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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영성과 목회> 4장. 영성 지도와 최근의 상황

by 말씀묵상과 영성지도 2024. 1. 6.

<영성과 목회> 4장. 영성 지도와 최근의 상황

 

. 영성 지도 목회의 재발견 : 영성과 사회참여, 거룩과 정의의 통합이 당연히 여겨지는 정황

. 영성 지도 :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행해지는 매우 개인적인 사역

 

케네스 리치 저. <영성과 목회>. 최승기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 영성 지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의 검토

   (1) 권위주의적이거나 전제적이지 않음 : 지도의 비지도적 성격 강조(지도가 아닌 모범의 자리)

   (2) 지난친 의존의 형태가 아님 (성숙한 관계) : 영적 부권의 강조는 전통의 주류가 아님

   (3) 가톨릭 전통만의 독특한 사역이 아님 (뷰서, 리차드 벡스터 등은 이미 알려짐)

      . 가톨릭 전통에서 강력하게 발전, 고해성사와 연결되기도 한다. (혼동 되기도 함 : 7장)

 

. 영성 지도란?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우정의 관계

- 개인적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분별하게 되고 은혜의 삶 안에서 성장

    (1) 자유롭게 선택 : 자유롭게 영혼의 친구를 구하고 선택한다.

    (2) 자유롭게 관계 종료 : 성장으로 인한 상황의 변경 ∴영성지도는 수 차례의 일시적인 관계

    (3) 전제적이지 않은 관계 : 성령 안에서의 상호 나눔/지도 ∴특별하고 강력한 우정의 형태임

    (4) 삶의 전 영역과 관계 : 영적 영역에만 관계 된 것이 아님

    (5) 도움, 북돋움, 가르침을 포함하는 관계 : 각 요소가 모두 중요

    (6) 거룩과 내적 순결함을 요구하는 관계 : 기교 아님 (신학은 기도의 삶과 거룩의 요청)

 

. 성령 : 궁극적 영혼의 인도자, 그리스도 만이 영적 스승이다.

. 목회 : 기능적 상담이 아닌 성화와 관련

. 영성 지도의 두 가지 중요성

    (1) 성화된 목회 세움

    (2) 성화되고 성별된 사람들(예언자적인 남은자들) 형성

 

. 영성 지도의 목회가 중요한 이유

    (1) 거짓 영성 : 분별의 사역(이를 위해 비판적, 교리적 영역 포함), 거짓보다 무신론이 낫다.

        (ⅰ) 마법 그룹 포함한 사교들의 소생 : 개인적 훈련, 정치적 응답은 배제

        (ⅱ) 기독교 근본주의의 부흥 : 편협한 비전, 단순 무지한 운동

        (ⅲ) 기독교 반물질주의의 부흥 : 세상의 변혁을 반대하는 것이 성육신과 성례를 압도함

        (ⅳ) 자아계발의 부흥 : 개인의 성장에 모든 강조점, 하나님 중심 아닌 자아 중심 영성

    (2) 영적 부흥 : 지도를 갈구/영적 부흥으로 체험을 통합시키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인도와 지도를 필요로 하는 크리스천 급증, 인도 없는 은사의 부흥은 영지주의로 변질

    (3) 기독교 사회 행동에 영적 깊이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 : 순수 기독인들이 주변으로 밀려남

        . ‘예언자적 증언’ : 국가적, 국제적 사건의 동향에 교회의 응답

        . 기독교 문명화 : 신종교적 파시즘의 형태

        . 예) 1970년대 영국 정부의 철학에 의해 조작 된 사고 → 크리스천 저항 운동을 위해 영적 양식이 공급(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행동은 묵상과 강력한 내적 기도에 의해 인도, 공급)

 

. 영성 지도자의 필요 자질 : 획득되는 것이 아닌 제자도의 삶과 하나님과 연합된 삶에서 유출

∴ 영성 지도는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하는 삶의 부산물

    (1)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장 깊은 경험을 공유 : 특권 그러나 강력한 영적 준비 요구 됨

    (2) 성령 충만하여 성령께 양보하는 사람

    (3) 학식 뿐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사람

    (4) 인간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영적인 지성과 민감함, 분별력을 지닌 사람

 

    . 영성 지도자는 타인을 인도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지도자가 인도함을 받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과거의 좋지 않은 습관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단순히 말로만 가르치고 있다면,

그들이 계속해서 가르치도록 하라.

왜냐하면 아마도

자신들의 말로 인해

수치를 느낌으로써,

그들도 결국에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John climac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