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 수퍼비전 (한학기 후기)

예수님과 함께 자유롭고 가볍게

(마 11:28-30, 메세지 성경)

 

나와 함께 길을 나서면 너희 삶은 회복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제대로 쉬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일하여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아라.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 배워라.

나는 너희에게 무겁거나 맞지 않는 짐을 지우지 않는다.

나와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11:28-30, 메세지 성경)


‘횃불 트리니티’에 입학 하는 과정 자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과정이었다. 입학 한 그 학기부터 수업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의아해 했던 것들이 수업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얻게 된


가장 첫 번째 유익은 ‘내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자유롭고 가벼워 졌다.
두 번째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에게 알려주고 계셨다는 확인이 되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2013년부터 나에게 목표가 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었다.
‘횃불 트리니티’와의 만남은 내게 말씀의 구현이다.
 

1. 수퍼비전 소감 및 알아차린 것

첫째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정리되고 알게 된 부분들이 있지만 가장 큰 수확은 교재를 통해서 자유케 된 부분이다.

6장 ‘주어진 것과 선물‘ 부분에서 그동안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을 다룬다. 내가 계속 경험했던 것은 성경을 깊이 읽고 말씀 안으로 빠져 들고 있을 때 내 몸을 감싸는 느낌, 부부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죄책감이 들면 하나님께 물어보기 보다 무조건 대적 기도를 했다. 내가 당당하고 성적인 부분이 자유하다면 ’제가 왜 이런가요? 저한테 성적인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하고 하나님께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서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이 오는 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반응이 말씀 읽을 때 여서 당황스러웠다. ’말씀의 귀한 선물이 쏟아지는 시간에 이런 역 반응을 하다니’ 이런 죄책감에 하나님께 죄송했고, 대적기도를 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기간은 정말 오래 되었다. 그래서 혹자가 ‘독신이 부르심이냐’는 질문에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메리 로즈 범퍼스 외. <영성지도자들을 위한 수퍼비전>.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7

그런데 6장을 읽고 나서 놀랐다. 대적기도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고스란히 하나님께 반응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이라니.. 대부분의 여성 싱글들이 경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동기 전도사님 중 싱글 여자분께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이 부분만 한번 읽어보세요’하고 건넸다. 그 당시 그분은 다른 과제로 바쁠 시기였는데 그 부분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싱글 성도들이 경험하는 부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성경을 읽을 때 그런 반응이 생기면, 너무 기쁘고 감사가 나왔다. 왕상 7-9장 솔로몬의 성전 제작과 봉헌 부분에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본문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 하나님의 뜻은 이런 거 였구나...’ 레노바레 성경으로 읽는데 왕상 8:10-11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구름 때문에 제사장이 섬기기 힘들다는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한 적용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비가지적 표징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날도 성경을 읽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비가시적 표징을 그동안 몰랐고 잘 못 반응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이런 경험들이 있을 텐데 ‘이 증상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 보기보다 내가 정한 좋은 것과 ‘나쁜 것 같은 것’의 규칙에 따라 반응하고 있지 않을까?

 

둘째, 강의 전에는 정리되지 않은 영성지도가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안정 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한다. 성격상의 문제로 피지도자를 기다려주기 보다 먼저 성급히 이야기 할 경우가 많았다. 이는 피지도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주눅 들게 하고, 더 표현하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피지도자의 반응을 기다려주고 여지(pause)를 줄 때 피지도자가 먼저 반응을 보이고,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 집중해서 물어보고 있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피지도자의 반응과 진행을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으로 하나님께서 피지도자를 많이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피지도자의 진술에 질문이 많이 생긴다. 피지도자의 말을 끊거나 혹은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서 본론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질문이 본인의 궁금함인지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영성지도 중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셋째, 피지도자가 깊숙이에서 꺼낸 문제가 내게도 존재하는 것들을 이번학기에야 인지했다. 항상 피지도자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되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것이 은혜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학기에 성찰보고서와 대화록을 여러 번 작성하면서 인지한 것이 피지도자가 꺼내온 이슈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지도가 피지도자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동일한 부분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넷째, 위에서 인지한 부분을 강의시간에 피지도자 이슈로 가지고 갔다. 영성지도 전에 약 2주 동안 혼자 물어보고 머물 면서 명확하지 않게 답을 받은 듯도 했다. 그런데 영성지도 실습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두 개의 그림이 떠올랐다. 너무 놀랐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아서 이제 그만 기도할까요 묻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 지도자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성지도자가 한마디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마자 두 장의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이 답변을 받고 나서 이 것이 오래기다리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바쁜가’는 질문은 십년도 넘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취업준비를 하느라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느라고 바쁘기는 했다. 그러다가 20대에는 바쁜게 당연한거라 생각했고, 30대 이후 선교지에서 부터 ‘왜 나만 바쁘지’ 묻기 시작했다. 선교지에서는 대개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아무래도 능력이 있던 분들이라 많은 일들을 여유롭게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잘 못 된 건가? 열심히 하는 게 나쁜 건가...“

 

이 두 그림은 상기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내 삶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그 답으로 기대가 되고 감사했다. 수퍼 비전에서 교수님께서는 나의 이슈('나는 왜 바쁜가')에서, 공생애동안 바쁘셨던 예수님이 떠올랐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환대와 응원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쁜 것은 내 죄의 근원이고 내 열심이고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것이고, 내 열심이라는 상담 쪽의 정죄 메시지를 들어왔다. 그래서 스스로 정죄감이 많이 들었다. 30대 후반에야 그것이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고 정리를 했다. 그래서 ‘바쁨’ 또한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내게 허락된 ‘바쁨’ 가운데서 ‘은혜의 리듬’(마 11:28-30)을 누리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하나님 보다 내가 앞서는가?’하는 긴장감으로 매번 점검 했다. 슈퍼비전을 진행하던 중, 교수님의 말씀에 완전 놀라고 그 이후로 일상과 사역 모두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정말 바쁘게 몰아치는 기말 기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응원을 경험함으로 ‘존재적 안정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성지도의 유익인 것 같다.

 

<영성지도자들을 위한 수퍼비전>. 목차

 

2. 강점

강점과 약점은 항상 양면이 있다. 경계를 잘 지키면 약점도 강점이 되고 경계를 지나치면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학기 영성지도를 하면서 알게 된 강점은 피지도자의 상황이 빨리 인지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빨리 인지되었다고 먼저 발언하면 안 되고 피지도자가 직접 하나님께 듣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내가 피지도자에 대해 발견한 것을 나누었을 때 아직 피지도자가 받아들일 만한 때가 아닌 경우들이 있다. 내가 먼저 발언해 버리므로 피지도자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나만 민망해 진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그 이후로는 최대한 발언을 줄일 수 있었고 더 기도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로 피지도자를 더 집중해서 도우라고 주시는 은혜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거하는 훈련이 내게 진행되고 있었고, 피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 훈련이 동시에 진행된다. 함께 지어져(엡 2:22) 가고 있었다.

약점 또한 빨리 인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깊이 머물지 않고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화요일에 영성지도(강의시간 실습)를 받고 수요일에 상담을 받았는데 인생의 큰 그림들이 휙휙 그려졌다. 그런데 깊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결국은 상담이 끝날 무렵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상담선생님도 나도 무언가 이상했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은 내가 빨리 인지하는데 깊이, 오래 머물러 숙성시키는 시간이 없어서 결과가 정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3. 도전과제

인생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겠지만 현재 시간표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 변혁이 있는 중요한 시간표인 듯이 느껴진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현재 나는 그에 못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리 저리 튈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본질 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과 나이가 10-20년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하나님 앞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인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진짜 바램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을 알고 가고자 하는 나의 “못 된 안정감”이 나의 진로를 방해 하는 걸까? 또 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하나를 알아가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지만 이 과정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면 어려워도 가야할 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간에 신학교에 두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야 횃불에서 시간은 내가 인큐베이팅 되는 시간 이란 생각이 든다.

 

‘바쁨’과 연관된 것이 내 안에 ‘화(anger)’와 연관되어 있음을 살짝 인지 했다. ‘화’와 관련된 부분은 30대 초반부터 연구하고 싶던 주제였다. 그것이 내 안에서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 ‘화’라는 주제도 나에겐 10년이 넘은 주제인데 이 주제에 답을 찾게 되고 더 가볍고 자유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년도 새롭게 대두되는 이슈는 성속의 구분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적인 반응이 내 몸에 나타나면, 스스로 ‘잘못된 반응’이라고 결정하고 반응했던 것처럼 내 안에 스스로 잘잘못과 옳고 그름과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과 멘토링을 하는데, 대화중에 매달 반복되는 말씀이 ‘너무 따지지 마세요’였다. 5월이 되어서야 나의 이번년도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4)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과 멘토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앞에서 질풍 노도의 시기처럼 진로를 두고 묻고 있다는 부분이 이것이다.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계속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두 학기가 지날 무렵부터 주변의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은 내가 교회를 하면 다니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홀딱 해서 교회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참 예배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리던 이머징 예배가 현실화 되어 있는 것도 보면서, 예배 공동체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지금도 방학이면 예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3년, 학비 때문에 고군 분투 하는 시간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과연 하나님이 내게 사역하라고 하시는게 맞는가?’란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나올 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사역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지 않는 그림엔 손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현재 강의 하고 있는 학교의 강의도 자연스럽게 먼저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되었고 일부러 더 이상의 강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중의 재정난을 통해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업을 하라고 하시는 건가?‘ 물어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담임 목사님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도 그러실까?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은 무엇일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내게 남겨진 커다란 도전 과제이다. 재정 때문에 진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맘몬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고, Th.M 과정도 듣고, 예배 공동체도 시작한다면 난 다시 ’바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시는 걸까... “예수님과 함께 쉬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

 

 

★ 아래의 내용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후반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존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2/2, 169-337까지)

19일에 다 읽을 수 있었는데 26일까지 책을 잡고 있는 상황이 되었다. 26일에 생각지 못한 실수로 큰 오해를 받고 아침부터 마음이 크게 흔들리는 일이 있었다. 어려운 마음으로 저녁 일정을 취소하고 자숙하는 시간을 보내면서 책을 끝까지 마무리 했다. 

 

요한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최대형 역. 은성 . 2013년.

상황에 메여서 나를 바라보고 소망이 없는 시간을 보내는 나에게 ‘소망은 낙심하지 않으며.. 소망이 부족한 곳에는 사랑도 부족’하다는 책의 마지막 부분과 기도 동역자가 보내준 본회퍼의 ‘나는 누구인가’ 시를 함께 보게 되었다최근 리플렉션을 제출할  마다 ‘아..너무 교만한  같다 이렇게 교만모드이지?’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쓰나미 같이 몰려오는 어려움 덕에 초점을 다시 아버지께 맞추게 되는거 같다. “오 하나님당신은 아나이다내가 당신 것인 줄을…”

 

책을 빌려보는 관계로(이 당시에 빌려보다가 결국 구매함^^) 컴퓨터로 내용을 정리하며 읽었는데 p168까지는 정리한 내용이3페이지 분량이었는데, 뒷부분은 읽는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정리한 분량이 5페이지가 되었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목차 (2/2)

순결에서는 대부분 육적인 것을 죄로 정의 하고 풀어갔다. 수도사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번역상의 문제였을까…?)

마음이 하나님께 순결한 것, 또 서로에게 신실한 마음도 순결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음란에 대해서는 억제하고 무시하는 것이 교정 수단이라고 제시하는데 최근 몇 년 청년들의 감정을 살펴보고 연구하면서 감정을 억제하고 무시하는 것보다 인정하고, 밝은 곳에 꺼내놓고 다른 것으로 승화 시키는것이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가 달라서 일까…?

 

무감각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면 "어미"와 싸울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사람마다 다른 "어미"이기에 본인이 무감각해졌다는 것만 발견해도 큰 수확이 있을 것 같다. 요즘 관계 안에 무감각에 대해서 민감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대부분 본인들이 원인을 알면서 안풀고 있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장 바꿔놓고 보니 나도 답을 알면서 안 풀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성령님이 알려주시지만 이렇게 무시하고 사니… 이래서 인간 멘토가 필요한거 같다.(수도사와 수도원장 같은 관계? 하지만 현대에 그런 신실한 믿음의 관계가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 이 글을 쓴지 5년 후에 블로그에 올리는 중이다. "가능하다"는 결론을 맺고 그 일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

 

순종에게서 자라나는 통회하는 마음이 아닌 것이 교만이다라는 정의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것 같다. 학기 초에 내게 있던 많은 은혜들 때문에 어쩌면 내 마음에 교만이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페이퍼를 제출할 때 마다 ‘아? 이상하다?’하고 뭔가 알면서도 안 풀고 넘어갔고 그 무감각이 오늘의 쓰나미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 어렵지만 이렇게 나로 무감각에서 일어나고 교만에서 나오려는 의지가 생기게 해주신 것에 감사한다.(하지만 마음은 어렵다.^^)

 

겸손과 분별에서 많은 페이지를 할애 했는데 분별은 거의 정념, 죄죽이기의 내용이어서 그럴지 궁금했다.

 

29번째 사다리에 무정념이 정리되어 있어서 도전이 되었다. 분별을 읽는 즈음, 담임목사님과 멘토링할 (금식 같은) 스스로 불편함에 처하는 것을 선택하라는 주제가 있었는데 중복되는 내용이었어서 책을 읽을 내게 하시는 말씀 같았다. 내가 즐거이 선택한 자체가 고난이라고 주장했는데,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세상에 한발을 들여놓고 있었고, 오늘의 일이 그 열매였다. 진작에 불편함에 처하라는 조언을 들었다면 실수가 없지 않았을까 싶다. 하나님이 여러 내게 경고해 주셨는데 내가 반응하지 않은거 같다는 생각이 글쓰는 순간 생각났다. 인간이란 이리 느릴까

 

극도의 피로가 육체의 정욕을 일으킬수 있다는 경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서 영적인 것을 포기하는게 흙과 금을 바꾸는 것,

 

기도시간과 나의 일(조급한 마음)을 맞바꾸려는 순간 생각이 나서 하나님과의 화목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책읽는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 나를 깨워 기도시간에 머물게 하기를 기대한다.

