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추어야 보이는 것

다시 교회들이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가 50100명만 넘어도 온 나라가 난리 였는데 지금은 수천, 수 만명이 발생하는데 교회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에게 왜 그런 격리의 상황들이 있었는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다시 교회들이 문을 여는 이때, 나는 부활절을 기준으로 예배와 공동체에 대해 다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경희. 멈춤. 동연.

 

마음의 태도.

우리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갈망하는 그 마음의 태도가 우리에게 중요함을 멈춤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다윗이 궤를 옮겨 오려고 했던 것도(그래서 웃사의 죽음에 하나님께 감히 분을 내었던 것도..), 모방 욕망으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추구하는 것도, 교회에 지체들을 미워하면서도 교회봉사에 열심인 것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나를 직면하여 보는 광야의 시간 없이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있는데 멈춰 있을 때는 달리지 못해서 불안해 하고, 다시 달릴 수 있을 때는 생각 없이 뛴다. 깊은 호흡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 모든 것을 멈출 때 욕망이 아닌 성령께서 나를 주관하시는데.... 성령께 내어드릴 시간이 없다.

 

성공해야 하고

잘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고,

제시간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쁘고 급할수록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내어드려

상황의 주인 되신 분께,

그리고

이 상황을 허락하신 분께

마음과 시선을 고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최대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고 이겨내야 하는게 우리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이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사는 사람을 발이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이라고 매도한다. 다수가 옳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위해 전 재산을 다 팔아 밭을 사는 것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경험이 있어야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해진다. 모교회 담임목사님이 40일 금식을 하셨다. 금식 전에 금식을 계획하신 이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이 너무 조급해서 금식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모임 제한도 풀린 이 시점에 담임 목사님은 더욱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이전처럼 어렵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광야에서 사선의 치열한 시간을 보낸 결과이다. 40일의 금식을 통한 경험으로, 일상에서도 생명의 매순간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볼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긴 금식의 결과 매순간, 일상에서의 예배(‘라트레이아의 예배’, 23)가 회복되어 코로나가 풀렸다고 달려나가는 다른 교회들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달리지 않고 세대를 거슬러 하나님 앞에서 인내하며 기다릴 용기와 믿음이 생겼다. 멈출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의식성찰

또한 멈추어야 내 갈망의 기저를 볼 수 있다. 333의 의식성찰 시간은 무언가 이루기 위함이아니라 내 마음을 잘 살펴 보고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하는 시간이다. 혼인 잔치집 마리아가 예수님께 그저 상황을 말씀드리듯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아버지께 그저 말씀드리고 아버지 손에 올려드리는 시간이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손에 들려 드렸을 때에 그 의미와 역할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책의 한마디 한마디가 와 닿았고, 예화와 말씀 풀이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두 번째 읽었는데도 또 와 닿았다. 르네지라르의 이론과 다윗의 삼하 11-12장의 내용은 이미 수업을 통해 들었어서 더 풍성했다. 슈필라움(자기 틀)에서 스피리추얼 라움(영적자리), 새날을 준비하기 위한 새로운 날인 어둔 밤으로, 길도 물도 없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광야의 자리로 일상의 모든 순간에도 수시로 돌아가는 깊은 호흡의 매일을 삶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20장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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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아름다움의 신학과 영성의 근원

   1) 플라톤

   2) 아리스토텔레스

2. 초대 기독교의 미학 : 유대교, 성상파괴 논쟁

3. 중세시대 : 세레너스, 그레고리의 미학 정의, 어거스틴, -디오니시오스

4. 근세시대

   1) 칸트와 헤겔

   2)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의 신학적 미학

 

. 아름다움과 신적인 것 사이 관계

. 아름다움 : 하나님의 다른 이름 신을 이야기 함, 인류의 영적 본성을 이야기 함

. 아름다운 것 : 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경험 → ①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 ② 인간 능력에 영적인 기초가 있음 미학의 영적 차원 : +

 

1. 아름다움의 신학과 영성의 근원

. 그리스어 아름다움 : 칼로스(아름다움, 어원:부르다), 토 칼론(아름다운 것, 의미 : 부름 받은 것)

아름다움 경험 : 초대와 응답 사이의 연합 활동과 관련 있음 감지

. 아름다운 것의 중심 : 종교적 기초, 아름다움의 존재에 내재적인 초월자 인지

1) 플라톤 (아름다움의 경험 : Greater Hippias, Symposium) 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아름다움의 본질 종교적으로 해석, 인간의 작품을 가치 절하(모조품)
. 두 아름다움 간의 차이점, 내재적 관계를 통한 경험, 초월적 실재에 대한 감각

(1) 영원한 아름다움 : 초월적 실재, 영적 지성, Idea, 순수 형상, 영적 시각(태양)

(2) 감각적 아름다움 : 아름다움의 경험, 시각, 영원한 형상의 그림자, 모방, 유한, 감각, 동굴(그림자)

아름답다는 것의 정도 : 영원한 아름다움에 참여하거나 연명하는 정도에 달려있음

2) 아리스토텔레스 (시학(Poetics))

. 현실을 파악하는 지성의 우수성, 형상(form)을 경험의 본질 자체로 인정(형상, 물질의 연관성)

cf) 플라톤과의 차이점 :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형상 Form :경험을 초월하는 영역 form : 경험의 본질
정의 영적 지성, 순수 형상 목적에 따라 물질에 어떤 모양을 주는 것
역할 이데아에서 온 방문자(?),
모방과 참여로 경험에 진입
적극적 창조자(?),
창조와 움직이는자로 경험에 진입

. 공통점 : 형상의 경험 안에서 아름다움 드러냄, 인간의 작품은 모조품

. 미학 : “미술은 자연을 모방한다

. 인간이 만든 형상은 화가가 마음에 그리는 목적에 따라 형성 (자연과 유사)

. 현실세계의 온전성과 완전성

   (1) 형상의 일치성과 통합성

   (2) 시작, 중간, 결말

   (3) 이에 대한 관여는 종교적 활동(카타르시스)

. (플라톤, 국가론) 카타르시스 : 나쁜 것 제거하고 좋은 것 남기는 것

. 부르는자와 부름 받은 자 간의 영적 연합에 대한 종교적 경험 (아름다움&아름다운 것)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2. 초대 기독교의 미학

. 성아폴리나리스 예배당 모자이크에서 하나님의 현존에 깊이 거하고 싶은 욕구로 수도사가 된 로알무드의 예 동방교회 성화상 감상의 예 (p519)

. 유대교뿌리 : 이미지에 대한 혐오

. 기독교 교회 미술 : 3-4C 아름다운 미술로 변형

. 4c 전 기독교 미술 존재 안하다가

. 312년 전까지는 사적, 가정교회, 카타콤에 제한, 콘스탄틴 회심 후 제왕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로 표현 제국 미술의 장엄함 도용 (성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 vs 황제가 궁정에 둘러싸여 있는 것)

. 그리스도의 형상 상상은 그리스도의 이미지 채택보다 실제적인 더 심오한 것으로 제안 -> 8-9c 성상파괴 위기의 신학적 폭풍의 중심.

. 성 요한과 성 테오도르의 성화상 파괴 논쟁 : 교회가 인격적이고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에서 아름다운 것을 설명하는 도전 (vs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 파괴주의자 : 원형에 대한 이미지의 적절성 (플라톤 : 영원한 것은 감각적 형상에 의해 표현될수 없다.)

. 숭배자들 : 신적 존재를 묘사하기 위한 이미지와 원형의 적절한 관계 의문, 유대교적 신념(형상 만들지 말라는 계명)

. 유대교 : 하나님의 형상 새기는 것은 금지, 하나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 시각적 미술 (출애굽기 언약궤 만드는 세밀한 지시사항)

. 이미지 반대 명령의 이유

   (1) 표상의 불가능이 아니라 야훼의 존재 확증 : 신 존재에 대한 감성 형성을 도움

     . 적극적인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한 눈에 보이는 이미지 (초기 기독교 미술)

     ) 나사렛 예수의 경험 통해 이스라엘의 인격적 하나님 경험

   . 아브라함의 하나님 존재의 경험 : 언약궤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경험 : 초기 기독교

   (2) 비인격적 이미지로 인격적() 존재 대체의 문제점

     . 성화상을 이미지로 보는 경우 : 이미지를 이상화 or 개념화 하는 것

     . 성화를 숭배하는 경우 : 성화는 존재(매우 특별한 유형의 존재 : 하나님, 임마누엘, 성육신)에 대한 것,

     ∴ 기독교 성화상의 폭 넓은 의미 : 기독교 미술이 단순한 표상 이상임을 보여줌

 

3. 중세시대

. 중세시대 미술 : 참여(경험)보다 영적 세계로 향하는 길 강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다리의 역할)

. 특징

(1) 성화상 vs 스테인드 글라스 : 동방(비잔틴) 미학 vs 서방(로마 가톨릭)

(2) 초기 기독교 미학 vs 헬라 문화(이미지 선호) : 중세 기독교 미학 vs 로마 문화 (수사학)

(3) 초대 기독교 교회에 대한 헬라문화의 도전 : 성화상 파괴주의 (임마누엘의 가능성 부인)

(4) 중세 기독교 교회에 대한 로마문화의 도전 : 성화상 파괴주의 (우리와 함께 하는 천국 가능성 부인)

*천국 : 중세교회에게 물질적으로 볼수 있는 것을 통하여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에 도전

(5) 중세시대 종교미술의 형상 : 내세가 현세 교차하는 천국의 문’ - 중세 신자들에게 영적 비전(고상하며 저급한 감각)의 역할 (성화상 파괴주의 도전 기반)

(6) 마르세이유의 주교 세레너스 : 이미지가 성경과 전통의 격을 낮추었다. (서방 기독교 미학 원리)

   . 그림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이며, 특히 이교도들에게 책과 같은 위치이다. (그레고리 동의)

   기초미학원리 : 미술은

     영적 진리를 가르침

     영적진리의 원리를 유지 (일상의 영적 차원 상기)

     ③ 말이 정신에 관여하는 것보다 미술이 더 효과적으로 관여함

     ∴ 서방기독교(그레고리) 미학 원리 (성화상 파괴주의 관점 기반 ?? 523) : 미술이 성경의 위엄을 취하기 시작

   . 신성한 미술의 본질 : ‘신성한 대상이 되는 성화상 같은 것에서 신성한 성경 같은 것으로 변경

   . 풍부한 표현력 위해 훌륭한 장인 정신과 기술 요구됨

     → 기초미학원리 : 조화, 통합, + 명료성 (토마스 아퀴나스)

   . 명료성 : 빛의 형이상학과 성경 구절의 영적 의미에 대한 교회의 성찰

   . 어거스틴 : 성찰 있는 미학에 기초한 초기 신학자

   . : 가장 영적, 아름다움의 최고의 전형 시각의 영적 미학 제안

   . -디오니시오스 : =하나님의 반영’(mirror), 미학의 본질 : 영적 경험 & 영적 통찰력

   . 중세와 근세 구분 : 아름다움의 명료성을 신 인간의 신비한 창조&생각의 힘에서 찾음

   . 근대 : 초월자의 세속화, 아름다움의 신적 차원, 불확정 적인 인간 영의 신격화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

 

4. 근세시대

.쿠사의 니콜라스 : 아름다움의 명료성 (근대의 뿌리) : ‘사다리신비적 가까움 (반대되는 것의 일치)

. 반대 되는 것의 일치 : 서방 기독교적 유럽의 영적 질서 변형 :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이 함께 존재

(ex) 미술이 자연의 형상 모방에서 화가의 창조성으로 신비하게 표현

천상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아닌 하늘의 문(인간 영혼 안에 존재)으로 위치 변경

. 르네상스 화가 : 장인 교수 or 교육받은 성직자

(ex) 다빈치 :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볼수 있게 해주는 빛의 능력으로 영적 시각 성취 가능

. 과학으로서의 미술 : 영적 실재(자연 형상)를 다스리는 수학 법칙에 대한 새로운 비전으로 가는 문

(피타고라스, 어거스틴)

. 아름다운 것은 감각이 아닌 수학적 형태를 파악할수 있는 상상력의 행동에 의해 인지

뉴사이언스 : 초월의 영적 아름다움 들어 들어가는 문 =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마음의 눈)에서 발견

미술은 화가의 영혼의 창조적 활동의 산물 (발명을 표현하는 능력,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아름다움의 부름아닌화가의 소명

1) 칸트와 헤겔 : 바움가르텐의 미학 후계, 근대에 미학에 대한 세속적 이해

. 미학 :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철학적 용어 만듦

. 신적 아름다움의 경험 아름다운 것을 아는 것에 대한 본성에 집중 (경험앎 강조)

. 아름다움의 영적 차원 : 인간 마음의 작용에 근거

 

(1) 칸트 : 천재성, 숭고함 이라는 용어 개발, 근대 미학 형성 / 판단력비판

. 르네상스에 발달된 미학적 통찰력을 세속적 방식으로 변형

. 세속화 : 자연과 인간영의 세계 단절된 듯한 태도

아름다운 : 대상의 한정성이나 형상 때문에 주는 즐거움을 판단 (ex:장미꽃)

숭고한 : 취향에 의한 판단 (절대적으로 훌륭한)

천재성 : 개인에게 주어진 은사와 특별 은혜, 독창적, 원리자체가 신비이므로 묘사 안됨

. 숭고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 모순 없이 절대적으로 훌륭한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가능하게 함

. 천재성과 숭고함 개녕 개발 but 미술 언급 안함

 

(2) 헤겔 : 미학 -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알리는 역사적 과정 / 정신현상학

미술은 역사가 있다. (진화) : 영의 나타남 자신을 감각적으로 깨닫는 영의 역사 531

미술의 역사적 과정

. 하나님 :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절대적 영, 미술은 절대적 영의 역사적 관여와 일치

. 화가 : 영적인 활동이 실재하지 않지만 작품에서 구체적 이미지로 영적 활동의 일부 표현

. 미술 비평, 미술사에 대한 기반 만듦

. spirit의 의미 : 가이스트(정신, )로 표현, 역사의 갈등과 해결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사상의 활동

. 미술 : 영적의식이 역사적 과정에서 영을 구체적이게 하는 직접적인 의미

미술의 영적 본성은 정신의 본성과 연관, 절대적 초원신은 절대적 지식과 연관

but 절대적 지식은 표현될수 없으므로 미술은 표현될수 없는 정신(Geist)공개, 추상적이 됨

칸트와 헤겔의 미학의 결과

(1) 해방 : 화가를 교회와 교리적 개입에서 자유롭게 함, 인간의 영 탐구하기

(2) 미술 비평 : 신학자가 아니어도 가능하게 됨, 미술 작품 자체의 진가로 판단됨 (타락?)

. 위대한 영적 힘의 원천 돈 많은 수집가들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단순 물품

. 신앙 공동체와의 연결성 잃음 : 교회 벽에서 관상과 기도하는 역할 박물관에 걸림

 

2)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의 신학적 미학 : 미학의 타락

(1) 프로메테우스 행동과 부합 : 하나님이 아는 것을 알아내어 인성을 초월할 인간 영의 환희

   . 신들로부터 불 탈취 : 분방한 낙관주의

(2) 디오니시우스와 부합 : 자기 초월을 향한 간절한 야망, 실존적 한계들에서 탈출을 추구하는 초월성

   . 각성된 허무주의

   . 발타자르의 미학 : 우리를 직면하여 가치있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 ‘부르다부름 받은 것사이에 사랑발견 : ‘부름의 하나님 측면에서 표현되는 것

   . 사랑에 대한 사람의 응답(사랑) : 자신 밖으로 끌려가는 황홀함의 성질에서 나오는 사랑 (하나님 은혜)

   . 인간 영이 신적 영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인간이 불균형적으로 신으로부터 멀리 있는지 의식

   . 신학과 미학의 자연스런 관계위해 신학의 기초 재구성

중세철학에서 초월적인 3가지 발타자르
아름다운 것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적 영광
선한 것 유한적 자유와 무한적 자유
참된 것 만들어진 진실과 자존의 진실

 

[토론질문]

1. 신학의 뒷받침을 했던 철학, 이제는 철학을 따라가는 신학.. 어디까지 철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2. p521신성한 이미지는 신성한 존재 그 이상이다라는 말은 예를 들어 예수님을 표현한 이미지는 예수님 이상이라는 말일까? 아니면 예수님 현존을 말하는 걸까? “이상이라는 말은 더 뛰어넘는다는 뜻이 아닌지...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동의가 안되는데...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의 1장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혹시 책 내용중에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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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연구 분야로서의 영성

   1) 내용적 대상 : 실존적 현상으로서의 영성

   2) 형식적 대상 :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영성

 

2. 기독교 영성 연구에 대한 세 가지 접근

   1) 역사학적 접근

   2) 신학적 접근

   3) 인류학적 접근

   4) 세 가지 접근의 상호작용

 

3. 자기 참여(self-implicatiion)의 문제

   1) 경험의 비판적 사용

   2) 자료로서의 개인적 경험

   3) 영성 연구가 가져다 주는 변화의 가능성

 

 

1_기독교 영성 연구에 대한 접근방식 (샌드라 슈나이더스)

1. 연구 분야로서의 영성

1) 내용적 대상 : 실존적 현상으로서의 영성

(1) 일반 영성 정의 : 초월을 위한 인간의 기본적 가능성의 실현

.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

     (a) 의식적이고 의도된 삶의 방식 (영성=영적 삶)

     (b) 사적인 만족을 넘어 궁극적 선(최고의 가치)으로 지향

     (c) 성장으로 유인하는 기능 (영적 삶은 역동적)

     (d) 제외 : 중독, 개인의 유익을 구하는 착취, 공격적 과제, 돈으로 얻을 수 있는 것 들

(2) 기독교 영성

     (a) 궁극적 가치의 지평 :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

     (b) 주제 : 전체로서의 인간 (영, 정신, 몸,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책임)

           . 믿음과 제자도의 삶 : 기독교 영성의 실존적 현상을 구성

     (c) 개인적이지만 내면적이지만은 않다. : 자기(self) 전체가 실재(reality)와 관련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2) 형식적 대상 : 종교적 경험으로서의 영성

     . 신학 : “경험에 뿌리를 둔 믿음에 대한 탐구

     . 연구 분야로서의 영성의 특징 : 기독교 신앙의 생생한 경험 연구

     . 경험

     (a) 주관적으로 인식하는 것 : 텍스트(, 문자, 예술, 행동)로 표현되므로 전달 가능

     (b) 어떤 것에 관한 경험 : 연구 분야의 대상 (이해하고자 하는 것)

     . 심리학과 영성 연구의 예 -> 영성 : 신학 = 섹스피어 전집 연구 : 문학 이론 연구

  심리학 : 걱정 영성 연구 : 테레사의 기도
주관적 인식 걱정에 대한 직간접적인 경험 테레사 개인의 기도
어떤 것 이론이 아닌 특정한 경험인 걱정 신학적 기도가 아닌 테레사의 기도

     . 영성 연구 : 구체적 영적 삶을 조사 (ex) 테레사, 베네딕트 수도원등의 개별적 (실천)

     . 영성의 초점(대상) : 영적 삶의 경험 - 신학이론과 경험의 상호작용

     ex) Dorothy Day 평화주의자 영성 팔복과의 실존적 만남

 

2. 기독교 영성 연구에 대한 세 가지 접근 방법

1) 역사학적 접근

   . 가장 논란 없는 연구 방법

(1) 영성에 관한 역사 (영성의 역사)

. 영성과 관련된 자료를 역사학자(연구방법)로서 접근 (현상에 관한 역사)

. 과거 기독교 경험을 이용하여 신뢰할 만한 사실의 발굴과 해석

. 종교 역사학자와 구별 : 기독교 신학 안에서 기독교 신앙 경험들을 연구

. 과거에는 영성과 영성에 관한 역사를 동일하게 간주 -> 현재는 접근법 중의 하나

 

(2) 역사학적 영성 :

. 역사학적 연구 방법을 활용하는 영성 (주제에 대한 역사학적 접근법으로 현상 이해)

. 해석학적 원리 사용 (신학)

. 모든 시대에 있었던 기독교 종교 경험을 조사하는 방법으로 필수적

-> 생생한 경험으로서의 영성

 

(3) 역사학적 접근의 유의점

a. 영성을 일어났던 일로 축소하거나 혹은 역사학적 방법으로 모두 파악할수 있는 것처럼 설명하려는 시도

b. 다양한 방법론 동원해서 연구 하도록 : 신학, 심리학, 젠더, 예술, 수사학, 과학 등

 

2) 신학적 접근

[배경]

(1) 정교회 중세이전 : 신학과 영성의 통합

     - 고중세 : 신학과 영성의 분리

(2) 개신교 정통주의 : 신비주의, 영성 등의 용어보다 경건선택

(3) 성공회 : 헌신

(4) 영국 성공회

     . 공동기도서(예전) 바탕, 실제적이고 이론적인 영적인 삶과 관련된 다작

     . 영성이 대학 커리큘럼의 신학 아래 포함됨

(5) 13c 이후 : 신학이 대학안에 철학적으로 다듬어진 전문분야로 이해됨

     . 영성신학(spiritual theology) : 교리적, 도덕적인 신학의 한분야로 이해, 학문연구

     . 스콜라 신학의 관점에서 대학의 주요 과목

(6) 17-20c 중반 : 완전의 삶에 대한 이론적 연구로 이해됨

     . 영성신학(전체의 영적 삶을 연구대상으로 함)과 신비신학(영성신학 중 한 세부 분야)

     a. 수덕신학(ascetical theology) : 능동적 삶을 연구하는 분야

     b. 신비신학 : 수동적 삶 , 하나님 경험->신비경험으로 연구가 바뀜

        . 영적 삶의 3단계(정화, 조명, 신비적 연합)가 체계화 되면서 엘리트주의, 분리적 평가

        . 실제 영적 3단계는 동시적이며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

(7) 20c 후반

     . 거룩함으로의 보편적 부름 확인 영성신학이 영성으로 대체됨 (2차 바티칸 공의회)

     . 영성 : 기독교 뿐 아니라 타종교 및 종교 무관한 여러 실천가들도 혼용

 

     . 기독교 영성 구별 : 기독교 종교 전통에 뿌리가 있음 -> 신학적 영성 vs 영성신학

     . 신학적 접근시 유의점 : 기독교 영성에는 신학적 믿음 이상의 것이 있음

     . 다양한 공동체 / 복잡한 인간 / 다층적 차원 > 신앙의 적용과 표현의 특수화

     기독교 영성을 일반적 이론이 포괄하거나 구체화 할수 없는 경우 있음

     영성이 신학을 낳고, 신학은 영성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함 (신학영성)

     . 영성의 학제간 연구 필요 이유 : 다른 분야의 도움을 받을 때 적절하게 탐구 가능

 

3) 인류학적 접근

[postmodernism에서 영성의 정의]

     a. 인류학적 상수

     b. 인간 구성의 한 차원 (인간적인 특성) 실존적으로 종교보다 앞섬

     . 기독교 영성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이므로 타기관에서의 영성연구와 공유 필요

     . 역사학적 차원, 신학적 차원 + , 언어, 심리, 천문학도 고려

     . 시대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중요한 측면에 영향 받음

     . 종교나 제도적 종교를 외면하는 구도자의 영성에도 관심

     . 종교 신학 속에서 작업 (전제 2가지)

        a. 기독교 영성의 첫째는 인간, 다음이 그리스도인

        b. 영성은 존재론적으로 역사학과 신학보다 먼저

     . 해석학적 방법론 강조

        a. 이해와 설명(지식의 확장)

        b. 적용(주체의 확장) : 조사자 개인의 인성의 확장 (영적으로 풍성하고 심오하게 됨)

     .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기독교 영성

     . 기독교 영성이 통제 할 수 없는 대화에 참여

     . 이 시대가 질문하는 것에 대답하기 위한 집중 (ex) 시민 평등권운동은 영적 현상인가?

     cf. 역사나 신학적 접근은 그 기준()에 따라 풀어감

     . 인류학적 접근의 기여

        a. 개방성 : 영성분야에서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이슈들 연구가능

        b. 공적 대화의 장에 기독교 영성을 드러낼 수 있다.

        c. postmodern적 의제와 감성에 친화적

        ∴ 인류학적 접근 방법의 연구는 기독교 본질에 집중하면서, postmodern의 유혹을 이겨야..

