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예배학입문> 8장 '성만찬 성례전'

 

하나님이 주신 은혜인지, 교수님들이 커리큘럼을 잘 짠건지 8장 내용을 보면서 그동안 예배학 때 배운 것(읽은 것 포함)과 교회사 시간에 배운 것들이 머릿속에서 함께 움직여져서 감사하는 책읽기 시간이었다.

 

한편, 너무 재미있어서 자세히 읽으면서 출판사가 나에게 주지 않은 상처를 받게 되었다. 이렇게 좋은 내용의 책을 너무 성의 없이 출판했다는 생각에 한편으로는 아쉽고, 한편으로는 내가 아는 분이 번역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출판사에 오타와 중복번역 부분을 알려주고 싶을 정도였다.

 

제임스 화이트, 정장복 외 옮김, <기독교예배학 입문>

 

성만찬에 대해서 크게 수행방법, 성만찬의 경험, 목회를 위한 조언으로 크게 세부분으로 설명하였다. 세 가지 주제 중에서 수행 방법에 대한 내용이 많은 부분을 차지했다. 그만큼 많은 변화가 있었던 오래된 이야기 이지만, 요즘 배우고 있는 초대교회 때 이야기부터 가장 최근 1989년의 정보까지 정리가 되고 있어서 한눈에 성만찬 방법에 대한 역사를 훑은 것 같다.

 

성만찬의 이해 부분에서는 1975년 브릴리오트가 제시한 감사, 교제, 기념(의미), 희생제사, 신비(임재)의 5가지와 성만찬의 두 가지 의미(성령의 사역, 종말론적 사건)가 추가 되어 정리되었다. ‘성령의 사역으로의 성만찬‘의 의미는 알고 있었는데 ’종말론적 사건으로의 성만찬‘이라는 말은 ’왜 아무도 나에게 이 의미는 안 알려 준거지?‘(알려줬는데 모르고 있었던 걸까?) 하며 읽기를 멈추고 조용히 머무르게 했다.

 

11세기 이후에는 초대교회처럼 성만찬의 경험 보다 지적으로만 접근했다는 것이 아쉬웠다. 1982년 에큐메니칼 문서를 정리한 자료에서도 신비(임재) 부분을 다른 4가지와는 다른 논조로 설명한 것 같아 보인다. 목회적인 부분에서는 생각지 못했던 건축의 배경, 자리 배치 등에 대해서 논한 것을 보면서 이 책이 정말 ’예배’의 모든 부분을 다루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에는 나무 하나하나에 집중해서 페이지 마다 질문들이 있었지만, 글을 쓰려고 정리하는 상황에서는 큰 숲을 보는 것 같다. 학문의 깊이가 깊지 않아서 단어 정의에 혼돈이 많았다. 책 한권으로 성만찬과 관계된 ‘용어’들을 다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 것이 욕심이었던 것 같다. 뒷부분으로 가서는 역자가 단어에 대해서 설명을 붙여주어서 이해에 도움이 되었지만 앞부분에서는 번역이 꼬여있는데다가 모르는 용어를 여러 단어로 표현 하는 바람에 이해하는데 힘들었고, 일부분은 이해를 포기하고 넘어가기도 했다.

 

이쪽 분야의 학문의 짧음과, 깊이 공부하지 못하고 지나가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을 다시 한 번 경험 했다. 반면에 교회사 시간에 만났던 교부들, 회의들, 시대 배경이 나올 때는 많이 반가웠고 교회사에서 의문이 있었던 부분들의 의문이 해결되기도 했다.

 

혹시 기회가 된다면 성만찬(주의 만찬)과 애찬(love feast, agape)의 개념과 배경을 좀 자세히 알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책 268-269)

<기독교예배학입문> 7장 ‘입교의식‘

7장에서는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여지고 표현되는 형식적인 부분의 변화를 시대별로 설명하고, 형식안에 포함되어 있는 신학의 의미들을 소개한다. 마지막으로 앞의 두 설명에 내포되어 있는 목회적 가능성들에 대해 논했다.

 

제임스 화이트, 정장복 외 옮김, <기독교예배학 입문>

 

 

교회사 수업을 통해서 교인들이 핍박을 받던 초대 교회 때의 세례 절차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세례를 받기 까지 3년 동안이나 훈련을 받았다는 것도, 성찬을 길게 하는 것도, 하나님의 마음과 상관없이 사람들이 형식을 과하게 추가한 건 아닐까 생각했다. 현대에도 하나님의 의도와 상관없이 우리들이 많은 형식을 만들어서 본질을 흐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초대교회 때는 오랜 시간 훈련을 받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순교를 각오하는 경우가 많았고, 성찬 시간에 성령님이 강하게 임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하나님보다 앞서, 정죄하는 자리에 있었다는 생각을 했다.

 

책에서 첫 번째에 거론된 형식의 변화 부분에서 예수님의 세례를 언급했다.

