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 (Spiritual Direction) 하나님과 더 깊은 관계를 경험 할 수 있도록 영성훈련과 대화를 통해 돕는 사역이다. 목회자, 사모, 선교사 및 일반 성도들이 영성지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며, 이들을 영성지도자로 양성하여 사역지에서 영성지도 사역을 통해 다른 기독교인들을 도울 수 있도록 한다.
. 지원 자격 : <영성형성> 과정 혹은 이에 준하는 프로그램을 수료하신 그리스도인
. 강의 과목 : 영성지도, 기도의 역사, 영적 분별, 영성지도 수퍼비전
. 실습 과목 : (영성지도실습) 관상적 경청, 일대일 영성지도, 그룹 영성지도, 그룹 수퍼비전
(2) 목회상담 :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전문으로 하는 성직자(위기관리, 갈등해소에 초점), 내담자의 선택을 늘려줄 정보 공유, 문제 확인하고 그 영향을 이해 할수 있도록 돕기, 가능한 선택 살피고 결정의 결과 예상 할수 있도록 돕기, 내담자가 문제 해결하는 동안 후원과 격려하기
(3) 심리치료 : 영성지도와 목회상담가가 의식에 관련된 일이면 심리치료는 내담자의기능을 저해하는 무의식속의 억압된 요소를 표면화 시킴
이번 학기 피지도자로 2번의 영성지도 실습을 하였다. 지도자이거나 관찰자 일 때는 모두 열심히 기록했다. 그런데 피지도자로 임 할 때는 기록을 해놓지 않았다. 타인을 관찰 할 때는 엄격하게 하면서 나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이것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을 맞으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단어가 ‘교만’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두주동안 아팠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내가 참 교만하다’라는 것이었다. 학기 초를 시작할 때도 떠오르는 단어가 ‘교만’이었고, 이제 학기를 마무리 하며 한 학기를 되돌아보면서 ‘교만’을 주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교만한 나 임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 동안 은혜가 컸다.
첫째, 개인영성 형성 과목의 매주 교재를 읽을 때 마다 주시는 답과 위로가 있었다. 이번학기 너무 많은 과목을 듣는 바람에 교육목회라는 과목의 책을 못 읽었는데 그 과목의 책들을 통해서도 주실 답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통해 알려주시기를 바라시는(아모스 3:7) 하나님을 꾸준히 경험한 한 학기 였다.
둘째, 물어보는 모든 것에 답해주신 한 학기 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번학기 신학교를 휴학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갑자기 많아진 스케줄로 인해서 체력에 무리가 되었다. 스케줄이 생기고 조정될 때 마다 하나님께 여쭤보고 함께 한다고 했는데 너무 늘어나서 이번학기는 일주일에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학기 휴학신청하기 전에 계속 여쭈면서 학교를 휴학하려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업그레이드 하시기 위한 시간인데 “내가” 두려워서 피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쉼을 허락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학교 목요 채플시간에 나를 통해 받으시고자 하는 찬양(사 43:21, 찬송가 288장)을 부르게 하시기 위함이고 내가 두려움에 더 이상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라심을 알려주셨다. 더불어 ‘시간’과 엮여 있는 내 안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함을 질책이나 혼냄, 권면이 아닌 직면함으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학교 수련회 목요 채플과 세미나가 있던 날 나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었다.
이날 이후로 에너지가 확보되어 오늘(기말) 까지 물리적으로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누리며 지낸 것 같다. 그날 전까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그날이 지나도 체력이 힘든 것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날 전까지는 체력이 힘들어도 끝까지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하려고 했다면, 그날 이후로는 아버지의 쉬라는 말씀으로 알고 푹 쉴 수 있었기에 오늘까지 큰 실수 없이 한 학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기말고사 인데 밤늦게 까지 깨어 있을 수도 없고, 몸에 계속 염증이 생겨서 통증이 와서 잠을 안 잘 수가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 하므로 한 번에 하루씩(마태복음 6:34) 사는 것을 연습하는 학기가 될 수 있었다.
이런 훈련이 나에게도 유익이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익도 있다. 그들은 ‘내가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도와주시죠’, ‘시간이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질문이 엄청 많이 쏟아진다. 만약 내가 이번학기에 임마누엘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왜 순종 안하냐며 정죄하고 답했을 텐데 웃으며, 그들을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 나도 알아요. 나도 그랬어요’
또 기억에 남는 답이 있다. 지난학기 부터 같은 반 같은 나이의 전도사님 중에서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이 한명(A) 생겼다. 동갑이어서 나는 그분이 더 편했던 것 같은데, 참 착하고 선해보였던 A는 여전히 다른 분들께는 활짝 웃어주면서 나에게는 찬바람이 쌩했다. 약간 당황했지만 방학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혹시 나에게 서운했던 것을 말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새 학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새 학기가 되어도 동일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나는, 어떤 공동체에서도 이런 경우는 계속 하나님께 묻고 답을 받지 않으면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대단히 힘들어 한다. 대부분 내가 속한 공동체는 영적인 공동체 인데 공동체 내에서 이렇게 막힌 부분이 있으면 은혜의 파이프가 막힌 듯한 마음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막혀 있어도 내가 아프게 기도하고 노력하는데, 내가 우리학번 은혜의 파이프의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크게 보면 학교라는 파이프이고 더 크게 보면 신학교라는 파이프이고, 더 크게 보면 하늘나라 성도들의 파이프이다. 잘못은 분명히 내가 해서 A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텐데 나는 아버지께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알려주시고 이해시켜주시고 풀어주시지 않으면 나 1:1로 대면하겠다고... (상대가 아직 준비 안 됬을 때 내가 이렇게 밀고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가 원치 않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앞에서 거론한 수련회 이후에 건강검진이 잡혀 있었다. 건강검진에는 심리 검사도 포함되어 있어서 MMPI 검사를 하고 건강검진하면서 30분을 심리검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심리 검사에 들어가자 마자 선생님의 질문에 긴 답을 했다. 선생님이 MMPI 검사 결과는 모두 표준 안에 있다고 하시면서 설명을 안 해주셨다. 평균 안에 있으면서도 그래프가 높은 두 개가 있어서 ‘이 두 개는 어떤 항목인데 높은 건가요‘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지금 들어와서 내가 나눈 이야기가 이것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하나는 스트레스 반응 지수이고 하나는 자존감 지수라고 했다. 둘다 높아서 다른 사람이 100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를 나는 10-20정도밖에 안 느낄 것이라고 하셨다.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딱 맞는 은혜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내 주변에 두 개 수치가 나와 반대인 사람은 나를 대단히 힘들어 할 수 있고, 잘못의 원인을 모두 나에게 돌릴 수도 있을 꺼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바로 그때 나의 눈을 안쳐다보고 나를 불편해하는 A가 생각났다. 그리고 A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 부터는 A를 이해하고 내가 피해주고, A를 위해 더 기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동기중에서 아버지께서 마음을 주셔서 특별히 자주 만나는 B가 있는데 B가 바로 나를 불편해 하는 A에게 사역을 하고 있었다. B가 기도할 때 A가 생각났고 그래서 둘이 만났을 때 A가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부분을 등한히 하고 하나님과 사역만 했다는 것을 직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나도 B도 한 번도 A에 대해 서로 언급한 적이 없는데, 지난주에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나왔다.
A는 드러나는 기도사역자 인데 아직도 하나님과 관계 부분은 없이 그저 사역만 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아버지께 죄송했다. 세상에는 나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 큰데 내가 혼자 누리고 있었다는 마음에 죄송하기도 하고, 어렵게 짜내듯이 사역하는 많은 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자세히 알고 나서 A를 위해 기도하고 A를 배려하는게 도리어 A에게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주로 영성지도 입장에 많이 있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영성지도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제가 삶속에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번학기 어쩌면 교회 안에서 영성지도에서 피지도자로 내가 두 번 받게 된 것이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첫 번째 피지도자일 때는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성지도 시간에 은혜를 나눌 수 있었는데 도리어 그것이 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15분 동안 너무 내 이야기만 떠들 어서 지도자에게 기회를 안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피지도자 경험은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지도자도 준비 없이 너무 갑자기 하게 된 경우라 지도자가 너무 자신감이 없어 해서 나도 편히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피지도자인 내가 너무 교만한 것도 지도자에게 자신감이 없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이번학기 주제가 결국 교만으로 시작해서 교만으로 끝난다. 그 사이 은혜가 아주 많았고 매순간 아버지의 돌보심이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내가 참 교만했다는 마음이 든다. 방학동안 조용한 시간을 내어 다시 한 학기와 일년을 돌아보며 아버지께서 일구시는 새로운 2019년을 준비하게 되길 바란다.
. 감정을 다루는데 익숙한 피지도자들은 과거 경험한 사건과 관련이 있는 감정들을 말해주고, 회기에서 일어나는 상황과 관련된 감정들을 새로이 경험하기도 함
. 그러나 피지도자가 과거 감정을 말하는데 머물기를 원하고, 현재감정을 표현하는 위험을 피하려 할 때 ‘그 일에 대해 지금 무엇을 느끼시나요?’물어보므로 현재 순간으로 초청하여 하나님을 경험할 새로운 기회를 주도록 한다.
. 감정 또한 혼돈 야기 가능 : 너무 한쪽에 묶여 다른 소리를 듣지 못함 (피지도자, 리에네우스)
→ 경험의 단면만을 진리의 유일한 길로 삼고, 하나님의 초청을 들을 수 있는 다른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의 위험함 (어떤 것을 우위에 두고 의식적인 선택을 할 때 그것에 압도당하고 갇힌다.)