 

2016년 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도전 된 말씀이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시18:29)”였는데 무정념 부분에서 종말이 되기전에 성에 도착하지 못 한 사람(성을 넘지 못한 사람은) 사막에서 야영해야 하기 때문에 담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가 되었다. 놀라웠다. 몇 년간 뛰어 넘을 생각만 했지 왜 뛰어 넘어야 하는지는 정리가 안됬었는데 유레카!!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디히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감방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성(城)에서 나오는 성주(城主)처럼

의연하고 유쾌하며 당당했다고.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나를 지키는 간수들과 이야기할 때의 모습은

마치 사령관이나 되는 것처럼

자유롭고 유쾌하며 확고했다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나는 불행한 나날을 보낼 때에도

마치 승리에 익숙한 사람처럼

침착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당당했다고.

 

정말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인가?

아니면 나는 내 스스로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 불과한가?

마치 새 장엔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갈망하며 병든 나

마치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

빛깔, 꽃, 새들의 노래에 굶주리고

친절한 말과 인간적 친밀함에 목마르고

변덕스런 폭정과 아주 사소한 비방에 분노하여 치를 떨고

근심에 눌리고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엄청난 사건들을 기다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고

지치고 허탈한 채 기도하고 생각하며 행동하고

연약하여 이런 것들 모두를 포기할 준비가 된 나

나는 누구인가?

 

 

이런 사람인가 아니면 저런 사람인가?

그렇다면 오늘은 이런 사람이고 내일은 저런 사람인가?

아니면 내 안에 그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애처롭게 우는 비열한 심약자?

이미 승리한 전투를 앞두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치는 패배한 군대,

그것과 나의 내면세계가 다를 바는 무엇이랴?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이런 고독한 질문들로 나를 조롱(嘲弄) 한다

오 하나님, 내가 누구이든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당신이 아시듯,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글, Dietrich Bonhoeffer / 번역,  김희수 목사 (월드비전선교센터장, 서울북노회)

(퍼옴 : http://www.prok.org/gnu/bbs/board.php?bo_table=comm_essay1&wr_id=10017)

★ 아래의 내용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168페이지 까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존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2, ~168까지)

역자도 서론에서 말했지만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천로역정 생각났다. 천로역정보다 실제 수도사들의 예화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는 책 내용이, 너무 억압적이고 현대에 안맞는 것 같다는 비평적인 읽기로 읽었는데 읽다보니 그 깊이에 동화되고 바쁜 일상에서 이책을 보게 된 것이 후회스럽고, 빌려 보는 것이 후회스러워 꼭 소장 하고 자주 봐야 할 책이라 생각되었다.

요한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최대형 역. 은성 . 2013년.

네번째 계단인 순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순종을 ‘죽는 날 까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아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저자가 말하는 자아와 내가 말하는 자아가 다를수 있겠으나 내가 요즘 받는 훈련은 영의 깊은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베네딕트규칙서에서도 수도원장의 부담과 그 역할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순종 부분에 나온 수도원장들의 행동은 내가 그라면 저렇게 했을까.. 싶은 행동들도 많았다. 원장들의 어떠함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수도사들에게 촛점이 옮겨졌다. 순종하는 메나스, 아바키루스, 회계형제.. 관계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 사람을 의지하거나 인정받으려하지 않음등의 내용이 바로 책을 읽는 그날 아침 내가 고민하고 행동하려고 했던 것들에 대한 답이되었다. 이상하게 그날 아침 어떤 사람에게 그들이 나에게 인격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드럽게 표현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물었다. 하지만 예화를 읽으면서 나의 내면(기분 나쁨) 집중하기 보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나를 유령인간 취급하던 젊은이와도 맞닥트릴 일이 있었는데 그와 보냈던 6개월 동안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에 집중했던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미움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괴롭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를 위해 기도했었고 그렇게 밖에 행동할수 없었던 그의 깊은 아픔들을 아버지께서 알려주시는거 같아서 마음이 안쓰러웠었다. 정서적으로 어려울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리고 살다가, 어려움이 없는 지금에는나의 반응할뻔했다. 이책을 통해 막아주신거 같아 많이 감사했다. 책에서 말한것 처럼 온전한 순종을 통해 분별의 은사를 얻기를 기대해본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목차 (1/2)

비방, 수다, 거짓말은 어쩌면 쭈욱 통하는 이야기 같다. 읽으면서 요즘미투상황이 생각났다. 타인의 깊은 아픔을 안아주기보다 웃자고 하는 농담을 통해 상처들을 주는 상황을 만든 결과인듯 싶다.

 

애통에서는 개인 감정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애통을 말한다고 표현했다. 그로인해 세상의 즐거움과 육체의 소욕을 버릴수 있다는 표현이 어쩌면 내가 지금 받고있는 훈련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이책을 읽으면서 강의시간에 제기되었던 "일상에서 수도원처럼 살수 있는가"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지금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수도원에서의 삶과 같이 살기를, 계속 말씀하고 계신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예수전도단에서 90년대 조이도우슨을 통해 도전되었던 ‘반대정신’도 이미 이 책에서 제안되었던 내용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양을 달리 했을뿐이지 시대가 변해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거 같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나랑 같이 살자!!’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3, 4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3, 4주차)

 

짧은 내용이었지만 며칠에 걸쳐서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다. 책의 의도를 안 이상 조금이라도 맞춰서 읽어보고 싶었다. 나의 상황이 현재, 책이 만들어진 용도대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슷 하게라도 해보고 싶어서, 시간을 띄엄띄엄 두고 가이드 하는 대로 때때로 묵상하며, 기도하며 읽어 보고 싶었다. 역시 바쁜 일상에서 시도한다는게 쉽지 않았고, 제한 된 시간내에 무언가를 완성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묶어서 조금씩 읽어도 이냐시오가 말하는 깊이 까지는 갈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주간에는 둘째 주간과 동일하게 하면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오관을 이용하고 이성을 사용해서 마음으로 대화 하라고 한다. 어쩌면 이어지는 넷째 주간에서 계속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둘째 주간에 이은 내용을 셋째 주간에 하면서 방식을은 넷째 주간을 따르면서 넷째 주간의 묵상을 준비하는 것 같다.

 

셋째 주간의 마지막에는 유혹과 식욕에 반대정신으로 대하도록 지침 하는데 넷째주의 부칙에서는 고행 대신 절제와 중용에 집중하라고 지침 한다. 이 깊은 의미는 무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궁금한 부분이 많다. 영성의 대가의 깊은 깊이와 나의 얕은 깊이가 보여지는 책이다.

 

그동안에 기술한 것 처럼 사건을 기술하다가 156번에서는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었는지 예수님의 옷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짐작이 갑자기 나와서 놀랐다.

계속 ‘의식성찰’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247번에서 오관을 고찰하며 기도하라는 말에 도전이 되었다. 과연 가능할까… 의식하나만 가지고 돌아봐도 너무 쉽지 않은데 오관까지 사용하려면 정말 조용히 혼자 해야 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부럽고 정말 한번 해보고 싶다.

 

313부터는 영혼의 움직임을 지각하고 알기 위한 것들을 설명한다. 영적 위안과 황폐의 정의, 증상, 주의점, 반대정신(325), 영의 식별(둘째 주에 하면 좋다는 것을 넷째주의 뒷편에서 소개한다. 그만큼 위험할수도 있는 부분이서 일까..)에서 행정(자선 분배 직무)내용까지 설명이되어 있다.

 

싸우는 교회 부분에서는’교회가 검다고 하면 나도 검다고 믿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365)는 부분에서 한참 멈춰서 정리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얼까.

 

이 부분을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지난주 "초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역시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킬레스 건을 아신다. 다행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신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조금씩 나의 믿음을 더 키우시지 않으실까 란 생각을 해봤다.) 상황을 직면하고 알아 가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고, 조금씩 정리되는 순간에 234번의 마지막 부분에서 멈추게 되었다.

 

‘가지소서, 주님, 그리고 받으소서.

모든 저의 자유와 저의 기억과

저의 지성과 모든 저의 의지를,

제가 가진 것과 제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서 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당신께 이를 돌려 드립니다.

모두 당신 것이오니,

모두 당신 뜻대로 하소서.

제 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넉넉합니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그 부분에 줄을 그으며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에서, 나로 하여금 다른 부분의 초연을 고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말로는 뱉었지만 매순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계속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본을 보이고 계시는 목사님이 생각났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되고 나니 목사님의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믿음의 싸움을 하시느라 참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동일한 상황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되니 자주 목사님이 생각나고 기도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선한 믿음의 싸움을 도와주세요 아버지..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1, 2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1, 2주차)

책에 일정 틀이 없이 번호대로 진행하고 있어서 큰 틀을 이해하면서 읽는데 에너지를 쏟게되었다. 역자들이 번역하면서 틀을 좀 만들면 글에 손상이 많이 됬을까…. 영적인 부분에 깊이 집중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부분에 신경쓰는 나를 보면서 나의 최근 영적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놀란 것은 성경처럼 이 책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주석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에서 성경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 것일까…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의 자세한 설명을 보면서 현재 상담이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정들을 기도하는 단계 단계에서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로 이 세상의 학문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방법(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이 책에서는 깊은 기도, 성찰)안에서 다 해결된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아닐까

 

일반성찰[43] 감사, 은총, 나의 모든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성찰, 용서구하고 나를 고치기를 결심하는 단계를 제시한다. 이 일반성찰 안에 3번째 단계에 매일 하는 시간별로 나누어서 하는 특별성찰[24]이 3번째 단계로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매일을 보낸다면 정말 매일이 바쁠 것 같지만, 현대의 일상에서도 아주 어려운 업무 일 때를 제외하고는 약간의 훈련만 한다면 가능한 성찰이지 않을까 싶다. 완벽하게 특별성찰에 집중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성찰은 오늘부터 나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죄에 대해 집중해서 묵상하는 둘째 수련[55]의 과정이 오랜 시간 나를 관찰하면서 해야 하는 것인데 나(의 죄)를 그렇게 끊임없이 관찰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본다. 그나마 죄를 기억하기 위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다행이다. (집, 관계, 일)

 

첫주는 죄에 대한 묵상으로 지성과 의지를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정말 필요한데 개신교에서 약한 부분인 것 같다. 자기 직면과 죄의 묵상, 존재 인식(나는 누구인가!!)등으로 창조목적에 맞게 사는 것에 집중한다.

 

둘째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묵상하는데, 나같은 경우도 하나님의 이해가 (오래 믿은 것에 비해 갑자기) 깊어진 것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였다.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할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말이 내게 주어진 사역의 방식과 진행 여부에 대한 나의 고민에 답하는 글이어서 위로가 되었다.

 

매일의 일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대단히 부럽다. 온종일 기도하고 성찰하다가 휴식시간 사이에 복음서, 성인들의 생애을 읽으라니.. 온 하루를 이렇게 쓸수 있다면.. 아버지의 마음과 많이 가까워 지지 않을까 싶어서 대단히 부러웠다. 나에겐 이런 믿음이 없는것 같다. 나의 삶을 책임지신다고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문제있는 타인도 하나님이 주인이시라고 하면서 그 뒤치닥 거리를 내가 하려고 하니 귀한 시간이 자꾸 쪼개진다.

 

둘째주 첫날의 탄생 묵상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의 어려움이 느껴졌다. 하나님이이 주신 아기라고 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상황에서 두 사람은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 나 또한 부르심의 과정에서 여러 ‘성벽’을 뛰어 넘는 중에,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믿음이 커가는 것 같다. 마리아와 요셉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그 깊은 뜻을, 하늘 나라에 가서나 하나님의 진심을 알게됬을까? 신약석의 과목에서 ‘예수님의 생애’부분을 읽으면서 신 으로서의 예수님이 어린시절을 어떤 정서로 지냈을까…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묵상 주석에서 이냐시오는 예수님의 생애를 고난으로 정리한다. 책에서는 이부분을 주목하라고 주석이 달려있는데 왜일까..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걸까?

 

같은 주제로 여러 번 반복하게 하고 특히 이후에 오관까지 적용해서 관상을 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더 깊이 묵상하고 알아가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깊이 적용해 보지 못하고 읽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이런 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하다.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6 궁방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6궁방 (2/2)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 2011년.

CHAPTER 6. 하나님을 섬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갈망함

. 황홀경 후 증상 :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깊은 갈망, 한 영혼이라도 주를 알게 하려는 갈망

. 주의점 : 건강 해치지 않도록 조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 눈물, 혹은 환희(찬양)가 가득참(마음의 평안을 확인), 황홀경에 잠겨 영적 위로를 기다리느라고 묵상을 게을리하지 말라(덕이 진보하지 못하고, 기도의 진전이 없다.) 지나친 확신하지 말고 영적 조언자에게 말하라. (무엇보다 주님께 말하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영혼이 거룩하므로 하나님이 모든 문제 심판하심)

 

CHAPTER 7. 죄 때문에 느끼는 슬픔

. 은혜 받을수록 죄로 인한 슬픔이 커진다.(죽음 갈망할 정도)

. 임재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함(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 신부(아가서)처럼 주님 기다리고 찾기)

.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삶과 수난을 묵상하기

. 내 의지는 그분을 섬기기로 결단, 그리스도 닮기(시련 때 보여주신 본보기 따르기)

 

CHAPTER 8. 지적환시로 소통하기, 환시가 진짜 일 때의 영향

. 지적환시 : 예수가 자기 옆에 계시는 것 인식 (설명 불가, 묘사 불가) ‘나다. 두려워 말라’

. 지켜보면서 옆에 계심, 말씀 하셔야 할 경우에만 말씀, 항상 함께 하므로 항상 겸손함, 임재에 대한 의식이 없을 때 노력하지만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오심

. 은혜가 진짜인 표지 : 주님께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것만 바라고, 영광과 존귀 위해 삶을 내려놓기에 사탄이 마음대로 할수 없음

 

CHAPTER 9. 환시로 영혼과 소통하는 방법 묘사, 소통의 다양한 효과

. 상상의 환시(마음속의 환시) : 사탄이 사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올 때는 유익(임재처럼)

. 주의점 : . 가짜 환시(오래본다면 상상력) / . 착시(지성이나 주를 향한 헌신에 변화 없음)

. 진짜 환시의 결과 (바울) : 평화와 고요(하나님의 지혜로 인함),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음, 겸손과 덕 진보(행함의 열매) : 영적 조언자의 조언을 들어야 함

 

CHAPTER 10. 하나님이 진리를 나타내시는 이유

. 지적환시 : 악마가 흉내 못냄, 감각이 정지되고 하나님안에서 보는 고상한 신비 발견, 죄를 더 깊이 인식,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더 용서 가능, 환시는 순간이지만 눈에 띄는 은혜 지속, 나에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아 인식 가운데 살아감.