4) 세 가지 접근의 상호작용

. 상기 3가지는 기독교 영성 분야의 모든 질문에 관련해서 필요한 도구

. 배타적이지 않음 : 3가지의 적절한 사용 (대학의 연구, 목회와 신학교 상황, 대학원 연구)

 

3. 자기 참여(self-implicatiion)의 문제

1) 경험의 비판적 사용

. 영성은 경험에 대한 연구 이므로 연구자의 경험이 이해를 위해 필요 (ex) 심리학

. 영적 삶을 이해하기 위해 영적 삶을 가져야 한다. : 경험 깊어질수록 타인의 경험 이해 커짐

. 주의 : 연구자가 너무 깊이 연관되면 연구 망침 (객관성 필요)

 

2) 자료로서의 개인적 경험

. () ‘기도’ : 숙제 ?

a. 연구의 방식인 실습일수 있음

b. 숙제(연구)를 통해 기도의 경험 혹은 기도하고자 하는 동기 유발

c. 경험을 통해 기도를 연구할 경우 : 신중할 경우 본인이 기도에 관여하는데 도움이 됨

 

3) 영성 연구가 가져다 주는 변화의 가능성

. 경험의 영향력 : 진정한 연구는 변화를 낳는다. (Weil)

. 자기 참여적 특성의 중요점 : 연구와 개인의 성장의 상호작용

 

[토론질문]

* 영성 고전에는 경험한 사람들이 정리해서 적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을 정리한 것인데 표현이 잘 안됬다.

우리는 그들을 책으로만 만났기 때문에

인성이 어느 정도 성숙한지는 그들에 대해 논한 몇몇 타인의 글들로만 알 수 있다.

 

* 궁극적 진리와 씨름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된다.(소크라테스)

* 누군가와 오래 지내면 닮아간다. (ex) 예수님

 

* 범위를 좁혀가서 현대 한국 기독교 영성 공부하는 우리 관심있는 나...

많이 배우면서 (연구하는) 자로서 자기가 배운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

(ex) 좋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자기 영성이 그런 줄 아는 것처럼

 

* 영성은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전반적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본인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

- 안전장치 : 의식 성찰

 

case1. 의식성찰을 오래해도 자기의 틀에서 못 벗어나서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지 못해 괴로워 하면서도 여전히 영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착각 할 수 있는 우리 연구자들의 폐단은 어떻게 검증하고 피할 수 있을까?

 

case2. 교회안에서, 영적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과 친밀하게 도와주는 귀한 축복의 통로로 쓰이는 데도 불구하고 개인적 인격의 문제로 성도들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를 종종 본다누군가 조언을 해주어도 자신이 매일 성찰하고 있다며 타인의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격의 약한 부분을 고치지 않으려는 경우들... (영성의 역동성)

연구자로서 내가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것들이 필요할까?

 

 

아래의 내용은 10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10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0장 하나님 체험

  하나님에 대한 오해.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서 교회의 청년들을 보고 느낀 것 이었다. 어쩌면 청년 뿐 아니라 많은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긍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래서 하나님께 묻기를 피하고자 했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 친밀감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을 뿐 더러 갖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기저에는 하나님은 무조건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시고, 내가 바라는 것을 싫어 하실것이라는 확신”(믿음) 때문이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까지 보내신 분이, 자기가 대신 죽으신 분을 믿는 믿음이 완전 기대와 다른 부정적 믿음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사탄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잘도 속여먹고 잘도 이겼구나...

  10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많은 예들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로 삶을 메여서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므로 삶이 풍성한(소유의 문제가 아님) 사람들의 예를 많이 기록해 두었다. 책에서 신자가 아닌데 모임 중에 치유된 여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치유되길 원한다고 앞으로 나갔고, 그에 따라 치유 되었기에 치유에 자신이 행한 몫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선배의 남편은 자신편에서 하나님께 한 행동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낮에 침대위에 뒹굴 거리고 누워있었을 뿐이었고, 무언가 따뜻한 것이 자기를 옷깃처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때 형부는 알았다. 자기의 불치병이 나은 것을... 그 이후로 형부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평안함이 있었다. 반면, 오래 동안 교회서 자라고 선교사 헌신까지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평안이 없이 산다.(생각해 보니 대표적으로 나네...) 나의 틀(유교적,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아 틀이 너무 많다..)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과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의 차이다. 아이러니 하다. 책에서도 거론 되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는 치유가 항상 동반하는 것 같다.(단지 내 개인의 통계 내용일수도 있겠지만^^)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자연묵상1] 자연묵상으로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모이기로 한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길에 떨어진 낙엽들에 눈이 자꾸 가는데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가에 혼자 서있을 수가 없어서 가까운 벤치에 편히 앉았다.(하나님하고 이야기 할때 항상 최대한 집중 할수 있는 편한 자세를 고수한다. 이것도 편견일까^^) 아직 까지도 의문이고 계속 하나님께 여쭙는 것은 계속 눈물이 낫다는 것이다. 며칠간 계속 되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연묵상2] 몇 년전 비바람이 치는 장백산(백두산)에 갔을 때 들었던 생각이 또 들었다. 자연묵상 때에야 왜 그날 그렇게 비바람이 치고 힘든 상황이었는지 이해 되었다. 장백산의 여러 등산로 중에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는 길로 장백산을 갔던 날 엄청 비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그 쪽 길에는 풀들 사이에 풀보다 더 작게 땅에 붙어 있는 꽃들이 엄청 많았다. 그 무서운 비바람(사람도 날라 갈 것 같고 우비는 다 찢어지는) 속에서 요동없이 땅에 딱 붙어 있는 꽃들을 보며 하나님이 내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땅에 딱 붙어 있어. 포복해. 일어나면 다친다. 바닥에 붙어 있어라장백산에서도 내내 감동이 있었는데... 자연묵상의 날 또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자연묵상3] 지난 금요일에 치과에 가서 어금니를 뽑았다. 선교사가 거지인가. 다른 치과 가야 하나. 내가 선교사처럼 안보이나. 내가 뻔히 선교사인 것을 알면서도 뽑기 힘든 어금니를 앞두고 의사샘은 기도하라 했다. 어금니 발치가 처음이라 병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압지께 긍휼히 여겨주심을 구하고 있었고 의사샘 손에 함께하시길 구하며 의사샘 손도 잡았었다.(단지 소리내어 기도 안할뿐) 그런데 의사샘이 두 번만에 뽑았다. 난 압지께 감사했다.(단지 소리내어 안할뿐) 그런데 의사샘은 그 영광을 자기가 갖았다. ‘이거 쉽게 뽑히는거 아니에요. 이거 원래 힘들게 뽑는 거에요. 아무나 이렇게 뽑지 않아요.’ 사실 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 저 선교사라고 안하고 그냥 직장 다니면서 선교사로 살까바요. 선교사가 거지인가요?’ (치과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던것 같다.) 마구 짜증냈는데 자연묵상 하는 중에 예배시간의 위로가 떠올랐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 나의 부르심의 근원, 나의 존재의 근원이신 내 아버지가 지금 나를 여기 있게 하신다. 오늘도...

 

8장 영성지도에서의 대화들 & 9장 집단 영성지도

  사람은 자기가 생각이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담임 목사님께 멘토링을 받는 시간은 (너무 궁금한 것 들이 있어서 곧장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평안하게 머물러 떠오르는 것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러면서 나도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을 갖는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책에서도 대화의 흐름은 우리의 방식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영성지도 시간은 지도자나 피지도자 모두에게 성령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이 있다. 8장 초반에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버리려고 노력한다고 했지만 그것들이 영성지도의 대화의 내용들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머물 때 대화의 재료들이 줄줄이 나온다. 피지도자로 하여금 방해 없이 충분히 길게 말하도록 할 때 2-3시간이 지나서야 본심과 어려움들이 스멀스멀 나올 때가 있다. 주로 Y대 졸업생이나 교회 청년들을 만나는데 3-4시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마음의 바다 밑 이야기가 나온다. 나 혼자 기도하면서 진행해서 그런 것 일까... 영성지도에서 1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너지가 존재해서 그런 것 일까... 사실 나에게 주어진 낮과 저녁 시간들은 대부분 만남에 쓰이는데 자발적 기다림하나님의 낭비가 바로 그 만남의 시간에 적용된다. 나는 숙제도 해야 하고, 강의준비도 해야 하고 시간이 부족한데, 학생들은 나를 만나면 기본 3시간이 지나야 말문이 트인다. 이것은 성격이 급한 나도 훈련하시는 도구가 된다. 혹시 그 시간에 피지도자들도 기도하는 모드가 되면 우리의 만남이 더 효율이 생길까... 아직 무르익지 않은 친구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나자고 하면 안 그래도 그들에게 만나기 부담스러운 내가 더 부담스러워질 것 같다. 성령님께서 아이들에게 직접 알려주시기를 또 조용히 구해야 겠다.

로즈마리 도어티. 그룹 영성지도. 이만홍 외 옮김. 로뎀.

 

  집단 영성지도를 진행함으로 내가 혼자가 아니며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고(p256)했는데 이것은 횃불에 와서 몇 학기 동안 영성과목과 상담과목을 들으며 내가 받은 위로이다. 혼자 아버지 앞에서 정리한 것들에 대해서 왜 목사님들은 이런 내용을 안 알려주실까? 내가 이상한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와서 학문적으로 정리된 것들을 많이 찾았다. 한동안 가까이에 있는 Y대 졸업생들중 믿는 친구들과 매주 그룹으로 모였었는데 그곳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내가 준비한 이벤트는 없었는데 모임 가운데서 서로 역동적으로 성령님의 일하심이 있었다. 책에서 말한 대로 그룹 자체가 영성지도자 였다. 나 혼자 였다면, 1:1로 만났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함께 하는 은혜와 안정감을 누린적이 있었다. 9장을 읽으면서 횃불의 동기들 안에서 함께 갈수 있는 건강한 영적 모임을 3-4명이라도 정기적으로 갖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현재 어쩌다 모인 몇몇이 식사 모임으로 만나고 있는데 거기서도 살짝의 역동적인 반응들이 있다. 아버지께서 만나게 하시고 모이게 하신 것이라 믿고 기대하며 즐겁게 식사를 한다. 더 이상의 진전은 없지만 기대를 해본다.

 

  성찰을 위한 질문이나 책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나에게 객관적으로 하게 된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가끔은 내가 영적지도를 받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최근 이 주간 다른 과목(교육목회)의 강의 내용과 내가 고민하고 정리한 부분에 대한 내용이 동일하게 정리되어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에 새벽 3-4시까지 잠을 안자고 일을 한다.(왜 나는 일을 해도 해도 많은 걸까?)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재우시면 (어떻게든 안자고 일을 하려고 버둥거리는 성향의 나 였는데...)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신뢰함으로 접고 자는 훈련을 지난 2-3년동안  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내내 계속 새벽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를 못한다. 책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 부재하신다고 느끼는 것?’ 의 질문을 보면서 요즘 내가 늦게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서 이러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까지도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못 찾았는데, 정리하며 글을 쓰는 동안 알았다. 시간이 많이 부족한 이 상황에서 아버지께서 지금은 나로 깨어 있는 은혜를 주시는 시간인가 보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대한다.

 

아래의 내용은 6, 7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6, 7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특히 6, 7장에서는 개인적인 내용이 많아서, 읽기가 난해하실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드립니다.

    표현력이 짧은 공대생을 이해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6장 영성지도자 선택 & 7장 영성지도 관계형성

  6장에서도 살짝 거론되었지만, “7장 영성지도의 관계 형성”에서 ‘영성지도 비용‘이 거론 되어있다. 나도 담임 목사님께 멘토링 받으러 갈 때 가서 점심을 얻어먹고 시작한다. 내가 Y대 졸업생들을 만날 때도 대부분은 내가 밥을 사주면서 만난다. 7장을 읽으며 돈을 받고 영성지도를 한다면 ’그 시간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것이 돈 벌기 위해 집중하는 것이 되는 걸까?‘ 라는 생각을 해봤다. 신학교를 다니면서 교회 사역을 안 하는 것은, 물론 선교사로서 계속 한국에서 선교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주일에 교회 사역을 하려다가 내려둔 것은 내 능력이 주일사역 까지 안 되는 이유도 있지만, 주일 사역(교회 사역)을 통해서 학비를 일부 대주기로 계약하고, 급여를 주기로 한다는 것이 영적인 일에 물질적 가치를 매기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조금이라도 재정을 채우기 위한 이유로 내가 시간을 쓴다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생명을 왠지 맘몬에게 일부 허락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이것은 저의 부르심과 관련된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오니 독자들께서는 불편하지 않으시길!!) 그래서 주 1회 나가서 도와주는 회사에서도 돈을 안 받고 하겠다고 했다. 돈을 위해서 일하기 시작하면 돈과 내 노력을 비교하며 계산하는 내 욕심도 믿을 만 하지 못하고 맘몬에게 내 시간을 나눠주고 싶지도 않았다. 현재 시간강사로 일하는 것도 시작할 때부터 그 부분 때문에 마음이 안 편했다. 그래도 나는 더 의미 있는 부분, 강의로 만나게 되는 학생들의 영혼과 삶을 위해 강의 하는 것에 더 집중하고 강의료로 생기는 재정으로 인해 개인의 의식주 부분이 해결되는 것에 감사했다. 책의 재정 부분에서 ’목회자는 자신의 성도에게 비용을 받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라는 말에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 위로를 받았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아침 큐티도 그렇고 6장에서도 영성지도는 사람편에서 들일 노력은 거의 없고 ‘성령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가’에만 집중하면 된다는 것이 ‘내짐은 가볍고 내 멍에는 쉽다’(마 11:28-30)는 예수님 말씀의 풀이인 것 같다.

7장을 읽으며 영성지도 관계를 마무리 하는 것에 대해서 정리해 두었는데, 이부분을 읽으며, 나를 심령술사 처럼 느끼고 불편해한 제자 한명이 생각이 많이 났다. 생각이 많이 나는 것은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면서도 생각나서 곧장 기도하게 되는 사람들은 아직 가족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가족에게는 다른 이해관계가 없으니 그냥 생각나면 곧장 기도가 나오는데, 다른 관계들은 먼저 '왜'가 떠오른다. 한국에 와서 주로, 내게 집중해서 하시는 훈련이 "기도" 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도 7장을 읽으면서 떠올랐다. 하여간 생각났던 제자와의 마무리가 그 친구가 불편해 하는 것 때문에 ‘내가 너무 섯불리 마무리 한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 제자가 내가 심령술사 처럼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고 투영당한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 것을 오랜 후에야 알게 되었는데, 그것 때문에 그 당시에는 나를 만나기를 꺼려 하는 것 같았다. 이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할까... 책에서도 인도자가 피인도자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은 마음에 영성지도를 시작하기 꺼려한다는 말이 있었다. 인간은 보이는 것에 약한것 같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알고 계시고, 보이는 사람은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이상 아무것도 알수 있는게 없는데도, 보이는 사람을 두려워 하는것 같다.

 
상기와 같은 이유로,
또한 하나님께 나의 삶을 올인하는 마음으로 영성지도 비용을 따로 책정하지 않습니다.
재밌고 흥미 진진한 이 믿음의 모험에 함께 하시겠습니까.

저에게 큰 영향이 있는 성인이어서, 개인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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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본론
  3.1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형성 배경
     (1) 데레사의 가정 배경
     (2) 어린 시절
  3.2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발견
  3.3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신학적 의미
     (1) 겸손
     (2) 신뢰
     (3) 사랑
     (4) 복음
Ⅲ. 결론

빈손. 콘라드 드 메스떼르 저.&nbsp; 가톨릭출판사. 2010.

2.3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신학적 의미

  데레사가 말한 어린아이의 길이란 가장 작고 가난하고 죄 많은 사람도 모두 다가 갈수 있는 길이다. 이 길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름 받은 길로 신뢰와 사랑의 길이다. 또한 어린아이의 길이란 마태복음 6:25-32을 근거로 지금 이 순간을 잘 사는 것이다. 과거에 메이지 말고 내일 때문에 염려하지 말고 어린아이가 후회와 걱정 없이 지금을 살듯이, 하나님의 섭리에 맡기는 것이다. ‘어린아이의 길의 전형적인 모습은 예수님의 새 계명(이웃을 사랑하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작은 자에게 능력 밖의 일이다. 그러나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자, 약속이다. 데레사에 의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분명히 지켜지므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면 예수님께서 인간적인 능력을 초월하여 행하실 것이라는 것이다.

 

(1) 겸손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이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천국에서 큰 자니라”(18:4)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11:25)에서 어린아이에 대해 말씀하셨다. 이 말씀에서 처럼 영적 어린아이의 길겸손의 길이다.

  위대한 성인들처럼 완덕을 구하던 데레사는 완덕이 인간의 공로나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임을 알았다. 더불어 생명도, 재능도, 주어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인정한다. 그래서, 기숙학교 시절 사람의 호감을 살줄 몰라 친구를 사귀지 못한 것을 행복한 무능(無能)’ 이라고 표현하며, 언니들과의 이별을 사람의 애정에 사로잡히지 않고 하나님께만 집중 할 수 있는 은혜라고 고백한다. 자신의 아픔, 가난, 불완전함을 체험할 때 그것을 기회로 삼아 하나님께 자신을 맡겨야 한다. 또한 수련생들을 도와주는 부수련장으로 섬길 때 자신을 시기하며 타인보다 본인부터 지도하라고 말한 수녀에게 아 수녀님, 수녀님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수녀님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불완전하답니다.”라고 고백했다. 하나님 앞에 선 자신의 모습을 잘 아는 것이 참다운 겸손이다. 데레사는 겸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는 실수투성이다’라고 생각하거나 고백하는 데에 있지 않습니다. 겸손은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말할 때 기쁘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2) 신뢰

  데레사의 자서전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부분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 이며 데레사의 영적 어린아이의 길에서 가장 핵심 주제이다. 영적 어린아이는 하나님을 사랑의 아버지로 인지하므로 하나님께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영적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가 잘못했을 때에 엄마에게 달려가 뽀뽀하면서 자기의 잘못을 말하고 용서해 달라고 한다면 엄마가 내치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렇듯 자기를 사랑하는 엄마는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을 고백하고 용서를 구하면, 용서해 주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이다. 마르탱 부인의 편지에서 보이는 것처럼 데레사는 아주 어릴 때부터 이 신뢰를 알고 있었다. 데레사는 부모에게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면 용서해 줄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에 항상 먼저 달려가 자신의 잘못을 고했다. 데레사가 표현한 예화에서, 임금이 사냥에서 토끼를 잡으려고 사냥개를 풀었는데 토끼가 사냥개를 피해서 왕의 품안에 달려들어서 왕은 그 토끼를 보호하고 친히 먹이를 주며 키웠다는 것이다. 정의(사냥개)가 우리를 쫓아온다고 해도 우리는 심판주 되신 주님의 팔에서 피난처를 찾으라는 것이다.

