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 수 없이 시대와 사조의 영향을 받은 바울이나 아우구스티누의의 해석이 아닌 전적으로 (헬라와 플라톤의 영향력을 최대한 배제하고) 성서에서 말하는 인간론을 해석하고자 한 애씀이 있다.
1장에서 말하는 성서에서의 전인적 인간론이란 육체와 영혼을 따로 다루는 이원론이 아닌 육체자체가 인간이고 영혼자체도 인간이라는 전제로 죽음과 부활을 재정의 한다.
구약에서 영혼과 육체를 표현하는 네페쉬, 빠사르, 루아흐, 레브와 신약에서의 소마, 사르크스, 프뉴마, 프쉬케의 단어의 뜻을 고찰하면서 신구약에서 표현된 이 단어들은 모두 제유법적 표현으로 결국 전인적 인간론을 말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요한 것은 ‘죽음’과 ‘부활’을 전인적 인간론적 입장에서 해석해야 하는데, 지금까지의 전인적 인간론들은 죽음과 부활에서 다시 이원론적 인간론으로 해석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었다. 전인적 인간론에서의 ‘죽음’은 영혼의 분리가 아닌, ‘전적 죽음 이론’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단절, 하나님과의 분리의 결과가 전적 죽음이라고 해석한다. 오스카 쿨만은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의 죽음을 비교하면서 그리스적 죽음과 성서적 죽음의 차이를 설명했다. 죽음을 이렇게 전적 죽음으로 해석하면서 부활과 연결 될 수 있다. 죽음으로 하나님과 분리를 경험하지만 신자들은 죽음을 통해 한편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된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그와 함께 왕 노릇 할 뿐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다. 이는 심판받을 죄인인 옛 사람의 죽음과 새로운 피조물로서의 새 사람이다.(골3:1-11) 전인적 인간론으로 심판 전후의 인간을 성서적으로 설명 할 수 있다.
성서를 기반으로 하는 전인적 인간론은 영과 혼의 분리가 아닌, 죽는 전인, 부활하는 전인, 영생하는 전인이 있다고 주장한다. 20세기 신학에서는 그동안 플라톤에 영향을 받아 해석했던 모든 것을 정리하고 성서에 기반을 둔 신학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도 있다.
창3:15-16절에 의한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 “죽음”(성서적 죽음)이라는 것 까지는 알고 있었으나 그것이 전인적 죽음, 전인적 부활과 연결된 다고는 생각 못하고 이 땅에서의 죽음 부분이 약간 애매모호하게 남아있었는데 그 부분에 여명이 비춰진 것 같긴하다.
그러나 (나의 짧은 생각에....) 논리가 정확히 맞아 떨어지지는 않는 부분들도 있고, 신구약에서의 단어 사용례에서는 히브리 사고를 좀 더 강조했으면 이해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헬라와 플라톤의 영향으로 해석된 부분들에 대해서는 도움이 많이 되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우리가 알려고 해도 이렇게 무언가 조각 조각으로 밖에 이해하지 못 하는게 맞는 것 같다.
(p37) 중간상태에 대해서 이야기 하는데, 로핑크라는 학자의 연구에서 저자도 지적했지만 6-7번에서 갑자기 비약이 일어나는거 같다. 중간상태의 로핑크 이론 이후의 설명에 있어서는 죽음과 부활 부분과 연결이 되어 이해 되었다.
: 샤를 드 푸코, 에블린 언더힐, 디트리히 본회퍼, 시몬 베유, 도러시 데이, 토마스 머튼
3. 해방 영성 :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4. 페미니스트 영성
5. 화해의 영성
6. 에큐메니컬 영성 : 떼제
7. 영성과 종교간 대화 : 비드 그리피스
8. 동방 정교회 영성
9. 영성의 민주화 : 피정 운동,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10. 결론
4. 페미니스트 영성 (1880년대 시작)
.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광범위하게 영향 끼친 해방주의 영성의 다른 형태
(1) 서유럽, 북아메리카의 투표, 재산, 대학 학위 획득위한 여성운동
(2) 유럽의 정치적 혼란 및 미국 민권운동에서 여성의 두드러진 역할
(3) 1970~80년대 학문 분야로 등장 →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 → 영성에 영향
. 대표 신학자 : (북아메리카) 샌드라 슈나이더스(영성에 민감한 성서연구), 조안 왈스키 콘, 로즈메리 류터, 엘리자베스 존슨(삼위 일체 신학에 대한 정교한 재해석), 캐서린 다크먼(『영신수련』의 여성들의 연구), 앤 카, 도로테 죌레, (독일) 엘리자베트 몰트만 웬델, (영국) 메리 그레이, 그레이스 잔첸(고전의 재해석, 기독교 신비주의 연구)
. 페미니스트 영성 근본 주장
(1) 영적 실행에 대한 접근법이 성차에 의해 영향 받는다.
. 성차 : 생물학적 성, 주어진 문화, 역사, 시대 안에서 구성되는 방법
(2) 인간성과 가치가 훼손되는 근본적인 방식의 확인 : 전통적 영성의 중요한 요소들에 의해 제한됨
(3)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이해, 제자직의 실행에 대한 대안적 방법 재구성
. 재구성의 방법
A. 경험의 타당성을 우선으로 신학의 기초를 확증 : 하나님을 경험 할 때 하나님 깨닫기 시작 → 여성의 경험과 방법의 구체적인 특징이 영적 지혜의 핵심 원천
B. 성경과 전통의 빛으로 경험을 성찰
4.1 여성주의 영성 : 아프리카계 미국인
4.2 무제리스타 영성 : 라틴, 히스패닉 여성
. 이사시-디아스 : 윤리학으로 신학 전공하여 대학교수(쿠바 난민), 가톨릭에서 여성 서품위한 운동에 관여, 진정한 영성은 구체적 관계와 정의 위한 투쟁에 몰두하는 능력에 의해서 측정
5. 화해의 영성 : 기독교 신앙의 중심, 영성의 중심
. 전쟁, 후기 식민주의, 인종 갈등, 사회 정의와 해방 등으로 화해가 중요주제
. 존 드 구루취(남아프리카 신학자) : 화해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모든 교리의 영감이며 초점’
. 화해의 수평적 차원 : 타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타자’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갈등의 극복 시도)
. 샬롬 : 영적, 물질적 조화와 웰빙의 상태 ∴ 부정의와 불화에 반대하는 비폭력 저항 위한 기독교 사역
(1) 마틴 루터 킹, 하워드 서먼(신비주의자, 급진적 사회적 행동의 영성을 발전시킴 : 기도와 고난이 기반)
(2)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예수회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 과학과 종교의 조화 노력
. 종교적 영역에서의 화해 이슈
(1) 20c 초 기독교 에큐메니즘
(2) 20c 세계화 과정에 태어난 종교간 대화 VS 폐쇄적인 기독교 영성의 영향력 증가
6. 에큐메니컬 영성 : 떼제
. 기독교 에큐메니즘 : 기독교 세계화와 교회의 정체성과 영성의 중심에 공동 선교가 있음의 이해
(1) 1910년 에든버러 선교 대회
(2) 세계교회 협의회 설립 (1948) vs 유엔 설립
(3) 가톨릭교회는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1960년대에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
. 로제 슈츠(개혁 교회 목사)의 떼제 공동체 (1940) : 기독교 에큐메니즘과 인간 화해의 영적 토대 가운데 상징적
. 배경 : 프랑스와 독일 사이 유대인 난민 도우려는 소명으로 수도원 모델로 매일 기도하는 일과 시작
. 1944년 화해의 선교에 헌신 : 범유럽 평화 → 종교, 사회, 세계적 전망
. 초기에는 개신교에서 가톨릭 회원 들어온 이후로 광범위 기독교 출신의 100여명의 회원
. 특징 『떼제 규칙』 (1953) : 관상과 사회적 참여의 연결 실습
(1) 공동생활 안에서 화해의 가능성, 고통 증거 (각자 종교의 순전성 유지)
(2) ‘잠정성’ : 신앙적 민감성으로 굳어진 태도와 고정 방식에 대해 이끄시는 하나님 방법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 하나의 큰 재단 대신 세계에 필요한 곳에 잠정적으로 작은 규모 공동체 이식
(3) 적극적 참여와 관상적 삶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헌신, 사회 정의와 화해 위한 투쟁
(4) 청년들을 위한 순례와 영적 탐험의 장소 (EX) 반복 찬미, 영적 안내 등으로 화해 분위기 조성
7. 영성과 종교간 대화 : 비드 그리피스
. 종교간 대화 : 기독교&불교, 기독교&힌두교 → 토마스 머튼 : 수도원 생활은 종교간 만남과 영적 실천의 경험을 나누는 유익한 상황
. 베네딕트회 데샤네 : 요가에 친숙, 명상중 신체의사용 회복에 기여
. 베네딕트회 존 메인 : 힌두교의 만트라 암송과 고대 기독교 수도원 실행 하시 관계발견 (존 카시안)
. 예수회 회원들이 일본 선의 권위자가 되어 선불교와의 대화에 참여
. 인도에서의 모델들
(1) (영국)베네딕트회 비드 그리피스 : 인도 영성 발전을 위한 대표적 기독교 집단
. 관상 공동체의 비전 → 서양의 합리주의에 맞서 직관적, 관상적 삶의 회복에 중점
. 이전 예수회 회원들이 설립한 아쉬람(암자, 샨티바남이라는 장소)에서 생을 마감
. 기독교와 힌두교 관계에 특별한 접근 방식 사용 : 양쪽 다 이해
. 아드바이딕 : 보편적 조화와 통일성 강조하는 교리
. 신성 안에 있는 궁극적 단일성에 대한 믿음과 삼위일체 교리 (불가해한 통일성이 구별 속에 균형)
→ 힌두교는 개인이 절대 정체성과 완전 하나가 된다고 보지만 기독교는 절대자의 깊음 안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관상적 과정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
(2) 샨티바남 : 힌두교 아쉬람에 영감 받아 생활양식과 예배를 인도식 모델에 적용한 기독교 공동체
. 환경과 예배는 모두 인도식
. 기독교, 힌두교 방문자들에게 모두 인기
8. 동방 정교회 영성
: 아토스산의 수도원 개혁과 러시아 영성의 중요인물들로 혁명 전후
. 아토스 산 : 그리스 마케도니아 산악 반도, 남성 수도원 정착지
. 헤지카즘(정교회 관상 전통)이 발전 → 1917년 러시아 혁명 결과로 수도원 감소 → 쇠퇴 → 세계대전 후 서방내에서 정교회 영성에 대한 관심 증가, 1960년대 그리스어 『필로칼리아』 → 아토스로 초심자들의 유입
. 러시아 영성 : 정치, 사회적 영향
1) 성 요한 (1829-1909) : 혁명 이전 정교회 평신도에게 중요한 영향
(1) 매일의 성체성사는 삶의 중심이므로 평신도가 성찬에 참여하도록 함
(2) 자선이 참된 기독교 경건의 본질 : 소외 계층위한 사역으로 표현
(3) 개인기도의 실천을 세밀하게 기획하여 해박한 영적 일기를 남김
2) 블라디미르 로스키 (1903-1958) : 평신도 신학자,
. 러시아신학연구소(파리) 설립, 『동방교회의 신비신학』
. 신화(神化)를 기독교의 핵심으로 보고,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
. 신비주의와 신학은 떨어질 수 없고, 기도와 전례는 신학의 토대, 신학은 신앙생활 발전에 관한 것
3) 마더 마리아 스코츠소바 (1891-1945) : 러시아 귀족 출신, 문학가, 수녀, 2차 세계 대전 순교
. 러시아에서 파리로 망명, 이혼 후 수도원 서원
. 지적, 종교적 토론의 중심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한 곳
.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레지스탕스가 되어 유대인 도피 돕다가 1945년에 가스처형
. 20c후반 이후로 정교회의 세계화 : 유럽의 종교, 영적 주류의 일부가 될 듯
→ 전례와 신비신학의 중요성을 알려줌
9. 영성의 민주화
: 피정,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 영성의 민주화 : 성직자나 수사들 같은 종교 권력과 영적 엘리트만의 영성이 아님
9.1 피정 운동
. 기원 : 예수님이 휴식과 기도 위해 제자들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신 신약의 기록
. 『영신수련』 이후 제도화된 피정 개념, 17C 피정의 집, 19C 중반부터 성공회에서 피정 시작, 20C 미국의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 → 사제들이 설교하는 다수를 위한 단체 피정
. 영적 안내 : 타인의 안내, 멘토, 동반자 역할을 하는 광범위한 영적 안내
. 기원 : 초기 수도원 때부터 기원 → 중세 고해신부의 역할로 제도화 → 16C 트렌트에서 제도화
. 비제도적 형태의 영적 안내 : 바론 폰 휘겔(가톨릭)과 에블린 언더힐(성공회) 같은 평신도
. 갱신 :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피정과 영적 안내의 민주화 (진정한 영적 안내는 하나님의 은사)
9.2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 기원 : 사도행전 성령 감동에서 셰이커 까지 발전
. 오순절 교회 : 1906년 LA 아주사 거리 윌리엄 시모어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으로부터 시작
. 핵심요소 : 성령세례(방언), 예언의 은사 및 해석
. 개인과 공동체 안에서 성령님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심
. 과도하게 형식적, 건조하고 지성적 신앙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령 충만의 경험이 정서적 형식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주었다.