. 왜 이런 환시 주실까?

 : 신부이며, 그분의 뜻대로 하겠다고 결심을 굳혔기 때문. 모든 면에서 신부를 돕고,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길 원하심

 : 완전한 평화 속에 쉴 수 있다.

 

CHAPTER 11. 은혜 입은 사람은 하나님을 더 갈망한다.

. 은혜 받을 때 마다 신랑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고통이 늘어난다.

. 사랑과 갈망과 하나님에 대한 속성에 대한 지식이 늘고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쓰라린 고통을 겼는다.

. 사랑의 화살 : 영혼 깊은 곳, 중심에 상처 입히고 주님을 향한 갈망의 고통, 열망으로 인해 이성 능력 저하, 이 고통은 영혼을 맑고 순결하게 해서 일곱번째 성채에 들어 갈 수 있게 해준다.

. 두가지 위험 (1) 세상을 경멸하고 죄짓지 않으려고 노심초사 (2) 지나친 희열로 넋이 빠져나간것 같다.

. 마10:22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수 있느냐?” 용기 필요

. 고전 14: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6 궁방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6궁방 (1/2)

 

CHAPTER 1 : 고통 견디는 방법 & 7궁방 들어가기 위한 준비 방법

. 신랑(주님)과 단둘이 있기를 바라는 신부, 신랑을 더 갈망함(기다림의 시간)

. 7궁방 들어가기 위한 용기 : 내외적 고통 수반 (에너지 생성 : 하나님과의 합일의 시간)

. 일정 시련 발생 :

(1)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 : 비난, 칭찬(더 고통) -> 칭찬, 비난에 무관심(성숙)

(2) 박해 : 시련으로 더 강건하게 하고 더 큰 유익, 박해하는 사람들이 더 좋은 친구

(3) 육체 고통 : 극심한 통증, 정신과 육체 영향, (인내와 은혜 먼저 주심)

(4) 내적 고통 : 다른 고통은 이에 비하면 사소함 -> 하나님외에는 방법 없음(더 기쁨, 연약함을 앎)

- 과거 죄에 대한 염려, 두려움과 영적 메마름, 악마가 불러 일으킨 가책과 두려움, 당황하는 영혼, 무력함, 마음의 뒤숭숭

- 고통을 참는 법 : 밖으로 드러나는 사랑의 수고 & 하나님의 자비 신뢰 (히11:6)

(5) 악마가 주는 시련 : 외적 고통 (덜 고통스러움)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 2011년.

 

CHAPTER 2 : 영혼에게 활력주시는 방법, 영혼에게 미치는 영향

. 사랑의 상처 : 생각지 못했을 때 갑자기 생기는 즐거운 쇼크

. 고통 : 신랑에게 열정적인 말을 쏟아내지만 신랑과 그 즐거움을 누리지 못한다는 고통이 달콤함, 고요의 기도에서 느리던 마음의 즐거움보다 더 큰 즐거움, 영혼의 기쁨과 평화로 감싼 강렬한 고통

. 신랑의 부름 : 7궁성에 있는 것 같이 알려지지 않은 언어로 말하지만 신부는 알아듣는다

. 소망으로 압도당함 (예) 용광로의 작은불꽃의 고통과 즐거움 (하나님으로부터 온것에 대한 확신)

. 확신의 이유 : 선물을 받은 것에 대한 즐거움과 감사만 있음.

 

CHAPTER 3.

*서문* 베네딕트 짐머만 (1921년)

1) 신체적 환시 : 신체적 대상을 볼 때 일어남, 일상과 다름 / 테레사 경험안함

cf ) 환영 (ex) 토비아스의 아자리아스(대천사), 예수그리스도의 몸

 

2) 상상적 환시  / 테레사 : 피하라고 조언

. 시청각으로 보고 듣지 못하고 감각이 실물을 인지 (감각들에 의한 상상력에 기반)

. 속임수와 연결될 수 있음 (근거있어야 믿을 수 있음)

. 이사야, 계시록의 요한, 스데반, 베드로 (토마스 아퀴나스)

. 병적 상태와 무관, 외부에 의해 발생

cf ) 상상력 : 감각과 지성의 중간, 감각을 통해 인상 얻고, 지성으로 전달하므로 상상적 환시는 위험

 

3) 지적 환시

. 상상에 의해 얻어지는 감각 없이, 상상에서 지성으로 전달되는 인상이 지성에 직접적 각인 (초자연적)

. 신체적 환시나 상상적 환시보다 덜 위험 . 바울의 환시 (고후 12:1-3)

 

CHAPTER 3.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방식 묘사 (속임수 분별의 표지)

. 기도중에 들리는 말 : 근원(하나님, 악마, 상상력) 구별 필요, 거짓 교리 거부(성경과 불일치 거부)

.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말의 표지

(1) 말씀 :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마 24:6),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평안할지어다.

(2) 찬양하고 싶은 마음과 고요와 경건하고 평온한 회상

(3)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음

(4) 악마는 의심을 불러 일으킴 : 불안과 의심을 불러일으키는 사탄의 계략, 사탄의 목적은 믿음을 약하게

(5) 보상 받은 확신

(6) 말씀의 진리 안에서 누리는 기쁨

(7)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심 : 많은 어려움과 지연 끝에 예언이 이루어질 때 기쁨

 

. 조심 할 것 :

(1) 상상력에서 나온 말들 : 내적 기쁨 없음

(2) 상상 기도 응답 : 말씀을 받는데 익숙한 사람은 속아 넘어가지 않음

(3) 영적 조언자들의 조언 필요 : 제3자나 학식 있고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제에게 조언 구하고 따르도록

 

. 내면의 말들 (내적 환시) 분별 표지 : 하나님이 직접, 영혼의 가장 깊숙한 곳에서 발생, 겸손, 많이 들을수록 자신을 낮추게 되고 더 예민하게 자기 죄를 기억하게 된다.

(1) 아주 또렷하게 들리므로 모든 것을 기억함 (2) 기대하지 않고 있을 때

(3) 성령의 메시지는 열매 맺고, 상상력은 열매 맺지 못함 (4) 의미를 한 낱말로 압축 가능

(5) 말로 암시하는 것보다 더 많이 이해 할 수 있음

 

CHAPTER 4. 기도 중 무아지경 혹은 환희, 황홀경에 들게 하심

- 황홀경과 이 상태에서 일어난 것들에 관해서 설명

. 황홀경의 상태

(1) 사랑의 불꽃에 의해 생긴 황홀경 : 말씀에 부딪혀서 영혼 정결 (지성 살아있음, 발작&기절과 다름)

(2) 능력과 감각이 몰입된 상태 : 하나님 외에는 이 궁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말할 수 없음(6, 7궁방 모두)

 

. 황홀경에 일어나는 것들 (-> 황홀경을 잘 설명하기는 불가능)

(1) 주님의 비밀을 드러내심 : 기억에 또렷이 남음 (지적 환시는 묘사되지 않음)

(2) 말로 표현 못함(야곱의 사닥다리, 모세와 떨기나무) : 사건 안에 계시가 드러나므로 위대한 일을 할 용기생김 (ex)박물관의 많은 물품 자세히 기억못함 (아무것도 안 본것과 같음)

(3) 영혼의 기쁨 : 하나님과 아주 가까이 연합 (제 정신이 들 때 지성은 회상 가능하므로 지적 환시)

(4) 신비를 느낌 : 신비가 없으면 황홀경 아님,

(5) 미래 복이 늘어나는 일들은 없음, 오직 주님과 나뿐, 주님이 보여주시는 것만, 이 궁방만 열려있음

(6) 하나님과 직접 사귀는 것보다 가치 있고 중요한 것이 없음

(7) 능력을 잃어버림 : 모든 문이 닫힘, 말의 능력 거두심, 숨쉬지 않는 것 같을 때도 있지만 단기간

(8) 영적 만취 상태 : 상태는 짧지만 상태가 끝나도 의지는 황홀경에 취해 있고 정신이 몽땅 빠져 나와서 며칠동안 하나님 사랑외엔 아무것도 못함, 지상의 것들에 관해서는 잠든 상태처럼 보임

(9) 더 큰 고통을 갈망하고 사랑함 : 주님의 도움이 있으면 고통은 견딜 수 있다.

(10) “사람들은 나를 찬양하거나 너를 모욕할 것이다. 어느 경우든 넌 이길 것이다”

 

CHAPTER 5. 영의 비행 묘사

: 자기 통제의 상실, 은혜 후의 의무들, 의무 이행으로 겸손과 하나님의 위로를 배움

- 영혼이 재빠른 움직임을 느끼고, 날쌔게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처음엔 두렵지만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영혼은 강한 용기, 믿음, 신뢰, 완전한 포기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것을 행하시도록 한다.

(1) 자기통제의 상실 : 저항하지 말고 하나님 손에 자신을 맡겨야 한다.

(2) 두개 물통의 상징 :하나님께서 물통에 세찬 물살을 흘리심, 몸을 통제하는 외부 능력이 소용없음.

(3) 많이 받으면 많이 줘야 한다.

(4) 자신이 초라함, 죄를 항상 기억하게 됨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비에 자신을 맡김, 자비와 긍휼 애원

(5) 생명이 있지만 영혼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음, 지성은 기억하지 못하지만 정신은 한순간에 알게 됨

(6) (상상의 환시) 육의 눈으로 볼 때 보다 영의 눈으로 볼 때 훨씬 맑게 보임, 천사의 무리, 성인들 만나면 알아봄 - 놀라운 직관에 의해 드러남

(7) 화살이 날아가는 것처럼 영혼의 내부에서 비행이 일어남, 영혼 밖은 고요, 의식이 돌아왔을 때 그 사람은 변해 있고 은혜를 입어 본인이 본 것에 비하면 모두 쓰레기로 보임

(8) 영혼이 요새화 됨 : 정탐군이 과일을 가져온 것 처럼, 영혼이 들어갈 땅에서 난 것을 보여주고 싶어하심, 용기 주셔서 시련 잘 통과할 수 있게 하심, 선물의 가치

(9) 세 가지 놀라운 은혜 : 하나님의 위대하심, 자아인식과 겸손, 하나님을 섬기는데 쓰지 않는 것을 경멸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4, 5 궁방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4, 5 궁방

3궁방 까지 읽을 때는 책을 빌려서 읽었었다. 빌려서 읽는 경우는 기록을 하지 못해서 내내 답답했다. 급히 요단 출판사에서 출판된 버전(제목이 “내면의 성”으로 번역)으로 구매해서 4, 5궁방은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nbsp; 2011년.

 

3궁방까지에서의 읽기와 4궁방부터의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은 내가 책을 바꾼 탓이었을까? 4궁방은 거룩한 선물중의 하나인 영적 위로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달콤함과 기쁨, 그리고 그동안 방해 꺼리가 되었던 벌레들이 (여기에 들어 오지도 못하지만) 도리어 도움이 되는 곳이다. 건강상태나 산만함등을 통하여 약간의 방해나 괴롭힘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속되는 자아인식을 통해서, 모든 상황들을 통해 배우기를 원하신다. 5궁방에서는 하나님과의 ‘합일’(“영혼의 성”에서는 ‘연합’)을 이야기 한다. 거룩한 합일은 우리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다고 표현한다. 한가지 있다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 시킴이다. 이것 없이는 합일에 이를 수 없다.

 

20대 초반에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며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보지 못하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20대 후반에 예전단의 책들(특히 조이도우슨)을 읽으며 그동안 경험한 것들에 대해 정리가 되면서 하나님의 독특한 교수 방식에 놀랐었다. 30대, 연변과기대에서의 10년 동안 많은 경험들이 정리되지 않아서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1년만에 횃불트리니티에 입학해서 지난 10년동안 했던 질문들에 대한 많은 답과 그동안의 경험이 학문적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이번 테레사의 4궁방 5궁방은 ‘어 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궁방에서도 5궁방에서도 나는 인지 못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테레사가 기억나게 해주었다. (글 잘 쓰시는 분인 것 같다.) 어떻게 그걸 이렇게 표현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명확히 어떤 문장이 아니라 쭈욱 읽어가면서 ‘어 그건가?’했는데 책을 읽다 자면서 ‘아.. 그게 4궁방인거구나”하고 느꼈다. 나도 정확히 표현 못하겠지만 4, 5궁방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 이 두 궁방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내가 준비됬다고 했으면 좋겠다고 되는것도 아니었다.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지만..) 

 

작은 나의 경험으로,  4궁방은 기도하면서 경험했던 것 같은데 5궁방은 불평이고 근심이고 짜증 가득한 일상에서 훅! 하고 평안과 감사가 밀려들어와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상태일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며 누린 기억도 있다. 밀랍이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있다가 인이 찍혀지는 것에 조용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책에 표현되어 있었는데, 나는 불평 불만 상태라 생각한 그 상황에(‘나 요즘 아부지테 삐딱 모드야’라고 말 할 정도로^^) 말도 안되게 감사와 기쁨이 몰려와서 완전 놀라고 당황했다.