 

  아버지가 자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위험한 순간에 결코 혼자 내버려 두시 않으시리라는 것을 아는 어린아이처럼 하느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세요.. 소박한 사랑과 신뢰의 길은 여러분을 위한 것이랍니다.

 

(3) 사랑

  깊은 신뢰가 가능한 것은 아버지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과 관계가 있다. 영적 어린아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달은 사람이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우리의 존재가 가능한 것은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이다. 우리가 무언가 했기 때문에 사랑하시는 것이 아니고 있는 그대로를 사랑하신다. 데레사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자비를 보았다. 그리고 그 사랑을 체험했을 때 예수님을 맞이하고, 삶속에서 제자로 살면서 하나님께 사랑의 응답을 드린다.

 

  이제는 제가 천국으로 날아가는 것을 아무것도 막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제는 사랑으로 인해 죽음에 이를 정도로 주님을 사랑하는 것 이외에는 더 큰 소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제가 아픈 것이 만약 하느님을 즐겁게 해 드리는 것이라면 평생 아프기를 간절히 바라고, 아픈 상태로 제 생명이 무척 오래 이어진다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제가 바라는 단 하나의 은혜는 사랑으로 인해서 부서졌으면 하는 것입니다.

 

(4) 복음

  인간은 스스로 구원 할 수 없으며, 스스로 자신의 욕망과 바램을 이룰 수 없다. 데레사가 성모의 미소로 원인 모를 병에서 회복되고, 성탄절에 10년 동안 기다리던 마음의 건강이 되찾아 진 것처럼 우리는 못 느끼고 있는 사이에 겨자씨 비유 같이, 하나님께서는 역사하고 계시다. 그래서 바리새인이나 율법학자들 같이 스스로 무언가 하겠다는 무모한 시도가 아닌 하나님께 마음을 여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사도 바울의 칭의론과 같이 데레사의 영적 어린아이의 길도 하나님의 조건 없는 사랑을 깊이 체험하며 하나님으로부터 의인이라고 칭함 받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데레사는 나의 생각은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이사야 55:8) 말씀과,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사도행전 20:35) 말씀을 근거로, 공로란 많이 행하고 많이 주는 게 아니라, 많이 받고 많이 사랑하는데 있다고 해석한다.

 

부모는 어린 자녀들이 잘 때나 깨어 있을 때나 똑같이 귀여워합니다. 의사들이 수술할 때에는 환자들을 재웁니다. 이처럼 예수님도 “우리의 됨됨이를 아시고 우리가 티끌임을 기억”(시 103:14)하신다고 생각합니다.


아! 예수님의 가르침은 얼마나 우리 본성의 감정과 어긋나는 것입니까! 
은총의 도움 없이는, 그 교훈을 실행하기는커녕 이해조차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결론

  ‘영적 어린아이의 길은 신뢰와 사랑으로 갈수 있는 길이며, 겸손으로 가능한 길이다. 또한 예수님의 공생에서 보여주신 것과 같은 삶인 복음의 길이다. 데레사의 전체 삶에서 이 모든 것들이 드러나는데 데레사는 자신이 발견한 것이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라고 한다. 이 길을 가며 작은 데레사는 점점 더 성숙해져 간다.

데레사의 편지글들과 자서전을 통해서 순수하게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영혼을 보게 된다. “폴린 언니가 있어서 수녀원에 가려는 열망이 있는 걸까...” 자신의 내면을 하나님께 활짝 열어 자기를 온전히 하나님께 드린 깨끗한 영혼이다. 왜 그렇게 빨리 완덕을 바라고 왜 그렇게 빨리 예수님께 가고자 했을까. 그 모든 열정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것이라 믿고 데레사는 힘을 빼고 그 인도하심을 따랐다. 14세에 가르멜에 들어가기 위해 로마까지 가서 교황을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15세에야 입소 할 수 있었다. 그 여정이 힘들었고,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었지만 그러한 여정이 없었더라면 데레사는 엘리베이터 이론을 생각해 낼 수 없었을 것이다. 자신의 임금님인 아빠가 금치산자 판정을 받고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보며 더욱 하늘을 소망 할 수 있게 되었고,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작은 고통 하나에도 하나님의 깊은 섭리가 있음을 하나씩 알아가면서 영적으로는 더 어린아이가 되어 가고 있었고, 정서적으로는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서 어린 나이에 수련자들을 맡아 교육하는 부수련장의 업무도 감당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철저한 주권을 인정하며, 자신의 내면에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자신을 살폈다.

 

  이러한 데레사의 모습에서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을 다음과 같이 제안해 본다. 첫째, 보여지는 내 모습이 자신인 것으로 착각하며, 가면을 쓴 채로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는 데레사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철저히 드린 것 같이 해야 겠다. 둘째, 바쁜 현대 사회에서 이러한 마음의 상태를 갖기 위해서 우리가 가치를 두었던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위해 가치가 덜한 것들을 버리고자 하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면 진짜 우리가 가치를 두는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셋째, 데레사는 안정감을 하나님의 주권에 두고 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명령하지 않으셨을 거야혹은 내게 갈망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거야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자신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에 할 수 있다는 신뢰와 하나님께 받은 사랑을 누리며, 그 사랑에 화답하는 사랑, 하나님께서 친히 하신다는 겸손한 마음이 있었다. 또한 하나님의 주권에 안정감을 두었으므로 자신에게 몰아치는 고난들을 잘 읽어 낼 수 있었다. 작은 꽃이지만 잔바람에 휘둘리지 않고, 큰 바람에 뿌리 뽑히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깊은 신뢰가 있었다. 현대의 우리도 하나님의 주권에 깊이 뿌리 내린 신뢰가 있어야 겠다.

 

  데레사 자서전의 뒷 부분으로 갈수록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깊어져가면서, 아가서 인용이 많이 나온다. 데레사는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 깊어질수록, 삶에서 점점 더 성숙해진다. 그 모습을 보면서 1600년대의 잔느 귀용이 자꾸 생각났다. 일상에서 내면의 대화로 하나님과 소통 하며, 하나님만 신뢰하는 것이 두 사람의 공통점으로 보인다. 그러나 1600년대 잔느 귀용은 이단판정을 받았고, 1800년대 봉쇄 수녀원에 있던 데레사는 교회 박사가 된다. 둘의 차이점은 무엇일까. 기회가 된다면 두 사람의 믿음의 모습을 비교해 보고 싶다.

 

참고문헌

[일차자료]

성녀 소화 데레사. 성녀 소화 데레사 자서전. 안응렬 역. 서울: 가톨릭출판사. 2021.

앙드레 꽁브 엮음,예수아기의 성녀 데레사의 편지. 부산 가르멜 여자 수도회 역. 서울: 분도출판사. 2003.

 

[이차자료]

D.H. 워닝. "데레사의 하느님을 향한 旅程-떠남과 만남." 신학과전망. 137(2002): 135146.

윤주현. "소화 데레사의 영적 어린이의 길에 대하여." 신학전망. 210(2020). 194-219.

자크 필립. 사랑의 엘리베이터. 윤영희 역. 서울: 바오로딸. 2014.

정인숙. "리지외의 성녀 데레사 안에 나타난 부모의 모습과 하느님의 형상과의 관계성." 신학과 철학. 15 (2009): 35-66.

정인숙. "소화 데레사를 통해서 본 신비주의 영성." Catholic Theology and Thought. 46(2003): 120-145.

콘라드 드 메스테르,빈손-리지외의 성녀 소화 데레사. 대전 가르멜 수녀원 역. 서울: 가톨릭 출판사. 2019.

 

가톨릭인터넷 굿뉴스 성인목록,

https://maria.catholic.or.kr/sa_ho/list/view.asp?menugubun=saint&today=&today_tmp=&ctxtCommand=&ctxtLogOn=&ctxtSexcode=&ctxtChukday=&ctxtGaladay=&Orggubun=101&ctxtHigh=&ctxtLow=&ctxtChecked=Checked&oldrow=&curpage=1&ctxtOrder=name1%2Cgaladaym%2Cgaladayd&ctxtOrderType=&ctxtSaintId=249&ctxtSCode=&ctxtSearchNm=&ctxtChukmm=10&ctxtChukdd=1&ctxtPosition=&ctxtCity=&PSIZE=20, 20211126일 접속.

 

겸손의 성녀-리지외의성녀 소화데레사,

https://june.meson.kr/2010/10/santa-teresa-di-lisieux-saint-of-modesty.html, 20211122일 접속.

 

저에게 큰 영향이 있는 성인이어서, 개인적으로 연구한 내용을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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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론
Ⅱ. 본론
  3.1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형성 배경
     (1) 데레사의 가정 배경
     (2) 어린 시절
  3.2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발견
  3.3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신학적 의미
     (1) 겸손
     (2) 신뢰
     (3) 사랑
     (4) 복음
Ⅲ. 결론

 

  아기 예수의 데레사 성녀로 불리는 리지외의 데레사는 봉쇄 가르멜 수녀로 24세의 짧은 생을 살았음에도 영적 어린아이의 길로 성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얀세니즘이 팽배했던 프랑스에 사랑의 하나님을 회복하게 하는 그녀의 가르침은 신비 체험이나 신학적 난제풀이가 아닌 일상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데레사의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보고, 어떻게 그 길을 발견했는지, 신학적 의미는 무엇인지, 그녀가 남긴 자서전과 편지들을 통해 관찰해 보고자 한다.

 

주제어 : 리지외 데레사, 영적 어린아이의 길, 작은 꽃(소화), 겸손, 신뢰, 사랑, 복음

예수 아기의 성녀 데레사의 편지. 앙드레 꽁부 엮음. 분도

. 서론

  리지외의 데레사는 187312일 프랑스의 알랑송에서 태어났다. 15(188849)에 가르멜 수녀로 입회하고, 24(1897930)에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100년 후 19971019일 신학 공부를 한 적이 없는 데레사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포된다. 짧은 생을 봉쇄 수도원에서 살던 데레사는 영적 어린아이의 길로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끼치고, 교회 박사로 인정되었다. 데레사의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 무엇인가? ‘영적 어린아이의 길은 연약하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어리고, 작은 데레사가 성인들처럼 하나님께 도달(완덕)하고 싶은 갈망 중에 찾게 된 길이다. 다른 성인들은 큰 고난이나 성흔들을 받아 하나님께 도달했는데 어리고 작은 자신은 그렇게 큰 일들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러나 데레사는 완덕의 갈망을 주신 하나님께서 길을 알려주실 것이라 믿었다. 성경을 읽는 중 잠언과 이사야 말씀에서 답을 찾았다. 온전히 예수님의 팔에 의지해서 완덕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 길은 예수님께 의탁하는 온전한 신뢰의 길이며, 예수님만 바라보고 인정하는 겸손의 길이며, 신뢰와 겸손을 바탕으로 한 사랑의 길이며 이 모든 것을 총괄하여 내 힘이 아닌 은혜로 이루는 복음의 길이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데레사가 영적 어린아이의 길을 형성하게 된 배경을 그의 가정과 어린 시절의 이야기들로 살펴보고자 한다. 둘째, ’영적 어린아이의 길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살펴보고,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 무엇인지 그 안에 있는 신학적 의미들을 보고자 한다.

 

  결론에서는 데레사의 영적 어린아이의 길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 주는 의미를 살펴보고,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성녀에게서 배우고 현재에 적용할 부분을 고찰해 본다.

 

  데레사는 언니인 예수의 아녜스 원장 수녀의 지시로 자신이 글씨를 쓸 수 있을 때 까지, 자서전을 기록했다. 또한 성심 수녀회에 있는 큰언니 마리와 다른 지인들과의 많은 서신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나눴다. 데레사 선종 1년 후 가르멜 수녀회는 관습대로 데레사의 자서전을 비공식 출판해서 여러 가르멜 수녀원으로 보냈는데, 공식적으로 출판을 하게 되면서 10여년 만에 여러 나라에서 수백만 권이 넘게 보급되었다. 교황 비오 11세는 데레사의 자서전에 대한 세계의 반응을 폭풍과 같은 열광이라고 표현했다. 이 당시 데레사의 가르침은 얀세니즘의 영향으로 정의의 심판관의 이미지였던 하나님을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의 하나님으로 되돌려 놓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또한 데레사의 무덤을 순례한 사람들에게 많은 기적이 일어났으며, 데레사의 성물들이 전쟁에서 군인들을 보호하고, 침체되었던 선교지에 생명력이 전해지는 등의 1950년 까지 데레사의 영향력은 지대했다. 가톨릭에서는 시복과 시성을 위해서 사후 50년을 기다리는데, 교황 비오 11세는 데레사 선종 26년만인 1923429일 시복을 하고 1925517일에 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 선포했다. 본 논문에서는 그녀의 자서전과 편지글들을 참고하고자 한다.

 

. 본론

2.1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형성 배경

(1) 데레사의 가정 배경

  아버지 루이 마르탱(1823년생)은 사색하기를 좋아하고 성격이 꼼꼼하고 논리적 이었다. 22세에 고독한 삶을 꿈꾸며 수도자가 되고 싶었으나 라틴어를 몰라서 거절당하고 알랑송에서 시계공으로 지내면서, 35세에 젤리 게랭을 만난다. 어머니 젤리 게랭(1831년생)은 당시 프랑스에서 인기가 많던 레이스 기술을 배웠다. 그녀 또한 수도자의 삶을 꿈꾸어 오텔디외 수녀원을 찾아 갔지만 거절 당하고 27세에 마르탱과 결혼하게 된다. 데레사의 부모 두 사람은 모두 수도자 생활을 원했었다. 신혼 열 달 동안 두 사람은 오누이처럼 지내다가, 고해 신부의 충고를 받아들였고, 이후 그들에게서 아홉 아이가 태어났다. 그중 다섯 명의 딸이 살아남았고, 네 명의 딸이 수녀가 되었다.

어머니 게렝은 종교적 신념이 충실하고 믿음이 깊었으며 일에 열정도 있었다. 작은 일에도 성심을 다했으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세심하게 돌보았다. 친척들과 편지로 소식을 자주 나누었는데 많은 서신에서 막내인 데레사의 어린 시절의 정보들이 있다. 데레사가 자신의 자서전을 기록할 때, 어머니의 편지를 참고하기도 했다. 그녀는 데레사가 4살에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이것은 데레사에게 엄청난 변화를 주게 된다.

데레사에게는 4명의 언니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신뢰를 받았던 큰언니 마리는 데레사의 대모였으며, 작은 언니 폴린은 어머니 사후 데레사의 두 번째 엄마가 되었다. 몸이 많이 아팠던 레오니와 데레사의 단짝 친구인 셀린 언니가 있다. 마리는 성모 방문 수녀회로, 폴린(예수의 아녜스 수녀로 데레사에게 자서전을 기록하도록 한 당시 원장 수녀)과 셀린 그리고 데레사는 가르멜 수녀회로 입회한다. 아버지는 말년에 금치산자 판정을 받기 까지 했지만, 201510월에 데레사의 부모도 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이름이 올랐다.

 

  (2) 어린 시절

  부모에 대한 경험은 하나님과의 관계 인식에 중요한 요인이 된다. 부모와의 심리적 관계가 사람들과의 심리적 관계 및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에 영향을 미친다. 데레사의 부모는 가정에서 기도, 아침 미사, 주일의 저녁 기도 등 일상생활이 신앙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마르탱 부인은 병든 하녀를 돌보고 아버지 마르탱은 가난한 사람, 임종 환자를 도왔다. 자녀들에게 가난한 사람을 도우면서도 그들의 인격을 존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쳤다.

데레사는 스스로 자신의 내력을 크게 세부분으로 나눈다. 철 들 때부터 엄마가 돌아가신 때까지 알랑송에서의 생활(1873-1877), 엄마가 돌아가신 4살 반부터 열 네살 까지 뷔소네의 시간, 그리고 열 네살, 크리스마스의 은혜의 시간 이후로 나눈다.

  첫째 시기의 데레사는 밝고 명랑하고 고집이 세고, 괄괄하고 순진하지 못했다고 한다. 자서전에서 데레사는 이 시기에 이미 사물에 대한 판단 수준이 글을 쓰고 있는 23세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표현한다. 큰언니 마리의 말은 절대로 거슬리지 않았고, 둘째 언니 폴린은 자신의 마음의 이상(理想)이었다고 고백한다. 마르탱 부인의 편지에서 등장하듯이 자신이 잘못한 것은 항상 모두에게 고백하고, 특히 아빠에게는 자신이 직접 말하지 않고 마리에게 전하게 해서 용서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자백 하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어린 데레사에게 있었다. 마르탱 부인의 편지 내용 중에 저번에 데레사는 자기가 천국에 갈 수 있겠냐고 물어보았단다. 아주 얌전하게 굴면 갈 수 있다고 대답했더니 이렇게 말하더구나. ‘, 그럼 얌전하게 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겠네... 그렇지만 좋은 방법이 있어. 엄마가 천국에 갈 때 같이 올라갈 거야.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줄 텐데 하느님께서 어떻게 붙잡아 가실 수 있겠어?’ 엄마 품에 숨어 있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도 어떻게 하실 수 없으리라는 굳은 믿음을 데레사의 눈에서 똑똑히 보았단다...” 어쩌면 네 살 전에 이미 그녀는 자신이 20대에 이야기할 사랑의 엘리베이터 개념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어린 시절 데레사는 자신의 아빠에게 나의 왕’, ‘사랑하는 임금님이라고 불렀고, 마르탱은 자신의 막내딸인 데레사에게 나의 작은 여왕이라고 애칭했다.

  마르탱 부인의 사후, 데레사의 성격이 변한다. 수줍어 하고 얌전해 졌으며 특히 감정이 극도로 예민해 져서 누가 쳐다보기만 해도 눈물을 흘렸다. 아무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고 있어야 편했고 낯선 사람과 함께 있기 힘들었다. 그러기에 가족들은 더욱더 데레사를 잘 보살피려고 했으며, 아버지 마르탱은 예민한 데레사를 섬세하게 보살폈다. 이 시기에는 아빠와 낚시도 하러 다니고, 고해 성사를 기쁘게 하고, 엄마가 가르쳐 준 기도문을 외우며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드렸다. 이러한 관상적 묵상과 기도들로 이때부터 데레사는 이 세상이 귀양지처럼 여겨지고 하늘 나라를 꿈꾸게되고, 참된 본향을 바라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8살이 되었을 때 기숙학교에 다니면서 너무 우수해서 학생들에게 괴롭힘을 당하기도 하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결국 2년 만에 학교를 도중 하차 한다. 9살이 되었을 때(188210) 두 번째 엄마인 폴린이 가르멜에 들어가게 되면서 이별의 아픔을 경험하고, 자신도 가르멜에 가기로 결심한다. 그해 말부터 두통이 계속 되다가 1883년 부활주일(3) 이후에 아이들은 걸리지 않는 병에 걸려 몸을 가누지 못했으나 그해 성령강림 주일(5)즈음, 고통 중에 성모의 미소를 보고 몸이 낫는 경험을 했다. 그러나 데레사는 이때의 고통이 자신이 꽤병은 아니었나 하는 마음에 가르멜에 입소해서도 고해 성사를 할 정도였다.

  데레사는 아침에 일어나면 침대에서 깊은 마음의 기도를 했는데 수도원에 입소하면 어떤 이름을 할까 고민하던 중 아기 예수님이 떠올라 아기 예수의 데레사라고 불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언니를 면회 간 길에 원장 수녀가 데레사에게 아기 예수의 데레사라고 이름을 하자고 해서 예수님의 친절한 마음씨를 느꼈다. 독서와 성화(聖畫)보기를 즐기면서 묵상 가운데 점점 더 예수님을 모실 날을 애타게 기다리게 되었다. 영성체를 받은 날에는 갈2:20 말씀을 되뇌었는데, 예수님께서 많은 십자가를 지우실 것이라는 확신을 조금씩 받아들이게 되었다. 도리어 그것이 큰 은혜를 받은 위로로 느꼈다.

1885512살 무렵 피정 동안에 무서운 세심증이 생겼고 그 이후로 약 1년 반동안 힘든 시기를 보내다가 결국 이 무렵 기숙학교를 도중하차 한다. 세심증으로 인해 마리언니에게 모든 것을 고백해야 마음이 편했는데 마리 언니마저 수녀원을 결정하면서, ‘오직 하나 뿐인 벗은 예수님 이라는 것을 고백하게 된다. 데레사는 또래 친구들과는 친하게 지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만은 모든 것을 말했다.

  데레사에게 두 번의 기적은 앞서 기록한 투병중의 성모의 미소와 크리스마스의 은총이다. 데레사의 세심증과 타인에게 섬세한 반응을 바라는 마음, 그리고 감수성이 너무 예민한 것 때문에 가족들은 힘든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작은 일에도 데레사는 눈물을 흘렸다. 13세였던, 1886년 성탄절에 데레사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크리스마스 마다 하던 행사를 앞두고 아빠가 내년에는 데레사가 수녀회로 들어가니 , 다행히 올해로 끝이구나!’라고 한 말을 데레사가 들었다. 감수성이 예민한 데레사는 또 울음을 터뜨리고 크리스마스를 망칠 수 있었으나 엄마가 돌아가신 후 잃었던 마음의 힘을 되찾아 분위기 좋은 크리스마스를 지낼 수 있었다. 10년 동안 고치고 싶던 것을 눈 깜짝할 사이에 예수님께서 이루어 주셨다. 이 후로 데레사는 정신적으로 많이 건강해 져서 공부에 욕심을 내기 시작했고 많은 공부와 암송들 속에서 데레사는 여러 계시들을 경험한다.

