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논문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원본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과 그 적용 (1/2)

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와

Graduate Theological Union의 기독교 영성 박사 과정의 경우

 

이강학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 실천신학/기독교영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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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Ⅱ.기독교 영성학 : 샌드라 슈나이더스를 중심으로

1. 기독교 영성

    1)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2) “자기 초월을 통한”

    3)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2. 기독교 영성학의 연구 대상

3. 기독교 영성학의 특징

    1) 간학문성 (inter-discipilinarity)

    2) 자기 함축성 (self-implication)

4. 기독교 영성학의 방법론 : 해석학적 접근 (the Hermeneutical Approach)

 

Ⅲ. 지티유(Graduate Theological Union)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 프로토콜 (Protocol)

1.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 필수 항목

2. 일반 종합시험

    1) 기독교 영성의 성경적 기초

    2) 기독교 영성사

3. 특별 종합시험

    1) 기독교 영성 영역

    2) 기독교 영성과 관련된 다른 학문 영역

    3) 기독교가 아닌 다른 영성 영역

4. 실습

 

Ⅳ. 나가는 말

 

Ⅰ. 들어가는 말

. 기독교 영성학(the Study of Christian Spirituality) : 학문화 된지 40여년

 

(1) 미국에서 영성학의 성립 과정

  . 1975년 캘리포니아주 버클리 시에 있는 GTU라는 신학교 연합 학위 과정에  최초로 기독교 영성학이라는 박사학위

  . 1991년 미국 종교학회(AAR) 산하에 기독교영성학회(SSCS)가 가입

  . 1992년 GTU에서 기독교 영성학이 별도 분야로 독립

 

(2) 국내의 영성학 연구 현황

  . 한국실천신학회 영성분과 학자들이 ‘기독교 영성학회’설립위해 노력 중

  . 1988년 ⌜기독교신학논총⌟ 특집 ‘오늘의 영성신학’

  . 2009년 ⌜기독교신학논총⌟ 기독교 교육학 분야(손원영)와 상담 분야(정연득) 논문

  . 영성학을 본격적으로 다룬 논문

  . 1999년 “영성학의 연구방법론 소고”(유해룡)

    - 안셀름, 어거스틴, 보나벤투라의 영적경험 모델화

  . 2014년 “영성학 방법론 탐구: 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M. Schneiders)를 중심으로”(최승기)

     - 샌드라 슈나이더스의 영성학 방법론 정리

 

(3) 본 논문의 목적 : 신학교육에 적용된 슈나이더스의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 검토

   a. 슈나이더스의 영성학 방법론 요약

   b. GTU 기독교 영성 박사과정에 반영된 내용

   c. 한국 기독교 영성학 발전을 위한 제언

 

Ⅱ.기독교 영성학 : 샌드라 슈나이더스를 중심으로

. 샌드라 슈나이더스 : 기독교 영성학의 대표적인 주창자 (정의, 특징, 방법론)

 

1. 기독교 영성

. 보편 영성의 정의 :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 (the experience of conscious involvement in the project of life–integration through self–transcendence toward the ultimate value one perceives)

 

1)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 기독교 영성에서 ‘궁극적 가치’ : 하나님 경험

    (1) ‘궁극적 가치’ : 삼위일체 하나님

    (2) ‘지향’ : 하나님을 향해 믿음을 갖고 행하는 것

    (3) 궁극적 가치인 하나님을 삶의 목표로 ‘인식’하는 것이 성령의 역사이고 은혜

       → 은혜로 삼위일체 하나님을 인식하고 믿음을 갖게 된다.

  . 하나님 경험의 구체적 예

    (1) 창조의 영성(자연의 영성) : 자연 속에서 창조주 경험

       (예)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아일랜드 켈틱 영성

    (2) 성자 예수의 일생

        - 성육신으로 인한 성자 하나님의 겸손과 일상을 소중히 여기시는 하나님을 알게 됨

        - 성자의 십자가 죽음 : 죄 사함의 자유를 경험하고 고난의 의미를 재해석 할 수 있게 됨

        - 성자의 부활 : 죽음의 두려움으로부터 자유 경험

          (예) 토마스 아 켐피스 ⌜그리스도를 본받아⌟, 로욜라의 이냐시오 ⌜영신수련⌟

     (3) 성령

         - 조명과 지혜의 성령 : 마음 눈을 밝혀서 하나님과 나를 아는 지식을 갖게 함

         - 연합의 성령 :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공동체 안에서 성도들이 하나 되게 함

         - 생명의 성령 : 생명을 존중하고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의 일 위해 생명의 능력 소유케 함

           → 하나의 믿음 이지만 다양한 영적 경험으로 영성 운동은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 될 수 있음

 

2) “자기 초월을 통한” (자기 초월의 경험)

. 기독교인에게 ‘자기 초월‘

  (1) 육신적, 정신적 한계를 넘어 예수의 삶과 인격에 가까이 가는 것

   (2)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 : 인간의 한계(육체, 시공간의 제약, 고통, 죽음)를 초월하려는 갈망이 은혜 안에서 영적 성장으로 이어질 수 있음

 

. 영적 성장 (여정 journey, 등정 ascent, 사다리 ladder) : 자기초월 경험을 잘 묘사하는 3단계

   (1) 정화(purification) : ‘마음의 청결’통해 내외적 죄악 된 습관을 버림

   (2) 조명(illumination) : 하나님 아는 지식과 나를 아는 지식이 형성 됨

   (3) 일치(unification) : 하나님과 깊은 사랑의 교제 단계

   → 자기 초월은 영적성장의 변화가 동반되므로 이타적 하나님 사랑(∋이웃 사랑)으로 성장

 

3)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 “삶을 통합하는 프로젝트 안에서의 경험

   . 기독교 영성은 “경험” (‘궁극적 가치’ : 하나님 경험)

   . 삶의 통합은 예수 그리스도를 지향 : 통합의 궁극적 모델은 예수 그리스도

   . ‘삶을 통합하는 프로젝트 ’ : 그리스도를 닮아가기 위한 내,외적인 삶의 모든 영성훈련들

   . 영성 훈련

     - 삶이 하나님 안에서 새로운 질서를 갖도록 함으로 삶의 통합을 이루게 함

     - 삼위일체 하나님께 기독교인의 주의를 집중케

     -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돌아 볼 수 있게 된다.

   → 현대 ‘영성‘의 중요한 의미는 비인간화와 분열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마이클 다우니)

 

4)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 : “삶을 통합하는 프로젝트 안에서의 경험

   . 의식적 참여 : 자발적, 의지적, 인격적인 참여 (집중하는, 깨어 있는 마음 가짐이 필수)

   . 신학적 기초 : “자유의지”

 

. 슈나이더스의 ‘영성’ 정의에 대한 기독교 영성에 적용

1)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영적 성장을 위한 영성훈련에 의식적으로 참여 할 때, 은혜로 얻게 되는 경험과 그 경험에 대한 개인적이고 공동체적인 반응들”

2) 장점

    (1) 다양한 초월적 경험을 학문적 주제로 만들어 준다.

    (2) 영성 개념을 바탕으로 기독교 영성을 쉽게 정의

    (3) 기독교의 다양한 영성 운동을 ‘기독교 영성’이라는 이름으로 묶어 줌

    (4) 교리보다 경험을 강조하는 아래로부터의 접근으로 영성은 일상의 경험에서 출발함 인식

 

2. 기독교 영성학의 연구 대상 :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spiritual life)

. 영성학의 연구 대상인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의 특징 4가지

  (1) 연구대상으로서의 ‘삶’은 세상 안에서 경험되는 ‘삶’으로 자기 통합적인 성격

  (2) 연구대상으로서의 ‘영’은 하나님의 영과 교류하는데 자기 초월적 역량을 지닌 의미

  (3) 연구대상으로서의 ‘경험’은 모든 것을 포괄하는 복합적인 성격(교리/역사/상황을 넘어 연구)

  (4) 연구대상으로서의 ‘기독교적’ 경험은 신학적 규명 이전에도 발생해서 신학에 영향을 미침

    → 기독교인이 영적인 삶이라는 경험은 조직신학, 교회사적 지식으로만 이해되지 않음

    ∴ 기독교 영성학은 두 개 이상의 학문을 사용하는 간학문성(interdisciplinarity)의 특징

 

. 연구대상 선정 예 : 이세종의 영성연구라면 이세종의 영적인 삶(영적 경험)에 연구 초점

  : 이세종의 기독론(조직신학)+한국교회에 끼친 영향(교회사)+회심/기도 경험(영성학)

  : 이세종의 회심 경험 = 회심에 대한 성경적, 교회사적, 조직신학적, 심리학적 이해 등 다각적 연구

 

3. 기독교 영성학의 특징

1) 간학문성 (inter–disciplinarity)

. 기독교적 변화의 경험은 하나의 관점으로 그 경험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기 불가능

. 연구에 사용할 학문들을 2개의 층으로 나눔

  (1) 구성적 학문들(constitutive disciplines) : 경험과 해석에 자료제공 (성경&교회사)

   (2) 문제적 학문들(problematic disciplines) : 현상의 문제를 관찰하는데 도움 되는 학문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문학, 과학 등)

∴ 기독교 영성학자는 구성적 학문에 해당하는 성경, 교회사, 조직신학에 전문적 지식 필요

(문제적 학문도 필요에 따라 지녀야 한다.)

 

2) 자기 함축성 (self-implication, 자기 개입성)

. 기독교 영성학자의 경우

   (1) 대상 연구의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유사 경험 있어야 하므로 연구 주제로부터 중립을 지킬 수 없다. (아빌라의 데레사 기도 경험 연구의 경우 기도 안 해본 사람은 해석도 안됨)

   (2) 연구 주제 선정 시에 개인의 관심사가 반영 되게 된다.

   (3) 연구도중 연구의 영향을 받아 연구자 자신이 변화를 경험한다.

 

4. 기독교 영성학의 방법론 : 해석학적 접근 (the Hermeneutical Approach)

. 기존의 연구 방법 : 조직신학과 교회사 (가톨릭에서는 영성신학(신비신학, 수덕신학) ∊ 조직신학)

. 기독교 영성학 : 독립된 학문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이름 (from 조직신학)

. 슈나이더스가 제시하는 경험연구의 방법론 : 해석학적(hermeneutical) 방법론

  - 조직신학적 방법론 : 경험을 규범으로 제한하므로 경험 그대로 이해하는데 한계가 있음

  -  교회사적 방법론 : 역사적 기록물 확보가 거의 불가능함

  -  해석학적 방법론 : 영적 삶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해석 필요(해석학적 순환의 3단계)

   (1) 현상의 서술(description of the phenomenon) : 역사, 사회, 개인, 신학, 교회적 상황

   (2) 비평적 분석(critical analysis) : 각 상황에 대한 질문

   (3) 구성적 해석(constructive interpretation) : 연구 주제가 연구자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이해하고 발견 하므로 연구자는 자신이 이해한 경험을 수용하므로 자신을 변화시키고, 존재를 확장 시킨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 체험 비교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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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Ⅱ. 조나단 에드워즈

Ⅲ. 윌리엄 제임스

Ⅳ.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에서의 부흥 경험

Ⅴ.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 경험

Ⅵ. 공동점과 차이점

Ⅶ. 나가는 말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김재영 역. 한길사.

 

Ⅴ.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 경험

 

  고대 그리스 철학은 경험을 이성보다 덜 중요한 것으로 여겼으나, 르네상스와 현대 과학의 등장은 체험과 경험을 중시하게 되었다. 근대에 와서는 경험주의가 강조되었고 이러한 변화는 종교 연구와 종교 철학의 문을 열었다. 종교의 그리스어와 라틴어의 어원을 보면 두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의식을 가진 공동체로서 그리스어로는 threskeia, 라틴어로는 cultus이다. 종교의 교리적 측면으로 종교를 따르는 공동체가 가진 신앙 체계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또 다른 하나는 의식(앞서 말한 교리적 측면)을 고려한 삶의 방식으로 라틴어의 religio다. 이것은 종교의 기능적 측면으로, 사회적으로 종교가 하는 기능인데 기독교에서는 경건으로 나타나는 삶 일 수 있겠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제임스는 종교의 토대가 되는 것이 ‘철학’이 아니라 ‘경험’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다양한 개인들의 종교 경험 사례들이 그들의 언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종교적 경험은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소유한 사람들이 경험 할 수 있는 “내적 종교 현상”이며, 종교를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이다. 이러한 종교 경험은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초월자를 경험하는 것으로 초월자와의 만남을 통한 개인의 “근원적 변화”가 동반된다. 

 

제임스는 종교 경험의 본질은

첫째, 초월자와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며, 

둘째 경험 이전과 완전히 다른 삶의 변화를 보여주며, 

셋째, 예술 보다 훨씬 차원이 높은 아름다운 삶을 보여주며, 

넷째, 그 변화는 매우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성격을 띄고 있다고 밝힌다. 

 

또 제임스는 이 책을 통해 종교가 인류에게 중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리려 하고 있다.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들의 특징을 형언 불능성(Ineffability), 순이지적 특성(Noetic quality), 일시성(Transiency), 수동성(Passivity)의 4가지로 본다. 형언 불능성은 신비적 상태를 표현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타인과 나눌 수도 전이될 수도 없는 (지적 상태 라기 보다는) 감정에 가까운 것이다. 둘째는 신비의 경험을 지적 상태 라기 보다, 감정 상태로 분류 할 수 있다고 했지만 그 상태를 경험하는 사람에게는 깊이 있는 진리를 통찰하게 되는 상태이므로 순수지성 상태 이다. 상기의 두 가지가 주된 신비적 상태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더불어, 신비적 상태가 일상에서 계속 유지되는 경우는 없으므로 일시성이라는 특징이 있다. 또한 수행자의 노력이나 일정 방법에 의해 자발적으로 신비의 실행이 촉진 될 수는 있지만 특정 신비 상태의 경우는 항상 어떤 (초월적) 힘에 지배되는 느낌을 갖게 되므로 수동적인 특징이 있다. 신비 경험 부분에서 제임스는 신비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신비를 경험한 사람들에게 부여되는 초월적 권위에 복종해야 할 의무가 없다는 것을 여러 번 강조한다.

신비 경험에 대한 종교적, 심리적 연구를 통해, 그 신비 경험의 원초적 차원을 찾아낸다면 경험에서 시작하는 신학이 가능하다고 제임스는 주장한다. 앞서 밝힌 바와 같이, 종교에서 철학이 우선적 일 수 없다. 우선순위로 보자면 감정이 우선이고, 철학은 부차적이다. ‘종교학’은 종교적 신조를 제시 할 뿐 종교에서 큰 소리를 낼 수 없다는 것이 제임스의 주장이다. 감정은 개인의 경험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러므로 개인화된 경험들만이 구체적이며, 종교는 그 구체적인 것들에 의해 유지된다. 이는 기독교가 개인 경험으로 계속 이어져 오고, 개인의 경험에는 항상 삶을 역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 하는 감정이 동반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종교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종교학’으로서 종교를 도와주는 것 정도로 정의 한다. 그러므로 제임스는 교의 신학이나 조직신학 등의 원리들에 비중을 크게 두지 않지만, 이미 2강에서 본서는 제도적 종교가 아닌 개인적 종교 연구에 한정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책의 전반에 걸쳐서 제임스는 종교의 가치에 확신을 가지고 있다. 종교의 신조와 이론들이 맞지 않아 보일 때에라도 종교는 인류에게 중요한 것 중의 하나이다. 신비적 경험이후 (특히 9-10강의 회심관련 장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차원적 힘에 대한 감각으로 그 삶에 변화들이 수반된다. 윌리엄의 책에서 여러 종교의 사람들의 사례를 다루지만, 종교 경험 이후의 사람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자신의 종교를 가치 있게 하며, 삶에 긍정적 에너지를 수반하므로 윌리엄이 말하는 ‘열매’들을 보이고 있다.

 

  신비주의 전체를 놓고 보면, 종교적 신비주의는 신비주의의 일부분에만 해당한다. 정신이상 관련 자료와 종교적 신비주의 외에, 편집증인 망상적 정신이상에서 ‘악마적 신비주의(diabolical mysticism)’를 언급한다. 이는 일종의 종교적 신비주의 이고, 종교적 신비주의와 동일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비관적인 정서를 동반함으로 악마적인 신비주의라고 저자는 기록한다.

 

Ⅵ. 공통점과 차이점

 

1. 경험의 중요성

   에드워즈와 제임스의 소개에서 확인 한 것처럼, 에드워즈는 감각이나 경험이 지식을 만들어 간다는 기반으로 부흥의 시기에 사람들의 경험들을 연구하므로 참된 신앙과 거짓 신앙을 분별하는 지표를 제시했다. 제임스도 인식과 경험을 종교의 기반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개인적 신비경험과 종교와의 관계를 연구했다. 이와 같이 두 사람 모두 개인의 경험이 종교와 관계가 있음을 전제로 연구했음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최근의 많은 학자들 또한 종교 경험이 개인의 감정, 정서, 지적 차원과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

 

2. 감정의 중요성

  에드워즈는 감정과 의지를 포함하는 의미인 정서가 의지에 영향을 주며, 신앙은 의지가 표현되는 곳이므로 신앙과 정서가 연결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제임스 또한 감정으로 표현된 부분을 종교 경험에서 주요하게 다룬다. 결국 종교 경험이란 감정과 무관 할 수 없다.

 

3. 두 종류의 구분 : 바른 증상과 바르지 않은 증상

   에드워즈는 미국에서의 두 번의 부흥이 사거라 드는 것을 보면서 모든 정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님을 알고, 참된 신앙의 정서인지 거짓 인지 판단하도록 했다. 참된 신앙의 정서인지 아닌지의 가장 중요한 기준은 회심을 통한 본성의 변화였다. 제임스 또한 종교적 신비주의와 ‘악마적 신비주의(diabolical mysticism)’을 구분했다. 종교적 신비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은 대부분 성숙한 성품으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신비주의를 경험하는 순간에 초월적 지식을 인지하게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악마적 신비주의’의 경우는 신비주의의 경험의 시간동안 부정적 정서들이 지배하게 되는 특징이 있다.

 

4. 경험의 결과

  부흥의 참된 은혜의 정서들을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변화가 있었다. 한 지역에 부흥이 임하게 되면, 범죄율이 줄어들고, 술집이 문을 닫았고 길에서도 기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제임스는 이것을 “열매”를 보고 안다고 표현했다. 제임스가 연구한 대부분의 종교 경험을 한 사람들에게서도 윤리적, 도덕적, 인류애 적으로 선한 “열매”가 나타났다. 부흥의 결과도 그 열매가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는 마음이 커지는 등 긍정적인 정서들이 개인과 사회에 편만하게 된다. 두 사람의 연구 결과 모두 종교의 경험을 통해서 본성의 변화로 인한 삶의 “열매”가 맺혀진다. 좀 더 자세히 설명 하자면, 에드워즈가 말하는 참된 부흥의 정서의 12가지 중 1-4의 표지와 5-12의 표지로 분류한 것과 제임스의 종교 경험의 4가지 특징이 비슷하다. 에드워즈의 1-4의 표지는 정서 발생의 근원에 대한 설명이며, 5-12의 표지는 정서의 결과인 행위 부분으로 에드워즈는 ”기독교인의 실천”인 표지 12를 가장 중요한 표지로 설명한다. 제임스의 종교 경험 4가지 중 첫째는 둘째부터 넷째 까지의 특징의 발생의 기반이 되는 초월자와의 만남이다. 그리고 둘째부터 넷째까지는 에드워즈의 5-12 표지와 같은 행위 부분의 특징을 보여준다. 결국 에드워즈도 제임스도 종교 경험을 통해 개인의 “근원적 변화”가 동반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Ⅶ. 나가는 말

  제임스는 신학 안에 신비주의 “독특한 정서적 분위기를 위한 자리”를 만들게 된다면 철학과 신학이 기반이 되어 신비주의를 통해 신학이 더 긍정적으로 발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제시한다. 이것은, 1750년대 청교도이자, 정통 칼빈주의 신학자인 조나단 에드워즈가 종교와 심리학, 신학을 종합한 작품인 『신앙과 정서』로 이미 시작 한 것은 아닐까?

 

  결론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논문이 아니었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윌리엄 제임스 둘 다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연구를 시작했다. 둘 사이의 차이점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했었는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온 것 같다. 종교의 증상에 대해서 연구한 두 사람의 대표적 작품에서 일치 되는 부분을 찾게 되어 하나님의 경륜을 본 듯하다. 정통 칼빈주의와 심리학자의 연구 결과가 비슷하다는 것에서, 지혜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성전 앞에서 하신 “이 모든 것이 다 내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냐”(행7:50) 말씀이 생각났고 이방인 고넬료에게 보내시기 위해 고정된 틀에 박혀있는 베드로를 세 번이나 설득하신 하나님의 열심이(행 10:1-48) 생각났다. 우리는 유대인과 이방인, 정통신학과 경험주의 심리학 이렇게 구분하고 나누지만 이 모든 것을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시다. 이번 논문 또한 모든 학문가운데서 하나님의 경륜이 드러난다는 것을 보여준 예가 되길 바란다. 학문이 문제가 아니고 항상 오용하는 우리 인간의 욕심이 문제인 듯하다.

 

  일차자료로 사용한 책들은 모두 중요한 책들 이었는데, 완독하거나 충분하게 이해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 충분히 조사하고 연구하지 못해서 용어와 개념의 정의를 명확히 못하고 시간에 끌려 진행한 부분이 아쉽다. 『Religious Affections』은 국내에 『신앙과 정서』와 『신앙 감정론』으로 두 권이 번역되어 있는데, 처음에는 두 책이 같은 책인지 모르고 진행했다. 두 권을 같이 두고 비교하면서 보았으면 더 풍성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일차자료의 원본이 아닌, 번역본을 참고한 관계로 많은 소논문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으며, 그러는 중에 본 논문의 주요 주제와는 거리가 있지만 더 깊이 있는 세계를 만나기도 했다. 논문을 써야 하는 시점에 와서야 너무 방대한 자료를 두 개나 다루고 있었다는 때늦은 주제파악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원하는 만큼의 결과를 보이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있지만, 이제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 경험과 조나단 에드워즈를 어떻게 공부해야 할지 조금 감을 잡은 것 같다. 이번 논문에서는 기독교와 종교의 차원에서 부흥의 시대에 영향을 끼친 청교도 신학자 조나단 에드워즈와 심리학의 대가인 윌리엄 제임스의 연구 방법과 결론에 대해서 간단히 다루었다. 기회가 된다면 두 대가를 조금 더 깊이 연구하여 한국 기독교와 목회자 분들께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을 정리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참고문헌 

 

[일차자료]

James, William.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김재영 역. 파주: 한길사. 2019.

Edwards, Jonathan. 『신앙과 정서』. 서문강 역. 서울: 지평서원. 2009.

Edwards, Jonathan.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노병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이차자료]

가요한. “종교적 경험의 발달적 이해.” 「한국기독교상담학회지」. 28/2(2017). 9-43.

김재영.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이론.” William James.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김재영 역. 파주: 한길사. 2019.

김정두. "경험과 영성과 신학의 관계성에 관하여-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심리학을 바탕으로." 「신학과 실천」 35(2013). 485-506.

백금산. “영적 체험의 분별 기준을 제시한 명작.” Jonathan Edwards. 『성령의 역사 분별 방법』. 노병기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15.

송준화.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사상 연구.” 이론신학과 조직신학 석사학위 논문. 호서대학교 연합신학전문대학원,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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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나단 에드워즈와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 체험 비교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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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들어가는 말

Ⅱ. 조나단 에드워즈

Ⅲ. 윌리엄 제임스

Ⅳ.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에서의 부흥 경험

Ⅴ.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 경험

Ⅵ. 공동점과 차이점

Ⅶ. 나가는 말

 

 

  본 논문에서는 기독교에서 부흥시기의 신앙 체험과 타종교에서 말하는 종교 경험을 비교해 보고자 한다. 기독교를 대표하여, 기독교 역사에서 두 번의 부흥을 경험하고 부흥에 나타나는 경험들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증상과 거짓 증상들을 분별하는 표지를 제시한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에서 살펴본다.

  심리학적으로 종교 체험을 연구한 미국의 심리학, 종교학, 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종교 경험과 그 증상들을 알아본다. 조나단 에드워즈가 말하는 거룩한 정서의 결과들과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과 그 결과들 사이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주제어 :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윌리엄 제임스, 종교 경험 *

*본 논문에서는 종교 경험신비 경험/체험을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음을 알린다.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김재영 역. 한길사.

Ⅰ. 들어가는 말

 

  GTU에서 기독교 영성학 박사과정 프로토콜의 기초를 닦은 샌드라 슈나이더스(Sandra Schneiders)는 “한 개인이 인식하는 궁극적 가치의 지평을 향한 자기 초월을 통하여, 삶의 통합을 위한 과제에 의식적으로 참여하는 경험” 이라고 영성을 정의했다. 그러므로 영성에는 경험이 수반된다. 그러나 신학에서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이면서, 우연적인 경우들이 많으므로 학문적으로 많이 논의 되지는 못했다. 심리학자이자 종교철학자인 윌리엄 제임스는 종교심리학적으로 각 개인의 신비체험들을 심층적으로 연구 했다.

  기독교 역사에서 영적 경험과 그에 대한 분별에 대해서 기록한 것은 가톨릭의 이냐시오 로욜라의 『영신수련』이 대표적이다. 개신교에서는 역사적으로 부흥의 시기를 생애에 두 번이나 경험했던 조나단 에드워즈가 부흥을 경험하는 개인과 공동체를 관찰하면서 참 신앙 체험과 거짓 신앙 체험을 가리는 기준에 대해서 논했다. 이냐시오와 조나단 에드워즈를 비교 연구한 논문들이 있다.

  윌리엄 제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는 종교 체험 자체를 연구하고 결과를 분류한 경우 이므로 본 논문에서는 두 사람의 대표적인 저서에서 나타나는 종교 경험들을 통해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비교해 보고자 한다. 『신앙과 정서』의 내용이 부흥 경험에 대한 해석이었으므로,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도 주로 종교적 경험의 해석에 집중해서 보도록 하겠다.

 

  먼저는 윌리엄 제임스와 조나단 에드워즈가 왜 이런 연구를 하게 되었는지 그 배경을 알아보고, 그들의 대표 저서에서 나타나는 특징들을 분석해 본 후에 둘의 차이점과 공통점을 정리하도록 한다.

 

Ⅱ. 조나단 에드워즈 (Jonathan Edwards, 1703-1758)

 

  조나단 에드워즈의 뿌리는 청교도에 있다. 청교도들은 설교를 중시했으며, 개인의 영적, 윤리적 신앙 모델을 제시하고 있었다. 이러한 신앙을 뒷받침 하는 사상은 칼빈주의 였다. 에드워즈의 부친은 청교도인 디모데 에드워즈로서, 이스트윈저 회중교회의 목사로 61년간 시무했다. 어머니 에스더 솔로몬 스타다드와의 사이에서 11남매 중 5번째 이면서, 독자로 태어났다. 외할아버지 솔로몬 스타다드는 뉴잉글랜드에서 영향력 있는 교회인 매사추세츠의 노샘프턴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다.

  에드워즈는 13살에 예일 대학에 입학하고, 20세가 되기 전에 일생의 지침이 될 70 가지 결심문을 만들어 매주 한 번씩 읽으며 주님의 뜻에 합당한 삶을 살고자 고민했다. 늑막염으로 목숨을 잃을 뻔한 경험 이후로 구원의 문제를 주된 과제로 삼았다. 청교도들은 일기를 썼는데 1723년 1월 2일 일기에서 그는 하나님에 대한 헌신과 자기 포기를 맹세했다. 1726년 외할아버지가 시무하는 노샘프턴 교회에 외할아버지의 동역자로 부름 받았다. 뉴잉글랜드에서 청교도 신앙이 점차 사그라들고 있었지만 에드워즈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데 열심을 쏟았고, 1차 대각성 운동의 주요 인물 중 한명으로 뽑힌다.

  에드워즈는 영미권에서 지적이고 영적인 신학자로서, 청교도 기반의 칼빈주의 신학자이면서, 회심과 하나님의 주권을 강력히 주장하는 설교자이며, 저술가, 철학자이다. 1734-1735년에 노샘프턴 교회를 중심으로 코네티컷 강변의 마을들을 따라 코네티컷 부흥이 있었다. 에드워즈는 코네티컷 부흥에 대한 이야기를 『놀라운 부흥과 회심이야기』(1737)로 출간했다. 1740-1742년의 제1차 대각성 운동은 뉴잉글랜드 전 지역에 퍼졌다. 대각성 운동의 주역인 조지 휫필드가 1740년 10월 7일부터 4일간 노샘프턴에서 설교를 하는 동안 1734-1735년과 같은 부흥이 일어났다. 두 번의 부흥을 경험하면서 영적 체험들과 부흥의 소멸을 관찰하면서, 에드워즈는 참된 신앙의 체험과 그렇지 않은 경우를 연구하여 정리했다. 에드워즈가 이렇게 정리하게 된 이유는 영적 부흥이 진행되는 그 시대에 영적인 증상들이 동반되며 나타나는 부흥을 반대하는 이성주의자들과 영적 증상들에 열광하는 열광주의자들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에드워즈는 이성주의자들에게는 부흥을 변증하고, 열광주의자들에게는 이성을 강조함으로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고 부흥의 상황들을 연구하고 중재하였다.

