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신앙과 정서> 1, 2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1, 2부

지난 학기 소논문을 신앙 정서와 상담심리학과 관련하여 작성하던 관계로 조나단 에드워즈의 책과 논문을 참고하게 되었다. 조나단 에드워즈 시대에 어쩌면 그는 가장 차가운 기독교 지성의 선봉이 었는데, 그가 부흥의 한가운데서 가장 뜨거운 가슴을 연구하고 표현한 것 같다. 물론 그의 표현 도구들은 여전히 차가워 보이는데(기술 형식이나 구조 등) 내용은 정말 뜨겁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지평서원.

에드워즈는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연구하였다. 1720년 에드워즈는 뉴턴이나 존 로크의 영향을 받아 “원자에 대하여”(Of Atoms, 1722), “존재에 대하여”(Of Being, 1722), “마음”(The Mind, 1724) 등의 과학적 저술을 했고, 존 로크의 경험주의의 영향을 받아, 지식들은 감각이나 경험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다.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인해, 예방접종을 적극적으로 함으로, 1758년 1월 뉴저지 대학 학장으로 취임한지 한달 만에 천연두 예방 접종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지금 시대(2021년 현재, 코로나 당시)에 너무 나도 피부로 와 닿는 이야기이다.

 

지난 학기 논문을 준비 할 때도 ‘정서’의 정의에서 많은 시간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것과 한국에서 번역된 두 개의 책도 속 시원한 개념을 설명 할 수 없었다. 이후의 내용들을 보고 한국어로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1장만 3번째 읽는 것 같다. 왜 읽어도 읽어도 새롭게 줄칠 부분들이 계속 생기는 건지 모르겠다.

 

1장 “정서의 본질과 신앙에서의 정서의 중요성에 관하여”에서는 “마음의 정서(affections of mind)”란 무엇인지 정의하고, 참된 신앙의 큰 부분을 이루는 여러 가지 정서들과 교리에서 추정해 낸 결론으로 마무리한다.

 

“참된 신앙의 큰 부분을 이루는 여러 가지 정서“를 설명하는데 10가지로 분류를 하고 있고 특히나 그중 4번째인 “참된 신앙의 한 부분으로 언급되는 정서“는 9가지의 정서들을 분류하고 설명한다. 바로 이런 부분이 서두에서 언급한 ”차가운“이라고 표현한 이유이다. 정서들을 분류하고 갈갈이 찢어서 자리매김을 했다. 왠만한 심리학자들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일까? 두번의 부흥을 겪으며 얼마나 많은 사색과 기도와 연구를 했을지 상상이 간다.

 

과학적 지식을 기저에 깔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성적인 부분을 측량할 단어들이 없어서 많은 부분 “바른 정서”나 “참된 신앙”등의 용어를 사용하므로, 이에 대해 명확히 정의를 안 하고 넘어가는 부분들은 읽을 때 마다 아쉬운 부분이다. 또한 요즘 몸의 반응을 통해서 나를 알아가고 있는 중이라서 그런지 저자가 몸을 무시하는 부분들은 살짝 불편 했다.

 

조나단 에드워즈.&nbsp; <신앙과 정서>.

 

[질문1] p22에서부터 나오는 사탄이 사용하는 ‘이 방법’ 이라는 것은 참 신앙과 모조 신앙이 구별되지 않은 채 혼재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

 

[질문2] 몸과 마음에 관한 질문. p38) 1번째 줄, ‘사람의 몸은.. 사랑, 증오, 기쁨, 슬픔, 두려움, 소망의 주체가 될 수 없다‘ 라고 했으나 단정 할 수 없는 이유는 p73 아래서 두 번째 줄 “체질이 마음의 현재 기분을 결정하는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고 했다. p64 아래서 두 번 째 단락 처음에 “몸의 정서”와“영혼의 정서”를 나누었는데, 몸은 감정의 주체가 될 수 없다면, “몸의 정서”는 무엇일까...

 

★ 아래의 내용은  <영적분별의 길> 4, 5장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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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분별의 길> 4장 기억의 안내 & 5장 직관적 지식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분별의 길>. 이강학 역. 좋은씨앗

4장 “기억의 안내”를 읽으며, 지난 주 분별 시간에 수업과 상관없이 2년 전의 11월이 떠오르며, 지난주 갑작스런 진로 변경이 2년 전과 똑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을 깨닳았다.

 

‘톰’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비슷할 것 같다. 2년 전에도 영성지도와 영적 분별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고, 그 당시 주변에서 교회사역을 이야기 했을 때 저항감이 있었으나 영성지도 시간을 통해 러브콜 있으면 가겠다고 했는데 정말 먼저 연락 온 곳이 있어서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래서 ‘제도적 교회는 내 부르심이 아니다’를 확신했는데 2021년 11월 또 다른 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내게는 2년 전의 기억으로 저항이 있었고 그래서 지원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딱 2일간의 일정으로 러브콜, 영성지도, 원서접수, 면접이 이어지고 지원한 부서가 아닌 새로운 부서로 합격했다. 그리고 화요일 분별 수업시간이 끝나면서 내안에 2019년과 2021년의 11월이 오버랩 되었다.

 

내안에 저항이 커서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기 위해 2년의 시간을 기다리시고, 21년에는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나의 마음을 만지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 교회가 "현재 나의 부르심의 자리"임을 인지하고 동의하게 되었다. 2년 전에도 이 책을 읽었음에도 기억의 실습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지만, 지난주 성찬식에서도 지난주 수업에서도 저절로 기억을 통한 은혜를 누린 것 같다.

 

직관적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훈련을 많이 하고(스스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표였을 것 같다^^) 삽질도 많이 해서 현재는 S수치가 많이 줄어든 S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있는 S의 성향이 자주 판단을 그르치기도 하고 관계 가운데 실수를 자주 유발하기도 한다. 때로는 직관이 있을 때 조차도 그것을 의심하고 분석하는 나를 본다. 다행히 책(p154)에서 솔크의 경우에서도 과학적 연구나 철학, 신학적 성찰이 수반된 이성의 추론 작용으로 보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두 번째 문장에서도 ‘직관에만 의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과연 직관만으로 의사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 어떻게 따를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질문] S의 사람이라서 그런건지.. 이분법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직관의 옳고 그름의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책에서도 다른 정보들을(p154) 고려해서 의사 결정하라고 하지만 직관만으로 빠르게 의사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 어떻게 따를 수 있을지... 

 
* 위의 글을 쓴지 2년 후 : 지금에 와서는 위의 질문이 그렇게 크게 동의되지 않게 되었다.

 

★ 아래의 내용은  <영적분별의 길> 2장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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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분별의 길> 2장 영적 분별의 기초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분별의 길>. 이강학 역. 좋은씨앗

목요일 “영성지도“ 수업시간에 피지도자로 실습을 했다. 지도자는 상담전공 선생님이었는데 정확히 ”양가 감정“의 존재를 알아내게 도와주셨다. 사실 영성지도를 끝내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이 많았는데 영적 분별 과제를 읽으며 여러모로 정리하고 돌아 볼 수 있어서 좋았다.

 

나의 높은 불안지수를 더 수시로 확인하고 관찰 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책에서의 실습을 통해서 진짜 나의 ‘갈망’을 더 관찰하고 들여다 볼 수 있는 시간 이었다. 분별을 위해 공동 창조자로서의 역할, 불편심과 부르심의 파악, 더 큰 갈망도 중요하지만 이번 주 나의 주제는 나 자신을 이해하는 경험이 가장 부각되었던 것 같다.

 

마음의 갈망 찾기 실습에서 ‘지금 이 순간,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두 번의 반복된 질문에서 비슷한 갈망이 나왔다. 어쩌면 그래서 내 안에 양가 감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한 길로 갈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갈망 아래에 더 근본적인 갈망’의 탐색의 과정이 있었기에 앞의 두 질문에서 비슷한 대답을 한 것 같다. 목요일 영성지도 수업니 끝나고 나서 78-79페이지의 내용이 많이 위로가 되었고 나를 볼 수 있는 명확한 문장들이 많이 보였다. 

 

“갈망 들 중 가치가 있는 것”,

“서로 충돌하는 온갖 갈망의 덩어리”라는 표현이

나의 양가 감정 때문에

스스로 정죄하려는 자세에서

인간을 이해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세로

바뀔 수 있었다.

(개인사 기억하기 실습에서 “하나님이 보시는 것처럼 자신을 보기”)

 

최근 4-5년의 여정은 진짜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씨름하고 탐색하는 시간이었던 것 같다. 부르심을 입은 공동 창조자이지만, 양가 감정이 존재하는 죄인이다. 어쩌면 이것이 불안의 요인일수 있으면서도, ‘완벽’하다는 착각을 하지 않게 하는 교만하지 않도록 하는 안전장치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피조물이기에 항상 위태 하지만 안정을 구하지 않고 그 위태로움 속에서 그 어떤 것에도 편향되지 않으려고(불편) 아버지께 시선을 집중하며, 부르심을 따라 공동창조자로서의 자유함을 누리고 싶다.

 

[생각 해 볼 부분]

“우리의 수단과(모든 다른 피조물들) 목적(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는 것)” 이라는 부분에서 좀 불편해서 오래 머물렀다. ‘다른 피조물들’이라 함은 사람을 포함한 것 일 텐데.. 사람조차도 우리가 ‘수단’으로 대해야 할 것인지..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도구라서 그런 의미라면 가능하겠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기 위해 다른 사람을 수단으로 사용한다는 것 으로 해석한다면 약간 불편한 부분이 남는다.. 표현의 문제라고 해야 할까....

 

★ 아래의 내용은  <영의 식별> 후반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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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식별> (갤러허) 6장-14장

티모시 갤러허. <영의 식별>. 김두진 역.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4장부터는 영적 실망의 상태에 대한 가이드 이다.

6장에서는 실망의 시기에 기도, 묵상, 더 깊은 성찰, 적당한 고행의 4가지 수단을 더 매진하라고 말한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는 할 수 있다’고 하고,

 

영적 실망에 빠진 나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가 되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에너지가 있으면 좋겠다.

 

머리로는 알지만 쉬운가...싶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영적 실망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목이 자주 막히는 문제에 걸쳐 있다. 이 상황에서 기독교 영성 공부를 하면서,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 더 깊이 기도하고 다양하게 기도하는 과정을 훈련 받는 듯 하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고, 영적 실망을 통해 회개, 배움, 겸손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책에서는 영적 실망이지만 현재 나의 상황에서는 건강의 문제로 자꾸 변형해서 읽힌다.^^)

 

영적 실망의 상태를 통해 ‘온 종일 주님을 찾는 일상(p259)’을 주님이 만들어 가신다고 했는데, 이번학기 중에 나는 통증을 통해서 매순간 주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이전에 아무리 혼자 훈련하려고 해도 안 되던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난 학기 『영신 수련』을 읽으면서는 다 맞는 말 인거 같은데 문맥간의 연결 없이 써 있어서 맥락이 이해가 안가거나, 너무 간단해서 ‘이게 쉽나’했었는데 이냐시오의 자서전을 참고 한 것이나 갤러허의 해석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대로 살기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읽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점점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이루지 못했다는 겸손한 자세로 점차 이루어 가는 생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큰 바위 얼굴"(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주인공 처럼...

 

[질문] 『영신 수련』이 오래 읽히고 수도사들에게 정기적으로 훈련된 것으로도 아는데(피정? 등으로?) 그렇다면 개개인의 변화 등에 대해서 기록하거나 『영신 수련』의 반복학습에 대한 장기적 관찰 결과 등에 대한 자료들도 있지 않을까?

 

티모시 갤러허. <영의 식별>.

★ 아래의 내용은  <영의 식별> 전반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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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의 식별>(갤러허) 서론-5장

티모시 갤러허. <영의 식별>. 김두진 역.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내적 감지의 3가지 유형’을 말하는 17번의 심리적, 도덕적, 영적 감지의 갤러허의 설명에서 심리적 설명에서 ‘의식성찰’이 떠올랐다. 도덕적 감지가 마음에 가장 어려웠다. 행동, 말, 관계 “모든 것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얼마나 충실히 따르는가“(p68)..라는 문장에서 매일 깨어 있고 싶으나, 그렇지 못한 나를 또 돌아보게 된다. 매순간 그렇게 예수님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신 방법대로 살고 싶어서 어쩌면 나또한 이냐시오의 민감한 영적 감수성이 나의 매일의 목표이다. 신학을 시작하면서부터 목표에 집중하느라 사실 하루에 엄청나게 많은 일들을 해내던 내가 roaming의 나날을 보내느라 실적이 별로 없고 제한시간에 턱에 닿아 일을 끝낸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채우시는 매일을 경험한다.

그래서 나를 조금씩 더 알아간다.

내가 생각한 안전지대를 벗어나

예수님이 선택한 안전지대 안으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려고 훈련 중이다.

 

일상 중에도 관상적 태도를 유지하고 싶으나 수시로 본성이 먼저 나타난다.

 

『영신수련』을 읽을 때 너무 단문이어서 이해하는데 마음이 흡족하지 못했었고 여러모로 의문도 가고 했던 부분들이 많았다. 『영의 식별』을 구입하면서 『로욜라의 성 이냐시오 자서전』을 구매 할까 하다가 말았는데 『영의 식별』을 읽으면서 자서전을 근거로 한 설명들 때문에 『영신수련』이 더 이해되고 동의 되었다.

 

[생각해 볼 내용]

주님을 사랑하고 제자로 살아가고 많은 능력이 있어 많은 사람들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지만, 도덕적 감지(p68-69)가 너무 높을 때도 있는 반면, 수시로 너무 선을 넘어 바닥으로 떨어진 경우들도 보았다. 이러한 경우는 인지의 문제일까? 어릴 때 상처의 문제일까?

 

[생각해 볼 내용]

이냐시오는 계속 세속과 거룩, 선과 악을 구분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거 같다. 나 또한 그런 고민의 과정 중에서 정리된 것이 있어서 ‘이분법’은 인간이 편하자고 만든 기준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냐시오는 그 시대의 철학을 기반으로 생각해서 이분법으로 생각한 걸까? 아니면 지금의 우리도, 거룩과 세속, 선과 악을 열심히 분별하면서 ‘세속’의 것을 피하며 살아야 할까? 선과 악을 구분하고 선을 긋는 것도 어쩌면 내가 하나님의 자리를 대신해서 판단하는거 같아 때로는 불편할 때도 있다.

 

[생각해 볼 내용]

p28의 이냐시오의 ‘민감한 영적 감수성’에 집중하느라 지난 주중 ‘영성지도’ 실습과목 수행 중에 온전한 통로로 민감하고 싶어서 이성을 빼고 머리도 마음도 작동시키지 않았었는데, 통로가 되는게 아니라 혼돈이 되어 버렸다. 결국 피드백 시간에 되돌아 보니 ‘논리’대로 가면 되는 거 였는데 내가 논리를 버리고 진짜 통로가 되겠다고 다 버린거 였다. 이냐시오 자서전에 보면 생각의 길, 정감(감정?)의 길.. 이렇게 가는데, 생각(이성)을 비우는게 아니라 하나님 손에 나의 이성(생각)을 들려서 사용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하게 되었다..

 

티모시 갤러허. <영의 식별>.

  헨리 나우웬, <분별력> 7장의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분별력> 7장 부르심을 확인하라 :  소명 분별하기

집으로 가는 길

 

Ⅰ. 헨리 나우웬 (1932-1996, 네델란드, 신학자, 심리학자, 저술가)

1. 양력

. 1957년 가톨릭 사제 서품 : 전 세계를 자신의 교구로 함

. 1966년 노트르담, 예일, 하버드 강의

. 1986년부터 캐나다 라르쉬 공동체 데이브레이크 섬김

 

2. 특징

.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추구

 

. 하나님 사랑하는 법과 인간의 마음에 임재하시는 하나님 발견하고자 노력함

.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보기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랑받고 그 사랑으로 타인을 부르기 위해 일상을 떠남

. 40여권이 넘는 저서, 강사, 교수, 성직자로 살다가 심장마비로 떠남

. 『친밀함』,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적 발돋움』, 『상처입은 치유자』, 『마음의 길』, 『예수님을 생각나게 하는 사람』, 『삶의 영성』,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 『제네시 일기』, 『집으로 돌아가는 길』, 『탕자의 귀향』, 등 40여권

. 동성애로 내적 갈등으로 인한 어려움

 

살면서 무얼 하고 싶은지 내 삶에 이야기하기 전에,

내가 누구인지 삶이 내게 하는 이야기를 먼저 들어야 한다.

_파커 파머

헨리 나우웬. <분별력>. 이은진 역. 포이에마.

Ⅱ. 소명 분별하기

  . 2개의 목소리에 모두 충족하려 했던 자신

부모님도 기쁘고 나도 기쁘고 소명의 자리
. 자랑스러운 사람이 되야해.
. 혼자 힘으로 해내야 해. 독립적인 사람이 되야해.
. 예수님의 마음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
. 하나님의 사랑 가까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잊지 마.
삶에서 뭔가를 이뤄내자. 좋은 직업을 찾아. 소명에서 멀어지면 안 된다는 걸 명심해

  외로움(소속감), ‘제가 어디로 가기를 원하는지 알려주십시오. 따르겠습니다.‘

∴ 일생의 질문 “하나님은 내게 무엇을 원하실까?”

 

(예)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 가까이 있기를 원하신다. 그래서 인도 할 수 있기를 바라신다. 이 사실을 기억하면 부르심을 알게 될 것이다.”(p165)

<분별력> 목차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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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목차]

1. 모든 사람은 성직으로 부름을 받았다.

2.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일하라는 부르심

3.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나의 소명인가?

4.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 집에 오라는 부르심

5. 소명: 이루어야 할 목적

 

1. 모든 사람은 성직으로 부름을 받았다.