. 한 없는 눈물을 흘리는 피지도자의 경우의 예에서 “생각에 매몰된 사람에게 감정에 눈뜨게 하고, 감정에 매몰된 사람에게 생각에 눈뜨게 하는 것이 중요”
2) 지도자들이 경험하는 감정들
. 감정은 내면 뿐 아니라 회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주의가 필요한 감정이 있을 경우, 감정은 회기 동안 다시 떠오르는데 피지도자의 이야기 안에서 연관성을 분별해야 한다. (ex) 할아버지와 강둑 걷는 소년 : 잠시 슬픔, 강한 슬픔, 계속 슬픔 (161)
3) 수퍼비전에서의 감정들
. 회기의 특정 순간 경험했던 감정들을 기억하는 것이 지도자들에게 도움이 됨
a. 아무 감정 없는 것도 검토 필요
b. 회기동안 일어난 감정을 불신하는 지도자들의 경우 이유를 찾아보기
. 회기 중 경험한 감정 분별하기 위한 노력에는 열매가 있다. (혐오감의 예, 162)
A. 지도자의 삶과 관련된 것인지
B. 회기 중에 일어난 일과 관련된 것인지
C. 피지도자와 나의 관계와 관련된 것인지
D. 앞 3개의 조합인지
5. 생각들
. 영성지도에서 생각 사용법 : 피지도자가 ‘자기 생각에 갇혀’있지 않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1) 피지도자가 경험하는 생각들 (by 칼 라너) : 이미 경험했으나 말로 표현해 보지 못한 영역
. 피지도자는 자기 경험, 아는 지식을 아무 감정 없이 다 말할 수 있다.
. 자기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사고 과정에 참여하면 하나님 경험이 찾아옴 : 피지도자들이 경험했지만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말로 풀어내려 애쓰고, 느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들을 묘사하려 애쓸 때 신비와 발견의 세계에 들어간다. 영성지도에 놀라움과 경외의 순간 (비밀을 드러내는 하나님 임재 경험)
2) 영성지도자가 경험하는 생각들
. 지도자의 다른 소명에 따른 반응을 하고 싶어지는 유혹 (교사, 의사, 부모..) → 주의를 흩뜨리는 여러 생각들에 마음을 빼앗기면서 분주해질 때
a. 모든 생각을 내쫓아 버리는 반응으로 피지도자에게 도움이 될 생각을 놓쳐버린다.
. 지도자에게 올라오는 많은 생각 중 어떤 것이 피지도자와 하나님께 반응에 도움이 되는지 결정하는 것 : 지도자에게 필요한 분별 기술 (166)
b. 해석을 하는 경우 : 지도자들은 의미하는 바에 대한 확고부동한 판단을 내려서는 안된다. 단지 자신이 감지하고 반응한 것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석 말 것.
3) 슈퍼비전에서의 생각들
. 생각, 개념, 설명, 이론, 규칙, 해석, 교리 설명으로 가득찬 회기 : 지도자의 반응을 탐색하고 실제 대화를 할 수 있는 전략 학습 가능 → 대화중에 끼어들어 피지도자의 경험과 연관시키기
. 해석들로 가득찬 회기
a. 어떻게 그런 결론에 이르게 되었는지 지도자에게 물어볼 수 있음.
b. 해석이 중요했는지 함께 분별해 보기
c. 수퍼바이저와 지도자가 역할극 해보기
d. 지도자들이 열린 해석을 내리는 기술 연습하도록 훈련하기
e. 해석을 마음에 간직한 채 반응 제시하는 기술 연습하기
6.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경험들
. 감각, 감정, 생각에 자신을 개방할 때 하나님에 대한 경험을 더 잘 의식하게 되며, 한 가지 이상의 차원들을 동시에 포괄하는 경험
. 이미지와 은유, ‘아하!’의 이해의 순간, 갈망을 휘젓는 일등이 거룩함으로 들어가는 문을 제공
1)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피지도자들의 경험들
. 피지도자들이 경험할 때 지도자는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 신체, 기분, 에너지의 변화, 한숨, 눈물, 침묵 등 (기질에 따라 다른 반응)
2)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영성지도자들의 경험들
. 영성지도자가 경험할 경우 나눌 것인지, 어떻게 나눌 것인지 분별 필요
. 나눌 경우 에너지가 지도자로 옮겨지지 않도록 할 것
. 피지도자가 이해하지 못하면 다음 주제로 넘어 갈 것
3) 수퍼비전에서 동시에 여러 차원을 아우르는 경험들
. 피지도자들을 침묵 속에 있게 하거나, 경험의 다양한 차원을 강조해 주거나, 경험을 마무리하고 원래 대화로 돌아가기
.살아 가는 모든 순간은 기적이다.호흡,배변 등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이 힘들어지기 전에는 기적이라는 것을 알지 못한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우리가 의식할 때나 의식하지 못할 때나 우리 삶과 세상에 생명을 불어넣고 계시다”(144)
∴모든 것을 채우시고 보존하시는하나님과의 관계,자신과의 관계 세상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경이와 은혜이다.
이렇듯 우리 몸의 생리학적 요소들 뿐 아니라자신의 경험과 세상에 대한 경험들역시 하나님에 대해 말해 주고 있다.∴세상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자신과 경험을 관상적으로 보기.
.주제:세상과 관계에 대해 이해하는 여러 방법을 탐색하고 이런 이해가
(1)하나님과의 관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
.모든 범주의 인간 관계에 있는 모든 차원의 경험 포괄하는 영성지도 모델
(2)영성지도 수퍼비전 실습에 대한 이해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보기
.경험:생각,감정,감각 모두 하나님께서 의사소통하실 때 사용하시는 차원이다.(163)
1. 가정들
1) 하나님, 인간, 세상에 대한 핵심 가정
. 하나님은 인간과의 관계 안에 거하시며, 우리에게 하나님 자신을 드러내길 원하신다.
(나 자신, 우리, 세상과 우리의 관계 안에서)
.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성령의 임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열망을 증거한다. 성육신은 악의 존재와 인간이 하나님의 통치에 계속 참석해야 할 필요성도 인정한다.
. 인간이 그 임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일상과 세상 속에 현존하시고 역사하고 계신다.
. 지적, 정서적, 신체적 반응을 더 의식하게 될수록 세상 속에 계시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인식하는 능력이 자라고, 하나님의 통치에 더 풍성히 참여하게 된다.
2) 수퍼비전에 관한 가정
. 수퍼비전의 목적 : 영성지도자들을 도와 피지도자가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성장하도록
. 수퍼비전의 초점 : 각 회기는 영성지도자들의 특정 지도 회기에 대한 구체적 사실 다루기
. 수퍼바이저들은 자신의 신체, 정신, 감정 등을 도구로 회기와 관련된 동력들과 조화 이름
. 수퍼바이저들은 지도자들이 회기와 관련된 동력들을 잘 인식하고, 지도자의 심리 상태와 경험들이 동력 해석에 미치는 영향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다.
. 수퍼비전은 지도자들이 자신의 회기에 성령의 움직임을 감지 하기 위해 노력하게 돕는다.
. 수퍼바이저들은 역할극, 예시 통해 배울수 있도록 기술들을 몸소 보이기도 한다.
. 수퍼바이저들은 지도자들과 함께 협의 질문들을 놓고 논의한다.
. 수퍼바이저들은 지도자들이 잘하고 있는 부분을 인식하고 기뻐할수 있도록 돕는다.
2. 인간 경험의 차원들 : 감각, 감정, 생각, 융합
“세상은 하나님의 장엄함으로 가득 차 있다.” (제라드 맨리 홉킨스)
. 하나님을 경험하기 원한다면 매일의 일상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게 되기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열망을 품고
(1) 우리 관계가 우리에게 도전하고 움직여 가는 곳
(2)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곳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 믿음의 렌즈로 세상을 볼 때, 마음에 하나님을 품고 세상에 참여할 때 거룩을 감지하고 반응할수 있다. → 타인과 동시에 자기의 인식(?) : 친구와 이야기, 산책, 그림 감상 등... 하나님 경험
“인간의 경험을 영적 경험으로 만드는 것은,
타자들에게 현존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에게 현존하는 바로 이런 능력”(칼 라너)
. 공동체, 사람, 예술 작품, 자연과 관계중의 상호작용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감각을 호출
. 그 당시이든 회상의 시간이든 시선이 하나님께 이끌리고 있음을 감지할 때 자신을 더 풍성히 알게 되며, 자신과의 관계 속에서 성장(자기 인식 능력이 자람)한다.
→ 임재를 의식적으로 더 경험하고, 풍성한 믿음을 향유하게 됨
. 수퍼비전 받는 지도자들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는데 시선을 둠과 동시에 자신과 세상에 대한 경험을 파악할 수단(?)들 파악(중요한 질문들) : 몸, 감정, 정신 등에서 어떤 정보를 감지할 수 있는가? 혹은 피지도자들의 특징을 아는가? 그들의 몸, 정신, 감정에서 어떤 것을 감지하는지 우리가 알고 있는가? (150)
→ 몸은 이러한 탐색의 과정을 통해 우리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게 하므로, 몸은 임재를 구하는 민감한 도구이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물어보셨는데... 때로는 "내가 너의 열망을 안다"는 듯이 주제 넘게 행동했던 상황들을 되돌아 보게 했다. 책에서는 육체적 장애 부분에 대해 주로 거론 한 것 같았다.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정서적 장애를 가진 경우들이 있고 나 또한 유사한 장애가 있기에 장애를 가진 타인을 잘 보는 것 같다. 그래서 열망을 다 안다는 듯 주제 넘게 실수 하는 경우를 돌아보게 했다. 그러나 나 또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몰랐던 시절이 있어서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에 너무 현실에 틀에 박힌 내 스키마적 기도를 한 때를 떠올린다. 정말 자신의 내면이 원하는 대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것 또한 영성지도자의 역할 같다.