 

테레사의 육체적 고통과 고난 후의 영적 경험이어서 그런건지, 이번 4, 5궁방을 읽으면서는 곳곳에서 제임스 말로니의 ‘금촛대 중보자들’이 생각났다. 그 책의 주인공도 테레사 처럼 육체적인 고통이후에 영적인 친밀함이 깊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스도 고난 후의 영광, 육신을 가진 이 땅의 자녀들 에게도 이 규칙이 적용되는 걸까?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것 같은 아픔과 고통 그리고 ‘너 하나님하고 친하다매? 왜 그렇게 아퍼?’하는 사람들의 공격속에서도(ex.십자가의 예수님)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 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인 걸까?

 

[더 생각해보기] 이단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신흥종교 학습 중,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 몰몬교, 이슬람, 하나님의교회) 테레사는 5궁방에서도 유능한 영적 조언자를 찾으라 했고[1], 본인도 계속 말씀에 근거 하려고 했다. 나 또한 나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가 없어 계속 머리속에 질문이 맴돈다.(그래서 매달 담임목사님께 멘토링을 받는다.) 이단의 시작과의 차이점은 명확히 무엇일까? (고민 해 볼수록, 유익이 되었습니다. ^^)



[1] 이강학 교수님 첫 영성수업에서 한달에 한번 멘토 받으라는 것을 통해서 아직까지도 매달 멘토링을 받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연길에 있을 동안, 여러 영적인 경험이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혼자 점검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빨리고 있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감사한 멘토를 만나게 해주셨다. 가장 확실한 담임 목사님.

로버트 뱅크스 박사 초청 세미나

■ 행사명: 로버트 뱅크사 박사 초청 세미나
■ 내용 ”바쁘고 힘든 세상에서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기“ (성서의 원리에 비추어본 현대인의 일의 습관)  
■ 일시 : 2023. 8. 30(수) 오후 6시 30분 ~ 9시
■ 장소 : 한양대학교 제2공학관 201호(오프라인/온라인)
■ 등록 : 구글 신청서 작성(https://bit.ly/로버트뱅크스박사초청세미나) 및 2만원 온라인 입금
(계좌 : IMT KOREA 301-0334-2617-21 농협 )
 

성서학자이면서 기독교인의 삶을 연구하고 가르치시는 로버트 뱅크스 박사님의 세미나에 초대합니다.

 

■ 로버트 뱅크스 박사 약력

케임브릿지 대학교 신약학 박사

(전)풀러신학교 교수

알파크루시스 칼리지 명예교수

찰스스터트 대학교 연구교수

 

[저서]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1세기 그리스도인의 하루 이야기
바울의 공동체 사상, 하나님이 일하러 가실 때
교회, 또 하나의 가족
일상생활 속의 그리스도인
시간의 횡포
신앙의 눈으로 본 리더쉽
그리스도인을 위한 무신론 사용설명서

그외 번역되지 않은 15권의 저서 및 공저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1,2,3 궁방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1,2,3 궁방

저자인 테레사 수녀(1515-1582, 스페인)는 서문의 교황 바오로 6세의 자료에서 언급하는 것처럼 1970년에 학자(박사)의 칭호를 받기도 했지만 ‘스페인의 이단 심문 시기’(1478-1834)에 활동함으로써 많은 오해와 어려움을 경험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nbsp; 2011년.

20세에 입회했으나 건강의 문제로 죽을 고비와 전신 불수의 시간을 보내고 완쾌되어 27세에 본격적으로 영성생활을 시작하고, 여러 영적 체험을 하고 ‘완덕의 길’, ‘영혼의 성’에서 그 경험들을 정리했다. 테레사가 쓴 책들을 거의 가르멜 수녀들에게 읽히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영혼의 성’도 수녀들을 대상으로 쓰여졌다.

 

‘영혼의 성’이란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우리 영혼을 말하는 것으로 아주 많은 방들이 밖에서부터 안쪽으로 위로 올라가면서 있는 수정으로 이루어진 성을 말한다. ‘영혼의 성’은 7개의 궁방들(각각은 복수의 방들로 표현된다) 을 지나 성의 중심을 향해 가는 과정을 그린다. 성의 중심을 향해 한다는 것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아는 자아의 깊은 곳으로 이해된다.

 

제 일 궁방은 2개의 장으로 이루어져있다. 첫장은 ‘기도’가 이성을 들어가는 문이라고 알려준다. 2장에서는 죄를 지을 때 영혼의 상태를 알게된다면, 어떤 대가를 치러서라도 피하게 된다는 강조를 하고, 마음안에서 되어 가는 일들, 자기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제 이 궁방에서는 사탄의 방해가 크다는 이야기로 ‘인내’하며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꼭 기도하라고 강조한다. 제 삼 궁방의 1장과 2장에서는 겸손을 강조하고 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두 번째 성채 (이궁방)

이 책을 읽기 전 주에 기독교 상담학 과목의 수업에서 교수님께서는 자기의 내면을 돌아보라고 강조를 하셨고, 몇 나이든 학생들이 반발을 했다. 내면에 집중하며, 나를 돌아보면서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과 나의 추함 등을 발견하고 있는 나로서는 그들의 반발에 마음이 상했다. 생각해보니 내가 아는 만큼만 받아들이고 그것만 옳다고 하려는 모습이 나에게도 있었다. 연길에서, 한국으로 돌아와서 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은 ‘여디디야야, 내마음은 이건데…’ 하며 나를 이해 시켜 주시는 하나님을 경험하며 나의 틀을 하나씩 벗고 있는 과정이다. 여전히 틀 속에 있는 분들의 강한 반응이 내 안에 틀과 반응하여 마음이 많이 상한것 같다. 어쨌거나 그 사건 후, 아버지께 계속 물어보고 있던 차에 ‘영혼의 성’을 읽기 시작했다.

 

일 궁방의 2장에서 ‘자아인식’을 익히라고 강조하는 내용을 보면서 마음이 많이 안정되었다. ‘아버지 내가 틀린게 아니죠? 그 분들에게도 알려주세요’ 그런데 지난 목요일 채플메시지에서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셨다. 나를 조금씩 알아가는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도 알아 가면 좋겠다. 어쨌거나 이 책과 목요일 메시지로 상한 마음이 위로 받고 답을 얻었다.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무얼 써야 할지 몰라 기도했다’ 초반의 이런 말들로 시작해서 약간 당황스러웠는데, 때맞춰 보내주신 교수님의 정리 자료와 검색을 통해 이 책이 테레사의 영적 경험들을 정리하기 위해 쓰여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고는 이해가 됬다. 번역이나 사용하는 단어의 차이로 약간씩 읽는 속도가 늦춰지고 몇 문장을 반복해서 읽어야 하는 경우들이 있었다.

 

겸손을 강조하는 삼 궁방을 읽던 날은 본디오빌라도 재판 본문이 큐티 였다. 내내 마음에 본디오 빌라도와 내가 같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삼 궁방에서 그렇게 타협(?)하는 이야기들이 계속 나왔다. 저자는 강하게 자신의 마음을 확 드러냈다.

 

‘이런식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만족하는 따위는 절대 우리에게 있어서는 안되리라 믿습니다.’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에서 본 스데반의 순교와 신화 비교

 

목 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본론
   2.1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2.2 스데반의 순교와 신화 비교
 
Ⅲ. 나가는 말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서 페스트를 퇴치하는 아폴로니우스의 투석 이야기와 비교하여, 사도행전 6-7장에 나타나는 스데반의 순교를 본 논문의 배경으로 하고자 한다. 유대의 기득권자들은 자신들의 세력에 위협을 받기 시작하면서(6:7) 스데반이 자신들의 안위에 영향을 끼칠 뿐 아니라 유대 역사의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7:51-53), 그것에 마음이 찔려 분노하여(7:54) 스데반을 희생시킨다. 여기서 스데반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3의 길인 자신을 ‘모든 것을 알고 죽는 희생’ (Intelligent victim)에 내어 드림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를 뿐 아니라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주제어 : 르네 지라르, 모방욕망, 희생양, 신화, 예수 그리스도, 스데반

 

. 들어가는 말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이론으로 스데반의 순교 상황을 보고자한다. 르네 지라르는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에서 필로스트라토스의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를 소개하며 아폴로니우스가 죄 없는 거지를 에페소스 시민들이 투석함으로 페스트를 퇴치하는 사례를 보인다. 성경 안에서 동일한 투석 상황인 스데반의 죽음을 통해 신화와는 다르게 복음이 모방 욕망을 극복한 것을 제시하고자 한다.

 

사도행전 6:7절에서 보면, 유대의 기득권자들은 예수의 제자들의 반열에 자기들의 세력인 제사장들 까지 합류하면서, 유대 사회에서 자신들의 안정권의 기반인, 성전과 회당 체제에 영향이 있을 것을 예측 할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스데반이 성령으로 말함을 자신들이 감당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6:10) 그가 유대 역사의 내러티브를 통해 자신들에 대한 진실을 밝힘으로, 그것에 마음이 찔려 분노하여(7:54) 공회라는 이름으로 집단 폭력 한다. 여기서 스데반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제3의 길인 자신을 모든 것을 알고 죽는 희생 (Intelligent victim)에 내어 드림으로 예수님의 길을 따르며, 예수님처럼 그들을 위해 중보하며 죽음을 맞이한다.

 

스데반의 사건은 르네 지라르 모방 욕망의 삼각형이론에 근거해 볼 때 유대 근본주의자들주체가 되고, 매개자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대상은 유대사회에서의 기득권과 인기로 분석해 볼 수 있다. 유대 근본 주의자들은 로마치하의 이스라엘 상황에서,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와 사회의 안정이라는 핑계로 그리스도인들을 사회에서 처단하려고 했다. 그리스도인들의 중심에 서 있던 스데반은 유대 근본주의자들에게 희생양으로 적절했다. 스데반은 예수님처럼 모든 상황을 알면서(7:55-56)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며(7:60) 죽음을 맞이한다. 다른 문학에서와 같이 희생양 이후의 폭력의 악순환이나 신화화가 아닌 공동체를 살리는 죽음이 된다. 사도행전은 바로 이 자리에, 이후에 바울이 될 사울이 있었다고 밝힌다.(7:58)

본 논문에서는 먼저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에 대해 알아보고, 스데반의 죽음이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의 관점에서 일어난 일인지 고찰해 본 후, 아폴로니우스의 투석 상황과 비교해 보므로 둘 사이의 차이점으로 신화와 복음의 차이점을 살펴 본다.

 

. 본론

2.1 르네 지라르의 모방 욕망

문학, 심리학, 철학, 사회학, 종교학 뿐 아니라 신학과 인문학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르네 지라르는 1972폭력과 성스러움출판 전까지는 문학 비평에 집중하다가 그 후부터 철학, 신학 등을 연구하였다. 인간 사회의 폭력 문제에 대한 답을 구약과 신약에서 찾게 되면서 그 자신이 회의주의적 무신론자에서 로마 가톨릭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에 의하면 원시 사회에서부터 인류는 폭력과 연결되어 왔다. 인간 심리 깊은 곳의 모방 동기와 그로 인한 모방 갈등을 폭력의 원인으로 본다. 사람들은 특정 대상을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욕망하기에 직접적이며 자발적인 욕망이란 없다. 지라르는 이러한 관계를 욕망의 삼각형으로 표현한다. 욕망하는 자기, 욕망의 대상인 타인, 매개된 욕망이다. 자기(모방자)와 타인(피모방자)의 차이가 현저히 나는 경우 둘 사이는 구별되고 사회 질서는 체계적으로 유지된다. 그러나 모방자가 피모방자를 완전히 모방하여 둘이 동등하게 되면 짝패(double)가 되어 갈등과 투쟁으로 사회의 질서가 깨지면서, 공동체가 위험에 휩싸이게 된다. 짝패들 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사회 질서의 붕괴로, 공동체의 위기 앞에서 공동체를 구하기 위해 원시사회에서는 희생제의를 만들었다. 힘의 균형이 팽팽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투쟁의 상태에서 공동체는 지배 문화와 다르면서, 비난을 피해갈수 없는 무력한 경계선의 사람, 이방인, 힘없는 자를 복수의 대상으로 삼아 일인에 대한 만인의 반대인 희생양(scapegoat)으로 만든다. 이렇게 공동체의 폭력적 욕구가 한 희생자에게 전이되는 과정을 희생 기제(the surrogate victim mechanism)라고 부른다.

 

...이 희생양을 매개로 하여 사탄은 사탄을 물리친다.
사탄은 희생양 매커니즘을 지배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탄은 또한 인류 문화를 지배한다고 말 할 수 있다.
인류 문화의 기원이 바로 이 살해에 있기 때문이다.
카인의 문화뿐 아니라 모든 인류 문화의 기원에는
결국 악마, 달리 말하면 나쁜 모방이 있다.

