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를 드 푸코, 에블린 언더힐, 디트리히 본회퍼, 시몬 베유, 도러시 데이, 토마스 머튼
3. 해방 영성 : 구스타보 구티에레스
4. 페미니스트 영성
5. 화해의 영성
6. 에큐메니컬 영성 : 떼제
7. 영성과 종교간 대화 : 비드 그리피스
8. 동방 정교회 영성
9. 영성의 민주화 : 피정 운동,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10. 결론
4. 페미니스트 영성 (1880년대 시작)
. 유럽과 북아메리카에 광범위하게 영향 끼친 해방주의 영성의 다른 형태
(1) 서유럽, 북아메리카의 투표, 재산, 대학 학위 획득위한 여성운동
(2) 유럽의 정치적 혼란 및 미국 민권운동에서 여성의 두드러진 역할
(3) 1970~80년대 학문 분야로 등장 → 기독교 신학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 → 영성에 영향
. 대표 신학자 : (북아메리카) 샌드라 슈나이더스(영성에 민감한 성서연구), 조안 왈스키 콘, 로즈메리 류터, 엘리자베스 존슨(삼위 일체 신학에 대한 정교한 재해석), 캐서린 다크먼(『영신수련』의 여성들의 연구), 앤 카, 도로테 죌레, (독일) 엘리자베트 몰트만 웬델, (영국) 메리 그레이, 그레이스 잔첸(고전의 재해석, 기독교 신비주의 연구)
. 페미니스트 영성 근본 주장
(1) 영적 실행에 대한 접근법이 성차에 의해 영향 받는다.
. 성차 : 생물학적 성, 주어진 문화, 역사, 시대 안에서 구성되는 방법
(2) 인간성과 가치가 훼손되는 근본적인 방식의 확인 : 전통적 영성의 중요한 요소들에 의해 제한됨
(3)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 이해, 제자직의 실행에 대한 대안적 방법 재구성
. 재구성의 방법
A. 경험의 타당성을 우선으로 신학의 기초를 확증 : 하나님을 경험 할 때 하나님 깨닫기 시작 → 여성의 경험과 방법의 구체적인 특징이 영적 지혜의 핵심 원천
B. 성경과 전통의 빛으로 경험을 성찰
4.1 여성주의 영성 : 아프리카계 미국인
4.2 무제리스타 영성 : 라틴, 히스패닉 여성
. 이사시-디아스 : 윤리학으로 신학 전공하여 대학교수(쿠바 난민), 가톨릭에서 여성 서품위한 운동에 관여, 진정한 영성은 구체적 관계와 정의 위한 투쟁에 몰두하는 능력에 의해서 측정
5. 화해의 영성 : 기독교 신앙의 중심, 영성의 중심
. 전쟁, 후기 식민주의, 인종 갈등, 사회 정의와 해방 등으로 화해가 중요주제
. 존 드 구루취(남아프리카 신학자) : 화해 교리가 ‘기독교 신앙의 모든 교리의 영감이며 초점’
. 화해의 수평적 차원 : 타자를 위한 공간을 만들고 ‘타자’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는 것 (갈등의 극복 시도)
. 샬롬 : 영적, 물질적 조화와 웰빙의 상태 ∴ 부정의와 불화에 반대하는 비폭력 저항 위한 기독교 사역
(1) 마틴 루터 킹, 하워드 서먼(신비주의자, 급진적 사회적 행동의 영성을 발전시킴 : 기도와 고난이 기반)
(2)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 (예수회 지질학자, 고생물학자) : 과학과 종교의 조화 노력
. 종교적 영역에서의 화해 이슈
(1) 20c 초 기독교 에큐메니즘
(2) 20c 세계화 과정에 태어난 종교간 대화 VS 폐쇄적인 기독교 영성의 영향력 증가
6. 에큐메니컬 영성 : 떼제
. 기독교 에큐메니즘 : 기독교 세계화와 교회의 정체성과 영성의 중심에 공동 선교가 있음의 이해
(1) 1910년 에든버러 선교 대회
(2) 세계교회 협의회 설립 (1948) vs 유엔 설립
(3) 가톨릭교회는 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1960년대에 에큐메니컬 운동에 참여
. 로제 슈츠(개혁 교회 목사)의 떼제 공동체 (1940) : 기독교 에큐메니즘과 인간 화해의 영적 토대 가운데 상징적
. 배경 : 프랑스와 독일 사이 유대인 난민 도우려는 소명으로 수도원 모델로 매일 기도하는 일과 시작
. 1944년 화해의 선교에 헌신 : 범유럽 평화 → 종교, 사회, 세계적 전망
. 초기에는 개신교에서 가톨릭 회원 들어온 이후로 광범위 기독교 출신의 100여명의 회원
. 특징 『떼제 규칙』 (1953) : 관상과 사회적 참여의 연결 실습
(1) 공동생활 안에서 화해의 가능성, 고통 증거 (각자 종교의 순전성 유지)
(2) ‘잠정성’ : 신앙적 민감성으로 굳어진 태도와 고정 방식에 대해 이끄시는 하나님 방법에 자신을 개방하는 것, 하나의 큰 재단 대신 세계에 필요한 곳에 잠정적으로 작은 규모 공동체 이식
(3) 적극적 참여와 관상적 삶으로 가난한 사람에게 헌신, 사회 정의와 화해 위한 투쟁