 

2.2 ‘영적 어린아이의 길의 발견

  저는, ‘아주 작은것 밖에는 하느님께 드리지 못하는 아주 작은 영혼입니다. 게다가 마음에 많은 평화를 주는 이런 자그마한 희생조차 자주 놓쳐 버립니다. 그렇다고 실망하지는 않습니다. 평화를 좀 덜 누리게 될 것을 참으며 다음에는 더 조심하려고 노력합니다.

 

  데레사에게는 욕심이 있었다. “하느님, 저는 모두 선택합니다. 반쪽짜리 성녀가 되고 싶지는 않습니다....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것은 모두 선택하오니, 저의 의지를 받아주소서좋으신 하느님께서는 이루지 못할 욕구를 불어넣으시지는 않을 거야. 그러니까 작은 나도 성덕을 열망할 수 있어... 하지만 아주 곧고 짧은, 완전히 새로운 작은 길을 통해 하늘에 갈 방법을 찾고 싶어

  위대한 성인들처럼 되고 싶은데 그들처럼 되기에는 자신이 한없이 작아서 그들처럼 예수님이 계신 곳 까지 올라 갈 수 없을 것 같았다. 데레사는 자신을 많은 꽃 중 작은 꽃,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많은 붓 중에 작은 붓, 발에 밟히는 작은 모래 같다고 표현한다. 예수님 계신 곳 까지 어떻게 올라갈 것인가 고민하던 그녀는 로마 여행 중 보았던 엘리베이터를 생각해 낸다. 그리고 성경에서 이 엘리베이터에 해당하는 말씀을 찾는다. 그녀는 잠언 94누가 아주 작은 자이어거든 내게로 오라라는 말씀을 자신을 향한 말씀으로 받아들였다. 이 구절을 통해 예수님의 품으로 자신을 초대한다고 보았다. 또한, 이사야 6612-13을 통해서 자신을 하늘에 올려줄 엘리베이터는 예수님의 팔이라고 해석했다. 사랑의 엘리베이터는 예수님께 안기어 은혜로 하나님께 이를 수 있음을 말한다. 그러므로 이렇게 예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오히려 큰 사람이 될 필요가 없이 작은채로 있어야 했고, 점점 작아져야 했다. 이것은, 막내였던 자신의 작음과 약함이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받는 주요한 원인이었던 것을 기억하게 했고, 불완전과 작음이 예수님의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았다. 이것은 마르탱 부인의 편지에서 엄마 품에 안겨 천국에 가겠다던 그 꼬마의 고백을 생각나게 한다. 데레사는 자신의 작음이 하나님이 찾으시는 겸손의 바탕이 되며, 예수님만을 신뢰하는 길을 열어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백상훈.(2015).불완전의 영성을 향한 제언.신학과 실천,(46),361-384.

상기 논문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오류가 있을수 있으니 꼭 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백상훈. 불완전의 영성을 향한 제언. 2015

. 들어가는 말
. 닛사의 그레고리의 완덕 이해
  1. 완덕의 불가능성
  2. 영원한 진보
 
III. 쉘드레이크의 영성 이해
  1. 실존적 불완전에 대한 인식
  2. 욕망의 영성
  3. 신비적 방랑자의 삶

IV. 나가는 말

[요약]

. 영성에 대한 오해 : 완덕 (초월경험 통한 인격의 통합, 욕망의 제어, 신비적 깨달음)

. ‘불완전의 영성’ : 영성에 대한 이론적, 실제적 왜곡에 대한 응답으로 제안

. 완덕은 불가능하다는 전제로 불완전 인정하고 욕망을 인식하면서 신비적 방랑자로 사는 것

1) 닛사의 그레고리(335년경-395)의 완덕에 대한 이해 고찰 : 모세의 생애

. 완덕의 불가능함(‘완덕의 무한계성과 관련, 하나님의 무한성이 기반), 영원한 진보의 과정

.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는 과정

 

2) 필립 쉘드레이크의 영성 이해 검토 : “욕망의 영성

. ‘완덕설정 자체가 문제 : 영성은 불완전함을, 그리고 계속된 회심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향하는 것

. 욕망 : 하나님의 실재가 현존하는 장소, “본질적 자기가 머무는 장소

. 결론 : 불완전의 영성의 현대 영성학적 의미

 

. 들어가는 말

. 영성 : 신앙 성숙도, 됨됨이 평가 수단, ‘영성지수’(수치화), 깨달음의 문제(초월)

영성을 삶의 목표(이상)로 이해될 때 실패, 좌절, 불안 발생으로 종교중독경향 발생

. 로버트 휴즈(Robert Hughes) : ‘완덕이 영적 성장에 필연적이긴 하지만 공덕사상과 엘리트 주의

. 전통적 완덕(영적 결혼, 신비적 결합) : 정화, 조명, 일치의 과정 통해 최고 영적단계 오르기

. 필립 쉘드레이크(Philip Sheldrake) : 이원론적 대립으로 영적인 것에 우선권 부여

. 왜곡된 완덕 이론의 결과 : 교회 내 완전인과 불완전인 구분하는 결과

 

. 불완전의 영성(spirituality of imperfection) 제안 : 기독교 영성은 완덕에 이름이 불가능함 전제

1) 정의 : 불완전 인정, 인간적 욕망 인식, 신비적 방랑자(mystical wanderer)의 삶의 과정

2) 완덕 개념 : ‘영성,’ ‘관상,’ ‘신비주의,’ ‘신심,’ ‘경건영성의 실제(praxis) 표현

- 현대 기독교 영성의 정의에 관한 연구 과정에 필요한 개념

. (2) 닛사의 그레고리 : 완덕에 대해 체계적인 신학적 기술 시도

- 완덕(한계가 없는)은 불가능함 : 하나님의 무한성에 관계되어 영원한 진보의 과정

. (3) 필립 쉘드레이크의 영성 이해로 본 불완전의 영성의 특징

- 그레고리의 완덕 이해 + 숨겨진 의미를 다룸 = ‘욕망의 영성’(spirituality of desire)

 

. 닛사의 그레고리의 완덕 이해

. 갑바도기아 3대 교부 : 바질, 나지안누스의 그레고리, 닛사의 그레고리

. ‘부정의 신학’(apophatic theology) 특별한 체계의 기초 형성 독특한 영성 사상 발전됨

(디오니시우스, 무지의 구름의 저자,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십자가의 성 요한)

. 그레고리 신비 신학의 특징

(1) 오리겐 : 3단계로 상승하는 연속적 단계로 3단계가 영혼 상승의 목표지점

덕을 배우는 단계(ethike)

자연만물을 바르게 받아들이는 단계(physike)

하나님을 관상하며 상승하는 단계(enoptike)

(2) 그레고리 : 잠언, 전도서, 아가 빗대어 설명

. 영적 여정은 목적지가 아니고, 세 번째에서 관상의 단계를 넘어감(하나님은 알 수 없는 분)

. 아가서 주해 : 영혼의 여정은 빛(phos), 구름(nephele), 어둠(gnophos)

. 하나님과의 온전한 일치와 완전한 내적인 평온으로써의 관상 혹은 완덕(perfection)은 불가능

. 모세의 생애(390년경 저술)에 나타난 완덕에 대한 이해 : 2권의 본문

- 그리스도인의 완전한 삶에 관한 수도자의 조언 요청에 대한 철학적 신학적 응답

1) ‘덕의 완성에 관하여’ : 모세의 삶 대한 문자적 설명

2) ‘모세의 생애에 관한 관상’ : 모세의 삶에 대한 알레고리적 해석(관상theoria)

서언) 3:13-14 : 덕에 의한 성숙이란 성취 할 수 없는 것((완전, 하나님)이 한계가 없으므로)

. 덕을 추구하는 사람은 선(절대적 덕인 하나님)에 참여하게 되는데 선은 한계가 없으므로 선으로서의 하나님에 참여하는 사람의 욕망이 멈출 수 없다.

인간의 완전 이란 선 안에서의 성장과정 그 자체

 

1. 완덕의 불가능성

. 모세의 영적인 여정 해설

(1) ‘’ : (3)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현존하는 하나님에 대한 모세의 영적 체험

하나님은 빛으로 현현하였고 모세는 빛의 조명을 받음

 

(2) ‘존재(Being)’ :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유일한 존재, 진리는 존재를 아는 것

이성(reason)의 빛의 조명 : 하나님만 유일한 존재 & 하나님께 의존 없이 존재 할 수 없음

 

. 그레고리 영혼 여정 : (phos), 구름(nephele), 어둠(gnophos)

하나님을 빛, 존재로 알게 되는 것은 영혼의 여정에 있어서 출발점

. 19장 주해 : 모세가 [어둠]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봤다는 것은(20:21) 하나님께서 [어둠]속에서 자신을 보이고 계시다는 것으로 해석했다.

영혼은 이성의 빛의 조명을 받아 하나님을 알게 되지만 하나님을 향할수록

영혼은 더 깊은 어둠 속으로 들어가게 되어 이성의 빛에 의해서 파악 되는 세계를 초월

하나님을 알고자 할수록 알지 못 하는(알 수 없는) 신적인 본성의 어떤 부분이 있음 알게 됨

참된 지식 : 하나님에 대한 인식불가능성(incomprehensibility)의 인식

빛의 체험 : 호렙산의 불붙은 떨기나무 가운데 임했던 하나님의 현존의 체험

어둠의 체험 : 시내산의 빽빽한 구름 가운데 임한 하나님의 현존의 체험

 

 

2. 영원한 진보

. 모세의 욕망 : 하나님을 직접 대면하여 보고자 하는 욕망에 하나님은 욕망을 허락 but 욕망의 중단이나 포만(satiety)은 약속 안하심. ( 3321-23 )

그레고리의 명제 : 선 안에서의 성장과정 자체가 완덕

- 완덕은 하나님의 뒤() 따라가는 것이지 하나님의 앞(얼굴)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다.

. 에펙타시스(“잡으려고”) : 하나님의 뒤() 따라가는 것, 탈혼(ecstasy)에 대한 대체 개념

- 만족, 합일, 황홀한 결합을 이룬 탈혼 상태도 없이 어둠속으로 더 깊이 빠져든다.(라우스)

cf) 오리겐의 완덕 = ‘도달’(arrival) : 신성과의 정적인 연합으로 이해

그레고리의 부정의 신학에서의 완덕 = ‘끊임없는 과정’(never-ending process)

 

. 그레고리의 완덕

(1) 완덕을 향함은 필연적이지만 완덕 자체는 불가능 (이유 : 존재(Being)로서의 하나님은 무한)

(2) ‘어둠속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뒤를 따라가는 과정 (이성 너머, 앎을 버리는 상태)

- 영혼의 상승운동은 변화와 성숙의 과정 그 자체에서 의미

(3) 에펙타시스(영원한 진보)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욕동에 사로잡힌 영혼의 자연스러운 운동

- “모세가 그 상승운동을 결코 멈추지 않고... 사닥다리에 발을 들여 놓은 이상...결코 멈추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항상 그가 성취 한 것보다 더 높은 곳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III. 쉘드레이크의 영성 이해 (필립 쉘드레이크(Philip Sheldrake))

. ‘불완전의 영성’ : 인간의 불완전성욕망을 인식하고 수용하면서 신비적 방랑자’(A)로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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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17세기 독일의 신비가 안젤리우스 실레시우스(Angelius Silesius) 작품에 나오는 이름, “방랑자”(Wandersmann, wanderer)

  1. 실존적 불완전에 대한 인식

. 그레고리의 부정의 신학(영혼의 상승을 어둠으로 이해)지지 : ‘완덕용어의 사용을 문제 삼음

. 소유(possession)의 영성

(1) 완덕에 도달했다는 감각 이나 완덕을 상태로 인식하는 것도 소유 개념 (영성의 함정)

(2)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것,’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부재, 사랑의 결여

 

. 거룩(영성) : 불완전함이나 실패를 인식(realization), 수용(acceptance)하는 것

회심 : 불완전을 인식하는 지속적인 과정,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운동

 

. 영성 : 인격의 통합(통합적인 삶)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성숙과 관련

(영적, 심리적, 육체적 차원의 치유와 밀접하게 관련 완전한 심리적 균형)

 

. 닛사의 그레고리의 완덕의 불가능성 & 쉘드레이크의 소유의 영성에 대한 비판적 견해

-직관적이요 반-문화적인 영성” : 헨리 나우웬(B)의 영성에 에르난데스가 붙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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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헨리 나우웬(Henry Nouwen 1932-1996) : 신부, 작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강사,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목회신학, 영성), 전 세계를 대상 교구로, 마지막에 캐나다 토론토 소재 라르쉬(L’arche)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기독교 영성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음. [저서]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적 발돋움, 영성 수업, 마음의 길, 분별력 등 다수..

 

. 통합된 인격과 영성을 함께 추구하는 일은 일시적 깨달음, 고속 성장, 자기 실현, 자기 강화, 통합을 향한 욕망(현대의 문화적 특징들)으로 이루어 질수 없다. 나우웬은 항상 번민했고(분별력), 외로워했고, 자신의 목회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묵상, 저술, 그리고 공동체의 삶 가운데 애를 썼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점증하는 신뢰를 가지고 불완전의 삶을 살아갔음

영성 : 완덕의 성취가 아니라 불완전에 대한 인식과 수용

 

. 어두운 측면, 분열된 마음, 욕망과 같은 인간의 물질 혹은 현실과 직면하게 도움

. 전통적 금욕주의와 달리 욕망(desires)과 정념(passions)의 인식, 수용으로 하나님을 알아감

 

2. 욕망의 영성 (spirituality of desire) *욕망 : 쉘드레이크의 불완전의 영성에서 중심적인 위치

. 욕망 :

  . 인간 인격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자신에 대한 가장 정직한 경험

  . 자신의 욕망에 관심을 두는 것은 자신에 대한 존재적 자각의 시작

  .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존재)의 심층에 거하므로 욕망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하나님 경험

  . 욕망이 진실해질수록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와 접촉

 

. 진실한 욕망 :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자유롭게 운동하는 곳(깊은 내적 우물)

  . 가장 깊은 욕망은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을 넘어 자기-희생(self-giving)으로 인도

  ex) 기독교 영성을 전공으로 선택한 우리, 문지영 피아니스트

 

. “본질적 자기” : 욕망이 진실할수록 하나님의 실재와 만날 가능성이 커짐

. 진실한 욕망과 접촉 : ‘내적 우물여정에서 필수, 하나님을 향한 갈망(‘아가페 사랑’)의 표현

. 하나님의 신비 경험 안에서 에로스 사랑아가페 사랑은 일치

(기독교 전통에서는 분리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비적 경험을 방해함.)

. 폴 틸리히의 사랑, 권력, 그리고 정의(Love, Power, and Justice)

. “하나님 사랑의 에로스적 특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불가능한 개념이 되고 마침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순종으로 대체될 수 있다. 참된 사랑, 참된 성애(eroticism)는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의경험이다. 하나님은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성애적 힘이요(God is erotic power) 인간 사이의 성애적 힘이다.”

. 인간적인 욕심이 섞이면서 사랑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성애적 힘에의 끌림(친밀함으로의 초대, 자기 개방(?))은 인간적 사랑의 모험 안에서 보편적인 하나님 사랑(아가페 사랑)을 발견

) (성적 결합)은 성만찬의 특성(예전) : 사랑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서 영적인 중심으로 안내 (ex) 바베트의 만찬 : 맛있는 음식, 풀어지는 마음

 

. 쉘드레이크의 하나님 이미지 : 한정될 수 없는 하나님의 실재

. 인간의 심층(depth, 무의식 까지 포함, 원초적인 욕동을 포함하는 상징적 장소)

- 하나님의 실재와 접촉할 수 있는 곳 : ‘내면의 우물’(심층), ‘마음’(the heart, 기독교 영성 전통)

but 하나님의 실재는 이성 or 사랑 감수성으로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 만 남는다.

부정의 하나님 인식이 하나님을 향한 중단 없는 사랑의 욕망과 역동적 영적 여정 조성

 

- 욕망의 정의 : 자신이 아닌 혹은 가지지 않은 것 불완전함이라는 조건이 내재되어 있음

욕망의 영성 = 불완전에 대한 감각, 무한을 향한 개방 (영구적 한계선 상태 )

 

3. 신비적 방랑자의 삶

. 한계선상에서 살아가는 영성은 불안한 상태에서도 과감하게 헌신 가능

.“모세식 사유 학파”(Moses school of thinking) 영성 (cf) “다윗왕 학파

: 안정(정착)에 대한 영적인 유혹을 민감하게 인식하므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신뢰

 

. 신비가 : “알 수 없고 소유될 수 없으며 고정되거나 최종적이지 않은 것에 의해 이끌려서... 욕망의 삶을 사는 사람” (신비주의 우화(The Mystic Fable), 드 세르토/실레시우스의 방랑자’)

 

. 신비적 방랑자

.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타자와 만남에서 자기초월을 경험하면서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하여 걸어가지만 한 곳에 정주하지는 않는 사람” (p377) (ex) “텅 빈 무덤으로 상징

. 경계선 혹은 한계 위에서 살아감

. 성령(신비가를 끊임없이 욕망에 끌려가게 하는 힘, 존재의 힘과 의미 통합)에 사로잡힌 사람

. “성령의 힘에 사로잡혀 자기를 초월하여 경계 지어진 영역 너머의 세계를 살아가는 자”(p377)

 

[정리]

영성은 불완전을 인식하며 자기를 성찰해 가는 삶의 과정

욕망은 본질적 자기의 역동적 움직임으로 하나님의 현존의 체험 장소(욕망인식으로 하나님과 친밀)

영성은 부정의 신학의 하나님을 향한 영혼의 운동으로 신비적 방랑자의 삶을 가리킴

 

IV. 나가는 말

1) 그레고리

. 완덕 : 하나님의 무한성과 무제한성 완덕의 불가능성, 하나님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과정 자체

2) 쉘드레이크

. ‘불완전의 영성(C) :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이고 역동적인 운동

. 욕망 : 인격의 심층에서 발생하므로 욕망과의 접촉이 하나님의 현존(D)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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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불완전의 영성은 완덕에 이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론적 전제 아래 자기의 불완전을 인정하고, 인간적 욕망을 점증적으로 인식하면서, 신비적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불안정의 안전성 : 피조물인 인간으로 불안정(죽음, 두려움)을 막기/피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 아닌 불안정한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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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 하나님의 현존 : 내안에 살아 역사 하시는 하나님 → 나의 부르심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3) 현대 영성학적 의미

(1) 영성의 정의와 관련한 통찰 제공 : “자기-초월을 통하여 궁극적 가치에 이르고자 하는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경험”(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

교리나 훈련이 아닌 삶속의 지속적 경험

자기 초월은 자기 애적 자아도취가 아니다.

하나님(궁극적 가치)을 향한 삶의 통합 과정

불완전한 삶을 은혜 안에서 믿음으로(by grace, through faith) 살아가기

 

(2) 기도의 신학과 실천에 현대 영성학적 실마리의 제공

. 진실한 욕망(인격의 심층, 하나님의 현존) 그 자체가 기도

. 진실한 욕망은 세계와 하나님에 대한 관상적인 인식으로 자기-초월적인 여정

불완전의 영성에서의 기도 : 임재(긍정적 느낌들) 뿐 아니라 부재와도 정직하게 인식하는 것

 

 

유해룡. "영적성숙의 과정으로서의 영적분별." 장신논단 39 (2010): 273-296.
(클릭하시면 원본 링크연결됩니다.)

 

상기 논문을 정리한 자료입니다.

개인적으로 정리한 것이라 오류가 있을수 있으니 꼭 원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유해룡. "영적성숙의 과정으로서의 영적분별." . 2010.

 

. 서 론
. 영적분별에 대한 성경적 담론
. 영적 분별의 실천적 담론
. 이냐시오의 영적분별의 전제와 한계
. 결 론
 

 

[요약]

. 영적분별을 성경적이고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함

. 영적분별 : 하나님의 뜻을 분별해 가는 과정에 내가 어떤 영향을 받는가에 의미가 있다.

. 영적분별과 영적성장의 관계를 본다.

. 방법 : 바울서신의 영적분별의 은사적 차원, 영성사에서 로욜라의 이냐시오의 영적분별의 예

 

(1) 바울서신 : 영적분별의 성경적 기초

. 연구방법 : 역사적 배경과 구절 상호관련성 연구

. 연구목표 : 영적분별이 말하고 있는 것을 추적

. 바울의 영적분별의 관점 : 분별 결과가 아닌 교회를 세워가는 각 개인 (분별에 대한 반응과 영적 성장의 여부)

 

(2) 이냐시오의 영적분별 : 서신과 자서전, 영신수련(“분별규범”) 으로 이해하기

.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누구나 가능한 은사로서, 분별자의 대처에 따라 영적 성숙이 결정된다.

 

. 서 론

1. 누가 분별하는가?

A. 은사자만 가능하다?

B. 그리스도인 누구나 가능하다?

. 합리적, 이성적 논리의 사용

. 분별의 진정성은 분별자에게 미친 영향에 따라 결정 : 결과 보다 과정(하나님과 의식적 관계)

. 분별의 과정을 통해 자신에게 발생하는 것들을 관찰

 

2. 분별의 목표는 무엇인가?

