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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산비 (제임스 프레이저 전기, 에일린 크로스만)

by 말씀묵상과 영성지도 2024. 3. 13.

 

산비 (제임스 프레이저 전기, 에일린 크로스만)

 

  ’산비’를 3월 초부터 읽은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다. 3/23일 까지 읽었으니 책 한권을 거의 20일을 읽은 샘이다. 숙제가 발표되자 마자 책들을 훑어 봤고 다른 책들은 (딘 셔만이나 피터와그너 등을 통해서) 약간씩은 접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책은 완전 선교현장에서의 실전 내용이 기록된 책일 것이란 기대로 빨리 읽을 것을 기대했는데… 프레이져가 8년동안 힘들었던 것 만큼 나도 그 부분 까지는 진도가 진짜 느리게 진행되다가 8년째에 영접자가 50명으로 갑자기 늘어날 때부터 나도 읽는 속도가 붙기 시작했었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읽는 내내 의문이었다. ‘이렇게 재밌는 책을 이렇게 지루하게 읽다니..’ 평소 나 답지 않은 자세였다. 나름 ‘영적전쟁’이라는 주제로 읽어서 그러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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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 리플렉션을 적으려고 보니 어쩌면 그 20일간은 ‘영적전쟁의 실습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원래 감정적으로 기복이 심한 편이 아닌데 ‘아 이건 (사탄이 거는) 시비다’ 싶을 정도의 감정적으로 다운되려고 하던 날들이 있었다. 외형적으로 문제되거나 변화된 것들이 없음에도 내 안에서 일어나려고 하는 전쟁이 나를 괴롭게 했다.

 

  대표적인 날이 지난주 금요일이었는데 튜토리얼의 ‘가정 기상도’에서 처음으로 구름이 조금 보이는 날일 뻔했다. 다행히 이성이 먼저 작용(‘지금 어떤 상태 인가’, ‘이런 생각들과 내가 무슨관련이 있는가’)하여 나를 객관적으로 보면서 ‘속임수다’라는 것을 인지하고 언능 빠져 나올 수(쉽지는 않았지만..) 있었다. 그래서 튜토리얼 때는 약간 구름이 있어보이는 것 같다가 심야기도회 때는 완전 화창한 봄날이 되어 있었다. 그날 하루를 되돌아 보며 (선교지에서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것 같은… 공격중의 하나?) ‘이게 승리인거죠?’하고 감사로 잠자리에 들수 있었다.

 

  또 하나.. 지난주 화요일에 알러지로 수업을 2번이나 (그룹토의 시간이긴 했지만) 참석 못하고 누워있어야 했다. 그리고 금요일에 아스팔트 언덕길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무릎에 살점이 쌀짝 떨어져 나갔다. 한주에 2번 이상의 사건으로 이전 같으면 아주 민감하게 문제분석을 하고 하나님앞으로 가지고 가고 난리를 폈을텐데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이상 할 정도로 평안을 빼앗기지 않고 있었다. 병원에 누워서는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말씀이 계속 생각나서 정신을 차리고 나서는 감사하고 있었다.

 

  ‘산비’를 정리하면서.. 닐앤더슨(" 이제 내가 누구인지 알았습니다 ")의 책에 줄쳐진 부분들을, 그리고 강의 자료에 적어 놓은 내용들을 보면서 내가 하나님 안에서 어둠의 권세보다 위에 있는 장소를 점령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수많은 시비들 속에서 상황과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은혜’를 누릴 수 있었던 것 같다.

 

  게다가 ‘산비’의 내용은 지난주에 많은 생각을 하게 했던 ‘타문화 석의’[1]와 ‘타문화 선교전략’수업의 내용과 계속 해서 같은 부분들이 언급이 되었어서 ‘산비’를 오래도록 읽은 것이 도리어 많이 씹어 먹는 효과가 된 것 같다.

  

  평소에 가장 강조하고, 스스로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예방신학”이다. 의학계의 ‘예방의학’처럼 (신학이라고 붙이는게 말이 안되긴 하는데 “예방 영성??”) 평소에 아버지와 관계, 경건의 생활을 해야 비상시에 영적 건강을 유지 할 수 있다”는 나 나름의 이론인데 ‘산비’, 강의자료, 닐 앤더슨의 책의 앞부분에서도 계속 강조되고 있는 것이었다. 

 

  강의자료에도 ‘선교사들을 위한 적용’에서 “개인적 경건/예배 생활 및 연합된 예배생활의 지속”에 별표가 쳐져 있다. 프레이져도 “예방접종”을 예로 들어 설명하고 있었다.