  각 사람에게는 살면서 이루어야 할 사명이 있다

 

.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신 것처럼 우리도 과업을 이루라고 세상에 보내심

. 이러한 확신을 품으면, 그 가운데 알게 됨 : 찾고, 지내고, 나누면

. 하나님을 찾고, 함께 지내고, 본 것을 타인들에게 나눌 때 부르심의 방식 알게 됨. (p166)

 

부르심(내면 깊은 곳의 거부할 수 없는 힘, p175)을 알려주시는 방법

(1) 상상속에 씨를 뿌리심 : 소명과 뇌 활동 사이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 함

(예) 광야에서의 목회, 친구들과의 대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사람들)

 

2. 라틴아메리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며 일하라는 부르심

(2) 열정 : 확신과 충동

(예) 라틴아메리카에서 살고 싶고, 스페인어를 배워야 한다. → 가서 경험하는 것도 확인과정

 

*** 새로운 사역과 소명을 고대한다면 ***

step1.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놓고 과거에 작별

 . 현재에 충실했을 때 다음 사역을 견고히 함 : 예일대에서의 우정이 페루의 길에 평안

 

3.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 나의 소명인가?

step2. 그 곳에서 살아보기 

  (1) 자기 인식 : 자기 발견 (좋은 음식, 산책, 책, 샤워, 늦잠, 여행...)

       →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아도 가난해 지기 어려움 

  (2) 자기 한계 수용 : 개인의 구제척인 상황에서 적용해보기 

  (3) 흔들림

************************

 

(3) 점진적 분별의 과정 : 마음이 편해지고 그곳의 사람들에게 소명을 느낄 때 까지 기다리며 기도에 집중, 많은 사람들과 대화 하며 풀어가기(173-174)

* 주의점 : 절대적 확신은 불가능, 결정에는 위험이 동반

∴ 마음을 정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정보를 얻을 때 까지 머물기로 함 (174)

* 마티아스 신부와의 만남 : 자신의 교구에서 헨리가 구상하는 공동체를 시험해 보라고 제안

- 공동체 (by 헨리) : 완전한 환대, 공동 사역, 묵상, 지역 활동 실천

 

(4) 부르심의 발견 : 온전히 환대하는 신앙 공동체의 일원이 되라 (175)

- 남아메리카는 아니지만 소명을 찾기 위한, 분별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페루

 

(5) 부르심을 완수 할 수 있는 은사와 은혜가 있어야 한다.

예) 필라르 (176) : 부르심의 대상과 사역이 확실하지만 장소를 기다리는 경우

→ 함께 기도 하던 중에 ‘감사’가 더 큰 소명임을 알게 됨

 

■ 페루에서의 6개월

①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살고 싶어 하는 갈망이 구체적인 부르심과 맞지 않았다.

② 첫 번째 소명은 주어진 것에 ‘감사’하기 라는 것을 알게 됨 (사 43:21)

   - 하나님의 임재 즐거워하고 뜻 행하며 어디서든지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이 더 큰 소명

     ‘어디에서 무엇 하며 살까’ ≺ ‘어떻게 마음의 눈을 주님께 맞출까’

     Key point : 아무 조건도 두려움도 없이 온전히 주님을 바라보는 것 (178)

    ∴ 자신의 할 일이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 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됨

    ∵ 자신의 일차적인 은사와 부르심 : 글쓰기, 강연하기, 연대하기

③ 내가 누구이고 한계가 무엇인지 알게 했다. (181)

④ 라르쉬 공동체의 부름을 들을 수 있도록 준비 시켰다.

⑤ 하나님께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쏟으신다는 사실 알게 됨. (182)

⑥ 목자의 삶에 헌신하라는 부르심을 들었음. (사회가 소외하는 사람들 안에 있는 보물)

⑦ 기도와 공동체가 없으면 목회 활동이 결실 없이 소진 되고 말 것임을 배움

     → 갈망이 실현 되기 까지의 정화 단계

 

4. 데이브레이크로 가는 길: 집에 오라는 부르심

. 부르심 : 가난한 사람들을 섬기는 온전한 환대공동체의 일원이 되라 (공동체 갈망)

. 장 바니에와의 침묵 피정

“장애를 지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가...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집이 되어줄 겁니다.”

. 공동체와 1년의 동거 후에 공동체의 목회자로 부름에 응함

 

5. 소명: 이루어야 할 목적

. 집을 찾음 : 페루에서의 시간은 집으로 가는 여정

. 소명 : 내 마음 깊은 곳의 갈망에 하나님이 응답하신 것 (182)

. 헨리의 깊은 소명 :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알리는 것

. 최종 목적지 : 하나님의 품

. 부르심을 확인하는 과정

: 하나님 안에서 내가 누구인지 확인하는, 내가 이루어야 할 목적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과정

 

너희 안에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 2:13-14)

 

 

[질문]

우리는 부르심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혹은 중요한 결정들을 앞두고) 왜 기도만큼이나 타인과의 대화가 필요한 것일까?

 

  사이몬 찬, <영성 신학> 11장의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성 신학> 11장 영 분별

. 그리스도인의 분별 :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영적 진보 가로막는 장애물 극복 도구, 영성 관련)

. 분별 능력 : 성숙 or 영적 숙련 정도를 함축 (영적 민감성은 귀기울이고 음성에 복종하는 꾸준한 훈련 통해 가능)

. key :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향유 하는 삶이 기반(285, 291, 292, 297, 302),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겸손

. 두 가지 주요한 상황 : ‘내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

(1) 외적 : 사건, 상황, 사람의 진실성 분별 (영지주의, 특이한 현상과 의심스러운 표적, 사회 정치적 상황)

(2) 내적 : 특별한 상황에서 개인향한 하나님의 뜻 분별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사이몬 찬. <영성신학>. 김병오 역. 서울: IVP, 2002.

1. 분별과 영적 성숙 : 분별과 영성은 따로 구별이 안 된다.

. 분별 : 특정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성과 보다 과정이 중요 (자기인식, 자기수용, 자아의 통합, 공동체의 확인 : 심리적 행복상태가 아닌 은혜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안에서 나오는 온전성)

. “하나님의 뜻을 안다“ :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사랑하는 것 (분별 가능한 유일한 토대 : 견고한 개인적 영성)

 

. 방법(how)가 내용(what)보다 중요 : 나를 전임으로 부르신 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주식 중개인이 되다니!!!

①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② 실수 하나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결과보다 사랑과 순종의 과정이 중요

③ 그릇된 선택이라도 하나님은 그 선택을 사용하신다.(나쁜 목사보다 정직한 주식중개인)

 

. 분별의 필수적 전제 조건 :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 필요(자기 인식),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볼 때 자아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고 특정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 분별하는 과정으로 올바른 결론에 도달 가능

① 하나님의 주권 신뢰 : 생애를 완전히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을 겸손히 인식하면서 결정 내리는가(잠3:5-6)

② 하나님의 뜻에 순종?

③ 타인의 조언을 청취?

④ 개인의 성실만이 분별에 필요한 근거?

 

(1) 분별 원칙 : 어떤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 전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 결정한다.

. 분별력의 성장 : 성경, 전통 (공동체 집단적 지혜인 객관적 원리 학습)

. 도덕적 특성 동반 : 진리, 진지함, 복종, 겸손, 그리스도 중심적인 태도

. 위조된 경험 : 극단적 태도 동반 (자만, 허영, 병적 호기심, 혼란, 우울, 거짓 겸손, 무례함, 절망)

. 진리의 표적 :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 (요 7:18) (2) 하나 됨 (요 17:11)

. “영신수련”(영적 분별에 대한 고전, “여러가지 영적 영향력들을 구별하기 위한 이냐시오의 원칙들”, #313,#328)

. 이냐시오의 영적 분별 : 믿음, 소망, 사랑을 증진시킴 분별에는 시간이 필요함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

. 원칙의 적용을 제한하는 이유 3가지

① ‘성령의 열매’는 내적 기질 혹은 태도인데 선하지 않고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② 영적 위조품과 진품 구별 난이 : 사단이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

③ 내면의 연약함과 하나님과의 얕은 인격적 관계 (평소에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들이 분별 가능, 고전2:14-15)

 

(2)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인격 :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어야 가능

. 분별력과 관련된 구체적 특성

① 겸손, 복종 : 자신의 결점 고백은 은폐된 죄악 다루는 확실한 방법 (진짜 분별은 진짜 겸손할 때 얻어짐)

② 용기 혹은 담대함 : 절대적 확신 가질 객관적 토대가 없다.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알고자 하는 모험을 행하는 태도 (‘정당한 상황이라는 깊은 내적 확인에 기초’한 담대함으로 θ의 뜻 실현)

③ 균형 유지 : 양극단의 오류 사이에서 양극단을 피함. (극과 극은 통함 : 겸손&교만, 금식&과식, 편견&순진)

. 극단적 태도 = 분별력 결여의 증거, 감정이 기형적으로 불균형, 심한 기복

. 편견(선입관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 거부) vs 순진(의심하지 않고 변화 수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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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질문1]

‘② 용기(담대함)’에서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것은 대단히 극단적인 태도일수 있다. 그런데 ‘③ 균형 유지‘에서 극단적 태도는 분별력 결여의 증거라고 했다. ②번과 ③번은 상충된다. 본인이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 해보고 두 가지의 차이점을 토론해보자.

 

 

2. 공동체적 분별력 : 세례를 통해 형성된 구속적 공동체에 뿌리 둠 (교회) ∴분별은 신앙 공동체의 일

. 성경을 사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공동체에서 나누고 점검 (공동체와 살아있는 관계 가질 때 하나님 뜻 알 수 있다.)

. 예언의 판단과 분별은 교회 공동체 (고전 14:29, 바울 바나바 파송시 교회 전체금식하고 기도하며 분별, 행13:2)

. 분별을 위해 겸손과 순종, 퀘이커의 ‘침묵 모임’ 공동체적 분별

→ 평범한 양무리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겸손하게 듣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인도할 권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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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 질문2]

책 p298에서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와 살아 있는 관계를 가질 때 에야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삶에서 공동체와 함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경우를 나누어 보자.

 

3. 영적인 삶의 문제들을 분별하는 것 : 옛 습성이 제거될 때 성장통 및 퇴보 경험하는 공통적 증상(나이테 생성?)

(1) 주의산만과 무미건조 : 운동선수의 슬럼프 같은 ‘경기력 저하’ 기도나 묵상 시 이 부분에 지나친 관심 자제

(2) 과민함 : “과장된 도덕적 핑계(율법주의?)에 계속 억압 받을 때”(신경쇠약의 원인) ex) 안전한 극단 선택

. 거룩한 친밀감과 균형이룬 자발적 경외심 결여 ex) 초보 운전자, 바리새인

(3) 미혹 : 특별한 체험(신앙 초기의 ‘사탕과자’)들을 영성의 발전과 혼동 (ex) 자신의 덕에 도취된 수도사의 자살

→ ① 모든 상황 속에서 θ의 뜻을 이루심 신뢰 ② 영적 안내자나 멘토의 도움이 중요 (공동체 통해 검증)

 

4. 세상에서 영 분별하기

.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분별 난이 (실천의 문제 : 섭리가 역사하는 방법에 동반되는 악의 문제)

. 역사적 상황에 대한 대답 :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하도록 부름 받음

→ 섭리의 신비에 대한 적절한 반응 : 깨어있음 (영적 기민함, watchfulness) = 기도 (마 26:41)

 

. 영적 기민성 : θ이 세상에 현존하는 것을 민감하게 유지, ‘영혼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통해 생성, 유지

. 분별 : 기도와 행동이 만나는 지점 (하나님께 많은 질문 던지기)

 

5. 특이한 현상들의 분별 : 특이한 형상에 대해 극단적 경외감 or 극단적 회의주의

. 기독교 전통 : 신중한 태도 – 십자가의 요한, 조나단 에드워즈 “황홀한 체험은 구원 얻는 진정한 증거가 아니다‘

.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i) 진정한 감정&거짓감정, 은혜스러운 감정&자연스러운 감정 구별, 외적 증거와 모습으로 단정할 수 없음

- 특정 방식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유일한 합법적 방법으로 주장하면 안됨.

(ii) 유창한 언어 동반 : 언어는 잎이지 열매가 아니다. (“천로역정“의 ‘수다쟁이‘)

 

(1) 분별의 신학적 기준 : “신앙과 정서”(조나단 에드워즈), “규칙들(Rules)”(이냐시오)

‘영적이고 은혜스러운’ 감정의 12가지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수 있는 2가지 이유

① 타인의 영적 상태에 대해 절대 확언 할 수 없다. 양과 염소 구별하는 특권은 우리 것이 아님 (ex) 엘리-한나

② ‘은혜안에서 겸손’한 성도들도 자신의 상태 판단 못 할 때가 있음

 

두 저자의 책에 근거한 분별 방법 제안

① 영적 균형

인격에 초점(친밀한 사귐을 통해 판단 가능)

③ 현상의 주변 상황 모두 고려

④ 구별하는 증거 :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증진 or 파괴

 

(2) 특이한 현상들의 본질 이해 : 특이한 현상들을 바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① 특이한 현상의 기원 : 하나님인가 사단인가 혹은 특별한 기질, 선천적 특징, 자연적 원인의 결과, 심리적 원인

② 도덕적이고, 신학적 기준에 일치하는가? (성자들의 특이한 경험 : 아시시 프란시스, 아빌라 테레사)

- 경험한 사람이 경건, 균형잡히고, 성숙,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인가? 생활전반에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

③ 사적, 공적 계시 구별 : 십자가의 요한, 사도 바울의 셋째 하늘 경험은 개인적이라 공개하지 않음.

 

분별

- 그리스도의 몸안에 있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자라, 그 삶을 깊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과정

- 분별 통해 성장, 성장함으로 분별력 향상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별, 분별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

 

사이몬 찬. <영성신학>. 김병오 역. 목차

★ 아래의 내용은  <촛불>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촛불_영성지도를 조명하는 빛]

은혜의 너른 들판에 있는 흰 들소들

 

횃불트리니티 대학원대학교 ‘기독교 영성’석사과정 입학(면접) 시험의 질문에 왜 입학(?공부?)하려고 하는가가 있었다. 이상하게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나를 더 알고, 하나님을 더 알아 이 땅에서 자유롭고 가볍게 살고 싶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수잔 S 필립스.&nbsp; <촛불> 영성지도를 조명하는 빛.&nbsp; 최상미 역. 에스오에이치피(SOHP). 2015년.

실제로 선교지에 있던 10년 중 앞부분은 나에 대한 고뇌가 많았다. ‘과연 예수님이 안에 계신 사람으로서 나의 이 사고 방식이 맞는 것일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데 내 안에 있는 이 분노는 무엇인가?’ ‘같은 선교사인데 나는 왜 저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지 않은 걸까?’ 사역에 너무 집중하고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자꾸 올라오는 이러한 질문들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 든다.

 

『촛불』을 읽으면서 공통적인 내용에 줄을 쳤다. ‘나의 모든 존재, 나의 평강 그리고 나의 행복이 걸려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토마스 머튼, p37), ‘하나님께서 나를 나 되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찰스, p247), ‘내 자신을 볼 수 있게 도우시지요’ (짐, p255), ‘내가 나 되게 하는 것’ (레아, p346).. 아홉 명의 피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찾고자 했고, 자신들을 알고자 했다. 이것은 어쩌면 ‘기독교 영성’을 공부하고자 하는 나의 갈망과 같았고, 내가 앞으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촛불』을 읽던 도중, 『거룩한 초대』 10장을 먼저 펼쳤다. 10장의 앞부분, 아빌라의 테레사의 글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얼마나 낭비하시는지,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글을 보았다. 책을 펴기 전에 한 제자가 하나님 나라를 더 구해야 하는데 자기의 유익을 위해 자기가 면접 시험에서 붙기를 간구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카톡을 보냈었는데 답변을 안한 것이 기억났다. 사실 레위기의 음식 규정을 예를 들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길게 써야 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 책을 보고 다시 생각이 나서 테레사의 글을 찍어서 보냈다. 제자가 면접 간다고 기도 부탁 할 때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네가 생각한 것 보다 더욱 넘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는데도 그 말은 하나도 먹히지 않고도리어 제자는 ‘이런 것을 기도 해도 되나요?’라고 질문을 했던 것이다. 책을 찍어 보냈더니 학생이 자신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에 줄을 쳐서 다시 나에게 보내면서 지금 까지도 소망한 것 보다 더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면접을 가기 전에 평정을 찾았다. 오늘의 이 경험을 통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도(내게 허락하신 학업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사실 『촛불』을 읽고 나서는 가슴이 콩당 콩당 뛰며 영성지도자로서의 나의 부르심을 확신한다고 글을 쓸 뻔 했다. ‘영성지도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부르심에 대해 성찰’을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주제를 여러 번 읽으면서 과연 책에서 그것들이 나올까 고민하며 읽었다. 『촛불』은 그 주제들을 쥐어 짜지 않아도 그냥 저절로 나로 하여금 ‘영성지도’를 갈망하고 사모하게 만들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곧장 이 글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신 것 같다.) 그런데 글 완성이 늦어지면서 ‘혹시.. 아닌가?’ 하는 마음에 겸비하여 더 점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좋아서 하는 착각은 아닌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은 아닌지.. 나는 왜 영성지도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촛불』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영적분별’과목의 『신앙과 정서』 2부를 읽으면서, "마음에서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은혜의 정서가 아니다"라는 2부의 다섯 번째 표지에서 나도 모르게 ‘영성지도자로서 조심, 확인 작업’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었다. ‘영성 지도’과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인 부분을 읽을 때 마다 나도 모르게 ‘영성지도자’로서 조심할 것 들, 하지 말아야 할 것 들 을 정리하고 있었다.

 

A. 영성지도에 대한 이해

나의 현재 시간표는 내안의 악과 어두움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9가지의 사례들을 읽으며, 결론 부분으로 갈수록 ‘인간론’ 수업시간에 만났던 라인홀드 니버의 ‘피조물 인간, 불완전한 인간’이 맴돌았다.