: 샤를 드 푸코, 에블린 언더힐, 디트리히 본회퍼, 시몬 베유, 도러시 데이, 토마스 머튼
3. 해방 영성 :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4. 페미니스트 영성
5. 화해의 영성
6. 에큐메니컬 영성 : 떼제
7. 영성과 종교간 대화 : 비드 그리피스
8. 동방 정교회 영성
9. 영성의 민주화 : 피정 운동,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10. 결론
[서론]
. 20C는 다방면으로 변화의 시기로, 포스트모더니티 시대로 불림
. 모더니티 (인간 이성의 힘에 대한 자신감) → 정돈된 세계관, 인간 발전에 대한 믿음, 낙관주의 출현
. 배경 : 계몽주의 시대, 산업 혁명의 진보로 강화된 세계관
. 위기 : 진화론, 마르크스의 도전, 심리학의 탄생, 세계대전, 전체주의, 홀로코스트, 히로시마
. 변화 : 유럽의 종말, 소련의 상승과 하락, 식민주의 종식, 유엔 유럽 연합 등 국제 기구 설립, 국제 여행, 통신 혁명
. 포스트 모더니티 : 단순한 낙관주의가 통하지 않는 문화, 고정된 사고와 행동 체계 붕괴, 다원적 이해,
1. 영성에 대한 영향
. 20C 상황의 변화는 기독교에 심각한 영향을 끼침,
(1) 유럽에서의 제도적 종교 감소 ← 신뢰 상실의 결과
(2) 기독교와 타종교 사이를 구분 짓던 경계 붕괴 : 에큐메니컬 운동에서 종교간 대화로 확장
(3) 기독교는 진정한 세계적인 종교가 됨
. 20C의 다양성 안에서 기독교 영성의 분위기 드러내는 소수 인물과 운동 추려보기
2. 예언적-비판적 유형
* 주석 : 『미래로 열린 영성의 역사』에서는 연대기별로, 4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수덕적-수도원적, 신비적, 능동적-실천적, 예언적-비판적 유형이다.
. 20C 영성의 특징 : 영성에 대한
(1) 신비적 접근 (영적이지만 종교적이지 않은(Spiritual but not religious) SBNR)
(2) 예언적-정치적 접근에 대한 추구가 두드러짐
[토론] 포스트 모더니즘의 영적 특징들을 종합한 것, 사회적 상황에 대한 부름, 정적주의적 해석으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사회적으로 비판적 영성을 옹호하여 종교나 국가 권력과 갈등이 있거나 주변부에 밀려난다.
. 샤를 드 푸코, 에블린 언더힐, 디트리히 본회퍼, 시몬 베유, 도러시 데이, 토마스 머튼
2.1 샤를 드 푸코 (1858-1916, 프랑스-사막-알제리, 샤를 드 예수 수사)
. 1901년 이후 영성에 영향
. 귀족, 쾌락주의, 불명예 제대 후 모로코 탐험
. 영적 안내자 아베 위블랭에 의해 회심 후 (시토회) 영적 절박함으로 나사렛에서 은수사로, 클라라 수녀원의 정원사, 사제 서품 받은 후 사하라 사막 베니 수도원을 거쳐 알제리의 투아레그족과 함께 살며 그들의 언어를 배우고, 사전 만들고, 문화를 배우며 그들 위해 봉사하는 삶, 묵상기도에 근거하여 홀로 관상적 삶을 살다 프랑스 식민 세력에 대항한 베두인에 의해 비극적 살해
. 새로운 수도 공동체 설립에 열망 있었으나 사후에 새로운 영적 운동에 대한 영감이 되어 사후 발전
→ (예수의 작은 형제회, 자매회) 세계대전 후, 4-5명씩 개발 도상국이나 가난한 지역에서 이웃과 함께 그들을 위해 사는 ‘관상적 환대의 현존’의 삶(공동기도와 침묵으로 시작과 끝, 생계 유지)
2.2 에블린 언더힐 (1875-1941, 영국, 성공회-가톨릭)
. 영어권에서 가장 널리 읽히는 신비주의 저자, 신비주의에 ‘대중적’이해 촉진 및 전달이 목표
. 영국 피정 운동 개척자, 국교회 첫 여성 유력자, 세계대전 사이에 성공회 영성 유지
. 사회주의에 대한 교감, 영성의 사회적, 윤리적 차원 주장, 헌신적 평화주의자
. 국교회에서 태어나 성공회 교인이 되고, 가톨릭 평신도 지성인 바론 폰 휘겔(신비주의 작가, 모더니스트, 신학과 영성을 현대와 대화하게 하려고 노력함 p266) 에게 영성지도 받음
2.3 디트리히 본회퍼 (1906-1945, 독일, 루터교, 나치의 정치적 순교자, 예언적-비판적 영성의 대표 예)
. 20세기 영성과 신학의 연결 대표인물
. 가톨릭 : 칼라너, 한스 우르스 폰 발타자르,
. 개신교 : 위르겐 몰트만, 판넨베르크,
. 성공회 : 로완 윌리암스
. 『값비싼 제자직』 : 독일 교회가 루터의 기본 신학과 영적 통찰을 훼손한다고 독일 교회에 비판적, ‘오직 은혜’의 의미를 제자의 희생적 의무로부터 분리(정치 참여 없는 독일 기독교에 대한 예언자적 비판) → 기도와 공동체의 훈련이 있는 삶 + 정치적 현실에 참여하는 것
. 영국 미르필드(성공회 수도 공동체) 영향으로 핑켄발데에 수도 공동체 설립, 비공식 신학교 설립
. 『성도의 공동생활』 훈련 : 루터교회가 상실한 중요한 영적 도구의 회복 열정, 정기적 성경읽기 묵상
. “종교성 없는 기독교”, “미친 운전사가 모는 차에 희생되는 많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만이 나의 과제가 아니다. 이 미친 운전사의 운전을 중단시키는 것도 나의 과제이다”, “하나님 없이(ohne), 하나님 앞에서(vor), 하나님과 더불어(mit)” 사는 삶
2.4 시몬 베유 (1909-1943, 프랑스 유대인, 기독교 경계선의 무세례자)
. 1938년 조지 허버트의 시 “사랑은 나에게 환대하라고 명령했다”에서 그리스도의 신비적 체험
. 1942년 도미 후 런던에서 프랑스의 자유를 위해 싸우다 영양실조로 사망
. 『뿌리내림』, 『신을 기다리며』(‘주의(attention) 영성’ : 주의력은 기도의 핵심, 고통 받는 이웃에게 도움이 될수 있는 능력의 핵심, 기도는 하나님께로 향하는 (주의력) 경향, 구원은 기다림)
.‘자아’
. 자기 내어줌으로 온전해 지고 자율적 주체가 되는 것을 포기하는 계몽주의에 대한 저항
. 진실한 자아의 발견 : 삼위일체의 자기 포기 안에서 발견
. 참된 자아의 창조 : 성령이 영혼 안에 떨어진 씨앗이 되면 그 영혼 안에서 그리스도가 태어나 희생의 영성 발생 ∴ 그리스도 십자가 참여는 타자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도록 부름 받은 것
. 프랑스의 동료 유대인들과 동일하게 살다가 영양실조로 사망
. 기독교는 고통에 대처하는 초자연적 도구
2.5 도러시 데이 (1897-1980, 미국)
. 사회 정의의 영성을 촉진시키는데 가장 영향 끼친 인물
. 노동 운동가, 언론인, 임신 중에 가톨릭 개종하므로 대인관계 단절
. 급진적 정치는 소외를 드러내고, 기독교의 가르침이 그 해결책을 제시함 (사욕 없는 사랑과 포괄적 공동체)
. 피터 모린(프랑스 철학자)의 영적 조언, 독서 지도 → ⌜가톨릭 노동자⌟ 운동 시작 (1933)
. 그리스도는 도움이 필요한 모든 사람이 경험할 수 있도록 나타나야 하는 분으로 사회 정의가 핵심이 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영성
. 환대의 집 : 자발적 가난 수용한 회원(평신도)들, 성찬과 공동 기도가 생활 규칙 중심, 공식 교회 승인 없음 ← 베네딕트 『수도규칙』, 프란체스코의 자발적 가난, 리지유의 테레사의 “작은 길”
2.6 토마스 머튼 (1915-1968, 프랑스, 로마 가톨릭, 루이스 신부)
. 2차 세계 대전 중 아내와 자녀 사망 → 가톨릭 개종, 시토회(테라피스트) 입회 → 겟세마네 수도원
. 영성과 신학의 재통합, 현대인 위한 관상, 수도 생활, 기독교 신비 전통 명료한 소개, 문학적 재능있는 저자, 에큐메니컬 우정, 기독교와 불교간 대화에 공헌, 사회 정의와 세계평화 문제에 대한 헌신
. 『칠층산』(1948), 『통회하는 한 방관자의 생각』(1966) 세계를 관찰하는 탐구자, 방랑자의 삶
. 자서전식 글쓰기, 거짓 자아로부터 진정한 자아로 가는 여정에 대한 몰두, 개인주의에 맞서 타자와 교제와 연대를 통해서 존재한다는 신념으로 삶의 양식 재해석 (1960년대초 두 번째 회심)
∴ 영적 삶은 인류의 미래에 대해 공동 책임을 지는 관상적 자각
i) 철저한 독거의 삶으로 은수 생활
ii) 예언자적 입장을 강화한 저작 : 민권운동지지, 냉전 비판, 베트남 전 반대 로비
iii) 아시아 종교(불교)에 대한 관심
3. 해방 영성
. 사회 정의에 관심 갖는 영성 (20C에 발생)
. 로마 가톨릭에서 사회 교육 시작 : 1891년 레오 13세의 노동회칙, 1931년 비오 11세 회칙에서 강화 1960년대 초 요한 23세 ‘시대의 징조 읽기’, 1971년 가톨릭 주교회의에서 모든 사역, 선교 및 영성의 핵심에 정의가 있다는 것을 확립 → 교회의 선교 중심에 사회 분석이 중요함을 지적
. 해방 신학과 영성의 특징 (1960년대 후반 라틴 아메리카 ~ 1970년대 발전)
. 불의한 구조에 대한 비판과 극복하려는 투쟁에 근거한 성찰과 실천
. 이러한 실천이 기독교 신앙에 필수적이며 사회 정의를 촉진시킨다
. 특정 범주의 사람들의 존엄성 손상시키는 구조에 의문을 제기한다.
. 경제적 빈곤, 인종 문제, 성 불평등, 지구 환경 책임 문제
. 핵심 : 성경(새로운 출애굽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십자가와 부활에서 발견되는 죽음에 대한 승리)
영적 지도는 피지도자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성장하는 것을 도울 목적으로 영적 지도자와 피지도자가 관계를 맺는 단순한 관계 같지만, 인간관계는 성장하거나 약해 질수도 있다. 이런 변화들은 의식 성찰을 통해 의도적으로 선택 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 원인을 인식하지 못 한 채 변화가 발생한다.
영적 지도자는 피지도자와의 관계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는데 그중의 하나가 관리이다. 영성지도에서 ‘관리’는 영신수련에서도 언급되고 있지만 검토나 조직적 발전이 없었다.
심리나 정신분석학 분야의 관리 이론과 실천을 적용하고 있다. 관리의 초점은 관리를 받는 사람에게 맞추어지고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성장에 맞추어 진다.
1. 영적 지도에서의 관리
1) 목적 : (p218) 피지도자가 하나님 체험을 구체적으로 말하도록 도와주는 능력 키워주기
A. 피지도자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B. 영적지도자가 더 효율적인 영적 지도자가 되는 것을 돕고
C. B를 막는 저항을 극복하는 방법을 배우도록 도와주는 것
“영적지도자의 개인적 성장을 돕는 것” : 영적 지도자를 유능하게 되도록 도와주는 것
. 관리의 목적에서 벗어나는 경우
(1) 특정한 피지도자로 인한 문제
(2) 영적 지도를 잘하고 있다는 확인
(3) 관리자의 영적 지도 방법 알기 위해
2) 방식 : 영적 지도 하는 방식과 유사 (체험과 믿음의 삶에 초점 맞춤)
(1) 체험 : 영적 지도자의 영적 지도 체험에 초점을 맞춘다.