 

최근 10년동안 나는 내가 만든 틀(형식)들을 깨는 훈련을 하고 있다. 그래서 어떤 ‘형식’이 거론되면 우선 부정적인 느낌이 생기는 부작용을 겪고 있는데 세례 또한 사람이 만든 형식이라는 생각으로 읽던 중에, 예수님께서 사람들의 방식에 순종하셨다는 부분을 읽었다. (책에서는 ‘복종’이라고 표현했다.) 세례는 이미 세례 요한 때부터 있어왔던 형식이었고, 예수님께서 그 형식에 순종하심으로 권위를 주신 것 이었다.

 

입교의 과정에는 교육, 신앙의 고백, 세례, 첫 성찬이 있었고 성호 긋기, 안수, 기름부음 등이 추가되기도 했다. 현대에는 특정 교파나 상황에서만 거론되는 ‘축사(축귀)’라는 단어가 초대교회의 입교의 과정에서 나와서 놀랐다. 그 당시 성행하던 이교도와 관계된 것인지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으로 안내해 가는 과정에서 필요했던 것인지 궁금했다.

 

입교과정에 내포되어 있는 신학으로 신약 성경에서 말하는 다섯가지 은유인 예수님과, 교회공동체와의 연합, 거듭남, 회개(죄의 용서), 성령 충만에 대해서 논한다. 유아세례와 견진에 대한 이해들과 세례의 의미를 어디에 많이 두는가에 대한 논의를 다루었다. 신학자들이 여러가지 시각으로 논쟁하는 내용덕에 입교의 형식과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게 되었다.

 

본인은 장로교 소속이다. 어릴 때 부터 한 교회에 꾸준히 출석하는 관계로 내가 다니는 교회에서 사용하는 용어가 표준인 것으로 알았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성인이 되어 세례를 확증하는 것을 ‘입교’로 알고 있었는데 이번 과제를 하면서 견진(confirmation)이라는 단어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배학 수업을 통해서 평소 생각하지 못 했던 목회와 예배에 대한 욕심들이 생긴다.  ‘세례 갱신’이라는 단어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는데, 세례 갱신 예배나 재확증 예배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생각나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될 것 같다. 이번주는 부활주일로 본교회에서는 성찬식을 한다. 지난주에 세례를 받으신 분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는 이번주가 첫 성찬식인 것이다. 초대교회에서는 입교식의 마지막 순서가 첫 성찬식이 되는데 그때의 감격이 우리 교회에서 첫 성찬식을 하시는 분들께도 함께 했으면 좋겠다. 성찬에 참여하는 우리 모두가 부르신 곳에서 순교를 감당하는 진짜 신자들이 되기를 바래본다.

<기독교예배학입문> 2장 '시간의 언어'

 

시간을 쓴다는 것은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다. 그래서 교회력이 예배의 기초가 된다. 기독교가 인정된 이후에 성경에 기록된 시간과 장소에 맞는 예배가 필요해 지면서, 4세기경에 교회력이 정리가 되었다.

 

제임스 화이트, 정장복 외 옮김, <기독교예배학 입문>

 

 

초대교회는 ‘시간을 조직화‘(p60)하여 부활절을 해마다의 사건이 되게 했다. 초대 교회 이후에도 16세기 개혁자들이 변화를 시도 하였고 지역별로도 많은 변화들이 시도 되었다. 로마 카톨릭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들과 순교자들의 성일까지도 절기로 지켰었는데 이런 축일들은 하나님 말씀과 아무 관계가 없다는(웨스트민트서 디렉토리, 스콜들랜드 교회) 이유로 폐지 하기도 하였다. 이후로 개신교에서도 다양하게 변화가 있었으나 개신교와 천주교 사이에 대축일(Solemnities)에 대해서만 큰 틀에 합의하고 나머지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교회력의 중점은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일과 성령님을 통해 계속 일하고 계심을 알려주기 위함이다. 그래서 교회력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 알려주는 ‘은총의 교회력’(p78) 이다.

 

초대교회의 교회력은 크게 일주일, 일년, 하루를 단위로 했는데 일주일은 매주일의 첫날을 주의 날(부활의 날)로 정하여 예배하는 날로 하고 이날 신자들이 모여 예배하고 만찬을 나누었다. 하루 3번 주기도문을 하고 하루를 밤부터 시작하였고, 일년 중 부활절과 주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4세기의 교회력에서는 성육신의 목적전체를 표현하는 주현절(Epiphany)에 대강절(Advent)을 포함해서 크리스마스는 주현절 행사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사순절(Lent)은 참회의 수요일에 시작해서 사순절 첫째 주일부터 다섯째 주일까지 이며, 부활절 전야에서 시작되어 오순절에 끝나는 부활절(Easter)이 포함된다. 오순절은 부활절 후 일곱째 주일이다.