-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116.-


이러한 희생양 기제 뒤에는 나쁜 모방이 자리하고 있는데 지라르는 그것을 악마라고 표현한다. 이러한 집단 폭력의 희생양을 은폐하기 위해 신화들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이러한 희생양 기제를 폭로하고 희생자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을 지라르는 발견하고, ”복음서는 신화의 죽음이다.“라고 말했다. 고대 모든 종교들과 문화의 기원은 감추어져 있는 모방 폭력에 기반 하지만, 성서는 신화들 처럼 살인자들이 나오지만 신화에서처럼 그들의 범죄가 정당화 되지 않고 그들의 죄를 명백히 밝힌다. 이러한 위대한 문학 작품인 성서가 자신을 기독교로 회심하게 만들었다고 지라르는 고백한다. 지라르의 실존적 신앙 고백으로 인해 인문학계에 데리다와 라깡 같은 철학자들 만큼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라르의 모방이론은 원시 문명부터 자본주의 사회까지 연구범위가 광범위하다. 지라르 이론을 통해 유럽 철학계의 바티모, 아감벤, 지젝등의 철학자들이 기독교와 대화하기 시작했는데, 특히 지젝이나 바티모 등은 지라르를 통해, 기독교와 자신의 철학 사이 대화를 발전시키고 있다. 지라르는 이렇게 인류학이 신학에까지 확대되는 것은 신학자들이 복음서의 인류학 영역을 너무 오랫동안 무시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2 스데반의 순교와 신화 비교

스데반의 순교의 나레이션은 예루살렘에서 제자들이 많아지므로 인한 공동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관리할 일곱 명을 뽑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점점 많아지고 있고(6:1, 7), 더욱이 제사장들 까지도 예수의 도에 복종하고 있다. 더불어 일곱 명 중에 한명인 스데반은 은혜와 권능이 충만하여 기사와 표적을 민간에서 행하고 있다.(6:8) 회당에서 스데반과 논쟁할 경우 스데반이 지혜와 성령으로 말함을 당하지 못하여 이기는 사람이 없기 까지 했다.(6:10) 이러한 배경에서 결국 스데반은 공회라는 이름으로 투석 당한다.(7:60) 스데반은 왜 죽었을까? 스데반의 죽음의 배경이 되는 사도행전 6장을 읽어보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배경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예수님의 경우도 자신들의 안위를 우선적으로 생각했던 유대 지배계급들이 예수님을 시기했고, 스데반의 경우도 인기가 많아지고 있는 예수의 제자들의 영향력을 억제하려는 그들에 의해 대제사장 앞에 끌려와 있다.(7:1) 예수님도 스데반도 공회에 잡히는 과정이 거짓 증거에 근거했다.(6:1-13) 그리고 예수님도 스데반도 죽음 앞에서 도리어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을 위해 중보하고 있다.(7:60)

 

지라르는 예수님의 죽음이 모방 욕망에 의한 희생적 죽음이지만 희생양 기제를 끊기 위한 순전한 희생양이라고 해석한다. 스데반의 경우도 지라르의 모방 욕망의 이론에 따라가 보자. 예수의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늘어나 자신들의 안위와 사회적으로 안정적인 분위기가 위협받을 것을 불안 해 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 계급들이 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서 예수의 제자들이 증가하여 회당에서 자신들이 아닌 그들이 주인공이 되는 것을 용납 할 수 없었다. 유대 사회 안에서 자신들의 안정감과 인기를 위해서 라이벌인 예수의 제자들이 늘어나는 것을 막아야 했다. 그러기 위해 예수를 처리할 때처럼, 거짓말을 해서라도 현재 가장 인기가 있는 스데반을 먼저 처리해야 했다. 지라르의 모방 욕망의 삼각형 구도에 욕망하는 자기는 유대지도자들이었고 욕망의 대상인 피모방자는 예수의 제자들이었으며, 매개된 욕망은 예루살렘에서의 인기와 안정된 기득권이었다. 여기에서 예수의 제자들의 영향력이 점점 커지면서 자신들의 기득권과 인기에 위협을 느낀 유대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안위와 예루살렘 사회의 안정을 위해 회당에서 가장 눈에 띄는 스데반을 희생양으로 선택한다. 스데반은 너희 조상들이 선지자들 중의 누구를 박해하지 아니하였느냐 의인이 오시리라 예고한 자들을 그들이 죽였고 이제 너희는 그 의인을 잡아 준 자요 살인한 자가 되나니”(7:52)라며 지라르가 말하는 역사에서 반복되다가 예수님까지 살인한 유대 지도자들의 희생양 기제를 밝힌다. 십자가의 승리는 폭력의 결과가 아니라 완전한 포기의 결과다.... 이 정도로 예수는 전면적으로 폭력을 포기한 것이다.“ 예수님과 같이 스데반 또한 그들의 죄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들의 죄의 사함을 구하며(7:60) 죽음을 맞이한다. 이렇게 스데반의 죽음을 지라르의 모방 욕망에 근거한 죽음으로 볼 때, 여기서 한 가지 신화와 비교해 볼 사례가 있다.

 

2세기경 유명한 정신 지도자인 아폴로니우스가 에페소스에서 페스트를 퇴치한 과정을 소개한 책인 필로스트라토스의 티아나의 아폴로니우스의 생애가 있다. 에페소스에서 페스트가 창궐하고 막을 방법이 없자 유명한 아폴로니우스에게 도움을 청한다. 아폴로니우스는 에페소스 사람들을 극장으로 데리고 갔다. 거기에 거지 한명이 장님처럼 눈을 껌벅이며 빵 부스러기가 들어있는 주머니를 들고 있었다. 아폴로니우스는 거지를 신의 적이라며 거지에게 돌을 던지라고 했고 에페소스 사람들은 자선을 구하는 애처로운 사람을 이유 없이 죽인다는 것에 분노하며 아폴로니우스에게 무슨 짓을 하는 것 이냐고 반문했다. 아폴로니우스는 거지가 모든 신의 적이니 돌을 던지라고 사람들을 몰아붙였고 몇 사람이 거지에게 돌을 던지자 돌을 맞은 거지가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날카롭게 쳐다 보았다. 그 눈을 보고서야 에페소스 사람들은 거지가 악마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자발적으로 돌을 던져 거지는 돌 무더기에 쌓이고 그 자리에 수호신의 흉상을 세워주게 된다. 사람을 돌로 죽이는 투석형은 고대 그리스의 오래된 종교 관습인 파르마코스(속죄양)’ 희생양 제의이다. 스데반도 거지도 사회의 문제를 해결 하기 위해 투석형을 당했다. 신화에서는 가해자들의 입장에서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해석하고 신상을 세웠지만, 성경에서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스데반이 거짓 증인들에 의해 무고하게 죽었음을 밝힌다.(6:11-13)

철저하게 폭력을 포기한 예수님의 죽음을 통해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천년이 넘게 생존해 있고, 철저하게 하늘에 시선을 두고 있던(7:56) 스데반의 죽음 바로 앞에 기독교의 이방인 전도의 사도가 될 바울이 있었다.

 

. 나가는 말

스데반의 순교 상황을 분석하면서 스데반의 죽음이 르네 지라르가 주창한 모방 욕망에 근거한 사건이었는지 고찰하고, 신화적 모방 욕망과 스데반의 순교를 비교했다. 사건의 정황으로 볼 때 아폴로니우스의 거지도 스데반도 동일하게 모방 욕망의 삼각형 구도 안에서 투석 당했다. 마찬가지로 지라르는 예수의 십자가 죽음도 모방 욕망의 결과로 보고 있으나 가해자 입장에서 기술되는 신화 읽기가 아닌 피해자 입장에서 진실을 밝혀 내므로 모방 욕망을 끊어내는 것으로 신화와 복음의 차이점을 읽어 내고 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수난을 예수 그리스도의 자발적 희생이 아닌, 제의로 읽어낸 서구문화는 기독교를 신화로 만들어 박해자의 대열에 서게 하므로, 기독교 서구문화가 제국주의적으로 흐르게 되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예수님을 철저한 비폭력주의라고 고집하는 경우나, 폭력에 대해 명확한 정의를 내리지 않는 것 등 지라르의 이론에서 몇 가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들도 있지만 그가 분석한 대로 대부분의 문화와 신화들이 모방 욕망에 뿌리를 두고 발생했음을 알 수 있다.

역사는 계속해서 모방 욕망으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짝패가 팽팽해져 무질서가 절정에 달했을 때 사회가 동의하는 모방적 만장일치를 통한 희생양 기제가 작동하기 때문 이다. 예수님을 통해 이것이 밝혀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독교에서도 인지하지 못하고 있을 뿐 아니라, 사회는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것처럼 우리도 폭력을 포기하고 예수님처럼 자발적 희생의 자리에 섬으로 사회에서의 모방 폭력을 드러낼 수 있을까. ‘모방적 만장일치가 일어나는 상황에서 혼자 옳은 것을 말할 수 있을까? 아폴로니우스의 거지처럼 이글거리는 눈을 드는 것이 아닌, 스데반처럼 하늘에 시선을 고정하고 진실을 밝히며 희생을 선택 할 수 있을까...

 

글을 마무리 하면서, 우리 역사 가까이에 있는 김구 선생님을 생각하게 된다. 김구 선생님은 대한민국이 자주 국가로 세워지기를 주장했고 미국에도 소련에도 타협하지 않았다. 누군가 타협하지 않고 옳은 것을 고수하고 싸워야 할 것 같은 상황에 김구 선생님은 미국과 소련의 등을 업고(짝패형성) 국가를 세우려는 지인에게 자신의 죽음을 허락한다. 예수님 같은 자발적 희생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꿈이 아직 안 이루어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렇게도 문화 강국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그의 바램 대로 지금 대한민국은 전 세계에 한류를 일으키고 있다. 아시안 증오범죄 퇴치와 관련하여 백악관에서 바이든과 BTS가 만나는 현시점에 김구 선생님의 희생적 죽음을 생각해 본다. 민족끼리 싸우지 말자고 했던 김구 선생님이 자기민족에게 죽음을 당했으나, 김구 선생님의 문화 선진국의 꿈을 기억하며 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2022, 한국의 젊은이 들이 있다.

 

 

참고문헌

 

[일차자료]

지라르, 르네.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김진식 옮김. 서울: 문학과지성사, 2004.

 

[이차자료]

金九. 白凡逸志. 서울: 敎文社, 1980.

박만. "폭력과 속죄 죽음: 르네 지라르 (Rene Girard) 의 예수의 십자가 죽음 이해에 대한 비판적 고찰." 한국기독교신학논총. 53.1(2007): 111-140.

박종균. “르네 지라르 (René Girard) 의 성서적 종교와 비폭력.” 한국기독교신학논총34.1(2004): 269-296.

이경희. "24 , 지라리안 (Girardian), 성서영성: 모방 폭력의 위기에서 변화를 경험케 하는 내러티브의 힘." 신학과 실천78(2022): 207-232.

정일권. “르네 지라르 (Rene Girard) 의 기독교 변증론.” 조직신학연구. 14(2011): 107-126.

최인식. "르네 지라르의 모방적 욕망론에서 본 폭력과 순교 (殉敎)." 한국조직신학논총. 62(2021): 163-202.

최형근. “르네 지라르의 사상에 대한 선교학적 고찰.” 신학과 사회. 35.4(2021): 95-128.

 

아래의 내용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중

렉시오 디비나 부분을 읽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논문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성경적 영성_렉시오 디비나

 

by 샌드라슈나이더스

 

저자가 논리적으로 잘 정리한 것도 기억에 남지만, 교수님이 강의하시면서 들어주신 예들과 저자가 제시한 예제들이 마음에 남아있다. 설교, 예식, 소그룹, 사회적 참여(회심적 사회정의, 약자와 함께 하기)와 제일 마지막으로 렉시오 디비나를 말한다. 렉시오 디비나의 성경적 기원을 사도행전 간다게의 이야기라고 한다.

 

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nbsp; Interpretation (2002): 139.

 

렉시오 디비나는 집중해서 읽고, 기억에 남겨 심사 숙고하며 깊게 들어가면서 깊은 묵상에서 기도로 이어져서 관상으로 진행된다. 솔직히 정말 다른일 하나도 안하고 그렇게 살고 싶다. 도피일까 싶기도 하다.

 

2주일에 한 번씩 수업하는 ‘개인 영성지도 실습’에서 매주 3개씩의 본문이 주어진다. 개강과 사순절을 맞아 순탄하지 않은 시기를 지나고 있는 나에게 그 말씀들은 너무 귀하다.

 

때로는 통독하고 있는 말씀들과 시너지를 이루어

나에게 이펙트를 주기도 하고,

묵상했던 말씀이 갑자기

병원에서 산책길에서 툭툭 튀어져 나와

나를 평화로 뒤흔든다.

 

렉시오 디비나는 신중하게 읽고 읽으라고 했는데 여러 번 읽을 동안 무언가 뽑아내려는 나의 의지 때문에 아무 일이 안 일어나다가 무의식 가운데 있을 때 말씀들이 살아서 올라올 때 소환되는 기억이 있다. 아무데서나 하늘 아버지와 깊은 대화가 시작된다. 가끔 ‘그 말씀’을 혼자 오해하고 있는 걸까 싶을 때도 있다. 불신일까, 망상일까.. 건강한 공동체 안에서 성도의 교제로 부르심을 느낀다.

 

  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 Interpretation (2002): 133-142.

논문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성경적 영성 (Biblical Spirituality)

 

산드라 슈나이더스 (Sandra M. Schneiders, IHM)

 

. ‘해석’ : 1960년대 이후 관심

. 개신교의 약점 : ‘영성’ (경건주의에서 시작된 칭의와 성화에 관련된 경건)

   → 영성의 중요성 발견 (은혜의 대체물이 아닌, 은혜와의 역동, 전통의 풍성함 재발견)

. 가톨릭의 약점 : ‘성경’ (2차 바티칸 공의회 전까지 성직자 전유)

   → 개신교 성경 공부 그룹과 방법의 도움으로 성경에 관심

성경적 영성에 관심이 커져감

 

Schneiders, Sandra M. "Biblical spirituality."&nbsp; Interpretation (2002): 133-142.

 

. 성경적 영성 (Bible and spirituality < biblical spirituality)

(1) Bible and spirituality : 하나님 말씀으로의 성경과 개인적 신앙을 별도로 구분 하는 듯함.

(2) biblical spirituality : 기독교인의 영성은 성경적이고 성경을 통해 양분을 섭취하므로 따로 떼어 생각할 수 없음. 영성이란??

 

. 기독교 영성 : 기독교 신앙의 생생한 경험

(1) 궁극적 가치를 지향 하는 것 :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

(2) 삶의 통합을 위한 프로젝트와 과정 : 인생전반에 성경의 은혜로 예수님의 삶(신적 삶)과 연합

(3) 믿음의 공동체(교회)안에서 이뤄짐 : 말씀과 성례전, 사명(믿음을 표현하며 나누는 것)

(4) 개인 초월적 믿음 :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의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연합)

기독교 영성은 성경적 :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 두고 안내 받는다.

 

1. 성경적 영성의 세 가지 의미

(1) 성경에 표현된 영성

: 자신의 종교적 경험을 가르쳐주는 하나님과의 관계(경험)의 패턴

 

. 편집비평(20c) : 성경의 저자들이 그냥 받아쓴 것이 아니라 나름의 의도가 있다.