(4) 청년들을 위한 순례와 영적 탐험의 장소 (EX) 반복 찬미, 영적 안내 등으로 화해 분위기 조성
7. 영성과 종교간 대화 : 비드 그리피스
. 종교간 대화 : 기독교&불교, 기독교&힌두교 → 토마스 머튼 : 수도원 생활은 종교간 만남과 영적 실천의 경험을 나누는 유익한 상황
. 베네딕트회 데샤네 : 요가에 친숙, 명상중 신체의사용 회복에 기여
. 베네딕트회 존 메인 : 힌두교의 만트라 암송과 고대 기독교 수도원 실행 하시 관계발견 (존 카시안)
. 예수회 회원들이 일본 선의 권위자가 되어 선불교와의 대화에 참여
. 인도에서의 모델들
(1) (영국)베네딕트회 비드 그리피스 : 인도 영성 발전을 위한 대표적 기독교 집단
. 관상 공동체의 비전 → 서양의 합리주의에 맞서 직관적, 관상적 삶의 회복에 중점
. 이전 예수회 회원들이 설립한 아쉬람(암자, 샨티바남이라는 장소)에서 생을 마감
. 기독교와 힌두교 관계에 특별한 접근 방식 사용 : 양쪽 다 이해
. 아드바이딕 : 보편적 조화와 통일성 강조하는 교리
. 신성 안에 있는 궁극적 단일성에 대한 믿음과 삼위일체 교리 (불가해한 통일성이 구별 속에 균형)
→ 힌두교는 개인이 절대 정체성과 완전 하나가 된다고 보지만 기독교는 절대자의 깊음 안에서 자신을 잃어가는 관상적 과정에서 참된 자아를 발견하는 것
(2) 샨티바남 : 힌두교 아쉬람에 영감 받아 생활양식과 예배를 인도식 모델에 적용한 기독교 공동체
. 환경과 예배는 모두 인도식
. 기독교, 힌두교 방문자들에게 모두 인기
8. 동방 정교회 영성
: 아토스산의 수도원 개혁과 러시아 영성의 중요인물들로 혁명 전후
. 아토스 산 : 그리스 마케도니아 산악 반도, 남성 수도원 정착지
. 헤지카즘(정교회 관상 전통)이 발전 → 1917년 러시아 혁명 결과로 수도원 감소 → 쇠퇴 → 세계대전 후 서방내에서 정교회 영성에 대한 관심 증가, 1960년대 그리스어 『필로칼리아』 → 아토스로 초심자들의 유입
. 러시아 영성 : 정치, 사회적 영향
1) 성 요한 (1829-1909) : 혁명 이전 정교회 평신도에게 중요한 영향
(1) 매일의 성체성사는 삶의 중심이므로 평신도가 성찬에 참여하도록 함
(2) 자선이 참된 기독교 경건의 본질 : 소외 계층위한 사역으로 표현
(3) 개인기도의 실천을 세밀하게 기획하여 해박한 영적 일기를 남김
2) 블라디미르 로스키 (1903-1958) : 평신도 신학자,
. 러시아신학연구소(파리) 설립, 『동방교회의 신비신학』
. 신화(神化)를 기독교의 핵심으로 보고, 하나님의 생명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는 과정으로 이해
. 신비주의와 신학은 떨어질 수 없고, 기도와 전례는 신학의 토대, 신학은 신앙생활 발전에 관한 것
3) 마더 마리아 스코츠소바 (1891-1945) : 러시아 귀족 출신, 문학가, 수녀, 2차 세계 대전 순교
. 러시아에서 파리로 망명, 이혼 후 수도원 서원
. 지적, 종교적 토론의 중심지, 가난하고 궁핍한 사람들을 위한 곳
. 1940년 독일의 프랑스 점령 이후 레지스탕스가 되어 유대인 도피 돕다가 1945년에 가스처형
. 20c후반 이후로 정교회의 세계화 : 유럽의 종교, 영적 주류의 일부가 될 듯
→ 전례와 신비신학의 중요성을 알려줌
9. 영성의 민주화
: 피정,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 영성의 민주화 : 성직자나 수사들 같은 종교 권력과 영적 엘리트만의 영성이 아님
9.1 피정 운동
. 기원 : 예수님이 휴식과 기도 위해 제자들 데리고 한적한 곳으로 가신 신약의 기록
. 『영신수련』 이후 제도화된 피정 개념, 17C 피정의 집, 19C 중반부터 성공회에서 피정 시작, 20C 미국의 평신도들에 의해 시작 → 사제들이 설교하는 다수를 위한 단체 피정
. 영적 안내 : 타인의 안내, 멘토, 동반자 역할을 하는 광범위한 영적 안내
. 기원 : 초기 수도원 때부터 기원 → 중세 고해신부의 역할로 제도화 → 16C 트렌트에서 제도화
. 비제도적 형태의 영적 안내 : 바론 폰 휘겔(가톨릭)과 에블린 언더힐(성공회) 같은 평신도
. 갱신 : 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피정과 영적 안내의 민주화 (진정한 영적 안내는 하나님의 은사)
9.2 오순절 운동과 은사 운동
. 기원 : 사도행전 성령 감동에서 셰이커 까지 발전
. 오순절 교회 : 1906년 LA 아주사 거리 윌리엄 시모어의 복음주의 부흥 운동으로부터 시작
. 핵심요소 : 성령세례(방언), 예언의 은사 및 해석
. 개인과 공동체 안에서 성령님이 적극적으로 활동하심
. 과도하게 형식적, 건조하고 지성적 신앙에 대한 반작용으로 성령 충만의 경험이 정서적 형식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을 주었다.
