상태가 유지되도록 한다. 영혼의 두 부분은 악하므로 잘못된 행동이 나타날 때에는 지성이 억제해서 지혜의 길을 따르게 함.

  . (저자의 주장) 범죄 이전에는 분노와 정욕은 악하지 않았다. 점잖은 사람들이 분노나 다른 감정들을 성욕같이 모두 감추지 않는 것은 감정만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의지가 허락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사람들을 주관하며 사용하기 때문이다.

 

20. 견유학파의 파렴치함은 아주 어리석다.

  . 아내와의 성관계는 합법적이므로 공개적으로 하는 것을 부끄러워 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 (디오게네스) 했으나 수치심이 오류를 이겼다.

  . 인간의 본성이 성욕을 부끄러워한다.

  . 성기의 의지의 지배를 빼앗아 정욕의 충동에 예속시킴 : 정욕의 불순종은 인간의 처음 불순종의 벌

  . 벌이 생식기관에 나타난 이유 : 죄 때문에 악하게 변한 그 피조물을 생산하는 지체

 

 

21. 자녀를 낳아 번성하라는 축복은 범죄 전에 있었고 범죄 후에도 철폐되지 않았으나, 정욕이라는 병이 섞여 들었다.

  . 자녀생산은 혼인의 영광이며 죄에 대한 벌이 아니다.

  . 마니교도들은 정욕 없이는 자녀를 낳을 수 없다고 주장하며, 낙원 밖에서만 자녀를 낳았다고 주장한다.

 

22. 하나님이 처음에 제정하고 축복하신 결혼 제도

  . 저자는 생육하며 번성하여 땅에 충만한 것은 혼인의 선물이며, 사람의 범죄 전에 하나님이 남녀를 만드시고 제도를 정하셨음을 주장

  . 종속이거나 지배관계가 아니다.

  . 예수님의 대답 : 마 19:4-6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 할지니라”

  . 하나님이 제정하신 첫 관례 : 결혼 (“아내를 사랑하라“ 엡 5:25-33, 골 3:19)

 

23. 범죄가 없었더라면 낙원에서 자녀 생산이 허용되었을까? 또는 정절과 정욕의 싸움이 있었을까?

[어리석은 논리들]

  . 죄가 없다면 자녀 생산이 없었을 것이다? - 성도의 수를 채우기 위해 사람의 죄가 필요했다?

  . 죄를 짓지 않았다면 자녀 생산이 없다? 두 의인 뿐 이었으니 의인이 많아지기 위해 죄가 필요했다?

  ∴범죄 함이 없었더라도 혼인은 행복에 합당하고 많은 성도가 행복한 도성에 살고 정욕 때문에 부끄러워 않음

  ∵ 원하는 대로 손발을 움직여 기능을 발휘하는 것처럼 생식 기관도 의지의 결정에 의해 자녀를 낳을 수 있음

 

[저자의 주장]

  . 영혼이 신체보다 지위가 높음

  . 영혼보다 신체를 다스리는 것이 더 쉬움

  . 정욕은 영혼에 영향을 주어 심신을 다스릴 수 없게 하므로 부끄럽게 느껴짐

  . 신체가 영혼에 예속하는데 영혼이 정욕에 의해 신체의 반대를 받는 것을 부끄러워한다.

  . 정욕으로 흥분된 지체들이 있을지라도 다른 지체들의 의지로 억제되면 정결이 보호된다. 죄의 쾌락이 나타나지 못한다.

  . 만약 불순종이 없었다면, 낙원의 결혼은 의지와 정욕의 충돌이 없이 모든 지체들이 똑같이 의지에 순종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음란한 말이라는 것이 없이 다른 지체들에 관한 말과 마찬가지로 생식에 관한 지체도 동일하게 취급되었을 것이다.

 

24. 처음 사람들이 죄를 짓지 않고 순종으로 낙원에 머무를 권리를 얻었더라면, 생식을 위한 성기의 사용도 다른 지체들과 같이 의지가 정하는 대로 되었을 것이다.

  . 생식기관도 의지의 지도를 따르고 정욕으로 흥분되지 않을 것이므로 남녀는 필요한때에 필요한 분량으로 주고 받았을 것이다.

. 동물들이 파리 붙은 부분만 흔들어 떨어내는 것처럼 사람들도 지체들을 지배할 수 있었는데 불순종으로 그 능력을 잃었을 수 있다.

 

25. 진정한 행복은 우리의 현재 생활에 없다.

  . 저자는 행복한 사람만 원하는 대로 살며 의인만 행복하다고 하면서 의인 또한 원하는 대로 살지 못 할것이라 말한다. 결국

  . 자기의 생활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행복할 것이며

  . 행복한 생활을 사랑하며 가지고 있다면

  . 그것을 더 열렬히 사랑하게 될 것이다.

 

(마지막 줄 논리 이상^^)

. 행복한 생활을 충분히 사랑하는 사람은 그것이 영원하기를 바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영원한 생활만이 행복할 것이다.

 

26. 낙원에 있었던 행복한 부부는 부끄러운 욕망 없이 생식 기능을 다할 수 있었으리라고 우리는 믿어야 한다.

  . 낙원에서 하나님의 명령하시는 대로 원하는 동안 자기가 원하는 대로 살면서 하나님을 즐기고, 결핍없이 살며,

  . 부부는 서로 정직하게 사랑함으로 진실한 협력을 이루었다. 몸과 마음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렵지 않게 수행

  . 이렇게 안락한 생활과 행복한 가운데 다른 지체와 같이 생식 기관도 의지의 권위로만 움직여 애무 또한 정욕 때문이 아니라 평온한 마음과 온전한 몸의 소행이다.

  . 출산 또한 자궁이 열리는 것이 태모의 고통이 아니라 자연스런 때가 왔기 때문에 열리는 것이고 성교 또한 정욕이 아니라 자녀를 바라는 의지의 소원에 따랐을 것이다. (이 부분에서 불편해 하는 사람은 처음 조상들에게 가능했을 “의지에 대한 평정한 순종”을 연상하지 않고 자기들이 경험한 정욕의 격동을 연상한다.)

 

27. 죄를 지은 천사나 사람들의 악행이 섭리의 길을 어지럽게 만들지 못한다.

  . 범죄자 들이 하나님의 행사를 방해 할 수 없다. “주의 행사가 크시니 그 모든 뜻에 합당하도록 세밀히 계획되었나니”(시 111:2) : 하나님은 모든 자들을 선용하심

  . 하나님의 도움을 받는 바른 의지로 사람은 선한 보응을 받았을 것이며, (하나님의 도움 필요)

  . 하나님을 버리는 그릇된 의지로는 악한 보응을 받기로 되어 있었다.

  . 하나님은 이성적 피조물인 천사와 사람들에게 경험의 실제 결과를 통해서 각 개인의 사적인 자기 주장과 하나님의 거룩한 보호(넘어지지 않도록)의 차이를 보여주셨다. 그들의 권한에 맡기기로 정하시고 교만으로 인한 재앙과 하나님의 은혜가 이루는 큰 행복을 증명하는 길을 택하셨다.

 

28. 지상 도성과 천상 도성의 성격에 대하여

  . 두 가지 사랑이 두 도시를 건설

천상도성 지상도성
자기를 멸시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 하나님을 멸시하는 자기 사랑
주를 자랑 (고후 10:17) 자기 자신 자랑
하나님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 (시 3:3) 자기의 영광
지도자와 피지도자들이 사랑으로 섬김 지배욕이 군림
하나님을 사랑 (시 18:1) 자신의 권력 사랑
성도의 무리에서 상받기를 기다리는 경건 우상숭배로 지도자가 되거나 추종자가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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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_14권(1/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개요

. 사람의 죄는 육적 생활과 악한 감정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 정욕에 따르는 수치감은 불순종에 대한 벌.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정욕 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었을까?

 

1. 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않았더라면, 처음 사람의 불순종은 모든 사람을 둘째 사망의 영원한 불행에 던져 넣었을 것이다.

  . 인류를 한 혈통으로 묶어 단일체를 만드시려고 한사람을 시조로 삼아 인류를 퍼트리셨다. 그러나 첫 조상의 불순종으로 인간 본성에 해로운 영향을 주어 죄의 결박과 불가피한 죽음의 유산을 물려주었다.

  . 이분법 : 육체생활을 택한 사람의 도성, 영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도성은 목적하는 평화의 종류가 다르다.(엡2:19-22, 빌 3:17-20)

 

2. 육체적 생활은 신체의 결함뿐 아니라, 마음의 결함에서도 온다고 보아야 한다.

.육체에 따라 사는 철학

  1) 에피쿠로스파 : 인간 최고선을 신체적 쾌락에 둠, 최고 쾌락은 단순한 생활(쾌락, 고통없는 것이 유일한 선)

  2) 스토아파 : 인간의 최고선을 마음에 둠(시조 : 제논 bc300년경) 인생의 목적은 자연과 조화, 행복은 바른 행실로 얻어야 한다고 주장

  3) 성경 : 고전15:39, 사람의 본성을 육체로 부름(부분으로 전체 대표하는 표현법)

    . “육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확실히 나쁘다.” (?)

    . ‘육적으로 산다는 문제‘ 갈라디아서로 연구(5:19-20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 “육체를 따라 산다” : 육체적 쾌락+정신적 결함(마음의 결함)

      ∴ ‘육신’이라는 부분으로 ‘사람’전체를 가리킴

 

3. 죄의 원인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으며, 죄의 결과인 병적 상태는 죄가 아니라 벌이다.

  . 영혼이 악한 이유가 육체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 본성을 신중하게 고찰하지 않은 경우

  (-> 전인적 인간론)

  . 썩을 몸 : 신체의 썩는 성질 때문이지 본성이나 본질이 아님

    ∴ 몸을 벗기 원하기 보다, 영생으로 덧입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혼의 모든 악이 신체에서 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

  . [베르길리우스] 욕망, 공포, 기쁨, 슬픔 – 모든 죄의 원인으로 주장 vs [기독교]

  . [기독교] 영혼을 압박하는 썩는 몸 : 처음 죄의 원인이 아니라 죄에 대한 벌이다.

    ∴ 썩는 육체가 영혼을 죄짓게 만든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영혼이 몸을 썩게 만들었다.

  . 몸 때문에 죄가 자극받기도하지만 악의 원인을 전부 육신에 돌린다면 마귀는 아무 죄도 없게 된다. 마귀는 육신이 없지만 죄에 빠진 자들을 선동하며 충동한다. 모든 악행의 근원은 교만이며, 교만이 신체가 없는 마귀를 지배하고 있다.

  . 사람은 사람을 따라 살기 때문에(육체의 일을 따라 삼=사람의 일) 마귀 같이 됨

 

4. 사람을 따라 사는 것과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하여

  . 사람이 하나님(진리, 요14:6)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따라 살 때에 마귀와 같다. (거짓을 따라 사는 것)

  . 자기가 창조된 대로 살지 않는 것이 거짓 (모든 죄 = 거짓)

  . 죄를 짓는 것은 행복을 원해서 or 불행하게 되고 싶지 않기 때문

  . 두 도시 : 육체 따라 사는 사람(사람을 따라 사는 사람) vs 영을 따라 사는 사람

  . 육에 속한 animalis (anima, 영혼) + 육신에 속한 carnalis (caro, 육신) = 전체인 사람

  . (고전 3:4) “너희가 사람이라” - 너희가 육신에 속하였다.

    개역 개정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개역 한글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새번역 “...,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저자의 해석 : “너희는 사람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을 따라 산다면 너희는 신들이 되리라”는 것이다.

 

5. 신체와 영혼의 본성에 대한 플라톤 파의 생각은 마니교의 생각보다 나으나, 그것도 모든 결함의 원인을 육신의 본성에 돌리므로, 우리는 그것을 배척한다.

  . 죄에 대해 원인을 육신의 본성으로 돌리면 창조주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 육신은 나름 선하다. 그러나 창조주를 버리고 살려고 하면 육신을 따르든, 영혼을 따르든, 전인을 따르든 선하지 않다.

  . 영혼은 최고선으로 육신은 악(마니교)이라고 하는 것도 육신적인 일이다. 인간적 허영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에서 온 것이 아니다.

  . 뒷부분 플라톤 논지 설명

 

6. 사람의 의지의 성격에 대하여. 마음의 성향이 바르고 그름은 의지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 사람의 의지의 성경이 중요. 잘못되면 감정들이 비난받지 않아도 된다.

  ex) 욕망, 기쁨 : 원하는 것에 동감한 의지의 발동

  공포, 슬픔 : 원하지 않는 것에 반대하는 의지의 발동

  . 의지가 추구하거나 피하는 것들의 성격에 따라 감정의 방향이 변함

  .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한다.

  . (성선설) 본성이 악한 사람은 없으므로 악한 사람에 대해 미움을 품을 의무가 있다. 그러나 결점은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해야 하지만, 결점이 고쳐지면 사랑만 남고 미워할 것은 남지 않는다.

 

7. 성경에서는 선과 악에 관해서, 사랑(amor)이라는 말과 애착(dilectio)라는 말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

  . 하나님을 따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을 선의의 사람, 이런 마음을 karitas(사랑), amor(아모르)라고 한다. - 지도자의 요구사항

  . 예수님의 질문 : 제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diligere) / (3번째) 네가 나를 amare 하느냐

베드로의 대답 : 사랑하는줄 아시나이다. (amor)

  -> 저자는 성경에서 두 단어를 같이 쓴다고 주장 (dilection, caritas, amor 구별하지 않음)

  . 좋은 의미로 쓰는 나쁜(?)단어들의 성경 용례 : 공포timor, 슬픔tristitia 등

 

8. 스토아 파는 현인의 마음에는 세 가지 혼란(? 상태?)이 있으나, 고통이나 슬픔은 없어야 마땅하다고 한다.