 

  현지에 있을 때 새벽기도, 큐티, 저녁정시기도를 기본으로 하려고 최대한 노력했었다. 도리어 훈련원 들어와서는 ‘육적 건강의 충전’이라는 이유로 새벽시간 확보를 양보했던거 같다. 허드슨테일러의 영성관리(튜토리얼), 프레이져의 영&생활 관리를 보면서 아버지 앞에서 다시 나를 추스려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타협하는 과정에서 대적의 문이 열림을 인지하며…

  

  Y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그랬고 한국에 교회의 후배들을 만나서의 경우를 들어봐도(임상실험 결과^^) 가장 많이 ‘평안’을 빼앗기는 경우가 ‘정체성’을 잃었을 때 온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자기비하, 원망, 자신감 상실, 무기력 등으로 이어지는 경우 ‘복음을 소유한 자의 정체성’을 생각나게 해 주었을 때 모두들 제자리로 다시 돌아가는 경우를 봤었고 닐 앤더슨의 책에서도 많은 예화가 나오고 있다.

 

  프레이져의 이 책이 나오기 까지 가장 많은 자료가 ‘기도편지’가 아니었을까 싶다. 프레이저 처럼 나도 후방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현지에 가서는 더더욱 그렇게 되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고 모두 듣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안 전한다고 안 듣는 것이 아니었다. Y대 같은 공동체에서는 한 학생을 향한 자연스런 팀웍이 가능하기도 하고, 그 와중에 사각지대가 생기기도 한다. 특별히 한학생에게 여러 교직원이 몰리기도 하고 2-3년이 지나도록 한교직원도 접근 하지 않는-사각지대-학생들이 있다. 또 어떨 때는 전혀 생각지 않은 학생들이 너무 쉽게 변화되는 것을 보기도 하면서 ‘기도 외에는 이런 류가’ 없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미리미리 기도를 쌓아놓고 하나님께서 일하실 때를 기다리는게 현명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아무리 피곤하고 힘들어도 한영혼 한영혼을 위해 기도하는 것을 우선시 해야 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래서 나뿐 아니라 관심있는 기도 동역자들이 매일 매일 학생들을 위해 기도 할 수 있도록 매일 한명씩 학과의 학생들의 사진과 근황을 홈페이지에 공유한다. (물론 나는 이메일로 보내고 중간에 도우미가 한국의 보안된 싸이트에 게시하고, 계속 기도 하는 몇 사람들만 찾아온다) 이번학기는 내가 한명도 만날수 없지만 기도로 06학번(3학년) 학생들을 매일 만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하나님께서 불모지인 06학번 가운데 역사하실 것들이 기대가 되고 있다.

 

  프레이저 처럼 나도 낮시간에는 사무실로 계속 해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잔무들로 중요한 수업준비며 양육준비를 전혀 할 수 없었다. ‘복음 전하는 사람이 너무 바빠서 복음을 전할 수 없다’는 프레이저와 리수 여인과의 대화는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무실에 있는 시간 내내(심지어 밤 11시넘은 시간까지도) 학생들이 약속하고 혹은 불식간에 찾아온다. 어느 시점인가부터 ‘아이들에게 바쁜 티를 내면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레이저가 말한 것 처럼 “어떤 경우든 누가 찾아오면 환영을 해야 합니다. 어느 때에라도 손님이 오는 것을 마음으로부터 진심으로 환영한다는 태도를 길러나가는 것이 좋습니다.” 이런 지혜를 아버지께서 내게도 주셨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쁜일이 있어도 힘든 일이 있어도 사무실로 찾아오는 학생들에게 (학생들이 좋아하는 한국 노란맥심) 커피와 차와 (학생들이 언제와도 먹을 수 있도록) 맛난 과자를 권하며 편안히 이야기 할수 있도록 사무실 분위기를 조성해 두었다. 그럴때 내가 의도 하지 않았던 아이들의 반응들과 친밀함, 사각지대 학생들이 생기를 얻는 것을 보았다.

 

  ‘나에게 책이라도 읽을 시간이 좀더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것’ 혹은 case study에서 처럼 ‘이러한 열매’를 바라는 것 등은 프레이저의 말처럼 ‘육신적인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바쁘고 힘들 때 도리어 지금 이 시간을 주장해 주시는 아버지를 기대하며 그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하는 것이 나에게도 유익이고 아버지의 사업(^^)에도 유익인 것들을 경험했고, ‘산비’를 읽으며 다시 생각하게 했다.

 

  아무리 해도 내가 따라 갈수 없는 것. 프레이저의 헌신(환경을 초월한 삶), 그리고 엄청난 기도의 시간은 예수님을 대면하는 그날까지 따라가기 위해 노력하고 싶다.



[1] 프레이저의 리수 족에게 접근하는 여러 방법들과 기다림이 타문화 석의의 적용 같았다. 그들에게 맞게 들어갈 메시지(리수족 같은 경우 정령숭배 관련..)와 그들에게 맞춘 삶의 전반이, 평안과 안일을 추구하는 내 욕심 차리는 선교사인 나를 부끄럽게 했다.

‘타문화 선교전략’의 연구(프레이저 같은 경우 계속 관찰하고 기다리던.. 물론 초반의 조급함과 실수도 있었지만..)와 수업시간에 말씀하신 선교사의 본부와의 자세(진로)등에 대해서도 쉽게 적용해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순종’하는 모습은 영적전쟁에서도 우위를 차지하는 부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