(2) 믿음의 삶 : 피지도자를 향한 영적 지도자의 태도를 보여주는 믿음에 초점
3) 관계에서 중요한 것 : 신뢰
. 자기를 드러내 보이는 모험 (결핍, 평가에 대한 두려움) : 성령, 자신, 관리자를 신뢰 해야 함
(1) 관리자 : 영적 지도자에게 질문할 때 화를 내거나 지적할 가능성 있음
(2) 영적 지도자 : 관리자에게 화를 내거나 방어적 태도, 장점과 한계까지 관리자에게 노출 → 하나님과 관리자와 깊이 있는 관계 맺어야 건강
4) 협력관계형성에 필요한 전제조건 : 동의 (영적 지도자로서의 성장 추구한다는데 동의)
. 예 : 영적지도자로서 개인적 성장과 자신에 대한 확신 가지는 것 → 6주 이후 안정권
(관리자) 체험을 표현하도록 돕기, 영적 지도자의 저항 느낌
(영적 지도자) 관리자의 조급함, 직선적 표현 → 내면의 두려움과 믿음의 부족 직면, 인정
2. 관리에서 발생 할 수 있는 문제
1) 저항과 전이 반응
- 저항을 파악하여 대처하므로 도리어 도움이 된다.
- 개방과 경이의 태도 : 심문하는 태도에 반대되고, 성장하려는 분위기 조성
- 관상적 태도의 초대 : 영적 지도자의 동요, 감정 쉽게 감지 (i-message, p216-217)
. 감정을 다루는데 익숙한 피지도자들은 과거 경험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감정들을 말해주고, 회기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관련된 감정들을 새로이 경험하기도 함
. 그러나 피지도자가 과거 감정을 말하는데 머물기를 원하고, 현재감정을 표현하는 위험을 피하려 할 때 ‘그 일에 대해 지금 무엇을 느끼시나요?’물어보므로 현재 순간으로 초청하여 하나님을 경험할 새로운 기회를 주도록 한다.
. 감정 또한 혼돈 야기 가능 : 너무 한쪽에 묶여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함 (피지도자, 리에네우스)
→ 경험의 단면만을 진리의 유일한 길로 삼고, 하나님의 초청을 들을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의 위험함 (어떤 것을 우위에 두고 의식적인 선택을 할 때 그것에 압도당하고 갇힌다.)
. 한 없는 눈물을 흘리는 피지도자의 경우의 예에서 “생각에 매몰된 사람에게 감정에 눈뜨게 하고, 감정에 매몰된 사람에게 생각에 눈뜨게 하는 것이 중요”
2) 지도자들이 경험하는 감정들
. 감정은 내면 뿐 아니라 회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주의가 필요한 감정이 있을 경우, 감정은 회기 동안 다시 떠오르는데 피지도자의 이야기 안에서 연관성을 분별해야 한다. (ex) 할아버지와 강둑 걷는 소년 : 잠시 슬픔, 강한 슬픔, 계속 슬픔 (161)
3) 수퍼비전에서의 감정들
. 회기의 특정 순간 경험했던 감정들을 기억하는 것이 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됨
a. 아무 감정 없는 것도 검토 필요
b. 회기동안 일어난 감정을 불신하는 지도자들의 경우 이유를 찾아보기
. 회기 중 경험한 감정 분별하기 위한 노력에는 열매가 있다. (혐오감의 예, 162)
A. 지도자의 삶과 관련된 것인지
B. 회기 중에 일어난 일과 관련된 것인지
C. 피지도자와 나의 관계와 관련된 것인지
D. 앞 3개의 조합인지
5. 생각들
. 영성지도에서 생각 사용법 : 피지도자가 ‘자기 생각에 갇혀’있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피지도자가 경험하는 생각들 (by 칼 라너) : 이미 경험했으나 말로 표현해 보지 못한 영역
. 피지도자는 자기 경험, 아는 지식을 아무 감정 없이 다 말할 수 있다.
. 자기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사고 과정에 참여하면 하나님 경험이 찾아옴 : 피지도자들이 경험했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 풀어내려 애쓰고, 느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묘사하려 애쓸 때 신비와 발견의 세계에 들어간다. 영성지도에 놀라움과 경외의 순간 (비밀을 드러내는 하나님 임재 경험)
2) 영성지도자가 경험하는 생각들
. 지도자의 다른 소명에 따른 반응을 하고 싶어지는 유혹 (교사, 의사, 부모..) → 주의를 흩뜨리는 여러 생각들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분주해질 때
a. 모든 생각을 내쫓아 버리는 반응으로 피지도자에게 도움이 될 생각을 놓쳐버린다.
. 지도자에게 올라오는 많은 생각 중 어떤 것이 피지도자와 하나님께 반응에 도움이 되는지 결정하는 것 : 지도자에게 필요한 분별 기술 (166)
b. 해석을 하는 경우 : 지도자들은 의미하는 바에 대한 확고부동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단지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 말 것.
3) 슈퍼비전에서의 생각들
. 생각, 개념, 설명, 이론, 규칙, 해석, 교리 설명으로 가득찬 회기 : 지도자의 반응을 탐색하고 실제 대화를 할 수 있는 전략 학습 가능 → 대화중에 끼어들어 피지도자의 경험과 연관시키기
. 해석들로 가득찬 회기
a.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지도자에게 물어볼 수 있음.
b. 해석이 중요했는지 함께 분별해 보기
c. 수퍼바이저와 지도자가 역할극 해보기
d. 지도자들이 열린 해석을 내리는 기술 연습하도록 훈련하기
e. 해석을 마음에 간직한 채 반응 제시하는 기술 연습하기
6.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경험들
. 감각, 감정, 생각에 자신을 개방할 때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더 잘 의식하게 되며, 한 가지 이상의 차원들을 동시에 포괄하는 경험
. 이미지와 은유, ‘아하!’의 이해의 순간, 갈망을 휘젓는 일등이 거룩함으로 들어가는 문을 제공
1)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피지도자들의 경험들
. 피지도자들이 경험할 때 지도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 신체, 기분, 에너지의 변화, 한숨, 눈물, 침묵 등 (기질에 따라 다른 반응)
2)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영성지도자들의 경험들
. 영성지도자가 경험할 경우 나눌 것인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분별 필요
. 나눌 경우 에너지가 지도자로 옮겨지지 않도록 할 것
. 피지도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주제로 넘어 갈 것
3) 수퍼비전에서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경험들
. 피지도자들을 침묵 속에 있게 하거나, 경험의 다양한 차원을 강조해 주거나, 경험을 마무리하고 원래 대화로 돌아가기
.살아 가는 모든 순간은 기적이다.호흡,배변 등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전에는 기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가 의식할 때나 의식하지 못할 때나 우리 삶과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고 계시다”(144)
∴모든 것을 채우시고 보존하시는하나님과의 관계,자신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경이와 은혜이다.
이렇듯 우리 몸의 생리학적 요소들 뿐 아니라자신의 경험과 세상에 대한 경험들역시 하나님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과 경험을 관상적으로 보기.
.주제:세상과 관계에 대해 이해하는 여러 방법을 탐색하고 이런 이해가
(1)하나님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
.모든 범주의 인간 관계에 있는 모든 차원의 경험 포괄하는 영성지도 모델
(2)영성지도 수퍼비전 실습에 대한 이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
.경험:생각,감정,감각 모두 하나님께서 의사소통하실 때 사용하시는 차원이다.(163)
1. 가정들
1) 하나님, 인간, 세상에 대한 핵심 가정
.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신다.
(나 자신, 우리, 세상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령의 임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증거한다. 성육신은 악의 존재와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에 계속 참석해야 할 필요성도 인정한다.
. 인간이 그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일상과 세상 속에 현존하시고 역사하고 계신다.
. 지적, 정서적, 신체적 반응을 더 의식하게 될수록 세상 속에 계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능력이 자라고, 하나님의 통치에 더 풍성히 참여하게 된다.
2) 수퍼비전에 관한 가정
. 수퍼비전의 목적 : 영성지도자들을 도와 피지도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하도록
. 수퍼비전의 초점 : 각 회기는 영성지도자들의 특정 지도 회기에 대한 구체적 사실 다루기
. 수퍼바이저들은 자신의 신체, 정신, 감정 등을 도구로 회기와 관련된 동력들과 조화 이름
. 수퍼바이저들은 지도자들이 회기와 관련된 동력들을 잘 인식하고, 지도자의 심리 상태와 경험들이 동력 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 수퍼비전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회기에 성령의 움직임을 감지 하기 위해 노력하게 돕는다.
. 수퍼바이저들은 역할극, 예시 통해 배울수 있도록 기술들을 몸소 보이기도 한다.
. 수퍼바이저들은 지도자들과 함께 협의 질문들을 놓고 논의한다.
. 수퍼바이저들은 지도자들이 잘하고 있는 부분을 인식하고 기뻐할수 있도록 돕는다.
2. 인간 경험의 차원들 : 감각, 감정, 생각, 융합
“세상은 하나님의 장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
.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게 되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1) 우리 관계가 우리에게 도전하고 움직여 가는 곳
(2)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곳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믿음의 렌즈로 세상을 볼 때,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세상에 참여할 때 거룩을 감지하고 반응할수 있다. → 타인과 동시에 자기의 인식(?) : 친구와 이야기, 산책, 그림 감상 등... 하나님 경험
“인간의 경험을 영적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타자들에게 현존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 바로 이런 능력”(칼 라너)
. 공동체, 사람, 예술 작품, 자연과 관계중의 상호작용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을 호출
. 그 당시이든 회상의 시간이든 시선이 하나님께 이끌리고 있음을 감지할 때 자신을 더 풍성히 알게 되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자기 인식 능력이 자람)한다.
→ 임재를 의식적으로 더 경험하고, 풍성한 믿음을 향유하게 됨
. 수퍼비전 받는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시선을 둠과 동시에 자신과 세상에 대한 경험을 파악할 수단(?)들 파악(중요한 질문들) : 몸, 감정, 정신 등에서 어떤 정보를 감지할 수 있는가? 혹은 피지도자들의 특징을 아는가? 그들의 몸, 정신, 감정에서 어떤 것을 감지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가? (150)
→ 몸은 이러한 탐색의 과정을 통해 우리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므로, 몸은 임재를 구하는 민감한 도구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때로는 "내가 너의 열망을 안다"는 듯이 주제 넘게 행동했던 상황들을 되돌아 보게 했다. 책에서는 육체적 장애 부분에 대해 주로 거론 한 것 같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정서적 장애를 가진 경우들이 있고 나 또한 유사한 장애가 있기에 장애를 가진 타인을 잘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열망을 다 안다는 듯 주제 넘게 실수 하는 경우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나 또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던 시절이 있어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에 너무 현실에 틀에 박힌 내 스키마적 기도를 한 때를 떠올린다. 정말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영성지도자의 역할 같다.
돌보는 사람이 돌봄을 받는 사람과 얼마나 조화하느냐에 따라 그 질이 결정된다는(347)말에 2016년에 뇌졸중 제자의 훈련을 돕던 시기가 생각난다. 내가 먼저 내안에 스트레스를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서 처리 하지 않은 상태로 타인을 돕겠다고 나섰던 경우이다. 결국 제자를 잘 도와사회에 복귀하긴 했지만 우리 둘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어쩌면 내안에 처리되지 않은 스트레스들이 제자를 돕는 돌봄 상황에서 비인격적으로 발현되었을 꺼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비행중에 사고가 났을때, 산소 마스크를 보호자가 먼저 써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낯선 환경에서의 영성지도 또한 어쩌면 영성지도자들이 넘어야 할 산인 것 같다. 자신은 항상 안정적인 장소에서 피지도자를 맞았다면 피지도자는 그 장소가 안정적이 되기 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성지도자가 어디서나 환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훈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을 더 관상적으로 만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나 다워지는 연습은 어디에서건 마음을 놓고 경청하는 영성지도자로 준비되는 과정에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장애피지도자의 경우는 p350에서처럼 피지도자에게 편하고 불편한 것을 미리 말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지도자가 실수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안전장치인 듯 하다. 이는 장애가 아닌 경우에도 중요한 부분인 듯 하다. 사람마다 아킬레스 건은 다르니까...