  . eupatheiai(평온상태들), constantiae(안정상태들) : 현인의 마음에 있는 3가지 안정 상태

  . 욕망은 소원으로, 기쁨은 만족으로, 공포는 조심으로 바뀐 상태 : 현인은 고통, 질고의 상태가 없다.

  . 혼란한 상태/어리석은 자의 상태 : 욕망, 기쁨, 공포, 슬픔

  . 키케로등.. 단어들을 섞어서 사용 : 문제 되지 않음

 

9. 마음의 동요와 감정 중에서 바른 것만이 의인들의 마음에 있다.

  . 정신적 동요의 문제 (9권) :

  1) 철학자들 : 사실보다 말을 좋아하고, 진리보다 논쟁을 원하는 이들

  2) 그리스도인 : 하나님을 따라 사는 동안 공포, 욕망, 고통, 기쁨 느끼고 바른 사랑을 하므로 감정도 바름

    . 성격의 강약에 따라 다름 감정 : 두려움, 슬픔, 기쁨 등..

    . 타인을 위한 감정 : 멸망할까 두려워하며, 괴로워하며, 기뻐하며...

    . 선을 사랑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생기는 동요와 감정

    . 바른 이유와 바른 모양으로 표현된 감정은 병적인 격정이 아니다.

    . 예수님의 감정적 격정의 예 : 노하심, 기뻐하심, 눈물 흘리심, 고민하심....

      → 감정들은 단지 금생에 속한 것(내생에 없음) : 원하지 않는 감정에 쓸리기도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생활은 바르지 않을 것임. 바울과 시편작가도 감정 없음을 비난함(롬1:31, 시69:20)

 

  . apatheia(inpassibilitas, 무감각, 부동심) : 마음에 대해 감정,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감정 없이 산다는 뜻이라면 바람직한 상태이나 금생에 속한 것은 아님. 사람에게 죄가 없을 때 에만 있는 상태

  .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상태? = 마비 상태

  → 곧다고 해서 반드시 바른 것이 아니며, 무감각하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한 것이 아니다.

 

10. 처음 사람들은 낙원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 마음에 동요가 있었다고 우리는 믿을 것인가.

  . 죄짓기 전에도 육체의 욕망(죄를 없애 버렸을 때에 영으로는 느끼지 않을 감정)이 있었을까?

    . 있었다면 낙원이 행복했을까?

    . 금지된 과실을 먹으려는 욕망과 죽을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했다면 마음이 어지러웠을까?

      →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벌이 무섭기 때문이라면 ‘죄’이기 때문이다.

  ∴ 죄가 없었다면 모든 인류도 낙원에서처럼 행복했을 것이고, 부활의 때와 같이 살았을 것이다.

 

11. 선하게 창조된 처음 사람이 타락해서 그 본성이 손상되었고, 창조주만이 그 본성을 회복시키실 수 있다.

  .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도성의 교리는 하나님의 예지와 섭리를 기초로 삼아야 한다.

  . (성선설) 하나님은 사람을 바르게 만드셨고(전7:29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선한의지를 주셨으므로 선한 의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 악한 의지는 결함이다. 본성과 일치하지 않고 반대된다. 그러나 어떤 본성적인 존재 안에서만 결함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본성적 존재는 하나님이 낳으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하신 것이다.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무에서 만드셨으며, 사람을 지으셨을 때에 무에서 만드신 영혼을 그의 몸에 주셨다.” (엄청 꼬았지만 결국 질문이 존재하는 논리, 왜? 무에서 만드신 영혼을 굳이? 예정을 이루시기 위해? 그럼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낳고 영혼은 무에서? 하나님의 형상?)

  . 악의 존재가 허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예지가 악을 선용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 (불멸의 다이아몬드, 가짜 자기도 버릴 것이 아니다.)

  . 인간 = 물리적이며 영적인 낙원에서 심신 양면으로 유익하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다가 교만한 천사가 왔다. 교만함으로 시기했던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따르게 만들었다.

  . 하와는 뱀의 말을 참으로 믿었지만, 아담은 죄를 짓더라도 유일한 동반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선택했다.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일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속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으라고 한다.’

  . 두 사람 다 속은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죄에 사로잡혔고, 마귀가 놓은 올무에 걸린 것이다.

 

12. 처음 사람들이 지은 죄의 성격에 대하여

  . 처음 두 사람의 죄가 사람의 본성을 변하게 함 : 부패하고 죽게 함

  . 음식은 나쁘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고 금지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낙원에 나쁜 것을 만들어 두시지 않았을 것이다.

 

13. 아담의 범행에서 악한 행위보다 악한 의지가 먼저 있었다.

  . 악한 의지의 시초는 교만이다. “교만은 죄의 시작”(집회서 10:13)

  . 의지의 결과로 여인은 뱀의 말을 믿고, 남자는 하나님보다 아내의 뜻을 앞세웠다.

  . ‘무에서 창조된 것만이 결함으로 부패할수 있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하지만, 그 진정한 본성에서 타락한다는 것은 무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안에 머무는 것 곧 자기의 쾌락을 따르는 것은 무가 되는 데에 가까워진 것이다.

    ∴ 교만한 자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 (벧후 2:10) : 향상의 정신은 좋으나 하나님을 향할 때 순종이 됨

  . 겸손에는 마음을 높이는 무엇이 있고, 교만에는 마음을 낮추는 무엇이 있다.

    . 하나님보다 더 높은 것이 없으므로 겸손은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만듦으로 마음을 향상시킨다.

    . 스스로 높아지려는 행동이 이미 몰락하는 행동 (시73:18, 그들이 높여질 때에.. 내던지셨나이다..)

  . 자기가 충족감을 갖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은 결핍을 보게 되며, 커지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작아진다.

  ex) 베드로는 자기에 만족하며 너무 자신이 강했던 EO보다. 자기가 싫어져서 통곡한 때에, 그의 상태가 더 건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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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 _6권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총평

. 현대 우리에게는 신화로 인식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고 논리적으로 증명함.

. 바로의 글을 보지 않아서 그냥 저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 (해석의 해석)

. 문화의 해석(폴 틸리히)...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오류들...

 

■ 머리글

. 5권까지 : 세속의 이익위해 신을 숭배해야 한다는 이론에 반론

. 6권 ~ 10권 : 영생위해 신들을 숭배해야 한다는 이론에 반론, 바로의 견해의 조잡성을 드러냄

. 바로(Varro, 작가, 스토아 학파 지도자인 포시도니우스(BC135-51)의 제자, 스승의 작품은 현존하지 않고 제자인 바로와 키케로의 다작이 남아있음)

 

1. 현재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유익을 위해 신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 사람들이 신들을 우상화 했고 꾸며낸 내용을 믿고, 그것을 종교의식과 혼합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일부 물질(포도주)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물밖에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과연 사후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을까 : 익살극의 한 장면과 같이 우스꽝스런 상황임

→신들에게 현세적 일들을 세분해서 분배한 사람들 조차 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수 있다고 하지 않았음

.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신들 중 ‘어떤 신에게 영생을 위한 간청‘을 해야 하는가(물 신, 불 신...영생의 신?)

. 수염이 자라게 하는 포르투나등 신들이 자신의 제한적 능력을 가진 것 이상으로 추구할수 없다. (EX.영생)

 

2. 신들에 대한 바로의 견해 : 신들에 대해 침묵했더라면 신들에게 더 정중 할 뻔 했다.

. 바로 : 예리하고 주의깊고 학구적으로 신들을 조사하므로 신들을 구제하고 잊혀지지 않게 기록함

(후대에 읽히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종교의 진리에 적대적이라 평가받을 내용, 유창하지는 않았음)

(1) 키케로(아카데미에 관하여) :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학식있는 자

(2)테렌티아누스(문법학자) : 모든 분야의 학문에 능한 사람

 

3. (동)바로는 자신의 저술에서 신과 인간에 대한 고대 관습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 고대관습 41권 중 인간의 일 25권, 신적인 일 16권

 

4. (동)신을 숭배하는 자들은 인간적 일을 신적인 일보다 우선시 한다고 주장

(다)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인간적 일들을 신적인 일보다 오래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말이 된다.

. 인간적 일들을 선 저술한 이유는 국가가 먼저 존재하고 그 후에 신적인 정의들이 국가에 의해 제정되기 때문이라고 바로가 증언함.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는 전혀 쓰고 있지 않음.

. 화가가 그림보다 앞서고 건축자가 건물보다 앞서는 것처럼 신적인 일들에 관한 책보다 인간의 책이 먼저 인 것이 정당하다고 바로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신적인 일들이 인간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 바로는 신적인 본성에 대해 기록하지 않은 것은 지성인들에게 추론하도록 남겨두었다고 말한다.바로가 신적 본성에 대해 저술한다면 인간적 일들 앞에 기록되어야 했을 것이다. 신적 본성의 일부일지라도 로마것 보다 먼저였어야 했다.

∴ 바로는 본성에 속한 진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류에 속한 거짓에 관해 쓰고 있음을 고백한 것임

 

5. 세 종류의 신학 : 신화적, 자연적, 도성적 신학

. 신화적 : 시인들 / 신적 위엄과 본성에 어긋나는 조작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음 / 대중화(연극)/극장

. 자연적 : 철학자들 / 만물의 기원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의, 학교 안에서만 논의 되게 만듦/세상

. 도성적(CIVIL) : 대중 / 도성적 신학이 본성적이지 않으므로, 인간의 일이 먼저, 신적일이 나중에 기술됨, 인간적 제도를 다룰 뿐이다. (∴ ∵ 본성적이지 않음) / 도성 : 도성 특히 신관들이 알고 행해야 하는 신학

. 본성적 (VS 허구적) 신학 :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신학

 

. 신화적 VS 도성적 : 도성이 세상안에 있지만 도성에 있는 모든 것이 세상과 관련 있지는 않다.

 

6. 바로에게 대항한 신화적(허구적) 신학과 도성적 신학(국가적 신학)에 관하여

. 바로자신은 자연적 신들을 숭배하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

. 바로자신은 허구적인 신들은 극장, 자연적인 신들은 세상에, 도성적 신들은 도성에 적합하다고 말하고 있음.

. 세상은 신의 작품이며 도성과 극장은 인간들의 작품이다. 극장에서 우스꽝스러운 신들은 신전의 신들이다.

. 극장의 신학은 혐오스런 것을 가르치고 도성신학은 혐오스런 것으로 자신을 치장함 → 영원한 생명의 추구?

⇒ 도성적 신학은 신화와자연적 신학의 혼합물

(두 신학은 차이가 많지만, 양 신학으로부터 도성적 신학이 설명된다.)

 

7. 신화적 신학과 도성적 신학의 유사성과 일치점

. 외설적인 신화적 신학은 도성적 신학안으로 흡수되어 극장에서 보여지는 로마인들이 인간적 형태로 신을 만들고 신은 인간적인 쾌락으로 기쁨을 얻고 있는 것을 바로가 믿은 것으로 보임

. 헤라클레스, 라렌티나, 타르티우스이야기 : 신화적 신학이 아닌 도성적 신학에 속한 내용임

→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의 고상한 성품을 주장함, 신화적 신화보다 더 황당하기도 함

 

8. 이교도 교사들이 보여주려고 시도한 자연적 근원

.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이지만 모든 자연이 하나님은 아니다. 이들은 신들의 어머니를 땅이라고 하는데 모든 신들이 한때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땅은 하나님의 작품이지, 어머니가 아니다.

. 연극에서 공연되는 혐오스런 것들보다 때로는 종교의식이 더 심할 경우도 있는데 종교의식이 정당화 된다면 시인들의 허구와 공연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 예) 사투르누스가 아들을 삼킨 것의 해석 : 사투르누스(시간의 길이)가 자신이 낳은 것들을 먹어치운 것

. 지성인들은 신화적, 도성적 신학 둘다 외설적이고 허영인 것을 알고 신화적 신학에 대해서는 배척했으나 도성적 신학은 비난하기 두려워했다. 결국 둘다 같으므로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능력이 나올 수 없다.

 

9. 신들의 특별한 역할

. 신들의 기능과 역할이 너무 세분되어 있어, 신적 위엄보다 익살에 더 가깝다. (물주는 신, 밥주는 신)

. 박카스 축제(극도 흥분 상태의 광란) - 원로원에 의해 중단될 정도(bc186) : 이것이 신? (극장이 아닌 신전)

. 경건한 사람 : 부모를 존경하므로 신들을 공경 (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음)

. 미신적인 사람 : 한 신을 막기 위해 3신을 동원함 – 신들이 해를 끼침.. 이신들이 도성을 보호하는가?

. 바로의 구분에 따라 도성 신학과 극장의 신학이 도성적 신학에 속해 있음을 알수 있다. 신화적 신학이 도성적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성적 신학을 비난하지 못한다.

. 둘다 영원한 생명을 기대할수 없다.