   . 다양한 역사적 상황(국제적 상황, 공동체의 상황 등등)의 영향을 인식

    → 신약성경의 신학에 관한 다양한 이해를 가능 : 편집비평 + 하나님에 대한 다양한 경험

   ∴ 신학 = 영성의 지적 표현 믿음 : 무엇인가의 표현 (다양한 영성)

 

. 성경에 나타나는 다양한 영성 :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실습한 것들

   A. 대화적 영성 : 이스라엘 역사에 참여하고, 인간에게 개입하시는 신명기 전통

   B. 그리스도 중심 영성 (바울)

   C. 관상적 예수 중심 영성 (요한)

   D. 목회자들의 교회적 영성

   E. 계시의 묵시적 영성

   F. 시편의 영성 : 기도, 시 안에 표현된 구약 성경 영성들

     → 다양한 셋팅 안에서 각 시대별 여러 가지 영성의 자원 제공

     (ex)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 회합적vs수도적, 관상적vs예언적, 공공신학적vs신비적...

 

건강한 기독교 영성은 일부 두드러진 특징이 있을지라도 서로 배타적이지 않으며 오버랩 되는 부분이 있다.

 

(2) 성경의 영성들에 영향 받은 기독교인들의 삶의 패턴 (성경적으로 통합된 현대 영성)

. 균일하게 성경적이지 않을 수는 있다. (루터 > 당시 가톨릭)

 

(3) 성경 본문에 대한 개인과 공동체가 참여하므로 변하는 과정 (변화를 추구하는 읽기)

.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지만 역사-비평적 석의와 문학적 분석 필요

  성경학자의 역할 : 성경을 정확히 연구 (과거의 의미, 본문이 의미, 현재에 암시하는 바)

 

. 3개의 세계 : 역사비평(쓰여질 당시), 문학비평(text 자체, 저자, 주인공), 독자반응 비평(현재)

  → 하나님을 알고자 하는 사람들도 본문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

 

. 변화를 추구하는 읽기에 주의 점 : 자기해석(eisegesis), 증명의 무기로 본문을 사용하면 안 됨

본문이 그 자체로 존재하게 하고, 그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게 하는 것이 성경 학문(석의, 비평)의 주된 목적

 

. 회개, 성화 : 독자 자신이 말씀에 영향 받을 때 발생 (성령의 내적 역사에 의해 영향 받음) 기독교 제자도, 예수님의 신비, 환대,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는 세계

 

2. 성경 읽기를 통한 변화 (Transforming reading of scripture)

. 기독교인은 어떻게 성경 본문을 통해 변화가 발생하는 과정에 참여하는가?

(1) 설교(증언) 듣기

. 신약 성경보다 앞섬

. 예수님은 구약 성경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과 사역 해석 신구약의 통일성(설교의 중재)

 

(2) 예전

: 말씀에 참여하므로 성경적 영성을 실천하는 것 신구약의 상호작용 안에서 발생

. 성구 일과표, 세례, 성찬, 절기와 그 행사 (상징, 노래 등 개인&공동체의 변화)

 

(3) 소그룹 나눔

: 믿음을 나누는 것의 특별한 가치 3가지

A. 상황 : 같은 문화, 시간, 위치 성경적 영성은 공동체성 강화(현재, 소망, 하나님의 현존)

B. 변화/자극 : 억압과 불의를 바꾸도록 자극

C. 말씀과 상호작용하는 사회적 역할 : 배타적 해석에 대해 의문 제기하며 변화 (ex) 페미니스트

 

(4) 변화된 행동에 직접 참여 (사회 참여)

. 성경의 조명 아래 훈련 하며, 훈련의 조명 아래 성경 대하기 (본 회퍼)

 

(5) 렉시오 디비나 (거룩한 읽기)

 

[추가]

해석학(철학) : 건설적 비판을 통한 생산적 해석 (인식론 현상학 언어학 해석학)

신학 : 구약, 신약, 조직, 역사, 실천, 선교 신학 등..

  . 역사신학 : 인류 역사에서 성경을 보는 시각으로 연구

  . 조직신학 : 신학의 조직론적 관점에서 연구

     . 영성신학 : 조직신학의 하부로 기독교의 영성을 연구

  . 기독교 영성 : 해석학에서 태동하여 해석학의 도구를 이용하여 ~

     . 현대의 문제들(포스트모던)을 담아낼 수 있는 영성

     . 하나님의 자기 계시가 드러난 곳이 성경이고 하나님 경험이 영성

     . 성서학 기반의 영성 학자, 조직신학, 역사신학, 심리학 등

  . 성서학 : 학문성에 무게를 둠 (해석과 변화까지 커버안됨)    ex. 드라마학

  . 성경적 영성 : 성경 적용해서 변화하는데 방점                      ex. 뮤지컬

 

아래의 내용은 15, 16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5장 공통적인 어려움의 영역들 & 16장 영성지도의 잠재적 유익들

 

15장은 영성지도의 공통적인 어려움들로 나도 어렴풋이 경험하고, 또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려고 더 깨어있으려고 노력했던 부분이었다. 대부분 직접 피지도자들이 하나님과 관계하기를 바라지만 책에서 언급한대로 하나님을 영성지도자로 대치하거나 영성지도자의 여정을 의도하지 않게 복사하고 닮아가는 부분은 있는 것 같다.

 

닮아가는 것은 오랜 기간 동안 만남을 가진 경우에는 어쩔수 없는 부분인 것 같긴하다. 그래서 이전 장들에서 말했듯이 영성지도자와 기간을 정하고 지도를 받는 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책에서는 양자 사이의 적절한 거리를 두라고 했는데 나의 경우는 상호 의존으로 인한 위험 가능성을 줄인 것 같다. 책에서는

 

성령안에서의 자유의 여부로

관계 이상을 점검하고,

性의 문제 부분은 ‘인식’으로

계속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라

 

고 조언하고 있다. 참 좋은 답인 것 같다. 실망이나 분노의 문제를 하나님 앞으로 가져가라고 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면’과정을 회피하거나 두려워하기 때문에 실망이나 분노의 ‘감정’을 인지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크리스찬들이 믿지 않는 자들과의 많은 만남에서 그들이 감정의 문제를 ‘인지’하도록 돕는 이 땅의 영성지도자들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때로는 교회에 오래 다니신 어른들 중에서도 율법의 틀에 매여서 젊은이들과의 소통도 막고, 본인도 하나님과의 관계에 깊이 못들어 가는  경우를 많이 보는 것 같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16장에서는 영성지도의 잠재적 유익들을 말하고 있다. 인식이 증대되고 신뢰가 깊어지고(누구와? ^^ 아래 나옵니다~), 영적으로 발달하는 것이다. 인식 증대로 인해 타인들은 쉽게 못 느끼는 것을 느껴서 민감해지는 불편함도 있지만 15장에서 언급한 것처럼 실망이나 분노 등 감정의 인지는 곧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통로이므로 나의 영에게 결국 유익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긴장이 풀어지므로 감사할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뜻을 인지하고 감사할수 있고 그것이 (상담학에서 자주 언급하는) ‘신뢰’의 문제와 연결이 된다. 자신이나 타인을 신뢰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한 요인이 있다고 상담학에서는 말한다. 영성지도를 통해 나와 타인,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점점 높아지면 결국 나의 안정감이 높아지므로 긴장감이나 쓸데 없는 감정적 소모없이 주어진 것들을 그대로 바라보고 처리 할 수 있다. 이것이 진정한 마태복음 11:26-28절이 아닌가 싶다.

 

‘교육목회‘과목에서 사역자가 건강해야 제대로 사역할수 있다고 했다. 나는 중국에 있다가 갑자기 한국으로 돌아온 2016년도에 나의 갈길을 몰라 잔뜩 긴장해 있었다. 그래서 많이 위축되어 있었고,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가능하면 피하려고 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나의 상태와 상황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것들이 있었다. 3년이 지나고 있는 이 시점에야 나의 상태와 환경과 상관없이 하나님께만 집중하면 말씀하신다는 것을 깨닳아 가고 있다.

 

매일 하나님앞에서

자신의 의식을 성찰하고

내가 지내온 오늘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볼 때,

내 안에, 내 삶에 살아계신 성령님을 보고

거기서 안정감과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것에 현혹되거나 나의 필요나 상황등에 꼬여 있지 않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 같다. 주 1일 유통회사에 가서 IT업무를 돕고 있다. 나의 재정을 채우시기 위해 회사에 보내셨나 하는 내 입장만을 고려한 기대감이 있었다. 그러나 회사에 가고 나서 알았다. 하나님은 그곳의 영혼들 때문에 마음아파하고 계시다는 것을... 내가, 그리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과 친밀함으로 안정감을 찾게 되길.. 풍성히 누리게 되길 바란다.

 

아래의 내용은 15, 16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4장 기독교 훈련들

횃불에 와서 많은 수확이 있었지만 이번학기 영성형성 과목의 책을 빠지지 않고 읽는 것 자체가 나에게 은혜가 되었다. 그동안 나의 영적 여정을 검증 해주고 그리고 앞으로의 여정에 도전을 준다. 항상 감사하다. 책을 읽으므로 그동안 지나왔던 과정들에 대해 ‘확증’을 받고 말로 표현 못하던 부분들에 대해서 글로 보면서 정리가 되었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훈련은 전인을 위한 것이라는 부분에서 많이 위로가 되었다. 사실 신학적으로 근거를 찾지 못한 채, 나의 임상만을 가지고 청년들에게 했던 이야기 들이 이 책에 정리 되어 있어서 감사했다. 항상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아야 한다고 부담 갖는 청년들은 피곤한 몸으로 인해 아버지 앞에 있는 것을 잘 유지 하지 못한다. 대게 기도하다가 잠들기도 하는데 그런 것들에 많이 죄책감을 느낀다고 나눈다. 그래서 어떤 친구에게는 집에서

 

가장 편한 장소와 자세로

그렇게 앉아서 아버지께 말을 하라

 

고 지도해 준적도 있었는데 책에도 딱 그 부분이 나왔다. 책 읽기 전날 만난 A라는 청년도 살이 쪄서 힘들어서 퇴근하고 운동하는데 운동하는 혼자 있는 시간에 가장 많은 기도를 하게 된다고 했다. 가장 집중하는 기도.. 나 또한 물속에서 홀로 있는 수영하는 시간이나 운동 할 때 아버지께 집중이 푸욱 될 때가 있어서 가장 기도하기, 집중하기 좋은 시간이었다.

 

또한 감정이 상하거나 힘들 때면 그것을 가지고 아버지께 자주 머물렀고 집중했었다. 그래서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나 자신을 직면 하는 경험들을 했었는데 ‘의지’ 부분에서도 그런 설명이 있었다. 상관도 없는 것들 혹은 아주 옛날 것이 떠오르는 것들을 통해서도 아버지께서 내게 하시는 말씀을 들은 경험들이 생각났다. 상관없다고 생각되는 것들이 떠오를 때 당황하고 짜증내기도 했었는데 그 과정을 통해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들이 아버지를 신뢰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그래서 "자발적인 훈련"은 정말 유익이 되는 것 같다.

 

21세 때, 그렇게도 갈망하던 교회에서의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었는데 그때 청년부 목사님이 정시기도를 제안하셨다. 그때 하던 정시기도를 아직도 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올 때 까지는 30분 이상 아버지 앞에 머물렀는데 한국에 들어와서는 많이 자유하며 그 시간을 누리고 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매일 말씀을 3장씩 꼭 읽었는데 신학교에 와서는 말씀 보다는 다른 책들을 읽느라 성경을 가까이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마음이 어렵다.

 

책을 읽기 전날도 몇 년간 나를 피하고 만나지 않던 과기대 졸업생 A와 만났다. A의 영적 상태가 바닥을 치고 진로가 흔들거릴 때 만났었다. 모든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었어서 다른 이야기는 안하고 우선 좋은 공동체에 소속해 있기만을 부탁했다. 그리고 A는 온누리 서빙고 중국어 예배에 갔다. 그곳에는 우리학교, 우리학과 졸업생들이 많다. 그 졸업생들은 나를 만나고 있었어서 그 친구들을 통해서 꾸준히 A가 양육을 잘 받고 공동체에 붙어 있을 수 있도록 부탁 했었다. 이번에 A는 양육도 받고 여러 가지 아픈 과정들을 통해 자신의 비전을 조금씩 찾아간 것 같았다.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욕심을 갖고 그것으로 인해 하나님 안에서 분별 작업을 하고 있었다. 정말 많은 영적 진보이다. 또한 A가 어려울 때 티 안나게 A를 돕던 선배들이 이제는 어려운 상황이 되어 있다. 이제 A가 그들 옆에서 티 안나게 사랑을 표현한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건강한 영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A도 만남 속에서 자기가 이제 형들을 기도로 도와야 할 때임을 인지했다. 책을 읽으면서 전날 A와의 만남이 계속 생각났다. 임상과 이론과 실습을 병행케 완벽한 학습을 준비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한다!!

 

 

아래의 내용은 12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12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2장 기도

지난주 떼제 기도회였는데 어떻게 이번주 읽기가 ‘기도’일까... 하나님의 섭리? 책에서 말한 대로 기도는 태도가 되고 고스란히 행동이 된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게 되는 것 같다.

 

정시기도를 시작했던 20살 무렵부터 내가 할 이야기가 끝나면 하나님께 ‘제가 무얼 기도할까요’ 항상 물어봤었다. 때로는 그 물음 이후로의 기도가 더 길고 깊다. 그래서 그 질문이 참 좋다. 나랑 상관없는 상황에 대한 깊은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고 계시고 그러기 위해 지금 나와 함께 계시다는 것을, 그리고 "그 상황"을 다스리고 계시고, 내가 잘 알지 못하는 "그 사람"을 사랑하고 계심을 확실히 알 수 있다.

 

나의 유익과 이해관계는 전혀 없는

하나님의 이해관계 속에

내가 함께 있다.