영성지도 수퍼비전을 주제로 책을 읽으면서 이번 장에서처럼 지도자와 수퍼바이저가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감동스럽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p370에서 저자가 수퍼바이저와 함께 앉아 있을 때 영성지도 시간에 자신의 모습을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부분이 꼭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간 수퍼바이저는 영성지도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에서 내 마음에 희망이 느껴졌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영성지도를 통해, 그리고 영성지도 수퍼비전을 통해 내안에 인지하지 못하는 나를 다양한 상황에서 인지하고 알 수 있게 해주어서 내가 더 이 땅에서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마 11:29-30, 메시지성경) 익힐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최근 대한민국에도 해외 유입인력이 엄청 많아지면서 알지도 못하는 나라사람들이 많이 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도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이 (특히나 노동자로 왔을 때) 힘들꺼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사회가 꿈을 찾아온 그분들을 잘 안아주고 바르게 인도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9장에 있는 내용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좀 멀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것은 또 내가 앞서 생각한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림에 살 때 낮에 도림천에 나가보면 외국인 어린 엄마들이 아가들을 데리고 나와 있었고, 그들끼리 마실 나온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공부 할 때는 또 다르게 생각하는 나의 이중 잣대를 발견했다.
책에서는 다중문화에서 오는 공동 문화개념을 이야기 했는데, 요즘은 같은 20대 안에서도 문화가 다른 것 같다. 20대 후반들과 나눈 이야기 중에 누군가는 호감을 갖게 되고 누군가는 비호감을 갖게 되는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이 다문화 상황에서 뿐 아니라 동질 집단이라 생각되는 가운데서 진행 해봐도 서로 참 다른 문화에 있음을 인지하게 도와줄 것 같다.
공동문화를 정의하고 가치와 행동양식을 탐색하고 내가 가진 특권과 억압을 생각해보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공동문화는 학습된 생활양식이라고 했는데 (p311, 313.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화권 내에서라도 서로의 다른 점과 유사점을 찾아보는 것이 첫걸음 이다.
공동 문화 지도를 그리고 핵심 문화를 정의하고 핵심 가치관과 행동 목록을 정리해 보는 것은 그동안 당연하게 해왔던 자신의 일상을 분석해 보고 객관적으로 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공동문화 지도에서 내적 갈등 영역이 밝혀 질수 있는 것 같다.(p319, 자기인식)
얼마 전 만난 제자가 나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했다. 너무 뉴스도 문화도 관심 없고 신학과 공부에 치우쳐서 있다는 말인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 하나님 아닌 것에 너무 치우쳐 있어서 누군가는 좀 하나님 쪽으로 치우쳐 있어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책에서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 인식하기”(p321)가 있었다.
나는 내가 가치를 두는 것에 나의 모든 시간을 쓰기로 한 것이고,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책을 근거한다면) 뛰어난 인간이 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특권과 억압에서 억압을 인지 못하는 것도 불쌍하지만,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p327) 슬픈일 이라는 생각을 했다. 감사 할 수 없고, 특권을 누리는 사람으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배우지 못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도 슬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인이 보기에 더 누리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더 우울증에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히틀러가 있고, 자신의 특권을 남용하면서 무의식중에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 할 수 있는데 문화 지도를 그리는 것은 자신을 직면하는 도구가 되는 것 같다. 직면에는 용기가 필요한데 책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문화의 기원을 탐색할 때 하나님과 더 친밀해진다고 표현한다.(p340)
문화는 안경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안경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영성지도를 하다보면 분명히 피지도자를 내 시각에 맞춰보려고 하므로 그를 관상적으로 보는 것에 방해가 될 것 이다. 최대한 내 안에 틀을 확장하고 안경이 하나님의 안경이 되도록 하여 어떤 피지도자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피지도자가 알아갈 수 있는 그런 영적 동반자가 되고 싶다.
두 개의 차원을 대단히 복잡하게 설명했는데 뒷부분의 예화에서 개념이 거의 잡혔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떤 부분은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고...)
안드레아와 메리의 대화록을 읽으며 이상한 부분을 못 느꼈다. 아트가 295페이지의 ‘자유’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 다시 가서 읽어 보았다... 메리의 조급함이 내안에도 있음을 느꼈다. 나의 이슈도 항상 ‘조급함’이었다... 머물러 있기 보다 달리려고 하는 것이 그나마 영성지도를 실습하면서 많이 직면하게 된 부분이고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된 부분이다.
불안정한 가운데 누리는 안정감.
수퍼비전의 하이라이트는 메리가 안드레아에게 갈등 상황을 열어주어 진짜 안드레아가 ‘착한 이미지’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으로서 관계에 있어서 직면하는 연습을 많이 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악역을 많이 했지만, 그래서 가장 많이 싸웠던 학번과 10년이 넘도록 가장 자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낸다. 갈등을 자주 만나봐야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긴장하거나 화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반응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메리 안에 이런 부분을 발견한 것이 신기하고 메리를 통해서 선교지에 있을 동안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머무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나도 영성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매일 ‘성과’가 있는 영성지도를 위해 피지도자에게 자유를 주지 못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안드레아의 그 작은 사례에서 이렇게 많은 역동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발을 못 뺄 것 같다.
한국 안에 아직 영성 지도가 많이 보편화 되지 않은 상황이라 법적 자료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초반에 영성 지도의 길을 닦고 계신 많은 교수님들이 힘써야 할 부분이 참 많겠다는 생각도 들고, 선구자의 자리가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 외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들고, 지역적으로 혹은 분야적으로(특히나 횃불트리니티 출신으로 영성지도 분야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어서 사례에 나오는 일들이 발생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예측이 들었다. 서로 조심해야 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잘 소통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성지도 시작 할 때(2회기) 작성하는 서류를 꼼꼼히 잘 만들어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교회에서 인사할 때 공동체 내에서 허그는 가능하지만, 영성 지도시에 허그는 하지 않는 다는, 무언가 피지도자들에게 기분이 나빠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지도자가 최선을 다해야 겠다. 가장 당황했던 부분이 ‘비밀보장 및 익명성’부분이었다. 작은 사회에서 진행되는 영성 지도와 수퍼비전으로 인해 인력들의 교차지점(지인들이 연결될수 있음. 한다리 건너 지인)이 있다는 것은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도덕적 문제와 위탁의 부분(246-249)은 가능하면 그런 경우들이 안생기기를 나도 모르게 기도하며 읽었다. 참 경계가 애매모호 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토론]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윌리엄 제임스)을 읽으면서도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돌아볼 때도 믿음과 심리의 경계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 또한 심리적, 인성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말씀의 사역(개인적 해석)이나 편협한 기도 등이 발생하지만 본인은 인지하지 못할 것 같다. 지도자가 인지하고 알 때 영성지도로 알려 줘야 하는지(직접화법 아니고)? 혹은 영성지도 식으로 알려주려고 할 때, 문제 되는 부분에 피지도자가 머물려고 하지 않고 다른 쪽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는 지도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안내 : 본 과정은 기독교영성, 영성지도, 영성훈련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론과 실습을 포함하여 총 29학점을 이수하는 2년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MDiv를 졸하신 분에 한에 지원 가능합니다.
과정 내용문의 : 이강학 교수 (kh.lee@ttgu.ac.kr)
* 선교사 특별전형있습니다.
지원절차
A.2023. 9. 1. (월) 부터 온라인지원 사이트(www.ttgu.ac.kr/apply)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후 "온라인지원서" 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지원서를 작성할 때에는 지원자 본인에게 해당하는 전형유형, 언어, 지원과정, 지원전공을 선택하고 지원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B.지원자는 온라인지원서 출력본 1부를 포함한 입학지원서류(온라인지원서 출력본, 개인신앙간증문, 추천서 2부, 대학교 성적/졸업증명서 및 기타 필수 제출서류) 원본을 본교 교학처로 우편 또는 방문 제출하고, 입학전형료를 납부하여야 합니다.
C.원서접수가 완료된 입학지원자에게는 수험번호가 발급되며 인성검사 및 인터뷰 일정을 안내합니다.
D.제출서류 중 미비서류가 있는 경우 원서접수가 취소되며, 허위기재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 추후에라도 입학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MDiv 시절에 영성석사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비밀들을 발견했었다. 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녀님이 성경 묵상 중에 경험한 내용이 스쳐지나 듯 적혀 있는 부분이 있었고(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별 시간이었던 것 같은) 또, 바로 이 부분이 나에게 엄청 가벼움과 자유함을 주었다.
그 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성’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 학생들을 만났을 때 (학과 특성상 남학생들이 많은데..) 학생들의 말 못할 ‘성’의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었다.
6장에서도 지도자가 먼저 성과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에 열려 있을 때 피지도자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고 관상적 경청이 가능했던 것처럼 나의 경험에 대한 답을 책에서 해석하고 나서야 나도 더 자유롭고 가볍게 대화에 임할수 있었다.
선교지에서 항상 혼자 말씀 보는 시간은 너무 달콤하고 항상 에너지가 주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깨끗한 방에서 말씀 묵상하기를 항상 갈급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묵상 중에 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분별시간에 읽은 책의 내용과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30대 후반, 호르몬이 풍성했던 내게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다가오실 수 있었다는 답을 찾았다. 그 당시는 그렇게 생각을 못하고 대적기도하고 난리도 아니던 중.. 어느 시점엔가 (나에게 특정한 마음이 있는 남성 대상이 없었던 관계로) 말씀을 볼 때 마다 느껴지는 그 느낌이 혹시 하나님이신가? 하는 의문을 갖지는 했지만 누구도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고, 누구도 나눠준 적이 없어서 나도 어디서 말할 곳도 없었다.
이 책의 내용 또한 기혼자들의 내용에 집중되어 있다. 나에게 경험하게 하시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책을 통해 나의 경험에 대해서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말씀에 깊이 빠져 읽을때 느꼈던 경험을 이제 젊은 여성 싱글들에게 내가 먼저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다.
[토론] 지도자의 경험의 크기가 중요한 것 같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계하고 피하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스키마를 벗어나는 피지도자를 만나면 어떨까...
초보자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과 가이드 vs 하나님과 피지도자를 위하는 상황내의 결정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점점 답을 찾아가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영성지도자로서는 많은 경험이 없지만, 초를 켜놓고 형식적으로 시작하고 끝이라는 선이 명확한 영성지도가 사실은 대단히 불편하다. 나에게 그런 자리가 베풀어지고, 전문적으로 영성지도가 나의 전업(?)이 되어 피지도자들도 동의가 된다면 사무실에서 그렇게 해 볼만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형식적 영성지도를 받으러 온 사람들 보다는 대개가 자주 만나야 몇 개월에 한번, 때로는 몇 년만에 한번 만나는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쌍방으로 진행되는 영성지도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성지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지인들이(나는 알지 못하는)자신의 내면에 하나님께 깊은 질문과 갈망을 가지고 있을 경우인데,그때는 정말 나도,그도 의도하지 않게 대화가 그쪽으로 이끌려 가게 되어서 만남이 마무리 될 때는 쌍방이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랄 때도 많고,(p.110,놀라움의 하나님)때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도 많다.(p.111,무지의 경험)
지인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우리 만날 때 자신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어야 알게 되기도 한다.그래서 이번 장에서 춤추는 방법에 너무 몰두하므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느 정도 안정감을 주었다.이러한 방법은 나의 인격(무형식의 형식 선호?,자유로운 가운데 성령의 일하심 보기?)과 내게 있는 은사들(아직 명확히 모르지만..)과 나의 기도 제목(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서 교만하게 되지 않게 해달라는)이 녹아 나는 상황들이다.(p.111-113,지도자의 인격과 선물 지지해주기)
그저 모든 만남과 대화의 중심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은혜가운데 머물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책에서는“사역에 너무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성령의 활동을 놓친다“고 했는데 나는 혹시 그래서 사역을 놓치고 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p.114)
침묵 부분에서는 이전 사역하던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과 설교 후 침묵기도 시간이 떠올랐다.선생님들은 그 침묵의 시간이 불편해서 반주 하려고 했는데,도리어 학생들은 잘 따라오고,때로는 침묵 후에 내가 짧게 나누는 내용들(p.132,적절한 자기 공개)이 다음 침묵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학생도 있었다.(놀랍다.중2가...주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자기 내면을 관찰하다니...)
감지하는 능력은 점차 자라간다고 하는데,여전히 내안에 내가 많아서,때로는 내 의식인지 발견인지,내 머리의 반응인지 몰라서,피지도자에게 나누어야 할지 한참 머물다가 반응하는 경우들이 있기도 하다.그래서 항상 관상적 반응이 아니라 두뇌적,논리적 반응을 할 때(이 경우로 일하시는 경우도 많다.)는 상대에게 말을 꺼낼 때 더 조심스러운데, (영성지도의 방법이 아닌 듯 해서...)조심스럽게 겸손하게 꺼내다 보니 상대가 더 마음을 여는 경우들이 많다.
바로 최근에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자기를 개방한 지인이 있었던 관계로4장을 읽는 재미가 많았다.나는 의도 없이 원래 개방적이라 자유롭게 이야기를 했는데,지인은 그 부분을 감추려고 하다가 내가 확~개방해 버리는 바람에 자기도 개방해서 자유로워졌다고 표현했다.그날의 만남은 짧았지만,참 이벤트가 많은 날이었다.