. 바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력에 의해 두 신학이 책망 받고 있음. (자연 신학만 남음)

 

10. 바로는 신화적 신학을 비난, 세네카는 더 격렬하게 국가적 신학을 비난함

. 세네카 : 바울과 동시대 사람, 도성의 신학 비난, 기독교에 대해 적어도 호의적, 자연적 신학에 호의적

. 카피톨 신전에서 행해지는 일들에 대해서 비난함

 

11. 유대인들에 관한 세네카의 견해

. 안식일 공격 : 시간 낭비, 즉각적 주의 요하는 일들에 손상,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

 

12. 신들은 현재적인 일들에 대해서 조차 아무 도움을 줄수 없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 수도 없다.

. 행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 외에 어떤 신에게 헌신하는가. 신들은 행복을 주는 자가 아니고 추악한 영들이다. (영적존재라고 그냥 박자 맞춰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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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도성 _1권(2/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자살] 16~28

16. 포로중 성폭행 당한 처녀들과 그들의 영혼의 청결여부에 관하여

17. 징벌이나 불명예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살하는 경우

18. 정신은 침해당하지 않았지만, 타인의 정욕으로 육체에 가해질 수 있는 폭력에 관하여

19. 자기에게 행해진 폭행 때문에 목숨을 끊은 루크레티아에 관하여

20. 그리스도인은 어떤 경우에도 자살 할 수 있는 권위가 없다.

 

21. 살인죄가 되지 않으면서 사람을 죽이는 경우

. 하나님의 권위로 전쟁 수행하는 사람

. 국가의 권위를 대변하면서 범죄자에게 사형 집행하는 사람

. 아브라함의 이삭 번제, 입다의 딸, 삼손이 적들과 함께 죽은 것

 

22. 자살은 당사자의 정신력이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 주지 않는다.

23. 카이사르의 승리를 참아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자살한 카토의 예

 

24. 레굴루스가 카토를 능가한 그 덕목에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뛰어나다.

. 레굴루스가 자살하지 않은 것은 목숨에 집착했기 때문이 아니라 현세에서의 생명을 귀중하게 보지 않았기에 자신의 생명이 고문에 의해 종식되도록 선택했다.

. 세상나라를 방어하고, 거짓 신에게 진실된 숭배행위를 한 레굴루스도 자살을 거부했다면, 하늘 나라의 시민권을 열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당연히 자살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섭리로 그리스도인들을 시험하거나 올바른 길을 가도록 적에게 맡기시더라도... (선인의 고난)

 

25. 죄로써 죄를 회피하고자 노력해서는 안된다.

26. 어떤 특별한 경우 성도들의 행동이 본받을 만하지 않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진 경건한 여인들이 순교자라 칭송 받음”에 의문 제기(vs암브로시우스)

. 삼손, 아브라함의 경우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 경우와 다르다.

. 죽음후의 삶을 갈망하므로 자살하는 것은 죽음 이후에 더 나은 삶으로 용납되지 않는다.

 

27. 죄를 피하기 위해 자살을 선택해야 하는가?

. 그렇다면 세례 받는 순간에 자살해야 한다. 그때가 가장 깨끗할 때이니깐

 

[28-29] 그리스도인이 받은 적으로부터 받은 고난

28. 적군은 하나님의 어떤 판단에 그리스도인의 몸에 정욕을 충족시키도록 허락 받았나?

.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 포인트는 당신이 죄 짓는 것에 동의 하지 않고 순결, 절제, 정결을 소유하고, 타인의 시선에 지나치게 신경쓰지 않고, 타인을 시기하지 않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이중 당신들의 마음이 어디에 집중되어 있는지 알지 못하므로 나도 비난하지 않겠다. → 타인의 칭찬이 없는 것에 집중하지 말고, 타인의 눈에 제시할 수 없는 것을 간직해라.

. 해석1) 육신이 모욕당하지 않았다고 자랑하는 이들, 모욕당해서 자랑 못하는 이들 모두 겸손을 배움

. 해석2) 하나님이 부여하시고 기뻐하시는 순결을 이렇게 빼앗길 수 있다면 하나님이 이러한 상황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임을 알게 된다.

 

29. 하나님이 적의 흉포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구원하지 않았다고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자들에게 줄 답?

1) 나의 고통의 시간은 내 믿음을 시험하시거나 벌주시는 것이다. 충성스런 인내 후에 영원한 상급이 있다.

2) (시96:4-5) 만방의 신은 헛것.. 모든 신보다 경외할 하나님에 대해 너랑 논할 가치가 없다.

 

[30-34] 쾌락을 추구한 로마와 하나님의 자비

30. 그리스도교에 대해 불평하는 자들은 쾌락을 억제 당하지 않고 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 평화와 번영을 바라는 이유? 다양한 쾌락을 추구하기 위함 → 결과 : 도덕적 타락

. 훌륭한 로마인으로 뽑힌 스키피오가 카르타고 파괴에 동의하지 않은 이유는 건전한 두려움이 적절한 보호가 되기 때문, 적을 두려워하고 있을 때 유지되던 높은 도덕적 수준이 붕괴되고 같은 시민들에게 잔학한 일을 당함 → 인간의 악중 로마에서는 권력욕이 세력가들 사이에 자리잡고, 나머지 사람들은 노예화됨

 

31. 권력을 향한 열정이 어떤 단계를 거쳐 로마인들 사이에 증가되는가.

. 스키피오는 원형극장으로 부패한 그리스 풍습이 로마의 도덕성에 침투 되도록 해서 안된다고 주장했으나..

 

32. 연극 공연물이 확립된 발단에 관하여

. 스키피오는 도덕적 질병예방을 위해 극장을 반대한 반면 신들은 육체적 질병을 고쳐주기 위해 자신을 경배하고 연극 공연을 하라고 명령했고 병은 자연적으로 진정된 반면 도덕성에 심각한 질병을 감염시킴

 

33. 로마인들은 로마가 붕괴되었어도 자신들의 악을 교정하지 않았다.

. 자신들의 몰락을 외국에서는 애통해하는데 정작 로마인들은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므로 지금이 나쁜일이 그리스도교에 책임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스스로의 악행은 고치지 않는다.

 

34. 로마의 완전한 파멸을 막은 하나님의 자비에 관하여

. 하나님은 로마인들이 회개하여 잘못을 고치도록 권고하고 있음

 

35. 사악한 자들 사이에 있는 교회의 아들들에 관하여, 교회안의 거짓 그리스도인들에 관하여

. 하나님의 도성을 반대하는 자들 중 미래 동료 시민이 있음을 잊지 말고, 그들이 신앙 고백하는 모습을 볼 때 까지 열매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지금 함께 예배하지만 하나님의 도성에 함께 갈수 없는 이들도 있다. (불평, 극장 출입과 예배 출입)

. 두 도성은 결합되고 혼재되어 있으므로 최후 심판으로 분리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 하나님의 도성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 두 도성의 기원과 발달, 목적에 대해 아는 데로 설명하겠다.

 

36. 다음 논의될 주제

(1) 로마 속주들이 희생제 금지 전(그리스도인의 활동이 없었음에도)에 겪은 재난이 있었음을 설명

(2) 로마가 성공하도록 하나님이 도우신 부분 vs 로마의 신들이 로마인들을 돕지 않고 기만&배신으로 해입힘을 증거

(3) 죽음 이후의 삶을 위해 로마의 신들을 숭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답변

하나님의 도성 _1권(1/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총평

. 정말 말이 많다.(자주 곁가지로 간다.) 표현을 잘한다.

 

  머리글 : 저술 의도와 주제

. 하나님의 도성을 옹호하기 위함

. 자신의 지배욕에 의해 지배당하는 세상 도성에 대해서도 말할 예정

 

[1~7] 고트족이 로마를 침략 할 때 그리스도 때문에 살려주었던, 그리스도의 이름에 대한 반대자들에게 패배자들의 신에 대한 존중심으로 패배자들을 살려준 사건은 지금까지 없었으며, 로마가 약탕당할 때 받은 관대한 행위는 그리스도의 이름의 능력 때문이라는 주장

 

야만족 침입자이면서 아리우스파 기독교인이었던 알라릭(고트족)이 교회당으로 피신한 사람들에게 관대한 태도를 보이므로 당시 많은 로마인들이 교회당으로 피신했음을 기억하라고 한다. 또한 “어려움과 고통의 원인을 하나님의 섭리로 돌려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재앙을 사용하여.. 훈련시키며..전쟁을 사용하여 계속적으로 인간의 타락과 품성을 교정시키고 정결케 하시기 때문이다.“(ex. 코로나)

 

[8~9] 선인과 악인이 동일하게 고난 당하는 것

선인과 악인의 정의

8. 차별 없이 임하는 축복과 불행에 관하여

(1) 하나님의 자비 “왜 하나님의 자비는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미칠까?“ (마5:45, 해를..비취게 하시며, 비를... 내리우시는)

(2) 축복과 불행의 사용 예 : “선인들은 이 세상의 좋은 일들로 인하여 의기양양해 하지도 않고, 이 세상의 나쁜 일들로 인하여 압도당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악인은 현세의 행운에 의해 타락해 있기 때문에, 불행에 의해서는 자신이 징벌 받는다고 느낀다.”

(3) 행운과 불운에 대한 하나님의 명확한 행동양식 (?) “행동양식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4) 선인과 악인이 당하는 고통에 차이는 없으나 결과는 다르다. 선인은 검증되고, 정결, 순수하게 되고, 악인들은 저주, 파멸로 작용하며, 선인은 기도하고 찬양하지만, 악인은 하나님을 저주하고 모독한다.

 

9. 똑같이 고난당하는 여러 가지 이유 : 현세적 생활을 사랑하기 때문에

. 선인은 현세적인 삶을 경멸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교훈을 얻어 마음을 고쳐먹고 영원한 삶을 목표로 할 수 있도록 해야 함 (파수꾼)

(1) 물질적 욕망에 굴복한다.

(2) 큰 죄는 저지르지 않더라도 사소한 죄에는 빈번하게 빠져들고 있다.

(3)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에스겔 3:18, 33:6) : 죄악에 대해 유약한 태도 보이거나 두려워함

(4) 고난에 악인과 함께 연루되어 삶을 괴롭다고 느낌

→ 선인들이 죄인들에게 쓰라리지 않은 이유는 선인들도 세상의 달콤함을 사랑했기 때문임(재물, 명성)

(5) 악인들을 꾸짖어야 할 죄악을 너그러이 보아 넘기므로

→ 악인들의 죄악에 간섭하지 않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이기심의 결과 (자비로운 생각 일수도 있으나)

 

[재물]10. 성도들은 세상 재물을 빼앗겨도 잃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 (딤전 6:6-10)

. 재물을 하늘곳간에 두므로 이땅에서 안전함

. 오랜 굶주림으로 비참하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충성되고 신실한 사람들은 기아마저 유익으로 전환시켜주심

(1) 굶주림으로 죽은 사람들은 현세의 악과 이별하게 된 것

(2) 살아남은 사람들은 검소하고 더 금식 실천하면서 사는 가르침을 얻게 됨

 

[죽음] 11~13. 그리스도인들이 살해당하고 매장 안된 것이 허물이 아니고, 죽은 자에게도 해가 되지 않는다.

Q.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살해 당했고 온갖 종류의 끔찍한 질병으로 목숨을 잃었다.”

 

11. 인생의 종결에 관하여

. 죽음 후에 더 나은 삶이 기다리고 있다면, 죽음은 재앙으로 간주 될수 없다. 죽어야 한다면 어떻게 죽느냐에 두려워하지 말고 죽음 이후의 목적지를 염려해야 한다.

 

12. 시신의 매장 : 매장되지 않아도 해를 입지 않는다.

Q. “살육의 소란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매장조차 될수 없었다.”

. 매장되지 않은 그리스도인의 시신에 대한 모욕에 대한 답변

.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마 10:28)

. 장례는 산자들을 위로하는 것이다. but 거지 나사로의 경우 아브라함의 품안에서 더 화려한 장례를 맞는다.

 

13. 성도들의 시신을 매장하는 여러 가지 이유

. 육체는 인간 본성 자체 이다.

. 예수님의 시체 거둔 사람들에게 칭찬 (요19:38~)

∴ 생명 없는 시체에 행한 봉사가 하나님께 기억된다면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베푼 선행의 상급은 더 크다.

 

 

[포로] 14~16

14. 사로잡힌 성도들에 대하여 : 하나님의 위로가 계속된다.

Q.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포로로 끌려갔다.

. 성경의 위로 : 다니엘, 요나 등

 

15. 종교를 위해 자기에게 이익되지 않는 자발적 포로생활을 참아낸 레굴루스

. 신의 숭배로 훗날 행복을 얻게 된다면, 레굴루스는 엄청 열심히 숭배했는데 고통당하며 죽었다. 신 숭배를 버려서 로마에 파국이 임했다고 그리스도인을 비난하는 것은 논리에 맞지 않다.

. 신에 대한 맹세를 지키기 위해 고난 받고 죽은 레굴루스가 비난 받지 않는다면, 성도들의 투옥에 관해서도 그리스도의 이름이 비난받을 이유는 없다.