  에드워즈는 계몽주의와 자연과학에 대해서도 열린 자세로 연구하였다. 1720년 에드워즈는 뉴턴이나 존 로크의 영향을 받아 “원자에 대하여”(Of Atoms, 1722), “존재에 대하여”(Of Being, 1722), “마음”(The Mind, 1724) 등의 과학적 저술을 했다. 존 로크의 경험주의를 기반으로 지식들이 감각이나 경험으로 만들어 진다고 했다. 과학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예방접종을 적극적으로 하게 해서 1758년 1월 뉴저지 대학 학장으로 취임한지 한달 만에 천연두 예방 접종의 부작용으로 사망했다.

 

Ⅲ. 윌리엄 제임스 (William James, 1842-1910)

 

  미국의 심리학, 종교학, 철학자 이다. 어려서 그림을 그렸으나 부친의 반대로 그림을 계속하지 못했지만 그림에 대한 아쉬움을 가지고 있다. 학창 시절 몸이 너무 약해서 똑바로 앉아서 독서도 할 수 없어서 주로 누워서 책을 봤던 자신의 자화상이 있다. 하버드 대학의 과학부 화학과에 입학했다가 의과대로 진로를 바꾸어 1869년 의학 박사 학위를 받고 1875년에 미국의 대학 최초로 심리학을 강의했다. 하버드에서 생리학과 철학교수를 지내며 실험에 기초한 심리현상 연구로 영어로 씌어진 최초의 완벽한 심리학 연구서로 평가받는『심리학 원론』을 1890년에 출판했다. 이후 제임스는 인간의 근원적 현상인 종교와 철학 문제에 집중하게 된다. 이 시기에 에든버러의 기포드 강연의 초청을 받아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을 20개 주제로 나누어 강연한 것이 책으로 출판되었다. 그 이후로는 급진적 경험론에 대해 자신만의 사상을 확립하면서 강연과 저술을 펼쳤다. 대표적으로 1908-1909년에 옥스퍼드 히버트 강연이 있다. 이 시기에는 『프래그머티즘』, 『다원적 우주』, 『진리의 의미』등을 저술했다.

제임스 자신이 어린시절 미국과 유럽을 옮겨다니고, 다양한 분야를 공부한 경험에서 오는 정체성으로 인한 방황과 신체적, 심리적 질병으로 고통 받던 아픈 영혼이었다. 1870년 초부터 영적 고통을 경험하게 되면서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같은 성경 구절 들로 고통의 상태에서 나오게 된 신비 경험이 있다. 자신의 영적 체험들과 기독교 문화에서의 성장에도 불구하고 제임스는 예배에 적응하지 못하면서 다양한 영혼의 갈등들과 고통당하는 사람들의 삶에 공감하게 되었다. 이런한 경험적 바탕으로 제임스는 종교학(A Science of Religions)을 종교적 경험을 전인격적으로 분석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인식과 경험이 종교의 기반이자 주요 내용이기 때문에, 종교심리학을 이용하여 종교의 신비 상태들을 분석하는데 각 개인의 신비적 경험들을 연구하면서 경험과 종교의 관계를 생각해 본다. 제임스는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형이상학적인 종교의 본질을 밝히는 것이 아닌, 종교 현상의 다양한 자료들을 분석하여 종교현상의 주요 특징들을 경험론적으로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Ⅳ. 조나단 에드워즈의 ‘신앙과 정서’에서의 부흥 경험

 

  조나단 에드워즈는『신앙과 정서』를 크게 3부분으로 구성했다. 1장은 “정서의 본질과 신앙에서의 정서의 중요성에 관하여“ 마음의 정서와 참된 신앙을 이루는 여러 가지 정서들을 논하고 기독교 교리를 기반으로 정리를 한다. 2장은 은혜에 속한 정서임을 확증하지 못하는 경우와 3장에서는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들의 특징들을 제시한다. 에드워즈가 본서를 작성하게 된 경위는 2번의 부흥의 시기를 경험하면서, 부흥의 시대에 동시에 거짓 신앙도 함께 일어난 것을 보았다. 그는 말라기 3장 18절의 말씀으로 참 신앙과 모조품을 분간 할 것을 주장한다. 그는 사도시대, 종교개혁 시대 뿐 아니라 미국에서 있었던 두 번의 부흥이 제압되는 과정들을 보면서 사탄의 방법을 알게 되었다. 그러므로 신앙 부흥의 시기 마다 참과 거짓 신앙을 구분하라고 경고한다.

사탄은 사람들을 스스로 괜찮은 사람이고 거룩하다는 확신을 갖게 함으로 타락 시킨다.

사탄은 ‘이 방법’으로 신앙을 모호하게 만들고

성도의 신앙 정서를 변질되게 만들기도 하고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로 의도적 죄를 짓게도 한다.

 

또한 하나님을 향한 열심이라고 생각하고 서로 대적하는 일을 하게 만드는데, 『신앙과 정서』를 통해 성령의 역사의 ‘구원하는 본질’과 표증들을 보여주고자 한다.

 

  신앙에서의 정서의 중요성을 정리한 1장에서 “마음의 정서(affections of mind)”란 “한 인간의 영혼을 구성하고 있는 의지와 성향이 지닌 더 활기차고 감지할 수 있는 활동” 이라고 정의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정서란 감정과 의지가 내포된 의미로 행위의 기반이 됨을 주장한다. 그러므로 신앙은 먼저 내면적 감정과 의지로 나타나고 참된 신앙은 ‘경건의 능력’(딤후 3:5)이 나타나는데, 이는 자기 영혼에 관심을 갖게 되고, 행실에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참된 신앙의 부분으로 저자가 주장하는 정서는 다음과 같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두려움의 정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의 정서, 죄를 싫어하고(미움) 하나님과 그 백성인 인류에 대한 사랑의 정서, 거룩함을 쫓는 거룩한 소원과 기쁨, 슬픔의 정서, 은혜에 감사하는 감사의 정서와 긍휼의 정서 그리고 그리스도가 인류 구원을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던 열심의 정서가 참된 신앙을 가진 성도의 정서라고 주장하며 이 모든 정서를 포함하고 계신분이 그리스도 라고 정리 한다. 부드럽고, 경건한 정서에 의해 마음은 쉽게 감동을 받게 되고, 마음이 굳은 사람은 경건한 정서가 결핍된 마음이므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떠나게 된다. 성경의 예에서는 출애굽 당시의 바로 왕과, 에스겔과 이사야서에서의 이스라엘과 같다고 볼수 있다. 이와 같이 정서는 신앙에 큰 영향을 미치므로 “거룩한 정서 없이는 참된 신앙도 존재하지 않음이 명백“하지만, 모든 정서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은 아니므로 정서를 분별해야 한다. 그러므로 에드워즈는 신앙적 정서임을 확증하는 표지가 될 수 없는 12가지 경우를 나열한다.

(1) 신앙적 정서가 고조 된 것이라고 해서 참된 신앙적 정서는 아니다.

(2) 정서가 몸에 미치는 영향력으로는 참된 신앙적 정서인지 알 수 없다.

(3) 유창하고 열정적으로 말하는 것으로는 알 수 없다.

(4) 인위적이지 않다고 해서 진정한 신앙적 정서인지 알 수 없다.

(5) 정서와 성경 말씀이 함께 임하는 것이 참된 신앙 정서의 표지가 될 수 없다.

(6) 사랑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해서 참된 신앙적 정서인지를 알 수 없다.

(7) 여러 신앙적 정서들이 같이 나타나는 것이 진정한 신앙적 정서인지 알 수 없다.

(8) 회개 후에 위로와 기쁨이 무조건 신앙적 정서라고 확정 할 수 없다.

(9) 예배에 열심을 보이고, 신앙의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고 해서 참된 신앙적 정서라고 확정 할 수 없다.

(10) 찬양한다고 그것이 참된 신앙 정서의 표지는 아니다.

(11) 자신의 상태가 좋고, 경험이 영적이라는 것이 표증은 아니다.

(12) 사람들을 감동시키더라도 그 정서들이 참된 신앙적 정서인지 확언할 수 없다.

 

여기까지의 12가지 표지들은 에드워즈 당시 부흥을 왜곡하여 모든 정서적 경험을 성령의 역사라고 믿는 열광주의자들을 겨냥하고 정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학자들은 보고 있다.

 

  책의 세 번째 부분에서는 은혜롭고 거룩한 정서들의 확실한 표지를 설명한다. 에드워즈는 회심의 개념을 “마음의 감각“에 대한 변화라고 했는데 에드워즈 자신이 변화 가운데 신학적, 철학적, 심리학적 성찰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확실한 표지 12가지는 개인 경건과 회심의 연구의 결과이다. 12가지는 다음과 같다.

(1) 참된 신앙의 정서는 마음에 신령하고 초자연적이며 거룩한 작용들로부터 발생한다.

(2) 이기심이나 자기 애착이 아닌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인식이 기반이 된다.

(3) 거룩한 정서는 하나님의 아름다우심에 대해 인식하므로, 도덕적 탁월성이 동반된다.

(4) 하나님에 대한 것들을 이해하고 인식하는 마음이 동반되는 정서이다.

(5) 진리에 대한 합리적이면서도 영적인 확신이 함께 한다.

(6) 정서들이 복음에서 오는 겸손을 수반한다.

(7) 성품에 변화가 온다.

(8)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간다.

(9) 마음을 부드럽게 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동반된다.

(10) 거룩한 정서들은 균형이 맞혀진다.

(11) 현재의 영적 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하나님을 향해 더 갈망하는 마음이 있다.

(12) 신앙이 실천으로 열매를 맺어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상기의 12가지 중 1-4의 표지는 정서가 발생하게 되는 근원에 대한 설명이며, 5-12는 정서의 결과로 나타나는 행위 부분으로 볼 수 있다. 에드원즈는 표지 12를 가장 길게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기독교인의 실천”이 중요한 표지임을 알려준다. 참된 신앙적 정서는 기독교인의 본성과 행위가 내주하시는 성령에 의해 변화 되어 실천적으로 “열매”를 맺는 삶임을 보여준다.

 

기독교 영성 연구_26장 해석 (2/2)

필립 쉘드레이크(Phillp E. Sheldrake) 박사

더럼대학교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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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역사에 지혜가 있는가?

2. 정황과 문화의 중요성

3. 정황과 선택

4. 해석과 의식화

5. 영적 “고전”의 본질

6. 해석 과정

7. 의미의 본질

8. 텍스트의 배후에 있는 것

9. 텍스트의 구성

10. 텍스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가?

11. 잠재적 독자 공동체란 무엇인가?

12. 결론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6. 해석 과정

  해석의 결과가 적용되는 것을 의미할 경우 문제점은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오늘날에 맞는 내용으로만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우와 저자의 의도에만 집중하고 독자의 상황을 무시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를 극복하기 위해 ‘텍스트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저자는 제시한다.

 

  텍스트와의 대화를 한다면 텍스트의 역사적 정황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쓰여진 시대와 읽혀지는 시대 사이의 용례도 현 시점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 지식을 이용한 해석이 어느 정도 가이드가 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계시⌟의 경우는 실제 경험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 ‘사후적 관점‘으로 한 해석의 기록이므로 역사적 지식이 해석에 큰 변수가 아니다.

 

  저자는 해석에 대한 전통적 접근으로 근대 독자들은 이미 고전에 부여한 가치나 경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이해에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현대 해석학에서는 종교적 세계에 의해 저자의 원래 의도를 넘는 텍스트의 가능성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알아가는 다양한 접근법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로완 윌리엄스는 프랑스 신학자 리쾨르가 텍스트의 ‘계시적 본질‘에 너무 집중해서 해석 과정의 ’계시적 특징‘에 대해 다루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현재 독자와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는 텍스트가 계시의 장”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텍스트의 해석을 위해서는 지적 정밀과 인격적 접근이 둘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적 고전에 대한 해석은 음악에 대한 해석처럼 새로운 연주자를 만날 때 마다 새로운 면이 드러날 수 있다. 원저자의 의도안에서 텍스트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므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이는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하는데 텍스트에 가진 의문을 텍스트에 의해 재형성 하는 것이다. 해석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다머는 ‘텍스트는 애초에 독자에게 출발점을 제공한 전제들의 “마법 주문을 깨야”한다’고 강조 한다. 그는 텍스트가 저자의 의도를 넘어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데 그것이 고전을 현재적으로 되살리는 것이 된다. 독자의 현재 상황은 텍스트에 영향을 미치고, 텍스트는 독자의 현재 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가다머는 이해와 해석, 적용은 ‘순간들’이 아니라 ‘통합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지혜가 텍스트로 기록되는 순간 저자와의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텍스트 자신이 의미의 매개체가 된다. 텍스트는 동시대(원래적) 청중들에 대해서 ’거리‘를 둠으로 본질적으로 그것을 읽는 자를 위해 사용된다. 텍스트는 원래적 정황에서 ’거리‘를 둠으로(탈상황화) 후대의 다른 정황과 관련 시킬 수 있다.(재상황화) 이러한 텍스트의 ’거리두기‘는 자신의 원래 상황에서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텍스트와 독자의 대화는 새로운 의미의 해석이 되므로 두 상황을 하나로 묶는다. 독자는 이런 만남으로 새로운 자기 이해를 갖게 된다.

 

7. 의미의 본질

  해서의 과정을 통해 이르게 되는 의미를 관찰하자. 로완 윌리암스에 의하면,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은 ‘실재가 드러나고 지속되는 세상의 점진적 형성(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세상?)’이다.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실재가 드러나는 세상이 지속된다.

 

  오늘날은 “공감의 해석학”, “의심의 해석학”으로 불리는 해석학적 접근을 한다.

  “공감의 해석학”은 ‘잠재적 독자 공동체’안에서 형성된 공감대가 사적 목적을 위해 텍스트를 임의로 사용 할 수 없게 하는 규범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공감한다.(가톨릭, 성공회의 기도문?)

 

  “의심의 해석학”은 현대적 상황에 의해 야기된 질문이 텍스트의 측면과 그것의 신학적 또는 문화적 가정에 비판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장된 의미를 해석하려는 것을 “의심의 해석학”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텍스트가 쓰여진 사회의 정황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므로 텍스트에 드러난 내용 뿐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부분과 배후의 내용,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나 배제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 ‘기독교 역사 전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신학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학적 식민지주의, 여성의 영적 지혜를 무시하는 경향, 일상적 영성보다 성직자의 영성을 우위에 두는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8. 텍스트의 배후에 있는 것

  오늘날의 해석과 관련된 사항들을 검토해 보면, 첫째는 텍스트 배후의 내용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이다. 예를 들어 예수회의 ⌜헌법⌟은 그 배후에 ⌜영신수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 ‘텍스트’를 넘어서는 넓은 이해와 관련되는데 ⌜헌법⌟은 법적인 문서라기 보다 영적 경험을 돕는 문서라는 것이다. 셋째 고전적 텍스트는 원칙대로 사용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의 경우에서 보면 이 책은 목회자들을 향한 책이었으나 그들은 별로 관심이 없이 이그나티우스의 경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넷째, 누가 ‘잠재적 독자 공동체’를 형성하며 영적 텍스트에 접근할수 있는 자인지 살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아시시 프란시스의 “태양의 노래”를 사례로 해석한다. 이 텍스트는 자연에 대한 달콤한 사랑으로 볼 수 있으나 이 노래의 핵심은 모든 피조물이 형제 자매이며 그리스도를 반영한다는 것을 말한다. 프란시스는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인데, 만물이 그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는 피조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 프란시스의 사색의 기초이다. 이 시에서 세계는 ‘화해의 공간’이다. 이 시의 배후에 있는 다른 텍스트로 ⌜증언⌟을 기초 할수 있는데 그 책에서 프란시스는 나병환자와 만났던 순간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이 이 시에서 말하는 ‘타인’의 특별한 의미이다. 신체적 질병, 영적어두움으로 나병환자는 추방되었지만 프란시스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고통과 소외속에 있는 인간(‘타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성육신의 핵심을 깨닳았다.

 

9. 텍스트의 구성

  트레이시는 ‘고전’을 문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상징’안에 존재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건물이나 그림 등은 넓은 의미에서의 ‘텍스트’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징을 읽고 의미를 해석 할수 있다. 중세 성당은 예배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그 자체가 예배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개념을 함축한다. 12세기에는 3층 구조의 삼위일체적 상징이 있었고 고딕의 벽돌 대신 유리를 사용하므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빛이신 하나님을 표현했다. 위-디오니시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미학은 하나님의 조화와 질서가 주제였다. ‘질서’는 건물과 예배 공동체 둘 다를 가리키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주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질서로 표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통합’을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로 이해했다. 이들은 장소가 필요했고 이 장소는 예식을 위한 곳으로 건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예식을 위한 장소인 건물은 또 하나의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 기능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했다.

 

10. 텍스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가?

  고전의 텍스트는 현대인들의 지식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기도 하다. 14세기에 기록된 ⌜미지의 구름⌟은 여러 가지로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색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앞서 제시한 고전 텍스트와 오늘날 독자 간의 대화로 텍스트의 의미가 읽을 때마다 독자에게 재해석 될 수 있는 것으로 풀어간다. 저자와, 텍스트 시대와 거리를 둠으로써 원래 저작당시의 제약을 벗어나 해석 될 수 있다.

 

  건물을 텍스트로 보는 경우도 중세의 대성당들이 ‘공동체의 기억과 열망을 간직한 곳’으로의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고전적 텍스트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재해석 된다.

 

  ‘고전’이라는 정의를 위해 트레이시가 주장한데로 ‘텍스트가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 시키는가’인 적합성의 준거와 ‘텍스트는 존재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충실한가’(the text is faithful to a specifically Christian understanding of existence)의 적용의 준거에 따르는 것에 저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이 준거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미결인 채로 진행됨을 인정한다.

 

11. 잠재적 독자 공동체란 무엇인가?

  누가 텍스트를 해석할 것 인가에 따라 텍스트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결과가 달라진다. 이러한 ‘잠재적 독자 공동체’는 시대에 따라 변하게 된다. 예로 들었던 ⌜영신수련⌟의 경우 작성되던 시기에는 남성이나 성직자 수도회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그 시대에 해석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했던 여성들도 해석하고 있다. 결국 ⌜영신수련⌟을 통해서 유익을 얻었던 자들이 모두 ‘잠재적 독자 공동체’에 포함된다.

 

  종교 건물의 경우 현대에 중세 대성당을 방문하는 방문자들까지도 확장된 독자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12. 결론

  이 글의 대부분은 고전 텍스트의 해석, 역사의 역할과 관련되고, ‘잠재적 독자 공동체’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성 분야에서 해석은 권한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저자는 일부 학자에게만 허용되어 해석 분야가 신비화 되는 것에 반대한다. 저자는 해독 작업을 ‘신학적 의무’로 정의한다. 교육 철학 및 신학을 아우르며 텍스트와 전통에 대한 통찰력을 잘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기독교 영성 연구_26장 해석 (1/2)

필립 쉘드레이크(Phillp E. Sheldrake) 박사

더럼대학교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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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역사에 지혜가 있는가?

2. 정황과 문화의 중요성

3. 정황과 선택

4. 해석과 의식화

5. 영적 “고전”의 본질

6. 해석 과정

7. 의미의 본질

8. 텍스트의 배후에 있는 것

9. 텍스트의 구성

10. 텍스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가?

11. 잠재적 독자 공동체란 무엇인가?

12. 결론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해석이란 ‘이해를 위한 탐구가 되어야’하기 때문에 사실 뿐 아니라 ‘의미’를 고려해야 하므로 복잡한 작업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영성 연구는 모든 학문에서 처럼 정보를 제공하지만 더불어 그 ‘의미’와 ‘적용’의 질문이 뒤따라 간다. 이는 영성이 연구자에게 적용되어 변화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영성 연구에서의 해석을 위해서는 학제간 연구가 필요하다. 고전적 해석의 방법인 역사, 언어, 문화적 방식 뿐 아니라 해석 대상인 영성의 특징으로 신학적 도구와 철학, 사회 과학, 심리학적 방법론 등도 고려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도구인 영적 전통 및 성경은 그 자체에 깊은 의미가 있다. 영적 전통 및 성경에서 제시하는 것은 우리의 ‘인식적 지혜’를 넘어서지만 우리가 따를 경우 우리를 변화시키므로 지적 접근 뿐 아니라 사색적 접근이 필요하다.

 

1. 역사에 지혜가 있는가?

  영성 연구를 위해 해석해야 하는 텍스트와 전통들은 해석하려는 우리와 역사, 문화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러므로 ‘역사’의 본질이나 가치를 어떻게 보는가가 해석에 기본적인 영향을 미친다. 현재 서구문화에서는 ‘역사는 단지 지나간 과거에 불과하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역사를 버려야 하는 보수 세력으로 인식하는 사람들과 신속성(immediacy)에 길들여진 세대들에게 역사는 의미가 없어졌다. 그러나 역사는 자기 정체성의 한 부분이고 이것은 ‘전통’으로 각 세대에 맞는 역사를 전할 뿐 아니라 현재와 연결하여 나타난다.

  역사에 대한 이런 점에도 불구하고 역사는 영성과 영적 가치관 해석의 기본적 요소이다. 영성 연구에서는 영적 텍스트와 저자의 시대의 정황, 오늘날 해석자의 정황을 고려하여 해석한다. 그러나 영적 고전의 경우는 저자의 명확한 의도에만 초점을 맞추었다.(p672, [질문] 이문단은 성경과 고전의 해석법을 다르게 한다는 의미일까요? 영적 텍스트는 성경이고 영적 고전은 ‘고백록’같은?)

 

2. 정황과 문화의 중요성

  1960년 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 요한 23세는 역사 자체가 하나님을 인식 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했다. 신앙과 역사, 종교 역사와 세계역사는 분리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영성은 역사의 영역 안에 있다. 13세기 탁발 운동(아시시의 프란시스, 클라라)의 가난에 대한 강조는 가난한 사회의 상황에 대한 영적, 사회적 반응일수 있다. 그러므로 영적 전통의 해석을 위해 역사적 정황을 연구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 이렇듯 성경을 역사를 고려하여 비판적으로 연구하면, 성경의 가치를 정황(정황은 어느 정도 문화에 의해 결정된다.)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다양하게 적용 할 수 있으며, 다양한 방식으로 전통을 발전시키거나 기록 할 수 있게 된다. (비판적 연구에서 ‘문화’란 세계관 뿐 아니라 그 시대에 상징들로 만들어진 패턴이며 그 패턴을 발전시키는 수단까지를 포함한다. (ex)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

 

  문화 자체가 여러 의미를 가지는 ‘잠재적 텍스트’일수 있다. 그러므로 해석이 더 복잡해 지는데, 문화를 형성하는 여러 관점들은 사람을 모으게 하고 각각 일정한 기능을 하게 한다. 결국 문화는 세계관을 형성하고 그 세계관의 산물인 텍스트는 문화의 표현이 된다.

 

  믿음의 행위는 문화 속에 있에 있으므로, 기독교 영성에 있어서 정황은 영성의 형식을 만들어내는 본질적 요소가 됨에도 로욜라의 이그나티우스는 모든 시대에 본이 될 수 있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칼라너와 그 형제들이 분석했다. 그러므로 영성 역사의 연구에서 종교적 태도와 가치관이 문화의 지배를 어떻게 받았는가에 대한 협소한 연구를 지향하지 말고, 신학적 이론과 사회적 정황이 고려된 중도적 입장으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

 

3. 정황과 선택

  영적 전통에 대한 해석에는 정황으로 인한 비판적 질문들이 필요하다. 첫째는 거룩에 대한 관점이다. 거룩한 사람들의 범주나 장소나 사물등을 생각해 볼수 있다. 둘째는 영성을 만드는 사람드이 소수 계층의 사람들의 경험을 고려했는지, 셋째는 어떤 것을 영성으로 선택하고 거부했는지 검토해 볼수 있다. 예를 들어 중세 여성운동(베긴수도회)을 거부했는데 그에 대한 동기를 검토하므로 그 당시에 선택한 것이 거부한 것보다 절대적이었나 검토해 볼 수 있다. 넷째, 그 시대에 영성과 어울리지 않는 집단들이 어떤 부류였는지, 왜 그랬는지 등을 관찰해 보아야 한다.

 

  역사 연구에는 선택 사항들이 많다. 우리가 어떤 기준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해석에 영향을 끼친다. ‘시간적 영역의 선택’은 각 시대가 서로 영향을 주고 받은 것과 여러 세대사이에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고려해야 한다. ‘지리적인 영역의 선택’도 마찬가지인데 연구 하는 주제의 시대의 ‘변방’과 ‘중심’이 해석하는데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예를 들어 켈틱 영성(아일랜드 영성)은 지금까지는 그 자체 연구보다 라틴 전통으로 흡수된 관점에서 연구되었다. 마지막으로 ‘특정 증거의 선택’인데 하나의 자료에만 너무 배타적으로 초점을 맞출 경우 그것은 그 시대와 지역을 아우르는 대중적인 신앙이 아닐수 있다.

 

4. 해석과 의식화 (Interpretation and Commitment)

  영적으로 중요한 성경과 특정 텍스트에 대해서는 그 해석을 위해 특별한 통찰이 필요하다. 텍스트를 해석하는 방법은 독자들이 그 텍스트를 읽는 이유와도 밀접하게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나 특별한 영적 텍스트(이하 지혜문헌)의 해석을 위해 독자가 그 글을 읽는 이유를 고려한다. 그래서 지혜 문헌의 해석에서 “활용방식“을 적용한다. 독자가 텍스트를 이해하려는 이유는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라 활용하기 위한 것이므로 텍스트를 읽는 독자들의 목적은 자신의 ‘변화’이다. ‘지식 및 해석에 대한 변화적 접근’은 데이비드 트레이시 및 로완 윌리엄스 같은 철학적 신학자들도 지지한다.

 

5. 영적 “고전”의 본질

  오늘날의 삶에도 적용되는 고전에 대한 해석은 중요하다. 영적 고전들은 역사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현재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므로 그 중요성이 강조된다. 이것이 “고전”의 의미이다. 고전은 설득력이 있고 독자에게 도전을 주며, 변화를 이끌어 낸다.

 

  영적 고전의 중요한 요소는 committed text라는 것이다. 이들은 성경처럼 특별한 해석으로 이끌어 독자로 하여금 ‘commitment’하게 한다. 트레이시는 “고전적 텍스트”는 시대물과 질적 차이가 있으며, 같은 text가 특정 상황에서 새로운 적용이 가능하며, 해석자에게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힘이 있다고 제시한다. 고전에는 이와 같은 “특수성”과 독자에게 변화를 요구하는 “보편성“이 모두 존재하며, 저자는 ”고전“을 인물이나 사건, 건물까지도 고전의 텍스트로 다루고 있다.

 

기독교 영성 연구_18장 심리학 (2/2)

 

자넷K.러핑(Janet K. Ruffing) 박사

포덤대학교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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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영성 정의에 관한 문제

2. 정신 분석 이론들

3. 하나님에 대한 표상들

4. 인지 이론가들

5. 분석적이고 초인격적인 심리학

6. 초월성

7. 영성을 측정하는 임상적 도구의 발달

8. 기독교 영성 연구에서 질적 연구 방법

9. 결론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5. 분석적이고 초인격적인 심리학

1) 프로이트 : 종교는 리비도에 대한 방어적 왜곡이며, 욕망을 성적으로 해석

2) 융

. 프로이트의 위 두 가지를 동의하지 않고, 리비도를 ‘열정적 갈망’으로 해석

. 심리적 치유는 영적 차원을 통해 발생한다고 여김

. 분석 심리학 : 중년 이후에 일어나는 심리발달에 초점 맞춤 (본질적으로 영적인 문제로 믿음)

 

. 영성과의 관계 : 영적 체험을 꿈과 상징을 신적인 것과 관련하여 해석하므로 간학문 대화 가능

  . 융이 학문적 저술에서 하나님과 성령의 존재 가능성에 대해 모호하게 남김으로, 개념의 모호함이 도리어 융의 이론적 기반을 기독교에 적용하는 여부에 대한 많은 연구를 하게 만듦

. 분석 심리학 : 개인들의 의식적 이해를 통하여 내적 정신의 과정을 묘사 하려고 시도

  (1) 단점 :

    - 직관적이고 관계적인 삶을 무시하거나, 지성적이고 추상적이 될 경향

    -  실세계에서의 활동과 결과보다 내부의 의식의 결과에만 초점 둘수 있음

    -  어떤 이들에게는 영성의 영지주의적 형태로 보이기도 함

  (2)  기대되는 점 : 그리스도인의 의식을 형성하고 정신 에너지를 조직하는 기독교 상징들과 예식, 이미지들의 탐구 방법을 풍부하게 한다.

3) 로베르토 아싸졸리(Roberto Assajoli, 초인격적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 ) :

. 분석 심리학의 상징들을 실질적 방식으로 발전 시킴. 중간 무의식에서 잠재력을 분해하고 통합 (자아도 무의식의 어떤 일부도 아님)

. 깨어있는 상상의 안내를 통해서 통합되지 않은 이미지를 만남으로 종합적 이미지로 변형될 때까지 계속 수정하면서 초인격(?) 주위로 통합된 정신적 성장이 촉진 가능

. 상징을 이용한 방법과 정신 에너지의 분해와 통합의 방법은 기도 혹은 환상이나 신비적 상태로 나타날 때 이 과정들이 이해되고 점차 자라날 수 있다.