. 누구나 가능하다면 바른 선택을 위한 목표 말고도 가능한 목표가 있지 않을까?

. 분별과 선택의 관계 : 하나님의 뜻에 맞게 선택 할 수 있는가가 중요과제

 

3. 바울서신과 이냐시오의 영들의 분별규범

A. 바울서신성경, 신학적 근거 제공

B. 이냐시오 :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 모두가 분별을 하고 있다는 것을 전제

 

. 영적분별에 대한 성경적 담론

1. 영적분별의 전제는 무엇인가?

. 바울서신 : 영적분별에 대한 주제 찾기에 적합한 신약 성경

. 인간 사고의 과정 (주체는 인간) vs 분별의 주체자는 성령 : 배타적? 상호협력? 보완적?

. 영적 분별의 대상 (로마서 121-2, 고린도전서 1210, 고린도전서 1429 )

분별 : “이성적인 사고과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 혹은 다른 영의 영향을 받고 있는 생각, 감정, 심지어는 직관 등을 자세히 검증하고 시험함으로서 초월적이고 신학적 의미의 분별을 포함

. ‘새롭게 된 마음‘(12:1-2) : 분별을 위한 전제 조건

. 1-11: 조건 없이 용납하시는 하나님

. 12-15: 의롭다 여김을 받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리스도를 섬긴다

. 의롭다 여김을 받은 : 수동적 (변화의 능력을 덧입은 마음)

. 그리스도를 섬긴다 : 능동적 (변형의 능력을 향한 의식적 개방)

인간의 마음과 성령의 능력이 상호 역동적으로 작용하여 구원에 관한 지식의 내면화

구원의 사랑으로 재 조정된 마음 : ‘새롭게 된 마음분별의 전제조건

바울 신학에서 영적분별 : 윤리와 이성 가운데, 성령으로 새롭게 된 마음이 기반

바울의 분별 : 선악의 구분(도덕적 차원) + 영적 현상에 대한 분별

영적 실체에 의해 도움 받아 윤리적 삶을 살므로(이성 활동에 영향)

영적 실체는 이성 아래에서 분별의 결과가 평가됨

 

2. 영적분별의 대상과 은사로서의 영적분별

(1) 분별해야 할 대상은 무엇인가

. (고전14:29) 교회내의 예언에 대한 해석, (고전12:10) 예언의 해석 영들 분별

. 바울시대 특수상황 : 거짓 예언자들에 의한 교회의 분열 경험, 분별의 필요

 

(2) 누가 분별하는가

. (고전14:29)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요 공동체의 모든 회중 (일반 은사)

. (고전12:10) ‘어떤 사람 소수 어떤 사람 (특별 은사)

모든 사람이 분별이 가능함 (공동체를 세워가는 과정, 공동체&개인의 영적성숙의 기회)

 

. 영적 분별의 실천적 담론

. 일반 은사적 측면에서는 보편 규범이나 원칙 (분별의 원칙) : 열매보고 나무의 근본 분별하기

. 로욜라의 이냐시오(Ignatius of Loyola) : 영적분별의 삶을 살아온 지혜자로서 도움 받기

. 영신수련영적분별’ : 이냐시오 회심으로부터 투신까지 분별하고 선택하는 모든 과정

. “영들의 분별 규범”, “선택의 원칙집약된 책

. 모든 영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영(선한 영, 악한 영)의 움직임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마음의 상태)하느냐에 따라 개인의 영적 퇴보와 진보가 발생 할 수 있다.

생각과 감정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 할 때 하나님의 부름에 바르게 응답 할 수 있다.

. ‘마음의 상태로 영들의 분별 (영 분별 규범)

(1) 인지 : 심정의 변화를 알아차리고 선한 것 받고, 나쁜 것 배척 (1주간)

(2) 분별 : 영들의 분별로 위와 같은 효과 얻기 (2주간)

 

. 악한 영들의 속임수에 대한 분별 : 영들의 분별 규범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은 규칙(1-4)

1. 인지

. 핵심 개념 : ‘영적 위로영적 실망

종교적 정서와 관계 (“진정한 신앙은 대체로 거룩한 정서에 있다.” by 조나단 에드워즈)

. 정서 : 생각, 감정, 행동의 상호작용, 마음과 의지와 느낌의 협력적 작용

영적 위로영적 실망3가지 요소

(1) 심리적 경험 (기쁨, 평화, 혹은 혼돈, 낙담 등)

(2) 영 혹은 악한 영이라는 느낌의 기원 (마음의 상태)

(3) 믿음, 희망, 사랑이 향하는 방향 (커지거나 줄거나)

 

2. 분별 : 영적 위로

. 악한 영의속임수 : “이유 있는 위로” (중간 매개체로 속임 받을 수 있음)

. “이유 없는 위로”: 오직 하나님에 의해서만 가능 (중간에 매개체 없음, 속임 발생 요소 없음)

. 영적 위로의 3가지 출처 : 2, 3번은 표면상 동일하지만 목적은 반대방향을 향한다.

(1) 하나님 자신 : 이유 없는 위로, 즉각적 온전히헌신 할 수 있는 힘

(2) 선한 영이라는 매개체 (영혼의 성장)

(3) 악한 영의 매개체 (영혼의 퇴보) : 전략이 미묘하므로 성숙한 사람만 인식 가능함

. 영들의 기원 감지 : 생각, 느낌, 의지적 충동 들을 고려할 때 감지 가능

 

. 규범: 느낌이 분별의 출발점

. 규범: 생각 (위로를 분별하므로 느낌만으로는 외형상 동일하므로 생각의 추적이 필요)

. ‘위로의 상태에서 시작된 생각의 과정 추적으로 위로의 기원을 찾아낸다.

. 악한 영 : 의혹을 품지 않을 생각을 일으킨다. (자체로 선함)

양심성찰 : 출발~도착 까지 연속성 있는 생각과 감정 관찰

. 관찰 중, 논리적 모순이 있거나, 나쁜 방향 (혹은 덜 좋은)으로 흐름

(ex) 문법 공부할 때 영적위로에 사로잡혀 공부 할 수 없을 정도 여서 단계적으로 묵상하면서 유혹이며 거짓 위로 라는 것을 파악하고 단호하게 결단 내렸을 때 유혹에서 벗어났다.

 

. 악한 영의 의도는 악한 지향을 하고 있지만 부분적으로 경험되는 거룩한 생각들은 거짓이 아닐수도 있다. 영 자체나, 영에 의해 발생된 생각이나 감정들은 선하거나 악한 경향이다. 악한 영이 위로를 드러냈다면 진행과정이 악으로 기울어 가는 것이지 위로 자체가 악이라고 할 수 없다. (위로 동안 경험되는 거룩한 생각, 느낌, 욕구들을 믿음의 행위로 표현하면 악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다. 정체가 파악되는 것이 중요하다. 위로 중 경험한 생각, 느낌, 충동은 버릴 필요가 없다.)

위로가 거짓임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중요

 

. 거짓 위로에 대한 분별은 더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 : 분별, 의지적 선택은 개인의 결단

. 악한 영의 속임수는 초반 감지 난이 양심 성찰로 인지 가능

영적 분별 : 그리스도인들이 지속적으로 내면 성찰로 성숙해 가고자 선택하는 사람들의 몫

 

. 이냐시오의 영적분별의 전제와 한계

. 이냐시오의 사상과 영성의 요지 :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ad majorem Dei gloriam)”

. “보다 더

(1) 분별의 목적은 보다 나은 선택/하나님께 더 큰 영광/보다 나은 삶에 초점이 있다.

분별의 근본 목적 :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는 것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더 큰 영광

 

[토론 질문] 이것이 ‘욕심’으로 작용해서 오용/악용되지 않을까 (본인의 고민^^)

 

. 하나님의 영광

A. 하나님의 부르심의 삶/변화된 생명에 참여 기도와 관상

B. 하나님 나라 : 현재의 역사 안에서 실현되는 과정, 나는 하나님의 협력자

분별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향하여 헌신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나게 하며, 섬김의 삶을 추구)

. 선택의 조건 : 그 자체로 (중립적이거나)선한 것, 교회안에서 도움

 

(2) 자신의 강약, 성숙한 정도를 고려하여 개인의 상황에서 선택하는 것이고 그 과정에 성취되는 하나님의 영광분별의 중요한 기준

 

. 이냐시오 분별의 한계 (Toner) : 개인의 성숙과정에 초점 둘 때, 분별의 의미가 풍성해진다.

(1) 자신이 자유롭게 선택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2) 자유로운 선택 가운데 권한을 가지고 있는 선택의 범위 안에서

(3) 결단과 선택하는 순간에 하나님의 뜻을 발견

 

. 결 론

. 영적 분별 : 성숙의 과정에 분별의 경험에 부름 받음

. 결과보다 과정에 비중

. 분별 대상보다 분별하고 있는 자신이 중요

. 분별은 하나의 과정 : 선택과 결단에 메이지 말 것 (잘잘못을 따질 때 분별의 의미가 사라짐)

. 연속적인 과정이지만 매우 신중해야 한다.(처음, 중간, 끝 관찰)

. 믿음의 모험이기에 특별한 은사로 치부하고 은사자들에게 넘기고 싶어 함

. 유한한 인간, 피조물 : 최선의 결단과 선택이라도 오류와 제한이 있을 수 있음.

. 지속적 분별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가며,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아감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 분별의 길>. 책 10장 내용의 정리입니다. 

         혹시 책 내용중에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7가지 분별 도입 항목 : 기억, 직관, , 상상력, 생각, 느낌 (인간 내부), (인간 외부 ) 자연

. 자연을 통한 분별 질문의 의미 : 분별의 새로운 각도 (다른 피조물 앞에서, 피조물로써의 질문)

. 10장의 목적 (1) 기도할 때 자연 사용하는 것 편히 하기 (2) 자연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 제공

 

엘리자베스 리버트. <영적 분별의 길>.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1.

 

[수련1] 자연 통해 분별에 접근하기 : 자연에 기반 한 분별 실습 (야외 혹은 자연 물체의 활용)
(1) 하나님 원하시는 것 갈망, 내적 자유함 구하기
(2) 주변의 사물(생물, 무생물)에 관심 갖고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3) 분별하려는 결정을 다시 말하기, 물체와 함께 있는 동안 분별 질문도 함께 머물도록하기 : 수련2에서 계속
(4) 자연이 하는 말 들어보기, 영성일지 기록하기
(5) 자연 앞에서의 경험이 나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6) 결정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겠다는 갈망으로 가져가기
(7) 임시 결정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 7개 중에서 여러개가 같은 결정이면 확증과정의 시작

 

 

.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가? (by Sallie McFague)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 지금도 그렇다. (자연에 대한 기독교 양면성과 영성생활과 연관성)

1.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풍성함에 대한 연구 예

(1) 생태학자, 루터목사 Paul Santmire : 자연관점에서 기독교가 취한 두 노선(인간 영의 위치)

A. 자연 보다 위에 : 자연에 덜 호의적

B. 자연 안에 : 자기의식이 체화(embody?)된 자아가 생물학적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축하

(2) 신학자, 종교교수 Mark Wallace

. 기독교인과 자연사이 벌어진 틈 메우기 위해 성령에 대한 성경적 전통을 되살리려 하는 시도

(3) 수학, 철학, 관상가 Beatrice Bruteau : 우주기원 ~ 의식(신경 생물학) 연구 : 성육신과 삼위일체 신학숙고

 

2.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땅 안에, 땅위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by 성육신)

(성육신 신학 확장) ‘성령이 모든 생명체의 가슴 안에서 그 생명체에 생명을 주는 힘으로 거주

(1)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성육신은 지금 여기(HERE&NOW)에서 성령의 체현(embodiment)로 나타남

(2) 본래 부모originary parent(하나님)을 기억나게 함 삼위의 모든 위격들이 창조와의 긴밀한 연결

. 그리스도인들 안에 자연에 대한 인식 (1) 자연의 청지기 (2) 자연사랑? : 무의식적 불편함 (ex) 우상숭배의 장

 

3.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 (관점 변화) 자신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옮김 피조물의 작은 부분인 나를 알게 함

 

■ 기독교 영성의 정의  
(아서 홀더 편집, 『기독교 영성 연구』 아서 홀더 편집, CLC, 2017)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
(the experience of conscious involvement in the project of life–integration
through self–transcendence
toward the ultimate value one perceives). 

(a) 궁극적 가치 :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 
(b) 통합 : 전체로서의 인간 (영, 정신, 몸,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책임)
   . 믿음과 제자도의 삶 : 기독교 영성의 실존적 현상을 구성 
(c) 경험 : 개인적이지만 내면적이지만은 않다. : 자기(self) 전체가 실재(reality)와 관련

 

4. 자연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 자연을 사랑하려면 자연을 알아야 한다.(관심, 듣고, 배우고, 존중)

- 한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가기 자연을 통해 분별에 접근의 기초 제공

- 자연 안에서 자연 통하여 하나님 찾기(실습이 필요한 경우도 있음) :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자체로 알고, 작은 풀잎에도 감사하는데 익숙해지면 이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하게 됨

 

[수련2] 자연으로부터 오는 계시 받아들이는데 초점 (상상력 통해서 대화하기)
(1) 물체와 조용히 앉기
(2) 역사에 대해 묻기 : 태생, 어디에 있었나, 누가 만졌나/집었나/스쳐지나갔나, 어떻게 여기에 왔나..
(3) 내적 생활과 영성에 대해 묻기 : 연약함, 부드러움, 밀도, 다른 사물과의 관계
(4) 나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은 무엇인가? : 나의 직관에 대해, 깊은 내면에 대해
(5) 하나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수련2의 요지 : 하나님은 모든 순간마다 창조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 세계 안에서 우리의 위치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분별의 성질이 달라진다.
B. 수련2의 위험 : 실용주의 (무엇을 얻기 위해 자연을 이용함,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

 

10장 자연의 관점

. 자연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자연의 정의)

: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곳, 의존하는 곳 (겸손하게 대하기)

. 성경 : 인간은 자연의 일부 (1:1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 자연() : 하나님에 의해 창조, 피조물들로 구성되는 영역, 인간을 포함 (by 샌트마이어)

자연은 과학에 의해 연구되고 성경적 신학적으로 해석되어 왔으므로 분별 실습의 근거가 될 만함.

 

. 자연에 관하여 성경 전통이 가르쳐 주는 것 : “다스리다

. 창세기 : 자연 안에 속한 인간, 독특한 책임 부여 질서와 평화 유지 (인간 with 다른 피조물들)

. 노아 이후 하나님과 동물 사이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 정지 : 자신의 보호와 식욕위해 동물 죽임

. 하나님의 본래 의도 : 동물 절대로 죽이지 않는 것

.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 비옥함(신명기 약속의 땅, 광야에서 먹이심, 홍해, 시내산, 시편, 묵시, 신약)

 

.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자연 (자연에 대한 양면성) : 이레네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1) 이레네우스 vs 영지주의자(구원으로 안내하는 특별한 지식 소유함 주장)

. 자연 :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집 (“좋은 땅으로의 이주“ : land는 창조주가 새롭게 하신 earth)

(2) 아우구스티누스 : 영혼과 자연사이의 위계 구분 새 땅으로의 이주

. 피조물 : 하나님의 선하심의 표현, 피조물 통해 하나님의 섭리 관상 분별의 중요한 기초와 도입

(3) 칼뱅 : 죄로 인한 무질서가 창조에 침입했으나 하나님은 피조물에 진실하심

인간이 누리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합법적 공간

자연 관상 오랫동안, 진지하고 신실하게 마음으로 살피며 반복해서 숙고하며 하나님 관상으로 천천히..

영혼에게 초점, 자연은 인간의 활동 무대로 정의 (분별의 도입 항목)

 

. 공동-창조자로 창조된 인간 (created co-creators) : 인간의 창조성

.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자유 의지로 주변 환경 안에 다른 것을 만듦으로 자기의 환경을 조성

.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 사역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 (ex) 산업혁명....

. 분별의 목표 : 어떻게 이 창조의 능력을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창조주와 뜻을 같이 하여 창조할 것인가?

 

토론질문1.
자연에서 분별 or 하나님 찾기가 불편한 이유가 교재에서는 우상숭배의 원인에 있다고 했다. 본인에게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다면 어떤 이유일까?

토론질문2.
주변이나 본인이 자연에서 분별 or 하나님 찾기 경험 중 오버 했거나 오해 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보자.

  사이몬 찬. <영성신학>의 책 11장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혹시 책 내용중에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이몬 찬. <영성신학>. 김병오 역. IVP, 2002.

 

. 그리스도인의 분별 : 특정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영적 진보 가로막는 장애물 극복 도구, 영성 관련)

. 분별 능력 : 성숙 or 영적 숙련 정도를 함축 (영적 민감성은 귀기울이고 음성에 복종하는 꾸준한 훈련 통해 가능)

. key :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향유 하는 삶이 기반(p285, p291, p292, p297, p302), 하나님이 원하시는 사랑과 겸손

. 두 가지 주요한 상황 : ‘내가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음을 나는 어떻게 아는가?’

(1) 외적 : 사건, 상황, 사람의 진실성 분별 (영지주의, 특이한 현상과 의심스러운 표적, 사회 정치적 상황)

(2) 내적 : 특별한 상황에서 개인향한 하나님의 뜻 분별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1. 분별과 영적 성숙 : 분별과 영성은 따로 구별이 안 된다.

. 분별 : 특정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성과 보다 과정이 중요 (자기인식, 자기수용, 자아의 통합, 공동체의 확인 : 심리적 행복상태가 아닌 은혜의 통로를 통해 하나님과 깊은 관계 안에서 나오는 온전성)

. “하나님의 뜻을 안다“ : 하나님과 관계 맺고 사랑하는 것 (분별 가능한 유일한 토대 : 견고한 개인적 영성)

. 방법(how)가 내용(what)보다 중요 : 나를 전임으로 부르신 거 아닌가? 그런데 내가 주식 중개인이 되다니!!!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의 뜻 안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실수 하나로 하나님의 완전한 뜻을 영원히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다. 결과보다 사랑과 순종의 과정이 중요

그릇된 선택이라도 하나님은 그 선택을 사용하신다.(나쁜 목사보다 정직한 주식중개인)

. 분별의 필수적 전제 조건 : 자신에 대한 올바른 지식 필요(자기 인식),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를 볼 때 자아에 대한 진정한 지식을 얻고 특정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 분별하는 과정으로 올바른 결론에 도달 가능

하나님의 주권 신뢰 : 생애를 완전히 책임지고 계시다는 것을 겸손히 인식하면서 결정 내리는가(3:5-6)

하나님의 뜻에 순종? 타인의 조언을 청취? 개인의 성실만이 분별에 필요한 근거?

 

(1) 분별 원칙

: 어떤 선택이 아니라 하나님과 나의 관계 전체가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지 결정한다.

. 분별력의 성장 : 성경, 전통 (공동체 집단적 지혜인 객관적 원리 학습)

. 도덕적 특성 동반 : 진리, 진지함, 복종, 겸손, 그리스도 중심적인 태도

. 위조된 경험 : 극단적 태도 동반 (자만, 허영, 병적 호기심, 혼란, 우울, 거짓 겸손, 무례함, 절망)

. 진리의 표적 : (1) 하나님을 영화롭게 함 (7:18) (2) 하나 됨 (17:11)

. “영신수련”(영적 분별에 대한 고전, “여러가지 영적 영향력들을 구별하기 위한 이냐시오의 원칙들”, #313,#328)

. 이냐시오의 영적 분별 : 믿음, 소망, 사랑을 증진시킴 분별에는 시간이 필요함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

. 원칙의 적용을 제한하는 이유 3가지

성령의 열매는 내적 기질 혹은 태도인데 선하지 않고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영적 위조품과 진품 구별 난이 : 사단이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

내면의 연약함과 하나님과의 얕은 인격적 관계 (평소에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들이 분별 가능, 고전2:14-15)

 

(2)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인격

: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어야 가능

. 분별력과 관련된 구체적 특성

겸손, 복종 : 자신의 결점 고백은 은폐된 죄악 다루는 확실한 방법 (진짜 분별은 진짜 겸손할 때 얻어짐)

용기 혹은 담대함 : 절대적 확신 가질 객관적 토대가 없다.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알고자 하는 모험을 행하는 태도 (‘정당한 상황이라는 깊은 내적 확인에 기초한 담대함으로 θ의 뜻 실현)

균형 유지 : 양극단의 오류 사이에서 양극단을 피함. (극과 극은 통함 : 겸손&교만, 금식&과식, 편견&순진)

. 극단적 태도 = 분별력 결여의 증거, 감정이 기형적으로 불균형, 심한 기복

. 편견(선입관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 거부) vs 순진(의심하지 않고 변화 수용)  

[토론 질문1]
② 용기(담대함)’에서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것은 대단히 극단적인 태도일수 있다그런데 
③ 균형 유지에서 극단적 태도는 분별력 결여의 증거라고 했다
번과 번은 상충된다
본인이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 해보고 두 가지의 차이점을 토론해보자.

11장 영 분별

2. 공동체적 분별력 : 세례를 통해 형성된 구속적 공동체에 뿌리 둠 (교회)

   ∴분별은 신앙 공동체의 일

. 성경을 사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공동체에서 나누고 점검 (공동체와 살아있는 관계 가질 때 하나님 뜻 알 수 있다.)