 

피조물인 인간이므로 우리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불안정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안정을 찾고,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는 정리를 다시 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불완전한 피조물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경계선’에 있는 그 불안정함이 인간으로 하여금 더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생각을 해봤다.(폴 틸리히, <경계선 위에서>) 내 안에 악을 직면하는 시간이 점점 뒤로 미뤄지면서, 어쩌면 이 악을 허락하신 분의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라는 다른 관점도 생겨나고 있다. 어쨌거나 여러 명의 영성지도자들을 통해 하모니를 이루듯 성도의 연합과 오랜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악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현재 인지한 상태에서 직면을 미루고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미뤄지고 있다. 심지어 이 은혜의 시간에 집중하고자 휴학까지 생각했었다. 피조물인 인간이 내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신학 공부를 하느라 내게 주신 은혜의 시간(내면 직면)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신학에 집중하는 일은 위로부터 비처럼 내리는 은혜를 주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p235) 부분에서 이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를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에 반하여,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제한 시간 안에 해 내야 할 일들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피조물 인간으로서 제한된 시간에 대한 쫓김 그리고 게으름과 머무름 사이의 전쟁에서.. 멜리사의 복잡한 생각들이나 나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p292) 저자가 멜리사와 같은 어려운 경우들을 나눔으로써, 때로는 빈손으로 피지도자를 기다리는 것이 피조물 인간인 영성지도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부분에 가서야 저자는 영성지도는 양방향(p361) 모두에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교수님의 바쁜 시간을 내가 뺏은 것 같은데 내게 영성지도를 해주시는 교수님은 마칠 때 마다 교수님께도 은혜가 있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나 또한 내가 만나는 분들과의 대화 가운데 그 분의 문제 때문에 만난 경우 일지라도, 내게 더 큰 울림이 있고,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을 때가 있다. 영성지도자와 피지도자는 함께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 같다.

 

B. 부르심에 대해 성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자의 영성지도 사례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영성지도의 여러 가지 기술들을 체크했다. 감동은 감동대로 받으면서 한편으로 기술들을 챙기는 나를 보며 너무 방법론에 치우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짝 고민도 되고, 내가 정말 영성지도를 갈망하는가라는 생각도 되었다.

 

나는 지금 사무실이 없다. 집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저자의 사무실을 나가는 그렌트의 장면(p241)에서 YUST 내 사무실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아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다른 학생이 들어오기 전까지 앞 학생의 상황에 눈물 나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다시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단둘이 만나는 일을 할 수 있게 될까...내가 너무 저자에게 투사를 하고 있나...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렀었다. 내가 진짜 이 그림을 갈망하고 있구나.. 내가 그 감동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던 사무실에서의 그 은혜, 하나님의 숨겨진 큰 사랑을 보고, 짧지만 그 시간에 머물 수 있었던 사무실에서의 그 시간을 내가 너무 갈망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완전 향수에 빠졌다.

 

존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여정이 동부로 가면서 완성되어져 가는 과정에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고(p329), 저자를 통해 존도 데이빗도 영성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p341), 나 또한 많은 만남들을 통해 비슷한 여정을 가는 사람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나게 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앞선 분들을 만나면서 준비 할 수 있었고, 꿈을 꾸고, 기대 할 수 있었고, 뒤에서 오는 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여정의 앞길이 보여서 기도로 도우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므로, 모두가 친밀하지 않은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결론 부분에서 특히 눈물이 난 곳이 많았다. 존의 여정(p329),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하는 레아에서 눈물에서(p351), 룻의 마지막 성찬에서도(p364), 속을 알 수 없었던 찰스가 결론 부분에서는 자유와 가벼움의 은혜가 표현되는 곳에서도(p357), 칼이 학생들을 대하는 것(p206-208)에서도...

 

내가 영성지도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감동을 계속, 전적으로 누리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아침 제자의 두려움과 불안에 나의 공부(책)가 도움이 되어 제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자유케 된 것처럼 나도 그를 통해 주님 안에서 치유되고 자유케 되고, 그도 나를 통해 주님의 은혜 안에서 치유되고 자유케 되어 우리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계속 보고 싶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 8장 자연묵상(최광선)의

"자연 묵상 영성 훈련 안내문" 

 내용입니다.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영성 연구회 평상 지음.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 두란노. 2017.

 

자연 묵상 영성 훈련 안내문 (최광선)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 할지니라

(롬 1:20)

 

가만히 멈추라

가만히 멈추어 서면 보이는 것들이 있다. 걸음을 멈추고 가만히 서라. 그리고 응시하라

창조 세계는 하나님의 거룩한 책이다. 자연에 가만히 귀를 기울이라. 마음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상념은 가만히 흘러가게 내려놓고, 마음으로 집중해 그 자리에 머물라.

 

계속해서 응시하라

창조세계의 성스러움에 집중하기 위해 멈추어 섰다면 이제 가만히 바라보라.

‘실재를 길고 사랑스럽게 바라봄’이 관상이다. 예수님의 눈빛으로 사물을 바라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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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자연이 함께 내 몸속에서 살고 있다.

그러니 나는 자연의 일부이며

또한

하나님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예수님이 이 사람들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하신 것은

백번 옳은 말씀이다.

( 권정생, <우리들의 하나님> )

 

창조 세계를 통해 기도로 나아가라

존재 하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함을 드러낸다. 각각은 고유함을 가진 주체로 존재하면서, 전체의 일부로 존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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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칠 줄 모르는 나무다.

의연하다.

거룩하다.

하늘을 향해 깊은 침묵으로 기도하는 수도자의 모습이다.

비가 그치고 햇살이 숲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면

말쑥한 자태로 서 있는 나무들,

거기에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말없이’ 자기 자리에 마냥 서 있는 나무들이

‘겸손하라’, ‘침묵하라’라는 소리를 던져 주었다.

( 윤인중, <솔숲에서 띄우는 편지> )

 

하나님-창조 세계-사람의 삼위일체적 친교 안에 머물라

창조 세계 자체가 우주적 합창이다. 조화로움은 영적인 합일로 이끈다. 자연에 대해 갖는 서먹함이 지나간 후에 자연과 깊은 일체감과 친밀감이 떠오른다. 창조 세계는 성스러움과 신비를 투명하게 드러낸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을 위하여”(롬 11:36, 공동번역)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 목차

 

 

  제럴드 메이, "영성지도와 상담" 8장의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성 지도와 상담_8. 협력_위탁, 자문, 공동 작업

. 위탁 : 영성지도 중에 피지도자를 정신과 상담이나 치료 등으로 연결하는 것을 말함

. 왜곡된 위탁(or 나쁜의도) : 영성지도자가 무의식적인 반감, 두려움, 단순 위험이나 곤란한 문제 피하기 위해 혹은 소속 기관에서 피지도자를 위탁하라는 행정적인 압력에 의해 위탁 하는 경우 (사례들 p217~ ) → 피하도록 해야 함

 

제랄드 메이. <영성 지도와 상담>. 노종문 역. 서울: IVP.

1. 위탁의 역동

. 정신과 위탁의 경우 조심스럽게 검토, 피지도자와 의논해서 공동결정 (당사자 욕구&동기 필요)

. 위탁의 이유 관찰 : 위탁과 지도 관계의 상관 관계 정직하게 평가하기

 

2. 위탁이 필요한 표시들

. 치료가 필요한데 영성지도 받으려 하는 경우 : 지도와 치료 병행의 분별 필요

(1) 위탁이 반드시 필요한 경우

(2) 편의상 위탁이 도움이 되는 경우

 

 필요성과 편의성이 모호하게 공존하는 것을 알고 둘의 차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

 

3. 꼭 필요한 위탁 : 극소수임

. 자살, 살인, 폭행 등의 행위에 대해 생각하고 있는지 알아내는 방법 : 물어보기

. 점진적으로 주제에 접근 (우울의 느낌 말할 수 있도록 격려하기 등.. p223~)

 

4. 편의상의 위탁

(1) 삶에 불필요한 방해거리 만들 경우(파괴적인 영향을 주는 경우)

. 감추어진 이유가 있거나, 우울증이 배후에 있거나 등등..(p227~)

(2) 문제에 집착이 너무 심해서 하나님을 향해 주목하는 일을 가로 막을 때, 집착의 습관화

(3) 내면의 정신 역동이나 오래된 ‘봇짐’이 영적 진보의 실제 장애 (p228~)

→ “정신분석은 끝나지 않는다”(프로이트) : “더 나은 삶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심리를 연구하는 일에만 정신 파는 것은 어리석은 시간 낭비“

∵ 영원히 끝나지 않을 일, 자아집착이 하나님의 개입의 가능성을 부인하고 인간의 완전성 가정

(4) 지속되는 체험이 영정 성장 상태인지, 심리적 장애가 표출된 것인지 분별 불가능 할 때

 

5. 위탁의 과정

. 긴급 상황이 아니라면 자문이나 위탁의 경우 지도자&피지도자 함께 의논하며 전체 분별과정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 조심할 것

(1) 피지도자의 감정에 미치는 영향 조심

(2) 치료사나 심리학자 소개해줄지 피지도자 스스로 찾아볼지

- 피지도자 스스로가 영혼 돌보는 일과 지도자가 피지도자의 삶을 책임지는 것 사이

(3) 관계상의 비밀 유지 (주의점 p232)

(4) 지도자가 심리치료와 영성 지도 병행하는 경우, 피지도자가 두가지 모두 필요하다고 느낄 때 안전하고 유익함 (역동, 오용들이 존재하는 경우 p232)

 

6. 협력 관계

1) 영성 지도자가 정신 건강 전문가 모임(심리학자, 정신과 의사나 다른 전문가들)으로부터 지원 얻는 연결고리 가지는 것이 바람직 → 큰 공동체가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는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함

 

. 주의점 :

(1) 신상(개인 정보) 보호

(2) 필요한 치료별로 다른 분야 선택할수 있지만 치료사의 성향이나 성격이 중요

(3) 특정한 문제일 경우 그 문제를 위해 운영되고 있는 프로그램이 있을 경우 유익 (A.A.)

(4) 협력 관계시 영적인 일 평가할 정도의 민감함 있는 사람일수록 도움 (개인적 영성)

(5) 영적, 금욕적 수련을 치료의 ‘보조수단’으로 선호(영적인 일을 심리학적으로 파헤치려고 하는 경우)하는 사람 보다 진지한 영성 생활을 하는 사람(정신의학을 알고 영적인 문제는 자유롭게 내버려 두는 사람)을 신뢰하도록

(6) ‘전능한 의사 선생’ 이미지 경계 : 의사의 진단이나 추천 내용이 이해가 가능해야 함

 

2) 영성 지도자들끼리 협력구조 : 정기적으로 이슈, 관심사 토의, 상호지지, 의존 등

→ 서로 도움을 힘입어 최선의 결과를 거두자.

 

 

 

여성리더십포커스

(Women Leadership Focus, WLF)

 

여성리더십에 대한 왜곡과 편견으로부터

하나님의 진리안에 거하려는 노력

 

부르심에 순종하여 생활과 사역의 전 영역에서

전인적 변화와 성숙을 멈추지 않는

우리는 하나님의 사역자, 여성 리더 입니다.

 

GMF (Global Missionary Fellowship, (사)한국해외선교회)  산하 기관인

GLF(Global Leadership Focus, 원장 이태웅) 소속의

여성리더십포커스(이하 WLF, 디렉터 손경화)가 개최하는

제2회 여성리더십컨퍼런스에 여성 사역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이번 컨퍼런스의 주제는 '여성 사역자의 자기개발'입니다.

 

여성 사역자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 속에서 여성 리더로서의 자기 개발에 대한 해답을 찾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동행해 주십시오.

 

1. 일시: 2023년 10월 10일(화)-13일(금)
2. 주제 : 여성 사역자의 자기개발 in GOD
3. 장소: 필그림 하우스

4. 등록기간 : 2023년 8월 7일 ~ 9월 1일 *9월 11일까지 추가등록

5. 회비 : 15만원 (국민은행 433401-01-421429, 한국해외선교회) 
*입금시 "참가자이름/WLF등록"이라고 표기해주세요.

6. 참가신청서 : https://forms.gle/tpcpLpvNKUEHv6Wa7

7. 기타 문의 : wlfocus@naver.com

 

★ 2회 여성리더십 컨퍼런스 참가신청서 링크
https://forms.gle/tpcpLpvNKUEHv6Wa7

★ '여성 사역자의 자기개발' 서면 인터뷰 링크  
(컨퍼런스 참가여부에 상관없이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https://forms.gle/jXdfr8tpHpQmzjNJA 

 

[관련 링크]

GMF 소속 여성 선교사의 리더십에 관한 예비 조사

제1차 GLF 여성리더십포커스 포럼 스케치

 

  제럴드 메이, "영성지도와 상담" 7장의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랄드 메이. <영성 지도와 상담>. 노종문 역. 서울: IVP.

영성 지도와 상담_7. 장애_정신과적 증후군

. 장애 : 일상 기능을 방해 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

. 피지도자의 정서, 정신적 장애의 가능성 고려 but ‘영적’통찰들을 낮게 평가하게 될 수도 있음

. 정신의학이 육군에 적용되기 전에 육군에는 정신장애가 없었음. (p186)

. 정신의학의 의학적 이름붙이기(naming)에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개인에게 영향 미치는 무의식적 ‘결정인자’들을 이해하고 있을수록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이름들은 정확하지만 결국 이름 뿐이다. 특징, 조건을 기술하지만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 적절한 균형감각을 위해 기본적 정신의학적 이해 필요 (분별 vs 진단)

(1) 성격이론

(2) 진단 범주 : 장애에 부여된 이름과 기술, 원인, 치료법 (성격의 발달과 문제의 발현 파악)

 

1. 분별과 진단

. 분별(분리시키는 것) vs 진단(“지식”을 통해 구별 짓는 것)

분별 진단
지식 필요 / 은사 필요 (통찰)
성향 구별함으로 적절한 방향으로 도와줌
관계를 통한 은혜의 선물 (애착 없는 친밀함)
신비에 반응 위해 신비에 대한 체험을 구별
지식 아주 중요 (통찰보다 명명)
질병을 바로잡기 위해 이름 붙이기
최고 수준의 진단에 통찰 필요
신비를 깨뜨리기 위해 해결책 찾아 나서기

 

2. 정신의학적 분류

(1) 명명법(nomenclature) : 질병과 증후군의 명명

(2) 질병분류학(nosology) : 진단과 치료목적으로 장애들을 분류하고 구분

- DSM(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 정신 장애 분류와 명명 체계

- 대부분의 장애들은 원인이 불분명한 문화적으로 결정된 증상의 기술일 뿐

- 증후군 : 정신 분열은 여러 원인을 가진 장애로 보고 공통적 증세들을 가진 장애의 집합

- 문화 안에서의 결정 (예) 동성애, 신경증, 조울병 (p191~)

→ 영성지도에서 진단하려 하는 용도가 아닌 충분한 관점의 소유 (영성지도와 관련있는 사항만)

 

2.1 어린 시절에 처음 발견되는 장애 : 정신 지연 (IQ 70이하) 및 신체 증후군

 

2.2 기질적 정신 장애

. 뇌의 기질적 화학적 변화와 관련된 장애 : 치매 (유사치매)

. 뇌와 관련 있지만 다른 원인 : 섬망(환각, 착각), 중독

 

2.3 물질 사용 장애 → 거룩한 질병 (은혜와 의지력 사이의 대면)

(1) 약물 남용 : 기능을 손상시키는 장기간의 약물 사용

(2) 약물 중독(의존) : 내성 증가, 사용 중지시 금단 증상 나타날 때

- 알콜의 경우 남용이나 의존이 있다면 중독

- 기도에 방해, 깨어있는 것에 문제가 생긴다면, 남용이고 중독이다.(p196)  

 

2.4 정신분열적 장애 : 정신 기능의 파편화, 심한 붕괴 등...으로 망상, 환각 등의 동반

(1) 긴장형 정신 분열 : 움직임, 몸동작

(2) 붕괴형 정신분열 : 생각과 감정의 붕괴가 뚜렷

(3) 편집성 정신분열 : 적대적 감정과 관련 (과대망상)

(4) 미분화형 정신분열 : 위의 다양한 증상들의 혼합 발생

. 종교적 환각, 망상, 집착, 편집증적 과대 망상과 신비 경험

→ 약물과 지지 치료(봉합 학파) vs 최소한의 약과 많은 시간 투자, 통찰지향 치료(훈습 학파)

  (1) 지지적 심리치료 : 약물, 환자가 일상 과제와 스트레스 잘 다루도록 돕고, 사고재형성 격려

  (2) 통찰, 역동적 치료 : 무의식을 인식으로 끌어올리고 방어의 이면 조사 (신경증 치료)

 

2.5 편집성 장애 (편집성 정신분열과 같은 종류의 망상, 공포를 극단적 경험)

. 망상 : 사고의 통제와 관련 있지 않고 모략이나 핍박을 당한다고 믿는 형태, 질투 등

→ 신경 이완제, 심리치료로 개선 가능

 

2.6 정동장애

(1) 양극성 정동장애 : 조병(mania)과 우울증 교대 반복, 조병 반복

(2) 순환성 기분장애 : 기분변화, 비관, 피로, 낙천, 창조적, 자기 확대가 교차하는 만성적 장애

(3) 기분부전장애(우울신경증) : ‘우울 인격’비관적 관점, 자기 비하

 

2.7 불안장애 (신경증)

(1) 공포증 : 장기간 지속되는 비현실적인 두려움이나 행동 기피증상 (광장공포증, 사회공포증)

(2) 불안상태 : 불안의 원인이나 초점이 즉시 드러나지 않음

. 범불안장애 : 주기적 불안이 끊임없이 지속

. 공황장애 : 단기간 심한 불안

(3) 강박장애 : 지속, 반복적 생각이나 행위로 불안에 대처하려는 특징 (강박사고, 강박행동)

→ 불안상태와 강박장애 치료 : 행동 수정적 접근, 지지 심리치료, 통찰 지향 심리치료, 이완 요법, 혹은 항우울제 투약

 

2.8 신체형 장애 : 기질적 원인이 아닌 심리학적 요인에 기인하는 육체적 증상, 비현실적 두려움

(1) 전환반응 : 히스테리적 실명, 마비, 실신

(2) 건강염려증

 

2.9 해리 장애 : 인식에 변화로 개인의 자기상이 분리된 것 (이인장애)

(1) 심리적 기억상실 : 물리적 원인에 의한 기억상실과 구별됨

(2) 둔주 상태 : 자기도 모르게 집을 떠나 새로운 정체성 가지려함

(3) 다중 인격 : 다른 인격들이 번갈아 가며 개인을 지배

→ 악령이나 영적 힘에 잡혔을 가능성 포함하므로 영적 평가도 필요

 

. 해리 : 불편하고 수용하기 어려운 통찰에 대해 스스로 방어하는, 방어기제

 

. 묵상, 침묵기도 시간 해리의 경험 발생, 은혜의 표지일수도 있으나 자기상과 감각인지에 중대한 변화가 일어나는 경험은 해리적 경험

. 묵상 중 일어나는 해리는 진리를 정확하게 인식하는 과정으로 영적 해리는 장애라고 할수 없음

cf) 영적 광신의 경우 장애 : 영적 분별이 필요 (지표 : p211)

 

2.10 정신성적 장애

(1) 성주체성 장애 : 이성이 되고자 하는 욕구 →지지 상담, 수술 등..