→ 이미지, 정신건강, 신체 건강의 관계성에 관한 문헌

 

4) 아브라함 매슬로우(Abraham Maslow) : 초인격적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 자아초월심리학)

. 윌리엄 제임스 : 종교 경험 모델 발견한 선각자

. 아브라함 매슬로우 : 자아실현과 절정 경험(peak experiences)

  - 둘 다 종교적 경험에 대한 설명을 사유화하여 특정 종교적 전통에서 탈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이러한 한계 내에서 건강한 영적 발전에 대한 설명을 제공 (p469, 아래서 8번째 줄 재해석)

 

. 초인격적 심리학(Transpersonal psychology, 자아초월심리학)

  - 심리학에서 자기 초월을 퇴행적으로 해석하여 축소하려는 시도에 저항

  -  세계의 다양한 영적 전통과 형식들을 인정

  -  사명선언문의 내용 : “meta-need, 궁극적 가치, 합일 의식, 절정의 체험, 황홀경, 신비적 체험, 존재 가치, 본질, 행복, 경외, 경탄, 자아 실현, 궁극적 의미, 가지 초월, 영, 일상의 신성화, 일제감, 우주적 경외심...관련 개념과 경험과 활동에관한 이론적 연구와 응용 연구,, 독창적 기여, 임상 논문과 소논문의 출판“

  -  영적 비상상황들(spiritual emergencies) : 삶에서 초인격적 부분이 체험될 때, 이해하고 통합할 수 있는 안전한 환경이 필요한 혼란스러운 의식 및 상태 (익숙하지 않은 의식 상태로 들어가는 ‘돌파’(breakthrough) 체험을 약물치료로 분류했었으나 영적 상황으로 해석)

  -  신비적 경험과 병리학적 증상의 구분 시도(성격 발달의 종류를 이해) : (p470, 중간)

    ① 정신적 분열 없이 (일시적 또는 영구적) 강렬한 의식 또는 감각 박탈 상태를 유지하는 경우

       . 신비의 시간이 끝나면 병적 증상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신비로운 경험을 했음을 인식

    ② 신비적 특징과 정신적 특징이 동시에 존재할 때 : 둘 사이를 구분하기 위해 필요한 성격 발달의 종류를 이해하려고 함 (Lukoff 1985).

 

  - 고난, 고통, 학대의 경험으로 인해 영향 받는 영적 자리는 심리학적 자각 아래에 있음(by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에도, 모든 관계와 일상적 경험 모두에 변형을 준다.

  - 관련 문헌 : 동양종교나 영적 실천에 초점

 

5) 켄 윌버 (Ken Wilber) : 의식의 파장 (spectrum of consciousness)

. 의식 지도(map)의 틀에 종교 경험들을 맞추려 함

. 불교가 개인 성장에 영향을 주는 다양한 수준의 의식 설명 (심리치료는 개인 성장과 관련)

  - 오랜 심리적 문제를 영적 실천만으로 처리 불가능

  -  영적 수준의 의식은 심리 치료로 처리 되지 않음 (심리학의 한계)

  -  심리학적 훈련은 특정 종교 전통의 영적 발달과 다름

 

A. 과학과 영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통일된 이론 제작 시도

  (a) 다양한 심리적 치료가 정신의 한 층(layer)만 다룰 수 있다 (ex) 어린 시절 상처는 정신 분석

  (b) 심리학 작업이 영적 발전 앞에 존재 (영적 성장 이전에 심리학적 성장이 있다.)

    cf) 영적 각성이 아이들에게도 발생, 일생의 어떤 시점에서도 발생 가능성 있음

B. 전/전이 오류(pre/trans fallacy) : 초인격적 상태들은 성찰적 자아를 넘는 발달 상태임

 

6) 짐 마리온(Jin Marion) : 윌버의 이론을 기독교에 적용하려는 시도 “기독교 영성의 내적 작업”

. 자신의 경험한 내적 상태 (윌버의 구조 안에서 마리온의 영적 여정 세움)로 제한

. 문제점 : 기독교적 울타리 안에 있는가? 공동체에서는 어떤일이 생길까

 

7) 마이클 워시번(Michael Washburn) : 초인격적 신비주의 대표 서양 신비주의자

. 십자가의 요한, 아빌라의 테레사의 배타적 언급

  - ‘어두운 밤‘을 평범한 중년의 문제로 해석, 모든 중년 경험이 ’어두운 밤‘의 과정을 격지 않음

. 가장 큰 통찰 : 초월이 주는 퇴행에 관한 묘사

(“자아가 소외되거나 일반 집착에서 거리 두는 것을 스스로 발견하는 시기“)

. 대상 관계 및 자기 심리학이 영적으로 어떻게 작용하는지 인식하는 데 도움

 

6. 초월성 (Walter Conn)

. 기독교 영성 연구 목표 : 인간 발전(인간 발달)

. 심리학적 이념이 기독교적 이념과 조화 될 수 있을까 (by 월터 콘)

  - 심리학적 자기 실현은 진정한 자기 성취이고 기독교의 자기 부인이 “진정한 자기 실현을 방해하는 자기에 대한 관심과 갈망과 소망을 거부하는 것”이라면 둘은 조화를 이룬다.

  - 진정한 자기 실현 : 타인을 이롭게 하면서 자신을 초월하는 움직임에서 온다.

. 자기 초월의 사례 : 책임감 있는 결정, 관대한 사랑 등

. 자기 실현의 척도 : 이웃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인지, 도덕, 정서적 자기 초월

. 관계안에서 반복적인 나선형 구조로 성장(억압적이지 않음)

. 자기 초월 방해 : 과거 상처로부터 온 부자유, 전체적 상호 관계적인 상황 고려 없이 자기에게만 초점을 맞추는 것 등

 

7. 영성을 측정하는 임상적 도구의 발달

. 영성 측정 도구 개발 : 과거 동양 묵상 실천에서의 심리적 효과 → 현재 MRI, 뇌스캔 등

 

1) 힐과 후드(hill and hood) : 17가지 범주로, 종교와 영성에 관한 125가지 측정 도구 평가

- 믿음, 태도, 종교적 방향, 신앙 발달, 근본주의, 죽음에 대한 태도, 회중 참여, 만족

 

2) 펫쪄연구소(고령화 특성화 연구소) : 건강 관련 연구자들이 사용 할 수 있는 12가지 영역, 종교/영성을 다층적으로 측정하는 도구 개발

- 영적 체험, 의미, 가치, 믿음, 용성, 개인적 종교 실청, 종교적/영적 극복, 종교적지지, 종교적/영적 내력, 헌신, 조직화된 종교, 종교적 선호도

 

3) 힐과 파가멘트(hill and pagament) : 측정도구 개발에 주의할 점

- 영성 : 종교적 체험의 개인적, 주관적인 측면 – 개인, 주관, 정서, 내적, 비체계, 자유로운 표현

- 종교 : 관념이나 이념적 헌신의 고정된 체계 – 기관의, 형식적, 외적, 교리적, 권위적, 역제된표현

→ 영성과 종교의 양분으로 인해 기관과 개인 영역(영성의 사유화)의 측정 도구를 만들게 됨

→ 영적 표현이 사회적 상황에서 발생되는 것과 조직화된 신앙 전통은 공동체와 개인 영역 모두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간과한 것

→ 영성은 긍정적 요인, 종교는 부정적 요인으로 추정함으로 영성의 부정적 부분과 종교의 긍정적 부분 간과

 

- 주의점 :

  . 종교, 영성 구분되나 관련된 개념이며, 둘다 성스러움을 추구한다는 것 간과

  . 종교 심리학자들의 연구나, 건강한 종교가 심리학에 잘 제시되지 않으므로 생긴 결과

- 정신건강에 관련된 영성개념과 측정도구 개발에 진보는 계속되고 있음

- 종교적, 영적 변화를 측정하는 도구 개발을 소망함

 

- 제안 :

A. 횡적 연구(cross-sectional)보다는 종적 연구(longitudinal)의 측정 도구가 개발이 요구됨

B. 영성과 임상적 종교 심리한 연구사이의 측정도구 개발 부분은 더 많은 연구의 영역

C. 임상에 기초한 정보와 기독교 영성의 이해 사이의 소통을 위한 제안도 영성 연구 분야를 풍부하게 할 수 있음

 

- 연구결과들로 인한 질문들

  . 영성 이해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 기독교 영성 연구자들이 기독교 경험과 실천에 맞는 측정도구의 개발에 기여 *

 

* 과연 측정 할 수 있을까? 현상이 기독교 인지 아닌지 검증 할수 있을까... 이러한 이유로 뇌신경과 상담과 협연하지 못하고 기독교에서 연구가 뒷쳐지고 있을수 있겠다는 생각이 듦. / 백상훈. "불완전의 영성을 향한 제언." 신학과 실천 46 (2015): 361-384. 그레고리의 완덕 :하나님의 무한성과 무제한성 ∴완덕의 불가능성, 하나님을 향한 욕망에 사로잡혀 살아가는 과정 자체 / 쉘드레이크의 ‘불완전의 영성’

 

8. 기독교 영성 연구에서 질적 연구 방법

. 질적(qualitative) 연구 방법이 다용되어지고, 기독교 영성의 새로운 길 제공

  - 양적 연구로 결과 되는 연구의 출발점

  - 제안 사항이 많고, 연구 대상자의 경험을 다양하게 탐구 *

  - 연구자의 통찰과 이해를 끌어냄 (통계적으로 신뢰할 수는 없으나 인간 경험에 대한 새로운 통찰)

  ∴ 기독교 영성 학자들을 위한 적절한 연구 방법

 

* 윌리엄 제임스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 

 

9. 결론

1) 심리학에서 치료는

  - 자신을 알게, 심리적 상처 고치고, 자유를 증진시킴으로 자아를 더 잘 통합하고 작용하게 한다.

  - 인간적 방법으로 제한된다.

 

. 묵상과 기도가 건강에 미치는 결과를 보여주는 심리학적 연구들은 기독교 영성 학자들에게 도움

 

2) 기독교의 기도와 묵상의 주요목적은 하나님과 개인의 관계의 문제

  . 반복된 기도와 묵상으로 개인 삶과 의식에 변형 발생 →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결과

  . 심리학처럼 인간의 기술로 예상된 것으로 제한 될 수 없다.

 

- 영적 투쟁과 변화중의 기도는 스트레스 감소가 아니고 발생 요인일수 있음

- 치유가 죽음을 막을 수 없으나 삶의 의미나 가치 추구를 위한 연구는 평생의 과제

- 요지

  . 심리학적 도구(언어, 개념, 치료방법)들은 중요 하지만 기독교 영성 연구의 도구일 뿐 기독교 영성 연구의 단독 연구 방법일수 없다.

  . 구체적 연구 분야에서 문제의 어떤 현상들을 적절하게 이해하는데 어떤 심리학적 연구와 관점들이 가장 큰 가능성을 제공하는지 발견하기 위해 새로운 학파들과 관점들을 취사 선택 함이 필요

 

기독교 영성 연구_18장 심리학 (1/2)

 

자넷K.러핑(Janet K. Ruffing) 박사

포덤대학교 영성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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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영성 정의에 관한 문제

2. 정신 분석 이론들

3. 하나님에 대한 표상들

4. 인지 이론가들

5. 분석적이고 초인격적인 심리학

6. 초월성

7. 영성을 측정하는 임상적 도구의 발달

8. 기독교 영성 연구에서 질적 연구 방법

9. 결론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기독교 영성에 있어서 연구는 의미와 실천부분이 연구된다. 그러므로 기독교 영성에서 학제간 연구는 기독교 영성사, 성경, 기독교 전통의 역사와 신학을 기본적으로 포함한다. 영성학자가 문제를 풀기위해 여러 추가적 학문을 도입 할 수 있다. 영성과 심리학은 모두 인간의 내면에 초점을 둔다. 두 분야의 이러한 유사성으로 인해 두 학문 사이는 점차 협조와 존중으로 변하고 있다. 심리학에서 내담자의 영성이 치료에 미치는 여러 결과로 인해 심리학에서 영성은 현대에 주요한 연구 주제가 되었다.

  심리학에서의 영성과 관련된 많은 임상 데이터로 인해 심리학 분야에서는 개인의 영성, 묵상의 실천, 사회 활동과는 괴리된 영성과 종교 체험에 대한 개인화된 해석을 인정한다. 하지만 기독교 영성을 연구를 하는 학자들은 ‘기독교 영성 연구에서 심리학의 사용’에 있어서 심리학자들이 신학과 신비의 부분에 정통하지 못 하므로 비평적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약 15년간의 심리학 분야의 많은 연구는 두 학문 간의 대화의 여러 시작점을 제시한다.

심리학의 영향은 영성의 어떤 부분을 측정하는 정신력 측정 도구 뿐 아니라 건강과 관련된 연구에서도 영적 실천과 행복사이의 관계에 관한 자원을 제공한다. 그 외에도 관련된 많은 주제(의식연구, 전이이론 등)들이 있다.

 

1. 영성 정의에 관한 문제

  심리학에서는 기독교의 관점과는 맞지 않는 극적인 방식으로 영성을 이해하기도 한다.

. 기독교에서의 정의 : (신학적 관점) 하나님의 실재, 자기 초월의 영의실재, 초월자와의 관계 경험, 의미, 신자 공동체, 개인의 경험 뿐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이웃 사랑에 헌신하는 것 포함

→ “세계영성”에서 에워트 커슨즈는 사람의 내적 차원을 영이라 부르고 영적핵심은 사람의 가장 깊은 중심이라고 말했다. 자넷은 추가로 ‘영성은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며,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험의 결과로서 우리의 삶을 사는 방식이라고 정의했다. ‘거룩함’에 대한 우리의 반응과 모든 관계와의 경험의 결과를 어떻게 표현하는 것(삶의 방식)을 말한다고 했다. 이것은 역동적인 사랑의 관계로서, ‘세계 거주민’을 돌보는 분(궁극적 사랑의 원천)과의 사랑을 교환하는 것도 포함된다.

. 심리학에서의 정의 : 영성을 기능적으로 정의 (신념을 구성하는 요소, 가치로 영성의 의미를 만들고, 영적 경험을 영성의 구성 요소로 정의)

 

2. 정신 분석 이론들

  프로이트가 종교와 영성을 ‘환상’이라고 하면서, 정신분석 이론은 종교와 적대 관계로 시작 되었지만, 프로이트가 발견한 대부분의 것들은 인간 이해의 일부분이 되었다. 정신병리학에 있어서 개인의 정신적인 부분에 잘못된 것을 발견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정상적인 성장에 관해 설명하는 정신 이론으로 확장되었다. 예를 들어 말러는, 의존 대상을 아버지로 하는 프로이트의 이론을 어머니로 수정하며 의존이 퇴행은 아니라고 수정하셨다.

  에릭슨은 인간의 생애로 확장되는 발달 단계를 제시하며, 신앙이 병의 원인을 밝히기 위해 연구하는 학문(병리학)이 아님을 제안하였고, 그의 발달 단계는 기독교 영성 연구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대상관계이론과 자기 심리학은 또한 기독교 영성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독교 신앙과 신비적 경험에서 자기/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설명하는데 도움이 된다. 기도는 두 개 주체가 서로 영향을 미치는 의식 상태에 들어가는 것으로 이해 될 수 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 긍정적 성장과 자기 발전이 일어나고 대상과 하나님에 대한 이해를 돕게 된다. 심리 발달에 대한 관계이론은 “관계 맺으시는 하나님”인 기독교 영성에 부합한다.

  스티븐 미첼은 인간이 자기 조절(내적 심리)과 동시에 환경을 조절(인간 관계)하는데 그 과정은 서로를 강화시키기도 하고 상충되기도 하면서 상호 침투하는 영역이라고 소개한다.

  하인즈 코후트(코헛, Heinz Kojut)의 자기 심리학은 자기대상(예: 부모)과의 경험을 통한 건강한 자기의 발달과 주관적 경험에 대한 공감으로 통합적 자기를 발전시켜 나가는 이론으로 코후트의 ‘자기애’는 병적이라기 보다 발전적인 개념이다.

  위니컷(D. W. Winnicott)은 엄마가 아이의 필요를 잘 채워주는 환경을 제공함으로 아이가 ‘주관적 전능감’을 느끼지만 아이는 점차 엄마를 하나의 존재로 인식하므로 엄마가 없어도 엄마와의 연결을 유지할 수 있는 ‘과도기적 현상’을 경험한다. 이 과정에서 ‘대상과의 사이의 공간’을 인지하고 타인과 구분되고 자신을 홀로 있을 수 있게 하는 수용력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윌리암 마이스너(William W. Meissner)와 마이클 에이건(Michael Eigen)은 ‘과도기적 현상/공간/대상’에서 종교 혹은 신비적 해석의 가능성을 적용하여 마이스너는 신앙, 상징, 기도에 적용했다. 에이건은 신비에 대한 이해에 적용했고, ‘진정한 자기와의 소통 단절’들 자아에 대한 재 감각 작업과 관련하여 제시했다. 악타르와 파렌스는 종교 체험과 ‘과도기적 현상/공간/대상’이 일체감과 모호함이 일어나는 곳으로 종교적 신념과 느낌과 관련되어 질수 있다고 말한다.

 

3. 하나님에 대한 표상들

. 아나 마리아 리주토(Ana-Maria Rizzuto) : 하나님에 대한 표상, 이미지에 관한 정신 분석학 연구

. 내담자의 주관적 하나님 경험을 탐구 : 삶의 내력, 대상관계, 자애적 균형, 자기 방어적 구조, 치료적으로 작용될수 있는 무의식/의식적 하나님에 대한 표상 형성 방식에 집중함 – 시간에 따라 변화방식 묘사 (치료사들에 의한 변수 발생 하지 않음)

. 하나님에 대한 내적 표상이 시간에 따라 발달, 변화하는 방식의 묘사

∴ 하나님과의 관계가 내담자에게 도움 일 수도 해일수도 있다. (관계적 역동성에 달려있음)

. 하나님 표상

  - 부모 이미지 포함 (때로는 심각하게 병리학적)

  -  의미있는 타자 혹은 상상속 대상 들의 모음

  -  내적으로 표상화된 하나님은 타자와의 만남의 결과로 수정

  -  기독교 전통이나, 가르침, 사건들이 개인이 가지고 있는 하나님의 이미지를 초월하는 경우, 하나님을 재형성하는 것이 일생의 과정에 일어남

  [긍정적인 면]

   - 사랑 많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은 친밀함을 원하는 인간의 갈망에 안정감을 주므로 ‘항상 거기 계시는’ 하나님은 존재 자체로 아이에게 평안을 주는 위니컷의 ‘충분히 좋은 엄마’이미지와 유사

   -  부모가 하나님을 믿을 경우 아이에게는 부모 보다 더 능력있으신 하나님으로 인해 더 위안과 희망을 갖게 됨

  [부정적인 면]

   -  기도하면서 생성되는 하나님의 표상도 있지만, 무의식의 역동으로 나타나기도 함

   -  하나님의 표상들은 전이과정의 일부나 저항 혹은 방어로 사용되기도 함

  [치료사의 역할]

   -  치료사가 내담자의 방식들을 온전히 따라가다 보면 내담자는 오래 부담되던 짐들로 부터 자유케 되는 새로운 유형의 믿음을 획득 할 수 있게 됨.

   -  내담자 과거 삶의 내력과 현재에 근거해서 하나님과 종교를 찾도록 돕기

   -  하나님의 표상이 발전되고 변형된 것을 연구하지 않은 치료사에게는 어려운 분석작업

 

. 하나님을 보는 시각에 관한 임상적 연구 (조셉 키아로치 Joseph Ciarrocchi) : 내적 관계의 다양한 요소 발견을 위해 깊은 탐구를 필요로 한다는 자료가 많아지고 있음 (신학자들도 비평적으로 다룰 것이 필요)

 

4. 인지 이론가들

.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영성은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감각’

. 발달심리학 : 피아제(Piager) 인지 발달(Cognitive development)등 다양한 발달 단계 이론

. 발달단계 : 단계들은 순차적이며, 이전 단계를 성취해야 함

  - 변화를 경험하게 하는 환경과 보측자(변화 증진시키는 도전의 종류)에 의해 촉진됨

. 이론가들과 이론

  -   로렌스 콜버스 : 도덕적 추론으로 도덕 발달 단계연구

  -   캐롤 길리건 : 여성들에게 관계적 돌봄의 윤리가 전형적

  -   제임스 파울러 : 보편적 단계이론을 신앙 발달에 적용

  -   로버트 키건 : 이미 알고 있는 자기를 잃고 새로운 자기를 재구성하는 정서적 과정에서 인지발달 이론 개발

  -   엘리자베스 리벳 : 키건의 인지발달과정 + 여성을 바탕으로 자아 발달에 관한 내용

  -   프레드릭 허드슨 : 성인기 자기재생(self-renewing)에 추가된, 통합된 성인발달 이론 제안

      . 생애의 사명 : 생애의 새로운 시기, 자기에 대한 다른 변화를 일으키게 하는 안정적 지점

      . 영적 발전, 영적 지도, 목회상담에 적용 가능

기독교 영성 연구_11장 기독교 영성에서의 기독론 (2/2)

 

윌리암 톰슨 우베루아가 박사

듀케인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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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역사 및 사회적 좌표

2. 기독교 영성과 기독론 간의 대립

3. 간단한 에피소드 : 선구자로서 경계선에서 살고 사유하기

4. 결합적 접근

5. 새로운 움직임들

6. 평가의 사안들?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4. 결합적 접근

. 믿음과 이성 (영성과 기독론) : 서로 대항하기도 했지만 우호적으로 결합하며 상호 존중

 

4.1 밀접한 결합 (강한 결합)

1) 믿음과 이성의 밀접한 결합의 영역

(1) 유대 기독교와 헬레니즘 문화의 융합

- 신약시대 : 아테네와 예루살렘(교부들의 신학은 철학과 성경적 유산의 협동)

- 중세 : 동방(다메섹의 요한), 서방(보나벤투라, 토마스 아퀴나스) → 극적인 통합 (p298)

(2) 종교개혁 후기 : 르네상스 학파들과의 협동 (신토마스, 신플라톤주의 화한 동방신학), 신앙 & 철학전통 & 인문사회과학의 협동, 기독교와 타 종교 전통사이의 실험적 협동 들...

. 결합의 기반 : 선교 명령의 수행위한 복음과 문화 사이의 연결점 찾기

  - 인문, 철학에서의 통찰들을 수용하여 믿음을 깊이 있게 표현하게 됨 (믿음과 이성의 상호수용)

 

2) 기독교 영성과 기독론의 결합(중첩)의 영역

(1) 기독교 영성의 이점 : 신학과 기독론의 깊은 사유에서 오는 풍성함으로 내면적 경험들을 표현

(2) 신학 : 에큐메니칼 공의회의 교리/신조 : 주관주의나 감정주의를 피하고 교리로 기독교 영성을 알려주고, 제자화 하는 방식으로 영성형성에 도움을 줌 → 교부(모)들의 ‘비학문적’기독론이 신조들의 기반이 되었고, 그들은 헬레니즘과 라틴 철학으로부터 도움을 받았다.

 

4.2 잠재적 결합 영역 (약한 결합) : 영성과 기독론이 서로 자율성을 가지도록 함(상호 동등성)

 

4.3 결합

1) 결과 : 서로를 존중

. 영성은 기독론이 로고스의 과잉(logomania)을 견제

. 이성/로고스는 영성에게 ‘유한한 인간‘임을 기억하게 하므로 로고스에 대한 불신(logophobia) 저지

 

2) 강한 결합 : 믿음과 이성의 공모

. 믿음 : 이성을 생기 있게 함

. 이성 : 믿음에서 파생된 이성은 믿음을 계속 견고하게 함

  ∴ 비판적 로고스를 금지하는 믿음이 미성숙한 믿음

→ 기독교 영성은 모든 신학(기독론, 인간론...)의 기반으로, 모든 신학 안에는 영성이 내재되어 있다.

. 전통 안에서 믿음의 2가지 구분

  (1) 사람이 믿도록 하게 하는 믿음 : 연인들이 좋아서 서로 알기 바라는 것처럼,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신뢰가 형성되면, 스스로 하나님께 개방하면서 말씀의 탐색(로고스의 사변적 과정)이 발생

  (2) 계시되는 진리들에 대한 믿음

 

. 영성 : 경험에서 점점 더 알려고 하는 말씀으로 끌려감 →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 : 믿음은 소망에 의해 힘을 얻은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영성 : 제자도에 대한 경험, 경험에 사랑과 소망의 믿음이 더해져 로고스를 찾게 됨

. 기독론이 학문 이전에도 존재했고 경험(영성)되었으므로 영성과 신학은 강하게 결합되어 있다.

. 현재의 포스트모던과 전세계적 프레임웍은 전통적 개념의 ‘믿음’(칼 바르트 등)을 넘어서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는 하늘의 부름에 반응하는 은혜로운 경험(칼라너, 초기 슐라이에르마허)으로 만들어냈다. 광의의 믿음은 명시적 기독교의 수준을 넘어가지만, 항상 명백하게 기독교적이지는 않더라도, 어떻게든 기독교와 연결되어 있다. 앎의 기초는 믿음의 순간이다.(안다고 한다는 것은 믿음을 전제로 한다.)

 

[정리]

@ 약한 결합 형태

  . 안디옥(그리스도의 인성 강조, 성경해석 역사적이며 문자적인 방법) 전통과 비슷

  . 공관복음서 (신성과 인성, 믿음과 이성의 구별 극대화)

 

@ 강한 결합 형태 : 칼케돈 사상(위격적 연합 : 각 본성의 구별된 특징은 보존됨)

  .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이 “구별속의 일치(분리되지 않는)” 처럼 기독교 영성과 신학도 동일함

  . “알렉산드리아적” : 기독교 전통의 강조(신적 로고스divine Logos가 신-인성 구분의 토대)

  . 바울과 요한복음 : 연합을 극대화 함

 

5. 새로운 움직임들

5.1 초기 계몽주의 : 신앙과 이성사이의 틈 중재하려고 했음 → “경험”에 긍정적 시각

. 영성이 합리주의적이지 않으면서 이성적이어야 했기에, 경험의 “정서적” 측면이 부각되었다. (경건주의, 슐라이에르마허, 로마가톨릭 근대주의자)

1) 약한 결합 : (적응주의 위험) 주류 문화(철학)에 굴복 할 수 있으므로 기독교 자유주의라 불림

2) 강한 결합 : 문화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지만, 단성론에 빠질 수 있음.

 

5.2 후기 계몽주의

. 개인적(프로이트의 정신분석), 사회적(막스와 사회학자들) 병리학이 두드러지면서 사회의 치료에 기독론의 구원론과 영성의 역할이 강조되었다. 더불어 사회학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리스도인에게 사회문화적 차원이 중요함이 부각되면서 정치 영성, 생태 영성들이 생겨났다. 적응주의와 사회-정치적 무저항주의는 약한 형태와 강한 형태의 결합적 영성에서 발생 가능하다.

. 후기 계몽주의는 기독교 영성의 기본 자료들(전통적 원천 : 성경, 성례, 교회의 관습)의 역사적 차원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5.3 포스트모더니즘(탈근대) : 다양한 방향 전환의 강화와 도전

. 근대의 연구 결과에 대한 불만족

. 탈근대의 특징 : 근대와 그 부족함 사이의 변증법, 근대가 내러티브 재건하면, 탈근대는 해체

. (계보학자의 연구 : 니체) 근대 연구는 주로 자신의 권력, 이익의 관점에서 과거를 바꾸면서 직면

. 결합적 영성은 대조의 긴장에 있고, 복잡함을 피하지 않고 참여한다.

. 영성과 기독론은 결합으로 기울인다. 행15장의 예루살렘 공의회(유대인 기독교와 이방인 기독교 사이 조정), 오순절 사건(진정한 믿음을 구성하는 문화와 언어의 선함 확인)등은 결합의 예들이며 이들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것은 은혜가 하나의 문화 관습에 묶여 있을 수 없음을 보여주며 말씀이 육신이 된 것과 함께 비교된다.

. 교황 레오 : 결합적 영성으로 신성은 작아지지 않고 인성이 높아진다는 소망을 주장함

 

5.4 세계화 : 성토요일의 경험 (죽음도 부활도 아닌 그 사이 : 경계선)

. 경계선 질문들 : 인종 청소인가 통합인가. 예수님은 세계화의 도전에 장애물 or 해결책

→ 예수님의 전통적 주장에서 답 찾기 : 죄의 분열을 치유하며, 타인과의 화해의 토대

→ 다양성과 특수성을 존중하는 안디옥 영성을 따름.

. 계속 논쟁해야 하는 믿음과 이성의 문제로 신학적 인내와 관용이 필요하다. 기독론과 영성이 연합되어 있다면 인내와 관용(두 가지를 성육신적 영성에 적합한 미덕으로 간주 할 때)이 이루어질 것을 기대 할 수 있겠다.

. 칼케톤에서는 안디옥의 다양성과 특수성, 알렉산드리아의 하나 됨을 다 수용했는데 이는 성육신 안에서 가장 잘 표현 되고 있다. 예수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이 하나 되면서 인간의 특성이 존중되고 보존되고 있다는 것은 ‘본성들’이 축소되지 않고 인간 자신을 위한 공간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믿음에 기초한 이성이 축소되지 않는 것과 같다.

. 삼위일체 : 결합적 영성의 구별 속 일치를 2명의 그레고리(닛사, 나지안주스)는 중도(mean)로서의 삼위일체(헬레니즘의 다양한 신들과 유대교 일신론 사이)를 말했다. 세계화에서 다양성이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지만, 고립이 아닌 하나 됨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삼위일체 개념이 앞으로 우리에게 계속 문제가 될 하나와 다수라는 문제를 풀어갈 때 일치 속에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을 배울 수 있게 하는 희망이 된다.