[불멸의 다이아몬드]_7장 총부리 앞에서의 각성

 

출판사 : 한국기독교연구소 (리처드 로어, 김준우 옮김)

  

더보기

1. 죽음과 공포

2.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3. 집착과 초연

4. 하나님과 죽음

 

. 하나님과 죽음 : ‘삼키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자신을 타인에게 맡겼을 때 느끼는 감정

  . 인간의 자세 : 저항, 도망

   . 성년식의 경험 : 하나님과 죽음의 직면 경험, 죽음이 진짜 자기에게 해를 끼칠 수 없다는 것의 인식 도움

   . 총부리 앞에서의 각성 : 임종하기 직전에 가짜 자기의 포기 (죽음=구원)

 

.“내가 죽었다고 해서 도대체 무엇을 잃었는가?” (“존재의 근거”/폴 틸리히) = 본래 자기가 되는 일

   . 본래 자기 : 깊은 곳에서는 알고 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모르고 있던 자기

 

. 총부리 앞에서의 각성 : 임종전에 가짜 자기 포기하는 것

. 죽음 : 영적 사건 (현대는 단순한 의살 사건화 함) (ex) 출생

. 구원 : 사랑에 모든 것을 내어 맡기는 필수적 과정 - 에고는 경쟁(경주)으로 바꿈으로 ‘지옥’화 함

 

1. 죽음과 공포

.(롬7:20) 진짜 자기 : 바울은 가짜 자기를 따르는 것을 ‘죄’라고 부른다.

. 가짜자기는 죽음을 겁낸다. ‘나 자신’이라고 정의한 에고가 죽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

   . 죽음을 직면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미룸과 지연 vs “하나님의 완전하며 오래 참으시는 사랑”

 

. 진짜자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신이 있던 곳)

. 영과 영성은 물질적 요소를 갖고 인간은 모두 삶과 죽음을 겪는다.

. 성령, 부활, 악은 실질적이며 물리적인 힘의 작용이 미치는 범위(역장)이다. (영적, 물질적 연결이 있음)

∴ 부활의 역장 안에서 물리적 삶에서도 그 힘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알면 그 힘에 의존 할 수 있고, 그 힘 안에서 살 수 있다. 예수님이 불어넣은 숨(요20:22)으로 인해 성육신은 우리 안에서 부활로 살아갈수 있게 했다. 이 깨달음은 또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무덤 속으로 들어가야’(롬6:4)하고, 여인들 처럼 무덤 앞에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여인들처럼 타인의 고난에 연대하는 것은 직접 고난을 겪는 것 만큼이나 많은 것을 배우게 된다. (예) 응급실/장례식 경험

 

. (융) 예수님은 인간의 여정 위한 적절한 map

. 인간은 자신의 길을 안내할 효과적 ‘구원자’를 필요로 하는데 예수님은 ‘사랑이 승리한다’는 것을 보증하시는 증거이며 약속이다.(엡1:14)

. 부활을 가장 깊은 차원의 욕망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하나님의 욕망이 우리의 욕망이 될 때 까지 우리를 통해서 성령께서 간구하시는 것이다.

 

. 죄의 핵심 : 예수님과 우리가 따로 떨어져 분리되어 있다는 거짓말 (5장 신화)

.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요10:30) : 모든 사람들을 위한 궁극적 모델이며 인도자

. 모든 죽어가는 이들을 집으로 데려가시는 분은 ‘만민의 아버지 이신 하나님 한분’ (집으로.. 헨리 나우웬)

.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 이 땅에서의 고난과 재난에 하나님께서 지속적으로 연대하신다는 것과

   . 이러한 고난과 비극이 최종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이다.

. 부활하신 분은

   . 이 세상에 대한 하나님이 최종적 말씀이며

   . 하나님께서 모든 고난에 대해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신지를 보여주신 것이다.

 

2. 죽어가는 것에 대하여

. 마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수난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필연적인 죽음’을 인간들이 부인하고 피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 기계적 속죄론으로 정리함으로 예수님의 죽음만 강조하고 인간의 죽음은 숙고하지 못하게 됨

 

. 성육신은 전적인 하나님의 선물, 구원, 하나님에 관한 인간의 마음을 바꾸기 위함

. 예수님의 죽음은 인간의 문제를 드러내심 : 사랑해야 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죽이는 인간의 문제

. 십자가형과 부활에서 예수님은 ‘죽음이 사랑보다 강하다’는 것이 거짓말임을 폭로하고 부활절에 죽음의 극복을 기뻐하게 하심

∴ 우리는 죽기 전에 죽어야 하며, 그렇다면 어떻게 죽을 것인지 알게 되고 더 이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 예수님의 샬롬!

 

. 진짜를 체험하고 부활하신 분을 만나면 가짜, 과거, 사소한 것 쉽게 내려 놓기 가능. (p58, 6장 “신의 유혹”)

 

3. 집착과 초연

. 생명은 낮은 곳으로 흘러들어가며, 항상 사랑으로 변형되며, 만물 자체로 용서하므로 죽음보다 훨씬 강하다.

. 가짜자기는 하나님의 경륜속에서 사용되고 변형되므로 진짜 자기를 열정적으로 사랑하면서 가짜 자기에는 초연함의 영적기술을 잊지 말아야 한다. 둘 다 필요하지만 진짜 자기가 더 크고 영원하다.

 

4. 하나님과 죽음

. 역사적 사건들을 허용하신 하나님은 폭력, 징벌, 통제하지 않으신다. (폭력을 폭력으로 막지 않으심)

. 하나님은 사랑에 헌신하심 = 자유에 헌신하심 = 강제와 통제의 포기

. 죽음을 두려워함 = 하나님을 두려워함 (둘 중 하나 해결하면 나머지도 해결됨)

 

. 우리의 온전한 수단 = 삼위일체 (하나님 = 삼위일체) : 이분법적 사고로 이해 부족

   . 하나님은 동사 : 관계성 자체, 신비의 하나님으로 인간이 파악 할 수 있는 고립된 신이 아님

   . 삼위일체 개념 : (3-4세기 카파도키아 교부) 세분의 친밀한 파트너들이 전적으로 내어주며 완전하게 받는 원무(圓舞,윤무), 전체를 받아 다시 넘겨주는 자기 비움의 사랑을 3자에게 반복

 

. 하나님은 오직 사랑만 아시며 항상 사랑하신다. : 자비가 넘쳐 흐르는 물레방아는 더 많은 생명과 창조적 생명,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라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 과학, 생물학, 천체물리학에서 삼위일체적 진리 확증

   . 삼라만상을 관계성 : 만물의 형태가 끊임없이 상실, 갱신, 죽음과 부활, 자기를 잃고 큰 자기를 찾는 과정을 거치므로 죽음을 신뢰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자신을 더 신뢰하도록 만들기를 희망하는 sign.

빅터 프랭클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 2장 A. 일반 실존 분석

 

 

Ⅱ. 정신분석에서 실존분석으로

A. 일반 실존 분석

1. 삶의 의미에 대하여

. 정신분석과 로고테라피(의미치료)의 차이점 : 영적인 것을 의식하게 하고자 함

. 로고테라피 : 실존적 본질상 (의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라는 것을 인간에게 의식시키고자 함

  . “삶의 의미”

 

존재 의미 묻기

. 인간만 실존을 의문하고 존재적 의심을 경험

. 영적 곤궁과 정신질환 사이에 배타적인 관계의 증거 :

    내분비성 우울증이 발현할때는 우울하지 않다가 건강한 시기에만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했던 환자

. 촛불은 연소과정으로 보아도 되지만 인간은 본질적으로 그와 다른 “역사적 존재” - 의미에 의해 좌우됨

    개미무리의 움직임과는 다른 목적 지향적(의미 있는) 인간 ∴ 역사적

. 삶의 의미에 대한 질문이 올라오는 시기 : 병적이라고 할수 없음

  (1) 사춘기

  (2) 충격적 경험을 할 때 운명적으로 생김 : 충만한 삶을 갈구하는 정신적 곤궁과 영적 투쟁

  ∴ 로고테라피의 대상은 정신적으로 힘들어하지만 임상적으로 병들었다고 볼수 없는 사람들을 대상으로함

 

‘영성에서 출발하는 심리치료’

  .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에게 불안의 상쇄를 위해 영적 뒷받침 제공이 필요

  . 영적 문제를 ‘증상’으로 취급하지 말고 함께 이루어야 하는 ‘성취’로 해석 (오스발트 슈바르츠)

    → 외적인 이유로 정신적 균형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필요한 도움

  . 삶을 긍정하는 세계관의 중요성 : 장수 노인들의 특징 등..

 

초의미

. super-meaning : 세계의 목적은 세계외부에 놓여있으므로 초월적이다. 세계전체의 의미는 파악 할 수 있는 것을 넘어서므로, 한정적으로 만 파악 할 수 있다. (신앙으로만 해결 가능 : “동물이 자신의 환경으로부터 인간의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신앙 안에서 영감으로 뻗어 나가지 않는 이상 인간도 초세계를 파악할수 없다.”)

. 초인간적 차원으로 나가는 것은 사랑을 통해 이루어짐 (ex) 치료받는 강아지, 모성애 등..

∴ “초의미에 대한 믿음이 심리치료와 정신건강에 효과를 발휘한다.” (“믿음의 눈으로 보면 의미가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헛되게 보이지 않으며, ”예정되지 않은 일이 없다“(빌트간스, Wildgans)”

. 인간(삶)의 유한성인 ‘시간’은 과거와 미래를 현재로 해석하므로 삶의 의미와 가치에 손상을 입히지 못한다.

(해석!! 과거에 이미 행한 현실, 미래는 ‘책임’앞에 열려 있는 지금)

 

쾌락 원리와 상쇄 원리

. 개인적인 삶의 의미

  . 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의 쾌락을 중요하게 보지만 로고테라피에서는 쾌락 원리는 심리학의 인위적 산물

  . 인간이 원하는 것은 서로 다른데 쾌락원리를 인정하는 것은 인간의 목표를 평준화 하는 것

 

[신도의 공동생활]

1. 공동체 (성도의 교제)

디트리히 본회퍼. <신도의 공동생활>. 대한기독교서회.

 

. 원수들 틈에 살기 : 예수님께서는 원수들의 한복판에서 사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도 은둔 생활이 아니라 원수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다. 일과 사명이 거기에 있다.

“당신들 원수들 한복판에 하나님의 통치가 임하도록 해야 한다.” (마틴 루터)

 

. 흩어져 살기 :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 씨앗으로 존재하기

. 함께 살기 : 방문하는 사람이나 방문 받은 사람은 자신을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발견하며 주님을 만난 듯 경외심과 겸손, 기쁨으로 대하고 영접하라. (함께 함이 은혜)

. 성도의 교제 : 그리스도인의 공동 생활 위한 안내와 규칙의 전제 조건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교제

   -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타인에게 다가 갈 수 있다.

   (1) 구원과 의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찾는다.

   (2)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타인에게 다가 갈 수 있다.

   (3) 성육신으로 인해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 안에 있다. 그분이 계신 곳에 우리도 있다.

    -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을 우리는 형제들에게 행해야 한다. (긍휼, 용서, 사랑...)

    - 타인의 성품이 성도의 교제의 근거가 아니고,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행하신 일이 우리의 형제 관계를 규정한다.

 

. 그리스도인 형제 공동체가 분명하게 해야 하는 중요한 문제

  (1) 그리스도인 형제 공동체는 이상이 아니라 거룩한 현실이다.

  (2) 그리스도인 형제 공동체는 인간적 현실이 아닌 영적 현실이다.

    - 이상에 기초하면 무너진다. : 인간적 이상은 참된 공동체 방해 → 기독교 공동체의 파괴자

    (예) 선교사/목사들이 자신의 밥그릇을 위해 그리는 그림 들

   - 몽상 : 공동체 상을 꿈꾸고 있는 사람은 꿈을 이루기 위한 요구를 한다. 요구자로써 그리스도인 공동체로 들어가서 자신의 법을 만들어서 그 법에 따라 형제와 하나님을 심판한다.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을 실패라고 하며 형제, 하나님, 자기 자신을 정죄한다.

   → 하나님께서는 공동체의 기초를 이미 놓아주셨고, 이미 한 몸이 되게 하셨다. 그러므로 주시지 않은 것에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주시는 것으로 감사해야 한다.

  (3) 감사하는 것 : 일상의 선물, 작은 것...

  - 불평하고 고발하는 사람이 되어있다면 깨어야 할 이상이 없는지 자신을 점검해야 한다.

 

. 공동체는 성화(聖化)와 같다. 하나님의 선물이고 어떻게 되는지는 하나님 만이 아신다.

. 그리스도인의 형제애는 실현해야 할 이상이 아니라 영적 현실에 참여하는 것

. 공동체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근거하므로 정신적 실재가 아닌 영적인 실재이다.

  - 영적 pneumatisch, geistlich : 성령만이 하실 수 있는 일

    . 기초는 진리, 본질은 빛, 사귐은 부르심 받은 자들의 교제, 아가페, 형제의 섬김, 겸손한 복종...

  - 정신적 psychisch, seelisch: 영혼을 토대로 한 자연적인 추동과 힘

    . 기초는 욕망, 본질은 어둠, 경건한 영혼들의 교제, 에로스, 무질서한 욕망, 교만한 굴복...

. 인간적 사랑 : 자기 자신위해서 타인을 사랑함, 본질상 욕망 → 미움, 멸시, 비방으로 변함

. 영적인 사랑 : 그리스도를 위해서 타인을 사랑함, 오직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에만 매여 있는 사랑

  - 내가 그를 위해 무언가 하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결정적인 일을 하셨다.

  - 타인의 모습을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인식한다.