(2) 성도착 : 여성물건애, 소아성애증, 관음증, 가학증, 피학성애 → 집단치료, 행동조건화

(3) 정신성적 기능장애 : 조기 사정, 오르가즘 억제 → 행동요법 치료

 

2.11 충동조절 장애 : 분류 할 수 없는 장애들을 모아 놓은 것

cf) 폭발적 장애 : 뇌의 물리적 비정상 요인과 관계되어 다른 범주로 옮겨짐

 

2.11 적응장애 : 스트레스에 극단적으로 반작용하거나 교란 반응 보이는 것

. 과도한 우울증, 불안, 반사회적 행동, 업무 수행 능력의 상실(스트레스 제거되면 장애도 사라짐)

 

2.12 인격장애 : 다른 장애들과 다른 범주로 질병으로 간주되지 않음

. 성격의 특성(인격 유형) : 경직되어 있어 타인과 관계에 장기적, 심각한 어려움

. 종류 : 편집성 인격, 분열성 인격, 분열형 인격, 히스테리 인격, 자기애성 인격, 반사회적 인격, 경계성 인격, 회피 인격, 의존 인격, 강박 인격, 수동공격 인격

. 치료법 : 자기 이해, 행동의 결과 인지, 습관적 행동 변화하려는 능동적인 노력 돕기

 

3. 영성 지도와 분류

. 분류하고 이름 붙이기는 한사람을 객관화 하므로 존재의 경이로움을 축소시킨다. (딱지 붙이기)

. 어떤 증상이 있는지 왜 그런 증상이 생겼는지 아는 것은 이해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그의 경이로움을 발견하는데 방해가 되지 않도록 지도자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한다.

 

  제럴드 메이, "영성지도와 상담" 6장의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영성 지도와 상담_6. 관계_영성지도에서 일어나는 상호 역동

. 영성지도와 심리치료의 같은 분위기 : 빈 공간, 평온함, 열려있음과 받아들여짐, 조용하고 맑은

. 정신과 치료 중에 영성지도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음. (p145)→ 쉼의 시간 (수련회에서도 확인)

. 영성지도자 자신의 심리, 도덕적 상향에 상관없이 성에 대한 논의 할 수 있어야(p213)

제랄드 메이. <영성 지도와 상담>. 노종문 역. 서울: IVP.

1. 영성지도자와 주목

. 영성 지도사의 사명 : 내면의 눈으로 자주 하나님께 주목 (영적 추구자들의 사명이며 소원)

(1) 자신의 인식에 주목

(2) 일어나고 있는 일의 실재를 상기 : 하나님께 반복적 재조정

(3) 이기적 관심사와 피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흥미 제거하고 거룩한 사랑만 드러나도록

. 하나님께 주목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이 너무 많다. 산만한 요인을 제거하는 것이 가능하지도 않고 바람직하지도 않다.

∴ 영성지도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것을 반복적으로 상기 (p153)

관상기도의 침묵 속에서 주의가 열리고 시각이 확장되기도 한다. (p156~)

→ 여러 사례들 (p150~) : 깨어있지 않으면 영성지도와 상관없는 일이 된다. (p152下)

. 영성지도에서의 인식과 주목은 ‘기억’, ‘상기’, ‘되새김’, ‘재정립’ (p159)

. 자신의 지각을 성경, 전통, 동료들의 비평에 기꺼이 굴복시킬 때 성장가능 (p160)

 

2. 영성지도와 전이

. 은혜는 무의식적으로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만, 많은 무의식이 성장을 방해하기도 하므로 영성지도와 관련된 고전적 심리학 용어들의 의미를 이해해야 한다. (p160~)

* 영적 부름인지 심리학적 증상들인지 피지도자와 함께 공개적으로 다룰 수도 있고 인식하는 것 만 으로도 멈출 수 있으므로 지도자가 아는 것이 중요.

(1) 전이(transference) : 타인과의 관계 속에 감정이나 행동이 무의식적으로 투사

(2) 준향왜곡(parataxic distortion) : 어떤 특징적 사람과 관계 맺을 때 드러나는 결정된 유형

(3) 역전이(countertransference) : 치료사가 무의식적으로 환자의 전이에 반응하는 것

 

3. 다른 관련된 문제들

(1) 영적 요인들에 대한 심리적 반응

(2) 친밀함의 문제

(3) 상호성의 증가

(4) 역할의 역전

 

4. 영성지도와 성적 감정들

. 성적 감정(에로틱함, p267)의 경우 무의식적으로 회피하는 명백한 사례

. 대부분 가볍고 적절하게 대처하지만

. 전이의 한 표현일 경우 :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나 의존성 문제

(1) 영적 각성과 성장이 성욕의 고조와 관련이 있다. (p172)

(2) 주님에 대한 굶주림을 즉각적으로 대치(치환)한 결과일 경우도 있다. 융합vs연합(p173)

→ 상업에서 심리/영성/성을 혼동하여 활용

(3) 통전적 관점 : 인간을 심리, 성, 몸, 일, 관계, 다른 삶의 양상을 포함하는 관점에서 보기

 

. 성은 타인과 연합하는 가장 친밀한 체험이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이 어떠할지에 대한 기대를 가지게 하지만 하나님께 가는 길은 아니다.

 

5. 영성지도에서 성 문제를 다루는 법

. 지도자가 성문제에 대해 개방적, 수용적자세가 필요

(1) 초기에 성에 대한 가벼운 질문(예 p176)으로 성을 공개적으로 다루며 토론 할 수 있는 화제로 만들어 준다.

[질문] 부작용도 있을 것 같다.

(2) 정기적인 ‘평가의 시간’ 으로 감정 등을 점검하는 기회

(3) 지도자 스스로 특정 피지도자와의 관계에 대한 미묘한 신호 포착이 중요

(4) 객관적 분석과 심리적 검사는 기도나 묵상의 전통적 분별 방법의 보충 정도로만 사용

(5) 성적 관심이 발생한 것이 확인되면 신속하게 점검 (p177-178)

(6) 성적 감정이 기초적인 영적 에너지의 표현과 통로임을 인지 (인간의 성애 ≠ 영적탐구)

(7) 지도자는 자신의 ‘봇짐들’, 감정들을 살펴보고 스스로 다양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p180)

(8) 객관성을 위해 감정을 타인과 의논하거나 일기나 꿈의 탐구하며 기도로 가져가기

(9) 피지도자와 열린 대화 하는 규칙의 예외 상황

  A. 끌림의 정도가 미미한 것인 경우 (문제는 의식하고 있어야 함)

  B. 피지도자에게 해를 끼칠 것이 확실하다면 꺼내지 말 것 (극히 드문 경우)

(10) 서로 끌릴 때는 솔직하고 열린 대화로 인간적 사랑과 신적 사랑의 관계탐구의 기회

(11) 강한 애착이 동반할 때 애착을 인정하고 고통을 받아들이기

(통찰의 근원이 되지만 훈련과 깨어있음이 필요)

→ 지속적인 불편이 계속되는 경우 관계 종결 : 상황을 정직하게 다루고, 결정 함께 내리기

(12) 격의 없는 영적 우정과 공식적 영성지도 구분이 중요 (p184)

 

영성지도 수퍼비전 (한학기 후기)

예수님과 함께 자유롭고 가볍게

(마 11:28-30, 메세지 성경)

 

나와 함께 길을 나서면 너희 삶은 회복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제대로 쉬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일하여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아라.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 배워라.

나는 너희에게 무겁거나 맞지 않는 짐을 지우지 않는다.

나와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11:28-30, 메세지 성경)


‘횃불 트리니티’에 입학 하는 과정 자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과정이었다. 입학 한 그 학기부터 수업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의아해 했던 것들이 수업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얻게 된


가장 첫 번째 유익은 ‘내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자유롭고 가벼워 졌다.
두 번째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에게 알려주고 계셨다는 확인이 되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2013년부터 나에게 목표가 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었다.
‘횃불 트리니티’와의 만남은 내게 말씀의 구현이다.
 

1. 수퍼비전 소감 및 알아차린 것

첫째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정리되고 알게 된 부분들이 있지만 가장 큰 수확은 교재를 통해서 자유케 된 부분이다.

6장 ‘주어진 것과 선물‘ 부분에서 그동안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을 다룬다. 내가 계속 경험했던 것은 성경을 깊이 읽고 말씀 안으로 빠져 들고 있을 때 내 몸을 감싸는 느낌, 부부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죄책감이 들면 하나님께 물어보기 보다 무조건 대적 기도를 했다. 내가 당당하고 성적인 부분이 자유하다면 ’제가 왜 이런가요? 저한테 성적인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하고 하나님께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서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이 오는 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반응이 말씀 읽을 때 여서 당황스러웠다. ’말씀의 귀한 선물이 쏟아지는 시간에 이런 역 반응을 하다니’ 이런 죄책감에 하나님께 죄송했고, 대적기도를 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기간은 정말 오래 되었다. 그래서 혹자가 ‘독신이 부르심이냐’는 질문에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메리 로즈 범퍼스 외. <영성지도자들을 위한 수퍼비전>.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7

그런데 6장을 읽고 나서 놀랐다. 대적기도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고스란히 하나님께 반응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이라니.. 대부분의 여성 싱글들이 경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동기 전도사님 중 싱글 여자분께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이 부분만 한번 읽어보세요’하고 건넸다. 그 당시 그분은 다른 과제로 바쁠 시기였는데 그 부분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싱글 성도들이 경험하는 부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성경을 읽을 때 그런 반응이 생기면, 너무 기쁘고 감사가 나왔다. 왕상 7-9장 솔로몬의 성전 제작과 봉헌 부분에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본문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 하나님의 뜻은 이런 거 였구나...’ 레노바레 성경으로 읽는데 왕상 8:10-11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구름 때문에 제사장이 섬기기 힘들다는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한 적용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비가지적 표징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날도 성경을 읽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비가시적 표징을 그동안 몰랐고 잘 못 반응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이런 경험들이 있을 텐데 ‘이 증상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 보기보다 내가 정한 좋은 것과 ‘나쁜 것 같은 것’의 규칙에 따라 반응하고 있지 않을까?

 

둘째, 강의 전에는 정리되지 않은 영성지도가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안정 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한다. 성격상의 문제로 피지도자를 기다려주기 보다 먼저 성급히 이야기 할 경우가 많았다. 이는 피지도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주눅 들게 하고, 더 표현하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피지도자의 반응을 기다려주고 여지(pause)를 줄 때 피지도자가 먼저 반응을 보이고,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 집중해서 물어보고 있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피지도자의 반응과 진행을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으로 하나님께서 피지도자를 많이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피지도자의 진술에 질문이 많이 생긴다. 피지도자의 말을 끊거나 혹은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서 본론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질문이 본인의 궁금함인지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영성지도 중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셋째, 피지도자가 깊숙이에서 꺼낸 문제가 내게도 존재하는 것들을 이번학기에야 인지했다. 항상 피지도자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되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것이 은혜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학기에 성찰보고서와 대화록을 여러 번 작성하면서 인지한 것이 피지도자가 꺼내온 이슈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지도가 피지도자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동일한 부분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넷째, 위에서 인지한 부분을 강의시간에 피지도자 이슈로 가지고 갔다. 영성지도 전에 약 2주 동안 혼자 물어보고 머물 면서 명확하지 않게 답을 받은 듯도 했다. 그런데 영성지도 실습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두 개의 그림이 떠올랐다. 너무 놀랐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아서 이제 그만 기도할까요 묻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 지도자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성지도자가 한마디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마자 두 장의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이 답변을 받고 나서 이 것이 오래기다리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바쁜가’는 질문은 십년도 넘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취업준비를 하느라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느라고 바쁘기는 했다. 그러다가 20대에는 바쁜게 당연한거라 생각했고, 30대 이후 선교지에서 부터 ‘왜 나만 바쁘지’ 묻기 시작했다. 선교지에서는 대개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아무래도 능력이 있던 분들이라 많은 일들을 여유롭게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잘 못 된 건가? 열심히 하는 게 나쁜 건가...“

 

이 두 그림은 상기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내 삶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그 답으로 기대가 되고 감사했다. 수퍼 비전에서 교수님께서는 나의 이슈('나는 왜 바쁜가')에서, 공생애동안 바쁘셨던 예수님이 떠올랐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환대와 응원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쁜 것은 내 죄의 근원이고 내 열심이고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것이고, 내 열심이라는 상담 쪽의 정죄 메시지를 들어왔다. 그래서 스스로 정죄감이 많이 들었다. 30대 후반에야 그것이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고 정리를 했다. 그래서 ‘바쁨’ 또한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내게 허락된 ‘바쁨’ 가운데서 ‘은혜의 리듬’(마 11:28-30)을 누리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하나님 보다 내가 앞서는가?’하는 긴장감으로 매번 점검 했다. 슈퍼비전을 진행하던 중, 교수님의 말씀에 완전 놀라고 그 이후로 일상과 사역 모두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정말 바쁘게 몰아치는 기말 기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응원을 경험함으로 ‘존재적 안정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성지도의 유익인 것 같다.

 

<영성지도자들을 위한 수퍼비전>. 목차

 

2. 강점

강점과 약점은 항상 양면이 있다. 경계를 잘 지키면 약점도 강점이 되고 경계를 지나치면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학기 영성지도를 하면서 알게 된 강점은 피지도자의 상황이 빨리 인지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빨리 인지되었다고 먼저 발언하면 안 되고 피지도자가 직접 하나님께 듣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내가 피지도자에 대해 발견한 것을 나누었을 때 아직 피지도자가 받아들일 만한 때가 아닌 경우들이 있다. 내가 먼저 발언해 버리므로 피지도자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나만 민망해 진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그 이후로는 최대한 발언을 줄일 수 있었고 더 기도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로 피지도자를 더 집중해서 도우라고 주시는 은혜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거하는 훈련이 내게 진행되고 있었고, 피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 훈련이 동시에 진행된다. 함께 지어져(엡 2:22) 가고 있었다.

약점 또한 빨리 인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깊이 머물지 않고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화요일에 영성지도(강의시간 실습)를 받고 수요일에 상담을 받았는데 인생의 큰 그림들이 휙휙 그려졌다. 그런데 깊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결국은 상담이 끝날 무렵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상담선생님도 나도 무언가 이상했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은 내가 빨리 인지하는데 깊이, 오래 머물러 숙성시키는 시간이 없어서 결과가 정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3. 도전과제

인생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겠지만 현재 시간표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 변혁이 있는 중요한 시간표인 듯이 느껴진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현재 나는 그에 못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리 저리 튈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본질 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과 나이가 10-20년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하나님 앞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인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진짜 바램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을 알고 가고자 하는 나의 “못 된 안정감”이 나의 진로를 방해 하는 걸까? 또 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하나를 알아가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지만 이 과정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면 어려워도 가야할 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간에 신학교에 두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야 횃불에서 시간은 내가 인큐베이팅 되는 시간 이란 생각이 든다.

 

‘바쁨’과 연관된 것이 내 안에 ‘화(anger)’와 연관되어 있음을 살짝 인지 했다. ‘화’와 관련된 부분은 30대 초반부터 연구하고 싶던 주제였다. 그것이 내 안에서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 ‘화’라는 주제도 나에겐 10년이 넘은 주제인데 이 주제에 답을 찾게 되고 더 가볍고 자유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년도 새롭게 대두되는 이슈는 성속의 구분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적인 반응이 내 몸에 나타나면, 스스로 ‘잘못된 반응’이라고 결정하고 반응했던 것처럼 내 안에 스스로 잘잘못과 옳고 그름과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과 멘토링을 하는데, 대화중에 매달 반복되는 말씀이 ‘너무 따지지 마세요’였다. 5월이 되어서야 나의 이번년도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4)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과 멘토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앞에서 질풍 노도의 시기처럼 진로를 두고 묻고 있다는 부분이 이것이다.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계속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두 학기가 지날 무렵부터 주변의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은 내가 교회를 하면 다니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홀딱 해서 교회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참 예배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리던 이머징 예배가 현실화 되어 있는 것도 보면서, 예배 공동체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지금도 방학이면 예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3년, 학비 때문에 고군 분투 하는 시간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과연 하나님이 내게 사역하라고 하시는게 맞는가?’란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나올 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사역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지 않는 그림엔 손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현재 강의 하고 있는 학교의 강의도 자연스럽게 먼저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되었고 일부러 더 이상의 강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중의 재정난을 통해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업을 하라고 하시는 건가?‘ 물어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담임 목사님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도 그러실까?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은 무엇일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내게 남겨진 커다란 도전 과제이다. 재정 때문에 진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맘몬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고, Th.M 과정도 듣고, 예배 공동체도 시작한다면 난 다시 ’바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시는 걸까... “예수님과 함께 쉬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

 

 

★ 아래의 내용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후반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존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2/2, 169-337까지)

19일에 다 읽을 수 있었는데 26일까지 책을 잡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26일에 생각지 못한 실수로 큰 오해를 받고 아침부터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어려운 마음으로 저녁 일정을 취소하고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책을 끝까지 마무리 했다. 