[토론]자기 공개...저는 워낙 개방적이라 개방이 편한데,개방 자체를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신학교에 와서 알았습니다.개방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 수업 때 교수님의 "하나님만 신뢰하는 모드"의 수퍼비전이 계속 가슴에 남아 그런지 이번 부분을 읽을 때 계속 자발적 유약함(p97, ‘힘 빼고 하나님 바라보기, 기대하기’), 진정한 겸손이 계속 뇌리에서 돌고 있었다. 영성지도도 수퍼비전도 하나님이 마음 두시는 곳에 함께 해야 하는데 항상 나의 정의가 먼저 고개를 들고 내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기준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서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어제도 왜 이렇게 질문이 아무거나 나오나? 하며 대화의 초점이 휙휙 바뀌었는데 피지도자가 그때 마다 주제에 따른 깊은 성찰을 나눠주어 나만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내가 보기에는 불안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5년 만에 만난 두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신 것 같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아는 것의 중요성’이 많이 부각되었다. 지도자도 수퍼바이저도 자신을 알 때 피지도자를 더 잘 도와 줄 수 있게 된다. 사실 나는 하나님을 더 알고 경험하고 싶어서 나를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기독교 영성 공부를 더 하게 되었다.
3주전의 아우구스티누스, 지난주 캘빈, 이번 주 수퍼비전 작업정의에서 계속 ‘나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끊임 없이 알려주시는 것 같다.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서 나를 돌아보고(성찰) 아버지의 시각으로 나를,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은혜가 내게 항상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저자가 ‘자기만의 기도와 실습 영역‘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은혜를 노력으로 살수는 없지만 시간과 마음을 아버지께 향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의지의 표현이 이러한 훈련이 아닐까 한다.
이전에도 ‘도구상자’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기술적인 부분(?)을 표현한 것 같았으나 본인은 성령님께서 다양한 도구를 꺼내 쓰실 수 있도록 나를 열어놓고 배우는 마음의 자세가 ‘도구상자’전에 선행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개방은 언제나 공격받을 위험도 있지만 그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열 때, 일부 다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 믿음의 모험에 모험 없이는 경험해 볼 수 없는 더 큰 은혜와 믿음의 진보가 있을 것을 기대해본다.
[토론] 나는 맞지 않다(p104하단, 배경, 세계관, 상황 등...)는 마음이 들어서 편히 다른 지도자에게 가도록 피지도자에게 길을 열어주었으나 피지도자가 계속 하기를 바랄 때는 나를 성찰하면서 계속 만나야 할지, 혹은 피지도자의 다른 마음 때문(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 하는 것의 이점이 생길 경우)에 나와 회기를 계속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을 인지하도록 도와야 할지.. 이 부분이 ‘통제’(p99)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
이전에 헨리 나우웬의 책을 몇 년만에 다시 읽을 때 줄도 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십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평소에 따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년에 읽고 22년에 다시 읽는데, 이번에 바바라와 사라의 이야기에도 그 부분은 줄이 쳐 있지 않았지만 최대한 일상에서 사라의 시각으로 보려고 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근거 없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억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이미 읽었던 것들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성경을 더 열심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바라와 사라의 이야기에서 사라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인지하고 읽어낸 바바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만남 중에 내가 의도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차리고 읽어내는 피지도자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리어 내가 더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영성지도는 일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쌍방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시는 곳이다.
최근 교회 사임의 껀으로 회개와 자숙의 상황에서 이번 장은 지난주에 내가 함부로 말했던 ‘너머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 위로해 주시는 장 같았다. (p54, 55)
“안전함을 내버려야 한다... 위험을 감수한다면.. 대가와 잠재적 보상, 둘 다 높을 것이라고 제시한다.”(마가복음 10장 이야기)
“가장 강력한 변형의 순간은 ..둘다 사회적 역할과 명시적 규범을 넘어선 깊이에서 만났을 때 일어났다.”
내가 전도사로서 함부로 사임한 것을 여기에 적용하는 것이, 누군가(나 때문에 당황함을 경험하게된 많은 분들)에게는 말도 안되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의 기질을 더 직면하고 놓친 말씀들을 되찾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사건 너머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며 더 커졌다.
더불어 3주간 예수님의 광야 시험(마4장)을 설교하면서 계속 정체성과 부르심을 외쳤는데 그게 나 자신에게 외친 말인가 또 돌아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너머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그림이 조금씩 보여지는데 이번 사건이 믿음의 모험이었는지, 못된 기질의 댓가 인지 기대하며 기다려 보려고 한다.
영성지도 중에서도 나는 그저 피지도자의 말을 되풀이 해서 정리해서 맞냐고 물어본 것 뿐인데 정곡을 찔러서 시원하다는 반응을 듣고 놀랐었다. 책에서 은사 부분을 보고나서야, 혹시 이것이 나의 은사의 표현이었을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피지도자의 반응에, 피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옛날 평소 나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슈퍼바이저의 "특별한" 많은 하나님 경험이 영적 지도자의 "특별한" 경우들을 놀라지 않고 이해하고 그 너머를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장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순절 시작 전부터 묵상했던 ‘고난이 유익’이다. 특별한 은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경험을 누리는 사람들을 때로는 함부로 판단하기도 하면서, 특별한 은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 인 것 같다.(중세가톨릭의 정죄)
디온과 조셉의 이야기에서 영적 지도자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직면하는 것이 영적 자유함을 가져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에게 강점이 있지만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고, 자기의 약점을 직면하는 두 가지 모두가 많이 아프겠지만 그것이 바로 피조물 인간임을 인정하며, 영적으로 자유한 하나님 앞에선 영성 지도자가 되는 길일 것이다.
영성 지도가 끝날 때 마다 나의 지도자가 해주는 말이 항상 마음에 남는다. ‘내가 널 도와주는 게 아니다. 너의 나눔을 통해서 나도 성장 하게 된다.’ 나도 이런 영성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토론] 직면을 회피하며 항상 피지도자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영성 지도자(스토리텔링을 못 알아 듣고 놀이로 표현해도 못 알아 듣는)를 만난 수퍼바이저의 차선책은 무얼까?
2019년 3월 15일에 이 부분을 읽고 ‘왜 횃불에 보내셨는지... 왜 내 안에 상담과 영성의 열정이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가 있었다.
2022년 3월에 이 부분을 이제는 대단히 학문적으로 건조하게 읽었다. 줄친 부분들도 달랐다. 청강으로 들을 때와 나의 모드가 바뀐 걸까 현재 내 상태의 문제일까 의문이 든다...
외로운 여든 살 여성과의 음악으로 하는 영성지도의 예를 보면서 그동안 수업시간에 배운 형식에 사고가 너무 매여 있었다는 되돌아 봄이 있었다. 현재 나의 상황이 큰 실수의 상황일까 말씀에 근거한 순종일까 많이 관찰하고 있는 시간이라 존 메리의 경우를 통해, 실수를 통해 발전하는 영성지도자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
저자는 수퍼비전을 ‘자리에 없는 타자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동료들 사이의 대화로서,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대화’라고 정의한다. 지도자의 내적 삶에 우선 초점을 주는 모델은 다른 논의가 필요하므로 주로, 피지도자의 목표와 안녕, 영성지도 중 성령을 경험하는 자리를 수퍼비전의 목적으로 보고 있다.
저자의 다양한 경험들로 영적지도자들의 한계를 깨닫게 돕는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제시하고, 저자 자신의 실수와 감정들을 공유하므로 지도자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영성지도자 자신을 직면 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적 자유함과 개방이 영성지도나 수퍼비전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정중한 무지”라는 단어에서 최근 필자가 걷고 있는 상황에 대한 풀이인 듯해서 감사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감추어진 신비 안에 머물러 모르는 길을 신뢰하므로 가다보면 그 길의 끝에 찬양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토] 영성지도자나 수퍼바이저나 영적 자유함과 개방성이 중요한 것 같다. 영적 자유함과 개방성을 불편해 하는 영적 지도자에게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이외의 방법) 어떤 접근이 좋을까 ...
<THE ROLE OF NARRATIVE IN CHALLENGING SACRIFICIAL SUBSTITUTION AND A NEW PERSPECTIVE ON RENÉ GIRARD> 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이야기의 힘
어제도 제자를 만나서 나의 이야기를 했다. 이 제자와는 만날 때 마다 제자 개인에게 항상 중요한 싸인들이 있어서 제자도 나를 만날때마다 무언가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나온다고 했었다. 어제는 헤어질 때 까지 별것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지하철에서 헤어지려는데 만나자마자 했던 나의 이야기 중 야곱의 이야기에서 자기 마음이 흔들렸었다고 했다. 몇시간의 만남에 임재의 흔적 없이 그냥 들어가나보다 하고 아버지 앞에서 물어보면서도, 모든 것이 은혜이기에 힘을 빼고... 오늘은 드러나는 임재가 없었어도 아버지께서 이친구와 함께 하심을 신뢰한다고 고백하고 있었는데... 이미 만남 초반에 이 친구는 야곱의 이야기에 꽂혀 있었다.
교수님의 첫 번 '영성과 성경' 강의 때도 동의했었지만 이제는 그동안 사역에서 있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학문적으로 정리해 주시는거 같아서 더 감사가 된다.
슈나이더스가 다들 알고 있지만 정리하지 않은 것을 정의하고 정리해서 명쾌하게 해주는 것처럼 교수님도 내러티브의 힘을 그렇게 드러내신 것 같다. 대부분 나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피상담자가 의도하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못 보지만 남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타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가 만나는 그 부분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부분에서 ‘아하’가 발생되는 것을 많이 봤다. 때로는 내가 관찰자적 입장에서 이야기와 피상담자의 만나는 부분을 살짝 들추기도 한다. 대부분은 거기서 놀람이 발생한다.
여기서 영성지도를 생각해 보았다. 영성지도는 피지도자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진행되는데 지도자는 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혹은 관상적으로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성지도자는 나처럼 처음부터 나의 이야기나 타인의 이야기를 주저리 풀어서 피지도자로 하여금 자기를 발견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 아래의 내용은 <백투더 클래식> 16장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16장 영성 생활은 리듬이다._베네딕트의 규칙서와 규칙의 재발견(이강학)
수퍼비전 수업에서 ‘공동문화’에 대한 부분을 읽었는데 그 부분과 16장이 통해서 또 놀랐다. 공동문화는 학습된 생활양식이라는 말에서 자기 전에 칫솔질 하는 습관을 부모가 가르치는 것을 생각했었는데 바로 그 예가 이 부분에서 나왔다.
한국교회에서 영성과 공동체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지만 영성과 공동체의 교차로에 ‘규칙’이 있다는 것은 간과 하고 불편해 한다. 특히나 한국 교회안에서 ‘규칙’이라는 단어에 오해와 거부감으로 교회 공동체가 영성으로 새로워지는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저자의 해석이 있다.
수도원의 엄격한 감독 아래 준수 되던 규칙은 율법주의 경향으로 나타났고 현대 개신교 근본주의에서도 이러한 경향이 나타난다. 이러한 폐단을 경계하면서 영성 생활에서의 규칙의 자리를 회복하는 방법을 문제 제기한다.
어린아이의 양치질을 예로, 규칙이 훈련을 통해 내면화 하게 될 때의 유익을 설명한다. 규칙적인 양치질이 건강한 치아를 유지해서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이라면 영성생활에서 규칙도 ‘예수 그리스도를 닮은 성품의 형성’이 목적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베네딕트 규칙서의 7장의 겸손을 예로 설명한다. 규칙서의 겸손을 그대로 따르려면, 그것을 따르고 적용할 수 있는 환경설정이 되지 않을 경우는 규칙의 강요는 폭력과 같다. 두 번째 예로 성무일도를 설명하는데 정주 수도회에서는 성무일도의 예배가 3시간마다 진행되었지만, 탁발 수도회로 넘어오면서 수정되었으며, 현대인에게도 적용가능한 성무일도가 필요하다. 베네딕트 규칙도 성무일도도 그 규칙 자체보다 그 의미를 알고 현대에 적용해 볼 수 있게 해야 한다.
솔루션으로 규칙을 리듬으로 이해하고 우리 몸과 마음에 반복되는 리듬 가운데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움직임들을 끼워 넣자고 제안한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있다면, 수도원에는 없었지만, 현재 우리에게 주어진 자원들을 활용하여 충분히 영성 고전의 방법들을 변형하여 우리 생활에 리듬으로 만들어 예수님 닮은 성품을 만들어 갈수 있을 것이다.
고등학교때 밥은 3끼 먹으면서 왜 성경은 3번 안 읽을까 생각하고 하루에 3장씩 성경 읽기를 고3때부터 해온 것 같다. 하루에 못 읽으면 주말에 시간을 내어서 읽기도 했다. 3장을 읽으려고 공부하기 전에 항상 먼저 성경을 읽고, 버스에서도 읽고 했던 기억이 있다.