. 성육신 : 다양성의 일치로서 신성을 더 잘 드러내는 사건이다. 수여자(Giver)가 수여 되신 분(Given)을 통해 연합의 가능성을 제공(선물(Gift))하시고, 인간에게 내주하고 선물에 대해 인간이 응답하는 다양한 그림들을 그려 가신다. 성육신은 우리에 의해 확증되고 이루어진다. 세계화의 시대에 풍성하고 다양한 문화 안에서 풍성하고 다양한 성령의 선물은 서로에 대한 (타자에 대한) 더 큰 존중을 할 수 있게 한다. 세계화는 관용과 인내를 기반으로 페리코레시스(상호교통) 할 것이다.

 

6. 평가의 사안들?

  서로 다른 관점들은 ‘진리’를 어떻게 다룰까? (기독교 내에서도 다양한...) 결합적 영성은 ‘진리’가 믿음과 이성사이의 어딘가에 있으며, 제자도의 삶(영성)을 사는 가운데 열리는 ‘길’(이성)을 따라가면서 발견하는 광명임을 인정한다.

  ‘약한’ 결합은 믿음과 이성사이 모호한 말을 하며, ‘강한’ 결합은 문화 안에서 사색적인 이성에서 나오는 도전을 거절하는 협소한 믿음의 자세가 되기도 한다. 믿음과 이성이 영성의 틀 안에서 자리 잡으면 이 둘의 상호교환은 영적수련, 훈련, 예수님의 성품들을 통해서 건강하게 유지되며, 자신의 영적 병리를 진단 할 수 있다. 사색적 이성의 길을 따르는 믿음의 경험은 조명으로 가는 길에 많은 어두움이 있지만 어떤 것이 그들을 몰아넣지 않는다면, 신앙주의나 합리주의 같은 극단으로 가지 않으므로 어떤 것이 무엇인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기독교 영성 연구_11장 기독교 영성에서의 기독론 (1/2)

 

윌리암 톰슨 우베루아가 박사

듀케인 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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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역사 및 사회적 좌표

2. 기독교 영성과 기독론 간의 대립

3. 간단한 에피소드 : 선구자로서 경계선에서 살고 사유하기

4. 결합적 접근

5. 새로운 움직임들

6. 평가의 사안들?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동의어 정리] 신앙, 믿음 vs 이성, 말씀(로고스)

. 기독교 영성, 영성, 그리스도인의 경험, 기독교 제자도 / 믿음, 신앙

. 기독론, 신학, 비판적인 고찰 / 이성, 말씀

 

. 기독론의 역할은 신앙에서 신학의 역할 (기독교 영성 : 기독론 = 믿음 : 이성 )

→ 믿음과 이성을 형성하는 하는 역사, 사회적 상황을 함께 고려하여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찾을 수 있으나, 역사, 사회적 상황의 지표들이 다양하고 분석이 명확하지 않으므로 믿음과 이성의 관계(혹은 기독교 영성과 기독론의 관계)를 명확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다.

 

* 용어정의

. 기독교 영성/믿음 : 기독교 제자도의 경험

. 기독론/이성 : 그리스도 예수와 관련한 로고스(말씀) (p289, 아래서 7줄)

. 광의 : 왜 기독교 공동체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는가에 대한 고민 - 학문 이전 형식

. 협의 : 광의의 내용에 대한 학문적 문제 (학문적 기술과 방법) - 학문적(scientific) 형식

- 대학 발생 이전부터 존재했음 : 사상가, 집단 (ex) 수도원, 개혁집단, 자발적 지성집단

 

1. 역사 및 사회적 좌표

. 기독교 영성과 신학을 형성한 인류 역사의 5가진 변천 : 성경적 유산, 고대 및 중세적 유산, 근대적 유산, 탈근대적 유산, 전세계적 유산, (복합장르인 종교개혁)

. 사회 문화적 ∊ 역사적인 것 : 기독교 영성에서 연구되는 사회 문화적 상황은 역사의 과정이고 우리는 그 과정 안에 있다.

 

2. 기독교 영성과 기독론 간의 대립 “아테네(이성)와 예루살렘(믿음)이 무슨 상관인가?”(터툴리안,3c)

- 신앙주의 (극단파) : 인간 이성이 부패했으므로 말씀을 이성적으로 보게 되면 타락할 가능성

- 터툴리안 또한 영지주의에 대항하고, 교리적 학문적으로 기독론의 용어들을 정리에 이성 사용

  . “매 순간의 사고가 말이며 당신의 매순간의 의식이 이성이다” - 끊임없이 이성을 사용하고 있음

  . 초기 성령 운동의 옹호자 (몬타누스주의자) : 엄격한 가르침, 이성을 의심하므로 성경과 교리를 문자로만 받아들이는 문제 발생

  . 현대의 근본주의에 터툴리안이 제공하는 것

    (1) 창조론자들의 성경의 문자주의와 과학적 합리주의의 사용 : 이성은 믿을 수 없지만 믿음의 사람들은 이성을 무단으로 사용하여 이성을 정화 할 수 있다. 이성이 믿음증진에 위협이 될 때는 이성을 내쫓는다. (미 개신교 근본주의, 로마 가톨릭 근대주의의 고정관념)

    (2) 신앙주의자 : 믿음을 옹호하면서 신학과 로고스 불신(혹은 회피) - 믿음이 이성을 무시함

      - 이성을 무시한 결과 : 이성의 변덕으로부터 피하고자 더 큰 문제에 봉착

      A. 믿음은 전달할 수단이 필요한데 이성이 없으면 대신 다른 것으로 채워야 함(느낌, 감정, 행동 : 감정적 헌신, 다양한 활동 등으로 표현되는 것이 기독교적 경건이 될 수 있음)

       B. 로고스(말씀)의 왜곡된(이성을 사용하지 않은 문자주의적) 해석으로 신앙(믿음)이 문화와 충돌하는 사회적 현상들이 발생된다. (ex) 탈근대적 다원주의 상황, 근거 없는 환상으로 전락하는 로고스(말씀)

       (신앙주의자 영성은 아폴리나리스가 예수의 인성에서 인간 이성을 부인 한 것과 유사)

       - 믿음이 이성을 무시하듯, 이성도 믿음 무시 : 합리주의도 영성의 spirit을 ratio(이성)과 동일시하여 영성의 divine spirit(거룩한 영)과는 멀게 해석이 가능함

. 신앙주의와 합리주의의 관계 : 신앙주의는 합리주의를 발전시키는가? 혹은 그 반대인가?

→ 두 질문 모두에 긍정적인 답을 주는 르네상스 인문주의

  - (후기 중세) 영성과 신학의 분리가 절정 (믿음과 이성의 분리)

  - 결과 : 영성의 신앙화 or 영성의 합리주의화(분리 or 융합)

. 합리주의 기독론과 기독교 영성은 서로 분리 불가

  - 기독론에 ‘그리스도’가 있는 한 영성과 완전히 분리 될 수 없고

  - 이성의 이해도에 따라 영성도 미묘하게 합리주의화 된다.

 

3. 간단한 에피소드 : 선구자로서 경계선에서 살고 사유하기 / 기독교 영성에서 기독론 역할

. 경계선 : 정통주의로부터 소외된 것으로 해석 되지만 건강의 표시(정화를 위한 창조적 어둔 밤)

. 키에르케고르 (실존주의적 비합리주의, “믿음의 도약”) : 근대 신앙 주의자의 정수

  - 의지의 도약 : 심미적(감각의 만족) 단계 – 윤리적(보편적 이성 지향) 단계 - 믿음의 단계 (정점)

  - 믿음의 관점 : 구체적, 인격적, 국가 기독교에 저항(“기독교는 공손한 도덕적 휴머니즘이 아님”)

  - 성육신의 역설

    . 성육신을 인격이 아닌 보편적 ‘원리’로 인류에 존재하는 영과 물질사이의 관계로 표현 (헤겔)

    . 이중 역설

      A. 영원한 것과(그리스도) 일시적인 것(인간)의 결합 – 하나님께 응답 가능해짐

      B. 믿음의 도약 : 자신이 선택하지만 - 은혜의 선물

    .  균형 잡힌 기독교 영성과 기독론에 기여 (추상적인 이성이 성육신이 나타내는 근본적인 진리의 조건들을 망각했는데 그의 이야기를 통해 믿음이 경험과 단절된 이성에게 어떻게 도전을 주는지, 이성을 풍성하게 하는지 보여준다.)

. 탈 근대적 양상 : 부드럽고 조심성 있게 로고스를 탐색하는 것을 지향한다.

→ 로고스를 용해? or 해체 할 것인가? 기독론과 기독교 영성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p297)

    .  인간 공동체와 신적 공동체의 소통의 바탕

    .  신적 공동체와 인간 공동체는 로고스를 통해 육체가 된다.

 

 

폴 틸리히_<문화의 신학>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 (2/2)

 

*Paul Tillich, 『경계선 위에서』, 김홍규 역(서울: 동연, 2013), 97.

 

폴 틸리히 저. <문화의 신학>. 남성민 역/정재현 해설. IVP. 2018.

3. 문화의 신학

  3세기 초의 교부인 터툴리안은 '아테네와 예루살렘이 무슨 관계이며, 학문과 교회가 무슨 공통점이 있는 가'라는 말로 신학과 철학, 종교와 학문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시각을 갖게 했다. 그러나 4세기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철학자들(플라톤)의 주장이 참되고, 기독교 신앙과 일치한다면 선용하라고 제안했다. 이것은 폴 틸리히가 말하는 ‘문화 신학’의 출발점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틸리히는 신학을 ‘기독교 믿음의 내용에 대한 방법론적 설명’이라고 정의 한다. 문화의 신학과 교회의 신학(조직 신학)은 둘 다 종교를 이해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 틸리히는 예술을 궁극적 실재에 대해서 개인이 체험한 것을 표현 한 것이라고 정의 했다. 평생 계속해서 종교와 예술의 상호관계를 강연했음에도 불구하고 책 한권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하지 못했다. 단지 『예술과 건축에 관하여』를 그의 사후에 딜렌버거가 편집하여 출판 했다.

 

  여기서, 문화의 신학은 문화의 형식에 있는 본질이 종교라고 이해한다. 종교는 인간 활동의 수직선으로 ‘의미’를 향한 정신의 방향이고 문화는 인간 활동의 수평선으로, ‘형태’들을 향한 정신의 방향으로 보면서, 두 가지는 원래 일체였다고 이해한다. “종교는 문화의 실체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라고 주장하며 문화와 신학의 관계를 ‘상관관계의 방법’으로 풀어 가는 것이 ‘문화의 신학’이다.

 

  종교의 형식이 문화임을 언어의 예로 설명한다. 성경의 언어는 ‘문화적 창조’의 결과이다. 언어는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힘으로 누구든지 자신(혹은 소유한 것들)을 언어로 표현 할 수 있다. 세계가 발전함에 따라 언어도 발전한다. 언어는 일상에서 표현과 소통, 문학과 시 그리고 궁극적 관심을 표현하고 소통하는데 사용되고, 종교 언어는 ‘궁극적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통해 거룩해진다. 그러므로 ‘거룩한 언어’와 ‘거룩하지 않은 언어’는 존재 하지 않는다. 종교의 또 다른 형식으로 예술이 있다. 종교 예술에서 작가가 자기 시대의 문화적 상황과 자기의 실제 상황을 잘 표현하는 것을 예술적 정직성의 원리라고 말하면서 종교 예술에서 강조되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 번째로 종교가 표현되는 문화는 인지 영역이다. ‘기독교 상징을 신학적으로 해석할 때 현대 철학적 의식의 어떤 요소를 사용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나 철학자가 대답할 때, 그들은 자신에게 계시하는 자신의 전통에 근거해서 대답하게 된다. 이러한 질문들에 대답을 주는 것이 교회의 의무이다. 이 대답은 자신과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한 대답으로 선교와도 연결된다.

 

  그러므로 ‘문화의 신학‘은 다양한 문화적 영역에서 종교적인 면을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모든 문화 안에 있는 신학을 발견하고 알리는 것이다. 선교에서 선교사들이 현지의 문화를 관찰하여 복음의 ’상황화‘가 가능하게 되는 지점이다. 김광식은 한국 문화에서 복음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연구하면서, 신학을 토착화하기 위해서는 탈서양화가 선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그는 한국 문화 안에 있는 신학을 발견하기 위해, 전통문화를 신학적으로 해석 하는 것을 시도했다. 틸리히가 분석적 문화 신학자였다면, 김광식은 해석학적 문화신학자라고 할 수 있겠다. 김광식의 해석학적 문화신학으로 이머징 세대에서 흘러나오는 다양한 문화를 기독교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이 현대의 문화신학자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4. 경계선

  폴 틸리히는 그의 자전적 사상 탐구서인 『경계선 위에서』에서 경계선이 지식을 습득하기에 좋은 곳이라고 표현했다. 틸리히는 사상들을 탐구하기 위해 새로운 가능성을 수용하면서 사고해야 했다. 이런 경우, 경계선 위에 서 있을 때 사고하기가 유리하다고 설명한다. 길지 않은 이 책에서는 다양한 단상들이 깊은 사유와 함께 표현된다. 두 기질의 경계, 도시와 시골, 사회 계층의 경계, 현실과 상상, 이론과 실제, 타율과 자율, 신학과 철학, 교회와 사회, 종교와 문화, 본국과 타국 등 본인이 경험하고 고민했던 경계의 상황들이다.

 

  경계선은 양쪽을 모두 고려해야 하므로, 안정적이지 않다. 편하지 않다. 틸리히가 말하는 것처럼 ‘불안하고, 위태롭고, 다양한 형태로 내적 실존의 한계’에 부딪힌다. 하지만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계선을 넘어 나의 또 다른 가능성을 향해 갈수 있는 곳이다.

 

  ‘4차 산업시대‘를 맞이하여 너무 많은 변화를 급하게 맞이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의 역사를 되돌아보게 된다. 현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할 때 마다 인류는 억지로 그 경계를 넘게 되었다. 자발적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향해간 것이 아니라 항상 억지로 넘어갔다. 종교개혁이 그랬고, 산업혁명이 그랬다. 이제 포스트모던 시대에 접어든 우리들은 이전처럼 현재에 머물러 있으려고 할 것인지 경계선에서 새로운 지평을 맞이할 것인지 결정해야 할 것이다.*

* 안덕원 교수는 예배는 계속 변화해왔다고 말한다. “문화, 교회, 예배 열린마음”을 키워드로, 초대교회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예배들이 문화를 어떻게 상대했는지 관찰하라고 한다.

(안덕원, 문화, 예배를 디자인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yiGFSUa_c, 2021. 5. 25일 접속.)

 

Ⅲ. 결어

  틸리히의 문화의 신학과 경계선 신학은 우리 일상의 모든 상황을 읽을 때 예민하게 하고 그 형식을 통해 전달되는 ‘궁극적 관심’에 초점을 맞출 수 있게 한다. 틸리히가 두 번의 전쟁과 독일에서의 어려움 가운데서도 ‘신실한 이상주의자‘ 일수 있었던 이유는 그런 비참한 상황에서도 ‘신성한 본질’인 하나님을 발견 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것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문화 안에 상주하고 있는 세대들에게 그 문화의 의미를 읽어주고 그곳에서 ‘궁극적 대상’을 찾을 수 있도록 돕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이렇게 되려면 우리가 먼저 포스트모던 문화의 반대편에 있지 않으면서도, 포스트모던 문화를 알 수 있는 경계선에서 포스트모던 문화를 배우고 이해하며, 그 문화의 의미를 알아가야 하겠다. 물론 틸리히가 말한 것처럼 ‘경계선’에 서 있는 것은 불안정하고 불편하고 힘들다. 어쩌면 살아가는데 발생하는 불안정과 불편의 인정은 피조물인 인간으로서 창조주 하나님 앞에서 이 땅을 살아가는 바른 자세가 될 수 있을 것이며 나의 한계를 넘어 경계선을 밟는 과정은 새로운 문화로 가는 ‘복음의 상황화’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는 지역이 다른 곳이 문화가 다른 곳이었지만 포스트모던 시대에는 한 집안에서 조차 다른 문화가 있다. 가정 안에서도 선교를 위해 ‘복음의 상황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바로 여기서 틸리히의 개방적 신학이 꽃피는 곳이 아닐까 한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문화의 도구들을 사용하여 인간 실존의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복음이 전해진다. 포스트모더니티들이 사용하는 문화의 도구가 바로 ‘상징’(예술)이다. 상징을 통해 답변을 주는 것은 틸리히가 사용하고 있는 방법이기도 하다. 종교와 문화의 결합으로 양쪽의 파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므로 양쪽을 다 고려해야 하는 문화 신학자는 현재의 문화를 비판하기도 하면서, 현재의 문화 체계를 종교적으로 해석 할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화 신학은 현재의 문화를 검토하고 명확히 파악해야 자신의 역할을 감당 할 수 있다. 일례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예는 아니지만 ‘만나교회’의 경우 교회 밖의 사람들을 위해 그들의 일반적 문화인 ‘흡연’을 인정하고 교회 지하 주차장에 흡연실을 설치했다. 교회에 와서 흡연실을 보고 습관처럼 담배에 불을 붙일 수 있겠으나, 불을 붙이는 그 순간 담배를 찾을 수밖에 없는 자신의 공허함이나 고뇌를 발견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나의 이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나를 환대하는 ‘궁극적 대상’을 떠올릴 수도 있지 않을까? ‘만나교회’는 장애 어린이와 주일학교 어린이들을 위해 일층 로비를 놀이 동산 같은 분위기로 만들었다. 이것 또한 어린이들의 문화적 필요(타문화의 필요)를 채워주는 교회의 배려로서 두 경우 모두 교회와 상관없을 것 같은 ‘형식’안에 그리스도의 환대의 ‘의미’를 표현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한 비흡연 교인과 외부인의 사이에서 외부인의 필요를 배려하고 성인과 어린이의 사이에서 어린이의 상황을 배려한 상황화로 이해할 수 있다. 이 외에도 국내에서 석사학위 논문으로 틸리히의 조직신학과 문화신학을 배경으로 한국의 대형교회들의 문화 목회의 사례들을 연구한 논문도 있다.

 

  무조건 틸리히의 문화의 신학이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다른 관점에서 고려할 사항들이 많고, 또 틸리히가 속해 있었던 서양, 남자, 중산층 문화에서 틸리히가 보지 못한 부분도 있음을 동의한다. 다만 기독교가 혹은 현재의 기독교 영성을 실천하는 사람들이 중세시대 로마 가톨릭처럼 획일화된 이원론에 빠지는 실수를 하게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도행전 10장에서는 베드로가 이방인인 고넬료의 집에서 세례를 주게 되는 과정이 소개된다. ‘유대인’이라는 틀 안에 갇혀 있던 베드로에게 하나님의 열심이 ‘성속’에 관한 틀에 대해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신다. 3번이나 반복해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 갈수 있었던 것 같다.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행 10:2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손이 이 모든 것을 지었으므로 그들이 생겼느니라”(사66:2)

 

문화에 대해서 비판하고 정죄하기 전에

그것을 만드시고 허락하신 창조주께 시선을 집중하여

그리스도인으로서 전체 삶을 통해,

극단적 형식에 치우진 예배자가 아닌,

‘심령에 통회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떠는’(사 66:2) 예배자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Ⅳ. 후기

  『문화의 신학』에서 적용하고 싶은 부분들의 번역이 이해되지 않아서 논문들을 찾아보다가 많은 시간이 허비되었지만, 그렇게 찾는 과정 중에 책에서 혼자서 제대로 해석하지 못한 많은 것들을 논문들을 통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예배에서 상징의 사용 혹은 예술 작품들의 의미의 부분은 영성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으므로, 한번 쯤 정리하고 싶었던 부분이다.  하지만, 『문화의 신학』에서 ‘상징과 기호’부분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예배와 관련하여 상징들의 사용의 의미를 틸리히를 통해 더 잘 설명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두 번째 논문에서 주로 다루고 싶었던 부분이었으나, 책을 잘 소화하지 못 했다. 그래서, 초기에 기획했던 대로, 경계선 신학을 추가하므로 예배(삶)가운데 잊지 말아야 할 마음을 정리하게 되어 감사한 시간이었다.

 

  추천해 주신 논문에서 허호익의 논문은 그 동안 보아왔던 (몇 개 안되는) 다른 논문들보다 틸리히에 대해 잘 정리되어 있고, 주로 틸리히에 대한 평가부분이 전반적으로 잘 정리 되어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광식 관련 논문은 이전에 몇 개 발견했던 논문이었으나, 이 논문에서 중점으로 생각한 선교지는 지역적 구분이 아닌 문화적 구분이어서 고려하지 않았다. 틸리히와 관련해서 국내에서 많이 나타나는 주제였는데 초보인 필자가 간과한 것 같다. 결국  한국에서의 토착화 부분을 이머징 세대에게 적용해 보았다.

 

[참고문헌]

<일차문헌>

Tillich, Paul. 『경계선 위에서』. 김홍규 역. 서울: 동연, 2013.

Tillich, Paul. 『문화의 신학』. 남성민 역. 서울: IVP, 2018.

Tillich, Paul. 『조직신학』. 김경수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78.

Tillich, Paul. 『평화 신학』. 신상길, 정성욱 역. 서울: 한국장로교출판사, 2000.

 

<이차문헌>

김산춘. "연구 논문: 폴 틸리히, 예술의 신학." 「미학 예술학 연구」 32 (2010): 227-249.

김은혜.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과 문화이해에 대한 신학적 성찰." 「선교와 신학」 16 (2005): 155-176.

손호현.“폴 틸리히의 문화신학과 표현주의 모델.“ 「한국기독교신학논총」 85(1): 287-312.

신용식. "문화신학의 해석학적 과제에 대한 고찰―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과 김광식의 “토착화신학”의 비교 연구." 「한국조직신학논총」 (2021): 73.

안덕원, “문화, 예배를 디자인하다.” https://www.youtube.com/watch?v=sDyiGFSUa_c, 2021년 5월 25일 접속.

안덕원. 『우리의 예배를 찾아서』. 서울: 두란노, 2018.

이성윤. “Paul Tillich 신학과 문화목회 방안연구.” 신학석사학위논문, 경성대학교 대학원, 2011.

이준학. “문학과 종교 그리고 문화의 관계에 대한 학제적 연구.” 「문학과 종교」 11(2): 123-124.

임영금. "폴 틸리히의 문화의 신학." 「한국문화신학회 논문집⌟ 13(2009): 137-158.

허호익. “틸리히의 신학 방법론.” ⌜신학과 문화⌟ 10. 204-225.

황민효. "폴 틸리히의 종교신학적 입장에 관한 연구: 절대주의와 상대주의의 경계선에서." ⌜한국기독교신학논총⌟ 56.1 (2008): 163-188.

폴 틸리히_<문화의 신학>

종교와 문화 사이에서 * (1/2)

 

*Paul Tillich, 『경계선 위에서』, 김홍규 역(서울: 동연, 2013), 97.

Ⅰ. 서언

  1차 논문에서 이머징 예배(이하 ECM)를 조사하면서 ECM이 포스트모던 문화 안에서 복음의 상황화를 추구하며, 잃어버린 영혼들을 예배의 자리로, 하나님과의 인격적 만남의 자리로 초대하는 것을 보면서, 예배는 어디까지 문화를 수용해야 하고, 어떻게 해야 소비자에게 휘둘리지 않는 하나님 중심의 예배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세속 문화와 관계 맺는 방식을 규명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던, ‘경계선 신학’이나 ‘문화의 신학’으로 알려져 있는 폴 틸리히의 이론을 살펴봄으로써, 예배의 상황화와 소비자 지향 예배의 경계선 사이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현대의 기독교 영성을 실천하는 사람들로서, 예배와 문화의 역동에 대해 고민해 보고자 한다.

 

*Paul Tillich, 『문화의 신학』, 남성민 역(서울: IVP, 2018), 11.

 

폴 틸리히 저. <문화의 신학>. 남성민 역/정재현 해설. IVP. 2018.

Ⅱ. 본론

폴 틸리히를 소개하고, 그의 『경계선 위에서』, 『문화의 신학』에서 문화와 관련된 부분을 간단히 살펴본다.

 

1. 폴 틸리히

  폴 요한네스 틸리히(Paul Johnnes Tillich)는 1886년, 베를린에서 루터교 목사인 요한네스 오스카 틸리히와 빌헬미나 마틸데 사이의 1남 2녀 중 첫째로 태어났다. 1912년 목사안수를 받고 베를린에서 노동자 중심 교회의 부목으로 사역했다. 1차 세계대전에서는 군목으로, 2차 세계대전에서는 연합군 보도국(Allied propaganda)으로 참전하여, ‘미국의 소리(Voice of America)’를 통해서 독일의 소식을 전했다. 2개의 세계대전을 겪는 아픔과, 국가로부터 해직당한 첫 번째 교수였음에도, 불안했던 시대에 ‘신성한 본질’을 보고 그것을 기반으로 신학적 분석 작업을 한 자칭 ‘신실한 이상주의’자 였다.

 

  전쟁 후에, 교수와 학자로서의 삶을 살던 중 1933년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 때, 유대인 동료들을 보호하고 나치정권을 비판하는 강연을 하고 논문을 쓴 것을 이유로, 비유대인으로는 최초로 나치에 의해 해직된 교수가 되었다. 해직 후 라인홀드 니버(Reinhold Niebuhr, 1892-1971)의 도움으로 47세에, 미국의 유니언신학대학으로 가서 1940년에야 정교수도 되고, 미국 시민권도 받았다. 1955년에는 유니언에서 은퇴하고 하버드대학의 특대 교수로 청빙되어 다양한 전공의 학생을 만났고, 1962년에는 시카고대학교 신학부의 석좌 교수로 있으면서 세계적인 종교학자들과 교류하였다. 1960년의 일본 방문을 통해 동양 종교를 접하면서, 신학의 범위도 확장되었다. 1950년대 중반부터는 미국에서 유명한 신학자가 되었고, 59년 ⌜타임⌟지에서는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신학자”로 소개했다. 공개강연도 많았지만 그의 책들이 한몫을 했다. 1951년부터 63년에 출간된 『조직신학』 3권이 있으며, 『프로테스탄트 시대』, 『경계선 위에서』는 독일어로 쓴 것이 번역되어 미국에서 출판되었고, 『존재의 용기』, 『사랑, 권력, 정의』, 『신앙의 역동성』외에도 많은 설교집들이 있다.

 

  틸리히는 1910년 철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1912년 신학 전문직 학위를 취득 하면서 자신이 철학자인지 신학자인지의 정체성과, 철학과 신학의 관계에 대해서 스스로 정리해야 했다. 또한 세계대전에 대한 사람들의 질문과 불안에 대해서 신학은 대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보티첼리의 <여덟 천사와 함께 있는 성모 마리아와 아들>을 보고 자신이 한 반응에도 신학은 응답해야 했다.* 이러한 배경 하에 틸리히는 철학과 신학의 경계선에서 작업을 시작한다.

 

  그에 대한 평가를 보면 인간미 있는 휴머니스트였으며, 출세가 보장된 상황에서 나치에 저항하며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또한 자신이 자기 사상의 주(註)가 되는 독창적 사상가였다. 틸리히는 ‘경계선’ 개념을 즐겨 사용했다. 머리와 가슴, 이성과 계시, 아테네와 예루살렘, 유럽과 미국.. 어느 한편으로 치우치지 않고 양쪽의 균형을 이루는 노력을 일생동안 했다. 양 극단을 통합하려는 그의 시도로서 여기서 “상관방법론”(method of correlation)이 나왔다.

 

  상관방법론은 “철학이 질문하고 신학이 응답하는 것“이다. 틸리히는 ”존재“를 기준으로 “종교는 존재의 의미를 실존적으로 다루며, 철학은 존재의 구조를 이론적으로 다룬 다“고 하면서 이러한 학문들은 분리되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기독교가 문화적으로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이유는 신앙과 삶을 분리한 이원론적 신학구조에 있다고 보고 문화에 대한 신학적 관점을 발전시킨 것이 문화신학이다.**

 

* 폴 틸리히의 이 이야기는 알랭 드 보통의 『행복의 건축』에서 소개되는 이야기 이다. 짧은 논문인 관계로 틸리히의 예술에 대한 영향을 자세히 논하지 못하지만 다양한 예술 작품과 작가들에게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다. (한국 작가를 「LA타임즈」에 소개하기도 하고, 한국의 작가들이 틸리히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미술관 행사에 초청 연설을 할 정도로 미술에 조예가 깊다.