 

요한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최대형 역. 은성 . 2013년.

상황에 메여서 나를 바라보고 소망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소망은 낙심하지 않으며.. 소망이 부족한 곳에는 사랑도 부족’하다는 책의 마지막 부분과 기도 동역자가 보내준 본회퍼의 ‘나는 누구인가’ 시를 함께 보게 되었다최근 리플렉션을 제출할  마다 ‘아..너무 교만한  같다 이렇게 교만모드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쓰나미 같이 몰려오는 어려움 덕에 초점을 다시 아버지께 맞추게 되는거 같다. “오 하나님당신은 아나이다내가 당신 것인 줄을…”

 

책을 빌려보는 관계로(이 당시에 빌려보다가 결국 구매함^^) 컴퓨터로 내용을 정리하며 읽었는데 p168까지는 정리한 내용이3페이지 분량이었는데, 뒷부분은 읽는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정리한 분량이 5페이지가 되었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목차 (2/2)

순결에서는 대부분 육적인 것을 죄로 정의 하고 풀어갔다. 수도사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번역상의 문제였을까…?)

마음이 하나님께 순결한 것, 또 서로에게 신실한 마음도 순결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음란에 대해서는 억제하고 무시하는 것이 교정 수단이라고 제시하는데 최근 몇 년 청년들의 감정을 살펴보고 연구하면서 감정을 억제하고 무시하는 것보다 인정하고, 밝은 곳에 꺼내놓고 다른 것으로 승화 시키는것이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가 달라서 일까…?

 

무감각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면 "어미"와 싸울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사람마다 다른 "어미"이기에 본인이 무감각해졌다는 것만 발견해도 큰 수확이 있을 것 같다. 요즘 관계 안에 무감각에 대해서 민감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대부분 본인들이 원인을 알면서 안풀고 있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장 바꿔놓고 보니 나도 답을 알면서 안 풀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성령님이 알려주시지만 이렇게 무시하고 사니… 이래서 인간 멘토가 필요한거 같다.(수도사와 수도원장 같은 관계? 하지만 현대에 그런 신실한 믿음의 관계가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 이 글을 쓴지 5년 후에 블로그에 올리는 중이다. "가능하다"는 결론을 맺고 그 일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

 

순종에게서 자라나는 통회하는 마음이 아닌 것이 교만이다라는 정의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것 같다. 학기 초에 내게 있던 많은 은혜들 때문에 어쩌면 내 마음에 교만이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페이퍼를 제출할 때 마다 ‘아? 이상하다?’하고 뭔가 알면서도 안 풀고 넘어갔고 그 무감각이 오늘의 쓰나미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 어렵지만 이렇게 나로 무감각에서 일어나고 교만에서 나오려는 의지가 생기게 해주신 것에 감사한다.(하지만 마음은 어렵다.^^)

 

겸손과 분별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 했는데 분별은 거의 정념, 죄죽이기의 내용이어서 그럴지 궁금했다.

 

29번째 사다리에 무정념이 정리되어 있어서 도전이 되었다. 분별을 읽는 즈음, 담임목사님과 멘토링할 (금식 같은) 스스로 불편함에 처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주제가 있었는데 중복되는 내용이었어서 책을 읽을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내가 즐거이 선택한 자체가 고난이라고 주장했는데,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세상에 한발을 들여놓고 있었고, 오늘의 일이 그 열매였다. 진작에 불편함에 처하라는 조언을 들었다면 실수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이 여러 내게 경고해 주셨는데 내가 반응하지 않은거 같다는 생각이 글쓰는 순간 생각났다. 인간이란 이리 느릴까

 

극도의 피로가 육체의 정욕을 일으킬수 있다는 경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서 영적인 것을 포기하는게 흙과 금을 바꾸는 것,

 

기도시간과 나의 일(조급한 마음)을 맞바꾸려는 순간 생각이 나서 하나님과의 화목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책읽는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 나를 깨워 기도시간에 머물게 하기를 기대한다.

 

2016년 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도전 된 말씀이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시18:29)”였는데 무정념 부분에서 종말이 되기전에 성에 도착하지 못 한 사람(성을 넘지 못한 사람은) 사막에서 야영해야 하기 때문에 담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가 되었다. 놀라웠다. 몇 년간 뛰어 넘을 생각만 했지 왜 뛰어 넘어야 하는지는 정리가 안됬었는데 유레카!!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디히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감방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성(城)에서 나오는 성주(城主)처럼

의연하고 유쾌하며 당당했다고.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나를 지키는 간수들과 이야기할 때의 모습은

마치 사령관이나 되는 것처럼

자유롭고 유쾌하며 확고했다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나는 불행한 나날을 보낼 때에도

마치 승리에 익숙한 사람처럼

침착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당당했다고.

 

정말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인가?

아니면 나는 내 스스로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 불과한가?

마치 새 장엔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갈망하며 병든 나

마치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

빛깔, 꽃, 새들의 노래에 굶주리고

친절한 말과 인간적 친밀함에 목마르고

변덕스런 폭정과 아주 사소한 비방에 분노하여 치를 떨고

근심에 눌리고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엄청난 사건들을 기다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고

지치고 허탈한 채 기도하고 생각하며 행동하고

연약하여 이런 것들 모두를 포기할 준비가 된 나

나는 누구인가?

 

 

이런 사람인가 아니면 저런 사람인가?

그렇다면 오늘은 이런 사람이고 내일은 저런 사람인가?

아니면 내 안에 그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애처롭게 우는 비열한 심약자?

이미 승리한 전투를 앞두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치는 패배한 군대,

그것과 나의 내면세계가 다를 바는 무엇이랴?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이런 고독한 질문들로 나를 조롱(嘲弄) 한다

오 하나님, 내가 누구이든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당신이 아시듯,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글, Dietrich Bonhoeffer / 번역,  김희수 목사 (월드비전선교센터장, 서울북노회)

(퍼옴 : http://www.prok.org/gnu/bbs/board.php?bo_table=comm_essay1&wr_id=10017)

★ 아래의 내용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168페이지 까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존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2, ~168까지)

역자도 서론에서 말했지만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천로역정 생각났다. 천로역정보다 실제 수도사들의 예화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는 책 내용이, 너무 억압적이고 현대에 안맞는 것 같다는 비평적인 읽기로 읽었는데 읽다보니 그 깊이에 동화되고 바쁜 일상에서 이책을 보게 된 것이 후회스럽고, 빌려 보는 것이 후회스러워 꼭 소장 하고 자주 봐야 할 책이라 생각되었다.

요한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최대형 역. 은성 . 2013년.

네번째 계단인 순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순종을 ‘죽는 날 까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아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저자가 말하는 자아와 내가 말하는 자아가 다를수 있겠으나 내가 요즘 받는 훈련은 영의 깊은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베네딕트규칙서에서도 수도원장의 부담과 그 역할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순종 부분에 나온 수도원장들의 행동은 내가 그라면 저렇게 했을까.. 싶은 행동들도 많았다. 원장들의 어떠함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수도사들에게 촛점이 옮겨졌다. 순종하는 메나스, 아바키루스, 회계형제.. 관계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 사람을 의지하거나 인정받으려하지 않음등의 내용이 바로 책을 읽는 그날 아침 내가 고민하고 행동하려고 했던 것들에 대한 답이되었다. 이상하게 그날 아침 어떤 사람에게 그들이 나에게 인격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드럽게 표현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물었다. 하지만 예화를 읽으면서 나의 내면(기분 나쁨) 집중하기 보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나를 유령인간 취급하던 젊은이와도 맞닥트릴 일이 있었는데 그와 보냈던 6개월 동안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에 집중했던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미움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괴롭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를 위해 기도했었고 그렇게 밖에 행동할수 없었던 그의 깊은 아픔들을 아버지께서 알려주시는거 같아서 마음이 안쓰러웠었다. 정서적으로 어려울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리고 살다가, 어려움이 없는 지금에는나의 반응할뻔했다. 이책을 통해 막아주신거 같아 많이 감사했다. 책에서 말한것 처럼 온전한 순종을 통해 분별의 은사를 얻기를 기대해본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목차 (1/2)

비방, 수다, 거짓말은 어쩌면 쭈욱 통하는 이야기 같다. 읽으면서 요즘미투상황이 생각났다. 타인의 깊은 아픔을 안아주기보다 웃자고 하는 농담을 통해 상처들을 주는 상황을 만든 결과인듯 싶다.

 

애통에서는 개인 감정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애통을 말한다고 표현했다. 그로인해 세상의 즐거움과 육체의 소욕을 버릴수 있다는 표현이 어쩌면 내가 지금 받고있는 훈련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이책을 읽으면서 강의시간에 제기되었던 "일상에서 수도원처럼 살수 있는가"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지금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수도원에서의 삶과 같이 살기를, 계속 말씀하고 계신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예수전도단에서 90년대 조이도우슨을 통해 도전되었던 ‘반대정신’도 이미 이 책에서 제안되었던 내용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양을 달리 했을뿐이지 시대가 변해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거 같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나랑 같이 살자!!’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3, 4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3, 4주차)

 

짧은 내용이었지만 며칠에 걸쳐서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다. 책의 의도를 안 이상 조금이라도 맞춰서 읽어보고 싶었다. 나의 상황이 현재, 책이 만들어진 용도대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슷 하게라도 해보고 싶어서, 시간을 띄엄띄엄 두고 가이드 하는 대로 때때로 묵상하며, 기도하며 읽어 보고 싶었다. 역시 바쁜 일상에서 시도한다는게 쉽지 않았고, 제한 된 시간내에 무언가를 완성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묶어서 조금씩 읽어도 이냐시오가 말하는 깊이 까지는 갈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주간에는 둘째 주간과 동일하게 하면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오관을 이용하고 이성을 사용해서 마음으로 대화 하라고 한다. 어쩌면 이어지는 넷째 주간에서 계속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둘째 주간에 이은 내용을 셋째 주간에 하면서 방식을은 넷째 주간을 따르면서 넷째 주간의 묵상을 준비하는 것 같다.

 

셋째 주간의 마지막에는 유혹과 식욕에 반대정신으로 대하도록 지침 하는데 넷째주의 부칙에서는 고행 대신 절제와 중용에 집중하라고 지침 한다. 이 깊은 의미는 무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궁금한 부분이 많다. 영성의 대가의 깊은 깊이와 나의 얕은 깊이가 보여지는 책이다.

 

그동안에 기술한 것 처럼 사건을 기술하다가 156번에서는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었는지 예수님의 옷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짐작이 갑자기 나와서 놀랐다.

계속 ‘의식성찰’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247번에서 오관을 고찰하며 기도하라는 말에 도전이 되었다. 과연 가능할까… 의식하나만 가지고 돌아봐도 너무 쉽지 않은데 오관까지 사용하려면 정말 조용히 혼자 해야 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부럽고 정말 한번 해보고 싶다.

 

313부터는 영혼의 움직임을 지각하고 알기 위한 것들을 설명한다. 영적 위안과 황폐의 정의, 증상, 주의점, 반대정신(325), 영의 식별(둘째 주에 하면 좋다는 것을 넷째주의 뒷편에서 소개한다. 그만큼 위험할수도 있는 부분이서 일까..)에서 행정(자선 분배 직무)내용까지 설명이되어 있다.

 

싸우는 교회 부분에서는’교회가 검다고 하면 나도 검다고 믿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365)는 부분에서 한참 멈춰서 정리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얼까.

 

이 부분을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지난주 "초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역시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킬레스 건을 아신다. 다행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신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조금씩 나의 믿음을 더 키우시지 않으실까 란 생각을 해봤다.) 상황을 직면하고 알아 가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고, 조금씩 정리되는 순간에 234번의 마지막 부분에서 멈추게 되었다.

 

‘가지소서, 주님, 그리고 받으소서.

모든 저의 자유와 저의 기억과

저의 지성과 모든 저의 의지를,

제가 가진 것과 제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서 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당신께 이를 돌려 드립니다.

모두 당신 것이오니,

모두 당신 뜻대로 하소서.

제 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넉넉합니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그 부분에 줄을 그으며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에서, 나로 하여금 다른 부분의 초연을 고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말로는 뱉었지만 매순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계속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본을 보이고 계시는 목사님이 생각났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되고 나니 목사님의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믿음의 싸움을 하시느라 참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동일한 상황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되니 자주 목사님이 생각나고 기도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선한 믿음의 싸움을 도와주세요 아버지..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1, 2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1, 2주차)

책에 일정 틀이 없이 번호대로 진행하고 있어서 큰 틀을 이해하면서 읽는데 에너지를 쏟게되었다. 역자들이 번역하면서 틀을 좀 만들면 글에 손상이 많이 됬을까…. 영적인 부분에 깊이 집중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부분에 신경쓰는 나를 보면서 나의 최근 영적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놀란 것은 성경처럼 이 책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주석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에서 성경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 것일까…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의 자세한 설명을 보면서 현재 상담이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정들을 기도하는 단계 단계에서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로 이 세상의 학문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방법(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이 책에서는 깊은 기도, 성찰)안에서 다 해결된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아닐까

 

일반성찰[43] 감사, 은총, 나의 모든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성찰, 용서구하고 나를 고치기를 결심하는 단계를 제시한다. 이 일반성찰 안에 3번째 단계에 매일 하는 시간별로 나누어서 하는 특별성찰[24]이 3번째 단계로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매일을 보낸다면 정말 매일이 바쁠 것 같지만, 현대의 일상에서도 아주 어려운 업무 일 때를 제외하고는 약간의 훈련만 한다면 가능한 성찰이지 않을까 싶다. 완벽하게 특별성찰에 집중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성찰은 오늘부터 나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죄에 대해 집중해서 묵상하는 둘째 수련[55]의 과정이 오랜 시간 나를 관찰하면서 해야 하는 것인데 나(의 죄)를 그렇게 끊임없이 관찰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본다. 그나마 죄를 기억하기 위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다행이다. (집, 관계, 일)

 

첫주는 죄에 대한 묵상으로 지성과 의지를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정말 필요한데 개신교에서 약한 부분인 것 같다. 자기 직면과 죄의 묵상, 존재 인식(나는 누구인가!!)등으로 창조목적에 맞게 사는 것에 집중한다.

 

둘째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묵상하는데, 나같은 경우도 하나님의 이해가 (오래 믿은 것에 비해 갑자기) 깊어진 것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였다.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할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말이 내게 주어진 사역의 방식과 진행 여부에 대한 나의 고민에 답하는 글이어서 위로가 되었다.

 

매일의 일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대단히 부럽다. 온종일 기도하고 성찰하다가 휴식시간 사이에 복음서, 성인들의 생애을 읽으라니.. 온 하루를 이렇게 쓸수 있다면.. 아버지의 마음과 많이 가까워 지지 않을까 싶어서 대단히 부러웠다. 나에겐 이런 믿음이 없는것 같다. 나의 삶을 책임지신다고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문제있는 타인도 하나님이 주인이시라고 하면서 그 뒤치닥 거리를 내가 하려고 하니 귀한 시간이 자꾸 쪼개진다.

 

둘째주 첫날의 탄생 묵상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의 어려움이 느껴졌다. 하나님이이 주신 아기라고 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상황에서 두 사람은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 나 또한 부르심의 과정에서 여러 ‘성벽’을 뛰어 넘는 중에,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믿음이 커가는 것 같다. 마리아와 요셉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그 깊은 뜻을, 하늘 나라에 가서나 하나님의 진심을 알게됬을까? 신약석의 과목에서 ‘예수님의 생애’부분을 읽으면서 신 으로서의 예수님이 어린시절을 어떤 정서로 지냈을까…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묵상 주석에서 이냐시오는 예수님의 생애를 고난으로 정리한다. 책에서는 이부분을 주목하라고 주석이 달려있는데 왜일까..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걸까?

 

같은 주제로 여러 번 반복하게 하고 특히 이후에 오관까지 적용해서 관상을 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더 깊이 묵상하고 알아가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깊이 적용해 보지 못하고 읽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이런 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하다.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6 궁방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6궁방 (2/2)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 2011년.

CHAPTER 6. 하나님을 섬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갈망함

. 황홀경 후 증상 :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깊은 갈망, 한 영혼이라도 주를 알게 하려는 갈망

. 주의점 : 건강 해치지 않도록 조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 눈물, 혹은 환희(찬양)가 가득참(마음의 평안을 확인), 황홀경에 잠겨 영적 위로를 기다리느라고 묵상을 게을리하지 말라(덕이 진보하지 못하고, 기도의 진전이 없다.) 지나친 확신하지 말고 영적 조언자에게 말하라. (무엇보다 주님께 말하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영혼이 거룩하므로 하나님이 모든 문제 심판하심)

 

CHAPTER 7. 죄 때문에 느끼는 슬픔

. 은혜 받을수록 죄로 인한 슬픔이 커진다.(죽음 갈망할 정도)

. 임재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함(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 신부(아가서)처럼 주님 기다리고 찾기)

.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삶과 수난을 묵상하기

. 내 의지는 그분을 섬기기로 결단, 그리스도 닮기(시련 때 보여주신 본보기 따르기)

 

CHAPTER 8. 지적환시로 소통하기, 환시가 진짜 일 때의 영향

. 지적환시 : 예수가 자기 옆에 계시는 것 인식 (설명 불가, 묘사 불가) ‘나다. 두려워 말라’

. 지켜보면서 옆에 계심, 말씀 하셔야 할 경우에만 말씀, 항상 함께 하므로 항상 겸손함, 임재에 대한 의식이 없을 때 노력하지만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오심

. 은혜가 진짜인 표지 : 주님께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것만 바라고, 영광과 존귀 위해 삶을 내려놓기에 사탄이 마음대로 할수 없음

 

CHAPTER 9. 환시로 영혼과 소통하는 방법 묘사, 소통의 다양한 효과

. 상상의 환시(마음속의 환시) : 사탄이 사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올 때는 유익(임재처럼)

. 주의점 : . 가짜 환시(오래본다면 상상력) / . 착시(지성이나 주를 향한 헌신에 변화 없음)

. 진짜 환시의 결과 (바울) : 평화와 고요(하나님의 지혜로 인함),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음, 겸손과 덕 진보(행함의 열매) : 영적 조언자의 조언을 들어야 함

 

CHAPTER 10. 하나님이 진리를 나타내시는 이유

. 지적환시 : 악마가 흉내 못냄, 감각이 정지되고 하나님안에서 보는 고상한 신비 발견, 죄를 더 깊이 인식,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더 용서 가능, 환시는 순간이지만 눈에 띄는 은혜 지속, 나에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아 인식 가운데 살아감.