. 영적 삶의 3단계(정화, 조명, 신비적 연합)가 체계화 되면서 엘리트주의, 분리적 평가
. 실제 영적 3단계는 동시적이며 개인에 따라 다르게 나타남
(7) 20c 후반
. 거룩함으로의 보편적 부름 확인 – 영성신학이 영성으로 대체됨 (2차 바티칸 공의회)
. 영성 : 기독교 뿐 아니라 타종교 및 종교 무관한 여러 실천가들도 혼용
. 기독교 영성 구별 : 기독교 종교 전통에 뿌리가 있음 -> 신학적 영성 vs 영성신학
. 신학적 접근시 유의점 : 기독교 영성에는 신학적 믿음 이상의 것이 있음
. 다양한 공동체 / 복잡한 인간 / 다층적 차원 –> 신앙의 적용과 표현의 특수화
∴ 기독교 영성을 일반적 이론이 포괄하거나 구체화 할수 없는 경우 있음
☞ 영성이 신학을 낳고, 신학은 영성의 경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함 (신학⊂영성)
. 영성의 학제간 연구 필요 이유 : 다른 분야의 도움을 받을 때 적절하게 탐구 가능
3) 인류학적 접근
[postmodernism에서 영성의 정의]
a. 인류학적 상수
b. 인간 구성의 한 차원 (인간적인 특성) ∴실존적으로 종교보다 앞섬
. 기독교 영성은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이므로 타기관에서의 ‘영성’ 연구와 공유 필요
. 역사학적 차원, 신학적 차원 + 미, 언어, 심리, 천문학도 고려
. 시대가 가지고 있는 경험의 중요한 측면에 영향 받음
. 종교나 제도적 종교를 외면하는 구도자의 영성에도 관심
. 종교 신학 속에서 작업 (전제 2가지)
a. 기독교 영성의 첫째는 인간, 다음이 그리스도인
b. 영성은 존재론적으로 역사학과 신학보다 먼저
. 해석학적 방법론 강조
a. 이해와 설명(지식의 확장)
b. 적용(주체의 확장) : 조사자 개인의 인성의 확장 (영적으로 풍성하고 심오하게 됨)
. 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기독교 영성
. 기독교 영성이 통제 할 수 없는 대화에 참여
. 이 시대가 질문하는 것에 대답하기 위한 집중 (ex) 시민 평등권운동은 영적 현상인가?
cf. 역사나 신학적 접근은 그 기준(틀)에 따라 풀어감
. 인류학적 접근의 기여
a. 개방성 : 영성분야에서 다양하고 넓은 범위의 이슈들 연구가능
b. 공적 대화의 장에 기독교 영성을 드러낼 수 있다.
c. postmodern적 의제와 감성에 친화적
∴ 인류학적 접근 방법의 연구는 기독교 본질에 집중하면서, postmodern의 유혹을 이겨야..
4) 세 가지 접근의 상호작용
. 상기 3가지는 기독교 영성 분야의 모든 질문에 관련해서 필요한 도구
. 배타적이지 않음 : 3가지의 적절한 사용 (대학의 연구, 목회와 신학교 상황, 대학원 연구)
3. 자기 참여(self-implicatiion)의 문제
1) 경험의 비판적 사용
. 영성은 경험에 대한 연구 이므로 연구자의 경험이 이해를 위해 필요 (ex) 심리학
. 영적 삶을 이해하기 위해 영적 삶을 가져야 한다. : 경험 깊어질수록 타인의 경험 이해 커짐
. 주의 : 연구자가 너무 깊이 연관되면 연구 망침 (객관성 필요)
2) 자료로서의 개인적 경험
. (예) ‘기도’ : 숙제 ?
a. 연구의 방식인 실습일수 있음
b. 숙제(연구)를 통해 기도의 경험 혹은 기도하고자 하는 동기 유발
c. 경험을 통해 기도를 연구할 경우 : 신중할 경우 본인이 기도에 관여하는데 도움이 됨
3) 영성 연구가 가져다 주는 변화의 가능성
. 경험의 영향력 : 진정한 연구는 변화를 낳는다. (Weil)
. 자기 참여적 특성의 중요점 : 연구와 개인의 성장의 상호작용
[토론질문]
* 영성 고전에는 경험한 사람들이 정리해서 적었다.
자기가 경험한 것을 정리한 것인데 표현이 잘 안됬다.
우리는 그들을 책으로만 만났기 때문에
인성이 어느 정도 성숙한지는 그들에 대해 논한 몇몇 타인의 글들로만 알 수 있다.