**김은혜, “폴 틸리히의 문화신학과 문화이해에 대한 신학적 성찰,” 「선교와 신학」 16(2005), 157-159.

 

2. 종교와 문화

  틸리히는 종교를 믿음의 관점이 아닌 “의식의 깊이 차원”에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이라고 정의하였다. 문화는 자연과 구별되는 것으로 “인공적으로 만든 생활양식”이다. 인간은 더 나은 삶의 환경과 형식을 갖기 위해 궁극적 관심을 갖게 되고, 각 시대는 인간이 추구하는 궁극적 관심에 따라 생성되고 변한다. 이러한 궁극적 관심은 틸리히가 말하는 종교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므로 틸리히는 종교를 인간 정신생활(“궁극적 관심”)의 한 차원으로 보았고 문화 또한 정신생활의 표현이므로 틸리히에게 있어서 이 둘은 떼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종교는 자신을 “궁극적인 것”화 하여 예술을 멸시하고, 종교에 복종하지 예술은 박해했다. 틸리히의 글에는 미술 작품이 많이 나온다. 피카소의 “게르니카(Guernica)”를 인간의 곤경에 관한 가장 위대한 개신교 회화로 정의한다. 로마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 렘브란트의 초상화를 보면서 감명을 받았다면 이것은 종교 체험일까 문화 체험일까. 체험의 형식은 문화이지만 내용은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어떤 예술 작품도 그것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문화는 종교적 내용(“궁극적 관심”)의 특성이 있다. 그렇다고 종교를 문화의 일부로 볼 수는 없다. 문화의 형식 안에는 ‘의미’가 들어가는데, 이 ‘의미’에는 예술가의 종교적 내용(‘궁극적 관심’)을 포함한 모든 내용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둘 사이는 주종이나 종속의 관계가 아니다. 여기서 틸리히의 상관방법론이 적용되는데, “종교는 문화의 내용이고, 문화는 종교의 형식이다.” 종교는 내용 지향적이고, 문화는 형식 지향적이다. 문화는 의미를 표현하므로 종교는 문화의 자율 형식을 통해 간접적으로 표현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종교는 문화를 품고, 문화는 종교를 표현하게 된다. 예술가들의 작품은 다양한 표현 양식으로 나타나는데, 예술에서 표현 양식의 발달은 종교에게 있어서는 표현의 기회가 된다. 그러므로 오늘날 발전하고 있는 예술의 표현(상징) 양식을 통해 종교가 새롭게 표현 될 수 있으므로 예술의 표현에 대해 종교의 문을 열어두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세 가톨릭이 했던 것처럼,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신학의 기초’부터 다져야 한다고 틸리히는 주장한다. 실제로 그는 독일의 루터교회 성례전 개혁 운동(베르노이헨 운동)에서 의식 개혁을 위한 신학의 기초를 정의하는데 도움을 주고자 했다. 그러나 운동의 집행자들이 예전의 형식에만 몰두하므로 의미를 함께 다루고자 했던 틸리히는 동역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머징 예배(Emerging Church Movement, ECM) (2/2)

 

댄 킴볼 저.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 윤인숙 역. 외 1권

3. 현황

교회 개척 전문가 에드 스테처(Ed Stetzer)는 현재 이머징 교회를 크게 3개의 신학적 흐름으로 구분한다.

 

(1) 연결주의자 (relevants, 적실주의자, 적응주의자)

  신학적으로 전통 교회와 일맥 상통하여 개혁주의 이머징 교회라고도 한다. 전통교회의 신앙과 구조 등을 유지하면서, 포스트모던 문화에 대한 적응 추구한다. 예를 들어 예배, 설교, 리더쉽 구조등을 포스트모던에 맞게 혁신하기를 주장하는 부류이다. 대표적으로 Mark Driscoll, Tim Keller, Jim Belcher, Dan Kimball 등이 있다.

 

(2) 재건주의자 (reconstructionists)

  정통주의 지키면서, 전통적인 교회(구도자 교회모델 포함)를 신약 교회 모델처럼 선교적이고 유기체적 교회로 ‘재건’하자는 주장이다. 이들은 가정 교회나 새로운 수도원 공동체처럼 형식을 탈피하고 성육신적, 유기적 형태의 교회 실험하며, ‘파송’을 강조하여 적극적으로 교회를 개척한다. 이들은 콘스탄틴 이전의 초대교회를 샘플로 한다. 교회론, 공동체 영역에서 전통교회에 가장 강하게 도전하는 부류로, Neil Cole, Michael Frost, Alan Hirsch 등이 주장하는 바이다.

 

(3) 수정주의자 (revisionists)

  전통적 교회가 모더니즘의 한계에 있다고 비판하며 핵심 교리, 제도를 포스트모던 시대에 맞게 수정하려는 그룹이다. ‘이머전트 빌리지‘출신의 지도자들로 Brian McLaren, Tony Jones, Doug Pagitt등이 대표적이다. ‘이머전트 빌리지‘는 이미 이머징 이라는 용어가 큰 의미로 사용되던 후에 만들어졌다. ‘이머전트 빌리지‘와 이머징 교회는 서로 관련은 있지만 이머징 교회를 ‘이머전트 빌리지‘라고 할 수는 없다. 이머징 교회는 더 큰 개념이다.

 

  이 외에도, 스캇 맥나이트(Scot McKnight)는 이머징 교회의 특징을 다섯 가지 흐름으로 구분했는데 첫째, 사람들을 자극하여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예언적 흐름, 둘째, 포스트모던 문화의 가치를 강조하므로 진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탈근대를 추구하는 흐름이다. 셋째, 예수의 제자로서의 신앙과 삶의 일치에 중점을 두는 실천 지향적 흐름, 넷째,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는 포스트 복음주의적 흐름과 마지막으로 정치적인데, 사회 현상과 민감한 사항들에 관심을 가지고 자신들의 주장으로 의사 결정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특성이다.

 

4. 사례

  포스트모던 세대들은 영적이며,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기 보다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한다는 것이 그 특징이다. 이머징 교회에서 추구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은 포스트모던 세대들이 갈망하는 것에 맞게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경험하게 한다. 다음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이머징 예배』(댄 킴볼)에서 제공하는 사례들을 간단히 정리해 본다. 이것으로 이머징 예배의 일부를 엿볼 수 있다. 1부에서는 이머징 예배의 배경이 된 상황들과 기본 철학들을 공유한다. 2부에서는 실제 이머징 예배가 준비되고 실행되는 사례들과 그들이 준비한 방법(노하우)과 예배 순서의 예를 공유한다. 교회 옆의 이름은 교회 내의 교회인 X세대를 위한 모임의 이름이다.

- 윌로우 크릭 공동체 교회의 액시스 (p187)

- 맥린 성경 교회의 프런트라인 (p201)

- 트윈레이크 교회의 제너시스 (p216)

- 빈티지 믿음 교회 (p244)

- 영국 일링(Ealing)에 있는 성마리아 교회의 그레이스 (p278)

 

  또한 다른 형태인 미국 내 가정교회의 사례와 영국에서의 대안 예배모임에 대해서도 안내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댄 킴볼이 진행한 이머징 예배 사례를 중심으로 소개한다.

 

이머징 예배에서 가치를 두는 것들은... (댄 킴볼)

. 근대적 예배의 대표적인 관객형 예배에서 탈피하여 공동체가 함께 준비하는 예배이다.

. 유기적인 모임 : 찬양, 성경봉독, 간증, 침묵의 시간, 찬양, 설교, 영상, 침묵과 묵상의 시간으로 이루어지지만 사람들은 예배실 내의 준비된 장소에서 순서 도중에 기도를 하거나(침묵기도를 할 수 있는 장소들을 마련해 둠), 그림을 그리거나 기도문을 쓰기 위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 할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이 예배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 예배 공간을 성스러운 공간으로 창의적으로 만들기 : 예술 작품이나 스크린, 성경이나 십자가를 곳곳에 배치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지금 예배의 중심이 누구인지 기억할 수 있게 돕는다. 많은 이머징 예배들이 예수님을 기억하게 하는 촛불이나 공간 구분을 위한 커텐을 활용한다.

. 빛과 음악, 예술 작품, 영상의 활용 : 음악은 공동체의 표현이므로 자작곡한 곡을 부르기도 한다. 떼제 예배가 고대 기독교 음악의 재연에 영향을 주어 이머징 예배에서 현대적 요소와 혼합하기도 한다. 찬양대가 있을 경우는 대게 찬양대가 조명 받지 않고 목소리만 들리도록 하기도 하고 예배팀은 거의 보이지 않게 구석에 위치하기도 한다. 이미지나 상징을 활용하여 예수님께 집중 할 수 있도록 돕는다. 미술 작품이나 향을 예배실에 배치하기도 하고 때로는 예배도중 떠오르는 영감을 표현 할 수 있도록 미술 작품을 만들 수 있는 장소를 준비하기도 한다.

. 설교는 예배에 따라 다를 수 있으나, 설교가 없기도 하고 아주 짧거나 간증을 함께 하기도 하고, 설교 중간에 공동 기도 등을 넣기도 한다. 설교자는 전통교회에서와 같이 권위적이지 않고 ‘하나님의 이야기’를 말해주며 그들을 그 이야기로 초청한다. 설교는 열정적이고 활기 있지만 동료 예배자가 간증하는 경우, 진지함과 겸손함이 공유된다. 설교가 짧은 것은 예배 시간에 깊이 집중하기 위함이며, 대신 가정 모임이나 토론 그룹을 통해 상호작용하는 방법으로 성경을 배울 수 있도록 한다.

. 신조, 기도문, 성경구절을 함께 읽어 공동체 의식을 높이기도 하고 관상기도와 다른 영적인 훈련들이 행해지기도 하고, 예전을 강조하여 교회력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많다. 성찬식은 이머징 예배의 중심이 되기도 한다.

. 다감각응용 예배 : 보고, 듣고, 맛보고, 냄새 맡고, 만지고, 경험하므로 우리의 모든 감각들을 통해 예배에 동참하는 것을 말한다. 한달에 한번 정도 특별한 다감각 예배를 준비할수 있다. 식사 또한 이머징 예배의 공동체 특징의 중요한 부분인데, 이는 신약 시대의 예배 모임에서 공동체의식을 강화하기 위해 예배 전에 함께 식사를 한 것을 기억하게 한다.

 

5. 평가

  ECM의 긍정적인 평가는 정체된 기독교에 갱신을 추구한다는 것에 있다. 포스트모던 문화안에서 힘이 없어져 버린 기독교를 문화 안에서 복음의 상황화를 추구하며, 교리나 조직의 형식 보다 기독교를 삶의 방식으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열정에 있다. 그러나 체험적, 창조적 방법들이 신비적이거나 종교 혼합주의의 양상을 띠는 경향이 있으므로 이런 부분은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또한 아직도 계속 변화하고 발전하고 있는 분야 이므로 신학적 정리되어야 할 부분들이 많고, 교회 역사 내에서 지속적으로 검증되어야 할 과제가 남아 있다. 더불어 문화에 맞춘 상황화에 집중하므로, 지나치게 소비자 지향 중심의 예배로 될 가능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겠다.

 

  한국 내 상황에서는 줄어드는 성도수와 청소년들을 유치하기 위해서 이머징 예배를 ‘방법론적’으로 연구하여 따라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겠다. 대형교회의 경우는 많은 스텝과 비용이 투자되는 방법이라 댄 킴볼도 재정 사용을 신중히 고려하라고 책의 마지막에서 경고하고 있다. 가정교회의 경우는 진정 하나님을 갈망하는 영혼들이 모일 때 그곳에 동일한 영혼들이 보내질 것이다.

 

리더도 없고, 위원회도 따로 없는데

점점 부흥하는 ECM을 보면서,

이 시대에도 변함없이 예배 받기 원하시고,

인간과 소통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

직접 일하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6. 후기

  ECM에 대해서 2017년부터 관심이 있던 관계로 이번 논문을 위해 많은 자료들을 찾아 보았지만 자료들을 읽은 것에 비해 자료를 정리하는 능력과 시간이 턱없이 부족한 관계로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 것이 아쉽다. 이번 논문을 준비하면서 해외의 번역서들을 많은 교수님들이 논문으로 소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고 (며칠 씩 걸려 열심히 읽었는데 20페이지 내외의 논문으로 정리되어 있는 것을 늦게 발견했다.), 어떤 논문들은 원서의 경우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쓴 경우도 있는 것들을 발견하면서 약간 실망도 하게 되었다. 논문을 보면서 더 좋은 책들을 많이 안내 받았는데 그 책들을 다 읽어보지 못하고 논문을 마무리 하게 되어서 안타깝지만 앞으로 꾸준히 연구하고 기도하면서 함께 만들어가야 할 분야인 것 같다.

  무엇보다 내내 생각이 들었던 것은, 예배를, 교회를 나의 도구로 생각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머징 예배는 진정 창의적 예배인데 누군가 한 것이 좋아보인다고 해서 의미 없이, 본질 없이 모방하고 따라했을 때 포스트모던 세대는 그 스멜을 분명히 맡을 것이기 때문이다. 영은 속일 수 없다. 이 세대의 사역자는 더 하나님께 신실하고 더 믿음에 순수해져야 하겠다.

 

 

 

 

[참고문헌]

<일차문헌>

Belcher, Jim. 『깊이 있는 교회-전통 교회와 이머징 교회를 뛰어넘는 제3의 길』. 전의우 역. 서울: 포이에마, 2011.

Frost, M. and Hirsh, E. 『새로운 교회가 온다』. 지성근 역. 서울: IVP, 2009.

Kimball, D.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는 고귀한 예배-이머징 예배』. 주승중 역. 서울: 이래서원, 2008.

Kimball, D.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이머징 교회』. 윤인숙 역. 서울: 이래서원, 2007.

 

<이차문헌>

김도훈. "이머징 교회의 교회론에 대한 연구." 「장신논단」 36 (2009): 9-40.

김형락. "현장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특별기고; 이머징 워십은 무엇인가." 「활천」 704.7 (2012): 88-91.

유재원. "이머징 교회 운동의 설교 연구: 댄 킴볼과 마크 드리스콜을 중심으로." 「장신논단」 44.4 (2012): 243-267.

이상흥. "현대 이머징 교회 운동에 대한 연구: Jim Belcher 의 Deep Church 에 대한 이해와 평가." 「복음과 실천신학」 27 (2013): 237-274.

황병준. "이머징 교회 운동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문화코드, 리더십, 셀 그룹, 전도개념을 중심으로." 「신학과 실천」38 (2014): 227-260.

허준. "이머징 교회운동의 특징에 대한 연구 및 적용에 대한 고찰." 「복음과 실천」 58.1 (2016): 351-377.

Banks, Robert. 『1세기 교회 예배 이야기』. 신현기 역. 서울: IVP, 2017.

Belcher, Jim. 『깊이있는 교회』. 전의우 역. 서울: 포이에마, 2011.

Carson, D. A. 『이머징 교회 바로 알기 』. 이용중 역. 서울: 부흥과개혁사, 2009.

Gibbs, Eddie and Bolger, Ryan. 『이머징 교회』. 김도훈 역. 서울: 포이에마, 2008.

이머징 예배(Emerging Church Movement, ECM) (1/2)

 

[주제] 포스트모던 세대에 맞추어 발전하게 된 ECM(이머징 예배, 이머징 교회)의 발생 배경과 현황을 알아본다.

 

  현대는 4차 산업사회로 분류된다. 4차 산업 사회의 특징은 초연결(hyperconnectivity)과 초지능(superintelligence)이다. 그동안의 변화의 범위나 속도와 영향에 비해 더 넓고 빠르고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끊임 없이 변화하는 이 사회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를 전해야 하는 것이 이 시대의 사역자들의 난제이다. 교회 미래학자 레너드 스윗은 현대 교회의 방향을 EPIC으로 정의한다. EPIC은 체험(Experiential), 참여(Participatory), 이미지 지향(Image-driven), 관계(Connected)의 약어 이다. 이것은 포스트모던 세대의 특징으로 미래 교회들이 고려해야 할 사항들로 제시한다. 포스트모던 세대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이머징 교회’ 혹은 ‘이머징 예배’로 불려지기 시작했다.

본 논문에서는 ‘포스트모던 세대‘에 맞추어 발전하게 된 ’이머징 예배‘의 발생 배경과 현황을 알아본다.

 

댄 킴볼 저. <시대를 리드하는 교회>. 윤인숙 역. 외 1권

 

1. 출현 배경

  ‘이머징’이라는 단어는 미국 복음주의 루터 교회 본부의 카렌 워드(Karen Ward)가 베이비 붐 이후 교회의 문제들에 대해 논의하고자 만든 웹사이트(www.emergingChurch.org) 이름이다. 이 싸이트의 목적은 X세대를 이끄는 교회들이 논의하는 장을 만드는 것이었으며 그 지도자들과 교회들이 참여하면서 이머징 교회라는 용어가 사용되었다. 미국의 X세대 교회들이 1980년대 후반에 생겨났고 90년대 초반에 ‘교회 안의 교회’로서 대형교회의 지원을 받는 X세대 교회가 생겨났다. 영국에서도 이와 비슷한 청년 집회들이 생겨났고 젊은이를 위한 교회들이 생겼다.

 

  “변해가는 세상에서 믿음을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 기독교를 어떻게 이해 하게 할 것인가? 개인주의 세상에서 공동체를 어떻게 세울 것인가?“ 이머전트 빌리지의 태동인 ‘헌팅턴 그룹’의 젊은 목사들이 고민했던 내용은 여전히 이머징 교회들의 고민이다. 책의 제목으로 가장 먼저 ‘이머징’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던 댄 킴벌은 이머징 교회의 정의를 ‘이머징 문화에서 교회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교회들’로 정의한다. 이들은 변해가는 문화에서 선교 관점에서 대중 속으로 들어가는 교회들 이고, 교회의 형식과 틀(교회론)에 초점을 맞춘 교회들이다.

 

  미국에서 구도자 예배로 많은 교회들이 영혼 추수에 많은 열매들을 맺고 붐이 일었다. 그러나 교회의 문화를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세대들(포스트모던 세대, 구도자 이후 세대)에게 구도자 예배는 더 이상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또한 구도자 예배의 화려한 외형은 더 이상 그들에게 동경이 되지 않았다. 새로운 세대들은 구도자 예배의 동영상 기술보다, PPT기술보다, 음향기술보다 더 화려하게 자신들이 만들 수 있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민하던 청소년 사역자들은 새로운 세대를 위한 모임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시작은 대형 교회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모임을 요청했고 교회 안에 새로운 공동체의 이름으로 기획되었다. 이 예배들은 기존의 전통예배나 구도자 예배와는 전혀 다른 형식과 분위기를 만들어 냈고, 이 예배들은 기독교 문화를 알지 못하지만 자신들이 영적이라고 생각하는 새로운 세대에게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이전의 구도자 예배 처럼 새로운 예배에 온 이들이 성장했다고 (혹은 나이가 들었다고) 기존의 전통예배로 돌아가라고 할 수 없었다. 이들은 계속 자신들에게 맞추어진 예배를 원했고, 왜 자신들이 담임목사가 집례하는 전통예배에 가야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들에게는 ‘모 교회’의 개념이 없었고, 자신들의 공동체 뿐이었다. 그래서 새로운 예배를 기획한 사역자들은 전세대(청소년부터 장년 혹은 노년까지)를 포괄하는 예배로 만드는 과정에서 대형교회에서 완전히 분리 되던가 자매교회의 형태로 분리되는 형태들로 변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교회들의 (전통예배 혹은 구도자 예배와 다른 형식의) 예배를 이머징 예배로 부르고 있다.

 

  또 다른 형태의 이머징 예배는 기존 예배에 대해 고민하던 목회자들에 의해 형성되었다. 중, 대형교회에서 사역자로 섬기던 젊은 목사들 중에 일부는 자신의 사역과 예배에 회의를 느끼고 사회로 돌아갔다. 직장을 다니면서, 예배에 대해 고민하던 그들이 의도하지 않게 만나게 되었고, 함께 예배에 대해 고민하면서 자연스럽게 가정 교회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지역별로 발생된 가정교회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다시 교회 공동체로 거듭나기도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전체 가정이 모여서 공동체 예배로 만나기도 하는 이머징 교회들도 있다. (짐 벨처, 제이슨 이반스(마태의 가정), 스펜서 버크의 경우)

이렇듯 이머징 교회는 형식으로부터, 제도나 조직으로부터의 교회가 아니라 필요에 의해 만들어진 교회이다. 그렇다면 이 교회들의 특징을 살펴보자.

 

2. 특징

  이머징 교회의 출현배경에서 본 것처럼 이머징 교회는 사역현장에서 저절로 발생 했다. 새로운 세대를 위한 예배에 대해 고민하던 젊은 목회자들이 각자가 고민하며 만들어 갔거나, 예배를 위한 소규모 모임으로(가정 예배) 모였기에 특정 신학이나 배경이나 조직이 따로 없다. 그래서 이머징 교회는 다양한 형식이나 조직, 목회 방법 등을 가지고 있으므로 한마디로 정의하기 힘들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머징 교회 관련 서적에서 공통적으로 말하고 있는 이머징 교회들의 특징들을 간단히 정리해 보고자 한다.

 

(1) 선교적 교회

  이머징 교회는 자신들은 ‘선교적 공동체’로 정의하며, ‘제자를 삼는 교회의 사명’위에 교회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통적 교회의 선교방식인 ‘끌어모으기 식’선교보다 예수님이 직접 찾아가셨던 것처럼 ‘성육신적’선교의 방법으로 바뀌어야 하며, 성스러운 것과 세속적인 것을 나누는 ‘이원로적’세계관을 포기하고 메시아적 영성으로 문화와 세상에 참여하라고 주장한다. 또한 종교적이고 관료적이며 위로부터 행사되는 리더쉽에 의존하는 ‘계층적인’방식이 아닌 사도적 리더쉽 형태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머징 교회들은 교회가 변화하는 문화 안에서 구원자적, 예언자적 영향력을 실천해야 하므로 그들에게 다가가 섬기고, 그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삶을 보여주는 성육신적 삶을 살아야 함을 말한다.

 

(2) 성육신적 교회

  ‘성육신’은 이머징 교회에 있어서 신학적으로 중요한 용어이다. 문화와 복음, 교회와 문화의 관계는 ‘성육신’에 근거한다. 이는 또한 레너드 스윗이 ‘문화 속에 오신 그리스도’라고 성육신을 해석한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문화 속에서 예수님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성육신적 선교이다.

 

(3) 상황적 교회

  크리스찬돔 시대처럼 문화를 제거하려 하기 보다 ‘비판적 상황화’의 과정을 거쳐 문화로 소통하여 복음을 전하도록 해야 한다.

 

(4) 관계적-공동체 교회

  이머징 교회는 전통적 교회론의 부정이 아닌 사도행전 2장의 초대교회의 공동체에서 그 의미를 찾는다. 초대교회에서 중요시했던 하나님과의 관계(말씀과 예배)와 서로의 관계(학습과 교제), 세상과의 관계(섬김&나눔, 복음)의 특징들을 이머징 교회에서도 성취하고 있다.

<예배와 영성> 1장 기억을 명하다

 

[주제]

성경을 기억하며 공동체에서 예배 드리면서, 개인의 내적 영역이 확장되는 것은 관련이 있다.

강한 충격(홀로코스트, 전쟁, 엄청난 고통, 모욕...)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경우, 당시의 이야기를 듣거나 회상하기만 해도 그 당시의 상황과 느낌이 재현된다. 우리는 이러한 기억을 떠올려주게 하는 장소들을 기념하여 만든다. 저자는 이러한 장소들에서 기억을 통한 소망(p14)을 얻게 된다고 말하고 있다. ’기억‘을 통해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있고, 반대로 하나님의 존재 자체에 대한 거부로 반응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고통과 죽음의 인식은 피조물로서 마땅히 창조주를 기억하게 하게 하는 매체가 된다.

인간 자신이 피조물임을 기억하지 못 할 때

이기적이고 교만하게 되어,

예배의 삶을 살지 않게 되는 것은 자명하다.

“피조물인 인간”은, 인류 전체가 인지해야 하는 공동의 기억이다.

 

개인과 공동체의 고통과 슬픔과 아픔과 기쁨과 환희의 기억들을 떠올릴 때 지금, 인류를 다스리시는 주권자 하나님을 인식하고 예배의 삶을 살게 될 것 이다.

 

돈 샐리어스 저. <예배와 영성>. 이필은 역

1. 공동의 기억과 정체성

  과거에 메어 있을 때(감금)도 두려움 속에 있게 되지만 자신을 잃었을 때(망각)도 혼란을 겪으며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망각으로 인한 두려움은 회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로, 기억이 외부 환경으로 인해 왜곡 될 수는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한다.

기도와 예배의 근본이 ‘기억’이므로 예배 공동체가 가지는 공동의 기억(성경)이 필요하다. 공동체에서 기억된 이야기(성경, 전통)를 개인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실천하는 것에서 개인의 영적 생활이 구현된다. 성경에서 시작된 삶의 기억들은 인간의 시작과 끝을 인지하게 도와주므로 ‘기억’은 신앙에 있어, 중요한 부분이다. 또한 과거 하나님과의 경험을 기억하는 것은 우리가 현재에서 미래를 살 수 있게 도와준다.

 

구속의 기억(예수그리스도에 대한 “위험한 기억”)을 꺼내서

현재의 경험들을 해석하자.

성경을 기억하며 매일을 대할 때 일상에서의 신비를 경험하게 된다.

 

2. 성경을 기억함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하신 일들을 예배 안에서 기념하면서 이스라엘 전체의 정체성을 만들었다. 마찬가지로, 예배에서 성경을 기억하는 것은, 현재의 사람들이 구원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현존(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에서 살아 갈수 있도록 돕는다. 이것은 과거에 역사하신 하나님을 통해 현재에 소망을 가지게 될 뿐 아니라,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을 현재에서 실천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므로 예배와 윤리, 영성의 발달이 사회의 도덕성 발달과 관련이 없을 수 없다.

 

3.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는 것

  예수를 기억하는 것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뿐 아니라 예수그리스도의 사역을 기억하고 그의 삶(삶, 죽음, 부활)이 우리를 통해 바로 ‘지금’ ‘여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이렇게 삶, 예배, 신앙에서 하나님을 기억할 때

성령님은 우리를 치유하시고

예수님 닮은 매 순간(“신령한 영적인 삶, p26)을 살아 갈수 있도록 도우신다.

 

  인간의 언어와 상징으로 우리와 소통하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예배로 응답하며, 하나님이 주신 상징과 성례에 주의를 기울이므로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인간>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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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머니즘

Ⅲ. 레이 커즈와일이 전망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Ⅳ. 인공지능

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브라이도티를 중심으로

Ⅵ.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Ⅶ.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대책

   1. 과거에 대한 반성

   2. 미래를 위한 제안

Ⅷ. 결론: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 신앙

   1.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2.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3.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윤철호 저.  <인간>.  새물결플러스 . 2017.

Ⅳ. 인공지능

  인공지능은 인간이 규칙을 가지고 정보를 주어서 결과물을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다양한 상황에서 반응 할 수 있도록(예 : 자율주행) 하는 자율성과 빠른 계산 뿐 아니라 추론 및 전략적 사고(알파고)까지 가능하다.(머신러닝, 클라우드, 빅데이터) 2017년 EU에서는 지능형 자율 로봇이 인간에게 해를 가하는 위험한 상황에서 ‘킬 스위치(kill switch)’를 작동하는 것과 함께, ‘전자 인간’의 지위를 부여 하는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2021년 4월에 일론 머스크는 pager 라는 원숭이가 조이스틱 게임을 하는 동안 뇌의 정보를 학습해서 조이스틱 없이도 게임이 가능한 실험을 했다.* 이것으로 신체 마비 장애인이 뇌파만으로 핸드폰을 사용 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목표이며, 이후에는 하반신 마비 환자들도 걸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한다. 양자 컴퓨터는 슈퍼컴퓨터가 1만년이 걸리는 것을 200초 안에 해낼 수 있다. 양자 컴퓨터와 일론 머스크의 센서 칩이 연결되면 앞으로 공부도 없어지지 않을까 하는 전망이 있다.

증기기관으로 인한 1차 산업혁명, 전기로 인한 2차 산업혁명, 컴퓨터와 인터넷으로 인한 3차 산업혁명에 이어, 인공지능에 의한 4차 산업혁명이 진행 중이다. 4차 산업혁명의 초기에는 모두가 코딩을 배워야 한다고 했지만, 코딩보다 생각하는 법(“컴퓨팅 사고력”)을 배워야 하는 시대이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일자리에 많은 변화가 생길 것을 예측한다.

 

* https://twitter.com/khbae/status/1382196330630582281,

일론 머스크의 원숭이 영상 리트윗, 2021. 5. 26일 접속 (1:33초에 신경망 학습 기록)

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브라이도티를 중심으로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은 비이원론, 지역 주체적 보편주의를 주장한다. 대표적으로 로지 브라이도티(Rosi Braidotti), 캐서린 헤일즈(Katherine Hayles) 등이 있다.

 

  브라이도티가 말하는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과 반휴머니즘에 대한 대안으로 포스트모더니즘과 함께 시작되었다. 한편 그녀는 포스트휴머니즘이 과학 기술의 발달 등의 휴머니즘의 가치들을 도입하면서 그 문제들을 해결할 준비를 하지 않는 것을 지적한다. 기계들이 자율적으로 의사 결정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는데 그것에 대한 기계 윤리와 법적인 문제들은 준비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지적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한다.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은 “자아와 타자들 사이의 상호연관성에 대한 확장된 의식을 제안”하는데 개인은 타자들과의 상호 흐름 안에서 자신을 위치시키는 유대관계를 제안하면서 “세계시민적 유대”를 갖기 위해 각 주체들의 자리를 명확히 알도록 하는 것을 비판적 포스트휴먼 이론의 과제로 보고 있다.

 

Ⅵ.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포스트휴머니즘은 사람의 의지에 따라 자연과 인간의 본성을 마음대로 변화시키고 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인간의 존엄성을 마음대로 변화시킨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또한 현대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화와 질병과 죽음으로부터 인간이 자유로울 수 있는 미래가 머지 않았다. 건강하게 오래 산다면야 좋겠지만 죽음으로 부터의 자유는 피조물의 유한성과 관계된다.