돌보는 사람이 돌봄을 받는 사람과 얼마나 조화하느냐에 따라 그 질이 결정된다는(347)말에 2016년에 뇌졸중 제자의 훈련을 돕던 시기가 생각난다. 내가 먼저 내안에 스트레스를 직면하고 하나님 앞에서 처리 하지 않은 상태로 타인을 돕겠다고 나섰던 경우이다. 결국 제자를 잘 도와사회에 복귀하긴 했지만 우리 둘의 관계는 서먹해졌다. 어쩌면 내안에 처리되지 않은 스트레스들이 제자를 돕는 돌봄 상황에서 비인격적으로 발현되었을 꺼라는 생각이 들어 미안 할 때가 있다. 그래서 비행중에 사고가 났을때, 산소 마스크를 보호자가 먼저 써야 한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게 되었다.
낯선 환경에서의 영성지도 또한 어쩌면 영성지도자들이 넘어야 할 산인 것 같다. 자신은 항상 안정적인 장소에서 피지도자를 맞았다면 피지도자는 그 장소가 안정적이 되기 까지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어쩌면 영성지도자가 어디서나 환대하는 마음의 자세를 갖는 훈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나게 하시는 사람들을 더 관상적으로 만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 언제 어디서나 나 다워지는 연습은 어디에서건 마음을 놓고 경청하는 영성지도자로 준비되는 과정에 필요할 것 같다.
특히 장애피지도자의 경우는 p350에서처럼 피지도자에게 편하고 불편한 것을 미리 말할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서 지도자가 실수 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한 안전장치인 듯 하다. 이는 장애가 아닌 경우에도 중요한 부분인 듯 하다. 사람마다 아킬레스 건은 다르니까...
영성지도 수퍼비전을 주제로 책을 읽으면서 이번 장에서처럼 지도자와 수퍼바이저가 함께 앉아 있는 장면이 감동스럽고, 안정적으로 느껴지는 것은 처음이었다. p370에서 저자가 수퍼바이저와 함께 앉아 있을 때 영성지도 시간에 자신의 모습을 창을 통해 바라보는 부분이 꼭 나를 바라보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긴장하고 있는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시간 수퍼바이저는 영성지도자의 마음에 일어나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분에서 내 마음에 희망이 느껴졌다. 나는 나를 잘 모르지만 영성지도를 통해, 그리고 영성지도 수퍼비전을 통해 내안에 인지하지 못하는 나를 다양한 상황에서 인지하고 알 수 있게 해주어서 내가 더 이 땅에서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마 11:29-30, 메시지성경) 익힐 수 있게 도와주는 것 같았다.
최근 대한민국에도 해외 유입인력이 엄청 많아지면서 알지도 못하는 나라사람들이 많이 오기도 한다고 들었다. 나도 외국에서 살아본 사람으로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서 사는 것이 (특히나 노동자로 왔을 때) 힘들꺼라는 생각을 하며, 한국사회가 꿈을 찾아온 그분들을 잘 안아주고 바르게 인도해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면서도 9장에 있는 내용은 지금 우리의 현실과는 좀 멀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것은 또 내가 앞서 생각한 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신림에 살 때 낮에 도림천에 나가보면 외국인 어린 엄마들이 아가들을 데리고 나와 있었고, 그들끼리 마실 나온 것을 봤음에도 불구하고 공부 할 때는 또 다르게 생각하는 나의 이중 잣대를 발견했다.
책에서는 다중문화에서 오는 공동 문화개념을 이야기 했는데, 요즘은 같은 20대 안에서도 문화가 다른 것 같다. 20대 후반들과 나눈 이야기 중에 누군가는 호감을 갖게 되고 누군가는 비호감을 갖게 되는 경험을 했었다. 그래서 책에서 제시하는 방법들이 다문화 상황에서 뿐 아니라 동질 집단이라 생각되는 가운데서 진행 해봐도 서로 참 다른 문화에 있음을 인지하게 도와줄 것 같다.
공동문화를 정의하고 가치와 행동양식을 탐색하고 내가 가진 특권과 억압을 생각해보고 자신의 문화적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것은 나를 알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에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공동문화는 학습된 생활양식이라고 했는데 (p311, 313. 가정에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같은 문화권 내에서라도 서로의 다른 점과 유사점을 찾아보는 것이 첫걸음 이다.
공동 문화 지도를 그리고 핵심 문화를 정의하고 핵심 가치관과 행동 목록을 정리해 보는 것은 그동안 당연하게 해왔던 자신의 일상을 분석해 보고 객관적으로 보는 기회가 될 것 같다. 그래서 공동문화 지도에서 내적 갈등 영역이 밝혀 질수 있는 것 같다.(p319, 자기인식)
얼마 전 만난 제자가 나는 너무 한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했다. 너무 뉴스도 문화도 관심 없고 신학과 공부에 치우쳐서 있다는 말인 것 같았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너무 하나님 아닌 것에 너무 치우쳐 있어서 누군가는 좀 하나님 쪽으로 치우쳐 있어야 균형이 맞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책에서 “우리 삶에서 중요한 가치 인식하기”(p321)가 있었다.
나는 내가 가치를 두는 것에 나의 모든 시간을 쓰기로 한 것이고, 자신이 가치를 두는 것에 시간을 투자하는 것이 (책을 근거한다면) 뛰어난 인간이 된다는 의미였던 것이다.
특권과 억압에서 억압을 인지 못하는 것도 불쌍하지만, 자신이 특권을 누리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도(p327) 슬픈일 이라는 생각을 했다. 감사 할 수 없고, 특권을 누리는 사람으로서의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배우지 못하고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도 슬프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래서 일반인이 보기에 더 누리며 사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더 우울증에 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모두에게는 각자의 히틀러가 있고, 자신의 특권을 남용하면서 무의식중에 자신이 옳다고만 생각 할 수 있는데 문화 지도를 그리는 것은 자신을 직면하는 도구가 되는 것 같다. 직면에는 용기가 필요한데 책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자신의 문화의 기원을 탐색할 때 하나님과 더 친밀해진다고 표현한다.(p340)
문화는 안경과 같다는 생각을 한다. 내 안경으로 타인을 바라보고 영성지도를 하다보면 분명히 피지도자를 내 시각에 맞춰보려고 하므로 그를 관상적으로 보는 것에 방해가 될 것 이다. 최대한 내 안에 틀을 확장하고 안경이 하나님의 안경이 되도록 하여 어떤 피지도자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마음을 피지도자가 알아갈 수 있는 그런 영적 동반자가 되고 싶다.
두 개의 차원을 대단히 복잡하게 설명했는데 뒷부분의 예화에서 개념이 거의 잡혔던 것 같다. (그래도 어떤 부분은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고...)
안드레아와 메리의 대화록을 읽으며 이상한 부분을 못 느꼈다. 아트가 295페이지의 ‘자유’에 대해서 언급했을 때 다시 가서 읽어 보았다... 메리의 조급함이 내안에도 있음을 느꼈다. 나의 이슈도 항상 ‘조급함’이었다... 머물러 있기 보다 달리려고 하는 것이 그나마 영성지도를 실습하면서 많이 직면하게 된 부분이고 나 자신을 알아가게 된 부분이다.
불안정한 가운데 누리는 안정감.
수퍼비전의 하이라이트는 메리가 안드레아에게 갈등 상황을 열어주어 진짜 안드레아가 ‘착한 이미지’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해주는 부분을 인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선생님으로서 관계에 있어서 직면하는 연습을 많이 시키려고 했던 것 같다. 그래서 악역을 많이 했지만, 그래서 가장 많이 싸웠던 학번과 10년이 넘도록 가장 자주 연락하고 친하게 지낸다. 갈등을 자주 만나봐야 다양한 갈등 상황에서 긴장하거나 화내지 않고 이성적으로 반응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메리 안에 이런 부분을 발견한 것이 신기하고 메리를 통해서 선교지에 있을 동안 내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머무는 시간을 가졌다. 아마 나도 영성지도자의 자리에 있다면 매일 ‘성과’가 있는 영성지도를 위해 피지도자에게 자유를 주지 못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안드레아의 그 작은 사례에서 이렇게 많은 역동들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게 신기하고 재미있다. 아무래도 이 세계에서 발을 못 뺄 것 같다.
한국 안에 아직 영성 지도가 많이 보편화 되지 않은 상황이라 법적 자료도 그리 많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내내 들었다. 초반에 영성 지도의 길을 닦고 계신 많은 교수님들이 힘써야 할 부분이 참 많겠다는 생각도 들고, 선구자의 자리가 쉽지 않음을 생각하게 되었다.
생각 외로 신경 써야 할 부분이 참 많다는 생각도 들고, 지역적으로 혹은 분야적으로(특히나 횃불트리니티 출신으로 영성지도 분야는) 사람들이 한정되어 있어서 사례에 나오는 일들이 발생 할 수 있을 것 이라는 예측이 들었다. 서로 조심해야 하고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잘 소통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영성지도 시작 할 때(2회기) 작성하는 서류를 꼼꼼히 잘 만들어야 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교회에서 인사할 때 공동체 내에서 허그는 가능하지만, 영성 지도시에 허그는 하지 않는 다는, 무언가 피지도자들에게 기분이 나빠지는 상황을 만들지 않도록 지도자가 최선을 다해야 겠다. 가장 당황했던 부분이 ‘비밀보장 및 익명성’부분이었다. 작은 사회에서 진행되는 영성 지도와 수퍼비전으로 인해 인력들의 교차지점(지인들이 연결될수 있음. 한다리 건너 지인)이 있다는 것은 항상 고려해야 할 부분이다. 도덕적 문제와 위탁의 부분(246-249)은 가능하면 그런 경우들이 안생기기를 나도 모르게 기도하며 읽었다. 참 경계가 애매모호 할 수 있는 부분이겠다.