* 궁극적 진리와 씨름하게 되면 다른 사람이 된다.(소크라테스)
* 누군가와 오래 지내면 닮아간다. (ex) 예수님
* 범위를 좁혀가서 현대 한국 기독교 영성 – 공부하는 우리 – 관심있는 나...
많이 배우면서 (연구하는) 자로서 자기가 배운대로 살고 있다고 착각
(ex) 좋은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자기 영성이 그런 줄 아는 것처럼
* 영성은 삶으로 나타나야 하는 것
전반적으로 그렇게 살지 않으면서 본인이 그렇게 살고 있다고 착각
- 안전장치 : 의식 성찰
case1. 의식성찰을 오래해도 자기의 틀에서 못 벗어나서 하나님의 마음을 누리지 못해 괴로워 하면서도 여전히 영성이 뛰어나다고 생각하고 착각 할 수 있는 우리 연구자들의 폐단은 어떻게 검증하고 피할 수 있을까?
case2. 교회안에서, 영적으로 사람들을 하나님과 친밀하게 도와주는 귀한 축복의 통로로 쓰이는 데도 불구하고 개인적 인격의 문제로 성도들과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없는 경우를 종종 본다. 누군가 조언을 해주어도 자신이 매일 성찰하고 있다며 타인의 조언과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고 인격의 약한 부분을 고치지 않으려는 경우들... (영성의 역동성)
하나님에 대한 오해. 이것이 한국에 들어와서 교회의 청년들을 보고 느낀 것 이었다. 어쩌면 청년 뿐 아니라 많은 개신교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다들 하나님을 두려워했고(긍정적인 부분이 아니라...) 그래서 하나님께 묻기를 피하고자 했고, 그러다 보니 하나님과 친밀감을 유지하려고 하지 않을 뿐 더러 갖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 기저에는 하나님은 무조건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하시고, 내가 바라는 것을 싫어 하실것이라는 “확신”(믿음) 때문이었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까지 보내신 분이, 자기가 대신 죽으신 분을 믿는 믿음이 완전 기대와 다른 부정적 믿음이 되어 있었다. 한국에 들어와서 그것을 인지하는 순간 사탄에게 박수를 쳐주었다. 잘도 속여먹고 잘도 이겼구나...
10장에서 거론되고 있는 많은 예들에서는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로 삶을 메여서 사는 사람들과 하나님과 친밀함을 누리므로 삶이 풍성한(소유의 문제가 아님) 사람들의 예를 많이 기록해 두었다. 책에서 신자가 아닌데 모임 중에 치유된 여인은 자신이 하나님께 치유되길 원한다고 앞으로 나갔고, 그에 따라 치유 되었기에 치유에 자신이 행한 몫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아는 선배의 남편은 자신편에서 하나님께 한 행동이 하나도 없었다. 그냥 낮에 침대위에 뒹굴 거리고 누워있었을 뿐이었고, 무언가 따뜻한 것이 자기를 옷깃처럼 스치고 지나갔는데 그때 형부는 알았다. 자기의 불치병이 나은 것을... 그 이후로 형부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내면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평안함이 있었다. 반면, 오래 동안 교회서 자라고 선교사 헌신까지 했던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평안이 없이 산다.(생각해 보니 대표적으로 나네...)나의 틀(유교적, 도덕적, 문화적, 사회적... 아 틀이 너무 많다..)안에 하나님을 가두는 것과 하나님께 나를 온전히 맡기는 것의 차이다. 아이러니 하다. 책에서도 거론 되었지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친밀함 가운데는 치유가 항상 동반하는 것 같다.(단지 내 개인의 통계 내용일수도 있겠지만^^)
[자연묵상1] 자연묵상으로 주어진 시간이 너무 짧아서 모이기로 한 장소와 멀지 않은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사실 길에 떨어진 낙엽들에 눈이 자꾸 가는데 사람들 지나다니는 길가에 혼자 서있을 수가 없어서 가까운 벤치에 편히 앉았다.(하나님하고 이야기 할때 항상 최대한 집중 할수 있는 편한 자세를 고수한다. 이것도 편견일까^^) 아직 까지도 의문이고 계속 하나님께 여쭙는 것은 계속 눈물이 낫다는 것이다. 며칠간 계속 되는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자연묵상2]몇 년전 비바람이 치는 장백산(백두산)에 갔을 때 들었던 생각이 또 들었다. 자연묵상 때에야 왜 그날 그렇게 비바람이 치고 힘든 상황이었는지 이해 되었다. 장백산의 여러 등산로 중에 사람들이 많이 선택하지 않는 길로 장백산을 갔던 날 엄청 비바람이 불었다. 그런데 그 쪽 길에는 풀들 사이에 풀보다 더 작게 땅에 붙어 있는 꽃들이 엄청 많았다. 그 무서운 비바람(사람도 날라 갈 것 같고 우비는 다 찢어지는) 속에서 요동없이 땅에 딱 붙어 있는 꽃들을 보며 하나님이 내게 말씀 하시는 것 같았다. ‘땅에 딱 붙어 있어. 포복해. 일어나면 다친다. 바닥에 붙어 있어라’ 장백산에서도 내내 감동이 있었는데... 자연묵상의 날 또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자연묵상3]지난 금요일에 치과에 가서 어금니를 뽑았다. 선교사가 거지인가. 다른 치과 가야 하나. 내가 선교사처럼 안보이나. 내가 뻔히 선교사인 것을 알면서도 뽑기 힘든 어금니를 앞두고 의사샘은 기도하라 했다. 어금니 발치가 처음이라 병원에 들어오기 전부터 계속 압지께 긍휼히 여겨주심을 구하고 있었고 의사샘 손에 함께하시길 구하며 의사샘 손도 잡았었다.(단지 소리내어 기도 안할뿐) 그런데 의사샘이 두 번만에 뽑았다. 난 압지께 감사했다.(단지 소리내어 안할뿐) 그런데 의사샘은 그 영광을 자기가 갖았다. ‘이거 쉽게 뽑히는거 아니에요. 이거 원래 힘들게 뽑는 거에요. 아무나 이렇게 뽑지 않아요.’ 사실 이 사건 이후로 ‘아버지 저 선교사라고 안하고 그냥 직장 다니면서 선교사로 살까바요. 선교사가 거지인가요?’ (치과비용이 너무 많이 드는것에 스트레스를 받았던것 같다.) 마구 짜증냈는데 자연묵상 하는 중에 예배시간의 위로가 떠올랐다.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라...” 나의 부르심의 근원, 나의 존재의 근원이신 내 아버지가 지금 나를 여기 있게 하신다. 오늘도...