 

  포스트 휴머니스트들은 “컴퓨터의 인간화 또는 인간의 컴퓨터화를 정당화”한다. 인간의 뇌를 컴퓨터 같은 지적 장치로 이해하며 정신과 뇌의 관계를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의 관계로 인식하는 이원론적 접근법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인간의 노화와 질병은 “존중되어야 할 운명이 아니라 극복되어야 할 불행”으로 간주된다. 또한 이들은 인간의 몸을 컴퓨터의 2진 코드의 정보로 환원하고자 하는 환원론적이다.

 

  2004년의 신경학 연구는 인간 정신이 몸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인간 정신은 육체, 환경, 타자와의 상호작용으로 작동하는데 컴퓨터에게 이것이 있을까를 문제로 제기한다. (2021년까지의 발달 상황을 본다면 저자가 제시하는 ‘타자의 고통에 대한 공감, 사랑’등의 감정이 능력으로 나타날 수 있지는 모르겠지만 학습을 통해서 표현될 수는 있을 것 같다는 것이 발제자의 입장이다. 지난 2016년 MS의 챗봇 ‘테이’(사람들과 대화하면서 스스로 학습하는 채팅 프로그램)가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에 의해 여성비하와 유색인종 비하등의 내용이 학습되면서 문제가 되었다. 인공지능 기술이 계속 발전하고, 양자 컴퓨터 기술이 적용된다면 기계학습의 결과는 상상 할 수 없을 정도의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Ⅶ.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대책

1. 과거에 대한 반성

  의학과 과학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이 얼마나 행복해 졌는가 측정은 불가능하다. 기술발달로 혜택을 누리지만 인간의 고통의 총량이 줄었다고 할 수 있는가? 소득 대비 우울증과 자살률은 어떤가? 도덕, 사회, 정치적으로도 점점 살기가 좋아졌는지? 이에 비해 눈에 보이는 빈부격차, 생태계 오염 등은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이러한 과거에 대한 반성이 없다면 포스트휴머니티가 꿈꾸는 유토피아는 디스토피아가 될 수 있다. 무조건 앞만 보고 달릴 것이 아니라, ‘세상을 존중’하고 ‘윤리적 자세를 생각’하며, 현재의 과학기술의 발전이 과연 인간의 삶을 존중하는 윤리적 가치가 잘 지켜질 것인지를 고민이 필요하다.

 

2. 미래를 위한 제안

  저자는 인간의 행복을 증진하는 방향으로 기술을 통제하는 것이 현실의 과제라고 표현한다.(과연 가능할지.. 기준이 '행복'이라는 것에 발제자는 동의되지 않는 내용이다.) 헤일즈는 인류의 지속적 생존을 위해 포스트휴먼의 창조에는 '제한'이 있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예를 들어 생명공학이 육제척 고통으로부터 인간을 도와줄 수 있지만 인류 전체에게 위협이 될 수도 있으므로 어디까지 허용 할 것인지*,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경제적 이유로 기술이 필요한 사람들이 수혜 받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규범을 정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것은 인간이 과학기술의 발달로 불멸을 획득할 수 있더라도 인간의 유한성에 동의하므로 기술의 사용을 스스로 제어 하는 것이다. 저자는 종교의 영역에서 대안을 제안해야 한다고 마무리한다. 과연 가능할까?**

 

*영화 '승리호'에서 "악마의 거래"

**영화 '블랙머니'(론스타 펀드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에서 김나리 변호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이 불법임을 밝힐 자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자신의 가족의 돈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에 투자된 사실을 아는 순간 사실을 덮어버린다. 김나리 변호사는 외환은행 헐값 매각으로 인한 투자수익으로 국제통상업계에서 한국을 도울 로펌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Ⅷ. 결론: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 신앙

1.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저자는 창조질서 내에서의 과학의 발전은 선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따르는 원칙이 필요하므로, 과학 철학과 기술 윤리에 이 원칙이 기초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편 성경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섭리를 말하므로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한다.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오버하는 바리새인이나 포스트휴먼을 막으려 하는 자세나 마찬가지 아닌가.)

"확신 하는 순간부터 왜곡이 발생한다.“

 

2.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과 진화과정 중 창발되었다는 주장은 모순이 없다는 저자의 주장이다. 12장에서 언급되었던 '공감적 사랑'이 하나님의 형상의 핵심이므로 이것이 인간의 참된 존엄성의 원천이라고 저자는 주장한다. 포스트휴먼은 이러한 인간의 존엄성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한다. (그러나 기독교 인으로서 주어진 분야에서 먼저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을까... 공격적인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을, 혹은 나를 공격하는 사람들을 어디까지 '공감적 사랑'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혹은 받아들일수 있을까가 발제자의 고민이다.)

 

3.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피조물로서 인간은 유한하다. 인간은 유한하기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 유한성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악이 발생하고 그로 인해 고통을 당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니버도 그렇게 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인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과학 기술의 발전은 좋은 것이지만 인간이 인간의 본성을 변화시켜 포스트휴먼을 만든다면 문제가 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러나 이것은 경계가 아주 모호하다. 생명연장의 기술이 있음을 알면서도, 생명이 위급한 자신의 자녀에게 그 기술을 사용하지 않을 기독교인 부모가 몇이나 될까? 이 기술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생각하고 쓸 것 같다.) 그러므로 저자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른 인생을 삶으로 자신의 존재 목적을 성취하는데 인생의 의미를 두라고 제안한다.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으로 글을 마무리 한다. 인간이 자신의 유한성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영원에 참여하라고 부른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처럼 자신의 기술이 어려운 사람들 도울 수 있다면 기술자는 열심히 기술을 개발 할 것이고(side effect 때문에 만들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고쳐서 살릴 수 있는데 그 기술을 쓰지 말라고 할 수 있을까?), 누군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람에게는 만들어진 기술이 하나님의 "은혜"일수 도 있다. 기술이 발전하고 그 기술을 사용하는 것은 물물교환에서 돈으로, 돈에서 카드로 카드에서 가상화폐로 변하는 문화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전보다 너무 빨리 변해서 (앞으로 변화의 속도는 지금까지의 변화보다 더 빠를 것이라고 예측된다.) 적응하기 힘들겠지만, 이 변화를 받아들이고 이 상황에서 하나님의 섭리에 집중하며 사는 삶이 지금 그리스도인들의 부르심이 아닐까...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이 쳇봇을 학습시켰던 것처럼 포스트휴먼 사회가 된다면 깨어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 해야 할 공감적 사랑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인간> 17장. 포스트휴머니즘과 기독교 신앙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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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서론

Ⅱ.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머니즘

Ⅲ. 레이 커즈와일이 전망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Ⅳ. 인공지능

Ⅴ. 비판적 포스트휴머니즘 : 브라이도티를 중심으로

Ⅵ.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한 비판

Ⅶ. 포스트휴먼 시대에 대한 대책

   1. 과거에 대한 반성

   2. 미래를 위한 제안

Ⅷ. 결론: 포스트휴먼 시대의 기독교 신앙

   1. 하나님의 창조질서와 섭리

   2. 인간의 존엄성: 하나님의 형상

   3. 유한성과 은혜의 원리

 

  내가 컴퓨터를 전공한 이유는 컴퓨터를 통해서 세계 종말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듣고 그것을 막아야 하겠다는 생각으로 앞뒤 안보고 전공을 정했다.(내가 원더우먼인줄 알았나보다.)

 

컴퓨터학과에 입학하고 엄청 후회했다. 수학을 제대로 안 배운 상고 출신이라 죽을 뻔 했다. 문과적 소양을 하나도 안 키우고 살다가 신학교 와서 또 죽을 뻔했다. 그런데 신학을 하면서 알았다. 죽어야 산다. 그래서 컴퓨터를 통한 종말을 막으려고 발버둥 치는 것이 아니라(누군가에게 그것이 사명이면 해야겠지만.) 현재 내게 주어진 장소와 시간에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그곳이 비록 오해의 소굴이고 십자가이고 죽음일지라도) 그게 성육신이 내게 말씀해주신 것임을 알았다.

 

그래서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포스트휴먼의 기술을 제한(이 과정에 얼마나 많은 싸움과 유혈이 낭자할까.. 십자군 전쟁일 것이다.)해야 한다는 의미의 글들에 동의가 안 되서 끝부분에서 시간을 너무 많이 썻다. 내 생각이 너무 쎄서 쏀 주장 앞에서 죽지 않는 것 같다.

 

윤철호 저.  <인간>.  새물결플러스 . 2017.

Ⅰ. 서론

  과학 발전으로 인한 인간의 미래에 기독교는 어떻게 상황을 읽어가야 하는지를 논하고자 한다. 기독교의 인간론은 성경에 근거한다. 창세기에서는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창 1:27) 창조되었으며 최초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먹으면 하나님처럼 된다는 뱀의 유혹에 따라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났다. 신약에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된다고 선언했으며(롬3:8-9, 엡 2:8),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을 계승했다. 이제 기독교 신앙은 과학혁명으로 인한 인간 미래의 상황을 어떻게 해석해 나갈 것인가.

 

  유발 하라리는 약 7만년 전에 인지혁명, 500년 전에 과학혁명, 250년 전에 산업혁명, 50년 전에 정보혁명이 일어났다고 한다. 정보혁명으로 인해 많은 발전이 이루어졌고, 다른 학문에 많은 영향을 미치는 생명공학 혁명이 진행 중이다. 직립 보행, 뇌 용적의 확대, 도구와 언어사용이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는 생물학에서 현생 인류를 가리키는 말인 호모 사피엔스(라틴어,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는 뜻, 한국어 '슬기사람')는 자신의 뇌를 활용하고 있다. 미래학자들은 현재의 속도로 발달한다면 인류는 과학기술의 힘으로 한계를 초월하며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존재로 대체 될 것을 예측하며 포스트휴먼으로의 진화를 말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스트들이 말하는 포스트 휴먼 시대를 알아보고, 포스트휴머니즘에 대해 기독교 신앙의 응답에 대해 고찰하고자 하는 것이 이 글의 이유이다.

 

Ⅱ. 포스트휴먼, 포스트휴머니즘

  ‘포스트휴먼’(posthuman)이란 호모 사피엔스가 변화되어 다른 상태가 된 존재를 말한다. 포스트휴먼을 지향하는 사조나 운동을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이 과학기술의 발전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은 세상 뿐 아니라 인간도 변화 시킬 수 (외모와 내면의 변화가 아니라 인간 본성을 인간의 욕망에 따라) 있는 도구가 되었다. 이들이 그리는 포스트휴먼은 인간이 자신의 삶을 지배할 수 있는 정도로 능력을 키우고, 생물학적 제약을 넘도록 재설계 하는 것이다. 포스트휴먼의 경계선은 계속 새롭게 그려진다. (by. 캐더린 헤일즈 )

 

  인간의 자발적 진화 과정은 생명공학, 사이보그 공학(유기, 무기물의 결합), 비유기물 공학 기술에 의존하는데 이에 따라 미래의 포스트휴먼의 유형을 추론해 볼 수 있다.

 

1. 생명공학 기술에 의한 복제인간      (ex) 캡틴 아메리카

  유전자 이식과 조작 등으로 불치병 치료와 수명연장 뿐 아니라 인간 복제까지 기대한다. 염색체 구성 변경으로 우등한 형질을 만들어 출생 시킬 수 있다. 나노기술의 발전은 원자나 분자 수준에서 물질의 변형과 목제가 가능할 것을 예측하므로 생물학적으로 인간이지만 인간에 의해 의도적으로 창조 될수 있다는 것이 포스트휴먼에 포함된다.

 

2. 사이보그 공학에 의존한 기계화된 인간 (ex) 아이언맨

  생체 일부가 기계로 만들어지거나, 기계와 결합된 인조인간을 만들 수 있게 된다. 뇌와 컴퓨터의 연결함으로 둘 사이 송수신이 가능한 것이 최종 목표이다. 인간이 창조한 인공물로 자신이 대체되지 않기 위해 자신을 기계와 결합시킴으로 포스트휴먼을 창조한다. 여기서 인공두뇌 기계와 생물학적 유기체, 인간과 로봇의 경계는 찾을 수 없다. “2050년이 되면 인간은 중앙 컴퓨터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서로 연결된 사이보그가 될 것”이라고 케빈 위웍이 예언했다. (이렇게 되면 ‘중앙 컴퓨터’, ‘모두 서로 연결’로 인한 많은 문제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 정보를 장악한 ‘중앙 컴퓨터’(빅 브라더)의 정보 조작 뿐 아니라 전 인류의 리모트 컨트롤(‘맨인블랙’에서 기억을 지우듯이..)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3. 인간화된 기계 (ex) 울트론, 비전, 트랜센던스(Transcendence, 2014)

  가상현실에서의 포스트휴먼의 출현을 말한다, 인간의 모든 것 (뇌 의식, 기억, 인성, 정신)이 복사되어 컴퓨터에 존재한다.

 

Ⅲ. 레이 커즈와일이 전망하는 포스트휴먼 시대

1. 레이 커즈와일 (1948~ )

: “끝없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천재발명가”(월스트리트저널), “최상의 생각기계”, “토머스 에디슨의 부활”

지휘자 아버지와 음악 선생님인 어머니인 유대인 부모가 오스트리아에서 뉴욕으로 이주한 가정에서 태어나 15살에 클래식 음악을 분석하여 그와 비슷한 스타일로 합성하는 패턴인식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을 만든 것으로 시작해, 16세에 국제과학박람회(International Science Fair)에서 발명가로 상을 받았다. MIT에서 컴퓨터와 문학 학사를 받으면서도 자신이 만든 프로그램으로 회사를 설립했따. 장애인을 위한 책읽어주는 프로그램인 Kurzweil Reading Machine, 그랜드 피아노같은 소리를 내는 신디사이저를 만드는 회사인 Kurzweil Music Systems, 맹인, 난독증, ADHD 등 장애를 가진 학생들의 학습을 도와주는 기술을 적용한 Kurzweil Educational Systems 등을 설립하였다. 2012년에는 구글의 ‘머신러닝과 언어처리 프로젝트’ 책임자가 되었다. 저서로는 ⌜마음의 탄생⌟, ⌜특이점이 온다⌟, ⌜영원히 사는 법⌟, ⌜노화와 질병⌟, ⌜21세기 호모 사피엔스⌟ 등이 있다. (생물학적 진화와 기술적 진화를 포함하는 진화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여섯 시기로 구분한다. 5시기에 특이점 발생)

 

2. 특이점 (Singularity)

  레이 커즈와일이 말하는 특이점은 기술이 인간을 초월하는 시점으로 이를 통해 인간은 육체(몸, 뇌)의 한계를 극복할 것을 말한다. 현재는 10년에 두 배씩 발전하는 기술혁신이 가속화 되고, 1년에 두 배씩 증가하는 정보기술이 빠르게 증가하고, 뇌 스캔 기술이 발전하여 뇌의 작동 법을 알게 되고, 2020년대 말에는 컴퓨터와 인간 지능을 구별할 수 없게 되는데, 컴퓨터의 지능은 스스로 빠른 속도로 진화(기계학습)한다. 또한 나노 기술의 발전으로 분자 수준의 물리적 실체를 만들고 그렇게 되면 분자크기의 나노봇 제작이 가능하고, 이 나노봇을 뇌의 모세혈관으로 이식함으로 인간의 지능이 확장 될수 있다. 인간 뇌 속의 나노봇으로 인해 기계 지능이 가능해 진다.

 

3. 인공지능은 어디까지..?

  커즈와일은 유전학, 나노 기술, 로봇공학이 단계적으로 혁명이 발생할 것을 예측한다. 유전학은 생명을 연장하고, 장기를 교체하고 유적자 복제로 인간 복제까지도 가능하게 한다. 나노기술은 세상을 분자 단위로 조립 가능하게 하고 그렇게 되면, 나노봇을 통한 치료와 노화 방지가 가능함을 예측한다. 나노 기술의 발달로 인간의 지능을 뛰어 넘는 인공지능이 포스트휴먼 시대를 만들어 갈 것다. 또한 인간 몸에 생물학적 부분보다 생물학이 아닌 부분(비생물)이 많게 되면서 죽음을 제어 할수 있게 되면서 인간의 불멸을 예측한다. 커즈와일은 이 비생물적 존재가 지능은 물론 감정적 반응*도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영화 'Her' (2013, 스파이크 존즈 감독) : ‘사만다라는 운영체제와 사랑에 빠진 남자 이야기

 

4. 희망적이기만 할까..

  인간들안에 들어간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로(네트웍으로 연결된, 프로그래밍된 나노봇, 비생물) 생물학 바이러스 무기의 가능성을 인공지능으로 통제할 수 있다고 하지만 인간 수준을 뛰어넘는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위험한 존재가 될 수도 있음을 예측 할 수 있다. 인간에게서 만들어진 비생물학적 지능은 작자의 가치를 반영할 것 이므로 이를 막을 수 있는 최대의 방법은 인간 사회에서 미리 인간적 가치(자유, 관용, 인간 존중 등)를 극대화 하는 것과 한편으로는 인류가 방어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대단히 걱정된다. 내 주변의 천재 프로그래머들은 좀 마음들이 이상하다...)

 

<인간> 1장.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나타난 인간론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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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성서에 나타난 인간이해

Ⅱ.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론

Ⅲ. 고대 그리스 철학과 초기 교회의 인간론

Ⅳ. 중세의 인간론 : 토마스 아퀴나스

Ⅴ. 종교개혁자들의 인간론 : 인간론 보다 “중간기” 에 대한 논쟁

Ⅵ. 16-17세기 개혁교회의 인간론

Ⅶ. 근대 이후의 인간론 : 이원론적 인간론에 대한 도전

윤철호 저.  <인간>.  새물결플러스 . 2017.

Ⅳ. 중세의 인간론 : 토마스 아퀴나스 (중세 가톨릭 신학의 대부, 1225-1274)

. 아퀴나스의 인간론 = 아우구스티누스의 플라톤적 인간론 +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론

. 아리스토텔레스 인간론 : 형상(form)과 질료(matter) 두 형이상학적 원리의 연합으로 실체구성

  - 형상과 질료는 홀로 존재 불가능

  - 질료를 조직하여 인간을 생성하는 원리, 인간 기 인간은 질료(흙, 공기, 불, 물)로 만들어짐

  - 형상(영혼)은 능과 능력을 현실화 함

 

(1) 아리스토텔레스 이론 : 질료-형상론에 의해 영혼을 몸의 형상으로 봄

  . 몸(동물, 인간본성의 부분) + 영혼(자연의 한 부분) = 완전한 인격체 (실체적 통일성)

(2) 아우구스티누스 이론 : 영혼은 독자적 실체로 몸의 사후에 영혼은 생존 가능

  . 영혼 : 몸의 형상, 지성적 실체, 영혼은 몸 없이 존재 가능

 

. 가톨릭 교회 인간론 : 아퀴나스의 견해 따름+몸과 영혼의 연합 강조

  - 영혼은 몸의 형상이지만 영과 물질은 하나의 본성을 형성

  -  사후에 몸과 분리된 영혼은 생존함 (이원론)

  -  “죽음, 즉 몸으로부터 영혼이 분리될 때, 인간의 몸은 썩고, 영혼은 하나님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 영광스럽게 된 자신의 몸과의 재연합을 기다린다.”

 

Ⅴ. 종교개혁자들의 인간론 : 인간론 보다 “중간기”에 대한 논쟁

. 몸과 영혼이 따로 존재 가능하다는 것을 전제로, 중간기에 영혼은 하나님을 향한 의식을 갖고 있는가 : 루터(잠잔다.), 칼뱅(깨어있다.), 가톨릭(깨어있다.)

 

1. 마르틴 루터의 인간론

: 철학적으로 숙고하는 인간

: 작용인(하나님)과 목적인(영생) 관계에서 신학적으로 숙고하는 인간 사이의 구별 중요

. 교회전통 인간론 정의 수용 : 인간은 이성, 감각, 몸을 가진 동물이다.

  - 이성 : 인간 구성 요소 중 가장 중요함, 인간과 다른 동물을 구별하는 요소

.“인간은 육체와 살아 있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는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애초에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 졌고 죄가 없으며, 따라서 번성하고 창조세계를 지배하며 죽음을 당하지 않는다.”

인간의 두 영역 : 죽음이 예정되어 있고, 하나님과의 삶이 예정되어 있다.

 

1) “하나님의 형상”

. 영원한 생명을 향한 삶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삶을 위해 창조됨)

. “영원한 생명, 두려움으로부터의 영원한 자유, 모든 선한 것을 포함하는 가장 탁월한 어떤 것”

. 죄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되므로 지성, 의지, 기억, 육체적 능력의 기형화와 죽음에 이름

. 죄는 인간의 근원인 하나님과 자신의 운명인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단절된 표시

. 복음 :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원래 인간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열심.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롬3:28, 인간의 정의) →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칭의로 믿음 안에서 하나님과의 영원한 삶이 가능해 진다.

 

2) “칭의” : 교부들의 성육신 기독론을 적용

. 이레나이우스 : “그리스도를 우리처럼 되게 하신 것은 우리를 그분처럼 되도록 하기 위함“

→ 그리스도가 우리처럼 된 것은 우리도 예수님 처럼 의롭고 거룩하게 살게 하기 위함

. 그리스도는 (인격에 있어서) 참 하나님이다. : “하나님의 진노를 그 자신 안에서 정복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피조물의사역이 아니라 신적 능력의 사역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모든 것을 자신 안에서 정복하는 그리스도는 본성상 참 하나님이어야 한다.... 그리스도 자신이... 본성과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이다.”

. 루터의 칭의 “행복한 교환” :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붙듦으로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다.

 

2. 칼뱅의 인간론

. 모든 지혜는 두 부분으로 나뉨 : 하나님에 대한 지식 & 자신에 대한 지식

. “우리 자신에 대한 지식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일깨울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손을 잡아 끌어 그분에게로 인도한다.” 그러나 먼저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자신에 대한 정확한 지식에 이를 수 있다. : 이 두 지식은 서로 뒤얽혀 있으나 칼뱅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먼저 요구 한다.

 

a. 두 가지 계약 아래 있는 인간 →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율법과 복음은 하나가 된다.

. 이중적 지식 : 인간에 대한 성서의 지식은 율법과 복음을 통한 이중적 지식

  - 율법 : 인간 본래 모습(율법)과 비교하여 자신의 실제 모습을 보게 함 → 영생의 필수 전제조건

  - 복음 : 인간 실제 모습 뿐 아니라 마땅히 되어야 할 존재가 되도록 거듭나게 함

b. 영혼과 몸, 하나님의 형상

. 아우구스티누스 이원론적 인간론 계승

. 영혼(형체 없는 실체로, 몸 안에서 인간의 삶을 지배, 불멸)과 몸은 형이상학적으로 구별

. 영혼은 죽음 후 즉시 안식, “그리스도와 교제”(중간기)하며 그리스도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기다림

. 인간의 본성 : 하나님의 형상이므로 온전함. 인간의 악은 본성이 아니라 ‘본성의 부패’로 발생

. 하나님의 형상 : 영혼이 가장 적절한 자리이나, 영혼에 제한하지 않고 전체 인격→죄로 파괴

인간 안에, 심지어 몸 자체 안에, 불꽃이 빛나지 않는 부분이 없었다.

. 타락한 인간의 상태 (모호) : 하나님의 형상이 미미하게 남아있다? or 남아 있지 않다?

. 회복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형상 회복 (“그리스도가 가장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임을 본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라 그와 같이 되면, 우리는 우리의 참된 경건, 의, 순수함, 지성이 회복되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게 된다.”

 

Ⅵ. 16-17세기 개혁교회의 인간론

1. 두 가지 계약 아래 있는 인간

. 개혁교회 전통은 칼뱅의 이중적 이해에 기초하여 두 가지 계약 관점에서 이중적인 인간 이해

(1) 창조계약(율법계약, 행위계약)

. 완전한 순종을 조건으로 생명이 약속됨, 율법과 행위로 존재

. 자연으로부터 알려짐

. 이스라엘의 존재는 행위계약으로 발생함

. 조건적(지키면.. 안지키면.., 8), 지상에서의 문제가 아니고 의와 영원한 하늘의 기쁨과 관계

 

(2) 은혜계약

. 타락 때문에 창조계약이 성립 안 되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구원(생명)

. 복음은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됨

 

(3) 율법 : 창조계약 안에서 만족되어야 한다. ∴인간에게 단순히 무죄 선고 할 수 없다.→JC의 순종

. 율법은 하나님 자신의 본질적 의를 반영한다.

. 하나님의 형상 : 하나님을 반영하는 인간 내면의 의, 거룩함, 순종 포함

 

(4) 예수 그리스도 : JC의 순종(인간 JC, 둘째 아담)

→ 아담과 인간의 모든 불순종을 총괄 갱신 하고 은혜계약 성취

. 예수는 행위계약 성취한 신실한 이스라엘이며 우리는 그 승리로 은혜계약의 약속을 상속받음

. (호튼) “둘째 아담에 의해 창조계약이 성취되어야만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이 실현되며, 은혜계약을 통해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에게 주어진다.”

 

2. 인간 안의 하나님의 형상

(1) “하나님의 형상” 정의

.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아담이 창조될 때 부여받은 “참된 의와 거룩함”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하나님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 의, 참된 거룩함을 부여받은 인간이며, 자신의 마음에 새겨진 하나님의 율법을 가진 인간이며, 그 율법을 성취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인간이다. 그러나 또한 이 인간은 자유의지에 따라 율법을 위반 할 수 있는 인간이다...“

 

(2) 타락 이후 하나님의 형상은?

. (우르시누스) 일부 상실, 일부 잔여

. (존 머레이, 칼뱅주의) 인간은 몸을 가진 것이 아니라, 몸이다.

. (튜레틴, 칼뱅주의)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의 자리이지만 몸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으며 몸도 불멸에 참여한다.” 하나님의 형상인 남자는 여자 위에 있다고 주장.(고전 11:7)

. (루터파) 협의의 하나님의 형상 : 타락으로 형상(본질, 의지, 지성) 상실

. (개혁파) 광의의 하나님의 형상 : 타락 후에도 일부가 남아 스스로 결정력을 지닌 이성적 존재

. (베르카워) 중간입장 : 인간의 본질, 의지, 지성은 상실되지 않았지만, 초자연적 의와 거룩함은 완전히 상실되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형상의 회복은 하나님의 형상이 상실 되었음을 전제 한다.

 

Ⅶ. 근대 이후의 인간론 : 이원론적 인간론에 대한 도전

1) 데카르트 : 이원론적 상호주의 또는 통일주의

. (전통적 이원론적 인간론) “몸과 참으로 구별되며 몸 없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

. : 물질 (연장된 실체?)

. 영혼 : 자아의 본질을 구성하는 형체 없는 (의식적, 사고적) 실체, 몸의 사후에도 생존

. 살아 있는 동안 몸과 영혼은 상호작용하며 통일된 전체를 형성한다.

 

2) 전통적 이원론에 대한 도전

. 신경생물학 : 정신 능력이 뇌와 유기체에 의존하므로 뇌의 특정 부분의 손상은 정신 능력의 장애, 손실 초래한다. ∴ 정신 현상이 뇌의 결과물이라면 영혼을 형이상학적으로 정의할 수 없음.

. 성서학 : 영, 혼 개념들은 몸 없이 존재 불가능하다고 주장. 이원론은 헬레니즘의 산물로 간주

  . 히브리인들에게는 (루아흐), (프쉬케)이 피조물에게 나타나는 호흡, 생명의 힘과 연관됨

  . (오스카 쿨만) 성경에서 이원론을 가르치지 않음. 기독교의 사후 희망은 예수와 같은 몸의 부활

  → 비이원론적 기독교 인간론의 성서적 근거 제공

 

<인간> 1장. 성서와 기독교 전통에 나타난 인간론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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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Ⅰ. 성서에 나타난 인간이해

Ⅱ.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론

Ⅲ. 고대 그리스 철학과 초기 교회의 인간론

Ⅳ. 중세의 인간론 : 토마스 아퀴나스

Ⅴ. 종교개혁자들의 인간론 : 인간론 보다 “중간기” 에 대한 논쟁

Ⅵ. 16-17세기 개혁교회의 인간론

Ⅶ. 근대 이후의 인간론 : 이원론적 인간론에 대한 도전

Ⅰ. 성서에 나타난 인간이해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26-27)

 

성서에서 인간은 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로 표현된다.(시 8:4-5) 그 이유는 구약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image)과 모양(likeness)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하기 때문이다.(창 1:26-27) 이러한 구절은 기독교 인간론을 위한 토대를 제공하며,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하게 한다.

 

윤철호 저.&nbsp; <인간>.&nbsp; 새물결플러스 . 2017.

1. 초기 교회 교부

. 창조자가 직접 주신 인간의 영혼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네샤마,the breath of life)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네페쉬 하야, living soul)이 되니라 )

. 영혼과 몸의 분리 (플라톤의 이분법)

. 유스티누스 : 인간은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된 이성적 동물

. 고전적 기독교 인간론에서의 하나님의 형상 : 플라톤적 개념인 ‘이성적 영혼’과 동일시 함.

. 플라톤적 인간 개념 : 영혼만이 참된 자아

. (중세) 토마스 아퀴나스

  -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이며, 생명의 원리가 된다. (=아리스토텔레스)

  - 정신-육체의 통일체로 이해했으나, 인간의 영혼은 스스로 존재, 육체는 죽어도 영혼은 죽지 않음

 

2. 구약성서

. 네페쉬 하야(생령, 살아있는 영혼) : 몸과 분리될 수 없는 몸의 생명 원리

. 네페쉬 : 영혼, (해부학적)목구멍, 목, 위장 / 활력, 생명력 / 비물질적 부분이 아닌, “전체 인격” 나타냄 ∴ 비물질적 실체인 ‘영혼’보다 인격, 자아, , 나 자신 등으로 해석되는 것이 적합

. 영혼(네페쉬)은 하나님의 영을 필요로 함

. 하나님의 영은 은유적으로 숨(생기, 네샤마) 이나 바람(루아흐)로 표현

  : 영혼(네페쉬)를 생기(animate)있게 하므로 몸을 생기 있게 ∴ 생명의 기원은 신적 영에 있다.