20대 초반 성경공부 시간에 목사님이 정시기도를 제시하셨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시간을 정해놓고 머물러 있으려고 한다. 이 시간은 부르짖는 시간이 아니고 듣는 시간이다. 아주 오래 걸렸지만 이런 리듬덕분에 내가 나를 좀 더 알아가고 치유되는 시간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다.
★★ 아래의 내용은 <백투더 클래식> 14장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갈망 살펴보기
르네 지라르의 이론은 타인의 욕망이나 소유를 모방해서 자신도 욕망하는 모방 욕망이 문화를 형성하고 사회적으로 주류가 되는 것이 희생양을 만들어 갈등을 해소 하는 구조에 대해서 말한다.
히브리어 어원의 ‘인간’에서 인간이 욕망의 존재이고 그 욕망을 억제 하는 것이 아니라 바른 방향으로 욕망을 사용(?) 하도록 하는 헨리 나우웬과 본 회퍼의 이야기로 모방 욕망 보다 자신의 욕망을 바로 보도록,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욕망하도록 권고한다.
아.. 고난에 동참하는 욕망.
그런 의도에서 시작된 교회 사임의 과정이었는데, 결국 시점 등이 문제가 되어 예수님의 뜻이 이뤄지는 것은 잘 모르겠고, 여러 가지 상채기 들과 오해들을 남기게 되었다.
강의에서는 이론에 집중하게 되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나의 갈망은 무얼까’에 집중하게 된다. 나의 게으름 때문인가, 젊을 때 너무 뛰어다녀서인가...내 갈망의 초점이 ‘하나님과 머물기’로 모아진다.
주변에서는 나에게 사역해야 한다고 한다.(여기서 '사역'이란 교회에서 전도사로 교육부서에서 일하는 것으로 제한된 의미이다.) 과연 내가 해야 한다는 사역이 하나님 나라를 위한 사역인가 ‘나의 입신과 세속적 영달을’ 추구하는 걸까. 나는 오로지 하나님께 집중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기도들로 나의 시간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데...
며칠 전 지인의 지인이 자살했다는 소식, 여전히 전쟁으로 괴로운 시간을 보내는 우크라이나 국민들... 아버지의 마음이 있는 곳에 내 마음이 있어 아버지와 함께 동역하고 싶은데, 한국 교회의 틀에 나를 ‘맞춰’ 넣으라는 말들에 대해 거부하는 것이 혹시 내 욕망이 내 게으름에서 발로한 건가 싶어 자꾸 들여다 보게 된다.
갈망, 기질... 방법.. 인간론을 공부하면서 그리고 나의 사건들을 통해서 인간의 복잡 미묘한, 다양한 부분을 프레임화 할수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데 우리의 교육체계나 교회에서 조차 각자의 부르심을 개발하기 보다 프레임 안에 넣으려고 한다. 프레임에서 벗어나면 불편하고 불안하니깐... 각자 부르심을 향한 개인의 갈망을 교회 공동체라는 프레임 안에서 조절하려는 건 아닐까....생각해 보게 되었다.
■ 제럴드 고든 메이(Gerald "Jerry" Gordon May, 1940년 – 2005년)
. 미국의 정신과 의사, 신학자
. ~ 1988 정신과 의사
. 1973 ~ 샬렘 연구소 위원 (틸든 에드워즈 신부)
- 영성, 치유, 영성지도의 전임 사역 (심리치료를 통한 영적 지도), ‘관상 신학과 심리학’ 연구
. 『중독과 은혜』, 『사랑의 각성』, 『영혼의 어두운 밤』, 『일상의 기도를 넘어』, 『Will and Spirit(의지와 영)』
■ 『영성 지도와 상담』 : 전문적 기술과 다양한 사례, 한계(인정)와 가능성,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의 대처 방법 및 가능성, 경우의 장단점.
7. 장애_정신과적 증후군
.장애:일상 기능을 방해 하거나 남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
. 피지도자의 정서, 정신적 장애의 가능성 고려 but ‘영적’통찰들을 낮게 평가하게 될 수도 있음
. 정신의학이 육군에 적용되기 전에 육군에는 정신장애가 없었음. (p186)
. 정신의학의 의학적 이름붙이기(naming)에 불편한 부분도 있지만 개인에게 영향 미치는 무의식적 ‘결정인자’들을 이해하고 있을수록 그것들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다. 이 이름들은 정확하지만 결국 이름 뿐이다. 특징, 조건을 기술하지만 그의 영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 적절한 균형감각을 위해 기본적 정신의학적 이해 필요 (분별 vs 진단)
(1) 성격이론
(2) 진단 범주 : 장애에 부여된 이름과 기술, 원인, 치료법 (성격의 발달과 문제의 발현 파악)
1. 분별과 진단
. 분별(분리시키는 것) vs 진단(“지식”을 통해 구별 짓는 것)
분별
진단
지식 필요 / 은사 필요 (통찰) 성향 구별함으로 적절한 방향으로 도와줌 관계를 통한 은혜의 선물 (애착 없는 친밀함) 신비에 반응 위해 신비에 대한 체험을 구별
지식 아주 중요 (통찰보다 명명) 질병을 바로잡기 위해 이름 붙이기 최고 수준의 진단에 통찰 필요 신비를 깨뜨리기 위해 해결책 찾아 나서기
2. 정신의학적 분류
(1) 명명법(nomenclature) : 질병과 증후군의 명명
(2) 질병분류학(nosology) : 진단과 치료목적으로 장애들을 분류하고 구분
- DSM(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 : 정신 장애 분류와 명명 체계
- 대부분의 장애들은 원인이 불분명한 문화적으로 결정된 증상의 기술일 뿐
- 증후군 : 정신 분열은 여러 원인을 가진 장애로 보고 공통적 증세들을 가진 장애의 집합
- 문화 안에서의 결정 (예) 동성애, 신경증, 조울병 (p191~)
→ 영성지도에서 진단하려 하는 용도가 아닌 충분한 관점의 소유 (영성지도와 관련있는 사항만)
2.1 어린 시절에 처음 발견되는 장애 : 정신 지연 (IQ 70이하) 및 신체 증후군
2.2 기질적 정신 장애
. 뇌의 기질적 화학적 변화와 관련된 장애 : 치매 (유사치매)
. 뇌와 관련 있지만 다른 원인 : 섬망(환각, 착각), 중독
2.3 물질 사용 장애 → 거룩한 질병 (은혜와 의지력 사이의 대면)
(1) 약물 남용 : 기능을 손상시키는 장기간의 약물 사용
(2) 약물 중독(의존) : 내성 증가, 사용 중지시 금단 증상 나타날 때
- 알콜의 경우 남용이나 의존이 있다면 중독
- 기도에 방해, 깨어있는 것에 문제가 생긴다면, 남용이고 중독이다.(p196)
2.4 정신분열적 장애 : 정신 기능의 파편화, 심한 붕괴 등...드로 망상, 환각 등의 동반
(1) 긴장형 정신 분열 : 임직임, 몸동작
(2) 붕괴형 정신분열 : 생각과 감정의 붕괴가 뚜렷
(3) 편집성 정신분열 : 적대적 감정과 관련 (과대망상)
(4) 미분화형 정신분열 : 위의 다양한 증상들의 혼합 발생
. 종교적 환각, 망상, 집착, 편집증적 과대 망상과 신비 경험
→ 약물과 지지 치료(봉합 학파) vs 최소한의 약과 많은 시간 투자, 통찰지향 치료(훈습 학파)
(1) 지지적 심리치료 : 약물, 환자가 일상 과제와 스트레스 잘 다루도록 돕고, 사고재형성 격려
(2) 통찰, 역동적 치료 : 무의식을 인식으로 끌어올리고 방어의 이면 조사 (신경증 치료)
목차 1. 선교지에서의 청년 상담과 전형적인 영성지도의 유사점과 다른 점 2. 청년사역에서 영성지도 활용의 기대점 3. 사역에서의 영성지도 적용 방안 3.1 청년 사역 (조선족) 3.2 대학 교수 사역 3.3 S교회 중고등부 사역 4. 사역에서의 영성지도 기대 효과
본인의 주된 사역의 대상은 청년층이다. 2006년부터 2016년 2월 까지 C국 Y대에서 사역당시 학생 상담의 모양이 영성지도와 유사함을 알게 되면서, 앞으로 다양한 사역의 모양에 영성지도를 접목하고자 한다. 이하의 내용에서는 선교지에서의 청년 상담과 영성지도의 유사점과 다른 점을 설명하면서 앞으로의 사역에서 영성지도를 주로 하고 싶은 이유를 밝힌다. 이어서 지금까지 진행했던 사역에서의 영성지도의 영향들과, 앞으로 예상되는 사역에서의 적용 방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1. 선교지에서의 청년 상담과 전형적인 영성지도의 유사점과 다른 점
Y대 컴퓨터학과에서 사역 당시 9월에 신입생이 입학하면 한사람씩 면담을 했다. 한 사람당 한 시간 씩을 배정하고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었는데 30여명이 입학하면 모두 다른 이야기로 진행이 되었다.
영성지도에서 처음 지도 받을 내용을 지도자에게 전달하는 것과 같이 신입생들에게는 자신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질문들이 미리 주어진다. 태어나기 전 부모님의 상황이나 가정상태부터 최근 대입의 상황까지 번호대로 질문이 있고, 학생들은 그 질문에 답한 것을 정해진 시간 까지 제출한다. 학생들이 제출한 정보들을 미리 읽고 기도하면서 만남을 준비했다. 그 당시는 알지 못했으나 영성지도를 공부하고 나니 그 모든 과정이 영성지도 준비과정과 동일했다.
상담을 공부하거나 상담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것 뿐 아니라, C국의 문화에서 고등학교 까지 졸업한 C족 학생들로부터 그들의 이슈를 꺼낸 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획일적인 교육 환경에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하는 경우가 거의 없던 학생들에게 자기가 원하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항상 학생들에게 질문을 잘 해야 했기에 매학기 신입생 상담학기 전에는 ‘질문을 잘하게 해 주세요’가 기도 제목이었다. 평소에 루틴하게 하던 업무가 계속 진행되던 상황에서 시간을 빼어서 하는 상담이었기에 따로 시간을 내어서 깊이 기도하기 보다는 매순간 부어주시는 대로 기도해야 했다. 그리고 상담하는 내내 사무실에 성령의 충만을 구했고,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수시로 기도했다. 하나님의 영광이 함께 하기를 바라는 이유는 하나님도 모르는 무신론자인 C국인 학생이 하나님의 현존을 알게 되길, 하나님을 만나게 되길 바라기 때문이었다. 이 부분은 영성지도 진행 과정중 지도자의 자세와 비슷했다.
영성지도 진행 중에는 피지도자가 의도하지 않게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경우들이 있다. 때로는 학생이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던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들도 있다. Y대에서 신입생들 중에는 부모와 어릴 때부터 떨어져 산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기숙사에서 또래들과 살던가, 친척집에 더불어 살았다. 대게의 경우 부모의 살가운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자기 내면의 깊은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말 할 수 없는 경우들이 비일비재하다. 특히 부모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은 자기 자신도 알 수 없는 부분이다. 상담 도중,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가정사의 비밀을 처음 말로 표현하면서, 눈물보가 터지는 경우도 많았고, 자기도 모르던 자신의 감정이 올라와 당황하면서 우는 경우들도 있었다. 여러 영성지도 사례들을 볼 때 피지도자들이 자신의 비밀이나 인지하지 못하던 감정이나 상황들을 영성지도 중에 인지 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Y대에서 학생들과의 만남에서도 동일한 상황들이 자주 발생되었었다.
영성지도의 전형적인 형식과 선교지에서의 상담에서 한 가지 다른 부분이라면 선교지에서의 피지도자는 하나님께 집중하고자 하는 갈망이 없는 상황이다. 선교지, 특히 C국의 경우는 선교대상자가 완전히 무신론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전형적인 영성지도에서 나타나는 피지도자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은 존재 할 수 없다. 그러나 예수님을 소개하기 전에 신의 존재에 대해서 먼저 언급해야 하는데 영성지도 방식의 상담을 통해 피지도자는 하나님을 먼저 경험해 볼 수 있다.
2. 청년사역에서 영성지도 활용의 기대 점
포스트 모던 시대 청년층의 영적인 분위기를 SBNR(Spiritual but not religious)로 표현한다. 이들은 영적인 것을 추구하지만 종교집단(교회)에 소속되지 않는 것을 선호하고 있다. SBNR의 배경에는 교회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인한 청년들의 거부 반응도 한 몫하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최근 코로나로 인해 큰 공동체로 모일 수 없는 상황들이 생기면서 많은 청년들이 교회에서 자연스럽게 떨어져 나갔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영적인 갈망과 필요들이 있다. 오프라인보다는 온라인으로 만나야 하고 큰 공동체 보다는 소그룹으로 만나야 하는 코로나 시대에 영성지도는 인격적으로 만나주시는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좋은 도구이다. 그동안 공동체의 믿음이 나의 믿음이라고 착각하던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신앙의 바닥을 경험하고 있는 이때, 영성지도를 통해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만남으로 도리어 더 깊은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 날수 있겠다.