B. 헨리 나우웬(Henry Nouwen 1932-1996) : 신부, 작가, 미국 하버드대학교 강사, 미국 예일대학교 교수(목회신학, 영성), 전 세계를 대상 교구로, 마지막에 캐나다 토론토 소재 라르쉬(L’arche) 공동체인 데이브레이크(Daybreak)에서 정신지체 장애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기독교 영성 작가로서의 삶을 살았음. [저서] 상처입은 치유자, 예수님의 이름으로, 영적 발돋움, 영성 수업, 마음의 길, 분별력 등 다수..
. 통합된 인격과 영성을 함께 추구하는 일은 일시적 깨달음, 고속 성장, 자기 실현, 자기 강화, 통합을 향한 욕망(현대의 문화적 특징들)으로 이루어 질수 없다. 나우웬은 항상 번민했고(분별력), 외로워했고, 자신의 목회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 위해서 “묵상, 저술, 그리고 공동체의 삶 가운데 애를 썼으며,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점증하는 신뢰를 가지고 불완전의 삶을 살아갔음“
∴ 영성 : 완덕의 성취가 아니라 불완전에 대한 인식과 수용
. 어두운 측면, 분열된 마음, 욕망과 같은 인간의 물질 혹은 현실과 직면하게 도움
. 전통적 금욕주의와 달리 욕망(desires)과 정념(passions)의 인식, 수용으로 하나님을 알아감
2. 욕망의 영성 (spirituality of desire) *욕망 : 쉘드레이크의 불완전의 영성에서 중심적인 위치
. 욕망 :
. 인간 인격의 심층에서 일어나는 자신에 대한 가장 정직한 경험
. 자신의 욕망에 관심을 두는 것은자신에 대한 존재적 자각의 시작
. 하나님은 인간의 영혼(존재)의 심층에 거하므로 욕망에 대한 관심과 인식은 하나님 경험
. 욕망이 진실해질수록 우리의 정체성과 우리 존재의 중심에 있는 하나님의 실재와 접촉
. 진실한 욕망 :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자유롭게 운동하는 곳(깊은 내적 우물)
. 가장 깊은 욕망은 자기-중심성(self-centeredness)을 넘어 자기-희생(self-giving)으로 인도
ex) 기독교 영성을 전공으로 선택한 우리, 문지영 피아니스트
. “본질적 자기” : 욕망이 진실할수록 하나님의 실재와 만날 가능성이 커짐
. 진실한 욕망과 접촉 : ‘내적 우물’ 여정에서 필수, 하나님을 향한 갈망(‘아가페 사랑’)의 표현
. 하나님의 신비 경험 안에서 ‘에로스 사랑’과 ‘아가페 사랑’은 일치
(기독교 전통에서는 분리하므로 하나님에 대한 신비적 경험을 방해함.)
. 폴 틸리히의 「사랑, 권력, 그리고 정의」 (Love, Power, and Justice)
. “하나님 사랑의 에로스적 특성을 받아들이지 않을 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은 불가능한 개념이 되고 마침내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단순한 순종으로 대체될 수 있다. 참된 사랑, 참된 성애(eroticism)는 언제나 ‘하나님 안에서의’ 경험이다. 하나님은 본래적인 의미에서의 성애적 힘이요(God is erotic power) 인간 사이의 성애적 힘이다.”
. 인간적인 욕심이 섞이면서 사랑에 문제가 있기는 하지만, 성애적 힘에의 끌림(친밀함으로의 초대, 자기 개방(?))은 인간적 사랑의 모험 안에서 보편적인 하나님 사랑(아가페 사랑)을 발견
예) 성(성적 결합)은 성만찬의 특성(예전) : 사랑의 관계에 있는 사람들을 치유하고 회복시켜서 영적인 중심으로 안내 (ex) 바베트의 만찬 : 맛있는 음식, 풀어지는 마음
. 쉘드레이크의 하나님 이미지 : 한정될 수 없는 하나님의 실재
. 인간의 심층(depth, 무의식 까지 포함, 원초적인 욕동을 포함하는 상징적 장소)
- 하나님의 실재와 접촉할 수 있는 곳 : ‘내면의 우물’(심층), ‘마음’(the heart, 기독교 영성 전통)
but 하나님의 실재는 이성 or 사랑 감수성으로도 알 수 없고 오직 하나님을 향한 사랑 만 남는다.