. 왜 이런 환시 주실까?

 : 신부이며, 그분의 뜻대로 하겠다고 결심을 굳혔기 때문. 모든 면에서 신부를 돕고,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길 원하심

 : 완전한 평화 속에 쉴 수 있다.

 

CHAPTER 11. 은혜 입은 사람은 하나님을 더 갈망한다.

. 은혜 받을 때 마다 신랑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고통이 늘어난다.

. 사랑과 갈망과 하나님에 대한 속성에 대한 지식이 늘고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쓰라린 고통을 겼는다.

. 사랑의 화살 : 영혼 깊은 곳, 중심에 상처 입히고 주님을 향한 갈망의 고통, 열망으로 인해 이성 능력 저하, 이 고통은 영혼을 맑고 순결하게 해서 일곱번째 성채에 들어 갈 수 있게 해준다.

. 두가지 위험 (1) 세상을 경멸하고 죄짓지 않으려고 노심초사 (2) 지나친 희열로 넋이 빠져나간것 같다.

. 마10:22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수 있느냐?” 용기 필요

. 고전 14: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6 궁방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6궁방 (1/2)

 

CHAPTER 1 : 고통 견디는 방법 & 7궁방 들어가기 위한 준비 방법

. 신랑(주님)과 단둘이 있기를 바라는 신부, 신랑을 더 갈망함(기다림의 시간)

. 7궁방 들어가기 위한 용기 : 내외적 고통 수반 (에너지 생성 : 하나님과의 합일의 시간)

. 일정 시련 발생 :

(1)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 : 비난, 칭찬(더 고통) -> 칭찬, 비난에 무관심(성숙)

(2) 박해 : 시련으로 더 강건하게 하고 더 큰 유익, 박해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친구

(3) 육체 고통 : 극심한 통증, 정신과 육체 영향, (인내와 은혜 먼저 주심)

(4) 내적 고통 : 다른 고통은 이에 비하면 사소함 -> 하나님외에는 방법 없음(더 기쁨, 연약함을 앎)

- 과거 죄에 대한 염려, 두려움과 영적 메마름, 악마가 불러 일으킨 가책과 두려움, 당황하는 영혼, 무력함, 마음의 뒤숭숭

- 고통을 참는 법 : 밖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수고 & 하나님의 자비 신뢰 (히11:6)

(5) 악마가 주는 시련 : 외적 고통 (덜 고통스러움)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 2011년.

 

CHAPTER 2 : 영혼에게 활력주시는 방법, 영혼에게 미치는 영향

. 사랑의 상처 : 생각지 못했을 때 갑자기 생기는 즐거운 쇼크

. 고통 : 신랑에게 열정적인 말을 쏟아내지만 신랑과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는 고통이 달콤함, 고요의 기도에서 느리던 마음의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 영혼의 기쁨과 평화로 감싼 강렬한 고통

. 신랑의 부름 : 7궁성에 있는 것 같이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말하지만 신부는 알아듣는다

. 소망으로 압도당함 (예) 용광로의 작은불꽃의 고통과 즐거움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에 대한 확신)

. 확신의 이유 :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한 즐거움과 감사만 있음.

 

CHAPTER 3.

*서문* 베네딕트 짐머만 (1921년)

1) 신체적 환시 : 신체적 대상을 볼 때 일어남, 일상과 다름 / 테레사 경험안함

cf ) 환영 (ex) 토비아스의 아자리아스(대천사), 예수그리스도의 몸

 

2) 상상적 환시  / 테레사 : 피하라고 조언

. 시청각으로 보고 듣지 못하고 감각이 실물을 인지 (감각들에 의한 상상력에 기반)

. 속임수와 연결될 수 있음 (근거있어야 믿을 수 있음)

. 이사야, 계시록의 요한, 스데반, 베드로 (토마스 아퀴나스)

. 병적 상태와 무관, 외부에 의해 발생

cf ) 상상력 : 감각과 지성의 중간, 감각을 통해 인상 얻고, 지성으로 전달하므로 상상적 환시는 위험

 

3) 지적 환시

. 상상에 의해 얻어지는 감각 없이, 상상에서 지성으로 전달되는 인상이 지성에 직접적 각인 (초자연적)

. 신체적 환시나 상상적 환시보다 덜 위험 . 바울의 환시 (고후 12:1-3)

 

CHAPTER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 묘사 (속임수 분별의 표지)

. 기도중에 들리는 말 : 근원(하나님, 악마, 상상력) 구별 필요, 거짓 교리 거부(성경과 불일치 거부)

.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의 표지

(1) 말씀 :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마 24:6),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할지어다.

(2) 찬양하고 싶은 마음과 고요와 경건하고 평온한 회상

(3)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음

(4) 악마는 의심을 불러 일으킴 : 불안과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탄의 계략, 사탄의 목적은 믿음을 약하게

(5) 보상 받은 확신

(6) 말씀의 진리 안에서 누리는 기쁨

(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 : 많은 어려움과 지연 끝에 예언이 이루어질 때 기쁨

 

. 조심 할 것 :

(1) 상상력에서 나온 말들 : 내적 기쁨 없음

(2) 상상 기도 응답 : 말씀을 받는데 익숙한 사람은 속아 넘어가지 않음

(3) 영적 조언자들의 조언 필요 : 제3자나 학식 있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제에게 조언 구하고 따르도록

 

. 내면의 말들 (내적 환시) 분별 표지 : 하나님이 직접,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발생, 겸손, 많이 들을수록 자신을 낮추게 되고 더 예민하게 자기 죄를 기억하게 된다.

(1) 아주 또렷하게 들리므로 모든 것을 기억함 (2)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3) 성령의 메시지는 열매 맺고, 상상력은 열매 맺지 못함 (4) 의미를 한 낱말로 압축 가능

(5) 말로 암시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해 할 수 있음

 

CHAPTER 4. 기도 중 무아지경 혹은 환희, 황홀경에 들게 하심

- 황홀경과 이 상태에서 일어난 것들에 관해서 설명

. 황홀경의 상태

(1) 사랑의 불꽃에 의해 생긴 황홀경 : 말씀에 부딪혀서 영혼 정결 (지성 살아있음, 발작&기절과 다름)

(2) 능력과 감각이 몰입된 상태 : 하나님 외에는 이 궁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할 수 없음(6, 7궁방 모두)

 

. 황홀경에 일어나는 것들 (-> 황홀경을 잘 설명하기는 불가능)

(1) 주님의 비밀을 드러내심 : 기억에 또렷이 남음 (지적 환시는 묘사되지 않음)

(2) 말로 표현 못함(야곱의 사닥다리, 모세와 떨기나무) : 사건 안에 계시가 드러나므로 위대한 일을 할 용기생김 (ex)박물관의 많은 물품 자세히 기억못함 (아무것도 안 본것과 같음)

(3) 영혼의 기쁨 :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연합 (제 정신이 들 때 지성은 회상 가능하므로 지적 환시)

(4) 신비를 느낌 : 신비가 없으면 황홀경 아님,

(5) 미래 복이 늘어나는 일들은 없음, 오직 주님과 나뿐,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만, 이 궁방만 열려있음

(6) 하나님과 직접 사귀는 것보다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없음

(7) 능력을 잃어버림 : 모든 문이 닫힘, 말의 능력 거두심, 숨쉬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단기간

(8) 영적 만취 상태 : 상태는 짧지만 상태가 끝나도 의지는 황홀경에 취해 있고 정신이 몽땅 빠져 나와서 며칠동안 하나님 사랑외엔 아무것도 못함, 지상의 것들에 관해서는 잠든 상태처럼 보임

(9) 더 큰 고통을 갈망하고 사랑함 : 주님의 도움이 있으면 고통은 견딜 수 있다.

(10) “사람들은 나를 찬양하거나 너를 모욕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넌 이길 것이다”

 

CHAPTER 5. 영의 비행 묘사

: 자기 통제의 상실, 은혜 후의 의무들, 의무 이행으로 겸손과 하나님의 위로를 배움

- 영혼이 재빠른 움직임을 느끼고, 날쌔게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처음엔 두렵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영혼은 강한 용기, 믿음, 신뢰, 완전한 포기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행하시도록 한다.

(1) 자기통제의 상실 : 저항하지 말고 하나님 손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2) 두개 물통의 상징 :하나님께서 물통에 세찬 물살을 흘리심, 몸을 통제하는 외부 능력이 소용없음.

(3) 많이 받으면 많이 줘야 한다.

(4) 자신이 초라함, 죄를 항상 기억하게 됨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김, 자비와 긍휼 애원

(5) 생명이 있지만 영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음, 지성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신은 한순간에 알게 됨

(6) (상상의 환시) 육의 눈으로 볼 때 보다 영의 눈으로 볼 때 훨씬 맑게 보임, 천사의 무리, 성인들 만나면 알아봄 - 놀라운 직관에 의해 드러남

(7)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영혼의 내부에서 비행이 일어남, 영혼 밖은 고요,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은 변해 있고 은혜를 입어 본인이 본 것에 비하면 모두 쓰레기로 보임

(8) 영혼이 요새화 됨 : 정탐군이 과일을 가져온 것 처럼, 영혼이 들어갈 땅에서 난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심, 용기 주셔서 시련 잘 통과할 수 있게 하심, 선물의 가치

(9) 세 가지 놀라운 은혜 : 하나님의 위대하심, 자아인식과 겸손,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지 않는 것을 경멸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4, 5 궁방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4, 5 궁방

3궁방 까지 읽을 때는 책을 빌려서 읽었었다. 빌려서 읽는 경우는 기록을 하지 못해서 내내 답답했다. 급히 요단 출판사에서 출판된 버전(제목이 “내면의 성”으로 번역)으로 구매해서 4, 5궁방은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nbsp; 2011년.

 

3궁방까지에서의 읽기와 4궁방부터의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은 내가 책을 바꾼 탓이었을까? 4궁방은 거룩한 선물중의 하나인 영적 위로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달콤함과 기쁨, 그리고 그동안 방해 꺼리가 되었던 벌레들이 (여기에 들어 오지도 못하지만) 도리어 도움이 되는 곳이다. 건강상태나 산만함등을 통하여 약간의 방해나 괴롭힘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속되는 자아인식을 통해서, 모든 상황들을 통해 배우기를 원하신다. 5궁방에서는 하나님과의 ‘합일’(“영혼의 성”에서는 ‘연합’)을 이야기 한다. 거룩한 합일은 우리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다고 표현한다. 한가지 있다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 시킴이다. 이것 없이는 합일에 이를 수 없다.

 

20대 초반에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며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보지 못하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20대 후반에 예전단의 책들(특히 조이도우슨)을 읽으며 그동안 경험한 것들에 대해 정리가 되면서 하나님의 독특한 교수 방식에 놀랐었다. 30대, 연변과기대에서의 10년 동안 많은 경험들이 정리되지 않아서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1년만에 횃불트리니티에 입학해서 지난 10년동안 했던 질문들에 대한 많은 답과 그동안의 경험이 학문적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이번 테레사의 4궁방 5궁방은 ‘어 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궁방에서도 5궁방에서도 나는 인지 못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테레사가 기억나게 해주었다. (글 잘 쓰시는 분인 것 같다.) 어떻게 그걸 이렇게 표현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명확히 어떤 문장이 아니라 쭈욱 읽어가면서 ‘어 그건가?’했는데 책을 읽다 자면서 ‘아.. 그게 4궁방인거구나”하고 느꼈다. 나도 정확히 표현 못하겠지만 4, 5궁방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 이 두 궁방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내가 준비됬다고 했으면 좋겠다고 되는것도 아니었다.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지만..) 

 

작은 나의 경험으로,  4궁방은 기도하면서 경험했던 것 같은데 5궁방은 불평이고 근심이고 짜증 가득한 일상에서 훅! 하고 평안과 감사가 밀려들어와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상태일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며 누린 기억도 있다. 밀랍이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있다가 인이 찍혀지는 것에 조용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책에 표현되어 있었는데, 나는 불평 불만 상태라 생각한 그 상황에(‘나 요즘 아부지테 삐딱 모드야’라고 말 할 정도로^^) 말도 안되게 감사와 기쁨이 몰려와서 완전 놀라고 당황했다.

 

테레사의 육체적 고통과 고난 후의 영적 경험이어서 그런건지, 이번 4, 5궁방을 읽으면서는 곳곳에서 제임스 말로니의 ‘금촛대 중보자들’이 생각났다. 그 책의 주인공도 테레사 처럼 육체적인 고통이후에 영적인 친밀함이 깊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스도 고난 후의 영광, 육신을 가진 이 땅의 자녀들 에게도 이 규칙이 적용되는 걸까?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것 같은 아픔과 고통 그리고 ‘너 하나님하고 친하다매? 왜 그렇게 아퍼?’하는 사람들의 공격속에서도(ex.십자가의 예수님)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 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인 걸까?

 

[더 생각해보기] 이단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신흥종교 학습 중,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 몰몬교, 이슬람, 하나님의교회) 테레사는 5궁방에서도 유능한 영적 조언자를 찾으라 했고[1], 본인도 계속 말씀에 근거 하려고 했다. 나 또한 나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가 없어 계속 머리속에 질문이 맴돈다.(그래서 매달 담임목사님께 멘토링을 받는다.) 이단의 시작과의 차이점은 명확히 무엇일까? (고민 해 볼수록, 유익이 되었습니다. ^^)



[1] 이강학 교수님 첫 영성수업에서 한달에 한번 멘토 받으라는 것을 통해서 아직까지도 매달 멘토링을 받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연길에 있을 동안, 여러 영적인 경험이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혼자 점검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빨리고 있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감사한 멘토를 만나게 해주셨다. 가장 확실한 담임 목사님.

로버트 뱅크스 박사 초청 세미나

■ 행사명: 로버트 뱅크사 박사 초청 세미나
■ 내용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기“ (성서의 원리에 비추어본 현대인의 일의 습관)  
■ 일시 : 2023. 8. 30(수) 오후 6시 30분 ~ 9시
■ 장소 : 한양대학교 제2공학관 201호(오프라인/온라인)
■ 등록 : 구글 신청서 작성(https://bit.ly/로버트뱅크스박사초청세미나) 및 2만원 온라인 입금
(계좌 : IMT KOREA 301-0334-2617-21 농협 )
 

성서학자이면서 기독교인의 삶을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로버트 뱅크스 박사님의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 로버트 뱅크스 박사 약력

케임브릿지 대학교 신약학 박사

(전)풀러신학교 교수

알파크루시스 칼리지 명예교수

찰스스터트 대학교 연구교수

 

[저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바울의 공동체 사상, 하나님이 일하러 가실 때
교회, 또 하나의 가족
일상생활 속의 그리스도인
시간의 횡포
신앙의 눈으로 본 리더쉽
그리스도인을 위한 무신론 사용설명서

그외 번역되지 않은 15권의 저서 및 공저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1,2,3 궁방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1,2,3 궁방

저자인 테레사 수녀(1515-1582, 스페인)는 서문의 교황 바오로 6세의 자료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1970년에 학자(박사)의 칭호를 받기도 했지만 ‘스페인의 이단 심문 시기’(1478-1834)에 활동함으로써 많은 오해와 어려움을 경험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nbsp; 2011년.

20세에 입회했으나 건강의 문제로 죽을 고비와 전신 불수의 시간을 보내고 완쾌되어 27세에 본격적으로 영성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영적 체험을 하고 ‘완덕의 길’, ‘영혼의 성’에서 그 경험들을 정리했다. 테레사가 쓴 책들을 거의 가르멜 수녀들에게 읽히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영혼의 성’도 수녀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

 

‘영혼의 성’이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우리 영혼을 말하는 것으로 아주 많은 방들이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있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성을 말한다. ‘영혼의 성’은 7개의 궁방들(각각은 복수의 방들로 표현된다) 을 지나 성의 중심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성의 중심을 향해 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자아의 깊은 곳으로 이해된다.

 

제 일 궁방은 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첫장은 ‘기도’가 이성을 들어가는 문이라고 알려준다. 2장에서는 죄를 지을 때 영혼의 상태를 알게된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피하게 된다는 강조를 하고, 마음안에서 되어 가는 일들, 자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 이 궁방에서는 사탄의 방해가 크다는 이야기로 ‘인내’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꼭 기도하라고 강조한다. 제 삼 궁방의 1장과 2장에서는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두 번째 성채 (이궁방)

이 책을 읽기 전 주에 기독교 상담학 과목의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라고 강조를 하셨고, 몇 나이든 학생들이 반발을 했다. 내면에 집중하며, 나를 돌아보면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과 나의 추함 등을 발견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반발에 마음이 상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그것만 옳다고 하려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 연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여디디야야, 내마음은 이건데…’ 하며 나를 이해 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나의 틀을 하나씩 벗고 있는 과정이다. 여전히 틀 속에 있는 분들의 강한 반응이 내 안에 틀과 반응하여 마음이 많이 상한것 같다. 어쨌거나 그 사건 후, 아버지께 계속 물어보고 있던 차에 ‘영혼의 성’을 읽기 시작했다.