[토론]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윌리엄 제임스)을 읽으면서도 생각이 들었고, 나 자신을 돌아볼 때도 믿음과 심리의 경계가 애매한 부분이 있다. 또한 심리적, 인성적으로 한쪽으로 치우쳤을 때 말씀의 사역(개인적 해석)이나 편협한 기도 등이 발생하지만 본인은 인지하지 못할 것 같다. 지도자가 인지하고 알 때 영성지도로 알려 줘야 하는지(직접화법 아니고)? 혹은 영성지도 식으로 알려주려고 할 때, 문제 되는 부분에 피지도자가 머물려고 하지 않고 다른 쪽에 시선을 두고 있을 때는 지도자로서 어떻게 해야 할까?
안내 : 본 과정은 기독교영성, 영성지도, 영성훈련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이론과 실습을 포함하여 총 29학점을 이수하는 2년 과정의 프로그램으로 MDiv를 졸하신 분에 한에 지원 가능합니다.
과정 내용문의 : 이강학 교수 (kh.lee@ttgu.ac.kr)
* 선교사 특별전형있습니다.
지원절차
A.2023. 9. 1. (월) 부터 온라인지원 사이트(www.ttgu.ac.kr/apply)에서 회원으로 가입한 후 "온라인지원서" 를 작성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지원서를 작성할 때에는 지원자 본인에게 해당하는 전형유형, 언어, 지원과정, 지원전공을 선택하고 지원서를 작성하여야 합니다.
B.지원자는 온라인지원서 출력본 1부를 포함한 입학지원서류(온라인지원서 출력본, 개인신앙간증문, 추천서 2부, 대학교 성적/졸업증명서 및 기타 필수 제출서류) 원본을 본교 교학처로 우편 또는 방문 제출하고, 입학전형료를 납부하여야 합니다.
C.원서접수가 완료된 입학지원자에게는 수험번호가 발급되며 인성검사 및 인터뷰 일정을 안내합니다.
D.제출서류 중 미비서류가 있는 경우 원서접수가 취소되며, 허위기재 사실이 드러나는 경우 추후에라도 입학이 취소될 수 있습니다
MDiv 시절에 영성석사과정 수업을 들으면서 많은 비밀들을 발견했었다. 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수녀님이 성경 묵상 중에 경험한 내용이 스쳐지나 듯 적혀 있는 부분이 있었고(어느 책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별 시간이었던 것 같은) 또, 바로 이 부분이 나에게 엄청 가벼움과 자유함을 주었다.
그 전인지 후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성’에 대한 부분을 읽고 나서 학생들을 만났을 때 (학과 특성상 남학생들이 많은데..) 학생들의 말 못할 ‘성’의 이야기들을 부담 없이 들을 수 있었다.
6장에서도 지도자가 먼저 성과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에 열려 있을 때 피지도자의 반응에 당황하지 않고 관상적 경청이 가능했던 것처럼 나의 경험에 대한 답을 책에서 해석하고 나서야 나도 더 자유롭고 가볍게 대화에 임할수 있었다.
선교지에서 항상 혼자 말씀 보는 시간은 너무 달콤하고 항상 에너지가 주어지는 시간이었다.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깨끗한 방에서 말씀 묵상하기를 항상 갈급해 하고 있었다. 그런데 묵상 중에 나에게 다양한 방법으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분별시간에 읽은 책의 내용과 이 책의 내용을 통해서 30대 후반, 호르몬이 풍성했던 내게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다가오실 수 있었다는 답을 찾았다. 그 당시는 그렇게 생각을 못하고 대적기도하고 난리도 아니던 중.. 어느 시점엔가 (나에게 특정한 마음이 있는 남성 대상이 없었던 관계로) 말씀을 볼 때 마다 느껴지는 그 느낌이 혹시 하나님이신가? 하는 의문을 갖지는 했지만 누구도 나에게 알려준 적이 없고, 누구도 나눠준 적이 없어서 나도 어디서 말할 곳도 없었다.
이 책의 내용 또한 기혼자들의 내용에 집중되어 있다. 나에게 경험하게 하시고, 이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책을 통해 나의 경험에 대해서 알게 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말씀에 깊이 빠져 읽을때 느꼈던 경험을 이제 젊은 여성 싱글들에게 내가 먼저 나눠줄 수 있을 것 같다.
[토론] 지도자의 경험의 크기가 중요한 것 같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경계하고 피하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나의 스키마를 벗어나는 피지도자를 만나면 어떨까...
초보자를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과 가이드 vs 하나님과 피지도자를 위하는 상황내의 결정이라는 것에 대한 고민이 점점 답을 찾아가는 듯하다. 나는 여전히 영성지도자로서는 많은 경험이 없지만, 초를 켜놓고 형식적으로 시작하고 끝이라는 선이 명확한 영성지도가 사실은 대단히 불편하다. 나에게 그런 자리가 베풀어지고, 전문적으로 영성지도가 나의 전업(?)이 되어 피지도자들도 동의가 된다면 사무실에서 그렇게 해 볼만 한 것 같기는 하다. 그러나 나에게는, 형식적 영성지도를 받으러 온 사람들 보다는 대개가 자주 만나야 몇 개월에 한번, 때로는 몇 년만에 한번 만나는 친한(?) 지인들과의 만남에서 쌍방으로 진행되는 영성지도가 너무 익숙하기 때문인 것 같다.
영성지도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우는 대부분 지인들이(나는 알지 못하는)자신의 내면에 하나님께 깊은 질문과 갈망을 가지고 있을 경우인데,그때는 정말 나도,그도 의도하지 않게 대화가 그쪽으로 이끌려 가게 되어서 만남이 마무리 될 때는 쌍방이 모두 하나님의 일하심에 놀랄 때도 많고,(p.110,놀라움의 하나님)때로 나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고 지나는 경우도 많다.(p.111,무지의 경험)
지인이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우리 만날 때 자신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말해주어야 알게 되기도 한다.그래서 이번 장에서 춤추는 방법에 너무 몰두하므로 중요한 것들을 놓치지 않는 것이 나에게 어느 정도 안정감을 주었다.이러한 방법은 나의 인격(무형식의 형식 선호?,자유로운 가운데 성령의 일하심 보기?)과 내게 있는 은사들(아직 명확히 모르지만..)과 나의 기도 제목(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알게 되서 교만하게 되지 않게 해달라는)이 녹아 나는 상황들이다.(p.111-113,지도자의 인격과 선물 지지해주기)
그저 모든 만남과 대화의 중심에 하나님께 집중하는 훈련을 계속 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은혜가운데 머물 때는 지나가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 같다.책에서는“사역에 너무 초점을 맞추는 바람에 성령의 활동을 놓친다“고 했는데 나는 혹시 그래서 사역을 놓치고 있나(?)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p.114)
침묵 부분에서는 이전 사역하던 교회의 중고등부 학생들과 설교 후 침묵기도 시간이 떠올랐다.선생님들은 그 침묵의 시간이 불편해서 반주 하려고 했는데,도리어 학생들은 잘 따라오고,때로는 침묵 후에 내가 짧게 나누는 내용들(p.132,적절한 자기 공개)이 다음 침묵으로 가는데 도움이 되었다는 학생도 있었다.(놀랍다.중2가...주님의 음성에 집중하고 자기 내면을 관찰하다니...)
감지하는 능력은 점차 자라간다고 하는데,여전히 내안에 내가 많아서,때로는 내 의식인지 발견인지,내 머리의 반응인지 몰라서,피지도자에게 나누어야 할지 한참 머물다가 반응하는 경우들이 있기도 하다.그래서 항상 관상적 반응이 아니라 두뇌적,논리적 반응을 할 때(이 경우로 일하시는 경우도 많다.)는 상대에게 말을 꺼낼 때 더 조심스러운데, (영성지도의 방법이 아닌 듯 해서...)조심스럽게 겸손하게 꺼내다 보니 상대가 더 마음을 여는 경우들이 많다.
바로 최근에 스토리텔링을 통해서 자기를 개방한 지인이 있었던 관계로4장을 읽는 재미가 많았다.나는 의도 없이 원래 개방적이라 자유롭게 이야기를 했는데,지인은 그 부분을 감추려고 하다가 내가 확~개방해 버리는 바람에 자기도 개방해서 자유로워졌다고 표현했다.그날의 만남은 짧았지만,참 이벤트가 많은 날이었다.
[토론]자기 공개...저는 워낙 개방적이라 개방이 편한데,개방 자체를 불편해 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신학교에 와서 알았습니다.개방도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지난주 수업 때 교수님의 "하나님만 신뢰하는 모드"의 수퍼비전이 계속 가슴에 남아 그런지 이번 부분을 읽을 때 계속 자발적 유약함(p97, ‘힘 빼고 하나님 바라보기, 기대하기’), 진정한 겸손이 계속 뇌리에서 돌고 있었다. 영성지도도 수퍼비전도 하나님이 마음 두시는 곳에 함께 해야 하는데 항상 나의 정의가 먼저 고개를 들고 내가 이해 안 되는 것은 용납이 안 되는 기준이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자유롭게 서지 못하게 하는 것 같다. 어제도 왜 이렇게 질문이 아무거나 나오나? 하며 대화의 초점이 휙휙 바뀌었는데 피지도자가 그때 마다 주제에 따른 깊은 성찰을 나눠주어 나만 계속 눈물을 흘렸다. 내가 보기에는 불안해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5년 만에 만난 두 시간을 최대로 활용하신 것 같다.