  - 타인에게 가는 가장 가까운 길은 그리스도께 기도하는 길

∴ 인간적 이상 vs 하나님의 현실, 영적 사귐 vs 정신적 사귐 : 차이 구별할 수 있는 능력 갖도록

→ . 공동체(결혼, 가정, 우정 : 의미가 있는 공동체)안에 혼합적으로 나타난다.

    . 영적인 공동체는 특별히 잘 살펴야 한다.

. 건강한 공동체

  - 전체 교회의 고난에 동참하며 함께 겪는 가운데 자신을 교회의 한 부분으로 이해

  - 정신적인 것의 한계가 어디인지, 영적인 것이 어디에서 시작되는지 잘 알고 있다.

  - 체험이 아니라 형제애에 대한 확실한 믿음이 하나되게 한다.

 

.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 = ‘형제가 그리스도를 통해’ 동거함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_요한 클리마쿠스]

1~27요약 & 28~30 계단

 

1. 1~26요약

. 의문 : 강한 믿음이 극기와 자제의 근원, 하나님 사랑은 유배생활의 기초

. 건강의 근원인 자제의 근원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 꾸준한 기도는 낙담의 죽음

. 289) 하나님의 영을 지닌 사람은 말과 겸손함에 의해 탐지, 무지는 순결에 큰 도움

. 293) 선한 성품은 두려움을 낳고 – 두려움 많은 사람이 다 선한 것 같지는 않지만(범죄안함)

 

2. 27번째 계단. 정적 (stillness; hesychia)

. 전쟁에서의 승리(인생질문, 6장), 스스로 성취한 자유를 통한 사탄의 책략 이해, 용감하고 단호한 생각은 정적의 동반자, 마음 깊은 곳에서의 정적의 실천

. 몸의 정적 : 감정과 지각 작용에 대해 알고 관리

. 영혼의 정적 : 생각 알기, 난공불락의 정신

. 정적을 이룬 사람은 신비의 중심에 이른 사람 :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하나님에게 빠짐

  - 가진 모든 것 나누어 주기, 순종하기, 먹는 것, 물질에 무관심

. 여러 가지 이유로 정적을 수행하지만 ‘낙담’이 자신에게 남아 있는 경우 홀로 지내는 시간이 힘들 수 있다. (공동체의 필요 : 게으름 – 제거 하는 사람도 있고, 육성되기도 함)

. 정적 바른 수행의 증거 : 신학 실천의 기초, 눈물 동반의 휴식, 수다의 종식

. 정적 잘못 실천의 표식 : 영적 보물 부족, 노염 증가, 분개 성장, 사랑의 감소, 허영의 급증

 

. 정적 실천 중 낙담(자신의 문제)과 싸우지 않기 : (312,풍성한) 기도와 관상으로 채워야 함

. 정적의 우선적 임무(304) : 개입(문제)하지 않기, 절박하게 기도, 거역 할 수 없는 마음의 활동

. 마귀의 난폭한 공격은 그들의 목적이 실패 했음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

. 헤시키아 : 쉬지않고 하나님을 바라고 예배하는 것 (기도의 중지는 독거를 망하게 함)

  - (307) 때로 환대 조차도 하지 말 것. 양심과 상식을 따를 것

. 정적의 실천을 위해서는 두려워 해야 함(낙담을 쫓아 냄) : 죽음이 오는 것 항상 경계하기

. 정적의 조건 : 단순하고 자유로운 것 (자면서도 영적전쟁 하지만..)

. 손님 맞이시 가장 좋은 것은 모든 사람을 우리보다 윗 사람이라고 여기기

 

3. 28번째 계단. 기도

. 기도 : 인간과 하나님의 대화와 결합, 세상을 결속시키며,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룸

  - 소멸된 분노, 우리의 상태를 보여주는 증거

. 종류 : 이야기, 요청, 애원, 간구

. 진심에서 우러나는 감사가 우선되어야 함, 순결과 눈물이 기도에 날개를 달아줌(315)

. (319) 기도시간에 하던일을 계속 하는 것은 마귀가 도둑질 하는 것임

. (322) 기도의 지팡이를 잡은 사람은 넘어지지 않을 것임

. 원수들에 대해 담대하면 하나님께서 기도를 가르쳐 주시며,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도 주신다.

 

 

4. 29번째 계단. 무정념

. 완전한 자들의 완성되지 않은 완전

. 정념에 잡힌 사람은 쾌락에 빠지고, 무정념한 영혼은 덕에 빠짐

. (327) 독거하면서도 격분하는 것은 진노의 바다, 비방자가 있든지 없든지 평정 잃지 않는 것은 오래 참음의 바다

. 교만의 상징 : 초라한 옷을 입고서도 오만한 것

 

5. 30번째 계단. 믿음과 소망과 사랑

. 믿음 : 만물의 창조

. 소망 : 하나님의 자비로 둘러 쌓이며, 혼란으로부터 보호하심

. 사랑 : 중도에 정지하지 않으며, 황홀함에 의해 상처 받은 사람을 쉬게하지 않음

  - 사랑을 말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

  - 인간적으로 가능한 한도까지 하나님을 닮는 것

. 운 좋은 사람 : 하나님께 열심 내는 사람, 덕에 관심 갖는 사람,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 (332)

. 거룩한 사랑은 사로잡으므로(아4:9) 식사도 망각한다.

. 두려움의 증가는 사랑의 출발점

.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형제를 사랑한 사람

. 소망은 사랑의 배후에 있는 능력 : 소망이 사랑을 고대하게 만든다.

 

6. 요약과 권면

. 열심히 사다리를 올라가십시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_열한 번째 계단 ~ 열세 번째 계단 정리

 

1. 열한 번째 계단. 수다와 침묵

: 혀의 억제 / 일격에 많은 악을 근절한 사람

 

. 수다 : 허영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는) ≠ 지혜로운 침묵 (죽음에 대한 확실한 묵상)

수다 침묵
. 나쁜 생활 방식의 결과
. 허영 또는 탐식의 결과
.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
. 하나님과의 은밀한 만남과 깨우침
. 허영의 정복
. 죽음에 관심을 갖음

 

2. 열두 번째 계단. 거짓말

: 수다와 농담의 산물 / 축복의 근원을 획득한 사람

. 농담을 피할 때 사탄이 주는 생각 : 피하지 않으면 기도할 때 농담이 돌아온다.

   (1) 재치있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게 해

   (2)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해

   → 죽음과 심판에 대한 생각으로 나쁜 사람들과의 교제를 끊어라

. 위선 : 거짓말의 근원 (거짓의 발명자)

. 양심(주님을 경외하는 은사를 가진 사람에게 작동하는 재판관) 있는 사람은 거짓말 하지 않음

. 거짓말에 해악이 많다. (p154, 정념 이 갑자기 왜 나오는 걸까...)

. 풍성한 눈물이 거짓마을 파괴 (?, 154 마지막 문단)

. 거짓말의 충동에서 벗어 난 경우 : 아기, 악씻은 영혼, 취중, 양심의 가책에 취한 사람

 

3. 열세 번째 계단. 권태 /덕에 있어 탁월함

3.1 권태(싫증) : 수다의 양상/맏아들, 악덕 중 하나이며 영혼의 마비, 태만, 서원에 대한 적대감

   . 증상 : 우유부단한 기도, 봉사와 손으로 하는 작업에 몰두하게 함, 순종에 무관심, 독수사에게 구제위한 육체노동에 열정 갖게 함, 심방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방해함.

 

3.2 권태를 배격하는 경우

   (1) 순종하는 사람 : 영의 차원에 도달하기 위해 감각에 속한 것들을 사용함

   (2) 공동체 생활 : 독수사에게 정오에 찾아오는 귀신(권태, 낙담)

   (3) 애통하는 사람 : 죄를 기억함(심판을 망각하지 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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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무 오래전에 써놓은 독후감이라 어떤 책인지 조차 알수 없어서 제목만 공유합니다.

 

허드슨 테일러

  

  어릴적 인격적인 하나님과의 만남을 갖은후 아버지가 계속적으로 말씀하시던 중국선교를 위해 자신의 모든 삶의 코드를 중국선교에 맞추어 준비하던 허드슨 테일러가 영국뿐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중국의 내륙선교까지 일으키게된 과정이다. 무엇보다 재정훈련 과정에서 하나님의 철저한 채우심을 신뢰하며 기다리던 허드슨테일러는 실제 선교과정에서도 끊임없이 재정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방법을 따랐으며, 개인의 경건생활을 철저하게 지키며 사역한 선교사로 묘사된다. (정말 가능한 일일까..그럴수 있을까 싶은 의문이 읽는 내내 정말로 컸다)  그러한 사역가운데 건강은 피폐해져 갔으나 사역은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시고 허드슨의 생각과 방법을 넘어 사역은 점차 성장해나가고 중국내 믿음의 사람들이 세워지게된다.

 

  허드슨 테일러의 전기는 많은 양의 책으로 되어 있는 것 으로 안다. 많은 기독교서적에서 조지 뮬러와 허드슨 테일러를 예화로 많이 봐왔어서 더 궁금했던 사람 중의 한사람이다. 그런데 이 얇은 책을 읽으며 그에 대한 의문은 더욱 커져갔고 정말 시간이 된다면 두꺼운(자세히 나온) 전기를 보고 싶다.

 

재정

그 첫째 이유는 그의 재정원칙.

  어쩌면 하나님께서 내게 그의 훈련을 기대하고 계신것 일까.. 지금까지도 재정문제에 관한한 참 잘 감사로 이겨왔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재정문제에 대해 내 믿음의 바닥을 보는 듯 하다. 그리고 허드슨 테일러의 방법대로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란 의문이 많이 들었다. 특히나 사역가운데 재정이 없을 때도 며칠씩 사역을 계속 해나갔다는 부분이 많은데 그 부분에 대한 자세한 예화가 많이 궁금했다.

  현재 나만 보더라도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 할때 (가뜩이나 그들의 시대에는 밥 문제가 큰 부분이 었을텐데) 항상 식사시간을 사용하게 되고(피할 수 있다해도 초신자일 경우 식사 공동체 안에서의 친교가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데..) 그렇다 보면 재정이 흘러나가는게 너무나도 당연한데 허드슨과 그의 선교사들은 재정이 없이도 며칠씩 사역을 했다는 것이 큰 의문인 동시에, 그들의 믿음과 정체성의 확고함에 참 많이 놀랐다. 나 같은 경우 그들처럼 재정이 완전히 끊긴다면 "하나님의 철수 싸인"으로 생각하지 않을까....?

 

경건시간 확보

둘째 이유는 개인경건 시간 확보

  책의 후반부에서나 나온 이야기 이지만 새벽 (책에선 아침이라고 표현되어 있음.) 2-4시가 그의 새벽기도시간으로 아무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했다. 그렇다면.. 많은 전도여행과 노방전도, 의료업무 등의 일을 하다보면 골아 떨어져서 도중에 일어나기 힘들거나..혹은 2시까지 너무 바빠서 깨어있더라고 2-4시라면 완전 비몽사몽의 시간일 텐데... 그 시간을 지킬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놀라울 뿐이다. 사실 피곤해서 하루 이틀 빼먹게 되면 자연스레 잠자는 것으로 익숙해 질텐데... 자신과 타협하지 않고 스스로를 훈련한 그로 인해 나의 훈련도 타협을 자꾸 이겨나가려고 하는 것 같다.

 

질병의 문제

셋째 이유는 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경험한 사역가운데 자신의 질병의 문제이다.

  허드슨뿐 아니라 예전에 스펄전을 읽었는데 말씀 사역자였던 그 또한 엄청난 사역의 무게로 인하여 질병을 달고 살았던 것으로 기억되어 그냥 답없이 안타까워하기만 했었다.

 

  최근들어 신약의 복음서들에서 예수님의 행적을 보면서 한가지 의문이 들었다. 예수님은 아픈사람 데리고 오면 무조건 다 고쳐주셨다는 것. 현대 우리가 아픈사람을 위해 기도하면서 타협하는 것(?)처럼 "아직 하나님의 때가 안되었다"느니 "회개할게 있다"느니(아픈사람에게 더욱 마음의 상처를 주는 말들을 기도한다는 사람들이 더 서슴없이 하는 것 같다. 나를 비롯해서..) 기도하고 나서 결과가 안보여졌을때 대는 핑계가 예수님께는 필요가 없었다. 때론 안타까워하시며..때론 먼저 손 내미시고..때론 지나가다가 예수님도 모르시는 부지 불식간에 환자의 믿음에 의해서 그냥 치유가 되기도 했다. 신약에서 이러한 예수님의 치유사역에 대해 집중 하고 있을 즈음 베니힌목사의 짧은 설교를 들을 수 있었다. 그 또한 신약을 들고 나와서 구원과 치유는 병행되었다고 강하고 확신있게 전했다.

 

  그렇다면 허드슨이나 스펄전같은.. 하나님께서 크게 쓰시는 자들의 병은... 그들의 치유에 대한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을까..(사실 허드슨만해도 아프지 않으면 빨리 중국에 뛰어가서 섬겻을텐데 때론 영국에서 때론 스위스에서 요양을 취해야 할 경우도 있었다) 아니면 또 다른 핑계로... 이들에게 육체의 문제가 없다면 절대로 쉬지 않고 자신을 로보트처럼 쓸 것 이기에 하나님께서 사랑의 특단 조치를 취하신 걸까?(이 부분을 바울의 육체의 가시와 연결지어 봐도 되는걸까...)