. 예언의 판단과 분별은 교회 공동체 (고전 14:29, 바울 바나바 파송시 교회 전체금식하고 기도하며 분별, 13:2)

. 분별을 위해 겸손과 순종, 퀘이커의 침묵 모임공동체적 분별 평범한 양무리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겸손하게 듣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인도할 권리가 없다.

[토론 질문2] 
책 p298에서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와 살아 있는 관계를 가질 때 에야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다.’고 말한다본인의 삶에서 공동체와 함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경우를 나누어 보자.

 

3. 영적인 삶의 문제들을 분별하는 것

: 옛 습성이 제거될 때 성장통 및 퇴보 경험하는 공통적 증상(나이테 생성?)

(1) 주의산만과 무미건조 : 운동선수의 슬럼프 같은 경기력 저하기도나 묵상 시 이 부분에 지나친 관심 자제

(2) 과민함 : “과장된 도덕적 핑계(율법주의?)에 계속 억압 받을 때”(신경쇠약의 원인) ex) 안전한 극단 선택

. 거룩한 친밀감과 균형이룬 자발적 경외심 결여 ex) 초보 운전자, 바리새인

(3) 미혹 : 특별한 체험(신앙 초기의 사탕과자’)들을 영성의 발전과 혼동 (ex) 자신의 덕에 도취된 수도사의 자살

→ ① 모든 상황 속에서 θ의 뜻을 이루심 신뢰 영적 안내자나 멘토의 도움이 중요 (공동체 통해 검증)

 

4. 세상에서 영 분별하기

.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분별 난이 (실천의 문제 : 섭리가 역사하는 방법에 동반되는 악의 문제)

. 역사적 상황에 대한 대답 :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하도록 부름 받음

섭리의 신비에 대한 적절한 반응 : 깨어있음 (영적 기민함, watchfulness) = 기도 (26:41)

. 영적 기민성 : θ이 세상에 현존하는 것을 민감하게 유지, ‘영혼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통해 생성, 유지

. 분별 : 기도와 행동이 만나는 지점 (하나님께 많은 질문 던지기)

 

5. 특이한 현상들의 분별

: 특이한 형상에 대해 극단적 경외감 or 극단적 회의주의

. 기독교 전통 : 신중한 태도 십자가의 요한, 조나단 에드워즈 황홀한 체험은 구원 얻는 진정한 증거가 아니다

.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i) 진정한 감정&거짓감정, 은혜스러운 감정&자연스러운 감정 구별, 외적 증거와 모습으로 단정할 수 없음

- 특정 방식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유일한 합법적 방법으로 주장하면 안됨.

(ii) 유창한 언어 동반 : 언어는 잎이지 열매가 아니다. (“천로역정수다쟁이‘)

 

(1) 분별의 신학적 기준 : 신앙과 정서”(조나단 에드워즈), “규칙들(Rules)”(이냐시오)

영적이고 은혜스러운감정의 12가지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수 있는 2가지 이유

타인의 영적 상태에 대해 절대 확언 할 수 없다. 양과 염소 구별하는 특권은 우리 것이 아님 (ex) 엘리-한나

은혜안에서 겸손한 성도들도 자신의 상태 판단 못 할 때가 있음

두 저자의 책에 근거한 분별 방법 제안

영적 균형 인격에 초점(친밀한 사귐을 통해 판단 가능) 현상의 주변 상황 모두 고려

구별하는 증거 :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증진 or 파괴

 

(2) 특이한 현상들의 본질 이해 : 특이한 현상들을 바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특이한 현상의 기원 : 하나님인가 사단인가 혹은 특별한 기질, 선천적 특징, 자연적 원인의 결과, 심리적 원인

도덕적이고, 신학적 기준에 일치하는가? (성자들의 특이한 경험 : 아시시 프란시스, 아빌라 테레사)

- 경험한 사람이 경건, 균형잡히고, 성숙,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인가? 생활전반에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

사적, 공적 계시 구별 : 십자가의 요한, 사도 바울의 셋째 하늘 경험은 개인적이라 공개하지 않음.

 

분별

- 그리스도의 몸안에 있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자라, 그 삶을 깊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과정

- 분별 통해 성장, 성장함으로 분별력 향상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별, 분별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

 

4. 현대인의 삶

  산업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은행, 행정업무, 쇼핑 등 많은 것들이 편리해지고, 간단하게 처리 할 수 있게 된 반면, 빠르게 증가하는 지식의 발전을 따라잡고, 지식의 발달에 따른 업무량 과다로 현대인들은 더 바빠졌다. 사람들이 바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일한 시간만큼 돈으로 보상 받고 있기에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도시의 사람들이 소도시의 사람들보다 시간을 절약하고 바쁘게 순간을 지낸다. 이는 결국 시간은 돈이라는 벤자민 플랭클린의 개념이 일반화 되어 경제가 개인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A)

   이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삶을 경제가 통치하도록 개인들의 주권을 경제에게 내어준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록 개인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경제에게 주었다. 시간과 경제관념이 엮여 지면서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럴수록 정서적인 문제는 더 많아진다. 가족 간의 불화는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B), 개인 정서의 문제는 우울증과 자살률의 증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현대에서 기독교인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시도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상기한 대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시간에 지배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의 뿌리들을 정리해 보았다.

 

(A) 백봉삼, “왜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고 느낄까?,” 「ZDNetKorea」,

http://www.zdnet.co.kr/view/?no=20141226151639&from=Mobile, 2019년 6월 3일 접속.

(B) 존 스토트는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서 서구에서 이혼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쇠퇴하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한국기독교심리상담협회’측에서는 부부간의 갈등이라고 한다. (https://blog.naver.com/kcca7com/221276382687, 2019년 6월 14일 방문)

 

(1) 완벽해야만 기도 할 수 있다. (C)

  지식이 풍성하고 완벽 주의적인 성향이 많은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에 있어야 안정감을 갖고 무언가를 실행해 옮긴다. 기도 또한 삶이 안정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법을 잘 배워야 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조용히 삶의 고삐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행위라고 했다.(D) 현대인들은 기도마저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있으므로, 24시간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사고의 틀을 깨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2)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

  프랭크 루박처럼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업을 내려놓고, 일상을 포기하고,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와 친교등 교회의 모임이 항상 시간을 따로 내어서 해야 하는 활동이었기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이다. 교회의 활동들이 개인 신앙에 많은 진보를 가져오긴 했지만 이러한, 영성과 삶의 분리에도 미친 영향이 크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 수업>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경으로 기도하고, 공동체 안에서 용서하며 경험하라는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예화들에서는 도제식 학습 등으로 온 종일 스승과 함께 하며 배우는 예화가 있다. 그러나 실습으로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기도와 묵상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따로 두라고 한다. 또한 도움을 받기 위해 영성지도 등을 받으라는 권면이 있다.(E) 이 또한 여러모로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

 

(3) 마음의 안식처보다 피부로 느껴는 안정감이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를 중요시 한다. 그러다 보니 보여지는 외모가 중요해서 성형수술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안정감을 타인에게 둠으로써 생기는 것인데 이로 인한 정서적인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나의 안정감을 타인에게서 추구하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보다 보이는 사람, 들리는 음성이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핸드폰 속의 사람들과 영상을 찾게 된다. 현대는, 외롭고 힘들 때 하나님을 찾기보다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을 찾고 내게 도움을 주는 앱을 찾는 것에 많이 익숙하다.

 

(4)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모든 이유들 중에 가장 기저에 있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할 것이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나에게 명령하실 것이라는 부정적 믿음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처럼 내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할 것이고, 내가 하려는 것을 반대할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들이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게 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F) 그러기에 프랭크 루박이나 브라더 로렌스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성한 삶을 산 것 같이 시도하려는 것 자체를 시작하지 못 한다.

 

(5) 훈련에 필요한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기 힘들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이 <영성 수업>에서 습관을 만들기 위한 훈련으로 묵상과 기도를 위해 따로 시간과 장소를 준비하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빠른 결과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영적 습관을 만들기 까지의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훈련의 시기에 현대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누군가 위대한 사람을 만날 때 처럼)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하고, 따로 시간을 내야한다는 부담과 함께 만남에 따른 빠른 결과가 보이지 않아서 훈련의 시간을 오래 지속하지 못 한다.

  프랭크 루박의 훈련은 시간과 장소를 따로 준비하고 따로 어딘가를 찾아가야 하는 등의 준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물론 그도 초반에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인 시그널 언덕을 찾아가긴 했다.) 그러나, <1분 게임>에서 제안한 것처럼 1분 게임을 할 때 치러야 할 대가들이 있다. 매 순간의 인내와 순종, 지인들에게 소문내기와 공동체에서 함께 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가를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할 여력조차 현대인들에게 없으므로 1분 게임에서 이길 때 받는 상을 누리지 못한다.(G)

 

(C) Richard Foster, 『그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조계광 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2004), 11-14.

(D) Richard Foster, 『그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 13.

(E) Henri Nouwen, 영성 수업, 윤종석 역 (서울: 두란노, 2007), 9-15.

(F) Henri Nouwen, 영성 수업, 85.

(G) Frank C.Laubach, 프랭크 루박의 1분 게임.   

 

5. 현대인의 일상에서 24시간 하나님과 함께하기

  본 장에서는 프랭크 루박이 제시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 하고 시도한 사례를 제시한다. 여러 단체에서 시도한 방법들이 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고 그 상황이 공유된, ‘선한목자교회의 영성일기 쓰기 사례를 대표적으로 제시한다.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을 활용하여 영성일기 공동체들을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적극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필자 본인이 실습한 내용들을 정리한다.

 

1) 공동체에서 영성일기 함께 쓰기 (H)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에서는 담임목사가 먼저 프랭크 루박의 실험을 시도했다. 그리고 본인이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했음을 교인들에게 알렸고, 교회의 각 소그룹 모임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영성일기 쓰기가 전파 되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는 공동체에서 영성일기를 쓰는 방법을 현대인에게 맞게 제시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잘 때 까지 예수님을 얼마나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때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일기형식으로 기록한다. 하루 중 기억나는 특별한 일을 기억하고 그때 예수님은 어디 계셨나, 무엇을 하셨나 기록한다.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 했을 때를 기록한다. 이렇게 자신의 매일을 점검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이 일기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함을 훈련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을 소그룹에서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므로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므로 더욱 예수님과 친밀해 질수 있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는 공동체에서 함께 하는 영성일기로 성도들의 은밀한 죄가 없어지고,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무절제한 성향이 점차 고쳐진다는 후기를 전한다. 실수를 유발하게 하는 험한 농담이나 두려움, 염려, 교만 등이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을 부드럽게 누르므로 혈기나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자아의 죽음이 일상이 된다.

  프랭크 루박이 제안했던 것처럼 1분 게임을 한다고 소문을 내고 공동체에서 함께 진행 하라는 제안을 선한목자교회에서는 소그룹 별로 웹()에서 기도 일기를 쓰는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연습 이므로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스마트폰을 이용하므로, 스마트 폰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것 대신 내가 느낀 것들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한다. 영적으로 둔감하게 하는 영상들을 찾아보는 대신에 타인이 쓴 영성일기를 보며 기도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안정감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조금씩 경험하다 보면 하나님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실 거야라는 오해가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을 제대로 더 알아가므로 점차 신뢰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영성일기 쓰기와 소그룹 모임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상황화로 공동체를 영적으로 더 건강하게 하고 각 개인들은 하나님과 더 친밀해 진다.

 

2) 개인 실험

  최근 4-5년 동안 1분 게임을 혼자서 진행했었지만, 최근 1년 동안 프랭크 루박의 저서들을 다시 읽으면서 집중해서 시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실험을 하면서 개인의 성향이 대단히 많이 좌우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경우는 성격이 급하고 성취욕이 높고, 일에 집중력이 너무 높고,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이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실험은 오래전부터 하던 실험이라 책을 읽으며 진행할 때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관계로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갈 때 주님과 함께 가기보다 나 혼자 달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길을 급히 가다 보면 사람들을 바라보고 축복하는 경우들이 줄고, 나의 표정도 객관적으로 볼 때 긴장해 있는 표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식할 때 마다 실패한 경우였다. 또한 일이나 과제, 공부를 할 때는(주로 지적(知的) 작업) ‘아버지 함께 해요라는 모드로 시작 했다가도 혼자 빠져 들어서 허우적 거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초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공한 경우들은 주로 사람을 만날 때이다. 지적(知的) 작업과 달리 사람을 만날 때(정서적 작업)는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할 대화가 없어서 조용히 있을 때가 많다. 단둘이 만나도 조용히 있으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나의 생각이 아닌 상대방에게 필요한 대화가 시작된다. 또한 길에서 어린 아이나 임신부들을 볼 때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경우도 성공한 경우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프랭크 루박이 제시한 방법인, 영성일기 정확하게 작성하기, 함께 하는 공동체, 소문 내기를 하지 않고 매일 정확히 퍼센트로 계산하지 못했다. 무엇 보다 매일 쓰는 영성일기가 성장의 큰 원인이 된다.(I) 또한 1분 게임에 함께하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한데 함께 하는 공동체 없이 진행 한 것이 진보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

 

로렌스 형제, 프랭크 루박. <하나님의 임재 연습 플러스>. 생명의말씀사, 2013.

(H) 예수동행일기, “영성일기,” WJM, http://journalwithjesus.org, 2019 6 3일 접속.

(I) 김병호, “청소년 기도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학교여섯 번째 이야기: 기도일기 쓰기,” 교육교회477(2018), 31-35. 32-33.

 

6. 결론

  17세기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브라더 로렌스가 한 방식들을 20세기에 자신에게 맞게 시도하고 기록한 프랭크 루박의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또한 21세기인, 현대, 한국에서 이 방법들을 시도한 경우들을 알아보고 필자도 시도한 결과를 나누었다.

 

  기독교에서 영성이란, ‘경험’ 즉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을 말한다. 학문적으로 기독교영성학이란, ‘자신이 인식하게 된 3위 일체 하나님을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이라고 샌드라 슈나이더스는 정의한다.(J) 결국 기독교 영성에서 경험’, ‘이 없이는 기독교 영성이 표현될 수 없다. ‘일상에서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논할 때 결국 경험없이 이론만으로는 일상영성을 표현 할 수 없다. 이론만 거론한 논문들은 본 논문을 준비하면서 참고 자료로서 자연스럽게 배제했다. 20세기에, 삶으로 드러난 영성에 집중했을 때 프랭크 루박이 눈에 뜨인 이유는 그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흔적(경험)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성일기를 쓰는 분들에게도 나타나는 같은 특징들이다.

  은밀한 죄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다루므로 삶에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은밀한 죄가 줄어든다.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지내며, 원주민들에게 배척당하는 그 외로움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면서 외로움에 빠져들지 않았다. 또한 모든 회의와 만남에 앞서 기도로 준비하므로 불필요한 실수들을 줄였으며, 떨어져서 지내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로 그들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두려움, 염려, 교만 등이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 지므로 일상에서 안정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성품이 온유해 진다. 또한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자신의 모든 업무에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문맹 퇴치 프로그램, 신학교 운영 등 중요한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이러한 경험은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도를 몇 년간 진행하고 있는 필자의 삶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생각이 많아 두려움이 많던 사람이었으나 그 두려움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는 훈련을 했다.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 안에서 두려움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안정감이 생기면 평안이 나를 다스리면서 성정이 온유해 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런 사이클이 몇년동안 지속되면서 지인들로부터 많이 온유해 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교학과 학업, 사역을 병행하고 있는데 매일의 스케줄을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생각지 못 했던 결과들을 경험한다. 빠듯한 일정 가운데 갑자기 부담되는 스케줄이 사라지기도 하고,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 일에 은혜를 주셔서 제시간에 끝내는 경험도 한다. 시간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음을 경험하므로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이전보다 시간에 덜 쫓기게 된다.

 

  프랭크 루박에 대해 관심은 많았으나 그동안 못 읽었던 그의 저서와 관련 자료들을 본 논문을 준비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읽었던 책들도 더 깊은 시각을 가지고 다시 읽어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이미 자신과 교회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한 유기성 목사 외 한국의 다른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어서 실패 사례 뿐 아니라 성공 사례들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랭크 루박은 홀로 24시간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시작했으나 현대인의 약한 의지와 바쁜 일상에서는 건강한 공동체가 함께 할 때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삼위 하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성도들에게 공동체가 중요하다.(K) 영성 일기를 공동체에서 함께 할 때, 부작용이 발생 할 수 있는 위험도 있겠으나 이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사례 연구 등을 통해 남은 역사에서 채워나갈 부분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루박 개인에 대한 한글 자료가 많이 없어서 개인의 삶을 더 자세히 연구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또한 현대인의 정서적 문제에 대한 부분에 대한 근거 자료를 많이 준비하지 못해 근거가 빈약함을 고백한다. 논문 작성법 강의 전에 작성한 각주에 페이지를 정확히 찾을 수 없어서 페이지를 기록하지 못했다.

  ‘일상에서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로 접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연구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논문들을 보고나서야, 외곬으로만 생각한, 나의 지식과 생각의 얕음을 알게 된 시간이다. 한국에서 최근에 상담과 영성분야에서 같은 주제로 논문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세상 속에서 자신을 보이시고 드러내시는 주님을 더 깊이, 매순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기회가 되었고, 그 즈음에 뉴스를 보고 며칠 동안 울며 다닌 날들이 있었다. 프랭크 루박 처럼 나에게 주어진 선교 대상자들에게 우리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을 내 삶을 통해 잘 소개하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더 생겼다.

 

(J) 이강학,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신학논총102(2016), 221-245, 223, 227-228.

(K) Dietrich Bonhoeffer. 신도의 공동생활/성서의 기도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25.

 

 

  [참고문헌]

김병호. “청소년 기도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학교여섯 번째 이야기: 기도일기 쓰기.” 교육교회477(2018) : 31-35.

이강학.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신학논총102(2016) : 221-245.

이원일, “일상생활에서의 영성을 위한 성인기독교교육,” 신학과 목회33(2010), 89-113.

이해인, “일상에 스민 영성 이야기,” 월간 샘터(2015), 28-30.

Bonhoeffer, Dietrich. 신도의 공동생활/성서의 기도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Laubach, Frank C. 프랭크 루박의 1분 게임. 안정임 역. 서울: 더드림, 2018.

Laubach, Frank C. 프랭크 루박의 일기.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12.

Laubach, Frank C. 권능의 통로. 유정희 역. 서울: 규장, 2015.

Lorraine & Laubach, Frank C. 하나님의 임재 연습 플러스. 진 에드워즈 엮음.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6.

 

백봉삼. “왜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고 느낄까?.” ZDNetKorea. http://www.zdnet.co.kr/ view/?no=20141226151639&from=Mobile. 201963일 접속.

영성일기. WJM. http://journalwithjesus.org. 201869일 접속.

 

 

매일 말씀 묵상 리스트

"기도 체험과 영적지도"(유해룡 저) 의

부록 7장 기도의 실제 (복음서를 따라 기도하기) 부분에 나오는 말씀들을

매일 묵상을 위해 묵상 부분만 텍스트로 정리했습니다.

 

자세한 사항은 책을 꼭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매일 동역자들과 하루에 하나씩 묵상 중입니다.

도움되시길 바라며... 공유합니다.

(이거 공유하는거 유교수님께 허락받아야 할까용...ㅠㅠ)

 

 

유해룡. < 기도 체험과 영적지도>.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2020.

[1] 준비 기도

  1. 요 14:16-18, 25-29
  2. 민20:2-13
  3. 사 43:1-5
  4. 시 139:1-18
  5. 시 105:5-22
  6. 시 105:23-45
  7. 요 3:16-21
  8. 사 49:14-18
  9. 눅 13:31-35
  10. 렘1:4-10
  11. 렘 29:10-14
  12. 롬 8:31-39
  13. 눅 12:22-31
  14. 신 1:26-33
  15. 시 103:1-14

[2] 회개를 위한 기도

16. 약1:13-18

17. 롬 5:12-21 (참고 마 10:21)

18. 롬 5:12-21 (참고 겔 36:25-32)

 

#둘째 주간 : 생애 묵상

  1. 1-10살까지 삶의 역사
  2. 11-20살까지 삶의 역사
  3. 21-30살까지 삶의 역사
  4. 31-40살까지 삶의 역사
  5. 41-현재까지 삶의 역사

. 그 이상 내 죄의 무게를 달아본다.