이번 장을 읽으면서 ‘나 자신을 아는 것의 중요성’이 많이 부각되었다. 지도자도 수퍼바이저도 자신을 알 때 피지도자를 더 잘 도와 줄 수 있게 된다. 사실 나는 하나님을 더 알고 경험하고 싶어서 나를 더 알고 싶었고 그래서 기독교 영성 공부를 더 하게 되었다.
3주전의 아우구스티누스, 지난주 캘빈, 이번 주 수퍼비전 작업정의에서 계속 ‘나를 아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것이고, 타인을 도울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끊임 없이 알려주시는 것 같다. 성령님의 조명하심 아래서 나를 돌아보고(성찰) 아버지의 시각으로 나를, 그리고 타인을 바라보는 은혜가 내게 항상 있기를 기대하게 된다.
저자가 ‘자기만의 기도와 실습 영역‘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은혜를 노력으로 살수는 없지만 시간과 마음을 아버지께 향하는 인간이 할 수 있는 최대의 의지의 표현이 이러한 훈련이 아닐까 한다.
이전에도 ‘도구상자’라는 표현이 적절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저자는 기술적인 부분(?)을 표현한 것 같았으나 본인은 성령님께서 다양한 도구를 꺼내 쓰실 수 있도록 나를 열어놓고 배우는 마음의 자세가 ‘도구상자’전에 선행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자기 개방은 언제나 공격받을 위험도 있지만 그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며 열 때, 일부 다치는 부분이 있더라도 이 믿음의 모험에 모험 없이는 경험해 볼 수 없는 더 큰 은혜와 믿음의 진보가 있을 것을 기대해본다.
[토론] 나는 맞지 않다(p104하단, 배경, 세계관, 상황 등...)는 마음이 들어서 편히 다른 지도자에게 가도록 피지도자에게 길을 열어주었으나 피지도자가 계속 하기를 바랄 때는 나를 성찰하면서 계속 만나야 할지, 혹은 피지도자의 다른 마음 때문(나와 계속 관계를 유지 하는 것의 이점이 생길 경우)에 나와 회기를 계속하기를 바란다면 그것을 인지하도록 도와야 할지.. 이 부분이 ‘통제’(p99)에 해당되는 것은 아닐지..
이전에 헨리 나우웬의 책을 몇 년만에 다시 읽을 때 줄도 치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그 부분을 십년이 지났는데도, 내가 평소에 따라 하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년에 읽고 22년에 다시 읽는데, 이번에 바바라와 사라의 이야기에도 그 부분은 줄이 쳐 있지 않았지만 최대한 일상에서 사라의 시각으로 보려고 했던 모습들이 떠올랐다. 근거 없는 아이디어가 아니라 기억 못하고 있었지만 내가 이미 읽었던 것들을 따라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성경을 더 열심히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바라와 사라의 이야기에서 사라도 훌륭하지만 그것을 알아보고 인지하고 읽어낸 바바라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끔 만남 중에 내가 의도하고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들을 알아차리고 읽어내는 피지도자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리어 내가 더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된다. 영성지도는 일방을 위한 것이 아니라 쌍방을 향한 하나님의 일하시는 곳이다.
최근 교회 사임의 껀으로 회개와 자숙의 상황에서 이번 장은 지난주에 내가 함부로 말했던 ‘너머에 계신 하나님’에 대해 위로해 주시는 장 같았다. (p54, 55)
“안전함을 내버려야 한다... 위험을 감수한다면.. 대가와 잠재적 보상, 둘 다 높을 것이라고 제시한다.”(마가복음 10장 이야기)
“가장 강력한 변형의 순간은 ..둘다 사회적 역할과 명시적 규범을 넘어선 깊이에서 만났을 때 일어났다.”
내가 전도사로서 함부로 사임한 것을 여기에 적용하는 것이, 누군가(나 때문에 당황함을 경험하게된 많은 분들)에게는 말도 안되겠지만 이번 일을 통해 나의 기질을 더 직면하고 놓친 말씀들을 되찾는 시간을 갖게 되었고 사건 너머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하는 마음이 이 책을 읽으며 더 커졌다.
더불어 3주간 예수님의 광야 시험(마4장)을 설교하면서 계속 정체성과 부르심을 외쳤는데 그게 나 자신에게 외친 말인가 또 돌아보게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너머에서 기다리시는 하나님’의 그림이 조금씩 보여지는데 이번 사건이 믿음의 모험이었는지, 못된 기질의 댓가 인지 기대하며 기다려 보려고 한다.
영성지도 중에서도 나는 그저 피지도자의 말을 되풀이 해서 정리해서 맞냐고 물어본 것 뿐인데 정곡을 찔러서 시원하다는 반응을 듣고 놀랐었다. 책에서 은사 부분을 보고나서야, 혹시 이것이 나의 은사의 표현이었을까 의문을 갖게 되었다. 나는 피지도자의 반응에, 피지도자가 가지고 있는 옛날 평소 나의 이미지가 투영된 것으로만 생각했었다.
슈퍼바이저의 "특별한" 많은 하나님 경험이 영적 지도자의 "특별한" 경우들을 놀라지 않고 이해하고 그 너머를 여유있게 바라볼 수 있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장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사순절 시작 전부터 묵상했던 ‘고난이 유익’이다. 특별한 은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사람은 그 경험을 누리는 사람들을 때로는 함부로 판단하기도 하면서, 특별한 은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한계 인 것 같다.(중세가톨릭의 정죄)
디온과 조셉의 이야기에서 영적 지도자 자신이 자신을 스스로 직면하는 것이 영적 자유함을 가져 온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기에게 강점이 있지만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고, 자기의 약점을 직면하는 두 가지 모두가 많이 아프겠지만 그것이 바로 피조물 인간임을 인정하며, 영적으로 자유한 하나님 앞에선 영성 지도자가 되는 길일 것이다.
영성 지도가 끝날 때 마다 나의 지도자가 해주는 말이 항상 마음에 남는다. ‘내가 널 도와주는 게 아니다. 너의 나눔을 통해서 나도 성장 하게 된다.’ 나도 이런 영성지도자가 되길 바란다.
[토론] 직면을 회피하며 항상 피지도자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영성 지도자(스토리텔링을 못 알아 듣고 놀이로 표현해도 못 알아 듣는)를 만난 수퍼바이저의 차선책은 무얼까?
2019년 3월 15일에 이 부분을 읽고 ‘왜 횃불에 보내셨는지... 왜 내 안에 상담과 영성의 열정이 있는지 조금씩 알게 되어 감사합니다.’라는 메모가 있었다.
2022년 3월에 이 부분을 이제는 대단히 학문적으로 건조하게 읽었다. 줄친 부분들도 달랐다. 청강으로 들을 때와 나의 모드가 바뀐 걸까 현재 내 상태의 문제일까 의문이 든다...
외로운 여든 살 여성과의 음악으로 하는 영성지도의 예를 보면서 그동안 수업시간에 배운 형식에 사고가 너무 매여 있었다는 되돌아 봄이 있었다. 현재 나의 상황이 큰 실수의 상황일까 말씀에 근거한 순종일까 많이 관찰하고 있는 시간이라 존 메리의 경우를 통해, 실수를 통해 발전하는 영성지도자의 이야기가 위로가 되었다.
저자는 수퍼비전을 ‘자리에 없는 타자의 안녕을 증진시키는 동료들 사이의 대화로서, 지도자와 피지도자의 관계에 초점을 두는 대화’라고 정의한다. 지도자의 내적 삶에 우선 초점을 주는 모델은 다른 논의가 필요하므로 주로, 피지도자의 목표와 안녕, 영성지도 중 성령을 경험하는 자리를 수퍼비전의 목적으로 보고 있다.
저자의 다양한 경험들로 영적지도자들의 한계를 깨닫게 돕는다. 다양한 스토리텔링을 제시하고, 저자 자신의 실수와 감정들을 공유하므로 지도자들에게 안정감을 주고, 영성지도자 자신을 직면 할 수 있게 돕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영적 자유함과 개방이 영성지도나 수퍼비전에서 중요한 부분임을 생각해 볼 수 있었고, “정중한 무지”라는 단어에서 최근 필자가 걷고 있는 상황에 대한 풀이인 듯해서 감사했다. 아무것도 모르지만, 하나님의 감추어진 신비 안에 머물러 모르는 길을 신뢰하므로 가다보면 그 길의 끝에 찬양이 가득하길 기대해본다.
[토] 영성지도자나 수퍼바이저나 영적 자유함과 개방성이 중요한 것 같다. 영적 자유함과 개방성을 불편해 하는 영적 지도자에게는 (저자의 스토리텔링 이외의 방법) 어떤 접근이 좋을까 ...
<THE ROLE OF NARRATIVE IN CHALLENGING SACRIFICIAL SUBSTITUTION AND A NEW PERSPECTIVE ON RENÉ GIRARD> 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이야기의 힘
어제도 제자를 만나서 나의 이야기를 했다. 이 제자와는 만날 때 마다 제자 개인에게 항상 중요한 싸인들이 있어서 제자도 나를 만날때마다 무언가 있겠다는 기대를 하고 나온다고 했었다. 어제는 헤어질 때 까지 별것이 없나보다 생각하고 지하철에서 헤어지려는데 만나자마자 했던 나의 이야기 중 야곱의 이야기에서 자기 마음이 흔들렸었다고 했다. 몇시간의 만남에 임재의 흔적 없이 그냥 들어가나보다 하고 아버지 앞에서 물어보면서도, 모든 것이 은혜이기에 힘을 빼고... 오늘은 드러나는 임재가 없었어도 아버지께서 이친구와 함께 하심을 신뢰한다고 고백하고 있었는데... 이미 만남 초반에 이 친구는 야곱의 이야기에 꽂혀 있었다.