 

일 궁방의 2장에서 ‘자아인식’을 익히라고 강조하는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아버지 내가 틀린게 아니죠? 그 분들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런데 지난 목요일 채플메시지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 가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 책과 목요일 메시지로 상한 마음이 위로 받고 답을 얻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얼 써야 할지 몰라 기도했다’ 초반의 이런 말들로 시작해서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때맞춰 보내주신 교수님의 정리 자료와 검색을 통해 이 책이 테레사의 영적 경험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는 이해가 됬다. 번역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차이로 약간씩 읽는 속도가 늦춰지고 몇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겸손을 강조하는 삼 궁방을 읽던 날은 본디오빌라도 재판 본문이 큐티 였다. 내내 마음에 본디오 빌라도와 내가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삼 궁방에서 그렇게 타협(?)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다. 저자는 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확 드러냈다.

 

‘이런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만족하는 따위는 절대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되리라 믿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에서 본 스데반의 순교와 신화 비교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2.1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2.2 스데반의 순교와 신화 비교
 
Ⅲ. 나가는 말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서 페스트를 퇴치하는 아폴로니우스의 투석 이야기와 비교하여, 사도행전 6-7장에 나타나는 스데반의 순교를 본 논문의 배경으로 하고자 한다. 유대의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세력에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6:7) 스데반이 자신들의 안위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유대 역사의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7:51-53), 그것에 마음이 찔려 분노하여(7:54) 스데반을 희생시킨다. 여기서 스데반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3의 길인 자신을 ‘모든 것을 알고 죽는 희생’ (Intelligent victim)에 내어 드림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를 뿐 아니라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주제어 : 르네 지라르, 모방욕망, 희생양, 신화, 예수 그리스도, 스데반

 

. 들어가는 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이론으로 스데반의 순교 상황을 보고자한다. 르네 지라르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서 필로스트라토스의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를 소개하며 아폴로니우스가 죄 없는 거지를 에페소스 시민들이 투석함으로 페스트를 퇴치하는 사례를 보인다. 성경 안에서 동일한 투석 상황인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신화와는 다르게 복음이 모방 욕망을 극복한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도행전 6:7절에서 보면, 유대의 기득권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의 반열에 자기들의 세력인 제사장들 까지 합류하면서, 유대 사회에서 자신들의 안정권의 기반인, 성전과 회당 체제에 영향이 있을 것을 예측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스데반이 성령으로 말함을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6:10) 그가 유대 역사의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 그것에 마음이 찔려 분노하여(7:54) 공회라는 이름으로 집단 폭력 한다. 여기서 스데반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3의 길인 자신을 모든 것을 알고 죽는 희생 (Intelligent victim)에 내어 드림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스데반의 사건은 르네 지라르 모방 욕망의 삼각형이론에 근거해 볼 때 유대 근본주의자들주체가 되고, 매개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대상은 유대사회에서의 기득권과 인기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유대 근본 주의자들은 로마치하의 이스라엘 상황에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사회의 안정이라는 핑계로 그리스도인들을 사회에서 처단하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에 서 있던 스데반은 유대 근본주의자들에게 희생양으로 적절했다.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모든 상황을 알면서(7:55-56)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7:60) 죽음을 맞이한다. 다른 문학에서와 같이 희생양 이후의 폭력의 악순환이나 신화화가 아닌 공동체를 살리는 죽음이 된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자리에, 이후에 바울이 될 사울이 있었다고 밝힌다.(7:58)

본 논문에서는 먼저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에 대해 알아보고, 스데반의 죽음이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의 관점에서 일어난 일인지 고찰해 본 후, 아폴로니우스의 투석 상황과 비교해 보므로 둘 사이의 차이점으로 신화와 복음의 차이점을 살펴 본다.

 

. 본론

2.1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문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종교학 뿐 아니라 신학과 인문학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르네 지라르는 1972폭력과 성스러움출판 전까지는 문학 비평에 집중하다가 그 후부터 철학, 신학 등을 연구하였다. 인간 사회의 폭력 문제에 대한 답을 구약과 신약에서 찾게 되면서 그 자신이 회의주의적 무신론자에서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에 의하면 원시 사회에서부터 인류는 폭력과 연결되어 왔다. 인간 심리 깊은 곳의 모방 동기와 그로 인한 모방 갈등을 폭력의 원인으로 본다. 사람들은 특정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기에 직접적이며 자발적인 욕망이란 없다. 지라르는 이러한 관계를 욕망의 삼각형으로 표현한다. 욕망하는 자기, 욕망의 대상인 타인, 매개된 욕망이다. 자기(모방자)와 타인(피모방자)의 차이가 현저히 나는 경우 둘 사이는 구별되고 사회 질서는 체계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모방자가 피모방자를 완전히 모방하여 둘이 동등하게 되면 짝패(double)가 되어 갈등과 투쟁으로 사회의 질서가 깨지면서, 공동체가 위험에 휩싸이게 된다. 짝패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 질서의 붕괴로,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원시사회에서는 희생제의를 만들었다. 힘의 균형이 팽팽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투쟁의 상태에서 공동체는 지배 문화와 다르면서, 비난을 피해갈수 없는 무력한 경계선의 사람, 이방인, 힘없는 자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 일인에 대한 만인의 반대인 희생양(scapegoat)으로 만든다. 이렇게 공동체의 폭력적 욕구가 한 희생자에게 전이되는 과정을 희생 기제(the surrogate victim mechanism)라고 부른다.

 

...이 희생양을 매개로 하여 사탄은 사탄을 물리친다.
사탄은 희생양 매커니즘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은 또한 인류 문화를 지배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인류 문화의 기원이 바로 이 살해에 있기 때문이다.
카인의 문화뿐 아니라 모든 인류 문화의 기원에는
결국 악마, 달리 말하면 나쁜 모방이 있다.

-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116.-


이러한 희생양 기제 뒤에는 나쁜 모방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라르는 그것을 악마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집단 폭력의 희생양을 은폐하기 위해 신화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이러한 희생양 기제를 폭로하고 희생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을 지라르는 발견하고, ”복음서는 신화의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모든 종교들과 문화의 기원은 감추어져 있는 모방 폭력에 기반 하지만, 성서는 신화들 처럼 살인자들이 나오지만 신화에서처럼 그들의 범죄가 정당화 되지 않고 그들의 죄를 명백히 밝힌다. 이러한 위대한 문학 작품인 성서가 자신을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들었다고 지라르는 고백한다. 지라르의 실존적 신앙 고백으로 인해 인문학계에 데리다와 라깡 같은 철학자들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라르의 모방이론은 원시 문명부터 자본주의 사회까지 연구범위가 광범위하다. 지라르 이론을 통해 유럽 철학계의 바티모, 아감벤, 지젝등의 철학자들이 기독교와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지젝이나 바티모 등은 지라르를 통해, 기독교와 자신의 철학 사이 대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지라르는 이렇게 인류학이 신학에까지 확대되는 것은 신학자들이 복음서의 인류학 영역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2 스데반의 순교와 신화 비교

스데반의 순교의 나레이션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많아지므로 인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할 일곱 명을 뽑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점점 많아지고 있고(6:1, 7), 더욱이 제사장들 까지도 예수의 도에 복종하고 있다. 더불어 일곱 명 중에 한명인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서 행하고 있다.(6:8) 회당에서 스데반과 논쟁할 경우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당하지 못하여 이기는 사람이 없기 까지 했다.(6:10) 이러한 배경에서 결국 스데반은 공회라는 이름으로 투석 당한다.(7:60) 스데반은 왜 죽었을까? 스데반의 죽음의 배경이 되는 사도행전 6장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배경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경우도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유대 지배계급들이 예수님을 시기했고, 스데반의 경우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예수의 제자들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그들에 의해 대제사장 앞에 끌려와 있다.(7:1) 예수님도 스데반도 공회에 잡히는 과정이 거짓 증거에 근거했다.(6:1-13) 그리고 예수님도 스데반도 죽음 앞에서 도리어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고 있다.(7:60)

 

지라르는 예수님의 죽음이 모방 욕망에 의한 희생적 죽음이지만 희생양 기제를 끊기 위한 순전한 희생양이라고 해석한다. 스데반의 경우도 지라르의 모방 욕망의 이론에 따라가 보자.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늘어나 자신들의 안위와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분위기가 위협받을 것을 불안 해 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 계급들이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증가하여 회당에서 자신들이 아닌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었다. 유대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안정감과 인기를 위해서 라이벌인 예수의 제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예수를 처리할 때처럼, 거짓말을 해서라도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스데반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의 삼각형 구도에 욕망하는 자기는 유대지도자들이었고 욕망의 대상인 피모방자는 예수의 제자들이었으며, 매개된 욕망은 예루살렘에서의 인기와 안정된 기득권이었다. 여기에서 예수의 제자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인기에 위협을 느낀 유대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예루살렘 사회의 안정을 위해 회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스데반을 희생양으로 선택한다.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7:52)라며 지라르가 말하는 역사에서 반복되다가 예수님까지 살인한 유대 지도자들의 희생양 기제를 밝힌다. 십자가의 승리는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완전한 포기의 결과다.... 이 정도로 예수는 전면적으로 폭력을 포기한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스데반 또한 그들의 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의 사함을 구하며(7:60)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스데반의 죽음을 지라르의 모방 욕망에 근거한 죽음으로 볼 때, 여기서 한 가지 신화와 비교해 볼 사례가 있다.

 

2세기경 유명한 정신 지도자인 아폴로니우스가 에페소스에서 페스트를 퇴치한 과정을 소개한 책인 필로스트라토스의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가 있다. 에페소스에서 페스트가 창궐하고 막을 방법이 없자 유명한 아폴로니우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폴로니우스는 에페소스 사람들을 극장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 거지 한명이 장님처럼 눈을 껌벅이며 빵 부스러기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아폴로니우스는 거지를 신의 적이라며 거지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고 에페소스 사람들은 자선을 구하는 애처로운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인다는 것에 분노하며 아폴로니우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 이냐고 반문했다. 아폴로니우스는 거지가 모든 신의 적이니 돌을 던지라고 사람들을 몰아붙였고 몇 사람이 거지에게 돌을 던지자 돌을 맞은 거지가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날카롭게 쳐다 보았다. 그 눈을 보고서야 에페소스 사람들은 거지가 악마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돌을 던져 거지는 돌 무더기에 쌓이고 그 자리에 수호신의 흉상을 세워주게 된다. 사람을 돌로 죽이는 투석형은 고대 그리스의 오래된 종교 관습인 파르마코스(속죄양)’ 희생양 제의이다. 스데반도 거지도 사회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투석형을 당했다. 신화에서는 가해자들의 입장에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석하고 신상을 세웠지만, 성경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스데반이 거짓 증인들에 의해 무고하게 죽었음을 밝힌다.(6:11-13)

철저하게 폭력을 포기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천년이 넘게 생존해 있고, 철저하게 하늘에 시선을 두고 있던(7:56) 스데반의 죽음 바로 앞에 기독교의 이방인 전도의 사도가 될 바울이 있었다.

 

. 나가는 말

스데반의 순교 상황을 분석하면서 스데반의 죽음이 르네 지라르가 주창한 모방 욕망에 근거한 사건이었는지 고찰하고, 신화적 모방 욕망과 스데반의 순교를 비교했다. 사건의 정황으로 볼 때 아폴로니우스의 거지도 스데반도 동일하게 모방 욕망의 삼각형 구도 안에서 투석 당했다. 마찬가지로 지라르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모방 욕망의 결과로 보고 있으나 가해자 입장에서 기술되는 신화 읽기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진실을 밝혀 내므로 모방 욕망을 끊어내는 것으로 신화와 복음의 차이점을 읽어 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 희생이 아닌, 제의로 읽어낸 서구문화는 기독교를 신화로 만들어 박해자의 대열에 서게 하므로, 기독교 서구문화가 제국주의적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예수님을 철저한 비폭력주의라고 고집하는 경우나, 폭력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것 등 지라르의 이론에서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도 있지만 그가 분석한 대로 대부분의 문화와 신화들이 모방 욕망에 뿌리를 두고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계속해서 모방 욕망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짝패가 팽팽해져 무질서가 절정에 달했을 때 사회가 동의하는 모방적 만장일치를 통한 희생양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 이다. 예수님을 통해 이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독교에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폭력을 포기하고 예수님처럼 자발적 희생의 자리에 섬으로 사회에서의 모방 폭력을 드러낼 수 있을까. ‘모방적 만장일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혼자 옳은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아폴로니우스의 거지처럼 이글거리는 눈을 드는 것이 아닌, 스데반처럼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진실을 밝히며 희생을 선택 할 수 있을까...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 역사 가까이에 있는 김구 선생님을 생각하게 된다. 김구 선생님은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로 세워지기를 주장했고 미국에도 소련에도 타협하지 않았다. 누군가 타협하지 않고 옳은 것을 고수하고 싸워야 할 것 같은 상황에 김구 선생님은 미국과 소련의 등을 업고(짝패형성) 국가를 세우려는 지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허락한다. 예수님 같은 자발적 희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꿈이 아직 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도 문화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의 바램 대로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 퇴치와 관련하여 백악관에서 바이든과 BTS가 만나는 현시점에 김구 선생님의 희생적 죽음을 생각해 본다. 민족끼리 싸우지 말자고 했던 김구 선생님이 자기민족에게 죽음을 당했으나, 김구 선생님의 문화 선진국의 꿈을 기억하며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2022, 한국의 젊은이 들이 있다.

 

 

참고문헌

 

[일차자료]

지라르, 르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이차자료]

金九. 白凡逸志. 서울: 敎文社, 1980.

박만. "폭력과 속죄 죽음: 르네 지라르 (Rene Girard) 의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53.1(2007): 111-140.

박종균. “르네 지라르 (René Girard) 의 성서적 종교와 비폭력.” 한국기독교신학논총34.1(2004): 269-296.

이경희. "24 , 지라리안 (Girardian), 성서영성: 모방 폭력의 위기에서 변화를 경험케 하는 내러티브의 힘." 신학과 실천78(2022): 207-232.

정일권. “르네 지라르 (Rene Girard) 의 기독교 변증론.” 조직신학연구. 14(2011): 107-126.

최인식. "르네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론에서 본 폭력과 순교 (殉敎)." 한국조직신학논총. 62(2021): 163-202.

최형근. “르네 지라르의 사상에 대한 선교학적 고찰.” 신학과 사회. 35.4(2021): 95-128.

 

아래의 내용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중

렉시오 디비나 부분을 읽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논문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성경적 영성_렉시오 디비나

 

by 샌드라슈나이더스

 

저자가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것도 기억에 남지만, 교수님이 강의하시면서 들어주신 예들과 저자가 제시한 예제들이 마음에 남아있다. 설교, 예식, 소그룹, 사회적 참여(회심적 사회정의, 약자와 함께 하기)와 제일 마지막으로 렉시오 디비나를 말한다. 렉시오 디비나의 성경적 기원을 사도행전 간다게의 이야기라고 한다.

 

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nbsp; Interpretation (2002): 139.

 

렉시오 디비나는 집중해서 읽고, 기억에 남겨 심사 숙고하며 깊게 들어가면서 깊은 묵상에서 기도로 이어져서 관상으로 진행된다. 솔직히 정말 다른일 하나도 안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 도피일까 싶기도 하다.

 

2주일에 한 번씩 수업하는 ‘개인 영성지도 실습’에서 매주 3개씩의 본문이 주어진다. 개강과 사순절을 맞아 순탄하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그 말씀들은 너무 귀하다.

 

때로는 통독하고 있는 말씀들과 시너지를 이루어

나에게 이펙트를 주기도 하고,

묵상했던 말씀이 갑자기

병원에서 산책길에서 툭툭 튀어져 나와

나를 평화로 뒤흔든다.

 

렉시오 디비나는 신중하게 읽고 읽으라고 했는데 여러 번 읽을 동안 무언가 뽑아내려는 나의 의지 때문에 아무 일이 안 일어나다가 무의식 가운데 있을 때 말씀들이 살아서 올라올 때 소환되는 기억이 있다. 아무데서나 하늘 아버지와 깊은 대화가 시작된다. 가끔 ‘그 말씀’을 혼자 오해하고 있는 걸까 싶을 때도 있다. 불신일까, 망상일까..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성도의 교제로 부르심을 느낀다.

 

  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2002): 133-142.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적 영성 (Biblical Spirituality)

 

산드라 슈나이더스 (Sandra M. Schneiders, IHM)

 

. ‘해석’ : 1960년대 이후 관심

. 개신교의 약점 : ‘영성’ (경건주의에서 시작된 칭의와 성화에 관련된 경건)

   → 영성의 중요성 발견 (은혜의 대체물이 아닌, 은혜와의 역동, 전통의 풍성함 재발견)

. 가톨릭의 약점 : ‘성경’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성직자 전유)

   → 개신교 성경 공부 그룹과 방법의 도움으로 성경에 관심

성경적 영성에 관심이 커져감

 

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nbsp; Interpretation (2002): 133-142.

 

. 성경적 영성 (Bible and spirituality < biblical spirituality)

(1) Bible and spirituality : 하나님 말씀으로의 성경과 개인적 신앙을 별도로 구분 하는 듯함.

(2) biblical spirituality : 기독교인의 영성은 성경적이고 성경을 통해 양분을 섭취하므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음. 영성이란??

 

. 기독교 영성 : 기독교 신앙의 생생한 경험

(1) 궁극적 가치를 지향 하는 것 :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

(2) 삶의 통합을 위한 프로젝트와 과정 : 인생전반에 성경의 은혜로 예수님의 삶(신적 삶)과 연합

(3) 믿음의 공동체(교회)안에서 이뤄짐 : 말씀과 성례전, 사명(믿음을 표현하며 나누는 것)

(4) 개인 초월적 믿음 :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연합)

기독교 영성은 성경적 :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 두고 안내 받는다.