교회에서 많은 사역으로 지치고, 관계가운데 어려워서 교회를 떠났던 청년들이 영성지도를 통해 하나님과 일대일의 경험을 할 수 있다. 영성지도를 통해, 교회에서의 일(사역)들이, 그리고 지체들과의 인간적 어려움들이 교회의 전부가 아니고, 그러한 상황들 가운데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고 이해하는 귀한 통로가 될 수 있다.
자신의 신앙이 바닥을 치고 있는 코로나의 상황에서도 나를 여전히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어려운 시대에도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경험을 하는 귀한 통로로 청년들을 살리는데 영성지도가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므로 앞으로의 필자에게 주어진 대부분의 사역은 영성지도가 기반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3. 사역에서의 영성지도 적용 사례 및 방안
3.1 청년 사역 (조선족)
필자가 주로 만나는 청년들은 조선족 청년들이다. 코로나 이후로는 오프라인으로는 1-2명의 청년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러다 보니 공동체로 만날 때 보다 더 깊이 있는 대화가 가능하다. 불신자와 신자의 조합으로 만나게 되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불신자의 영성지도가 진행이 가능하다. 앞서 소개한 선교지에서의 상담과 유사하게 진행 되면서 대부분의 경우 자신을 알아가는 경험을 하고 있다. 자기를 깊이 알아가면서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피조물 인간) 인지하면서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경우들이 있다.
만남의 유형은 아래와 같다.
(1) 비기독교인과의 만남 : 그들의 이슈를 화제로 이야기 한다. 대부분의 경우 청년 스스로의 필요가 있는 경우에 만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이슈가 없이 만나는 경우에도 그 전까지는 청년 스스로에게 고려되지 않던 것들이 수면위로 올라오거나, 간과 하고 있던 부분들이 만남 중에 드러나게 된다. (이경우 지도자도 알지 못한다. 진정한 영적지도자는 성령님이시다.)
(2) 기독교인과의 만남 : 대부분의 경우 만남을 통해 무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만난다. 이것은 영성지도에서 피지도자가 하나님께 집중하며 기대하는 것과 유사하다. 그리고 언제나 하나님께서는 말씀해 주신다.(히 11:6) 영성지도를 위해 만난 것이 아니지만 모든 자리에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3) 하이브리드 만남 :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이 함께 만나는 자리에서는 대화의 부위기에 따라 다대일 혹은 일대다의 지도 형태로 모양이 자주 바뀐다.
이렇게 여러 명이 만나는 경우 만남 후에 개인적으로 피드백을 듣기도 하는데 기독교인과 비기독교인, 여성과 남성의 경우 동일한 상황에서 다르게 느끼는 경우들이 많다. 필자의 관찰에 의하면 하나님의 터치하심이 각자에게 달랐다. 개인의 하나님을 향한 갈망의 상태 혹은 상황을 깨어서 보고 있는 것 등에 따라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다른 피드백이 있었다.
비기독교인이 피지도자의 위치에 있을 때 다른 모든 기독교인 청년들이 함께 영성지도를 하는 모양이 되기도 하는데, 기독교인들이 깨어서 대화와 모임에 임할 때 성령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때로는 대화가운데 필자가 거리를 유지하고 대화에 거의 참여하지 않으면서 청년들 끼리 대화가 진행 될 때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필자가 기도에 온전히 집중하면서 상황을 관찰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필자가 했다면 생각하지 못했을 질문과 대화들이 오가는 경우도 있었다.
3.2 대학 교수 사역
필자가 강의하는 컴퓨터 과목이 코로나 기간인 11월 중 2주에 걸쳐서, 강의시간에 한 사람당 10분씩 만나서 실습 시험을 진행했다. 영성지도 기말과제로 ‘대학 교수 사역’항목이 들어갈 것은 생각 못했었다. 그러던 중 일대일 온라인 실습 수업을 진행하면서 이전 과기대에서 한 시간 상담이 동일하게 진행되는 것 같았다. 학기 중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학생들을 만나는 시간이라 오래 동안 기도 하고 만났는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학생 각자에게 다른 대화들을 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과기대에서 한 시간에 나타났던 학생들의 반응이 10분 만에 나타났다. 학생도 필자도 놀랐지만 놀람을 뒤로 하고 급하게 만남을 종료하고 다음 학생을 만났다. 여운이 계속되어 하루에 35명 정도를 만났는데도 피곤한줄 몰랐다. 시험을 위해 만난 것이었는데 학생들이 긴장하고 있는 시간 중에도 사랑하고 격려하시며 아이들을 응원하시는 하나님을 내가 경험하니 많이 벅찼다.
이러한 경험을 기반으로, 학생들과 일대일로 만나는 시간 뿐 아니라 강의 시간에도 하나님과 학생들에게 집중 하는 마음의 훈련을 해야 겠다.
3.3 S교회 중고등부 사역
교회 학교 사역자로서 예배는 절대 양보 할 수 없는 것 중의 하나이다. 예배를 예배되게 준비하고, 말씀으로 먼저 단단히 하지 않고는 뜬 구름을 잡는 사역이 될 것이다. 그래서 예배에 집중하면서 교사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부장님 부부를 만나고, 교사를 한명씩 만나기 시작했는데 모두들 영적으로 성숙한 분들이라 그랬는지 만남의 시간 동안 촉촉함이 계속 있었다. 주로 식사를 하면서 만났는데 가볍게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 혹은 인수인계를 위해 회의를 하는 자리에서 서로의 깊은 곳들이 살짝 터치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떤 선생님은 두어 번의 식사를 통해 자신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삶의 무게가 가벼워지셨다.
코로나로 인해 담임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아 학생들을 일대일로 만나야 하는 상황이다. 일대일 혹은 학년별로 학생들과 만날 때 “관상적 경청”으로 영성지도에서와 같은 만지심이 있기를 바란다.
4. 나가는 말
학교에서 배우고 책으로 경험한 ‘영성지도’는 일정한 규칙에 의해 진행 되는 것이었다. 그러던중 11월초 리딩 자료였던 논문을 통해 장로교 전통의 영성지도에 대해 하워드 라이스가 목회자의 핵심 이미지를 영적 안내자로 설명한 부분을 보면서 영성지도의 틀에서 자유로와졌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의 일상에서의 “관상적 경청”의 자세가 훈련되어야 하는 것에서 본 과제에 대한 구상을 하게 되었다. 논문을 읽은 후에 강의하는 학생들과의 일대일 온라인 만남 중에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했다. 지난 시간 동안의 사역을 돌아보며 이미 다양한 사역에서 영성지도가 이루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고 정리 할 수 있었다. 앞으로의 사역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에서도 “관상적 경청”을 더욱 훈련하고 매순간 먼저 내가 성령님과 함께 하는 훈련에 집중 하도록 해야 하겠다. 영성지도는 일상에서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귀한 통로이다.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도록 많은 목회자들이 “사역”보다 하나님께 집중할 수 있게 되길, 나부터 일상에서 계속 “관상적 경청”의 자세로 살아갈 수 있길 바래본다.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Nikolaus Ludwig von Zinzendorf)는 독일 작센의 법률가, 종교가, 선교운동가, 그리고 시인이다. 정부의 법률 고문관이었으나 젊어서 신앙 생활에 귀의할 것을 결심한다. 모라비안(Moravia)을 옹호하였고, 재조직자가 되어 관직을 버렸다. 모라비안들은 작센 지방에서 또 추방되었으나, 그는 단신으로 영국으로 간 후 다시 스위스나 미국, 캐나다 등지를 순회하면서 전도하였다. 추방령이 해제되자 귀국하여 헤른후트에 거주하면서 건전한 교의를 지키면서 모라비안의 외국전도에 힘썼다. (위키백과 :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
17세기 개신교 정통주의(Protestant Orthodoxism)는 점점 교리화되면서 스콜라 주의적 경향을 띠게 되었다. 성서주의적, 지성주의 교리를 확신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따라서 마르틴 루터가 강조하였던 하나님과 성도 간의 생명력인 관계가 상실되게 되었다. 그래서 경건주의는 교리에 반대되는 생명, 사무적인 것에 반대되는 영적인 것, 경건의 모양에 반대되는 경건의 능력을 강조한다.
. 슈페너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운동'을 전개
. 프랑케는 1694년 할레(Halle)에 경건주의 대학교인 할레대학교를 설립하였고, 할레시는 경건주의 운동의 중심이 되었다. 할레대학을 중심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해외선교 지망생이 되어 18, 19, 20세기 세계 선교에 수만 명의 선교사들로 파송되었다.
. 진젠도르프는 경건주의 안에서 자랐다. 그는 프랑케가 세운 고등학교와 할레대학교를 다녔다. 그는 30년 전쟁 때 보헤미아에서 피난 온 형제들에게 자기 소유의 땅 삭소니(작센?)의 헤른후트를 내어주면서 그들과 함께 경건운동을 하다가 이 그룹의 지도자가 되었다. 그리고 그 형제들의 출신 지역 모라비아의 이름을 따서 모라비안이라는 이름이 붙게 되었다. (나무 위키 : 경건주의)
유사성을 통해 은유를 쉽게 찾아 낼 수 있다. 그러므로 은유는 ‘1차적 생각의 도구’인 범주화를 통해 생겨난 첫 번째 도구이며 다른 도구들의 모태가 된다. 범주화의 능력이 교육 받은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은유도 교육받은 사람이 더 잘 사용한다. 글보다 그림이 더 영향력 있는 것처럼 은유를 잘 쓰는 것이 더 영향력 있을 수 있으므로 어릴 때부터 은유 훈련을 시킴으로써 표현과 설득,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
다섯 개의 뿌리 : (2) 관찰과 사고를 통한 ‘원리’
관찰을 통해 원리를 찾아내어 기하학, 천문학, 기상학을 연구한 탈레스와 셜록 홈즈, 제갈공명이 원리를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로 소개된다. 이러한 ‘원리‘를 도출하므로 더 깊은 사고체계나 학문을 쌓아 갈수 있지만 이러한 ’원리‘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주의 깊은 관찰과 치밀한 사고가 선행되어야 한다. 관찰과 사고를 통해 ’원리‘를 도출하는 과정에 많이 사용된 것이 ’가추법‘이다. 이러한 ’가추법‘을 훈련하는 적절한 시기는 논리적 추론이 가능한 사춘기 이후이다. 사춘기 때에 탐정소설을 많이 읽는 것이 가추법을 훈련하는 좋은 방법이다.
다섯 개의 뿌리 : (3) 단순한 문장이 아니다. ‘로고스’
생각이나 감정을 언어로 표현한 완결된 내용을 ‘문장’이라고 정의한다면 ‘문장’이 정신도 표현하고 만들어 간다. 로고스라는 단어는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는데 호메로스의 작품에서는 ‘거짓말’의 의미였으나 철학의 시대로 넘어가면서 지식인의 언어로 규정된다. 로고스의 의미가 수백년에 걸쳐 변함으로써 로고스는 문자의 생성에서부터 운문, 산문의 발생, 문화의 발달까지 연결되는 과정이다. 산문의 발달 이후 문장 개발에 영향을 미친 것은 소피스트들이고 대표적으로 프로타고라스가 있다. 이들은 수사(rhetoric)를 연구하고 가르쳤는데 이 시기에 문장은 논리학과 수사학으로 나뉘어 발전한다. 결국 문장으로 자신의 논리를 표현하게 되므로 정확한 문장을 구사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이다. 또한 문장을 논리적으로 표현함으로써 문장이 정신을 만들어 갈수 있다. 여기서 저자는 뇌 가소성을 거론한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고 따라 쓰면 뇌 가소성에 의하여 뇌가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재편성한다는 것이다.
다섯 개의 뿌리 : (4) 문명의 기둥 ‘수’
숫자가 발생하기 전부터도 수의 개념은 사용되었다. 피타고라스 이전까지 수는 단지 ‘생활의 도구’였다. 피타고라스는 대장간의 망치소리는 망치의 무게에 따라 다르다는 분석을 통해 화성학을 수학으로 표현하였고, 만물의 원리가 수라고 했다. 그러므로 수에 의해 자연과 조화하자는 것이 피타고라스의 주장이다. 피타고라스처럼 수학을 ‘생각의 도구‘로 사용 할 수 있도록 훈련하기 위해서 아이들에게 경험적 추상과 성찰적 추상이 순환적 작용을 하도록 한다. 아이들이 흥미와 관심을 갖을 수 있도록 경험과 성찰의 순환을 경험하게 함으로 논리 수학적 능력을 향상 시킬 수 있다. 결국 ’수‘또한 ’관찰‘을 통해 패턴을 인식하고 분류하는 사고체계이다.