교수님의 첫 번 '영성과 성경' 강의 때도 동의했었지만 이제는 그동안 사역에서 있었던 것들을 하나님께서 학문적으로 정리해 주시는거 같아서 더 감사가 된다.
슈나이더스가 다들 알고 있지만 정리하지 않은 것을 정의하고 정리해서 명쾌하게 해주는 것처럼 교수님도 내러티브의 힘을 그렇게 드러내신 것 같다. 대부분 나의 이야기나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피상담자가 의도하지도 않고, 생각해 보지도 못했던 자신의 문제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다. 거기서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못 보지만 남의 이야기는 객관적으로 보기에, 타인의 이야기와 자신의 이야기가 만나는 그 부분을 인지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그부분에서 ‘아하’가 발생되는 것을 많이 봤다. 때로는 내가 관찰자적 입장에서 이야기와 피상담자의 만나는 부분을 살짝 들추기도 한다. 대부분은 거기서 놀람이 발생한다.
여기서 영성지도를 생각해 보았다. 영성지도는 피지도자의 이야기를 들음으로 진행되는데 지도자는 그 이야기를 객관적으로 혹은 관상적으로 경청하면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영성지도자는 나처럼 처음부터 나의 이야기나 타인의 이야기를 주저리 풀어서 피지도자로 하여금 자기를 발견하게 하는 방법을 사용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다.
‘횃불 트리니티’에 입학 하는 과정 자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과정이었다. 입학 한 그 학기부터 수업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의아해 했던 것들이 수업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얻게 된
가장 첫 번째 유익은 ‘내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자유롭고 가벼워 졌다. 두 번째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에게 알려주고 계셨다는 확인이 되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2013년부터 나에게 목표가 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었다. ‘횃불 트리니티’와의 만남은 내게 말씀의 구현이다.
1. 수퍼비전 소감 및 알아차린 것
첫째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정리되고 알게 된 부분들이 있지만 가장 큰 수확은 교재를 통해서 자유케 된 부분이다.
6장 ‘주어진 것과 선물‘ 부분에서 그동안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을 다룬다. 내가 계속 경험했던 것은 성경을 깊이 읽고 말씀 안으로 빠져 들고 있을 때 내 몸을 감싸는 느낌, 부부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죄책감이 들면 하나님께 물어보기 보다 무조건 대적 기도를 했다. 내가 당당하고 성적인 부분이 자유하다면 ’제가 왜 이런가요? 저한테 성적인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하고 하나님께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서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이 오는 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반응이 말씀 읽을 때 여서 당황스러웠다. ’말씀의 귀한 선물이 쏟아지는 시간에 이런 역 반응을 하다니’ 이런 죄책감에 하나님께 죄송했고, 대적기도를 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기간은 정말 오래 되었다. 그래서 혹자가 ‘독신이 부르심이냐’는 질문에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6장을 읽고 나서 놀랐다. 대적기도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고스란히 하나님께 반응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이라니.. 대부분의 여성 싱글들이 경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동기 전도사님 중 싱글 여자분께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이 부분만 한번 읽어보세요’하고 건넸다. 그 당시 그분은 다른 과제로 바쁠 시기였는데 그 부분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싱글 성도들이 경험하는 부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성경을 읽을 때 그런 반응이 생기면, 너무 기쁘고 감사가 나왔다. 왕상 7-9장 솔로몬의 성전 제작과 봉헌 부분에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본문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 하나님의 뜻은 이런 거 였구나...’ 레노바레 성경으로 읽는데 왕상 8:10-11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구름 때문에 제사장이 섬기기 힘들다는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한 적용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비가지적 표징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날도 성경을 읽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비가시적 표징을 그동안 몰랐고 잘 못 반응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이런 경험들이 있을 텐데 ‘이 증상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 보기보다 내가 정한 좋은 것과 ‘나쁜 것 같은 것’의 규칙에 따라 반응하고 있지 않을까?
둘째, 강의 전에는 정리되지 않은 영성지도가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안정 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한다. 성격상의 문제로 피지도자를 기다려주기 보다 먼저 성급히 이야기 할 경우가 많았다. 이는 피지도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주눅 들게 하고, 더 표현하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피지도자의 반응을 기다려주고 여지(pause)를 줄 때 피지도자가 먼저 반응을 보이고,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 집중해서 물어보고 있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피지도자의 반응과 진행을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으로 하나님께서 피지도자를 많이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피지도자의 진술에 질문이 많이 생긴다. 피지도자의 말을 끊거나 혹은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서 본론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질문이 본인의 궁금함인지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영성지도 중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셋째, 피지도자가 깊숙이에서 꺼낸 문제가 내게도 존재하는 것들을 이번학기에야 인지했다. 항상 피지도자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되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것이 은혜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학기에 성찰보고서와 대화록을 여러 번 작성하면서 인지한 것이 피지도자가 꺼내온 이슈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지도가 피지도자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동일한 부분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넷째, 위에서 인지한 부분을 강의시간에 피지도자 이슈로 가지고 갔다. 영성지도 전에 약 2주 동안 혼자 물어보고 머물 면서 명확하지 않게 답을 받은 듯도 했다. 그런데 영성지도 실습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두 개의 그림이 떠올랐다. 너무 놀랐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아서 이제 그만 기도할까요 묻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 지도자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성지도자가 한마디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마자 두 장의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이 답변을 받고 나서 이 것이 오래기다리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바쁜가’는 질문은 십년도 넘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취업준비를 하느라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느라고 바쁘기는 했다. 그러다가 20대에는 바쁜게 당연한거라 생각했고, 30대 이후 선교지에서 부터 ‘왜 나만 바쁘지’ 묻기 시작했다. 선교지에서는 대개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아무래도 능력이 있던 분들이라 많은 일들을 여유롭게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잘 못 된 건가? 열심히 하는 게 나쁜 건가...“
이 두 그림은 상기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내 삶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그 답으로 기대가 되고 감사했다. 수퍼 비전에서 교수님께서는 나의 이슈('나는 왜 바쁜가')에서, 공생애동안 바쁘셨던 예수님이 떠올랐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환대와 응원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쁜 것은 내 죄의 근원이고 내 열심이고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것이고, 내 열심이라는 상담 쪽의 정죄 메시지를 들어왔다. 그래서 스스로 정죄감이 많이 들었다. 30대 후반에야 그것이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고 정리를 했다. 그래서 ‘바쁨’ 또한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내게 허락된 ‘바쁨’ 가운데서 ‘은혜의 리듬’(마 11:28-30)을 누리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하나님 보다 내가 앞서는가?’하는 긴장감으로 매번 점검 했다. 슈퍼비전을 진행하던 중, 교수님의 말씀에 완전 놀라고 그 이후로 일상과 사역 모두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정말 바쁘게 몰아치는 기말 기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응원을 경험함으로 ‘존재적 안정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성지도의 유익인 것 같다.
2. 강점
강점과 약점은 항상 양면이 있다. 경계를 잘 지키면 약점도 강점이 되고 경계를 지나치면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학기 영성지도를 하면서 알게 된 강점은 피지도자의 상황이 빨리 인지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빨리 인지되었다고 먼저 발언하면 안 되고 피지도자가 직접 하나님께 듣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내가 피지도자에 대해 발견한 것을 나누었을 때 아직 피지도자가 받아들일 만한 때가 아닌 경우들이 있다. 내가 먼저 발언해 버리므로 피지도자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나만 민망해 진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그 이후로는 최대한 발언을 줄일 수 있었고 더 기도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로 피지도자를 더 집중해서 도우라고 주시는 은혜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거하는 훈련이 내게 진행되고 있었고, 피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 훈련이 동시에 진행된다. 함께 지어져(엡 2:22) 가고 있었다.
약점 또한 빨리 인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깊이 머물지 않고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화요일에 영성지도(강의시간 실습)를 받고 수요일에 상담을 받았는데 인생의 큰 그림들이 휙휙 그려졌다. 그런데 깊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결국은 상담이 끝날 무렵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상담선생님도 나도 무언가 이상했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은 내가 빨리 인지하는데 깊이, 오래 머물러 숙성시키는 시간이 없어서 결과가 정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3. 도전과제
인생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겠지만 현재 시간표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 변혁이 있는 중요한 시간표인 듯이 느껴진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현재 나는 그에 못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리 저리 튈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본질 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과 나이가 10-20년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하나님 앞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인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진짜 바램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을 알고 가고자 하는 나의 “못 된 안정감”이 나의 진로를 방해 하는 걸까? 또 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하나를 알아가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지만 이 과정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면 어려워도 가야할 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간에 신학교에 두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야 횃불에서 시간은 내가 인큐베이팅 되는 시간 이란 생각이 든다.