 

1. 성경적 영성의 세 가지 의미

(1) 성경에 표현된 영성

: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가르쳐주는 하나님과의 관계(경험)의 패턴

 

. 편집비평(20c) : 성경의 저자들이 그냥 받아쓴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의도가 있다.

   . 다양한 역사적 상황(국제적 상황, 공동체의 상황 등등)의 영향을 인식

    → 신약성경의 신학에 관한 다양한 이해를 가능 : 편집비평 +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경험

   ∴ 신학 = 영성의 지적 표현 믿음 : 무엇인가의 표현 (다양한 영성)

 

. 성경에 나타나는 다양한 영성 :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실습한 것들

   A. 대화적 영성 : 이스라엘 역사에 참여하고, 인간에게 개입하시는 신명기 전통

   B. 그리스도 중심 영성 (바울)

   C. 관상적 예수 중심 영성 (요한)

   D. 목회자들의 교회적 영성

   E. 계시의 묵시적 영성

   F. 시편의 영성 : 기도, 시 안에 표현된 구약 성경 영성들

     → 다양한 셋팅 안에서 각 시대별 여러 가지 영성의 자원 제공

     (ex)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회합적vs수도적, 관상적vs예언적, 공공신학적vs신비적...

 

건강한 기독교 영성은 일부 두드러진 특징이 있을지라도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다.

 

(2) 성경의 영성들에 영향 받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패턴 (성경적으로 통합된 현대 영성)

. 균일하게 성경적이지 않을 수는 있다. (루터 > 당시 가톨릭)

 

(3) 성경 본문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가 참여하므로 변하는 과정 (변화를 추구하는 읽기)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지만 역사-비평적 석의와 문학적 분석 필요

  성경학자의 역할 : 성경을 정확히 연구 (과거의 의미, 본문이 의미, 현재에 암시하는 바)

 

. 3개의 세계 : 역사비평(쓰여질 당시), 문학비평(text 자체, 저자, 주인공), 독자반응 비평(현재)

  →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도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 변화를 추구하는 읽기에 주의 점 : 자기해석(eisegesis), 증명의 무기로 본문을 사용하면 안 됨

본문이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하고, 그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게 하는 것이 성경 학문(석의, 비평)의 주된 목적

 

. 회개, 성화 : 독자 자신이 말씀에 영향 받을 때 발생 (성령의 내적 역사에 의해 영향 받음) 기독교 제자도, 예수님의 신비, 환대,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세계

 

2. 성경 읽기를 통한 변화 (Transforming reading of scripture)

. 기독교인은 어떻게 성경 본문을 통해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에 참여하는가?

(1) 설교(증언) 듣기

. 신약 성경보다 앞섬

.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과 사역 해석 신구약의 통일성(설교의 중재)

 

(2) 예전

: 말씀에 참여하므로 성경적 영성을 실천하는 것 신구약의 상호작용 안에서 발생

. 성구 일과표, 세례, 성찬, 절기와 그 행사 (상징, 노래 등 개인&공동체의 변화)

 

(3) 소그룹 나눔

: 믿음을 나누는 것의 특별한 가치 3가지

A. 상황 : 같은 문화, 시간, 위치 성경적 영성은 공동체성 강화(현재, 소망, 하나님의 현존)

B. 변화/자극 : 억압과 불의를 바꾸도록 자극

C. 말씀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역할 : 배타적 해석에 대해 의문 제기하며 변화 (ex) 페미니스트

 

(4) 변화된 행동에 직접 참여 (사회 참여)

. 성경의 조명 아래 훈련 하며, 훈련의 조명 아래 성경 대하기 (본 회퍼)

 

(5) 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읽기)

 

[추가]

해석학(철학) : 건설적 비판을 통한 생산적 해석 (인식론 현상학 언어학 해석학)

신학 : 구약, 신약, 조직, 역사, 실천, 선교 신학 등..

  . 역사신학 : 인류 역사에서 성경을 보는 시각으로 연구

  . 조직신학 : 신학의 조직론적 관점에서 연구

     . 영성신학 : 조직신학의 하부로 기독교의 영성을 연구

  . 기독교 영성 : 해석학에서 태동하여 해석학의 도구를 이용하여 ~

     . 현대의 문제들(포스트모던)을 담아낼 수 있는 영성

     .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드러난 곳이 성경이고 하나님 경험이 영성

     . 성서학 기반의 영성 학자, 조직신학, 역사신학, 심리학 등

  . 성서학 : 학문성에 무게를 둠 (해석과 변화까지 커버안됨)    ex. 드라마학

  . 성경적 영성 : 성경 적용해서 변화하는데 방점                      ex. 뮤지컬

 

아래의 내용은 15, 16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5장 공통적인 어려움의 영역들 & 16장 영성지도의 잠재적 유익들

 

15장은 영성지도의 공통적인 어려움들로 나도 어렴풋이 경험하고, 또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더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던 부분이었다. 대부분 직접 피지도자들이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바라지만 책에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을 영성지도자로 대치하거나 영성지도자의 여정을 의도하지 않게 복사하고 닮아가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닮아가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만남을 가진 경우에는 어쩔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긴하다. 그래서 이전 장들에서 말했듯이 영성지도자와 기간을 정하고 지도를 받는 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책에서는 양자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두라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상호 의존으로 인한 위험 가능성을 줄인 것 같다. 책에서는

 

성령안에서의 자유의 여부로

관계 이상을 점검하고,

性의 문제 부분은 ‘인식’으로

계속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라

 

고 조언하고 있다. 참 좋은 답인 것 같다. 실망이나 분노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면’과정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실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인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크리스찬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의 많은 만남에서 그들이 감정의 문제를 ‘인지’하도록 돕는 이 땅의 영성지도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교회에 오래 다니신 어른들 중에서도 율법의 틀에 매여서 젊은이들과의 소통도 막고, 본인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이 못들어 가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16장에서는 영성지도의 잠재적 유익들을 말하고 있다. 인식이 증대되고 신뢰가 깊어지고(누구와? ^^ 아래 나옵니다~), 영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인식 증대로 인해 타인들은 쉽게 못 느끼는 것을 느껴서 민감해지는 불편함도 있지만 15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망이나 분노 등 감정의 인지는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통로이므로 나의 영에게 결국 유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긴장이 풀어지므로 감사할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지하고 감사할수 있고 그것이 (상담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신뢰’의 문제와 연결이 된다. 자신이나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한 요인이 있다고 상담학에서는 말한다. 영성지도를 통해 나와 타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높아지면 결국 나의 안정감이 높아지므로 긴장감이나 쓸데 없는 감정적 소모없이 주어진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고 처리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마태복음 11:26-28절이 아닌가 싶다.

 

‘교육목회‘과목에서 사역자가 건강해야 제대로 사역할수 있다고 했다. 나는 중국에 있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온 2016년도에 나의 갈길을 몰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래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의 상태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것들이 있었다. 3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야 나의 상태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닳아 가고 있다.

 

매일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의식을 성찰하고

내가 지내온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때,

내 안에, 내 삶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보고

거기서 안정감과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거나 나의 필요나 상황등에 꼬여 있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주 1일 유통회사에 가서 IT업무를 돕고 있다. 나의 재정을 채우시기 위해 회사에 보내셨나 하는 내 입장만을 고려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가고 나서 알았다. 하나님은 그곳의 영혼들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안정감을 찾게 되길.. 풍성히 누리게 되길 바란다.

 

아래의 내용은 15, 16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4장 기독교 훈련들

횃불에 와서 많은 수확이 있었지만 이번학기 영성형성 과목의 책을 빠지지 않고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은혜가 되었다. 그동안 나의 영적 여정을 검증 해주고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도전을 준다. 항상 감사하다. 책을 읽으므로 그동안 지나왔던 과정들에 대해 ‘확증’을 받고 말로 표현 못하던 부분들에 대해서 글로 보면서 정리가 되었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훈련은 전인을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서 많이 위로가 되었다. 사실 신학적으로 근거를 찾지 못한 채, 나의 임상만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했던 이야기 들이 이 책에 정리 되어 있어서 감사했다. 항상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아야 한다고 부담 갖는 청년들은 피곤한 몸으로 인해 아버지 앞에 있는 것을 잘 유지 하지 못한다. 대게 기도하다가 잠들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에 많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나눈다. 그래서 어떤 친구에게는 집에서

 

가장 편한 장소와 자세로

그렇게 앉아서 아버지께 말을 하라

 

고 지도해 준적도 있었는데 책에도 딱 그 부분이 나왔다. 책 읽기 전날 만난 A라는 청년도 살이 쪄서 힘들어서 퇴근하고 운동하는데 운동하는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고 했다. 가장 집중하는 기도.. 나 또한 물속에서 홀로 있는 수영하는 시간이나 운동 할 때 아버지께 집중이 푸욱 될 때가 있어서 가장 기도하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또한 감정이 상하거나 힘들 때면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께 자주 머물렀고 집중했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직면 하는 경험들을 했었는데 ‘의지’ 부분에서도 그런 설명이 있었다. 상관도 없는 것들 혹은 아주 옛날 것이 떠오르는 것들을 통해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은 경험들이 생각났다.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떠오를 때 당황하고 짜증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들이 아버지를 신뢰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자발적인 훈련"은 정말 유익이 되는 것 같다.

 

21세 때, 그렇게도 갈망하던 교회에서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청년부 목사님이 정시기도를 제안하셨다. 그때 하던 정시기도를 아직도 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올 때 까지는 30분 이상 아버지 앞에 머물렀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많이 자유하며 그 시간을 누리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매일 말씀을 3장씩 꼭 읽었는데 신학교에 와서는 말씀 보다는 다른 책들을 읽느라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어렵다.

 

책을 읽기 전날도 몇 년간 나를 피하고 만나지 않던 과기대 졸업생 A와 만났다. A의 영적 상태가 바닥을 치고 진로가 흔들거릴 때 만났었다. 모든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어서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우선 좋은 공동체에 소속해 있기만을 부탁했다. 그리고 A는 온누리 서빙고 중국어 예배에 갔다. 그곳에는 우리학교, 우리학과 졸업생들이 많다. 그 졸업생들은 나를 만나고 있었어서 그 친구들을 통해서 꾸준히 A가 양육을 잘 받고 공동체에 붙어 있을 수 있도록 부탁 했었다. 이번에 A는 양육도 받고 여러 가지 아픈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조금씩 찾아간 것 같았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욕심을 갖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분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영적 진보이다. 또한 A가 어려울 때 티 안나게 A를 돕던 선배들이 이제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다. 이제 A가 그들 옆에서 티 안나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건강한 영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A도 만남 속에서 자기가 이제 형들을 기도로 도와야 할 때임을 인지했다. 책을 읽으면서 전날 A와의 만남이 계속 생각났다. 임상과 이론과 실습을 병행케 완벽한 학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래의 내용은 12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12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2장 기도

지난주 떼제 기도회였는데 어떻게 이번주 읽기가 ‘기도’일까... 하나님의 섭리? 책에서 말한 대로 기도는 태도가 되고 고스란히 행동이 된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

 

정시기도를 시작했던 20살 무렵부터 내가 할 이야기가 끝나면 하나님께 ‘제가 무얼 기도할까요’ 항상 물어봤었다. 때로는 그 물음 이후로의 기도가 더 길고 깊다. 그래서 그 질문이 참 좋다. 나랑 상관없는 상황에 대한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시고 그러기 위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황"을 다스리고 계시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계심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의 유익과 이해관계는 전혀 없는

하나님의 이해관계 속에

내가 함께 있다.

 

이런 황홀한 기도의 방법이 이번 12장에 있었다. "기도의 종류와 기도의 전환" 부분에서 요즘 나의 ‘기도 상태’를 점검 할 수 있었다. 기도 시간에 오래 앉아있지 못해서 나의 상태를 봤을 때 불안했었다. 그런데 책에서 그런 기간이 있다고 써 있어서 놀랐다. 나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는 것일까.. 정말 횃불 입학이후 영성과목은 내게 많은 답을 준다. 감사하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20대부터 주변의 영적 친구, 선후배들은 내가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대언이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 여쭤볼 때 마다 내가 방언을 한다고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답답했다. 이십년이 지난 이제서야 나는 임상으로 조금씩 나의 묵상 기도가 나의 방언인 것을 알아가고 있다.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바로 12장에서 방언의 종류가 음성, 묵상, 관상에 존재한다고 정확히 적혀있다.

 

개인의 개성과 기호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인식에 영향을 준다

 

고 했는데 어쩌면 묵상 기도를 하는 나의 기호에 따라 방언도 그렇게 주신 것 같다. 나를 보호하시고 나의 성향을 인정해주시고 한걸음씩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책에서 관상기도가 하나님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안에서 쉼을 갖는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지난 목요일 떼제에서 그 경험을 했다. 연변에 있을 때부터 떼제에 다녀오신 분이 나에게 몇 개월 떼제에 다녀오면 좋겠다고, 나랑 딱 맞을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그 떼제를 횃불에서 처음 만났다.

 

“찾아오시는 하나님” 나는 주 3일 신학교에 오고, 주 2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주 1일 회사에 풀타임으로 근무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사시간은 조선족 청년들과 만난다. 주 1일 가는 회사는 도와드리기로 하고 가고 있다. 여직원이 7-8명 있다. 20-30대로 이루어진 그 여직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계속 여쭤보며 한 두달 회사의 업무들을 익혔다. 내가 맡은 부분은 업무의 전산화 이다. 방학 때 처음 2일 동안 도와주러 갔다가 노가다를 해서 눈도 몸도 많이 상했다. 이런 노가다는 20대나 할 일이지 싶기는 했는데 노가다를 하는 내내 이거 프로그램으로 하면 2-3시간에 끝낼텐데 왜 수작업을 할까 계속 고민하면서 16시간을 일했다. 회사에 처음 갔으니 내가 주도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떼제 기도회때 묵상 기도 시간에 갑자기 회사가 내 안에서 올라오고 하나님께서 그 회사의 주요 멤버들을 너무 안타까워하신다는 마음에 꺼이꺼이 울음이 터졌다. 숨을 참지 못할 정도의 눈물이었다. 온몸이 흔들리는 눈물이었다. 조용한 시간인지라 참았는데 그 부어진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그 두 사람. 하나님이 너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이전에 한번도 그들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초점은 그분들 이었다.

 

금요일 저녁 교회의 심야 기도회. 같은 기도의 자리이고, 동일하신 하나님인데 왜 여기서는 그 하나님을 못 만날까... 의문을 남긴다. 매일 매순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린다.

 

아래의 내용은 11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11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1장 성경

교수님의 모의영성 지도가 진행된 며칠 후에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었다. 그 시간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내가 평소에 사람들과 하는 대화 방식을 다시 한번 깨닳았다. 피지도자가 영성지도 시작 전에 본인의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영성 지도 시간에 오래도록 나눈 이야기는 자신이 한 사역에 대한 이야기 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지도자였다면 그렇게 사역의 열매가 보여지는 시기인데 왜 상태가 안 좋다고 했냐고 직격탄(나는 그렇게 생각안하지만 청자는 그렇게 느낄 듯..)을 날렸을 것 같다.

결국 지도자인 교수님이 나서지 않았음에도 피지도자안에 가장 큰 덩어리인 아버지와의 관계 껀이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이것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리라...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말하는 가운데, 표현하는 가운데, 회중 앞에서 꺼내는 가운데, 치유와 답을 주시길 계속 기도했다. 멋있다. 아버지 하시는 일은!! 이번주도 압지께서 나를 여러번 돌아보게 하시는 은혜(고로 어려움과 아픔이^^)를 주셨다. 교육목회 시간에 게임을 했는데 옛 자아가 불쑥 올라와서 자리를 크게 잡았다. 항상 압지 앞에 깨어 있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자주 나를 바라보면 정말 창피하다. 그런데 그게 나였다. 그래서 한주 내내 들으면서 울었던 곡이 제이어스의 ‘내 모습 이대로’이다. 이글을 쓰기 전에도 한탕 하고...

 

책을 늦은 시간에 읽었는데 너무도 와 닿아서 집중해서 읽었다. 성경의 언어에서 하나님의 이름, 우리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로서의 이름들이 참 많다. 선생님이면서 동시에 학생이고 그러면서 선교사이고 직장인이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학교에서 늦에와서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하나님께서 직장인들의 힘듦과 고난을 이해하라고 주 1회의 직장을 경험하게 하셨다는 생각을 했다. 도리어 선교단체에 있을때는 내 공부도 하고 설렁설럼 시간을 보냈는데 일반인들의 직장은 점심시간 한시간 빼고(사실 이때도 나는 거의 회의를 하긴한다...) 8시간 내내 초 집중모드이다. 심지어 오늘은 야근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이런 역할의 이름들에 앞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이름은 사랑스런 딸(여디디야 ^^)로 불리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로 모든 곳에서 자리매김하고 싶다.

 

성경의 가르치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에 항상 중요한 고비마다 말씀으로 2중, 3중으로 확인시켜 주신 하나님이 생각 났다. 더불어 연결되어 성경의 많은 이야기 들은 지금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드러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읽은 모든 성경이 마음에 박히는 게 아니니깐...

 

또한 최고로 하나님과 친밀하셨던 예수님이 최고의 영성지도자이심을 책을 통해 상기했다. 모든 상황에서 “Focus on GOD”.

 

예수님처럼 두려움의 한 복판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향할수 있길.. 그리고 두려움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순종할수 있도록 도울수 있길 바란다. 신학을 하고 한국에서 청년부 사역을 하고 있는 언니가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었다. 업무 중 언니의 글을 보고나서, 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언니의 그 반복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 같았다. 역시나 회사에서는 무언지 정확히 모르고 ‘압지 뜻있는 것 같다’고만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수면위로 올라오는 은혜들이 있었다. 열일하고 저녁 늦게 만난 만남도, 또 늦은 시간 언니를 위한 하나님의 위로도 내게는 정말 오늘 하루를 감사로 살아가게 하는 부르심의 은혜이다. 나도 그렇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그렇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과 더욱 깊어질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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