 

 

    이 책에서도 '화해의 아이'에서 만났던 나의 문제를 또 한번 보게 되었다. 허드슨의 많은 업무중에서 그리스도인들과 구도자들을 상대로 매일 교제하고 상담하는 일을 제일로 중요시했다는 부분은 많은 선교사님들이 기본적으로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업무이다. 사람만나서 이야기 하는것. 나의 약한 부분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고쳐주셔서 나로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으로 준비시켜 주시길 바란다. 특별히 복음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풀어 설명하고 예수의 사람으로 결단하게 하는 은사를 부어주시기를 다시 기대해 본다.

 

  또한 엄청난 소망의 부분도 있었다. 배우자의 부분이다. 허드슨과 마리아가 주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고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중매자로 계속 기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는 부분에서 항상 이상적으로만 생각했던 것이 이상이 아니고 현실이었다는 것에 아주 반가웠다. (물론 자녀들이 쓴 책이니 약간 미화 시킨 부분도 있겠지만...)

   

  이책을 읽으며 살아있는 말씀에 대해 다시 한번 기초부터의 흔들림을 경험하는듯 했다.(위의 세가지 질문에서 보다시피 교회 처음 온 사람과 같은 질문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제는 허드슨의 삶이 그냥 남의 일이 아니고 나의 삶이 될 것이기 때문이겠다. 결국은 나의 믿음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고 그 바닥을 보았을 때 내게는 추상적인 믿음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 시간을 통해 나에게 믿음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본다.

내게 믿음이 없다면 나의 발걸음은 무의미한 것이기에...

나의 바닥을 바로 보게 하시고 훈련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내게 의문 갖게 하신 하나님께서 언제나 그러셨듯이 이제 답도 속히 주실것이기에...

 

2005. 10. 31

[화해의 아이]

하나님의 동역자 

 

  돈 리처드슨 선교사가 식인 부족인 사위족에게 복음을 전하는 과정이다. 초반엔 사위족의 문화와 사고에 대해서 알수 있는 소설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해서 너무 나도 다른 문화와 사고로 인해 책인데도 불구하고 문화 충격이 너무 컸다.

  돈 선교사가 등장하기 전까지는 그저 실존 인물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설화 정도로 받아들이고 싶은 마음으로 읽었다. 그러나 선교사가 현재형으로 말할 때 실존했던 인물들이 있는것을 보고 선교사가 들어가기 정말 불과 몇 년전의 일이라는 것이 소스라치게 놀랐고 정말 ‘사명’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겠다는 생각도 강하게 들었다.

  ‘전능자의 그늘‘(짐 앨리엇)에서도 선교사들이 선교 한번 제대로 해보지 못하고 선교지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를 보고도 놀랐엇는데 (우리나라의 토마스 선교사님...) 13년 동안이나 한지역에서 선교를 하고도 그 지역에서 100발의 화살을 맞고 죽음을 맞은 선교사의 이야기에선 잠시 책을 놓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열심은 생각지도 못하게 순교한 선교사의 가족으로 그 지역을 다시 섬기게 하셨다.

이 책 에서는 돈 선교사가 사위족을 섬겨서 그들 스스로 말씀을 전할 수 있을 정도로 사위족이 성장한 과정까지 이야기 되고 있다. 하나님 앞에서 참 많은 질문을 하게 한 책이었고 다시한번 ‘사명’에 대해서 점검하게 하는 책이었다.

 

 

하나님의 동역자... 사람.

  Y대를 바라보면서도 "꿈꾸는 한사람"에 의해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심을 뼈져리게 느끼던 중 책의 중간 부분에서 오지 선교회의 이야기가 나오면서 역시나 여기서도 꿈꾸는 한사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을 시작하셨다는 깊은 감명을 받으며 하나님 앞에 나는 어떤 사람일까를 자꾸 생각해 보게 된다. 그래서 그런지 이 책에서도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과 복음을 전하는 사람의 움직임과 마음을 관찰하며 읽게 되었다.

 

  많은 선교사들이 어떤 상황에서든 에스더와 같이 '죽으면 죽으리이다'하며 기도하고 움직인다. 어떤 선교사는 정말 별것 아닌 상황에서 아깝게 죽기도 하고 어떤 선교사는 돈 선교사처럼 화살이 빗발치는 곳에서 살아남기도 한다. 아무리 질문 해봤자 하나님의 주권이라는것 외에는 다른 토를 달다가도 그만두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정하신 계획(예수님의 십자가)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으로 하여금 "그렇게 결정 할 수 밖에"없게 만든 동역자인 "나"의 자유 의지도 또한 점검해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다.

  처음 돈의 가족이 왔을때 사위족이 처음 의식을 치르는 중 돈이 '선교사여, 너는 도애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가?"란 질문앞에 다른 수식어들을 뒤로 하고 자기의 야망을 내려놓았던 것처럼.. 와라하이가 죽었을때 돈이 점검했던것처럼 우리안엔 정말 '본질'을 점검해야 하는것이 많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며 정리된 것중 한가지는 바로 동역자인 '나'의 '마음 자세'인것 같다.

( 이 부분은 하나님의 성품을 더욱 알아가면 알아갈 수록 정리 되어지고 나 또한 나의 부르심대로 준비되어 질것 같다)

 

하나님의 자녀... 사람.

  예수를 그리스도라 시인하는 모든 사람이 자녀라 할 수 있겠으나 아빠를 많이 닮은 삶을.. 아빠를 많이 투영시키는 삶을 살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돈 선교사의 하루 사역을 정리하며 놀랍게 고백했다. "하나님을 꼭 빼어닮은 하나님의 자랑스런 동역자! 선교사!!"

돈의 하루 사역은 기도, 치료, 자신의 가족의 생활 터전 만들고 개척&관리, 성경연구, 부족 언어영구, 문화, 민족, 역사 연구, 보살핌, 선교 방법론 연구 결국은.. 적절한 시기와 때에 맞춘 복음전파...  이렇게 정리하면서 정말 선교사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꼭 빼어닮은 하나님의 자랑스런 동역자! 선교사..자기도 모르게 여러모로(인성, 습성, 능력) 하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돈은 '남자들의 집'에서 열심히 설명하고 이야기 한다. 읽으면서도 내가 현장에 있었다면 이렇게 열심히 말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청년부에서 나이가 좀 많다는 관계로 많은 청년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때론 사고가 뭔가에 막혀있어서 더이상 이야기 진행이 어렵다던지 자아가 너무 강해서 어떤 진리도 받아들이지 않기에 삶에서 적용되지 않는 상황에 있는 친구들에게 어느 순간부터인가 '그만하자'고 포기했던 경우가 있던것이 생각났다. 최근 일이었기에.. 복음 전하러 선교가겠다는 내가 가까이 있는 지체들을 섬기고 함께 상황을 풀기를 싫어하면서 어떻게 멀리까지 가서 돈선교사의 상황처럼 사고가 막혀있고 자아가 강한사람들앞에서 화안내고 부지런히 설전을 벌일 수 있을까..란 생각에 잠시 기운이 빠졌었다. 어쩌면 새로운 기도 제목을 알려 주시기 위해 주신상황이고 이책을 마침 읽게 하신것 같다라는 마음이 들어 회복하고 계속 기도 중이다. 말하기 싫어하거나 피하지 않기, 대화중에(성경공부 때 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하길..

 

사역의 확신성...

  유비를 찾기 까지도 한참 걸렸으나.. 그 사이 신약 말씀 가운데 사위족이 가롯유다의 이야기에 푹 빠져서 복음이 전해지는데 벽에 부딪히고 전혀 복음을 제대로 전할 만한 그 어떤 꼬투리도 잡지 못하는 상황에 다달았을때... 내가 그 상황이라면 "보내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만 했을 텐데 돈은 정말 끈질겼다. (여기서 끈질기게 참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성품을 다시 한번 보았다.) 세례요한, 예수님, 바울의 경우를 들면서 불평은 했지만 결국 돈은 방향을 바꾸지 않고 "주님, 주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라고 기도했을때 내게 뭔가 탁 박혔다. '그래! 이런 기도는 이런데서 딱 맞는것아닌가.. 육의 문제에서가 아닌 복음이 선포되어져야 할 곳!!' (때로는 육의 문제에 있어서도 하나님께서는 이 기도를 바라시겠지만..^^)

 

  이책을 읽는 내내 말레이시아에서 이반족을 섬기시는 선교사님과 이란자야의 마두리족 지역(식인지역)을 오랜기간 오가시며 섬기고 계시는 선교사님을 생각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계신 분들.. 이 책 때문에 그분들의 기도를 조금 더 하게 된것 같다.

  또한 이책을 통해 사람들 만나고 이야기하면서 내가 엮여 지는것을 싫어하던 나를 되돌아 보았다. 하나님께서 부탁하신 일을 하기 위해 작은 일을 더욱 열심히 하도록, 만남과 이야기하는것을 싫어하지 않도록 계속 기도 하고 있다. 점점 더 하나님을 닮아가는 내가 되기위해 지나야 하는 과정을 간과하지 않길 바란다.

 

2005. 10. 7

★ 아래의 내용은 윤철호 교수님의 논문

<리쾨르 이후의 탈근대적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전적 접근> 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리쾨르 이후의 탈근대적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전적 접근> 윤철호

 

삶을 변화 시키는 성경 해석

<리쾨르 이후의 탈근대적 성서해석학에 대한 통전적 접근>. 윤철호

 

  처음에는 학문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서 매달리며 읽었는데, 두 번째는 학문적 정리보다 논문의 큰 의미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슈나이더스는 텍스트 앞의 세계와 선포된 예수에 초점을 두고, 계속 ‘변화’를 향하라고 하는 것 같다. 영성도 초월적 존재를 경험함으로 일어나는 변화이고 성경읽기도 자신의 변화가 수반되지 않으면 이해되지 않았다는 것이 나의 책읽기의 족적에도 나타난 것들을 발견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읽어보는 헨리 나우웬이나 리차드 포스터의 책을 보면서 나는 그 책의내용을 기억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10년이 훨씬 넘었는데 그 책에서 제시하는 것을 내가 일상에서 적용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 적이 여러번 있다. 이해되면 따라하게 되고 변하게 되는 것 같다. 인간의 내면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이렇게 체계적으로 잘 설명하고 근거를 대고, 이름을 붙여 명명하는 슈나이더스의 학문에 박수를 보낸다.

 

  여분이 없는 삶을 살고 있어서 그런가 의미론적 자율성을 통해 ‘의미의 잉여’가 가능하므로, 변화가 일어날 공간을 마련한다는 것이 마음에 많이 남는다. 나도 이해할 수 없는 일을 저지른 후여서 그런지 일을 결정하기 전까지의 말씀들을 모두 “내가 마음대로 해석”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든다. 이 의문이 들 때 마다 혼자 있지 않았다는 안정감도 드는데 이 부분이 ‘의미의 잉여’부분이었을까란 생각이 들었다.

 

  텍스트와 해석자 사이의 상호작용을 통한 해석(텍스트의 세계), 영향사(텍스트 앞의 세계) 부분 등 여러곳 에서, 문화 안에서의 해석이 계속 맴돌았다. 새로운 문화에 부닥칠 때 마다 이전의 기준들이 무너지고 새로운 기준들이 발생한다. 계속적인 이 변화에도 무조건 이전의 문화가 맞다고 고집하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세월이 다하여 사라지면서 계속적으로 "변화"는 점점 우리를 장악해 간다. 인간이 피조물이라고 알려주시는 선악과와 같은 것이 "발전과 변화"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영성지도 수퍼비전 시간의 리딩 자료에서 ‘아하’ 부분이 나왔다. 하나님을 제한하지 않고 생각, 감정, 느낌 모든 부분을 열어 관상적으로 바라볼 때 발견하게 되는 임재이다. 그 부분에서 변화가 일어나는데, 말씀가운데서도 ‘아하’가 발생 하는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경험하는 것 같다. 하나님을 알아갈수록 경험할수록 십자가가 더 많이 떠오르는 것 같다.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으로서 성경 뒤의 세계도, 성경의 세계도 앞의 세계도 잘 알아가면서 깊은 보화들을 캐내며 점점 더 예수님 닮아가다가 하늘나라에 가고 싶다.

 

[질문] (195) 의미의 잉여를 통해서 다의적인 정당한 해석이 가능한데 이것이 바람직하다는 표현을 논문에서는 했으나 교수님은 사적 해석의 문제를 잠시 말씀하긴 하셨다. 내가 고민하고 있는 부분이어서 그런가 정말 바람직 하기만 한 걸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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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된 신앙의 부흥과 정서의 관계 (2/2)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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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Ⅱ. 조나단 에드워즈

Ⅲ. 『신앙과 정서』에서 참된 부흥의 정서와 거짓 부흥의 정서

Ⅳ. 참된 부흥 이후의 특징

Ⅴ. 나가는 말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지평서원.

 

Ⅳ. 참된 부흥 이후의 특징  

1) 신앙의 증진

  에드워즈는 감각이나 경험이 지식을 만들어 간다는 기반으로 부흥의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들을 연구하므로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을 분별하는 지표를 제시했다. 개인의 부흥 경험이 신앙을 더 증진했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많은 학자들 또한 종교 경험이 개인의 감정, 정서, 지적 차원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이와 같이 개인의 참된 부흥의 경험은 신앙을 더 증진한다.