 

교회력이 예배를 위한 기초가 되어 예배의 고유 순서에 영향을 미치게 되고, 성구집(The Lectionary)은 설교의 기초로 사용된다. 제2차 바티칸 공회 이후 초교파적인 성구집이 생겨났고 1983년에 A,B,C 3년을 기준으로 하는 표준 성경일과(Common Lectionary)가 출판 되었다. 이러한 성경일과를 통해서 몇 달 혹은 한해 전에 예배를 미리 준비 할 수 있다.(p90)

 

 

나는 너무도 틀에 박힌 사람이었다. 본문에서 나온 이야기처럼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받아들일 때 자유롭게‘(p78)는 은혜를 선교지에 가서야 경험하고 이제 조금씩 그 틀을 벗어던지고 사랑 안으로 점점 흡수되고 있는 과정에 있다. 이러한 과정에 있다 보니 이제는 또 너무 ’틀‘을 불편해 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면서 교회력이 굳이 왜 필요할까 라는 마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초대 교회의 여러 실수들, 현대 교회의 부패들을 보면서 어쩌면 하나님이 사랑으로 우리에게 말씀해 주신 것들을 우리는 자꾸 인간의 규칙으로 만들어서 하나님의 사랑보다 더 중요시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인간의 한계와 욕심으로 인해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할 수 없다면 믿음의 선조들이 고민했던 것처럼 이렇게 절기를 만들어서 매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그 의미를 기억하는 것을 통해 회복되고 부흥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전도한 친구들은 시간이 많이 흘러야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알게 되던데 초대교회의 새 신자들에게는 어떻게 복음을 전하면 저렇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을까란 고민을 했었다. 이번 교회력 내용을 보면서 부활절 절기 기간 동안 세례를 받을 사람들에게 강도 높은(?) 교육이 병행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현대는 이전처럼 사람들이 영적인 것이나 정서적인 것에 시간과 물질을 쓰기를 꺼린다. 과연 이 시대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시대를 불쌍히 여기시는 아버지께 은혜를 구한다.

<기독교예배학입문> 1장 ‘기독교 예배의 의미는 무엇인가‘

 

문화를 쉽게 한마디로 표현하기는 힘들지만 사전적 의미로 “한 사회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한국민족문화 대백과)“ 이라는 것도 적절한 듯하다.

 

예배 또한 개인이나 집단의 정신적 산물로서 각 시대와 환경에 맞는 변화들이 있다. 이와 같은 ”상황화”는 필요하지만 본질의 확립을 위해서 ‘기독교 예배’가 무엇인가(p20)를 분석하기 위해 이 책에서는 3가지로 접근을 했다.

 

제임스 화이트, 정장복 외 옮김, <기독교예배학 입문>

 

첫째는 현상학적 접근으로 예배에서 하는 행동들을 분석함으로써 예배의 방법과 구조를 파악하기 위해 시간, 공간 배열과 기본형식과 예전 형식들을 살펴본다.

둘째는 ‘예배의 본질’(p21)에 대한 분석으로 대부분의 학자들이 공통으로 거론하는 것은 하나님과 사람사이 어떤 행위들이다. 예배는 사람이나 하나님 혼자만이 아닌 양방의 반응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예배의 언어들을 살펴보는 것이다. 예배를 표현하거나 사용된 단어들 안에 ‘서비스’(p32, 33)의 개념이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3가지 접근에 대한 분석과 더불어 예배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다양한 표현들(p39)을 분석하는데 여기에서 시대와 상황에 따른 문화의 영향이 많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문화에 기반한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예배 안에는 기본적인 형태의 일관성(p47)이 존재한다. 그럼으로 그 시대에 맞는 예배집(Service Book)(p48)들이 존재하게 되는 이유인 것 같고 이것들을 통해 공동체가 각 개인(?, 소집단?)들에게 시대에 맞는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줄 수 있는 것 같다.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다양하게 연구했지만 역시 예배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오신 하나님과 사람사이의 교류인 것 같다. 예배에서 두 요소 중에 하나라도 빠진다면, 예를 들어, 보이는 사람 말고 하나님이 빠진다면 그것이 쇼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을까 싶다. 기독교 예전에 대해서도 이전까지는 사람이 만든 틀로 인해서 도리어 하나님의 뜻이 왜곡된 역사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래서,  ‘사람이 정한 형식이 뭐가 그리 중요할까!’ 했지만 첫 시간 교수님의 설명이 머리에 깔려 있기도 해서 그런지 예전집들이 필요하기도 하다는 긍정적 사고가 추가되었다.

 

이 책을 통해, 지금까지 내가 틀을 만들고 하나님을 제한하고 잘못 생각한 것들이 있다면 더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고 감사 가득한 교통하는 예배로 나갈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횃불에 와서 4번째 수업이었는데 토요일 하루 종일 앉아있고도 너무 행복한 시간이라는 마음이 들었던, 신학이 재미있다는 마음이 들었던 시간이었다. 횃불에서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살아있는 예배로 드려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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