  : ‘생령’(살아 있는 영혼(존재))이 되는 것은 오직 영을 통해서 이다.

. 인간이 동물과 다른 점 : 다른 동물들도 네페쉬를 지니고 있으나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속에 존재하고, 다른 피조물에 대해 ‘창조주를 나타내도록 부름 받았다’

 

3. 지속적 창조와 진화 (창발적 진화*)

*창발적진화 : (네이버 국어사전) 진화는 각 단계마다 그 전 단계를 기초로 하여 이루어지면서도, 그 전 단계에 있었던 요인들의 단순한 총합이 아니라 이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성질이 나타나며 발전한다는 학설 

 

. 창 1장의 창조기록은 BC 6, 바빌로니아의 지혜로 하나님을 세계의 창조자로 증언 한다.
  ∴ 현대의 자연과학으로 하나님을 창조자로 증언 할 것이 요구됨

. “성서는 진화의 전 과정 속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창조적인 활동을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인간이 진화를 통해 출현하면 안 될 이유가 없다. 진화 개념이 성서에 나오는 하나님의 지속적 창조(사48:6 ) 개념과 양립되기 위해서는 진화 과정에서의 새로움과 우연성의 요소를 인정해야 한다.”(p24)

. 생물학자 로이드 모건의 “창발적(emergent, 유기적 organic) 진화“ 개념 : 진화 단계에서 과거 조건으로 인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가 존재하게 된다는 것이 ‘창발’, 진화 과정의 변이 보다 유기 조직의 새로운 설계필요

. 판넨베르크(1928.10-2014.9, 독일 개신교 루터교회 신학자)는 진화론을 생명이 새로운 것을 산출하는 창발 과정으로 이해할 경우 신학적 해석의 대상이 된다고 주장. 창발적 진화 개념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요소가 진화 과정에서 하나님의 창조활동이 일어났을 가능성을 나타낸다.

→ 창발적 진화론은 다윈의 기계, 환원주의적 진화론의 방식을 극복하고, 하나님의 창조 개념과도 양립 가능 (인간 영혼의 유신론적 창발론, 후성적 진화 개념 )

 

 

Ⅱ. 기독교 역사 속에 나타난 인간론

. 구약성서 : 히브리적 일원론적 인간론 (통일체)

. 신약성서 : 헬레니즘의 이원론적 영향 존재 (플라톤)

∴ 서구 기독교 역사는 이원론과 비이원론이 공존하므로 통일적이지 않다. (아우구스티누스)

 

기독교 역사 속 이원론적 영혼 불멸사상

(1) 이원론적 영혼 불멸사상 : 몸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 하나님께 간다.

(2) 몸이 부활한다.

→ (종합) 몸이 죽으면 영혼은 몸을 떠나며 마지막 날에 영혼은 부활한 (혹은 변화된) 몸을 받는다.

 

1. 낸시 머피 (Nancey Murphy) : 기독교에서 인격 구성에 대한 3시기

(1) 히브리에서 주변 지중해로 퍼져가는 시기 : 비이원론 (통일체)

(2) 아리스토텔레스 부흥기 : 이원론, 영혼 중심 이지만 육체와 밀접한 관계

(3) 성서 비평학과 비판적 교회 역사학에 대한 응답의 시기

  (예) 18-19C 성서에 대한 역사 비평적 연구 (계몽주의 확산 시기) : 기적의 역사성이 의심받고 사후 영혼 불멸만이 기독교의 유일한 희망 (영혼-몸 이원론에서 영혼의 가치 )

 

2. 로빈슨 (Wheeler Robinson) - 20C 초

(1) 구약(히브리적) 인격 이해 : 영혼이 아니고 생기 있는 몸(animated body)

(2) 신약 인격 이해 : 일원론적 (통일적) - 몸이 죽은 후에도 영혼(psyche, pneuma)은 존재한다는 믿음. 영혼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몸 없이 일시적 존재(완전하지 않음)

 

3. 신정통주의자(칼 바르트) & 성서신학 운동가 (20C 중반) : 히브리적 사고지지

4. 불트만 : 인격을 가리키기 위해 바울이 몸(soma)을 사용

 

5. 쿨만 : 성서에서는 전체적 죽음과 전체적 부활을 말함

 

 

Ⅲ. 고대 그리스 철학과 초기 교회의 인간론

1. 히브리의 인간 이해

. 긍정적, 통전적 인간 이해

. 인간의 몸과 영혼이 모두 하나님에 의해 지음 받았다고 믿음

. 영혼은 몸과 분리 할 수 없는 관계 (생명의 원리로 이해)

 

2. 그리스-로마의 인간 이해

. 이원론 : 몸과 영혼을 대조적이며, 역설적으로 결합된 존재로 이해 (구원 : 영혼의 해방)
. 플라톤 : “불멸의 영혼이 사멸하는 몸에 갇혀있다“ 영혼의 3계층이 조화 될 때 인간은 행복함
   (1) 이성 (지배 계급) : 이성적 영혼은 죽음 후에 이데아(형상, 영원한 실재)로 돌아감
   (2) 영 (군인 계급) : 동물도 소유
   (3) 욕구 (소비자 계급)
. 아리스토텔레스 : 영혼은 인간의 속성을 제공해 주는 생명의 원리 (형상>영혼>이성>누스)
    . 영혼 : 영양적(성장, 번식의 힘), 감각적(운동과 지각의 힘), 이성적(인간만이 가진)힘이 있음 (p31)
    . 누스(nous, 이성의 한 부분) : 사후에도 존재, 비인격적, 이성적 능력이므로 불멸과 관계없음
    . 영혼과 몸은 시력과 눈의 관계이므로 영혼(몸의 기능을 위한 원리)은 몸과 함께 죽음
    . 모든 물질은 물질(몸)과 형상(영혼)으로 구성
    . 형상 : 물질적 존재의 본질적 성격, 힘을 부여하는 내재적 원리 (영혼은 형상의 하나)

 

3. 초기 교회 교부 : 신구약 중간기에 헬레니즘의 영향이 커짐 → 신약성서, 초대교회에 이원론 영향

A. 교부들은 기독교인이 되기 전에 플라톤 주의자들 (몸은 죽고 썩지만 영혼은 불멸한다는 믿음)
B. 초기교회 : 삼분설과 이분설


(1) 삼분설(삼원론) : 몸, 혼(영과 몸 중재하고 연결), 영(하나님과 관계 갖는 본질적 자아)

. 그리스, 알렉산드리아 교회 (클레멘스, 오리게네스,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 니사의 그레고리오스 이론 : 현대 신학적 인간론 수립에 중요한 방법론적 함의 제공
  - 인간에 대한 진리가 모든 이성적 인간을 위한 진리가 되야 하므로 하나님 형상의 기독교 인간 이해를 그리스-로마 철학과 과학, 의학에서의 인간 이해와 연결시키고자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 이해(식물적, 동물적, 지성적 힘으로 구분)를 받아들임
  - 바울이 몸, 혼, 영으로 구별한다고 주장(살전 5:23)

(2) 이분설(이원론) : 서로 다른 형이상학적 실체인 영혼과 몸으로 구성
. 라틴 교부들 (아우구스티누스가 정립), 서방 교회의 표준적 인간론
. 아우구스티누스 이론 : 별개의 두 실체인 영혼(참된 인간의 자리)과 몸(도구)으로 구성
  - 인간의 자아는 영혼과 동일(플라톤), 몸에 갇혀 있지 않은 영혼은 불멸한다.

  - 영혼 : 의지, 지성, 욕구의 계층적 질서를 이루며, 몸 전체에 영향을 미쳐서 몸을 움직일수 있게 하며, 영혼이 하나님의 형상, 구원의 수단으로 몸에 갖혀 있는 영혼이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관계 가질 수 있도록 계발. 몸은 영혼에 의존하지만 영혼은 의존하지 않으며, 영적 실체로 영혼은 몸의 사후에도 불멸한다.

 

C. 인간됨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다. 인간 존재, 삶의 의미와 목적이 하나님께 있다.

“당신은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을 얻기 까지는 안식이 없습니다.”(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중)

 

D. 교부들의 인간 이해는 ‘하나님의 형상’ 개념이 중심 (다른 피조물과 구별/그레고리오스)

 

E. ‘하나님의 형상‘의 의미 : 여러 관점에서 이해

(1) 하나님과 관계 맺을 수 있는 정신적, 영적 존재 (자연의 일부이지만 다른 피조물과 구별)

- 인간을 인간 답게 만드는 정신(영혼)의 활동 : 하나님 알고 사랑 하기

- 아우구스티누스 : 영혼만 하나님의 형상. 정신이 자신의 내면으로 향할 때 하나님께 이끌림

(2) 하나님을 유비적으로 나타냄 : 인간의 정신에 하나님을 나타내는 존재론적 동일성이 있음

- 아우구스티누스 : 삼위일체와 동일성을 인간 정신 안에서 발견(인간의 기억, 이해, 사랑(의지))

- 모든 교부들이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 정신에만 있다고 하지는 않았지만 몸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하지는 않았음.

(3) 인간의 자유 : 신적 본성이 인간의 본성에 각인된 것 (그레고리오스)

- 자유의 본질 : 인간이 되어야 할 것이 되는데 있음. 의지에 의해 자유가 행사된다. 의지는 삶의 목적을 이루도록 하며, 탁월함(덕)과 번영을 지향하도록 한다. 덕이 성장함에 따라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되므로 자유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이해 되어야 한다.

(4) 죄와의 관계안에서 하나님의 형상 발견 : 죄로 인해 흐려지고 망가짐 (훼손, 손상)

(5) 하나님의 완전한 형상인 그리스도 안에서 이해된다.

- “첫 번째 창조에 나타난 인간과 완성의 때에 나타날 인간은 동일하다. 왜냐하면 그 둘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레고리오스)

- 형상과 모양 구별 : “형상”창조 때의 인간, “모양”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창조, 회복된 인간

- 신화(theosis, divinization, deification) : 인간이 하나님 “같이(like)“되는 것

  ∴ 인간 삶의 목적 : 하나님과 교제, 신적 삶의 공유

  → “그리스도 안에서의 구속과 성령의 선물을 통해서만 가능“

. 동방:”우리가 신적 존재가 되도록 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이 되었다.“아타나시오스

. 서방:“하나님이었던 그가 인간이 된 것은 인간이었던 자들을 하나님으로 만들기 위해서다.” - 아우구스티누스 (바울의 양자 개념과 유사)

(6) 하나님의 형상을 육체와 연결하지는 않았지만 인간의 육체를 중요시 하였다.

- 그레고리오스 : 영혼은 육체 없이 생명을 가질 수 없다. 영육은 함께 만들어짐.“동일한 시작”

- 막시무스 : 영육이 전인적 인간을 위한 분리 할 수 없는 부분이다.

- 신앙고백(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조) : 육체적 부활로 육체의 중요성 강조

- 아우구스티누스 : 몸은 인간의 본성 자체에 속한다.(p37) 몸과 연합하지 못하는 동안 영혼은 자신이 되지 못함

- 부활신학 : “영혼이 다시 이 몸을 받을 때에만..영혼은 완전한 자신의 존재를 갖게 된다.”

정신-육체 통일체로서의 기독교 인간론의 토대가 됨

<영성과 목회> 4장. 영성 지도와 최근의 상황

 

. 영성 지도 목회의 재발견 : 영성과 사회참여, 거룩과 정의의 통합이 당연히 여겨지는 정황

. 영성 지도 :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행해지는 매우 개인적인 사역

 

케네스 리치 저. <영성과 목회>. 최승기 역. 한국장로교출판사.

 

. 영성 지도에 대한 잘못된 개념의 검토

   (1) 권위주의적이거나 전제적이지 않음 : 지도의 비지도적 성격 강조(지도가 아닌 모범의 자리)

   (2) 지난친 의존의 형태가 아님 (성숙한 관계) : 영적 부권의 강조는 전통의 주류가 아님

   (3) 가톨릭 전통만의 독특한 사역이 아님 (뷰서, 리차드 벡스터 등은 이미 알려짐)

      . 가톨릭 전통에서 강력하게 발전, 고해성사와 연결되기도 한다. (혼동 되기도 함 : 7장)

 

. 영성 지도란? 두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갖는 우정의 관계

- 개인적 만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보다 분명하게 분별하게 되고 은혜의 삶 안에서 성장

    (1) 자유롭게 선택 : 자유롭게 영혼의 친구를 구하고 선택한다.

    (2) 자유롭게 관계 종료 : 성장으로 인한 상황의 변경 ∴영성지도는 수 차례의 일시적인 관계

    (3) 전제적이지 않은 관계 : 성령 안에서의 상호 나눔/지도 ∴특별하고 강력한 우정의 형태임

    (4) 삶의 전 영역과 관계 : 영적 영역에만 관계 된 것이 아님

    (5) 도움, 북돋움, 가르침을 포함하는 관계 : 각 요소가 모두 중요

    (6) 거룩과 내적 순결함을 요구하는 관계 : 기교 아님 (신학은 기도의 삶과 거룩의 요청)

 

. 성령 : 궁극적 영혼의 인도자, 그리스도 만이 영적 스승이다.

. 목회 : 기능적 상담이 아닌 성화와 관련

. 영성 지도의 두 가지 중요성

    (1) 성화된 목회 세움

    (2) 성화되고 성별된 사람들(예언자적인 남은자들) 형성

 

. 영성 지도의 목회가 중요한 이유

    (1) 거짓 영성 : 분별의 사역(이를 위해 비판적, 교리적 영역 포함), 거짓보다 무신론이 낫다.

        (ⅰ) 마법 그룹 포함한 사교들의 소생 : 개인적 훈련, 정치적 응답은 배제

        (ⅱ) 기독교 근본주의의 부흥 : 편협한 비전, 단순 무지한 운동

        (ⅲ) 기독교 반물질주의의 부흥 : 세상의 변혁을 반대하는 것이 성육신과 성례를 압도함

        (ⅳ) 자아계발의 부흥 : 개인의 성장에 모든 강조점, 하나님 중심 아닌 자아 중심 영성

    (2) 영적 부흥 : 지도를 갈구/영적 부흥으로 체험을 통합시키도록 도울 수 있는 사람들의 인도와 지도를 필요로 하는 크리스천 급증, 인도 없는 은사의 부흥은 영지주의로 변질

    (3) 기독교 사회 행동에 영적 깊이를 제공해야 할 필요성 : 순수 기독인들이 주변으로 밀려남

        . ‘예언자적 증언’ : 국가적, 국제적 사건의 동향에 교회의 응답

        . 기독교 문명화 : 신종교적 파시즘의 형태

        . 예) 1970년대 영국 정부의 철학에 의해 조작 된 사고 → 크리스천 저항 운동을 위해 영적 양식이 공급(기독교의 사회 정치적 행동은 묵상과 강력한 내적 기도에 의해 인도, 공급)

 

. 영성 지도자의 필요 자질 : 획득되는 것이 아닌 제자도의 삶과 하나님과 연합된 삶에서 유출

∴ 영성 지도는 그리스도처럼 살고자 하는 삶의 부산물

    (1) 공동체 구성원들의 가장 깊은 경험을 공유 : 특권 그러나 강력한 영적 준비 요구 됨

    (2) 성령 충만하여 성령께 양보하는 사람

    (3) 학식 뿐 아니라 경험이 풍부한 사람

    (4) 인간 안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활동에 영적인 지성과 민감함, 분별력을 지닌 사람

 

    . 영성 지도자는 타인을 인도하는 바로 그 과정에서 지도자가 인도함을 받고 있다.

 

만일 어떤 사람들이 

아직도 자신들의 과거의 좋지 않은 습관들에 의해 지배를 받고 있으면서

단순히 말로만 가르치고 있다면,

그들이 계속해서 가르치도록 하라.

왜냐하면 아마도

자신들의 말로 인해

수치를 느낌으로써,

그들도 결국에는 자신들이 가르치는 것을

실천하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John climacus)

<불멸의 다이아몬드> 부록

리처드 로어 저. < 불멸의 다이아몬드>. 김준우 역.&nbsp; 한국기독교연구소. 2017.

부록4. 머리에서 가슴 속으로 성심

.기도 : 생각을 가슴속으로 끌어내리는 것(동방교회 선입관)

.예수님의 성심과 마리아의 무흠성심 : 심장을 가리킨다.

.심장 (생명과 사랑의 장기)

  - 역할

      . 나를 해친 사람들에게 해코지 하지 않도록 함

      . 강박적이고 반복적인 강제적 두뇌게임을 하지 않도록

      . 행복하게 지내는 삶과 부정적이며 비참한 삶 사이의 차이를 만든다.

      . 예 : 원한이나 부정적 생각, 초조함이 일어날때 그 생각이나 사람을 심장속으로 옮겨라

         - 이런 생각은 머리 속에 똬리를 튼다. 그러므로 생각을 침묵으로 둘러싸고, 심장 속에서 뜨거운 피로 둘러싸 숯불 처럼 따뜻하게 느껴라. (심장속에서 심판하거나 적대적인 상태로 남는것은 불가능)

      . 타인을 위해 기도한다고 할 때 우리의 심장 속에 붙들고 있을 수 있다.

 

부록5. 아담의 호흡: 진흙으로부터 기도하기

.온전한 기도

    - 숨과 진흙, 위와 밖으로부터, 아래와 안으로부터 나와야 한다.

    -  영감과 구체화된 에너지 모두를 지녀야 한다.

 

(1) 정신적 기도 :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내려오는 것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숨을 불어넣으시어' 우리 삶에 생기를 넣어주시는 것

  - 이런 경우는 하나님을 '저 바깥에 계신 분'이고'여기 속에도' 계신 분으로 생각하지 않음

  - 이러한 영적 불균형은 성육신과 내주하시는 성령의 은사로 균형이 잡혀진다.

  -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기도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온전히 체험된다.

      : 진흙(에너지와 세포의 차원)으로부터 기도 할 때 온전히 체험된다.

 

(2) 몸기도 : 제스처, 음악, 성사들과 관련됨 (묵주, 챈트, 순례, 예수기도 등)

  - 그리스도의 몸이 나를 통해/더불어 기도하고 계심을 알게 됨(롬8:26-27 )

 

부록6. 지금 부활을 실천하는 열두 가지 길

1. 부정적 생각, 비난, 적대감이나 두려운 생각을 가지고 사물에 다가서지 말라.

2. 해를 끼쳤으면 사과하라.

3. 나의 실수에 대해 적극적인 행동으로 실수를 만회하라.

4. 내 마음과 사회의 기대가 만든 가짜 자기를 믿거나 심취하지 말라.

5. 진짜자기(하나님과의 철저한 일치)를 하루 종일 가능하면 자주 선택하라.

6.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려고 애쓰기 전에 자신을 변화시키려고 애쓰라.

7. 가능한 많이 섬기는 일을 택하라.

8. 언제나 사적 이익보다 공적 이익을 구하라.

9. 고통 받거나, 배제되거나 장애 가진 이들에게 먼저 우선권을 주라.

10. 자선행위보다 공정한 체제와 정책을 추구하라.

11. 나의 전달 방식이 나의 메시지와 똑같은 것이 되도록 하라.

12. 모든 것이 사랑에 달려있음을 의심하지 말라

 

<불멸의 다이아몬드> 4장. 체험이라는 칼끝

 

바라봅니다.

 

눈 감으면 내 안에 하나님 바라보고

눈 뜨면 세상 속에 하나님 바라봅니다.

 

내 안에 계신 주 날 사랑한다 하시고

세상 속에 하나님 서로 사랑하라 하시네

 

눈 감으면 내 안에 하나님 바라보고

눈 뜨면 세상 속에 하나님 바라봅니다.

- 이강학 -

 

리처드 로어 저. < 불멸의 다이아몬드>. 김준우 역.&nbsp; 한국기독교연구소. 2017.

 

1. 종교적 상징(은유)의 의미

. 종교는 개인적 의미와 진리를 가르쳐 준다.

. 개인적 진리(깊고 영원한 의미, 영원한 철학 전통) : 상징, 은유, 성스러운 이야기 같은 보편적인 지혜로운 전통에서 찾아짐

(ex) 부활 : 종교적 은유 (보편적 진리 주장)

∴ 은유

(1) 은유는 신비에 정직(의미가 깊어서 ‘끝없이 이해할 수 있는 것’)하므로 종교가 이용할 수 있는 유일한 언어, 예수님의 은유 사용 (명료하지 않은(할 수 없는) 영적 진리를 가르치기 위해 탁월한 은유 사용[1])

   (ex) (요 10:16) ‘다른 양’ →오직 한 떼

         (요 17:21-23 “모두 하나가 되게 하여 주십시오”) : 타자성을 극복해야 이루어짐

(2) 많은 의미를 내포함 (문자 : 의미의 가장 낮은 최소한의 단계)

(3) 은유에서 긴장과 갈등 발생

(4) 단순한 상징은 ‘현관’ : 겸손하고 공경하는 자세로 다가가기

    (하나님께 다가가기 위해 상징의 세계를 읽어낼 능력)

 

. 겸손하고 공경하는 자세 : 내면의 모든 공간을 동시에 열어놓는 어려운 과업

- 토마스 머튼의 부처이야기 (그림자와 겉모양 너머에 도달)

. 놀라운 실상을 발견하기 위한 연륜의 필요 (반사 작용(묵상의 반대)은 에고 중심, 자기 기준)

. 과학자들 조차도 은유 필요하다고 인정

 

상징 : 실체를 체험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 상징 없이는 체험을 체험하지 못한다.

     (時와 전례(liturgy)는 경험을 정의하지 않고 그 자체를 준다.)

. 상징의 역할 : 삶의 핵심적 의미를 새로운 틀속에서 재구성하고 재조정하게 함

   . 포스트 모던에서는 사물이 의미가 없는 세계라고 하므로 사람들은 매우 외롭다. 사람들은 의미 없이는 행복하게 살 수 없다. 상징은 의미를 주는 힘이 있음(매일 아침 일어나게 만드는 “의미” – 종교가 해야 할 역할)

. 의미 : 개념 이전 단계, 말에 예속되지 않으므로 비합리적으로 보일수 있지만 정확한 순간에 정확한 상징으로 드러나고 간파되기를 기다린다. (ex) 석양, 게르니카 : 느끼는 감정이 살아있음과 연결되어 있고, 진실함을 느끼게 됨→위안과 만족이 일어남 (카타르시스, 정서적 정화(성사))

 

. 보편적 은유 : 나무, 물, 동물, 인간의 나체상 – 다른방식이지만 사람들에게 작용(해석)

  - ‘우리를 저 너머로 인도’ (훌륭한 종교의 역할)

    (ex) ‘인격’ : 하나님과의 인격적 주고받음을 가능하게 함

      ∴ 하나님의 실재를 열기 위해 필요한 은유

. 종교가 은유와 상징의 진리를 알았으나 계몽주의 이후 부터는 합리적, 증명 할 수 있는 것을 ‘실재’와 혼동하기 시작함 (계몽주의를 통한 퇴보)

. 종교가 대세의 흐름에 따라 합리적이려고 하는 노력이 ‘묵상’이라는 대안적 의식을 상실하게 함

→ 의식보다 높은 초 합리적이며 초 인격적, 그 자체가 초월적인 단계에 접근하는 길을 잃어러긴 경우로서 “우리가 우리 자신의 외적 믿음 체계에 대한 대부분의 내적 체험을 상실했다”(렉시오디비나?) : 오늘날 종교의 문제 핵심이며 올 세대에게 심각한 문제

→ 종교적 근본주의와 무신론 : 체제가 선택한 논리와 영역에서만 작동하는 자기폐쇄적인 합리적 체제

. “보편적” 개념은 나의 특성이 없는 것으로 에고(개인 혹은 집단)는 자기 집을 떠나는 것을 원하지 않으므로 “보편”보다는 특별, 우월, 개별적인 것들을 좋아한다. ∴ 타자와 연결시키는 것 대신 계산하는 것을 더 좋아하고 진짜 자기를 찾는 일 대신 논쟁하기를 더 좋아한다.

 

. 부활 : 효과적인 상징, 인간의 마음이 추구하며 갈망하는 위대하며 아름다운 것

. 죽음에서 해방되는 보편적 패턴

. 그리스도의 신비 :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분, 풍성하신 분 (거대한 우주 뿐 아니라 불결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포용함으로 그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풍성함도 포함)

   . 그리스도 : 하나님의 몸, 물질화된 하나님의 이름

      (1) 부활한 그리스도 : 역사의 예수

      (2) 영원한(우주적) 그리스도 : 삼라만상을 통해 계시된 하나님, 세상의 구주, 알파와 오메가

       ∴예수 믿는 사람들이 우주적 그리스도를 믿지 않으므로 예수의 의미를 작게 만듦 : 부족신

   .  우주적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으므로, 그리스도의 몸에 대한 온전한 이해가 없을 뿐 아니라, 인간적 (몸의, 일상의) 경험을 진지하게 다루지 않으므로 놓치는 것들이 많다.

      ∴ 일상, 일상의 경험 속에 그리스도의 신비가 있음을 알지 못하므로 ‘체험이라는 칼끝’에 도달하지 못하고 가슴의 부활 혹은 역사 자체의 부활이 일어나도록 만들지 않음

   .  그리스도의 신비가 진짜 자기의 전체 여정(신적 잉태, 사랑받는 자의 지위, 십자가를 거쳐 부활에 이르는)을 위한 지도가 됨(그리스도의 여정=진짜 나의 여정으로 해석됨?) - 칼융(p105)

 

. 부활 : 변하지 않는 것, 보편적인 것으로 거의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부활 (p106하~)

. 가짜 자기는 매 순간 마다 닥치는 문제들과 스스로 만든 목표들에 의해 힘을 얻고

. 진자 자기는 일치와 자신에 대해 만족하는 것, 깊이 공명하는 것(의미)를 필요로 한다.

 

. 비이분법적 의식 : 실상을 분열되지 않은 방식으로 보는 것 (ex : 삶과 죽음은 전체의 부분)

   - 예수님은 자신에게 죽음을 요구하신 하나님의 목표를 참사람의 운명이라 부르셨다. 그의 이러한 삶이 우리 모두를 위한 대표라는 것을 알고 계셨다.

 

*[1] 사람에 따라 의미를 깨닫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기꺼이 오해를 감수하심

 

2. 호흡(입김)과 진흙의 춤

. 호흡과 단순한 진흙처럼 보이는 것에서 하나의 드라마가 영원히 시작되었다. 물질과 정신이 한데 묶여졌다. 신적인 것과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이 서로 침투하고 서로 드러낸다. 무형의 일자가 ‘아담’의 형태를 취하면서, 자신이 잠시 동안 취했던 자아를 내려놓으므로 무형의 일자로 되돌아 가게(죽음처럼 보이지만 승천) 한다. “내가 너희 있을 곳을 마련하면 다시 와서 너희를 데려다가 내가 있는 곳에 같이 있게 하겠다”(요14:3) →부활 : 개체로 태어나 다시 하나님에게(존재의 근거) 되돌아 간다는 진리

∴ 죽음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며 생명을 감사할수 있게 한다.

. 그리스도가 역사속에 감추어져 있어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 자신 바깥에잇는 신적 대상을 찾도록 배워왔다. 그러나 우리 속에 있는 신적인 목표를 실현 하는 것이 부활(종교적 변형=형태의 변화)이다.

→ 진짜 자기의 최종적 모습 : 예수님과 하나님이 모두 선하며, 일치(합일)해 있다는 것을 큰 기쁨으로 누리는 존재

 

3. 우리의 종착지

. 부활

   - 성육신의 논리적 결론이자 완전한 결말

   -  세상, 육신, 물질이 영원한 진리의 한 부분이며 하나님에게 중요한 문제가 된다

   -  입증할 기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체험해야 하는 온전함이다.

   -  한 순간이 모든 순간들의 의미를 계시하는 때

. 부활하신 그리스도

   -  인간의 최종적, 완전한 운명에 대한 이콘

   -  우리가 짊어진 십자가에 대해 하나님이 어떻게 하실 것인지에 대한 보증 ∴소망으로 뜻깊은 삶을 살수 있다.

. 예수님의 상처

   -  사람임을 알려주심

   -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지만 부활후에도 여전히 상처가 있음

→ 예수님이 인간의 영역을 떠나시지 않았다는 것 (상처를 주고 받는 세상 속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부활

   -  목숨보다 큰 존재 자체, 천국을 위해 창조됨

   -  부활의 상징과 내용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문자적 의미를 뛰어 넘어 부활을 이해

   -  “영원한 의미를 갖는 현재의 삶” : 선한 삶과 사랑의 삶 (영원)

   -  하나님은 항상 모든 것을 부활 시키시는 것처럼 보이는데 ‘믿음’이라기 보다 관찰과 교육

 

. 생명은 ‘원복’의 장소로부터 왔기 때문에 멋지 곳으로 향한다. 이것을 위해 우리의 개별적 인생과 영원한 생명 사이에 “변화”와 “십자가”가 개입되어야 한다. (갱신 앞에 존재하는 상실 ∴상실의 아픔을 헤치고 길을 헤쳐나간 모델(예수님)이 필요)

. 구원은 처음부터 주어진 약속으로 앞을 향해, 안에서부터 밖을 향해 주어진 약속(진화) : 하나님의 신비는 모든 이전 단계를 품으며(악, 죽음, 죄까지도..) 위대하게 펼쳐진다.