 

#세째 주간 : 1-2주간 반복

 

#넷째 주간 : 지옥묵상

24. 눅 16:19-31

25. 롬 1:18-25

26. 마 25:31-46

  • 개인용 추가내용

27. 마 22:1-14

28. 눅 13:6-9

29. 계 2:1-7

#다섯째 주간

30. 시51편, 겔 37:1-14

31. 눅 15:1-24

32. 눅 7:36-50

33. 요 8:2-11

[3] 그리스도의 생애와 함께 기도하기

34. 요 5:1-14

35. 요 10:1-18

36. 눅 11:11-13

37. 마 9:35-38

38. 눅 4:14-19

39. 막 8:34-38

40. 마 5:10-12

 

#첫째주간 : 그리스도의 탄생의 신비 관상

41. 요일 1:1-4

42. 요 1:1-4

43. 요 1:13-18

44. 눅 1:26-38

45. 눅 2:1-7

 

#둘째 주간

46. 눅 2:8-20

47. 눅 2:22-39

48. 마 2:13-18

 

#셋째 주간 : 감추어진 생애의 신비

49. 마 2:19-23

50. 눅 2:41-50

51. 눅 2:51-52

 

#넷째 주간 : 그리스도의 기준과 사탄의 기준에 대한 묵상, 영성 식별 연습

52. 벧전 5:8-9

53. 마 28:18-20

54. 막 8:31-34

55. 막 6:17-29

56. 눅 6:20-26

 

#다섯째 주간

57. 눅 18:18-30

58. 눅 12:13-21

 

 

#여섯째 주간

59. 마 3:13-17

60 .마 4:1-11

61. 눅 4:16-30

 

#일곱째 주간

62. 눅 5:1-11

63. 요 2:2-11

64. 요 1:35-42

 

#여덟째 주간

65. 눅 7:1-10

66. 막 5:25-34

67. 눅 10:38-42

 

#아홉째 주간

68. 눅 6:1-11

69. 요 2:13-22

70. 마 14:13-22 (막 6:31-44)

 

#열째 주간

71. 마 14:22-33

72. 마 8:23-27

73. 막 6:7-13 (마 10:5-15)

 

#열한 번째 주간

74. 요 11:1-44

75. 마 26:6-16

76. 마 17:1-8

[4] 예수님의 수난, 죽음과 함께 기도하기

#첫째 주간

77. 마 21:1-11

78. 마 26:17-30

79. 요 13:1-17

 

#둘째 주간

80 .마 26:36-46

81. 마 26:47-56

82. 요 18:12-27 (마 26:57-75)

 

#셋째 주간

83. 눅 22:66-71

84. 요 18:28-40

85. 요 19:1-16

 

#넷째 주간

86. 마 27:26-31

87. 눅 23:26-49

88. 요 19:23-30

 

#다섯째 주간

89. 눅 23:50-56

90. 사 52:13-53

91. 막 14:12-72

92. 막 15:1-47

[5] 예수님의 부활, 영광과 함께 기도하기

#첫째 주간

93. 막 16:1-11

 

#둘째 주간

94. 요 20:1-10

95. 요 20:11-18

96. 눅 24:13-35

 

#셋째 주간

97. 눅 24:36-48

98. 요 20:24-29

99. 요 21:1-17

 

#넷째 주간

100. 마 28:16-20

101. 행 1:1-11

102. 행 2:1-13

 

#다섯째 주간 : 나 자신을 드리는 결단

103. 롬 8:17

104. 고후 4:5-14

105. 엡 1:3-14

106. 요 1:1-18

107. 롬 8:11-17

108. 요 3:16-17

109. 히 1:1-6

110. 고후 5:17

 

 

* 말씀 묵상후 기록하고 110일이 지난후에

다시 1번을 묵상할때

자유롭고 가벼워진

예수님을 더 닮은 당신을 발견하게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1. 서론

  일상에서의 영성이라고 하면, 일상 생활 중에 예수님의 임재를 알고, 그 뜻을 분별하는 것으로 정의 할 수 있다. 일상의 모든 현상들에서 예수님의 임재를 느끼고 또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해인 수녀가 표현한 생활 속의 영성과도 동일한 표현이겠다.

  ‘하나님의 임재 연습으로 알려져 있는 브라더 로렌스는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교제한 17세기의 프랑스 사제로 널리 알려져 있다.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한다는 것은 무엇으로 드러날 수 있을까? 창조주인 하나님과 매순간 함께 하는 안정감과 은혜 충만함이 일상에서 드러남이 아닐까? 20세기의 개신교 선교사인 프랭크 루박의 일생을 관찰해 보면 그 또한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살았던 사람으로 증명 될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로렌스 형제나 프랭크 루박 처럼 사제이거나 선교사가 아닌 21세기의 기독교인들에게 하나님과 함께 24시간을 사는 삶이 적용될 수 있는 가를 찾아본다.

  프랭크 루박이 시도한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한 방법들을 그의 일기와 저서들을 기반으로 연구한다. 현대 성도들이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 불가능 할 것 같은 이유 들을 분석해 보고 지금 한국에서(Here&Now) 적용한 예들을 소개하고 더불어 개인의 실험 결과도 보고 한다.

 

2. 프랭크 루박 소개

  1884년 미국에서 출생했다. 1970년에(85)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약 50여권의 책을 썼다. 1915년 필리핀 선교사로 교회와 신학교를 설립하고 신학 교수로 활동했다. 사역적으로는 세계문맹퇴치선교회 설립하고, 200가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언론들은 그를 ‘MR. Literacy’라고 하고, 많은 이들이 그를 우리시대 최고의 교사라고 불렀다. 사역외에 사회, 국가적으로 끼친 영향력이 크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외교정책에 영향을 끼쳤고, 미국 우표에 등재된 유일한 선교사이다. 그는 문맹 퇴치를 위한 교수법을 고안했고 그 교수법은 세계문맹퇴치선교회를 통해 사용되었다.

민다나오 섬의 이슬람교도들인 모로족을 돕고 싶었지만 모로족이 프랭크 루박에게 마음을 열지 않고 무시하던 시점에 그는 마음이 많이 괴로웠다. 외로움으로 괴로운 마음과 오늘보다 내일 더 하나님과 친밀하고 싶은 마음으로 민다나오 섬의 시그널 언덕으로 올라가 매일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했다. 이 세상을 위해 크리스천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일은 최대한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를 닮은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동행을 꿈꾸며 문맹퇴치 프로그램의 기초 닦는 작업 중인 193011일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남은 인생을 하나님과 24시간 함께 하기를 시도하며, 답을 찾는 실험을 하기로 결정하고 매일 일기로 기록을 남긴다.

 

프랭크 루박, <프랭크 루박의 기도일기>, <프랭크 루박의 권능의 통로>, <프랭크 루박의 중보기도>

 

3. 프랭크 루박의 24시간 하나님과 함께하기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대로 행동하기 위해 힘쓸 것을 약속하고 예수님이 가르쳐 주신대로 하나님의 언어를 배울 것을 다짐하며 첫 일기를 기록한다. 많은 충돌들이 생길 것을 예상하고 그 모든 것을 희생해서라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삶을 갈망했던 프랭크 루박이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시도했던 방법들을 정리해 보았다.

 

(1) 묻고 기록하기

  그는 매일 하나님께 배워야 할 새로운 어휘가 무엇인지 매일 묻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기록하기 위해 책을 가지고 다니며 기록했다. 한 번에 하나씩 하나님께 묻고 귀기울였고 하나님께서 손가락과 두뇌를 통해 인도하시길 계속 구했다. 그리고 일기를 쓸 때 하루의 어느 정도를 하나님과 함께 했는지 백분율로 기록했다.

 

(2) 모든 생각을 하나님과의 대화로 바꾸기

  이해 할수 없는 일을 경험할 때 당황스러움 대신 이해되는 경험들을 지적 이적이라고 표현한다. 이런 것들은 마음의 싸움 안에 있으므로, 결국 외적인 행위로 보여지는 것들은 내적 질병이 드러난 것이라고 한다. 아주 사소한 작은 일부터, 큰일까지 하나님께 시시콜콜 말씀드린다. 밤새도록 잠을 못 자게 하는 시끄러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허락하지 않으면 자신의 성품에 유익이 된다고 해석하며, 자신에게 성가시게 하는 모든 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간다. ‘이런 성가신 일을 통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오늘 순간마다 제가 어떤 일을 행하기를 바라십니까?‘, ’하나님 이 순간 제가 할수 있는 가장 귀하고 숭고한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땅에서 움직이실 때 제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과 함께 어울릴 수 있을까요?‘

 

(3)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기

  성적 상상이 떠오르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훼방하는 마음이 내면에서 올라올 때 자신의 의지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시도록 한다. 의지에 압력을 가하여 삶의 1초마다 하나님을 의식하는 이 일을 계속 지속 할 수 있도록 계속 도움을 구하는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도록, 타인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도록, 타인을 외모로 평가하지 않고 영혼으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기 위한 도움 요청이다. 자신의 의지에 대한 강압이 영적인 근육을 성장시킨다고 표현하며 본인의 의지를 압박하는 훈련을 한다. 훈련가운데서 본인이 타인과의 대화에서 하나님이 알려주시기 전에 자기 말을 너무 많이 하는 것을 발견하고 회개하는 자세한 과정을 거친다.

 

(4)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때로는 몸의 통증이 지속 될 때 조차도 그것이 1분도 나를 떠나지 말라는 하나님의 음성으로 듣고 집중하는데 노력한다. 일기를 쓰던 1930년에는 문맹퇴치 프로그램을 시작하고 있던 시기에 한 그의 기도다. “우리 함께 인도 문맹퇴치에 관한 책을 쓸까요? 하나님과 제가 공동 저자가 되어 책을 펴낼까요? 이 생각은 오늘 아침에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저는 그 생각에 동의합니다. 의심이나 흔들림으로부터 저를 지켜주소서 이 일을 끝마칠 때까지 하나님과 동행하며 나갈 수 있도록 지켜주소서

 

(4) 마음의 창을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기

  생각의 창문을 항상 하나님을 향해 열어놓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날마다 새로운 깨달음을 주신다. 그래서 그는 QT시간이나 무릎 꿇고 기도할 때 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과 협력하며 일 할 때 가장 잘 깨달을 수 있다고 고백한다.

 

(5) 만나는 사람들 위해 기도하기

  업무 차 배를 타고 이동할 때 프랭크 루박은 배에서 누구를 보든지 기도 할 수 있길 도와달라는 기도를 한다. 또한 하나님과 친밀해 지려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을 타인들에게 전해야 함을 강조한다.

 

(6) 하나님을 기억하기 위한 다양한 방법

  기도 일기 쓰기, 수시로 찬양 흥얼거리기(찬양의 기도), 예수님을 생각하게 하는 물건들을 시야에 둠으로써 무의식적으로 예수님을 생각하게 환경을 조성하는 방법들을 제안한다. 예를 들면 예수님을 그림이나 성경책을 가까이 두는 등의 방법들이 있다. 또한 사람들이 준 편지나 사진을 손에 들고 기도하는 훈련도 한다.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사진을 손에 들고 기도할 때 기도한 시간을 기록한다. 또한 혼자 있는 시간에 하나님께 큰소리로 말하기도 한다.

 

(7) 1분 게임

  1956년에 ‘1분 게임이라는 제목으로 팸플릿을 배포하였다. 서론에서 언급한 브라더 로렌스의 하나님의 임재연습의 현대판 길라잡이이다. 1분 게임이란, 주님을 생각하기 위해 적어도 1분에 1초씩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다. 하던 일을 중지하지 않고서도 가능하다. 프랭크 루박이 이런 실험을 시도하면서 주님과 동행하는 법을 터득했다. 모든 언행에 주님을 초대하는 것이 1분 게임을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이다.

  1분 게임을 하면서 하루의 점수를 매긴다. 처음에는 점수가 낮지만 습관이 되면 쉬워진다. 습관화 하기 위한 방안으로서 길에서 지나는 사람들을 위해 짤막한 기도하기, 군중 속에 있을 때 사람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이라고 속삭이기, 사람들과 대화할 때 그를 위해 기도하고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하나님께 묻기 등 자세한 지침을 제시한다.

물론, 1분 게임을 할 때 빠르게 내 뜻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부드럽고 지속적으로 억누르는 것이 필요하다. 처음에는 좋은 결과들이 금방 나오지 않으므로 인내와 하나님의 완전한 통치 가운데 있는 순종이 필요하다. 또한 사람들에게 내가 1분 게임을 한다고 소문을 내고 더불어 마음과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무리 속에서 서로 자극을 받아 유지하여, 습관화 할 수 있다. 프랭크 루박은 1분 게임과 더불어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기도하면서 성경을 공부하는 시간을 갖도록 제안한다.

프랭크 루박. <프랭크 루박의 1분 게임>. 안정임 옮김. 더드림, 2015.

 

아래의 내용은 4, 5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4, 5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4장 영성지도와 신뢰 & 5장 영성지도를 준비하기

  영성지도와 신뢰를 읽으면서 ‘영적 발돋움’의 ‘환대’가 생각이 났다. 책에서 거론되지는 않았지만 신뢰하면 환대하게 되고 환대가 가능하다면 신뢰하고 있다는 뜻이 아닐까란 생각을 했다. 또한 "누가 영성지도의 책임자인가"라는 것과 "내 삶의 주인이 예수님이 되신다"는 것이 모든 상황에서 안정감을 주는 것 같다. 자존감과 안정감의 뿌리는 온전히 예수님을 향한 신뢰에 있다.

 

헨리 나우웬. 영적 발돋움. 이상미 옮김. 두란노

 

  오랜 시간 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훈련하다가, 선교사가 된 이 후에야 인지하고 스스로 훈련하는 것중에 하나가 이 책에서 말한 ‘나를 신뢰함’인 것 같다. 물론 ‘하나님을 신뢰함’에서 하나님을 신뢰한 오랜 경험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감지하는 다양한 방식을 알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그것을 감지하는 ‘나를 신뢰함’도 그 안에 포함되는 것이다. 책의 예에서는 주차장에서 ‘잠시 머무름’이 하나님께 반응하는 한 방식이라고 했다. 어느 순간 나도 그 훈련에 돌입하면서 사실 행동이 이유 없이 많이 느려졌다. 매번 점검하고 물어보고 확인하고, 상황이 끝나고 나면 또 다시 이건 어떤 경우였나? 하나님이 내게 말씀하신건지, 내 욕심인지, 사탄이 주는 마음인지.. 돌아보고 확인하고, 패턴을 분석한다. 

 

  월, 금요일에 강의를 나간다. 월요일은 2과목 6시간이라 미리 준비해야 해서 가능하면 주일 저녁은 시간을 비워두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 평소에 강의 준비를 못하는 관계로 주일 저녁이라도 강의를 준비하고 싶은 ‘나’의 마음이다. 토요일 저녁 평소에 연락 안하던 두 제자와 연락이 되면서 그중 여학생이 주일 저녁에 당장 보자는데 이미 몇 번 미뤄서 더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러면서 (이전에는 원망 했겠지만 그 동안의 패턴 분석이 있는 관계로 조용히) 하나님께 여쭤봤다. ‘이거 제 욕심으로 보는건가요? 압지의 타이밍인가요?’ 만나봐야 안다. 잔뜩 기대하는 마음과 엄청 피곤한 육체로 여학생을 만났는데 내가 던진 처음 질문의 답에서부터 아버지가 만나게 하셨음을 알 수 있었다. 주일 저녁에 대단히 늦게 집에 들어가면서 강의 준비에 은혜를 구했으나 강의 준비중 약 40%를 제대로 못하고 월요일 강의에 갔다. 이미 학생을 만났을 때 우리의 만남이 압지의 뜻 가운데 있음을 확인했으니, (이 마음 안에는 '제가 순종했으니까 지금 제게 필요한 은혜도 주세요!!!'가 있었다.) 강의에도 은혜가 있기를 구했다. 그런데 두 번째 강의에서 아는 것을 틀리게 말하고 실수하고... 스멀스멀 원망이 올라왔다. 밥도 못 먹고 6시간 연강에 두 번째 강의는 죽 쓰고 나니, 아버지께 심통이 났다. ‘너무 하시는거 아닌가요...’

 

  월요일 저녁 약속장소로 이동 중에 ‘시험 때문에’ 출애굽기 강의를 들으려고 틀었는데 ‘하나님께 순종이 궁극적으로 은총이지만 과정은 고난일수 있다’는 말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내가 심통 부렸다고 아버지께서 금방 답 주시는 것 같았다. 나는 ’하나님께 순종은 궁극적으로 은총‘인 것을 알지만 그 신뢰에 자주 금이 가는 것 같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나를 향한 사랑의 확증인 예수님을 항상 잊지 말아야 하겠다. 어쨌거나 나로 하여금 오래 불평하지 못 하도록 강의를 듣게 하시고 저녁식사에서 만난 교회 안다니는 분으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말라‘는 말을 듣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한다. 강의 기도 제목이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는 수업이다. 수업 때 실수나 내 생각 대로 안되거나 평안함이 없으면 하나님께 심통을 부린다. 지난번도 마찬가지였는데 믿지 않는 분과의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영광을 빙자해서 내가 수업 잘 하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던.. 저 깊은 곳의 나의 욕심을 들여다 보게 된 계기가 되었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천로역정 그리고 현재의 나...

  계속 무지가 걸렸었는데 역시나 마지막 장면, ‘무지가 깊이 마음에 남았다. 후기까지 다 읽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지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남아서 일부러 책을 읽은지 12시간이 지나서 글을 쓰는데도 무지의 이야기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어느 책에서 인지 목사가 된 아들이 자신을 전도하고 가르친 부모님께 다시 복음을 전했을 때 무지와 같이 신앙생활을 했던 부모님은 아무도 자신들에게 그렇게 복음을 이야기 해준 적이 없다며 왜 자기들은 이제야 복음을 듣게 된 건지 억울해 하셨다는 부분을 읽은 기억이 난다. ‘무지이야기를 읽을 때 여전히 교회에 다니고 교회의 리더이지만 무지와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많이 생각나서 마음이 아팠다. 혹은 누군가 나를 봤을 때 무지와 같지 않을까? 건강한 리더와 공동체 안에서 나를 다듬어 가시기를 구한다.

 

포이에마

 

  7장에서는 허망시장에서 신실이 믿음을 증거하다가 먼저 천성으로 들어간다. ‘그 청년 바보의사같은.. 참 믿음의 사람들 같아 보이는 사람들이 일찍 세상을 떠나는 경우를 보면서 살아서 믿음을 잘 증거 할 만한 착한사람들은 왜 먼저 데리고 가시고 (나 같은) 크리스천이라는 허울만 있고 고칠꺼 투성이인 욕심쟁이들은 세상에 남겨두시는 걸까생각해 본적이 있다. 어쩌면 먼저 떠난 이들은 먼저 선택 받았다는 생각을 해봤는데 신실이 떠나는 장면에서 남아 있는 자의 고난과 고통을 생각해보면, 신실의 경우는 더 복된 것 같다. 이 부분에서 더 큰 감동은 신실이 떠났지만 신실의 믿음의 고백으로 소망이 새 생명을 얻게 된 것이다. 한 알의 밀알이 죽어 생명을 얻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다.

 

  8장에서는 두마음, 세상집착, 돈사랑, 노랭이들과의 대화에서 의도선택의 미묘한 관계를 아버지 앞에서 잘 점검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무언가 결정할 때, 생각할 때 정말 의식성찰의 과정이 없이는 순간 선을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 나는 매일 점검하지 않으면 매일 넘어갈 수밖에 없는 경계선에 서있는 사람인 것 같다. 그래서 매일이 쉽지 않지만, 매일이 은혜일 수밖에 없는... 세겜 사람들 처럼 모두 잃고 죽을 수 밖에 없는 나에게 또 기회를 주시는 아버지께 감사한다.

 

  9장에서는 데마의 유혹을 물리치고 생명수의 강에서 쉼을 얻고 10장에서는 언약의 열쇠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거인에게 당하다가 벗어나게 된다. 나의 매일도 약속의 말씀이 없이는 살기 힘들다. 나의 두 마음의 실수 였을지 부르심을 따라 간 곳에서의 상처였을지...감당하기 어려운 이야기를 듣고 하루 동안 마음이 정지된 적이 있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은 말씀을 보는 것 뿐이어서 통독하던 대로 전도서를 읽는데 7:21에서 사람들이 하는 모든 말에 네 마음을 두지 말라는 말씀으로 회복 될 수 있었다.

 

10장 절망의 거인에게 붙들린 포로들

 

  11장에서 만난 목자들에게 위로와 경고와 지도(map)를 받고 예루살렘의 문을 보고 희망에 가득찬다. 12장에서 드디어 무지와 만나고 작은믿음이 강도 만난 이야기를 나눈다. 작은믿음이 어려움에 당한 이유를 생각하며 믿음이 중요하다고 시를 지었던 크리스찬이 15장의 성문 앞 강을 건너면서 자신의 행위와 죄에 더 집중하는 것이, 나와 같아 보였다. 평소에는 믿음의 승리자 인 것처럼 지내다가 위급하고 위험한 상황에서는 중심이 내가 되고 하나님을 원망한다. 크리스천 옆에 소망이 있었던 것처럼, 함께하는 좋은 공동체와 기도 동역자들이 천성 가는길에 함께 하기를 구한다. 13장에서는 목자들이 준 지도를 보지 않고 아첨쟁이를 따라 갔다가 그물에 갖혀 천사의 도움으로 빠져나온다.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수 없음을, 나의 마음도 매 순간이 이와 같음을 생각했다. 천사의 채찍을 기억하고, 마법의 땅을 무사히 통과한다. 14장에서 다시 무지와 만나지만, 역시 말씀에 근거하지 않고 자기기만, 자신의 선으로 의롭다고 믿는 율법, 공로주의에 빠진 무지를 돕지 못 한다. 뒷걸음질 치는 이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여기서 제시하는 증상들이 내게 발생하는지 항상 점검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사이가 아주 미묘해서 인지하기 힘들더라도 좋은 공동체 내에서 나를 계속 점검하며 그 나라 가기까지 건강한 믿음을 만들어 갈수 있는 은혜 주시길 기대한다.

 

 

1. 저자소개_존 번연

  영국의 평신도 설교자 존 번연(1628-1688, 영국 엘스토우)10살에 청교도주의에 영향을 받고, 존 기퍼드 목사에게 침례를 받았다. 설교하지 말라는 명령을 어기고 계속 복음을 전하는 바람에 1660년부터 1672년까지 베드포드 감옥에 있을 동안 이 책을 집필했다. 1678년에 1부 출판이후 1692년에 아내와 네아들의 순례이야기인 2부를 발표했다. 원작 중 많은 부분이 없어져서 1862년에 George Offor가 편집하여 만든 것이 지금 까지 전해지고 있다.