‘바쁨’과 연관된 것이 내 안에 ‘화(anger)’와 연관되어 있음을 살짝 인지 했다. ‘화’와 관련된 부분은 30대 초반부터 연구하고 싶던 주제였다. 그것이 내 안에서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 ‘화’라는 주제도 나에겐 10년이 넘은 주제인데 이 주제에 답을 찾게 되고 더 가볍고 자유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년도 새롭게 대두되는 이슈는 성속의 구분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적인 반응이 내 몸에 나타나면, 스스로 ‘잘못된 반응’이라고 결정하고 반응했던 것처럼 내 안에 스스로 잘잘못과 옳고 그름과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과 멘토링을 하는데, 대화중에 매달 반복되는 말씀이 ‘너무 따지지 마세요’였다. 5월이 되어서야 나의 이번년도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4)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과 멘토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앞에서 질풍 노도의 시기처럼 진로를 두고 묻고 있다는 부분이 이것이다.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계속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두 학기가 지날 무렵부터 주변의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은 내가 교회를 하면 다니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홀딱 해서 교회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참 예배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리던 이머징 예배가 현실화 되어 있는 것도 보면서, 예배 공동체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지금도 방학이면 예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3년, 학비 때문에 고군 분투 하는 시간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과연 하나님이 내게 사역하라고 하시는게 맞는가?’란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나올 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사역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지 않는 그림엔 손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현재 강의 하고 있는 학교의 강의도 자연스럽게 먼저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되었고 일부러 더 이상의 강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중의 재정난을 통해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업을 하라고 하시는 건가?‘ 물어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담임 목사님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도 그러실까?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은 무엇일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내게 남겨진 커다란 도전 과제이다. 재정 때문에 진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맘몬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고, Th.M 과정도 듣고, 예배 공동체도 시작한다면 난 다시 ’바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시는 걸까... “예수님과 함께 쉬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
★★아래의 내용은 15, 16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15장 공통적인 어려움의 영역들 & 16장 영성지도의 잠재적 유익들
15장은 영성지도의 공통적인 어려움들로 나도 어렴풋이 경험하고, 또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더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던 부분이었다. 대부분 직접 피지도자들이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바라지만 책에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을 영성지도자로 대치하거나 영성지도자의 여정을 의도하지 않게 복사하고 닮아가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닮아가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만남을 가진 경우에는 어쩔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긴하다. 그래서 이전 장들에서 말했듯이 영성지도자와 기간을 정하고 지도를 받는 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책에서는 양자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두라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상호 의존으로 인한 위험 가능성을 줄인 것 같다. 책에서는
성령안에서의 자유의 여부로
관계 이상을 점검하고,
性의 문제 부분은 ‘인식’으로
계속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라
고 조언하고 있다. 참 좋은 답인 것 같다. 실망이나 분노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면’과정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실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인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크리스찬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의 많은 만남에서 그들이 감정의 문제를 ‘인지’하도록 돕는 이 땅의 영성지도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교회에 오래 다니신 어른들 중에서도 율법의 틀에 매여서 젊은이들과의 소통도 막고, 본인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이 못들어 가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다.
16장에서는 영성지도의 잠재적 유익들을 말하고 있다. 인식이 증대되고 신뢰가 깊어지고(누구와? ^^ 아래 나옵니다~), 영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인식 증대로 인해 타인들은 쉽게 못 느끼는 것을 느껴서 민감해지는 불편함도 있지만 15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망이나 분노 등 감정의 인지는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통로이므로 나의 영에게 결국 유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긴장이 풀어지므로 감사할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지하고 감사할수 있고 그것이 (상담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신뢰’의 문제와 연결이 된다. 자신이나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한 요인이 있다고 상담학에서는 말한다. 영성지도를 통해 나와 타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높아지면 결국 나의 안정감이 높아지므로 긴장감이나 쓸데 없는 감정적 소모없이 주어진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고 처리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마태복음 11:26-28절이 아닌가 싶다.
‘교육목회‘과목에서 사역자가 건강해야 제대로 사역할수 있다고 했다. 나는 중국에 있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온 2016년도에 나의 갈길을 몰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래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의 상태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것들이 있었다. 3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야 나의 상태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닳아 가고 있다.
매일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의식을 성찰하고
내가 지내온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때,
내 안에, 내 삶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보고
거기서 안정감과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거나 나의 필요나 상황등에 꼬여 있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주 1일 유통회사에 가서 IT업무를 돕고 있다. 나의 재정을 채우시기 위해 회사에 보내셨나 하는 내 입장만을 고려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가고 나서 알았다. 하나님은 그곳의 영혼들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안정감을 찾게 되길.. 풍성히 누리게 되길 바란다.
★★아래의 내용은 15, 16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14장 기독교 훈련들
횃불에 와서 많은 수확이 있었지만 이번학기 영성형성 과목의 책을 빠지지 않고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은혜가 되었다. 그동안 나의 영적 여정을 검증 해주고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도전을 준다. 항상 감사하다. 책을 읽으므로 그동안 지나왔던 과정들에 대해 ‘확증’을 받고 말로 표현 못하던 부분들에 대해서 글로 보면서 정리가 되었다.
훈련은 전인을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서 많이 위로가 되었다. 사실 신학적으로 근거를 찾지 못한 채, 나의 임상만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했던 이야기 들이 이 책에 정리 되어 있어서 감사했다. 항상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아야 한다고 부담 갖는 청년들은 피곤한 몸으로 인해 아버지 앞에 있는 것을 잘 유지 하지 못한다. 대게 기도하다가 잠들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에 많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나눈다. 그래서 어떤 친구에게는 집에서
가장 편한 장소와 자세로
그렇게 앉아서 아버지께 말을 하라
고 지도해 준적도 있었는데 책에도 딱 그 부분이 나왔다. 책 읽기 전날 만난 A라는 청년도 살이 쪄서 힘들어서 퇴근하고 운동하는데 운동하는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고 했다. 가장 집중하는 기도.. 나 또한 물속에서 홀로 있는 수영하는 시간이나 운동 할 때 아버지께 집중이 푸욱 될 때가 있어서 가장 기도하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또한 감정이 상하거나 힘들 때면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께 자주 머물렀고 집중했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직면 하는 경험들을 했었는데 ‘의지’ 부분에서도 그런 설명이 있었다. 상관도 없는 것들 혹은 아주 옛날 것이 떠오르는 것들을 통해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은 경험들이 생각났다.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떠오를 때 당황하고 짜증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들이 아버지를 신뢰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자발적인 훈련"은 정말 유익이 되는 것 같다.
21세 때, 그렇게도 갈망하던 교회에서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청년부 목사님이 정시기도를 제안하셨다. 그때 하던 정시기도를 아직도 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올 때 까지는 30분 이상 아버지 앞에 머물렀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많이 자유하며 그 시간을 누리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매일 말씀을 3장씩 꼭 읽었는데 신학교에 와서는 말씀 보다는 다른 책들을 읽느라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어렵다.
책을 읽기 전날도 몇 년간 나를 피하고 만나지 않던 과기대 졸업생 A와 만났다. A의 영적 상태가 바닥을 치고 진로가 흔들거릴 때 만났었다. 모든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어서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우선 좋은 공동체에 소속해 있기만을 부탁했다. 그리고 A는 온누리 서빙고 중국어 예배에 갔다. 그곳에는 우리학교, 우리학과 졸업생들이 많다. 그 졸업생들은 나를 만나고 있었어서 그 친구들을 통해서 꾸준히 A가 양육을 잘 받고 공동체에 붙어 있을 수 있도록 부탁 했었다. 이번에 A는 양육도 받고 여러 가지 아픈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조금씩 찾아간 것 같았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욕심을 갖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분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영적 진보이다. 또한 A가 어려울 때 티 안나게 A를 돕던 선배들이 이제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다. 이제 A가 그들 옆에서 티 안나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건강한 영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A도 만남 속에서 자기가 이제 형들을 기도로 도와야 할 때임을 인지했다. 책을 읽으면서 전날 A와의 만남이 계속 생각났다. 임상과 이론과 실습을 병행케 완벽한 학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래의 내용은 12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12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12장 기도
지난주 떼제 기도회였는데 어떻게 이번주 읽기가 ‘기도’일까... 하나님의 섭리? 책에서 말한 대로 기도는 태도가 되고 고스란히 행동이 된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
정시기도를 시작했던 20살 무렵부터 내가 할 이야기가 끝나면 하나님께 ‘제가 무얼 기도할까요’ 항상 물어봤었다. 때로는 그 물음 이후로의 기도가 더 길고 깊다. 그래서 그 질문이 참 좋다. 나랑 상관없는 상황에 대한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시고 그러기 위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황"을 다스리고 계시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계심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의 유익과 이해관계는 전혀 없는
하나님의 이해관계 속에
내가 함께 있다.
이런 황홀한 기도의 방법이 이번 12장에 있었다. "기도의 종류와 기도의 전환" 부분에서 요즘 나의 ‘기도 상태’를 점검 할 수 있었다. 기도 시간에 오래 앉아있지 못해서 나의 상태를 봤을 때 불안했었다. 그런데 책에서 그런 기간이 있다고 써 있어서 놀랐다. 나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는 것일까.. 정말 횃불 입학이후 영성과목은 내게 많은 답을 준다. 감사하다.
20대부터 주변의 영적 친구, 선후배들은 내가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대언이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 여쭤볼 때 마다 내가 방언을 한다고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답답했다. 이십년이 지난 이제서야 나는 임상으로 조금씩 나의 묵상 기도가 나의 방언인 것을 알아가고 있다.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바로 12장에서 방언의 종류가 음성, 묵상, 관상에 존재한다고 정확히 적혀있다.
개인의 개성과 기호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인식에 영향을 준다
고 했는데 어쩌면 묵상 기도를 하는 나의 기호에 따라 방언도 그렇게 주신 것 같다. 나를 보호하시고 나의 성향을 인정해주시고 한걸음씩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책에서 관상기도가 하나님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안에서 쉼을 갖는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지난 목요일 떼제에서 그 경험을 했다. 연변에 있을 때부터 떼제에 다녀오신 분이 나에게 몇 개월 떼제에 다녀오면 좋겠다고, 나랑 딱 맞을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그 떼제를 횃불에서 처음 만났다.