∴ 부정의 하나님 인식이 하나님을 향한 중단 없는 사랑의 욕망과 역동적 영적 여정 조성
- 욕망의 정의 : 자신이 아닌 혹은 가지지 않은 것 ∴ 불완전함이라는 조건이 내재되어 있음
∴ 욕망의 영성 = 불완전에 대한 감각, 무한을 향한 개방 (영구적 한계선 상태 )
3. 신비적 방랑자의 삶
. 한계선상에서 살아가는 영성은 불안한 상태에서도 과감하게 헌신 가능
.“모세식 사유 학파”(Moses school of thinking) 영성 (cf) “다윗왕 학파”
: 안정(정착)에 대한 영적인 유혹을 민감하게 인식하므로 불안정한 상태에서 하나님을 신뢰
. 신비가 : “알 수 없고 소유될 수 없으며 고정되거나 최종적이지 않은 것에 의해 이끌려서... 욕망의 삶을 사는 사람” (「신비주의 우화」(The Mystic Fable), 드 세르토/실레시우스의 ‘방랑자’)
. 신비적 방랑자
. “일상에서 지속적으로 타자와 만남에서 자기초월을 경험하면서 계속해서 어딘가를 향하여 걸어가지만 한 곳에 정주하지는 않는 사람” (p377) (ex) “텅 빈 무덤“으로 상징
. 경계선 혹은 한계 위에서 살아감
. 성령(신비가를 끊임없이 욕망에 끌려가게 하는 힘, 존재의 힘과 의미 통합)에 사로잡힌 사람
. “성령의 힘에 사로잡혀 자기를 초월하여 경계 지어진 영역 너머의 세계를 살아가는 자”(p377)
C. 불완전의 영성은 완덕에 이르는 일이 불가능하다는 인식론적 전제 아래 자기의 불완전을 인정하고, 인간적 욕망을 점증적으로 인식하면서, 신비적 방랑자의 삶을 살아가는 과정이다.(불안정의 안전성 : 피조물인 인간으로 불안정(죽음, 두려움)을 막기/피하기 위해 몸부림 치는 것이 아닌 불안정한 상태를 인정하고 받아들임)
산업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은행, 행정업무, 쇼핑 등 많은 것들이 편리해지고, 간단하게 처리 할 수 있게 된 반면, 빠르게 증가하는 지식의 발전을 따라잡고, 지식의 발달에 따른 업무량 과다로 현대인들은 더 바빠졌다. 사람들이 바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일한 시간만큼 돈으로 보상 받고 있기에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도시의 사람들이 소도시의 사람들보다 시간을 절약하고 바쁘게 순간을 지낸다. 이는 결국 시간은 돈이라는 벤자민 플랭클린의 개념이 일반화 되어 경제가 개인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A)
이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삶을 경제가 통치하도록 개인들의 주권을 경제에게 내어준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록 개인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경제에게 주었다. 시간과 경제관념이 엮여 지면서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럴수록 정서적인 문제는 더 많아진다. 가족 간의 불화는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B), 개인 정서의 문제는 우울증과 자살률의 증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현대에서 기독교인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시도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상기한 대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시간에 지배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의 뿌리들을 정리해 보았다.
지식이 풍성하고 완벽 주의적인 성향이 많은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에 있어야 안정감을 갖고 무언가를 실행해 옮긴다. 기도 또한 삶이 안정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법을 잘 배워야 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조용히 삶의 고삐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행위”라고 했다.(D)현대인들은 기도마저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있으므로, 24시간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사고의 틀을 깨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2)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
프랭크 루박처럼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 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업을 내려놓고, 일상을 포기하고,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와 친교등 교회의 모임이 항상 시간을 따로 내어서 해야 하는 활동이었기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이다. 교회의 활동들이 개인 신앙에 많은 진보를 가져오긴 했지만 이러한, 영성과 삶의 분리에도 미친 영향이 크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 수업>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경으로 기도하고, 공동체 안에서 용서하며 경험하라는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예화들에서는 도제식 학습 등으로 온 종일 스승과 함께 하며 배우는 예화가 있다. 그러나 실습으로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기도와 묵상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따로 두라고 한다. 또한 도움을 받기 위해 영성지도 등을 받으라는 권면이 있다.(E)이 또한 여러모로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
(3) 마음의 안식처보다 피부로 느껴는 안정감이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를 중요시 한다. 그러다 보니 보여지는 외모가 중요해서 성형수술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안정감을 타인에게 둠으로써 생기는 것인데 이로 인한 정서적인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나의 안정감을 타인에게서 추구하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보다 보이는 사람, 들리는 음성이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핸드폰 속의 사람들과 영상을 찾게 된다. 현대는, 외롭고 힘들 때 하나님을 찾기보다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을 찾고 내게 도움을 주는 앱을 찾는 것에 많이 익숙하다.