 

이런 황홀한 기도의 방법이 이번 12장에 있었다. "기도의 종류와 기도의 전환" 부분에서 요즘 나의 ‘기도 상태’를 점검 할 수 있었다. 기도 시간에 오래 앉아있지 못해서 나의 상태를 봤을 때 불안했었다. 그런데 책에서 그런 기간이 있다고 써 있어서 놀랐다. 나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이 열리는 것일까.. 정말 횃불 입학이후 영성과목은 내게 많은 답을 준다. 감사하다.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20대부터 주변의 영적 친구, 선후배들은 내가 방언을 하지 못하는 것에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대언이나 예언을 통해 하나님께 여쭤볼 때 마다 내가 방언을 한다고 하나님이 대답하셨다. 나는 답답했다. 이십년이 지난 이제서야 나는 임상으로 조금씩 나의 묵상 기도가 나의 방언인 것을 알아가고 있다. 어렴풋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이 시점에 바로 12장에서 방언의 종류가 음성, 묵상, 관상에 존재한다고 정확히 적혀있다.

 

개인의 개성과 기호가

하나님을 체험하는 인식에 영향을 준다

 

고 했는데 어쩌면 묵상 기도를 하는 나의 기호에 따라 방언도 그렇게 주신 것 같다. 나를 보호하시고 나의 성향을 인정해주시고 한걸음씩 인도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다.

 

책에서 관상기도가 하나님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안에서 쉼을 갖는 것이라고 했는데 바로 지난 목요일 떼제에서 그 경험을 했다. 연변에 있을 때부터 떼제에 다녀오신 분이 나에게 몇 개월 떼제에 다녀오면 좋겠다고, 나랑 딱 맞을 것 같다고 하셨었는데.. 그 떼제를 횃불에서 처음 만났다.

 

“찾아오시는 하나님” 나는 주 3일 신학교에 오고, 주 2일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주 1일 회사에 풀타임으로 근무를 한다. 그리고 대부분의 식사시간은 조선족 청년들과 만난다. 주 1일 가는 회사는 도와드리기로 하고 가고 있다. 여직원이 7-8명 있다. 20-30대로 이루어진 그 여직원들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가.. 계속 여쭤보며 한 두달 회사의 업무들을 익혔다. 내가 맡은 부분은 업무의 전산화 이다. 방학 때 처음 2일 동안 도와주러 갔다가 노가다를 해서 눈도 몸도 많이 상했다. 이런 노가다는 20대나 할 일이지 싶기는 했는데 노가다를 하는 내내 이거 프로그램으로 하면 2-3시간에 끝낼텐데 왜 수작업을 할까 계속 고민하면서 16시간을 일했다. 회사에 처음 갔으니 내가 주도적으로 제안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 떼제 기도회때 묵상 기도 시간에 갑자기 회사가 내 안에서 올라오고 하나님께서 그 회사의 주요 멤버들을 너무 안타까워하신다는 마음에 꺼이꺼이 울음이 터졌다. 숨을 참지 못할 정도의 눈물이었다. 온몸이 흔들리는 눈물이었다. 조용한 시간인지라 참았는데 그 부어진 마음을 주체 할 수가 없었다. 회사를 위해 미친 듯이 일하는 그 두 사람. 하나님이 너무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졌다. 그 이전에 한번도 그들에 대해 하나님께 물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버지의 초점은 그분들 이었다.

 

금요일 저녁 교회의 심야 기도회. 같은 기도의 자리이고, 동일하신 하나님인데 왜 여기서는 그 하나님을 못 만날까... 의문을 남긴다. 매일 매순간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기다린다.

 

아래의 내용은 11장을 읽는 동안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11장 내용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11장 성경

교수님의 모의영성 지도가 진행된 며칠 후에야 나를 바라보는 시간을 갖었다. 그 시간을 기록한 내용을 보면서 내가 평소에 사람들과 하는 대화 방식을 다시 한번 깨닳았다. 피지도자가 영성지도 시작 전에 본인의 상태가 안 좋다고 했다. 그런데 영성 지도 시간에 오래도록 나눈 이야기는 자신이 한 사역에 대한 이야기 였다. 그 상황에서 내가 지도자였다면 그렇게 사역의 열매가 보여지는 시기인데 왜 상태가 안 좋다고 했냐고 직격탄(나는 그렇게 생각안하지만 청자는 그렇게 느낄 듯..)을 날렸을 것 같다.

결국 지도자인 교수님이 나서지 않았음에도 피지도자안에 가장 큰 덩어리인 아버지와의 관계 껀이 튀어나왔다. 자연스럽게. 이것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것이리라...

 

제네트 A. 바크. 거룩한 초대 영성지도. 최승기 역. 은성

 

말하는 가운데, 표현하는 가운데, 회중 앞에서 꺼내는 가운데, 치유와 답을 주시길 계속 기도했다. 멋있다. 아버지 하시는 일은!! 이번주도 압지께서 나를 여러번 돌아보게 하시는 은혜(고로 어려움과 아픔이^^)를 주셨다. 교육목회 시간에 게임을 했는데 옛 자아가 불쑥 올라와서 자리를 크게 잡았다. 항상 압지 앞에 깨어 있겠다고 하면서 이렇게 자주 나를 바라보면 정말 창피하다. 그런데 그게 나였다. 그래서 한주 내내 들으면서 울었던 곡이 제이어스의 ‘내 모습 이대로’이다. 이글을 쓰기 전에도 한탕 하고...

 

책을 늦은 시간에 읽었는데 너무도 와 닿아서 집중해서 읽었다. 성경의 언어에서 하나님의 이름, 우리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역할로서의 이름들이 참 많다. 선생님이면서 동시에 학생이고 그러면서 선교사이고 직장인이다. 오늘 아침에는 어제 학교에서 늦에와서 아침 일찍 출근하면서 하나님께서 직장인들의 힘듦과 고난을 이해하라고 주 1회의 직장을 경험하게 하셨다는 생각을 했다. 도리어 선교단체에 있을때는 내 공부도 하고 설렁설럼 시간을 보냈는데 일반인들의 직장은 점심시간 한시간 빼고(사실 이때도 나는 거의 회의를 하긴한다...) 8시간 내내 초 집중모드이다. 심지어 오늘은 야근까지 했다. 하지만 모든 이런 역할의 이름들에 앞서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이름은 사랑스런 딸(여디디야 ^^)로 불리고 싶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딸로 모든 곳에서 자리매김하고 싶다.

 

성경의 가르치심 안에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말씀에 항상 중요한 고비마다 말씀으로 2중, 3중으로 확인시켜 주신 하나님이 생각 났다. 더불어 연결되어 성경의 많은 이야기 들은 지금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드러낸다. 저자가 말한 것처럼 읽은 모든 성경이 마음에 박히는 게 아니니깐...

 

또한 최고로 하나님과 친밀하셨던 예수님이 최고의 영성지도자이심을 책을 통해 상기했다. 모든 상황에서 “Focus on GOD”.

 

예수님처럼 두려움의 한 복판에서도 내가 하나님께 향할수 있길.. 그리고 두려움의 한 복판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시선을 집중하고 순종할수 있도록 도울수 있길 바란다. 신학을 하고 한국에서 청년부 사역을 하고 있는 언니가 오늘 너무 힘든 일이 있었다. 업무 중 언니의 글을 보고나서, 언니의 안타까운 마음이 느껴졌다. 그리고 언니의 그 반복되는 어려운 상황에서 분명히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는 것 같았다. 역시나 회사에서는 무언지 정확히 모르고 ‘압지 뜻있는 것 같다’고만 했는데 집에 돌아오니 수면위로 올라오는 은혜들이 있었다. 열일하고 저녁 늦게 만난 만남도, 또 늦은 시간 언니를 위한 하나님의 위로도 내게는 정말 오늘 하루를 감사로 살아가게 하는 부르심의 은혜이다. 나도 그렇고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도 그렇고 모든 상황에서 하나님과 더욱 깊어질수 있길 바란다.

 

 

이강학 교수가 인도하는 

횃불트리니티 <기독교 영성 아카데미> 

2023년 3학기(9-10월, 6주, 온라인) 프로그램 안내

 

횃불트리니티 <기독교 영성 아카데미>

[영성지도자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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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형성 과정] 혹은 이에 준하는 과정을 수료한 분들이 다른 기독교인의 영적 성숙을 돕기 원하는 리더들을 대상으로 합니다.

 

영성지도 사역을 준비하기 원하는 분들 대상 (9월 4일 월요일 개강)

(1) 강의 : 영적 분별 (등록마감 9월 4일)

. 시간 : 월요일 오전 10시 -12시 (총 6회)

. 장소 : zoom (온라인 수업)

. 수강료 : 15만원 (횃불 동문 및 재학생, WEC, WLF 12만원)

 

(2) 소그룹 실습 : 그룹 영성지도 (등록마감 8월 28일)

. 시간 : 월요일 오후 1시 -3시 (총 6회)

. 장소 : zoom (온라인 수업)

. 수강료 : 15만원 (횃불 동문 및 재학생, WEC, WLF 12만원)

 

[영성형성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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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 성장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 영성 형성과 영성 훈련을 이해하고 경험하기 원하는 분들 대상 (9월 6일 수요일 개강)

(1) 강의 : 기독교 영성사 (등록마감 9월 6일)

. 시간 : 수요일 오전 10시 -12시 (총 6회)

. 장소 : zoom (온라인 수업)

. 수강료 : 15만원 (횃불 동문 및 재학생, WEC, WLF 12만원)

 

(2) 소그룹 실습 : 복음서 묵상 (등록마감 8월 30일)

. 시간 : 수요일 오후 1시 -3시 (총 6회)

. 장소 : zoom (온라인 수업)

. 수강료 : 15만원 (횃불 동문 및 재학생, WEC, WLF 12만원)

 

 

* 강사 및 소그룹 지도자 : 이강학 교수 & 프레즌스 영성지도자

* 문의 : (평생교육원) 02-572-1614

* 홈페이지 : https://edu.ttgu.ac.kr/course/course_list.jsp

멈추어야 보이는 것

다시 교회들이 제 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코로나가 50100명만 넘어도 온 나라가 난리 였는데 지금은 수천, 수 만명이 발생하는데 교회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있다. 우리에게 왜 그런 격리의 상황들이 있었는지 아무도 돌아보지 않고 다시 달릴 준비를 한다. 다시 교회들이 문을 여는 이때, 나는 부활절을 기준으로 예배와 공동체에 대해 다시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이경희. 멈춤. 동연.

 

마음의 태도.

우리가 물리적으로 정신적으로 어디에 있던지 하나님 앞에 갈망하는 그 마음의 태도가 우리에게 중요함을 멈춤을 통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다윗이 궤를 옮겨 오려고 했던 것도(그래서 웃사의 죽음에 하나님께 감히 분을 내었던 것도..), 모방 욕망으로 자신이 원하지도 않는데 추구하는 것도, 교회에 지체들을 미워하면서도 교회봉사에 열심인 것도 모두 하나님 앞에서 나를 직면하여 보는 광야의 시간 없이 눈가리고 아웅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멈출 때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있는데 멈춰 있을 때는 달리지 못해서 불안해 하고, 다시 달릴 수 있을 때는 생각 없이 뛴다. 깊은 호흡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러 모든 것을 멈출 때 욕망이 아닌 성령께서 나를 주관하시는데.... 성령께 내어드릴 시간이 없다.

 

성공해야 하고

잘해야 하고

실수하면 안 되고,

제시간에 끝내지 않으면 안 된다.

 

바쁘고 급할수록 하나님께

마음을 온전히 내어드려

상황의 주인 되신 분께,

그리고

이 상황을 허락하신 분께

마음과 시선을 고정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

 

최대한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고 이겨내야 하는게 우리이다. 그래서 그리스도인과 비 그리스도인이 다를 바가 없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하면 사는 사람을 발이 허공에 떠 있는 사람이라고 매도한다. 다수가 옳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위해 전 재산을 다 팔아 밭을 사는 것처럼 온전히 하나님을 만나는 예배의 경험이 있어야 자신의 욕망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해진다. 모교회 담임목사님이 40일 금식을 하셨다. 금식 전에 금식을 계획하신 이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마음이 너무 조급해서 금식을 준비하셨다고 했다. 이제 코로나로 인한 모임 제한도 풀린 이 시점에 담임 목사님은 더욱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기대하며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 이전처럼 어렵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광야에서 사선의 치열한 시간을 보낸 결과이다. 40일의 금식을 통한 경험으로, 일상에서도 생명의 매순간을 이끄시는 하나님을 볼 수밖에 없게 된 것 같다. 긴 금식의 결과 매순간, 일상에서의 예배(‘라트레이아의 예배’, 23)가 회복되어 코로나가 풀렸다고 달려나가는 다른 교회들처럼 조급한 마음으로 달리지 않고 세대를 거슬러 하나님 앞에서 인내하며 기다릴 용기와 믿음이 생겼다. 멈출 때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의식성찰

또한 멈추어야 내 갈망의 기저를 볼 수 있다. 333의 의식성찰 시간은 무언가 이루기 위함이아니라 내 마음을 잘 살펴 보고 하나님께 마음을 토로하는 시간이다. 혼인 잔치집 마리아가 예수님께 그저 상황을 말씀드리듯이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아버지께 그저 말씀드리고 아버지 손에 올려드리는 시간이다. 창조주이신 아버지 손에 들려 드렸을 때에 그 의미와 역할을 알게 되는 것 같다.

 

 

책의 한마디 한마디가 와 닿았고, 예화와 말씀 풀이 하나하나가 주옥같았다. 두 번째 읽었는데도 또 와 닿았다. 르네지라르의 이론과 다윗의 삼하 11-12장의 내용은 이미 수업을 통해 들었어서 더 풍성했다. 슈필라움(자기 틀)에서 스피리추얼 라움(영적자리), 새날을 준비하기 위한 새로운 날인 어둔 밤으로, 길도 물도 없이 하나님 앞에 단독자로 서는 광야의 자리로 일상의 모든 순간에도 수시로 돌아가는 깊은 호흡의 매일을 삶으로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가고 싶다.