“찾아오시는 하나님” 나는 주 3일 신학교에 오고, 주 2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주 1일 회사에 풀타임으로 근무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사시간은 조선족 청년들과 만난다. 주 1일 가는 회사는 도와드리기로 하고 가고 있다. 여직원이 7-8명 있다. 20-30대로 이루어진 그 여직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계속 여쭤보며 한 두달 회사의 업무들을 익혔다. 내가 맡은 부분은 업무의 전산화 이다. 방학 때 처음 2일 동안 도와주러 갔다가 노가다를 해서 눈도 몸도 많이 상했다. 이런 노가다는 20대나 할 일이지 싶기는 했는데 노가다를 하는 내내 이거 프로그램으로 하면 2-3시간에 끝낼텐데 왜 수작업을 할까 계속 고민하면서 16시간을 일했다. 회사에 처음 갔으니 내가 주도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떼제 기도회때 묵상 기도 시간에 갑자기 회사가 내 안에서 올라오고 하나님께서 그 회사의 주요 멤버들을 너무 안타까워하신다는 마음에 꺼이꺼이 울음이 터졌다. 숨을 참지 못할 정도의 눈물이었다. 온몸이 흔들리는 눈물이었다. 조용한 시간인지라 참았는데 그 부어진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그 두 사람. 하나님이 너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이전에 한번도 그들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초점은 그분들 이었다.
금요일 저녁 교회의 심야 기도회. 같은 기도의 자리이고, 동일하신 하나님인데 왜 여기서는 그 하나님을 못 만날까... 의문을 남긴다. 매일 매순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린다.
교수님의 모의영성 지도가 진행된 며칠 후에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었다. 그 시간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내가 평소에 사람들과 하는 대화 방식을 다시 한번 깨닳았다. 피지도자가 영성지도 시작 전에 본인의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영성 지도 시간에 오래도록 나눈 이야기는 자신이 한 사역에 대한 이야기 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지도자였다면 그렇게 사역의 열매가 보여지는 시기인데 왜 상태가 안 좋다고 했냐고 직격탄(나는 그렇게 생각안하지만 청자는 그렇게 느낄 듯..)을 날렸을 것 같다.
결국 지도자인 교수님이 나서지 않았음에도 피지도자안에 가장 큰 덩어리인 아버지와의 관계 껀이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이것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리라...
말하는 가운데, 표현하는 가운데, 회중 앞에서 꺼내는 가운데, 치유와 답을 주시길 계속 기도했다. 멋있다. 아버지 하시는 일은!! 이번주도 압지께서 나를 여러번 돌아보게 하시는 은혜(고로 어려움과 아픔이^^)를 주셨다. 교육목회 시간에 게임을 했는데 옛 자아가 불쑥 올라와서 자리를 크게 잡았다. 항상 압지 앞에 깨어 있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자주 나를 바라보면 정말 창피하다. 그런데 그게 나였다. 그래서 한주 내내 들으면서 울었던 곡이 제이어스의 ‘내 모습 이대로’이다. 이글을 쓰기 전에도 한탕 하고...
책을 늦은 시간에 읽었는데 너무도 와 닿아서 집중해서 읽었다. 성경의 언어에서 하나님의 이름, 우리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로서의 이름들이 참 많다. 선생님이면서 동시에 학생이고 그러면서 선교사이고 직장인이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학교에서 늦에와서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하나님께서 직장인들의 힘듦과 고난을 이해하라고 주 1회의 직장을 경험하게 하셨다는 생각을 했다. 도리어 선교단체에 있을때는 내 공부도 하고 설렁설럼 시간을 보냈는데 일반인들의 직장은 점심시간 한시간 빼고(사실 이때도 나는 거의 회의를 하긴한다...) 8시간 내내 초 집중모드이다. 심지어 오늘은 야근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이런 역할의 이름들에 앞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이름은 사랑스런 딸(여디디야 ^^)로 불리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로 모든 곳에서 자리매김하고 싶다.
성경의 가르치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에 항상 중요한 고비마다 말씀으로 2중, 3중으로 확인시켜 주신 하나님이 생각 났다. 더불어 연결되어 성경의 많은 이야기 들은 지금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드러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읽은 모든 성경이 마음에 박히는 게 아니니깐...
또한 최고로 하나님과 친밀하셨던 예수님이 최고의 영성지도자이심을 책을 통해 상기했다. 모든 상황에서 “Focus on GOD”.
예수님처럼 두려움의 한 복판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향할수 있길.. 그리고 두려움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순종할수 있도록 도울수 있길 바란다. 신학을 하고 한국에서 청년부 사역을 하고 있는 언니가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었다. 업무 중 언니의 글을 보고나서, 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언니의 그 반복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 같았다. 역시나 회사에서는 무언지 정확히 모르고 ‘압지 뜻있는 것 같다’고만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수면위로 올라오는 은혜들이 있었다. 열일하고 저녁 늦게 만난 만남도, 또 늦은 시간 언니를 위한 하나님의 위로도 내게는 정말 오늘 하루를 감사로 살아가게 하는 부르심의 은혜이다. 나도 그렇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그렇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과 더욱 깊어질수 있길 바란다.
사람은 자기가 생각이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되는 것 같다. 내가 담임 목사님께 멘토링을 받는 시간은 (너무 궁금한 것 들이 있어서 곧장 물어보는 경우도 있지만) 평안하게 머물러 떠오르는 것들을 마구 쏟아낸다. 그러면서 나도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시간을 갖는다.
책에서도 대화의 흐름은 우리의 방식을 드러낸다고 말했다. 영성지도 시간은 지도자나 피지도자 모두에게 성령님께서 알려주시는 것이 있다. 8장 초반에는 떠오르는 생각들을 버리려고 노력한다고 했지만 그것들이 영성지도의 대화의 내용들이 될 수 있다. 그것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머물 때 대화의 재료들이 줄줄이 나온다. 피지도자로 하여금 방해 없이 충분히 길게 말하도록 할 때 2-3시간이 지나서야 본심과 어려움들이 스멀스멀 나올 때가 있다. 주로 Y대 졸업생이나 교회 청년들을 만나는데 3-4시간이 지나서야 본격적인 마음의 바다 밑 이야기가 나온다. 나 혼자 기도하면서 진행해서 그런 것 일까... 영성지도에서 1시간으로 제한하는 것은 두 사람이 함께 아버지를 바라보는 시너지가 존재해서 그런 것 일까... 사실 나에게 주어진 낮과 저녁 시간들은 대부분 만남에 쓰이는데 ‘자발적 기다림’과 ‘하나님의 낭비’가 바로 그 만남의 시간에 적용된다.나는 숙제도 해야 하고, 강의준비도 해야 하고 시간이 부족한데, 학생들은 나를 만나면 기본 3시간이 지나야 말문이 트인다. 이것은 성격이 급한 나도 훈련하시는 도구가 된다. 혹시 그 시간에 피지도자들도 기도하는 모드가 되면 우리의 만남이 더 효율이 생길까... 아직 무르익지 않은 친구들에게 기도하는 마음으로 만나자고 하면 안 그래도 그들에게 만나기 부담스러운 내가 더 부담스러워질 것 같다. 성령님께서 아이들에게 직접 알려주시기를 또 조용히 구해야 겠다.
집단 영성지도를 진행함으로 내가 혼자가 아니며 내가 이상한 사람이 아니라는 위로를 얻을 수 있다고(p256)했는데 이것은 횃불에 와서 몇 학기 동안 영성과목과 상담과목을 들으며 내가 받은 위로이다. 혼자 아버지 앞에서 정리한 것들에 대해서 ‘왜 목사님들은 이런 내용을 안 알려주실까? 내가 이상한건가?’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학교에 와서 학문적으로 정리된 것들을 많이 찾았다. 한동안 가까이에 있는 Y대 졸업생들중 믿는 친구들과 매주 그룹으로 모였었는데 그곳에서 여러 가지 경험을 했다. 내가 준비한 이벤트는 없었는데 모임 가운데서 서로 역동적으로 성령님의 일하심이 있었다. 책에서 말한 대로 그룹 자체가 영성지도자 였다. 나 혼자 였다면, 1:1로 만났다면 가능하지 않았을 상황들을 경험하면서 함께 하는 은혜와 안정감을 누린적이 있었다. 9장을 읽으면서 횃불의 동기들 안에서 함께 갈수 있는 건강한 영적 모임을 3-4명이라도 정기적으로 갖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현재 어쩌다 모인 몇몇이 식사 모임으로 만나고 있는데 거기서도 살짝의 역동적인 반응들이 있다. 아버지께서 만나게 하시고 모이게 하신 것이라 믿고 기대하며 즐겁게 식사를 한다. 더 이상의 진전은 없지만 기대를 해본다.
성찰을 위한 질문이나 책에서 나오는 질문들을 나에게 객관적으로 하게 된다. 책을 읽는 것 자체가 가끔은 내가 영적지도를 받고 있는 듯한 마음이 들 때가 많다. 좋은 책을 만나게 되어 감사하다. 최근 이 주간 다른 과목(교육목회)의 강의 내용과 내가 고민하고 정리한 부분에 대한 내용이 동일하게 정리되어서 정서적으로 영적으로 신이 났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요즘에 새벽 3-4시까지 잠을 안자고 일을 한다.(왜 나는 일을 해도 해도 많은 걸까?) 아무리 할 일이 많아도 재우시면 (어떻게든 안자고 일을 하려고 버둥거리는 성향의 나 였는데...)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신뢰함으로 접고 자는 훈련을 지난 2-3년동안 했다. 그런데 이번 주는 내내 계속 새벽 늦게까지 일하고 아침에 일찍 일어나지를 못한다. 책에 ‘하나님께서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는 생각. 부재하신다고 느끼는 것?’ 의 질문을 보면서 요즘 내가 늦게까지 일하는 것에 대해서 이러한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제까지도 이 부분에 대한 답을 못 찾았는데, 정리하며 글을 쓰는 동안 알았다. 시간이 많이 부족한 이 상황에서 아버지께서 지금은 나로 깨어 있는 은혜를 주시는 시간인가 보다. 모든 것에 감사하며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