 

포이에마 출판사

2. 책 소개

  저자는 서문에서 본인이 작정하고 이 책을 쓰기 시작한 것은 아니라고 표현한다. 단지 성도들의 걸어간 길을 기록하려던 것이 계속 머리에서 떠올라서 쓰다 보니, 성도들이 영광을 향해 가는 길에 관한 글이 되었다고 고백한다. 천로역정의 여러 가지 버전이 있지만 이 버전은 편집자가 현대 독자들이 편하게 읽을 수 있게 다듬고 일러스트를 넣었다. 개인적으로 이전에 읽었던 천로역정 버전과 달라서 책 뒤쪽의 편집자 노트 읽기가 번거롭긴 했지만 편집자의 주석에 더 큰 은혜가 있었다. 지면관계상 자세히 나누지 못해 아쉽다.

 

3. 천로역정 (1~6장까지)

  꿈속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꿈속에서 시작되는 배경이 멸망의 도시이고 주인공인 크리스천이라는 설명도 없다. 이야기가 진행하면서 나오게 되는데 크리스천멸망의 도시에서 나와서 처음에는 좁은 문, ‘좁은 문을 지나서는 좁은 길을 따라 안전한 피난처인 예루살렘 성으로 가는 과정이다.

 

  1장은 멸망의 도시에서 말씀을 깨닫고 자신을 직면한 크리스천이 괴로움으로 인해 자신에게 익숙하고 안정된 멸망 받을 도시를 떠나기로 결정하는 과정이다. 2장에서는 유순한이나 옹고집처럼 세상길을 선택하지 않고 힘들지만 좁은 길을 선택 하고, 3장에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저절로 짐이 벗어지는 은혜를 맛보게 된다. 4장에서는 겸손의 골짜기를 건너는 어려운 과정을 거쳐 5장에서는 신실이라는 동역자와 함께 순례과정에 간증을 나눈다. 6장에서는 허풍선과의 만남을 통해 삶으로 열매 맺는 믿음을 이야기 한다.

 

4. 나의 이야기

  ‘신실을 만났을 때 두 순례자가 같은 길을 지나왔지만, 각자 다른 어려움을 만났음을 알았다. 현대에서 믿음의 삶도 같은 성도라지만,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어려움이나 해결해야 하는 "시험"이 다르므로 그에 따른 믿음의 결단이나 내용도 달라진다선교지 철수 후 한국에 들어와서 1년간 계속 아버지께 물어보는 시간을 갖다가 어찌어찌하여 신학교에 왔고 한국생활 3년차가 되어서야, 하나님이 한국에서 어떻게 살아가라고 알려주시는 것 같아 재미있고 행복한 믿음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바로 신실크리스천이 같은 길에서 다른 상황을 겪었던 것을 읽고 있을 즈음에 나의 믿음의 색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만약 딱 그 부분을 읽고 있던 시점이 아니었다면, 선배의 이야기를 듣고, 나를 점검하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 했을 것이다. 고후 10:18절 말씀을 기대하며.....

 

아래의 내용은 2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2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나눔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2장. 영성지도의 핵심

  2장을 읽었던 시간은, 영적으로 너무 고갈되어 있다고 ‘죄책감’을 느끼고 있을 시기였다. 방학중 바쁜 일정으로 하나님과 깊이 단둘이 머무는 시간이 많이 부족했는데 입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는 나의 행위에 의하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또 그렇게 기도하면서도 아버지의 말씀이 무엇으로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사울왕의 답답함이 느껴졌다^^) 그랬던 것 같다. 게다가 지난주 목사님과 멘토링 때 목사님께 새벽기도 회복 여부에 대해서 문의했는데 다시 회복했으면 좋겠다고 조언을 해주신 것이, 최근 나의 상태는 나의 행위로 인한 영적 결과물이라는 ‘죄책감’이 생긴 것 같다. 책에서 ‘기도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라도 기꺼이 계속 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구하고자 하는 자발성’(p62)이 영성지도의 본질적 요소라고 했다. 

기도가 만족스럽지 못하고 불편하게 느껴질 때라도 기꺼이 계속 해서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구하고자 하는 자발성

 

  마음이 어려울 때 생각나는 동역자들에게 연락해서 기도 부탁을 한다. 그럼에도 수련회 전날 밤 너무 피곤한 채로 아무것도 못하고 잠들면서 지금으로서의 해결책은 휴학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며 아버지께 올려 드렸다. 해야 할 많은 것들에 대한 ‘나의 두려움’인지 휴학에 대한 아버지께서 주시는 마음인지 검증이 필요했다. 두려움이면 직면하고 아버지안에서 해결해야 할 것 같았다. 수련회 점심시간에 Y 대 졸업생과 약속이 있었다. 이 친구는 만날 때 마다 자신에게 있었던 영적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한다. 내가 강의하는 학교 개강이 월요일이었는데 일정이 꼬여서 주일 밤 늦게 까지 강의 준비가 안됬었다. 이 친구에게 기도 부탁을 밤늦게 했는데 그 전까지 이 친구는 최근 자기에게 자주 연락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자기와 같아서 싫은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그런지 계속 머리가 아팠었다고 했다. Y대에서 나를 만났을때, 나의 이미지는 학생들이 보기에 1분도 흐트러 트림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런데 나마져도 그 친구에게 시간이 없다 기도해 달라는 문자를 보내니..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 안하는 네 모습이야’라고 알려주셔서 머리 아픔 없이 꿀잠을 잘수 있었다고 알려주었다. 나의 괴로움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한사람을 자유케 해주심에 감사하면서도 그 친구에게 ‘그럼 하나님이 나한테도 하실 말씀이 있을텐데...’ 휴학을 고려하고 있는 상황까지 같이 나누고 기도부탁을 했다. 그리고 수련회 찬양 중 ‘i’m no longer a slave to fear, I am a child of GOD’ 여기서 터졌다. 아버지께서 두려움 때문이라고 알려주시는 것 같았고, 이제 부르심대로 일어나자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다음곡이 ‘이것이 나의 간증이요..’ 였다.) 그런데 분과 모임시간에 교수님이 예를 들어 말씀하시다가 ‘아버지가 경제활동을 못 하시던 분이면 하나님께 그 이미지가 투영되서 하나님이 무얼 주겠냐는 상태로 하나님을 보게 된다’는 말씀에서 또 터졌다.

 

  나의 믿음의 싸움을 보면 대게 시간과 재정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훈련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듣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그렇게 훈련하는 분이냐고 반문할 정도로 그런 간증이 많다. 왜 그 부분만 그렇게 훈련하는지 몰랐다. 그런데 이번 수련회를 통해서 알게되었다. 아빠의 이미지가 하나님께 영향을 못 미쳤다고 평소에 감사했는데 시간과 재정에 관해서는 나를 꽉 묶고 있었던 것이다. 비로소 나의 특별한 훈련의 과정에 대한 답이 공동체 안에서 찾아졌다. 횃불은 나에게 주신 귀한 공동체이다. 이번학기에 더 이상 휴학 질문은 없다. 이번학기도 부르심대로 아버지와 함께 풍성히 누리게 되길 기대한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1장. 영성지도란 무엇인가?

  장로교 교회에서 자라난 나는 당연히 장신대를 가게 될줄 알았다. 극적으로 횃불에 2017년에 입학하게 되면서 이곳은 하나님이 보내신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요? 왜 횃불인가요? 왜 지금인가요?’라고 자주 묻고 있다. 여러 가지로 답을 많이 주셨다.

 

  책을 읽으면서도 굳이 내가 왜 횃불에 왔어야 했는가에 또 동의가 되었다. 2006년부터 2016년 2월까지 Y대에서 학생들을 정말 많이 만났다. 그러면서 상담은 사람이 하는 게 아니라는 결론을 혼자 맺었다. 상담 뿐 아니라 여러 가지 경험들로 하나님께서는 나를 많이 변화시키셨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것들은 어디서 배우지 못한 것들이라 ‘하나님 저 이단이에요?’ 계속 물었고, 책을 통해서라도 설교를 통해서라도 알려달라고 졸랐다. 어쩌면 횃불의 시간이 이때 질문한 것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의 시간인 것 같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영성지도’의 의미와 목적 등을 읽으며, 어쩌면 내가 사람들을 만날 때 항상 성령님과 함께 하므로 신자와 불신자 상관없이 서로에게 영성지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성지도’는 두 사람 모두에게 지도가 되는 것 같다는 것이다. 상담자가 결국 성령님이시기에 두 사람은 성령님 앞에서 대화를 나누고 대화는 성령님이 이끌어 가시므로 결국 지도자나 피지도자나 결국 성령님으로부터 얻게 되고 알게 되는 것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 지금까지 내 경험으로는 그랬다. 1학년 때 멘토링 때문에 담임목사님께 월1회 멘토링 받던 것을 지금도 받고 있다. 혼자 사역하는 나에게 학교와 목사님의 멘토링은 바로미터가 되어준다. 정기적 멘토링이 1년이 넘어가고 있는데 얼마 전 목사님께서 나와의 만남을 통해 본인도 깨닿는 부분이 있어서 기대가 된다고 하셨다. 항상 목사님의 시간을 뺏는 것 같아 죄송했는데 위로가 되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학생들과 만날 때도 학생들이 변하게 되는 부분 뿐 아니라 내가 알게(경험하게) 되는 것들도 있었다.

 

  어제밤 책을 이 읽고 있는데, 매주 만나던 A가 ‘다윗의 노래’를 보내며 내 생각이 났다고 했다. 바로 그전 정시기도 시간에 월세 보다 십일조를 내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있는 돈을 털어서 십일조를 하겠다고 결정하면서 아버지가 기대되고 신뢰가 되었다. 그런 마음이 생긴 것에 감사하고 기도를 간단히 마쳤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나보다. 신뢰한다고 하지만 또 이번 믿음의 모험이 나에게는 두려움이 수반되는 것이었는지 찬양을 틀면서 부터 울컥 눈물이 솟았다. 왜 우는지도 모르고 아버지 앞에 머물렀다. 작고 흔들리는 믿음이지만 믿음을 주셔서 감사하고, 이렇게 믿음의 친구들을 곁에 주셔서 감사했다. A랑은 1년 남짓 만났다. A와 만나면서 하나님이 A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A가 자유케 되기를 얼마나 바라시는지 알게 하셔서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목격하게 해준 하나님과 A에게 고마웠다. 그런데 A는 자기를 참아주고 기다려준 하나님과 나에게 고맙다고 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마웠고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A를 통해 나를 위로하신다. 영적지도는 나이와 거리를 넘어 soul mate를 만들어 주는 것 같다.

 

 

1. 디트리히 본회퍼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에서 1906년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와 프로이센 궁정목사였던 할아버지인 가정배경에서 태어났고, 1945년에 사형당했다. 제자의 길과 성도의 공동체로서의 교회의 참모습을 가르쳤다. 나치에 반대하는 신학자들이 모인 고백교회의 목사후보생 교육기관의 책임자로 섬겼었고, 미국에 망명할 기회도 있었으나 독일로 돌아왔다. 나치에 저항하다가 43년에 체포되어 45년에 교수형 당했다. 칼바르트와 니버의 제자로도 알려졌다.

  나치의 억압가운데 목사후보생 훈련원과 형제의 집이 폐쇄된 것이 이 책을 저술하게 하는 동기가 되었다. 정치, 교회, 개인적으로 긴장이 컸던 상황에서 저자는 4주간의 휴가 중에 이 책을 단숨에 저술하게 되었다.

 

다른 출판사에서 다른 제목"성도의 공동생활"로도 출판 되었습니다. (이북도 있습니다.)

2. 신도의 공동생활

  천재 신학자라는 별명답게 이 책의 단락별 주제가 명확했다.

  머리말에서는 간단하게 공동체의 문제는 교회적 책임이고, 공동의 작업을 통해서만 해결될수 있는 문제임을 밝힌다. 첫장 공동체에서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인 영적 공동체와 정신적 공동체를 비교 설명하며 영적 공동체의 특징이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존재하는 공동체임을 설명한다. 아버지가 정신과 의사여서 그런지, 아니면 히틀러가 사회에 보이고 있는 영향 때문인지 정신적 공동체를 설명하는 부분이 너무 명확하고 피부로 와 닿았다

  두 번째 장 함께하는 날에서는 공동생활의 아침 모임(시편 기도, 찬송, 성서읽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다. 단음으로 함께 부르는 찬송과, 공동체 대표기도의 의미 등에 대해서 동의 하며 읽는 부분이 참 많았다. 식탁 교제를 통해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신 것을 기억하고 실제 우리의 식탁 교제뿐 아니라 예수님의 성만찬, 하나님나라의 식탁 교제까지를 의미함을 상기시킨다. 식탁 교제를 통해 노동할 수 있게 해주신 것에 대한 감사 뿐 아니라 노동의 열매를 주심에도 감사하게 된다. 그러므로 기도와 노동이 함께 하는 것에 대한 의미를 설명한다.  프랭크 루박24시간 주님과 함께 하는 것과 통하는 내용이었다. 그리스도인의 기도는 노동과 함께 하므로 기도와 노동은 서로에게 시너지가 있고, 그리스도인의 말, 행동, 노동은 모두 기도가 된다고 한다. 점심 식사 시간은 짧은 휴식으로 다시 하나님께 감사하며 남은 하루를 위한 기도를 한다. 또한 저녁 식탁 교제와 마지막 기도회로 하루를 마무리하며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다. 이 저녁 기도 시간에는 그날 하루의 상처를 치유하고, 잠 들었을 때도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기를 구한다.

  세 번째 홀로 있는 날에서는 전적으로 말씀을 기다리는 침묵의 시간의 중요성을 말하고 네 번 째섬김은 혀를 훈련하며 지체의 소중함을 발견하라고 조언한다. 공동체를 유지하지 위해서는 구체적 섬김이 필요하다. 마지막 장고해와 성만찬에서는 타인에게 나의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하고 성만찬에 참여하라고 한다. 바로 여기서 교회의 기쁨이 완전해 진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침시간은 괴롭힘 당하면 안 된다는 말에 대단히 동감했다. (물론 동감한 부분이 참 많은 책이어서 다른 책에 비해서 책에 별표를 마구 긋긴 했다.) 아침에 하루를 시작 시간과 저녁에 마무리 하는 양쪽은 정말 나도 사수하고 싶은 시간이다. 저녁시간이 아직 바다가 완전히 고요해지지 않은 시간이라고 한다면 아침에 일어났을 때는 창조 때 처럼 성령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는 시간과 같아서 그 시간에 부어지는 은혜가 크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도 아침 시간은 절대 분주해 지고 싶지 않은 시간이다. 공동 기도회 때는 아침 저녁으로 구약 한 장과 신약 반 장 이상을 함께 읽으라고 권면한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참 꿈같은 가정 공동체를 상상했다. 자녀와 함께 아침 저녁으로 말씀을 봉독하는 마음으로 깊이 서로를 위해 기도하는 공동체... 아버지 제가 만나는 모든 가정이 이런 가정이, 이런 주님의 교회가 되게 해주세요...

 

1. 소개

  말씀을 깊이 묵상하다 보면 기도를 하게 되지요? 가끔 기도하다가 '내가 왜 이런 기도를 하지?' 할때가 있습니다. 말씀을 읽다가 여러가지 생각이나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신앙의 선배들은 이러한 경험들을 잘 기록해 두어 예수님과 동행하는 우리의 여정에 길잡이가 되어 주기도 합니다. 지금도 여러 크리스찬이 영적 인도하심을 경험하고 있지만 서로 나누지 않아 모르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이 깊은 이야기를 점검 해 보고 싶을때 당신에게는 이런 경험을 나눌 만한 친구가 있나요?

 

2. 영성 지도(Spiritual Direction), 영적 동반자, 영혼의 친구, 영적 동행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나눌 만한 공동체가 있다면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깊은 내면의 이야기를 함께 나눌 사람이 없다면 영성 지도자(Spiritual Director)를 만나실수 있습니다. 성령님과 셋이 함께 그 경험을 다시한번 들여다 볼때 하나님께서 모임을 통해 분별할수 있게 해주시는 은혜를 경험할수 있습니다.

 

  영성 지도(여러가지로 불리지만 영어 번역을 직역한 '영성 지도'로 사용하겠습니다.)는

■ 상담이 아닙니다.

  전문 심리 상담이 아닙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를 경험한 것을 다시한번 기술하고 함께 하나님의 시선으로 관찰합니다. 영성 지도자는 이런 과정에 훈련된 사람이고 자신도 영성 지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  영성 지도자는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궁금한 것을 가지고 와서 답을 달라고 하시거나, 신학적인 설명을 요청할때 답을 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물론 당신이 하나님 안에서 답을 찾아 갈때 아주 작은 신학적 도움이 필요하다면 도움을 줄수도 있겠으나, 대부분은 당신이 찾아가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영성 지도자도 영성 지도 시간에 어떤 대화가 이루어 질지 전혀 알수 없습니다. 영성 지도 시간은 성령님이 직접 지도하시고, 영성 지도자는 오랜 경험자로서 당신이 하나님께만 집중하도록 돕는 도우미 입니다. 우리는 모두 성령님 앞에 머물러 성령님을 기대하면 됩니다.

 

3. 진행 방법

  일대일로 하는 방법도 있고 그룹으로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커플일 경우 커플과 지도자가 함께 성령님 앞에 머물수 있습니다.

. 아래의 여러가지 방법들은 참여 인원에 따라 소요시간이 변동될수 있습니다.

. 모든 영성 지도자가 아래의 방법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다양한 영성 훈련(자연 묵상, 그림 묵상, 침묵 훈련, 예배, 의식 성찰, 호흡 기도, 금식 등...)들이 도구가 될수 있습니다. 

. 영성 지도자는 처음 몇 회를 만나고 당신과 지도자가 잘 맞으면 기간을 정하고(대부분 6개월-12개월) 만나도 됩니다. 정기적으로 다양한 영성 지도자를 만나는 것을 권장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방법과 다양한 당신을 경험하므로, 다양하게 일하시는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수 있습니다.

 

■ 방법 1. 만남의 시간에 함께 말씀을 묵상하고 (약 30분) 그 말씀으로 영성 지도를 진행합니다. (약 20분-30분)

■ 방법 2. 일주일 혹은 일정 기간 말씀을 묵상하고 영성 일기를 기록하고 일기 내용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영성지도자와 만납니다. (약 50분)

■ 방법 3. 매일 자신을 돌아보고 (의식성찰) 영성 일기를 기록하고 일기 내용을 중심으로 정기적으로 영성지도자와 만납니다. (약 50분)

■ 방법 4. 만남의 시간에 함께 의식성찰을 하고 (약 30분) 의식 성찰한 내용으로 영성 지도를 진행합니다. (약 20분-30분)

■ 방법 5. 특별한 분별이 필요한 시간에 걸림이 있는 말씀이나 기도의 내용으로 영성 지도를 진행 할수도 있습니다.

※ 그러나 분별은 어느 날 갑자기 잘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에서 하나님과 친밀 할때 저절로 반복적으로 훈련되며, 특별한 분별의 시기에 크게 흔들림 없이 분별할수 있게 됩니다. 혼자서 일상에서의 훈련이 안될때 영적 공동체가 함께 하면 좋지만, 그런 환경이 안될때 영성 지도자를 정기적으로 만남으로 영적 근육이 쌓여 갈수 있습니다. 점 치듯이 어느날 갑자기 분별하겠다고 할 때 하나님의 깊은 마음을 모르고 혼돈 스러워 하게 되기도 합니다.

 

방법 1, 4의 경우 혼자서 말씀을 집중해서 볼수 없고, 하나님과 친하고 싶은데 잘 안될때 시도해 보실 수 있습니다.

 

4. 영성 지도의 목표

4.1 하나님의 시각과 마음으로 일상을 살아갈수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이렇게 될수는 없습니다.

매일 매일 조금씩 말씀에 잠식되어 갈때, 말씀이 나를 점점더 점령하고 성령님의 반응이 조금씩 느껴지기 시작합니다. 사실 하나님은 지금도 당신 곁에서 말씀하고 보여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우리가 훈련이 되지 않아서 듣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정기적으로 영성 지도를 받다보면 점차 일상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상황을 타인을 나를 이해하고 일게 되는 당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4.2  예수님이 이 땅에서 사셨던 것과 같은 자유로운 은혜의 리듬을 배우므로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천국'에 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 입니다. 예수님이 이땅에서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시는 본을 보이신 것은 저희들에게 그렇게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예수님 처럼 하나님과 함께 자유로운 은혜의 리듬을 배우게 됩니다. (마태복음 11:28-30, 유진피터슨 메시지성경)

4.3  '하나님 나라'의 확장 입니다. 각 개인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 지게 됩니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산다는 것은 '하나님 나라'를 산다는 것입니다. 당신에게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면 바로 그곳이 '천국'입니다.  그런 개인이 모여 가정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고, 우리의 차세대 들이 변하는 세상에서 변하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누리며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남편과 아내가

세상의 모든 엄마와 아빠가

세상의 모든 상사와 직원들이

하나님의 시각을 회복하는 그날까지

제가 먼저 매일 매일

하나님과 함께 살기를 연습하겠습니다.

그리고 요청하시면

당신의 영적 동반자로

당신의 영적 여정에

작은 길동무가 되어 드리고 싶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갈망하는 분들에게 재정 부담 없이 무료로 진행합니다.

* 기부나 후원은 연말정산이 가능합니다. (연말정산 안내 : 070-4006-5304~5, HOPE 재정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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