 

2) 부흥의 확산의 도구

  부흥의 참된 은혜의 정서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있었다. 한 지역에 부흥이 임하게 되면, 범죄율이 줄어들고, 술집이 문을 닫았고 길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신자들은 회심(conversion)했고 신자들은 각성(awakening)했다. 부흥 경험을 이야기 하는 것을 듣는 것만으로도 부흥이 확산되었다. 부흥의 결과 사람들은 영적인 일이 주된 일상이 되었고, 예배에 정성을 다했다. 가정 마다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졌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마다 신앙의 이야기가 주를 이루었다. 하나님께서는 부흥의 이야기를 통해 또 부흥을 확산하셨다.

 

3) 행위의 변화

  에드워즈는 감정과 의지를 포함하는 의미인 정서가 의지에 영향을 주며, 신앙은 의지가 표현되는 곳이므로 신앙과 정서가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결국 신앙에서 경험이란 감정과 무관 할 수 없다.

영적 감각과 지식은 성도를 일반인과 결정적으로 다르게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성도들이 따르기 때문이다. 에드워즈는 이분법적으로 성도와 일반인이 다르다고 하지는 않는다. 연속성과 불연속성이 존재하지만 신자와 일반인의 차이는 참된 신앙 정서와 거짓 정서와의 차이에서 설명했던 바와 같이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에 있다. 에드워즈 자신도 하나님의 주권 교리가 자신에게는 가장 불편했던 교리였지만 회심한 이후에는 가장 좋아하는 교리가 되었다는 고백을 했다고 한다.

 

 

Ⅶ. 나가는 말

  윌리엄 제임스는 신학 안에 신비주의의 “독특한 정서적 분위기를 위한 자리”를 만들게 된다면 철학과 신학이 기반이 되어 신비주의를 통해 신학이 더 긍정적으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것은, 1750년대 청교도이자, 정통 켈빈주의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종교와 심리학, 신학을 종합한 작품인 『신앙과 정서』로 이미 시작 한 것은 아닐까?

 

  에드워즈는 자신이 사역하는 지역에서 청교도 신앙이 힘을 못 쓰고 지역이 부패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힘을 다했다. 부흥이 진행되는 과정에서도 그는 말씀의 선포와 성도들을 가르치는데 힘썼다. 교수님이 강의 시간에 말씀 하셨던 것처럼 부흥이 꾸준히 유지되는 것에는 ‘말씀’이 기반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에드워즈를 통해서도 확인하게 되었다. 부흥의 경험으로 자신의 신앙이 견고해 질 뿐 아니라 나의 부흥 경험이 나의 신앙을 견고하게 하고, 또한 그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부흥을 경험하게 한다. 이러한 신앙의 경험들은 에드워즈가 참된 부흥의 지표로 지적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고, 하나님의 도덕 율에 저절로 따르게 됨을 이번 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기울어져 가는 신앙의 시대에 에드워즈가 홀로 자신의 자리에서 말씀을 끊임없이 선포했던 것처럼 나도 나에게 주어진 자리에서 말씀에 집중하며, 부흥을 사모하는 한사람이 되어야겠다.

 

  『Religious Affections』은 국내에 『신앙과 정서』와 『신앙 감정론』으로 두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두 책이 같은 책인지 모르고 진행했다. 두 권을 같이 두고 비교하면서 보았으면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영어 원본이 아닌, 번역본을 참고한 관계로 많은 소논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며, 그러는 중에 논문저자들이 같은 용어를 다른 한글로 사용하여 이해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리기도 했다. 논문을 써야 하는 시점에 와서야 너무 방대한 자료를 다루고 있었다는 때늦은 주제파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 조금 조나단 에드워즈를 알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어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다.

 

 

■ 참고문헌 ■

 

[일차자료]

Edwards, Jonathan.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서울: 지평서원. 2009.

Edwards, Jonathan.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노병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이차자료]

강웅산. "조나단 에드워즈의 부흥이야기와 부흥신학." 「신학지남」. 78.3 (2011). 145-174.

백금산. “영적 체험의 분별 기준을 제시한 명작.” Jonathan Edwards.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노병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송준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사상 연구.” 이론신학과 조직신학 석사학위 논문.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2011.

유재경. "종교 경험의 형성과정과 내용의 해석학적 고찰." 「신학과 목회」 41(2014). 129-152.

이상웅. “신앙감정론.” 「신학지남」. 81/4(2014), 292-294.

이진락. "조나단 에드워즈의 영적인 감각과 영적인 지식." 「역사신학 논총」. 20(2010). 148-180.

조한상.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 감정론』에 나타난 영적분별.” 「신학과 실천」. 44(2015). 255-278.

조현진. “조나단 에드워즈 신학의 계몽주의와 과학의 수용성 연구 : 관계적 존재론을 중심으로.” 「ACTS 신학저널(구 ACTS Theological Journal)」. 42(2019). 53-81.

참된 신앙의 부흥과 정서의 관계 (1/2)

-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를 중심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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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Ⅱ. 조나단 에드워즈

Ⅲ. 『신앙과 정서』에서 참된 부흥의 정서와 거짓 부흥의 정서

Ⅳ. 참된 부흥 이후의 특징

Ⅴ. 나가는 말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 역사에서 두 번의 부흥을 경험하고 부흥에 나타나는 경험들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증상과 거짓 증상들로 분별하는 표지를 제시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에서 참된 신앙의 부흥이 있을 때 나타나는 정서의 증상을 살펴본다. 먼저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는 정서를 정의하고, 그가 말하는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증상과 거짓 증상을 정리한 후에, 참된 부흥의 결과 나타나는 특징을 보도록 한다.

 

주제어 :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개인, 참된 부흥의 정서, 참된 부흥의 결과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지평서원.

Ⅰ. 들어가는 말

 

  기독교 역사에서 신앙의 경험(영적 경험)과 그에 대한 분별에 대해서 정리한 것은 가톨릭의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이 대표적이다. 개신교에서는 역사적으로 부흥의 시기를 생애에 두 번이나 경험했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부흥을 경험하는 개인과 공동체를 관찰하면서 참 신앙 체험과 거짓 신앙 체험을 가리는 기준에 대해서 논했다. 이냐시오와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교 연구한 논문들이 국내에 많이 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기독교의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었고, 특별한 신앙 체험들을 바탕으로 자신의 글들을 정리했다. 이냐시오는 지성과 체험을 바탕으로 진정한 신앙 경험의 분별과 그에 따라 진정한 신앙을 위해 어떻게 훈련 하는지 가이드를 하고 있고,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의 결과들을 보고 참과 거짓을 분별하면서 진정한 신앙의 체험 증상들을 분류했다.

 

  먼저는 조나단 에드워즈가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고, 그의 대표 저서인 『신앙과 정서』에서의 진정한 신앙 체험의 증상과 그 결과들의 특징을 정리한다.

 

Ⅱ.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1758)

 

  조나단 에드워즈의 뿌리는 청교도에 있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중시했으며, 개인의 영적, 윤리적 신앙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앙을 뒷받침 하는 사상은 켈빈주의였다. 에드워즈의 부친은 청교도인 디모데 에드워즈로서, 이스트윈저 회중교회의 목사로 61년간 시무했다. 어머니 에스더 솔로몬 스타다드와의 사이에서 11남매 중 5번째 이면서, 독자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타다드는 뉴잉글랜드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인 매사추세츠의 노샘프턴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에드워즈는 13살에 예일 대학에 입학하고, 20세가 되기 전에 일생의 지침이 될 70 가지 결심문을 만들어 매주 한 번씩 읽으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고민했다. 늑막염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 이후로 구원의 문제를 주된 과제로 삼았다. 청교도들은 일기를 썼는데 1723년 1월 2일 일기에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자기 포기를 맹세했다. 1726년 외할아버지가 시무하는 노샘프턴 교회에 외할아버지의 동역자로 부름 받았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 신앙이 점차 사거라 들고 있었지만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열심을 쏟았고, 1차 대 각성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한명으로 뽑힌다.

  에드워즈는 영미 권에서 지적이고 영적인 신학자로서, 청교도 기반의 켈빈주의 신학자 이면서, 회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력히 주장하는 설교자이며, 저술가, 철학자이다. 1734-1735년에 노샘프턴 교회를 중심으로 코네티컷 강변의 마을들을 따라 코네티컷 부흥이 있었다. 에드워즈는 코네티컷 부흥에 대한 이야기를 『놀라운 부흥과 회심이야기』(1737)로 출간했다. 1740-1742년의 제1차 대 각성 운동은 뉴잉글랜드 전 지역에 퍼졌다. 대 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지 휫필드가 1740년 10월 7일부터 4일간 노샘프턴에서 설교를 하는 동안 1734-1735년과 같은 부흥이 일어났다. 두 번의 부흥을 경험하는 동안 영적 체험들과 부흥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에드워즈는 참된 신앙의 체험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연구하여 정리했다. 에드워즈가 이렇게 정리하게 된 이유는 영적 부흥이 진행되는 그 시대에 영적인 증상들이 동반되며 나타나는 부흥을 반대하는 이성주의자들과 영적 증상들에 열광하는 열광주의자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즈는 이성주의자들에게는 부흥을 변증하고, 열광주의자들에게는 이성을 강조함으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부흥의 상황들을 연구하고 중재하였다.

  에드워즈는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연구하였다. 1720년 에드워즈는 뉴턴이나 존 로크의 영향을 받아 “원자에 대하여”(Of Atoms, 1722), “존재에 대하여”(Of Being, 1722), “마음”(The Mind, 1724) 등의 과학적 저술을 했다. 존 로크의 경험주의를 기반으로 지식들이 감각이나 경험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다.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예방접종을 적극적으로 하게 해서 1758년 1월 뉴저지 대학 학장으로 취임한지 한 달 만에 천연두 예방 접종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Ⅲ. 『신앙과 정서』에서 참된 부흥의 정서와 거짓 부흥의 정서

 

  조나단 에드워즈는『신앙과 정서』를 크게 3부분으로 구성했다. 1장은 “정서의 본질과 신앙에서의 정서의 중요성에 관하여“ 마음의 정서와 참된 신앙을 이루는 여러 가지 정서들을 논하고 기독교 교리를 기반으로 정리를 한다. 2장은 은혜에 속한 정서임을 확증하지 못하는 경우와 3장에서는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들의 특징들을 제시한다. 에드워즈가 본서를 작성하게 된 경위는 2번의 부흥의 시기를 경험하면서, 동시에 거짓 신앙도 함께 일어난 것을 보면서 말라기 3장 18절의 말씀으로 참 신앙과 모조품을 분간 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사도시대, 종교개혁 시대 뿐 아니라 미국에서 있었던 두 번의 부흥이 제압되는 과정들을 보면서 사탄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앙 부흥의 시기 마다 참과 거짓 신앙을 구분하라고 경고한다. 사탄은 사람들을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고 거룩하다는 확신을 갖게 함으로 타락 시킨다. 사탄은 ‘이 방법’으로 신앙을 모호하게 만들고 성도의 신앙 정서를 변질되게 만들기도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의도적 죄를 짓게도 한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대적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데, 『신앙과 정서』를 통해 성령의 역사의 ‘구원하는 본질’과 표증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정서의 본질과 신앙에서의 정서의 중요성에 관하여”인 1장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의 영혼에 두 가지 기능을 부여하셨습니다.”라고 했다. 알아서 깨닫고, 생각으로 사물의 옳고 그름을 가려낼 수 있는 ‘지성(understanding)’과 영혼이 좋아하든지 싫어하든지 마음을 기울어지게 하는 ‘성향(inclination)’이다. 사람의 성향에 따라 어떤 ‘행위(action)’를 하게 되는데 그것을 ‘의지(will)’라고 부른다. 위의 두 가지 기능들이 행사되는데 관련된 ‘마음(mind)’을 ‘심정(heart)’이라고 정의한다. 영혼의 성향과 의지의 방향과 강도는 다양한데 에드워즈는 강하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을 ‘정서(affections)’라고 부른다. 그러므로, 정서란 감정(성향)과 의지가 내포된 의미로 행위의 기반이 된다.

 

  1장에서 베드로전서 1:8절 말씀(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 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을 근거로 그리스도인들이 고난 가운데서도 누리는 기쁨과 영광을 설명하면서, “참된 신앙의 큰 부분이 거룩한 여러 정서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전제를 제시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먼저 내면적 감정과 의지에 나타나고 더불어 ‘경건의 능력’(딤후 3:5)이 나타난다. 경건의 능력이 나타나는 이유는 자기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고, 행실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의 부분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정서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정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의 정서, 죄를 싫어하고(미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인류에 대한 사랑의 정서, 거룩함을 쫓는 거룩한 소원과 기쁨, 슬픔의 정서,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의 정서와 긍휼의 정서 그리고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던 열심의 정서가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의 정서라고 주장하며 이 모든 정서를 포함하고 계신분이 그리스도라고 정리 한다. 부드럽고, 경건한 정서에 의해 마음은 쉽게 감동을 받게 되고, 마음이 굳은 사람은 경건한 정서가 결핍된 마음이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떠나게 된다. 성경의 예에서는 출애굽 당시의 바로 왕과, 에스겔과 이사야서에서의 이스라엘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정서는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거룩한 정서 없이는 참된 신앙도 존재하지 않음이 명백“하지만, 모든 정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므로 정서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참된 신앙적 정서임을 확증하는 표지가 될 수 없는 12가지 경우를 나열한다.

(1) 신앙적 정서가 고조 된 것이라고 해서 참된 신앙적 정서는 아니다.