(4)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모든 이유들 중에 가장 기저에 있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할 것이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나에게 명령하실 것이라는 부정적 믿음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처럼 내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할 것이고, 내가 하려는 것을 반대할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들이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게 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F)그러기에 프랭크 루박이나 브라더 로렌스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성한 삶을 산 것 같이 시도하려는 것 자체를 시작하지 못 한다.
(5) 훈련에 필요한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기 힘들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이 <영성 수업>에서 습관을 만들기 위한 훈련으로 묵상과 기도를 위해 따로 시간과 장소를 준비하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빠른 결과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영적 습관을 만들기 까지의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훈련의 시기에 현대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누군가 위대한 사람을 만날 때 처럼)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하고, 따로 시간을 내야한다는 부담과 함께 만남에 따른 빠른 결과가 보이지 않아서 훈련의 시간을 오래 지속하지 못 한다.
프랭크 루박의 훈련은 시간과 장소를 따로 준비하고 따로 어딘가를 찾아가야 하는 등의 준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물론 그도 초반에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인 시그널 언덕을 찾아가긴 했다.) 그러나, <1분 게임>에서 제안한 것처럼 1분 게임을 할 때 치러야 할 대가들이 있다. 매 순간의 인내와 순종, 지인들에게 소문내기와 공동체에서 함께 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가를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할 여력조차 현대인들에게 없으므로 1분 게임에서 이길 때 받는 상을 누리지 못한다.(G)
(C) Richard Foster, 『그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 조계광 역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04), 11-14.
(D) Richard Foster, 『그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 13.
(E) Henri Nouwen, 『영성 수업』, 윤종석 역 (서울: 두란노, 2007), 9-15.
(F) Henri Nouwen, 『영성 수업』, 85.
(G) Frank C.Laubach, 『프랭크 루박의 1분 게임』.
5. 현대인의 일상에서 24시간 하나님과 함께하기
본 장에서는 프랭크 루박이 제시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 하고 시도한 사례를 제시한다. 여러 단체에서 시도한 방법들이 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고 그 상황이 공유된, ‘선한목자교회’의 영성일기 쓰기 사례를 대표적으로 제시한다.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을 활용하여 영성일기 공동체들을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적극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필자 본인이 실습한 내용들을 정리한다.
1) 공동체에서 영성일기 함께 쓰기 (H)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에서는 담임목사가 먼저 프랭크 루박의 실험을 시도했다. 그리고 본인이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했음을 교인들에게 알렸고, 교회의 각 소그룹 모임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영성일기 쓰기가 전파 되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는 공동체에서 영성일기를 쓰는 방법을 현대인에게 맞게 제시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잘 때 까지 예수님을 얼마나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때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일기형식으로 기록한다. 하루 중 기억나는 특별한 일을 기억하고 그때 예수님은 어디 계셨나, 무엇을 하셨나 기록한다.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 했을 때를 기록한다. 이렇게 자신의 매일을 점검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이 일기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함을 훈련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을 소그룹에서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므로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므로 더욱 예수님과 친밀해 질수 있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는 공동체에서 함께 하는 영성일기로 성도들의 은밀한 죄가 없어지고,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무절제한 성향이 점차 고쳐진다는 후기를 전한다. 실수를 유발하게 하는 험한 농담이나 두려움, 염려, 교만 등이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을 부드럽게 누르므로 혈기나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자아의 죽음이 일상이 된다.
프랭크 루박이 제안했던 것처럼 1분 게임을 한다고 소문을 내고 공동체에서 함께 진행 하라는 제안을 ‘선한목자교회’에서는 소그룹 별로 웹(앱)에서 기도 일기를 쓰는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연습 이므로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스마트폰을 이용하므로, 스마트 폰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것 대신 내가 느낀 것들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한다. 영적으로 둔감하게 하는 영상들을 찾아보는 대신에 타인이 쓴 영성일기를 보며 기도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안정감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조금씩 경험하다 보면 ‘하나님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실 거야’ 라는 오해가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을 제대로 더 알아가므로 점차 신뢰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영성일기 쓰기와 소그룹 모임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상황화’로 공동체를 영적으로 더 건강하게 하고 각 개인들은 하나님과 더 친밀해 진다.