 

20장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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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아름다움의 신학과 영성의 근원

   1) 플라톤

   2) 아리스토텔레스

2. 초대 기독교의 미학 : 유대교, 성상파괴 논쟁

3. 중세시대 : 세레너스, 그레고리의 미학 정의, 어거스틴, -디오니시오스

4. 근세시대

   1) 칸트와 헤겔

   2)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의 신학적 미학

 

. 아름다움과 신적인 것 사이 관계

. 아름다움 : 하나님의 다른 이름 신을 이야기 함, 인류의 영적 본성을 이야기 함

. 아름다운 것 : 신적 아름다움에 대한 인간의 경험 → ① 하나님을 경험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

∴ ② 인간 능력에 영적인 기초가 있음 미학의 영적 차원 : +

 

1. 아름다움의 신학과 영성의 근원

. 그리스어 아름다움 : 칼로스(아름다움, 어원:부르다), 토 칼론(아름다운 것, 의미 : 부름 받은 것)

아름다움 경험 : 초대와 응답 사이의 연합 활동과 관련 있음 감지

. 아름다운 것의 중심 : 종교적 기초, 아름다움의 존재에 내재적인 초월자 인지

1) 플라톤 (아름다움의 경험 : Greater Hippias, Symposium) 에서 발견할 수 있다.

. 아름다움의 본질 종교적으로 해석, 인간의 작품을 가치 절하(모조품)
. 두 아름다움 간의 차이점, 내재적 관계를 통한 경험, 초월적 실재에 대한 감각

(1) 영원한 아름다움 : 초월적 실재, 영적 지성, Idea, 순수 형상, 영적 시각(태양)

(2) 감각적 아름다움 : 아름다움의 경험, 시각, 영원한 형상의 그림자, 모방, 유한, 감각, 동굴(그림자)

아름답다는 것의 정도 : 영원한 아름다움에 참여하거나 연명하는 정도에 달려있음

2) 아리스토텔레스 (시학(Poetics))

. 현실을 파악하는 지성의 우수성, 형상(form)을 경험의 본질 자체로 인정(형상, 물질의 연관성)

cf) 플라톤과의 차이점 :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형상 Form :경험을 초월하는 영역 form : 경험의 본질
정의 영적 지성, 순수 형상 목적에 따라 물질에 어떤 모양을 주는 것
역할 이데아에서 온 방문자(?),
모방과 참여로 경험에 진입
적극적 창조자(?),
창조와 움직이는자로 경험에 진입

. 공통점 : 형상의 경험 안에서 아름다움 드러냄, 인간의 작품은 모조품

. 미학 : “미술은 자연을 모방한다

. 인간이 만든 형상은 화가가 마음에 그리는 목적에 따라 형성 (자연과 유사)

. 현실세계의 온전성과 완전성

   (1) 형상의 일치성과 통합성

   (2) 시작, 중간, 결말

   (3) 이에 대한 관여는 종교적 활동(카타르시스)

. (플라톤, 국가론) 카타르시스 : 나쁜 것 제거하고 좋은 것 남기는 것

. 부르는자와 부름 받은 자 간의 영적 연합에 대한 종교적 경험 (아름다움&아름다운 것)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2. 초대 기독교의 미학

. 성아폴리나리스 예배당 모자이크에서 하나님의 현존에 깊이 거하고 싶은 욕구로 수도사가 된 로알무드의 예 동방교회 성화상 감상의 예 (p519)

. 유대교뿌리 : 이미지에 대한 혐오

. 기독교 교회 미술 : 3-4C 아름다운 미술로 변형

. 4c 전 기독교 미술 존재 안하다가

. 312년 전까지는 사적, 가정교회, 카타콤에 제한, 콘스탄틴 회심 후 제왕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로 표현 제국 미술의 장엄함 도용 (성인들에 둘러싸여 있는 그리스도 vs 황제가 궁정에 둘러싸여 있는 것)

. 그리스도의 형상 상상은 그리스도의 이미지 채택보다 실제적인 더 심오한 것으로 제안 -> 8-9c 성상파괴 위기의 신학적 폭풍의 중심.

. 성 요한과 성 테오도르의 성화상 파괴 논쟁 : 교회가 인격적이고 신적인 존재와의 관계에서 아름다운 것을 설명하는 도전 (vs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 파괴주의자 : 원형에 대한 이미지의 적절성 (플라톤 : 영원한 것은 감각적 형상에 의해 표현될수 없다.)

. 숭배자들 : 신적 존재를 묘사하기 위한 이미지와 원형의 적절한 관계 의문, 유대교적 신념(형상 만들지 말라는 계명)

. 유대교 : 하나님의 형상 새기는 것은 금지, 하나님 경험을 표현하는 것은 가능 시각적 미술 (출애굽기 언약궤 만드는 세밀한 지시사항)

. 이미지 반대 명령의 이유

   (1) 표상의 불가능이 아니라 야훼의 존재 확증 : 신 존재에 대한 감성 형성을 도움

     . 적극적인 인격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경험한 눈에 보이는 이미지 (초기 기독교 미술)

     ) 나사렛 예수의 경험 통해 이스라엘의 인격적 하나님 경험

   . 아브라함의 하나님 존재의 경험 : 언약궤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존재에 대한 경험 : 초기 기독교

   (2) 비인격적 이미지로 인격적() 존재 대체의 문제점

     . 성화상을 이미지로 보는 경우 : 이미지를 이상화 or 개념화 하는 것

     . 성화를 숭배하는 경우 : 성화는 존재(매우 특별한 유형의 존재 : 하나님, 임마누엘, 성육신)에 대한 것,

     ∴ 기독교 성화상의 폭 넓은 의미 : 기독교 미술이 단순한 표상 이상임을 보여줌

 

3. 중세시대

. 중세시대 미술 : 참여(경험)보다 영적 세계로 향하는 길 강조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다리의 역할)

. 특징

(1) 성화상 vs 스테인드 글라스 : 동방(비잔틴) 미학 vs 서방(로마 가톨릭)

(2) 초기 기독교 미학 vs 헬라 문화(이미지 선호) : 중세 기독교 미학 vs 로마 문화 (수사학)

(3) 초대 기독교 교회에 대한 헬라문화의 도전 : 성화상 파괴주의 (임마누엘의 가능성 부인)

(4) 중세 기독교 교회에 대한 로마문화의 도전 : 성화상 파괴주의 (우리와 함께 하는 천국 가능성 부인)

*천국 : 중세교회에게 물질적으로 볼수 있는 것을 통하여 영적으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에 도전

(5) 중세시대 종교미술의 형상 : 내세가 현세 교차하는 천국의 문’ - 중세 신자들에게 영적 비전(고상하며 저급한 감각)의 역할 (성화상 파괴주의 도전 기반)

(6) 마르세이유의 주교 세레너스 : 이미지가 성경과 전통의 격을 낮추었다. (서방 기독교 미학 원리)

   . 그림은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책이며, 특히 이교도들에게 책과 같은 위치이다. (그레고리 동의)

   기초미학원리 : 미술은

     영적 진리를 가르침

     영적진리의 원리를 유지 (일상의 영적 차원 상기)

     ③ 말이 정신에 관여하는 것보다 미술이 더 효과적으로 관여함

     ∴ 서방기독교(그레고리) 미학 원리 (성화상 파괴주의 관점 기반 ?? 523) : 미술이 성경의 위엄을 취하기 시작

   . 신성한 미술의 본질 : ‘신성한 대상이 되는 성화상 같은 것에서 신성한 성경 같은 것으로 변경

   . 풍부한 표현력 위해 훌륭한 장인 정신과 기술 요구됨

     → 기초미학원리 : 조화, 통합, + 명료성 (토마스 아퀴나스)

   . 명료성 : 빛의 형이상학과 성경 구절의 영적 의미에 대한 교회의 성찰

   . 어거스틴 : 성찰 있는 미학에 기초한 초기 신학자

   . : 가장 영적, 아름다움의 최고의 전형 시각의 영적 미학 제안

   . -디오니시오스 : =하나님의 반영’(mirror), 미학의 본질 : 영적 경험 & 영적 통찰력

   . 중세와 근세 구분 : 아름다움의 명료성을 신 인간의 신비한 창조&생각의 힘에서 찾음

   . 근대 : 초월자의 세속화, 아름다움의 신적 차원, 불확정 적인 인간 영의 신격화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

 

4. 근세시대

.쿠사의 니콜라스 : 아름다움의 명료성 (근대의 뿌리) : ‘사다리신비적 가까움 (반대되는 것의 일치)

. 반대 되는 것의 일치 : 서방 기독교적 유럽의 영적 질서 변형 : 천상의 것과 지상의 것이 함께 존재

(ex) 미술이 자연의 형상 모방에서 화가의 창조성으로 신비하게 표현

천상을 연결하는 사다리가 아닌 하늘의 문(인간 영혼 안에 존재)으로 위치 변경

. 르네상스 화가 : 장인 교수 or 교육받은 성직자

(ex) 다빈치 : 일상에서 특별한 것을 볼수 있게 해주는 빛의 능력으로 영적 시각 성취 가능

. 과학으로서의 미술 : 영적 실재(자연 형상)를 다스리는 수학 법칙에 대한 새로운 비전으로 가는 문

(피타고라스, 어거스틴)

. 아름다운 것은 감각이 아닌 수학적 형태를 파악할수 있는 상상력의 행동에 의해 인지

뉴사이언스 : 초월의 영적 아름다움 들어 들어가는 문 = 과학적 상상력(이라는 마음의 눈)에서 발견

미술은 화가의 영혼의 창조적 활동의 산물 (발명을 표현하는 능력,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

아름다움의 부름아닌화가의 소명

1) 칸트와 헤겔 : 바움가르텐의 미학 후계, 근대에 미학에 대한 세속적 이해

. 미학 : 알렉산더 바움가르텐이 철학적 용어 만듦

. 신적 아름다움의 경험 아름다운 것을 아는 것에 대한 본성에 집중 (경험앎 강조)

. 아름다움의 영적 차원 : 인간 마음의 작용에 근거

 

(1) 칸트 : 천재성, 숭고함 이라는 용어 개발, 근대 미학 형성 / 판단력비판

. 르네상스에 발달된 미학적 통찰력을 세속적 방식으로 변형

. 세속화 : 자연과 인간영의 세계 단절된 듯한 태도

아름다운 : 대상의 한정성이나 형상 때문에 주는 즐거움을 판단 (ex:장미꽃)

숭고한 : 취향에 의한 판단 (절대적으로 훌륭한)

천재성 : 개인에게 주어진 은사와 특별 은혜, 독창적, 원리자체가 신비이므로 묘사 안됨

. 숭고함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

. 모순 없이 절대적으로 훌륭한것을 생각할 수 있는 능력 가능하게 함

. 천재성과 숭고함 개녕 개발 but 미술 언급 안함

 

(2) 헤겔 : 미학 - 작품을 통해 스스로를 알리는 역사적 과정 / 정신현상학

미술은 역사가 있다. (진화) : 영의 나타남 자신을 감각적으로 깨닫는 영의 역사 531

미술의 역사적 과정

. 하나님 : 세상의 역사 속에서 일하시는 절대적 영, 미술은 절대적 영의 역사적 관여와 일치

. 화가 : 영적인 활동이 실재하지 않지만 작품에서 구체적 이미지로 영적 활동의 일부 표현

. 미술 비평, 미술사에 대한 기반 만듦

. spirit의 의미 : 가이스트(정신, )로 표현, 역사의 갈등과 해결을 구체적으로 느끼는 사상의 활동

. 미술 : 영적의식이 역사적 과정에서 영을 구체적이게 하는 직접적인 의미

미술의 영적 본성은 정신의 본성과 연관, 절대적 초원신은 절대적 지식과 연관

but 절대적 지식은 표현될수 없으므로 미술은 표현될수 없는 정신(Geist)공개, 추상적이 됨

칸트와 헤겔의 미학의 결과

(1) 해방 : 화가를 교회와 교리적 개입에서 자유롭게 함, 인간의 영 탐구하기

(2) 미술 비평 : 신학자가 아니어도 가능하게 됨, 미술 작품 자체의 진가로 판단됨 (타락?)

. 위대한 영적 힘의 원천 돈 많은 수집가들의 시장에서 거래되는 단순 물품

. 신앙 공동체와의 연결성 잃음 : 교회 벽에서 관상과 기도하는 역할 박물관에 걸림

 

2) 한스 우르 폰 발타자르의 신학적 미학 : 미학의 타락

(1) 프로메테우스 행동과 부합 : 하나님이 아는 것을 알아내어 인성을 초월할 인간 영의 환희

   . 신들로부터 불 탈취 : 분방한 낙관주의

(2) 디오니시우스와 부합 : 자기 초월을 향한 간절한 야망, 실존적 한계들에서 탈출을 추구하는 초월성

   . 각성된 허무주의

   . 발타자르의 미학 : 우리를 직면하여 가치있게, 사랑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으로 만드는 것

   . ‘부르다부름 받은 것사이에 사랑발견 : ‘부름의 하나님 측면에서 표현되는 것

   . 사랑에 대한 사람의 응답(사랑) : 자신 밖으로 끌려가는 황홀함의 성질에서 나오는 사랑 (하나님 은혜)

   . 인간 영이 신적 영에 더 많이 참여할수록, 인간이 불균형적으로 신으로부터 멀리 있는지 의식

   . 신학과 미학의 자연스런 관계위해 신학의 기초 재구성

중세철학에서 초월적인 3가지 발타자르
아름다운 것 세상의 아름다움과 신적 영광
선한 것 유한적 자유와 무한적 자유
참된 것 만들어진 진실과 자존의 진실

 

[토론질문]

1. 신학의 뒷받침을 했던 철학, 이제는 철학을 따라가는 신학.. 어디까지 철학을 공부하고 신학을 이해해야 할 것인가?

2. p521신성한 이미지는 신성한 존재 그 이상이다라는 말은 예를 들어 예수님을 표현한 이미지는 예수님 이상이라는 말일까? 아니면 예수님 현존을 말하는 걸까? “이상이라는 말은 더 뛰어넘는다는 뜻이 아닌지... 이해를 못해서 그런가 동의가 안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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