다섯 개의 뿌리 : (5) 설득을 위한 도구 ‘수사’
수사의 목적은 사람들을 설득해서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다양한 수사의 종류와 기법들이 소개되는데, 고대보다 더 많이 수사의 기법이 사용되는 대표적인 예가 광고문구와 프리젠테이션이다. 그래서 저자는 현대에 더 수사를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한다. 퀸틸리아누스가 유년시기부터 성인시기까지 언어, 문법, 수사의 3단계의 학습과정을 나눈 것과 피아제의 인지 발달과정이 비슷하므로 교육의 시기를 이와 맞추어야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앞에서 언급한 뇌 가소성에 의해서 수사학적으로 뛰어난 문장들을 낭송하고 암송함으로써 뇌에 수사적 구조를 구축하라고 제안한다.
조화로운 융합을 위하여, 아름답고 건강한 사회를 위하여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들은 기본적으로 ‘관찰’을 통해 수행 된다. ‘관찰’을 통해 유사성을 발견하고, 융합한다. 이게 바로 이 시대에 필요한 ‘소통’의 방법일 것 같다.
처음에는 생각의 도구들에 집중해서 책을 읽었고 두 번째는 너무 조기교육으로 몰아간다는 편협한 생각도 했었다. 그러나 현대의 다양한 문화 안에서 ‘다른’ 우리들이 조화롭게 ‘함께’ 살아가기 위해, 이 시대에도 폴리스의 소통 방법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기교육을 운운 한건, 기성세대까지는 어쩔 수 없더라도 다음 세대에서는 건강하게 잘 소통하고 더 잘 융합하기를 바라는 마음일 꺼라 해석하고 싶다. (너무 내 생각이 많이 들어간 서평이다.)
저자가 1부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제 두 번째 융합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러한 ‘대 융합’의 시대에 첫 번째 융합의 시대에 두 문화가 어떻게 융합 할 수 있었는지 알아보는 것이 두 번째 융합의 결과를 기대(히 11:6)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첫 융합의 시대에 기독교가 (생각지도 못한) 그리스 철학으로 기독교 교리를 만든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융합으로 새로운 문을 열어주시지 않을까...? (이미 다양한 학문에서 융합을 통해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고 있는 것들을 우리는 보고 있다.)
아쉬움과 기대
중학교 졸업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된 비판적 서평을 작성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이 책을 통해 인문학에 완전히 무지했던 공대생이 호메로스의 영향력을 조금 알게 되었고 고대 그리스 문화의 그림자를 멀리서 본 느낌이다. 쓰고 싶은 내용도, 생각한 내용도 많았지만 기준에 맞추어 작성하다 보니 아쉽게도 삭제 한 내용들이 많다. (강의 시간을 통해 들은 내용들이 있어서 책읽기에 도움이 많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궁금하고 모르는 내용은 더 많았다.)
앞으로 이 책을 통해 알게 된 많은 책들과 만나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좀 더 넓은 시각과 마음으로 세상을 품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래본다.
철학을 공부한 신학자라고 표현해야 할까? 내가 작가에 대해서 알고 있던 정보는 독일에서 오래 동안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온 후 집에서 딸을 키우며 책을 썼다는 것 이었다. 아내는 밖에 일을 하고 본인은 육아(?, 교육?)를 전담하며 집에 있었다고 했는데 자녀 교육법이 내게 기억에 남았다. 딸과 함께 시를 외우고 둘이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보낸다고 했다. 『생각의 시대』를 읽으며 왜 딸에게 시를 외우게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3부의 내용은 어쩌면,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들을 어릴 때부터 잘 개발 시켜서 조금 더 사회를 잘 이해하고, 잘 소통하는 인간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방안을 소개한 것 같다.
꼭꼭 숨어라
책을 읽으며 속도가 점점 빨라져서 손을 놓을 수 없을 때가 몇 번 있었다. 종교철학 강의 시간에 배운 내용들이 나올 때 반가웠고 재미있었다. 고대 그리스의 이야기와, 그 동안 이해하지 못하고 있던 호메로스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설명 하는 부분에서는 나의 돌이 깨지는 것 같았다. 철학자들이 정리하여 제시한 이론들의 대부분이, 일상에서 인지하지 못 한 것 들일 때가 많다. 그래서 철학 수업 시간에 철학자들이 정리한 것들을 보며, ‘그게 뭐 대단한 거라고?’ 라고 교만했다가도, 모두가 알지만 아무도 정리하지 않은 것을 인지하게 도와준 공로를 인정하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생각의 기원이라고 저자가 내놓은 다섯 가지 도구들은 우리가 일상에서 많이 사용하고 있지만 인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그 도구들을 사용하지 않음으로 놓치게 되는 것들이다. (어릴 때 탐정 소설을 읽다가 당연한 단서들을 놓쳐서 문제를 못 푼 경우가 있다. 대학 때는 간단하게 짤 수 있는 알고리즘을 복잡하게 짠 경우들이 생각의 도구들을 잘 사용하지 못 했던 대표적인 기억이었다. 요즘에도 잘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무궁무진 하지만...)
이 다섯 가지 도구는 요즘 내가 가르치고 있는 computational thinking에서 제안하고 있는 방법들의 기원이다. 생각의 도구들이 대개 기원전 철학자들로 부터 정리되었지만 현대에도 (저자가 많은 예로 보이기도 했지만) 알게 모르게 우리를 다스리고 조종하는 뼈대가 된다. 결국 computational thinking 안에 ’생각의 도구‘들이 숨어 있었다. 원석을 건진 느낌이다.
현대에 많은 가정이 파괴되고 사회가 건강하지 않게 된 이유 중에 하나는 ‘불통’이 라는 생각이 든다. ‘조금만 더 잘 소통하고 공감하게 되면 많은 가정들이 깨지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 프로그래밍을 알게 되는 것 뿐 아니라 computational thinking으로 잘 “소통”하게 되기를 바라는 소원이 있다. 고대 폴리스의 사람들이 서로의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소통‘했던 것 처럼...
우선 이 책에서 사용하는 단어부터 정리를 하면, ‘생각’은 언어적, 기호적 사고인 ‘고차적 의식’을 말하고, ‘지식’은 생각의 결과로 정의한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가?
1부 지식의 기원에서는 지식의 폭발과 융합을 통해 지식이 생성되는 배경을 소개한다. 지식은 자연을 지배하고 인간을 움직이게 하려는 인간의 욕망에 의해 발전한다. 이를 보편성이라고 표현하는데 서양에서는 로고스라 불리고 동양에서는 도, 법이라 불린다. 보편성을 원리, 아르케로 표현하기도 한다.
기원전 8-3세기는 첫 번째 ‘지식의 폭발’ 시대로 ‘축의 시대’라고 불린다. 야스퍼스는 이때부터 인간이 ‘정신적 존재’로 변하면서, 삶이 달라졌다고 표현한다. 동양의 제자백가 서양의 호메로스 등의 시인과 철학자, 기하학자와 의학, 물리학자들이 활동한 시기이다.
그리스에서의 지식의 폭발과 기독교의 출현으로 2~4세기의 그리스 철학과 기독교의 융합이 이루어졌다. 이 첫 융합의 시대에 기독교는 그리스 철학으로 교리를 만들었고 이로서 서양 문명의 틀이 정립되었다.
첫 ‘지식의 폭발’ 시대가 보편성을 추구했다면 두 번째 ‘지식의 폭발’시대인 17-20세기는 과학기술을 통한 확실성을 추구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현대에 이르러 두 번째의 지식의 대 융합이 예측되고 있다.
소통을 위하여, 평화를 위하여
생각의 도구들이 준비되고 만들어진 시기를 호메로스(bc800?~)에서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시기로 본다. 고대 그리스의 여러 도시의 사람들은 서로 왕래하고, 무역하면서 생기는 모순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했다. 연설, 토론, 논쟁으로 해결하면서 그리스어는 정확하고 명료하게 발달하게 되었고, 이러한 언어의 발달은 사고를 효율적으로 표현하도록 도왔다. 이러한 배경 하에 첫 지식의 폭발이 은유, 원리, 문장, 수, 수사의 다섯 가지 생각의 도구를 발생하게 했다.
2부 생각의 기원에서는 호메로스가 야만인과 시민을 구분함으로서 시민의 도덕적 보편성의 기준을 보여준다. ‘보편성’이라는 틀로 공동체를 생존하고 번영하게 하려고 하는 것이 ‘생각의 은밀한 욕망’이 아닐까?
호메로스가 만든 작품들이 그 시대의 사람(그리스 시대를 넘어 그리스 문화가 영향을 미친 서구 전체) 모두를 ‘사회적 기준’이라는 ‘보편화’의 도구로 옭아 멘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과거로 갈수록 다수를 따르지 않는 사람은 이상한 사람(보통이 아닌 사람)이 되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현대에는 그러한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을 잘 찾아가는 문화가 만들어 지고 있다. 그래서 모두가 지켜야 하는 법과 도덕적 의무들을 등한히 하는 부류가 생기면서 과거에 없던 사회, 문화적 문제들이 발생하게 되었다. 보편화된 법과 윤리적 범주가 아닌 ‘진리’가운데서 ‘자유’로운 삶을 영위하면서 사회가 건강해 지는 것을 바라는 것은 허황된 꿈일까...
<신앙과 정서>는 아주 오래전부터 읽고 싶던 책이었다. 3부를 자세히 읽으면서 정말 속도를 내어서 읽을 수 없이 많은 고민을 하며 읽었다. 그중에 가장 큰 수확은 그동안 계속 읽고 싶었던 책인데 왜 이제야 자세히 읽게 되었을까 답을 찾은 것 같다.
지난 선교의 10년과 한국에 입국해서의 4년은 내 안에 하나님 보다 강하게 있었던 프레임(틀)을 깨는 시기였다. 조나단 에드워즈(이하 저자)는 같은 증상(?)이라도 다른 경우들이 있음을 자세히 설명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증상에 대해서 다양하게 해석하므로, 일방적으로 “규정”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임이 조금씩 깨지고 있는 내 입장에서 봤을 때는) 중간 중간 저자의 프레임(?)이 보였고, 계속 물음이 제기되었다. 그래서 더 빠른 속도로 읽을 수 없었던 거 같다. 아마 나의 틀이 깨지지 않고 있던 상황이라면 저자의 글에 무조건 동의한다고 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또한 저자는 대부분의 경우 잘 정의하려고 하지만 정의되지 않은 많은 용어를 사용함에 있어서 지난주에 발제 하셨던 목사님이 참고하셨던 것처럼 다른 번역본을 같이 봐야 하는 부분들이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지만 저자의 방대한 독서 분량과 성경 말씀의 활용은 놀라웠다. 나에게도 이렇게 적재적소에 말씀들로 증거하고 해석 할 수 있는 은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었고, 한편 어떤 부분은 저자가 성경 본문을 편협하게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도 있었다. 이런 부분에서는 역시나 문화 안에서 해석(예를 들어 몸을 경시하고 영혼이 중요하다고 단정적으로 표현한 부분이 있었음.)되어 질 수밖에 없는 기독교를 생각하며, 나 또한 문화의 틀 안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또한 요즘 너무 논문을 많이 읽어서 그런지, 저자가 이론이나 말씀의 받침 없이 (혹은 일부분 편협하게 해석한 서적을 근거로 하여) 본인의 논지를 무조건 ‘이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던지게 되는 부분이 많았다.
특히나 3부의 1장에서는 ‘말씀이 마음에서 떠오르는 것’ 에 대해서 엄청나게 많이 이야기 하고 있다. 다행히 내 생애에서는 나 혼자만 떠오른 말씀이 아니고 공동체 안에서 여러 번 거론이 되면서 나에게 주어진 말씀으로 확인되어 그 말씀들이 나를 견고히 하는 통로가 되었다.(석사 논문 작성 때 오병이어 말씀, 선교 훈련 후 선교지 2차 파송 전 여호수아 말씀) 저자의 시대에 그런 경우는 없었는지 사례에서 그런 부분을 내심 기대하다가 없어서 아쉬웠다. 역시 신앙 경험은 귀를 열고 모두의 이야기를 들을 때 하나님을 더 광대하게 경험하는 것 같다.
[질문] 영성지도자로서 떠오르는 것을 조심스럽게 나누도록 배웠고 또 그렇게 하고 있는데, <신앙과 정서>를 읽으면서 계속 영성지도를 할 때 과연 영성지도자로서 어디까지 말해야 할까.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