2) 개인 실험
최근 4-5년 동안 1분 게임을 혼자서 진행했었지만, 최근 1년 동안 프랭크 루박의 저서들을 다시 읽으면서 집중해서 시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실험을 하면서 ‘개인의 성향’이 대단히 많이 좌우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경우는 성격이 급하고 성취욕이 높고, 일에 집중력이 너무 높고,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이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실험은 오래전부터 하던 실험이라 책을 읽으며 진행할 때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관계로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갈 때 주님과 함께 가기보다 나 혼자 달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길을 급히 가다 보면 사람들을 바라보고 축복하는 경우들이 줄고, 나의 표정도 객관적으로 볼 때 긴장해 있는 표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식할 때 마다 실패한 경우였다. 또한 일이나 과제, 공부를 할 때는(주로 지적(知的) 작업) ‘아버지 함께 해요’라는 모드로 시작 했다가도 혼자 빠져 들어서 허우적 거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초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공한 경우들은 주로 사람을 만날 때이다. 지적(知的) 작업과 달리 사람을 만날 때(정서적 작업)는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할 대화가 없어서 조용히 있을 때가 많다. 단둘이 만나도 조용히 있으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나의 생각이 아닌 상대방에게 필요한 대화가 시작된다.또한 길에서 어린 아이나 임신부들을 볼 때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경우도 성공한 경우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프랭크 루박이 제시한 방법인, 영성일기 정확하게 작성하기, 함께 하는 공동체, 소문 내기를 하지 않고 매일 정확히 퍼센트로 계산하지 못했다. 무엇 보다 매일 쓰는 영성일기가 성장의 큰 원인이 된다.(I)또한 1분 게임에 함께하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한데 함께 하는 공동체 없이 진행 한 것이 진보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
(I) 김병호, “청소년 기도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학교” 여섯 번째 이야기: 기도일기 쓰기,” 「교육교회」477(2018), 31-35. 32-33.
6. 결론
17세기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브라더 로렌스가 한 방식들을 20세기에 자신에게 맞게 시도하고 기록한 프랭크 루박의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또한 21세기인, 현대, 한국에서 이 방법들을 시도한 경우들을 알아보고 필자도 시도한 결과를 나누었다.
기독교에서 영성이란, ‘경험’ 즉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을 말한다. 학문적으로 ‘기독교영성학’이란, ‘자신이 인식하게 된 3위 일체 하나님을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이라고 샌드라 슈나이더스는 정의한다.(J)결국 기독교 영성에서 ‘경험’, ‘삶’이 없이는 기독교 영성이 표현될 수 없다. ‘일상에서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논할 때 결국 ‘경험’ 없이 이론만으로는 ‘일상’과 ‘영성’을 표현 할 수 없다. 이론만 거론한 논문들은 본 논문을 준비하면서 참고 자료로서 자연스럽게 배제했다. 20세기에, 삶으로 드러난 영성에 집중했을 때 프랭크 루박이 눈에 뜨인 이유는 그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흔적(경험)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성일기를 쓰는 분들에게도 나타나는 같은 특징들이다.
은밀한 죄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다루므로 삶에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은밀한 죄가 줄어든다.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지내며, 원주민들에게 배척당하는 그 외로움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면서 외로움에 빠져들지 않았다. 또한 모든 회의와 만남에 앞서 기도로 준비하므로 불필요한 실수들을 줄였으며, 떨어져서 지내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로 그들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두려움, 염려, 교만 등이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 지므로 일상에서 안정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성품이 온유해 진다. 또한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자신의 모든 업무에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문맹 퇴치 프로그램, 신학교 운영 등 중요한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이러한 경험은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도를 몇 년간 진행하고 있는 필자의 삶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생각이 많아 두려움이 많던 사람이었으나 그 두려움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는 훈련을 했다.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 안에서 두려움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안정감이 생기면 평안이 나를 다스리면서 성정이 온유해 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런 사이클이 몇년동안 지속되면서 지인들로부터 많이 온유해 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교학과 학업, 사역을 병행하고 있는데 매일의 스케줄을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생각지 못 했던 결과들을 경험한다. 빠듯한 일정 가운데 갑자기 부담되는 스케줄이 사라지기도 하고,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 일에 은혜를 주셔서 제시간에 끝내는 경험도 한다. 시간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음을 경험하므로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이전보다 시간에 덜 쫓기게 된다.
프랭크 루박에 대해 관심은 많았으나 그동안 못 읽었던 그의 저서와 관련 자료들을 본 논문을 준비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읽었던 책들도 더 깊은 시각을 가지고 다시 읽어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이미 자신과 교회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한 유기성 목사 외 한국의 다른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어서 실패 사례 뿐 아니라 성공 사례들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랭크 루박은 홀로 24시간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시작했으나 현대인의 약한 의지와 바쁜 일상에서는 건강한 공동체가 함께 할 때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삼위 하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성도들에게 공동체가 중요하다.(K)영성 일기를 공동체에서 함께 할 때, 부작용이 발생 할 수 있는 위험도 있겠으나 이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사례 연구 등을 통해 남은 역사에서 채워나갈 부분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루박 개인에 대한 한글 자료가 많이 없어서 개인의 삶을 더 자세히 연구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또한 현대인의 정서적 문제에 대한 부분에 대한 근거 자료를 많이 준비하지 못해 근거가 빈약함을 고백한다. 논문 작성법 강의 전에 작성한 각주에 페이지를 정확히 찾을 수 없어서 페이지를 기록하지 못했다.
‘일상에서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로 접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연구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논문들을 보고나서야, 외곬으로만 생각한, 나의 지식과 생각의 얕음을 알게 된 시간이다. 한국에서 최근에 상담과 영성분야에서 같은 주제로 논문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세상 속에서 자신을 보이시고 드러내시는 주님을 더 깊이, 매순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기회가 되었고, 그 즈음에 뉴스를 보고 며칠 동안 울며 다닌 날들이 있었다. 프랭크 루박 처럼 나에게 주어진 선교 대상자들에게 우리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을 내 삶을 통해 잘 소개하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더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