(2) 정서가 몸에 미치는 영향력으로는 참된 신앙적 정서인지 알 수 없다.

(3)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4) 인위적이지 않다고 해서 진정한 신앙적 정서인지 알 수 없다.

(5) 정서와 성경 말씀이 함께 임하는 것이 참된 신앙 정서의 표지가 될 수 없다.

(6) 사랑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해서 참된 신앙적 정서인지를 알 수 없다.

(7) 여러 신앙적 정서들이 같이 나타나는 것이 진정한 신앙적 정서인지 알 수 없다.

(8) 회개 후에 느끼는 위로와 기쁨이 무조건 신앙적 정서라고 확정 할 수 없다.

(9) 예배에 열심을 보이고, 신앙의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참된 신앙적 정서라고 확정 할 수 없다.

(10) 찬양한다고 그것이 참된 신앙 정서의 표지는 아니다.

(11) 자신의 상태가 좋고, 경험이 영적이라는 것이 표증은 아니다.

(12) 사람들을 감동시키더라도 그 정서들이 참된 신앙적 정서인지 확언할 수 없다.

 

  여기까지의 12가지 표지들은 에드워즈 당시 부흥을 왜곡하여 모든 정서적 경험을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열광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책의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들의 확실한 표지를 설명한다. 에드워즈는 회심의 개념을 “마음의 감각“에 대한 변화라고 했는데 에드워즈 자신이 변화 가운데 신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성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확실한 표지 12가지는 개인 경건과 회심의 연구 결과이다. 12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참된 신앙의 정서는 마음에 신령하고 초자연적이며 거룩한 작용들로부터 발생한다.

(2) 이기심이나 자기 애착이 아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이 기반이 된다.

(3) 거룩한 정서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 인식하므로, 도덕적 탁월성이 동반된다.

(4)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마음이 동반되는 정서이다.

(5) 진리에 대한 합리적이면서도 영적인 확신이 함께 한다.

(6) 정서들이 복음에서 오는 겸손을 수반한다.

(7) 성품에 변화가 온다.

(8)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간다.

(9)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동반된다.

(10) 거룩한 정서들은 균형이 맞혀진다.

(11) 현재의 영적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더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

(12) 신앙이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상기의 12가지 중 1-4의 표지는 정서가 발생하게 되는 근원에 대한 설명이며, 5-12는 정서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에드워즈는 표지 12를 가장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의 실천”이 중요한 표지임을 알려준다. 참된 신앙적 정서는 기독교인의 본성과 행위가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변화 되어 실천적으로 “열매”를 맺는 삶임을 보여준다.

 

 

아래 논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과 그 적용 (2/2)

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와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기독교 영성 박사 과정의 경우

 

이강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실천신학/기독교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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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Ⅱ.기독교 영성학 : 샌드라 슈나이더스를 중심으로

1. 기독교 영성

    1)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2) “자기 초월을 통한”

    3)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2. 기독교 영성학의 연구 대상

3. 기독교 영성학의 특징

    1) 간학문성 (inter-discipilinarity)

    2) 자기 함축성 (self-implication)

4. 기독교 영성학의 방법론 : 해석학적 접근 (the Hermeneutical Approach)

 

Ⅲ.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 프로토콜 (Protocol)

1.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 필수 항목

2. 일반 종합시험

    1) 기독교 영성의 성경적 기초

    2) 기독교 영성사

3. 특별 종합시험

    1) 기독교 영성 영역

    2) 기독교 영성과 관련된 다른 학문 영역

    3) 기독교가 아닌 다른 영성 영역

4. 실습

 

Ⅳ. 나가는 말

 

Ⅲ.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 프로토콜 (Protocol) (2011)

. GTU : . 9개의 신학교가 연합하여 석, 박사 학위과정 만든 학교.

. 기독교 영성을 독립적인 한 분야로 한 최초의 신학 교육 기관 (다양한 교단과 전공 배경)

. 슈나이더스의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을 GTU박사과정 프로토콜에 반영, 박사 배출

. 박사과정 프로토콜 : 박사과정 이수 요건, 일반 종합시험, 특별 종합시험, 기독교 영성 실습

 

1.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 필수 항목

  . 기독교 영성 특징 설명 : 기독교인의 종교적 경험 연구

  . 종교적 경험 : 포용적 성격의 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아가는 것

  . 종교적 경험을 학문화 하므로 간학문적이며, 포용적이면서도 초점이 분명해야 한다.

 

. 박사과정 4가지 요소와 제한 시간

(1) 선행요건 : 신학 석사, 모국어 외의 연구 언어 2개 이수, 진단 인터뷰에서 신학 연구 준비상태, 성경 연구 상태, 언어 준비 상태, 기독교 영성 연구 관심 분야, 실습 방향 파악

(2) 종합시험 : 2개 일반 종합시험(4학기 이내), 3개 특별 종합시험(승인 후 1년 이내)

(3) 실습 : 개인이나 그룹위해 리더쉽 제공하도록 슈퍼바이저의 지도

(4) 논문 : 구두 시험으로 완결 (특별 종합 시험 종료 후 시작, 박사과정 시작 후 7년 내에 마무리)

. 특기사항 : 종합시험 마지기 전까지 자신의 연구주제와 관련 있는 조직신학(구성적, 문제적 학문) 두 과목 이수 필수

 

2. 일반 종합시험 : 기독교 영성의 성경적 기초, 기독교 영성사

1) 기독교 영성의 성경적 기초

  (1) 성경에 대해 박사과정 수준의 지식 (성경 내용, 비평적 방법론적 주석 도구 사용 능력, 현대 해석학적 이론 사용 할 수 있는 능력)

  (2) 진단 인터뷰에 성서학 교수 포함되어야 함

  (3) 신약 세미나 수업 통과 : 방법론과 해석을 사용한 18-25쪽의 페이퍼(B 이상 받아야 함)

  (4) 구약 세미나 수업 통과 : 방법론과 해석을 사용한 18-25쪽의 페이퍼(B+ 이상 받아야 함)

     . 신약, 구약 세미나 : 기독교 영성과 관련된 성경 본문과 주제들을 잘 알고 이해해야 한다.

     . 원래 성경 종합시험이었으나 슈나이더스 은퇴 후 수업으로 바뀌었음.

     . 슈나이더스(신약) :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신약에 접근하는 방법론과 요한복음에 적용

     . 바바라 그린(구약) :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요나서에 적용

     . 존 엔드레스(구약) : 기독교 영성의 관점에서 시편에 적용

     . 성서학(구성적 학문) : 기독교 영성학자가 기독교적 경험을 이해하는 데 반드시 참고

 

2) 기독교 영성사

. 목적 : 기독교 영성의 폭넓은 역사 숙지, 연구 주제와 관련 있는 시기에 더 깊은 지식(2개)

. 네개 주요 시기 : 

  ① 고대 기독교 영성 

  ② 중세 기독교 영성

  ③ 르네상스/종교개혁 기독교 영성 

  ④ 현대 기독교 영성

. 기독교 영성사 시험 준비할 내용 (네 시기 각각에 대하여 일차 자료들과 이차 자료들이 제시)

  ① 네 개의 시기 중 자신의 연구 주제에 맞는 두 개의 시기를 선택

   자신이 선택한 두 개의 시기에 포함된 일차 자료 읽기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두 개의 시기에 포함된 일차 자료들 중 두 권을 읽기

   네 개의 시기에 포함된 이차 자료들 중 필독서로 표기된 책들은 모두 읽기

   다른 이차 자료들의 경우 반드시 읽을 필요는 없지만, 자신이 선택한 외국어로 된 논문을 한 편 또는 책 한 권은 반드시 읽기

. 이틀에 걸쳐서 4시간씩 필기시험 (3시간 선택 시기 문제, 1시간 선택 하지 않은 시기 문제)

. 기독교 영성사의 폭넓은 이해와 선택 시기의 인물, 영성 고전에 전문지식 습득

. 아더 홀더 : ⌜성 베다: 아가서 주석 및 선집⌟ 기독교 영성 관점에서 기독교의 역사를 보는 방법론의 예

. 교회사(구성적 학문) : 자신의 연구 주제가 되는 기독교적 경험을 이해

 

3. 특별 종합시험

. 일반 종합시험 통과 후 특별 종합 시험 준비

. 목적 :

  (1) 특정 영역에서 강의, 연구 할 수 있는 능력 기르기

  (2) 논문 작성 준비 (연구와 작문 기술)

. 심사 교수 위원회 (3-4인)

  . 의장은 기독교 영성분야 교수, 조직신학자 한명을 권한다.

  . 기독교 영성 분야 교수 회의에서 통과 되어야 함

 

. 과목

1) 기독교 영성 영역 : 30-40쪽 분량의 연구 논문 쓰기

   (1) 기독교 영성 영역에 해당하는 연구 주제를 적절하게 파악하기

   (2) 특정 주제와 이슈와 관련된 영역에서 참고문헌을 꾸리는 능력

   (3) 방법론적인 통합성을 지니고, 자신의 연구 주제를 다루는데 성경, 영성사, 그리고 조직신학 및 적절한 학문들을 통합하는 능력

   (4) 해당 영역에서 기본적인 연구 도구에 대한 지식

   (5) 중요한 장치들(각주, 참고문헌 등)을 올바르게 사용하며, 효과적인 글쓰기를 통해, 연구를 수행하고 연구 결과를 조직하는 능력

 

2) 기독교 영성과 관련된 다른 학문 영역

  . 다른 학문 영역을 포함하는 이유 : 기독교인의 삶의 경험을 연구하는 것이므로 경험의 이해를 위해서 인간의 경험을 이해하는데 도움 주는 일반 학문을 참고하고 배워야 한다.

   (1) 다른 학문 영역 : 인문과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문학과 예술

   (2) 해당 영역에서 하위 학문 선택 (예) 발달심리, 문화인류, 사회, 우주, 의학, 생물학, 건축학

   (3) 시험방법 : 둘 중 하나 선택

        A. 선택한 하위 학문 안에서 두 과목 이수하고 박사과정 수준의 페이퍼 쓰기

        B. 선택한 하위 학문 안에서 특정한 시험 주제 잡고 필기시험 치르기

            . 시험주제 잡는 방법 : 집단→영역→하위학문→시험주제

 

3) 기독교가 아닌 다른 영성 영역

. GTU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의 독특성을 가장 많이 담은 항목

. 목적 : 기독교 전통 안에 있지 않은 영성을 넓고 깊게 이해하도록 하려함

    . 다른 영성이 어떻게 존재 하고, 기능하고,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이해하기 위함

    . 영성 영역에서 간문화적(cross–cultural) 대화에 잘 참여 가능

. 대화의 상대로의 프로토콜 3집단

    (1) 민속 영성(예, 아메리카 인디언, 아프리카 종족, 에스키모, 호주 토착민, 마오리 등)

    (2) 세계 종교 영성(예, 유대교, 이슬람, 힌두교, 도교, 불교, 등)

    (3) 현대 비종교 영성(예, 여성주의, 남성, 생태, 뉴에이지, 열두 단계, 등)

. 프로토콜이 제시하는 다른 영성 선택 지침은 다음과 같다.

    (1) 연구 대상이 되는 영성은 전문적인 가르침이나 미래에 연구가 가능한 영역으로 중요한 것

    (2) 책임 있는 연구를 위해 GTU나 버클리 대학에 자료가 있어야 한다.

    (3) 연구 대상은 그 종교 또는 운동의 신학이나 사회학 같은 것이 아니라 영성

    . 시험 방법 : 대상 영성 전통 안에서 두 과목의 수업 듣고 박사과정 페이퍼 or 필기시험

    . 시험의 기대 효과 :

    (1) 슈나이더스의 해석학적 방법론의 세 단계를 경험할 수 있게 함

        (현상의 서술–비평적 분석–구성적 해석의 과정)

    (2) 다른 영성을 공부해보면 기독교 영성의 장점과 단점이 더 잘 이해됨

 

4. 실습 (석사과정에 적합하다는 슈나이더스의 의견)

. 목적 : 학생들이 실제적인 리더십을 행사해 볼 기회 제공, 연구 대상이 되는 경험 이해

. 실습 종류와 슈퍼바이저는 교수회의에서 승인

. 특별 종합시험 이전에 완료되어야 함

. 슈퍼바이저와 학생이 학생의 경험에 대해 보고서 제출

 

Ⅳ. 나가는 말

. 슈나이더스의 이론에 동의한 GTU동료 교수들의 실험으로 기독교 영성학 토론을 확산 시킴

. 교회일치 운동에 적극적, 다른 종교와의 대화에 개방적인 분위기, 재정적 뒷받침에서 가능

. 현재 GTU차원에서 기독교 영성학 실험은 축소되는 듯 보임

. 미국종교학회(American Academy of Religion)내 기독교 영성학 그룹(Christian Spirituality Group, 기독교 영성학회의 모체)은 영향력이 커지고 있음

. 한국 교회와 신학에 주는 도전 (기독교 영성학을 독립적인 학문 분야로 여기기 시작)

  (1) 슈나이더스의 기독교 영성학이 정체성을 부여해 주는 역할 기대

  (2) 서로의 경험 존중, 진지하게 대화하려는 태도 강조 (한국 교회에 대화하는 분위기 형성에 기여)

  (3) 간학문성이 본질적 특성이므로, 기독교 신학, 일반과학의 여러 분야에도 관심

  ∴ 한국 교회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의 문제들을 해석하는데도 도움 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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