→ 위험을 감수하시는 하나님 vs 안전, 효율, 통제에 자로잡힌 인간(=권태, 죽음을 의미)

. 이러한 하나님의 적극적 방향성을 알게 되면

    (믿음) 그 흐름과 함께 나아 갈수 있으며

    (소망) 그 흐름에서 쉬는 것을 배우며

    (사랑) 그 흐름속에서 산다.(평생)

 

4. 영적 원리 : 사랑과 진리

(1) 사랑만이 큰 진리를 맡을 수 있다.

. 사랑 외의 모든 태도들은 진실을 죽이고 난도질 한다. 그러므로 사랑의 일치를 찾아야 하며 거기서 시작해야 한다.

. 가슴속에서 주의를 집중하는 것이 기도의 출발점(성 테오판)

. 기도외에 합리적 정신, 신학, 체험이라는 조정 장치는 진리와 능력을 왜곡시키며 파괴

 

(2) 진리

. 정직하게 원하는 사람들에게 항상 아름답고 치유하는 것

. 아름다운 영혼은 선함의 조화를 인지한다.

. 그리스도인들의 분노와 멸시(=퇴보)는 하나님의 사랑속에 침잠한 것이 아니다.

. 성육신은 아름다움이며, 아름다움은 육화되기를 원한다. 선함을 간직하고, 진실함으로 흔들어 놓고, 아름다움 속으로 빨아들이는 것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 부활 : 우리를 초대하며 유혹하는 네온사인, 죽음이 아니라 사랑(영생의 다른 이름)이 영원한 것임을 상기시켜주는 밝은 빛이며 유혹.

. 사랑은 이미 우리에게 이루어진 현실 : 사랑은 세상을 온전한 사랑 속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사랑이 항상 승리한다.

. 체험의 차원에서 자기 앎과 하나님 닮이 같은 앎으로 체험되며, 함께 앞을 향해 나아간가. (ex. 친밀함) ∴어떤 하나를 아는 방식이 우리가 모든 것을 아는 방식이다.

. 가장 깊고 참된 자기에 대한 추리의 체험과 하나님에 대한 체험은 서로 간에 옳은 체험이라는 것을 증명할 것이며, 서로간에 아름다운 체험이라는 것을 입증할 것이다.

 

*나의 정직한 체험이라는 칼 끝(히4:12, 말씀, 진리) 없이는 두 체험 가운데 어느 것도 진실하게 나아가지 못함

*정직한 체험 : 우리를 베어내고 찢어서 양쪽 방향으로 멀어지게 함. ∴두려워 할 것이 없음

 

 

 

<불멸의 다이아몬드> 3장. 무엇이 죽고 누가 사는가?

 

. 에고의 낡은 시각과 가짜 자기에 대해 죽어야, 신뢰 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새로운 종류의 앎으로 넘어간다. 영혼을 지닌 것도 알게 되어 영혼으로 귀를 기울이게 된다. 가짜 자기는 영혼이 하나님/실재[1]/우주와 하나가 될수 없다는 거짓말을 함으로 서서히 죽게 만든다.

 

. 우리 안의 진짜 자기부터 일깨워져야 다른 영혼도 알 수 있고, 자신이 생겨난 전체를 인식 할 수 있다. 자신의 영혼과 접촉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제한된 경험으로 인해 영적인 것(하나님 체험)들을 알아들을 수 없다. (눅 21:17)

 

리처드 로어 저. < 불멸의 다이아몬드>. 김준우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17.

 

. 종교적 가짜 자기 : 가장 강하게 방어, 에고를 위해 하나님을 종으로 둔갑(필요에 의해 타인을 미워하고 죽이면서도 자신이 하나님의 거룩한 의무 수행으로 주장) 종교가 타인과 함께 아파하는 마음을 지니게 하지 않는다면 종교는 문제가 됨

죽어야 사는 것
가짜 자기 진짜 자기
예수님 그리스도
훌륭한 사람 신앙의 도약

 

. 죽음이 에고와의 연결을 느슨하게 풀어주어서 새로운 모습으로 되돌아가는데 이 모습이 그리스도, 영혼, 진짜 자기이다. 임종에 달해서 (혹은) 비극을 겪고 나서 억지로 가짜 자기를 깨닫기보다 일찍 깨닫는 것이 낫다.

 

. 에고(죽음 이전의 자아, 가짜 자기)가 죽은 후에 더 크고 밝은 자아로 태어나는 경험을 한 후에 영혼의 실재를 인식한다. 가짜 자기가 죽어야 진짜 자기가 산다.

 

. 진짜 자기 : 참된 부분, 우리를 통해 숨쉬는 하나님의 호흡

. 가짜 자기 : 이분법적, 양자택일, 자기보존의 욕심은 관점의 변화를 거부하려고 함

    - 항상 변하고 사라질 부분, 자기 중심 관점(참되지 않음)

    - 상대적인(정신과 문화에 의해 만들어진), 죽을 수밖에 없는, 실체 없음/소멸 될 실체 없는 것

    - 우리가 가짜 자기를 사랑하는 이유는 사라지기 전에 집착하는 것 일 수도 있음.

        * 성숙한 종교 : 가짜 자기에 대해 죽는 과정을 촉진 시킴 (성자들의 대항 문화적 삶)

     - 삶을 익숙하게 만든다. 인생의 전반부에 독자적 정체성 확립시켜 줌

     - 상실, 고통 등 부정적 요소들로 우리의 존재가 개별적인 것이 아니라 전체의 일부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성장의 도구

     - 자아를 사랑 하기 때문에 ‘사랑은 영원하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그러나 사랑을 선택할 때 마다(죽기로 작정) 자신의 일부를 대상에게 주면서 자아가 확장되면서, 더 큰 진리 속으로 들어간다. 이전의 소아(small self)에 대해 죽고 계속 확장할 것인지, 자신 속으로 다시 들어갈 것인지(나쁜 죽음) 선택해야 한다.

     - 변형의 춤 : 자아가 둘에서 하나로 재조정되는 것, 신뢰의 길, 하나님&사랑을 신뢰할 수 있는지 시험하는 과정. 이 과정을 통해 진짜 자기 속으로 빠져 들 수 있다.

 

* 무엇이 죽는가? 가짜자기 (시간문제)            → 죽는 것은 “무엇“이고

* 누가 사는가? 태초부터 살아 계셨던 하나님    → 사는 것은 ”누구“ 임이 중요

 

[1] 실재란 보이는 현상이 전부가 아니기에 현상을 보고 실재를 보는 것은 진짜 자기만 가능하다고 해석해도 되는가.() 예수님의 십자가에서의 중보기도 현상:구원자의 십자가형, 실재:죄인의 무지

<불멸의 다이아몬드> 1장. “진짜 자기”란 무엇인가?

 

. 다이아몬드 : 완전한 신뢰, 충실, 참됨, 언제나 의존 가능함, 빛나는 것

.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리 찾기를 포기하고 자신을 기준으로 삼아 자신의 에고(가짜 자기)속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결혼, 우정, 헌신 같은 것이 불가능해지지만 개인적 에고 속으로 물러나는 것이 당연하면서도 잘못 된 것이다.

 

리처드 로어 저. < 불멸의 다이아몬드>. 김준우 역.  한국기독교연구소. 2017.

 

. 자기 내면으로 들어감 : 진짜 자기 vs 가짜 자기 (둘 다 자기로 느껴지므로 혼란이 됨)

  (1) 진짜 자기(영혼) : 그리스도 안에 사는 속사람 / 진정한 중심 잡기 / 추구해야 하는 자아

      A. 발견할 경우 절대적 기준점을 찾을 수 있다.(심리치료비 수입) : 골1:27

       B. 외적 권위 : 성서와 성숙한 전통

       C. 진정한 내적 앎 :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모든 사람이 특별, 어디서나 하늘 문 발견)

       D. 항상 선한 것을 말하게 한다.

       E. 밭에 묻혀 있는 보물 (불멸의 다이아몬드) : 내 밭에 숨긴 보물은 살 필요 없음

  (2) 가짜 자기(소아,에고) : 겉사람/ 오래 있거나 머물면 큰 재앙/ 에고가 중심/ 내려놓을 자아

       A. 변화 무쌍한 자신의 도덕적 자아를 척도로 삼음

       B. 외적 믿음 : 오직 여기/ 오직 저기 (우리가 정말 특별하다.)

       C. 스스로에 관해서만 부질없는 소리를 하고 있다.

 

단서들과 증거

. 자신에 관한 관심 :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하는 존재인가, 본질적인 ‘나’라는 것이 있을까

. 너무 일찍 자신의 옷을 입은 경우 : 하나의 정체성에 사로잡혀 더 이상 성숙하지 못하기도 함

  ∴“성공”적인 역할에 안주하면 진짜 자기에 대한 호기심 사라짐

. 종교의 임무 : 내가 객관적으로 누구인지 계속 상기시켜주는 일

. 삶이란 갖고 있었던 이름의 가리개를 벗겨 버리는 일 (북미 원주민의 타고난 상징과 이름)

. 진짜 자기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 (초기 그리스도인), 참된 하나님을 만나는 것진짜 자기를 만나는 것은 대체로 동시에 경험하며 함께 성숙해 간다.

. 말이 달리는 힘은 하나님과 일치하는 우리의 체험이다. 모든 것의 근원인 하나님을 발견하면 샘물(에스겔 47장)은 영원히 흘러나올 것이다. 말이 모든 일을 하므로, 우리는 수레 위에 있으면 된다. (도랑을 파는데 허비하지 말고 내면의 흐름을 발견하는데 초점을 맞춰라/테레사)

 

영혼, 우리의 타고난 정체성

. “정체성” : 세계종교들과 철학들이 본질적으로 영혼(soul)이라는 말로 뜻했다.

. 영혼(나비) [1] : 영혼과 진짜 자기는 정의하기 어렵다. 공기를 볼 수 없는 무능력처럼 진짜 자기를 알 수 없다. 적극적으로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배우는 것이 성숙한 종교의 비결. 분노, 공포, 이데올로기적인 것은 가짜 자기를 더욱 강화시킴

    . 영혼 : 하나님 안에 있는 우리 자신,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 자신

     . 당신 자신이 되라. 다른 것은 이미 다른 사람들이 가져가버렸다. (오스카 와일드)

. 영혼 & 진짜 자기 : 둘다 진리를 아는 일부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교환해서 사용 가능하나 진짜 자기가 영혼보다 더 큰 것(성령과 성령의 나타나심도 포함)이다. 진짜 자기와 영혼은 모두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다이아몬드를 드러내고 둘은 하나처럼 작동 한다.

. 진짜 자기

    (1) 신적 DNA : 존재의 깊은 저장고 속에 청사진으로 간직되어 차츰 성취되어 그 자체를 드러낼 하나님의 형상.

     (2) 진정으로 나를 나답게 만듦 : 예수님 처럼 여정에 함께하며, 되돌아갈 곳이 됨 (휴식)

     (3) 이미 우리에게 알려준 존재 : : 진리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임 (요일 2:21)

     (4) 부르심대로 삶 : “내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나야. 그걸 위해 내가 온 거야”

 

*[1] 그리스어 문자적 의미 (프쉬케)

 

허용 하시는 분 : 자연재해와 인간의 악행과 협동할 정도까지 깊이 허용하시는 분

. 하나님의 전적인 허용이 인간의 불평이 됨 (보수주의자의 죄인 징벌과 자유주의자들의 고난에 대한 하나님 배척) → 허용하시기 보다 지배하고 통제하시는 하나님 선호

. 구원 : 위험한 부분까지도 포함하고 허용하는 하나님의 온전하심에 의지하고 맡기는 것(위험한 모험), 하나님의 자유에 참여하는 법을 배우기, 하나님의 지나친 관대도 배움

. 진짜 자기에 이르면 ‘행위자’ 대신 ‘존재’가 된다. 모든 존재가 될 수 있으므로 영혼은 초연하며 어느 것에도 중독되지 않는다. 순수한 존재가 되어 인생의 목적을 성취한다. (고전 6:12 눅 1:48 )

. 가짜 자기 : 진짜 자기 의심, 거절, 존재를 모름, 염려와 불안 속에 산다. 가짜 자기 제작에 많은 시간을 쏟으므로 신앙 생활은 에고의 가식 행위에 불과하고 헛된 믿음으로 끝남, 자기 자신에 대해 진지하게 대접하거나 하나님이 진지하게 대하시도록 하지 않고 남이 주목을 받고 진지하게 대접받기 위해 안달이다. 가짜 자기 세상은 슬프며 깨지기 쉽다.

. 진짜 자기 : 우리는 이미 집에 있으며 자유롭고 넉넉하다. 기쁜 소식의 본질이다.

하나님께서 모두가 협력하여 승리하는 선을 이루시도록 기다리기 보다 내가 직접 패배자나 실패자라고 생각한다.

 

공간이 넓은 영혼

. 깨달음 : 감정싸움, 정신투쟁 속에 빨려들지 않게 함.

. 묵상 : 건드릴 수 없는 고요함으로부터 자신과 세상을 보는 것

. 진짜 자기 :

    (1) “영혼은 공간이 넓고, 윤택하여 그 넓이는 과장 할수 없다....” (내면의 성, 테레사)

     → 영혼이 나보다 크므로 영혼에 거하는 것을 배우며 모든 것과 더불어 살고 모든 것과 어울린다. 진짜 자기 안에서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또한 우주에 속해 있는 것을 안다. (고전 3:23 )

     (2) 거저 주어진 영원한 자비 : 도덕적, 제의적 행동으로 얻거나 성취하지 않음

     (3) 진짜 자기 속으로 떨어진다. 추락을 피하지 말아라. 떨어진 곳에서 참모습을 발견한다.

     (4) 하나님을 들이쉬고 내쉰다. : 첫 번째 들숨과 날숨부터 진짜 자기에게로 간다. (야훼)

 

우리 손으로 다이아몬드를 만들려고 했지만

다이아몬드는 하나님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다.

다이아몬드가 빛나는 광채 속으로 우리를 끌어당기며,

그 광채는 각자의 독특함이다.

 

 

 

 

<영성지도, 심리치료, 목회상담 그리고 영혼의 돌봄> 

5장 종교개혁 전통의 영성지도 (벤 캠벨 존슨)

 

*<영성지도, 심리치료, 목회상담 그리고 영혼의 돌봄> 본 도서는 2024년 1월 1일 기준 절판임

*책에서 ‘그리스도교‘로 표기된 것은 ’기독교‘로 바꾸어 정리함

*벤 캠벨 존슨_컬럼비아신학대학원 기독교 영성 명예교수(영성 박사학위), 기독교 영성, 교회부흥, 복음주의 관련 저서 집필

 

게리 W. 문 ,  데이비드 G. 베너  저 . <영성지도 심리치료 목회상담 그리고 영혼의 돌봄>.  신현복  역.  아침영성지도연구원. 2011.

Ⅰ. 개요

- 미국 장로교(종교개혁 전통) : 돈독한 신앙심(헌신)과 결합된 열정적인 하나님 체험(설교, 교육, 목회돌봄, 성례전)

. 종교개혁의 계획에서 영성지도 생략 이유 (추측) : ① 오직 은혜, 오직 믿음에 집중 ② 만인 사제직

. 칼빈의 ‘기독교 강요’,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 종교개혁 내의 영성 강조 : 하워드 라이스(목회돌봄, 편지쓰기, 개인지도), 유진 피터슨, 캠벨과 앤드류 드레이처

 

Ⅱ. 종교개혁 전통의 영성지도란 무엇인가?

. 영성(영성형성) 정의 : (1982, 어반 홈즈) 성령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인간의 능력, 신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응답

. 영성훈련 : 기도, 성경 공부, 묵상, 관상, 일기 쓰기, 지도가 있는 성찰, 공동체 훈련 / . 원동력 : 예배, 개인훈련

. 영성형성 시기에 영성 지도(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위해 섬기는 것)를 통해 도움 받을 수 있음

 

Ⅲ. 종교개혁 영성지도의 실천

(1) 제도적인 영성지도

. 1979년 기독교 영성 프로그램 공식적으로 시작 (샌프란시스코 신학대학원, 모튼 켈시 & 로이 페어차일드)

. 1981년 영성훈련 센터 시작, 1982년 공적프로그램 시작

. 1987년 엘리자베스 리버트 (교수, 기독교 영성 프로그램 지도자, 대회, 영성수련등으로 확장 역할)

. 1995년 컬럼비아신학대학원 영성형성 자격증 과정

. 교단에서 훈련 강조 – 풀러신학대학원 (기독교 영성 동아리 세미나 발전)

. 기독교 영성 목회학 박사과정 : 종교개혁 전통 복음주의 배경에서 영성지도자가 될 수 있도록 준비시킴

(2) 계획적인 영성지도

. 많은 목회자들이 천주교에서 영성지도 받고 제공 시작

. 영성, 영성형성, 영성지도 : 종교개혁 공동체 어휘에 스며들고 있음

 

Ⅳ. 진정한 변화의 과정

. 변화의 원천은 하나님 ∴마음의 변화는 하나님의 역사

. 변화의 목표 : 그리스도를 닮은 이미지를 향함(창조된 대로 존재하기, 하나님의 뜻 행하기, 하나님을 사랑하기)

. 변화의 과정 (by 칼빈 ‘인간관’) : (1) 의식에서 시작 (2) 신적 자아 계시(人 안에 신성존재 증거)

 

Ⅴ. 종교개혁 영성지도자의 역할

(1) 초기 : 권위적인 제사장 역할 (거만, 만인사제직에 거슬리는 이미지)

(2) 최근 : 관계의 상호성 (영적 친구, 영혼의 친구, 영혼의 짝, 내적 차원의 동반자, 산파)

(3) 지도자의 기능 : 경청, 질문, 영분별, 기도, 제안, 만남을 이끌어감, 자신의 욕구에도 신경을 써야 함

(4) 지도자의 목적 : 피지도자가 본디 창조된 모습으로 돌아 갈 수 있게 돕기 위한 것

 

Ⅵ. 성숙한 영성의 지표 : 그리스도를 닮는 것

. 성도가 그리스도께 온 신경을 쏟는다는 것 : 자율적인 성령의 역사 통해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형성 할 수 있도록

. 기독교 강요 : 하나님에 관한 지식 + 자신에 관한 지식 ∴ 영적 성숙은 하나님과 자아의 관계로부터 발전

 

. 성숙의 증거(특징) :

(1) 개방성 : 심오한 통찰을 통해 두려움 없이 자신을 개방함

(2) 강화된 의식 (신적 움직임을 확인 할 수 있는 능력) : 하나님의식(임재), 문화 의식, 조화로운..의식의 연속

(3) 예리한 영적인 분별력 : 하나님의 임재를 인식하는 것은 영적 분별에 달려있음

(4) 자유를 행사하는 것 : 존재 자체자유, 진심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임무수행의 자유, 실패할 수 있는 자유

(5) 성령의 열매에서 구체화 : 사랑, 기쁨, 평화

(6) 일관적 선택과 예측 가능한 행동 – 연속성 : 자기 사랑을 넘어서는 하나님 사랑가운데 성숙

(7) 삶속에 깊이 몰두하는 것 : 자기 삶의 진실 인정, 도망치지 않음, 삶에 개방적인 자세

(8) 모호함을 다루는 정도 : 현재 모습과 바라는 모습사이 긴장가운데 혹은 신앙정체성과 선택해야 할 것 사이

 

Ⅶ. 영성지도, 목회상담, 심리치료의 관계 : 위탁

(1) 영성지도 : 영적 여정을 도와주라는 소명감과 재능 지닌 성숙한 그리스도인 (기도, 질문, 권고)

(2) 목회상담 : 삶에서 발생하는 문제 해결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 전문으로 하는 성직자(위기관리, 갈등해소에 초점), 내담자의 선택을 늘려줄 정보 공유, 문제 확인하고 그 영향을 이해 할수 있도록 돕기, 가능한 선택 살피고 결정의 결과 예상 할수 있도록 돕기, 내담자가 문제 해결하는 동안 후원과 격려하기

(3) 심리치료 : 영성지도와 목회상담가가 의식에 관련된 일이면 심리치료는 내담자의기능을 저해하는 무의식속의 억압된 요소를 표면화 시킴

차원 영성지도 심리치료 목회상담
문제 하나님 향한 열망 정서적 질병 개인적 문제
목표 하나님 뜻 알기 or 그리스도 닮기 질병 치료 갈등 해소 or 문제 해결
절차 기도, 경청, 지시적 응답(?) 검사, 치료적 경청, 약물, 전문적 치료 검사, 경청, 정보제공, 집단 후원
자원 기도, 성령, 일기, 인도자의 경험, 분별 검사, 전문기술, 약물, 다른 전문가들과 상담 검사, 집단, 경험자, 신학적 준거

 

Ⅷ. 요약

. 종교개혁 전통에서는 영성지도 책이 별로 없음

. 이해와 실천에 중요한 공헌 (ex) 하나님의 통치, 섭리 : 하나님이 하심

. 지도자는 피지도자가 자신의 타고난 신적 특성을 드러내도록 도와주는 것이 목표

. 영성지도의 배경 : 하나님에 관한 지식 & 자신에 관한 지식

. 종교개혁 강조 : 하나님의 은총(영성지도가 발생하는 환경), 넘치는 사랑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훈련> 14장 영성 지도

 

★ 개요

#정의 :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경험하도록 일대일 혹은 소그룹 환경에서 돕는 사역

. 영성지도자 (spiritual director) : 대화를 안내하는 사람

. 진정한 영성지도자는 하나님

   ∴직접 충고하려고 하지 않고, 피지도자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돕기

. 자질 : 하나님과 친밀한 경험하고 있고, 인격적 성숙, 따뜻한 마음, 비밀 유지 (신뢰)

. 피지도자 (directee) : 대화 중 자기의 경험을 나누는 사람

. 함께 하나님을 바라보는 침묵 기도의 분위기, 비권위적, 비지시적 (영성 안내, 영적 동반, 영혼의 친구)

. 영성지도의 목적과 방향

   (1) 일상 혹은 만남의 시간에 피지도자의 내면과 삶에 하시는 말씀과 일으키시는 일에 주의 집중

   (2) 피지도자가 하나님께 주의 집중 할 수 있도록 돕기

   (3) 피자도자와 하나님 사이 장애물 알아차리고 극복 하도록 돕기

   (4) 하나님의 부르심을 인식하고 삶속에서 순종 할 수 있도록 돕기

이강학 책임편집. <오늘부터 시작하는 영성 훈련>. 두란노. 2017

1. 성경적 배경

1) 구약성경에 나오는 영성 지도의 모델 : 엘리, 나단 (구약 대표적 영성지도의 모델 : 제사장, 예언자)

. 제사장 : 하나님과 백성사이 중재 (엘리)

. 예언자 : 하나님의 부르심 받고 사역 시작, 제사장과 왕이 제 역할을 감당하지 못할 때 예언자들 활동(나단)

 

A. 엘리 : 긍정, 부정적인예

① 부정적인 예 (삼상 1:9-18) : 한나에게 ‘언제까지 취하여 있겠으냐 포도주를 끊으라‘는 엉뚱한 충고

. 분별력 없는 영성지도자 피지도자의 특이한 모습을 선입견 가지고 판단 → 질문 하고 경청

. 피지도자를 지지, 격려, 중보해주기, 피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음의 평안

 

② 긍정적인 예 (삼상 3:1-14) : 엘리와 어린사무엘, 영성 지도자의 세 가지 중요한 기능

(i) 피지도자의 경험을 잘 경청함으로 하나님의 부르심 인식(자신의 경험 바탕으로 인식 가능)

(ii) 피지도자가 하나님과 대화를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안내해 주어야 한다.

“말씀하옵소서..듣겠나이다”

(iii) 피지도자가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곁에서 도와주는 역할만 해야 한다. (산파, 거울, 울림통)

 

B. 나단 : 다윗의 영성지도자

① 영적으로 충만했을 때 (삼하 7:1-3) : 마음을 솔직하게 나눔,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사실을 자주 상기

② 영적으로 위기에 있을 때 (삼하 12:1-15) : 다윗의 영적 위기는 나태로부터 시작, 영성지도 3단계

(i) 1단계 : 비유로 자신의 행위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게 함

(ii) 2단계 : 직면하게 함, 죄 가운데 있을 때의 하나님의 마음, 피지도자가 하나님께 죄 고백하고 회개 기대

(iii) 3단계 : 하나님이 용서하셨다는 사실을 전하기

 

2) 신약성경에 나오는 영성 지도의 모델 : 예수님

. 성육신의 목적이 영성지도 : 하나님과 자녀사이의 관계 회복,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 인류의 죄 대신 십자가 죽음

 

A.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요 4:1-42) : 육체적 목마름에서 거룩한 갈망으로 더 깊은 갈망 알아차리게 도와주는 대화, 하나님의 갈망이 피지도자의 깊은 갈망과 일치됨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도움

① 피지도자의 갈망을 파악하고 더 깊이 있는 갈망을 알아차리도록 돕는 것이 중요 : 갈망 4종류로 분류

(i) 육체적 갈망 : 우물에 나오는 것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공감 – 목마름의 근본적 해결을 암시-궁금증

(ii) 정신적 갈망 : ‘네 남편을 불러오라’ 세상적 삶의 추구를 요약하는 남편의 의미 – 갈망을 채우지 못함

(iii) 영적 갈망 : 예배에 대해 질문하면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 인식하게 도와줌-영적갈망의 채움 경험

(vi) 거룩한 갈망 : 다른 영혼들을 예수께 인도, 영생을 맛보게 도와주려는 갈망

② 피지도자의 신뢰를 얻어야 함 : 유대인 남자라는 거리감 호칭의 변화 : 당신-유대인-주-선지자-그리스도

③ 예수님과 우리는 다르다는 사실 분명히 인식 : 예수님과 우리의 영성지도 역할은 차이가 있음

∴ 피지도자와 예수님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 지도록 돕는 역할

 

B.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 (눅 24:13-35) : 예수님 영성지도의 특징

① 경청 : 피지도자가 경험하고 있는 마음을 표현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 (마음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게 하기)

② ‘눈이 밝아져’ 예수님 알아볼 수 있게 도와주기 : 눈이 가리어져 16절, 눈이 밝아져 31절

③ 성경 공부와 묵상 통해 예수님에 대해 올바로 이해하도록 돕기 : 말씀 묵상할 때 가장 가까이 역사하심

④ 직면하기 : 믿지 못하는 제자에게 믿음의 현실 직시하도록 하심

. 영성지도에서 직면은 조심스럽게, 직접 솔직히 말해야 할때가 있음, 성령이 일으키신 직면은 마음을 뜨겁게 하는 감동의 경험, 일상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알아차리는 경험으로 안내

⑤ 효과 : 공동체 안에서 예수님을 알아차리는 경험 : 식사 나누는 자리에서 예수님 알아봄(30), 성만찬 시간

 

2. 역사적 배경 (교회사)

. 사막 영성시기(3-5C) : 압바, 암마 (영적 부모)

. 수도원 : 스승과 제자

. 가톨릭 : 사제 (고해성사)

. 영신수련 (이냐시오, 16C) : 피정지도자 (영성훈련 매뉴얼기반으로 말씀 묵상 통한 영성 지도)

. 종교개혁 후 : 목회자들의 설교, 심방, 편지쓰기로 성도의 영적 성장 도움

. 전통적 영성지도 : 공동체가 부여한 권위 바탕의 지시적 영성지도

. 현대적 영성지도 : 공동체 안에 세워진 영성지도자에 의해, 하나님께 주의를 집중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안내, 교회 지위보다 은사 강조, 비지시적으로 동반, 현대 상담 기술 차용(대화 방법)

 

3. 영성 지도의 효과 : 하나님에 대한 오해, 내적 저항 등의 방해요소 경험, 꾸준히 정기적 지도로 관계 회복

(<<거룩한 초대>>, 자네트 바크, 교재 p273 1~16)

 

4. 영성 지도 실습 안내문 및 해설 : 일대일 영성지도 대화 위한 것

1) 준비 및 기도

(1) 피지도자는 최근 경험 한 가지 준비해오기

(2) 성경책 펴놓기

(3) 침묵으로 임재 앞에 머물기

(4) 하나님의 인도하심 구하는 기도 하기 (영성 지도자)

 

2) 주의를 집중하기 : 피지도자는 이야기 하고, 영성지도자는 관상적 경청 (사랑하는 마음 품고 바라보고 기도)

 

3) 알아차리기 : 피지도자의 마음의 움직임, 하나님의 움직이심, 자신의 마음의 움직임

 

4) 반응하기

. 목적 : 하나님의 현존과 부르심 알아차리게 도움

   . 기술 : 반영, 전달, 재진술, 요약, 침묵(쉼), 음미, 질문

 

5) 대화의 과정

(1) 영성 지도자의 반응 듣고 피지도자는 떠오르는 것 이야기 하기

(2) 영성지도자는 ‘2) 주의집중 ~ 4) 반응하기‘의 과정 반복

 

6) 마무리 : 침묵하며 대화가운데 함께 하심을 돌아보기, 피지도자가 깨닫고 느낀 것 기도하도록 안내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 (2/2)

더보기

1. 시작하는 말

2 경교의 기원

   2.1 네스토리우스의 후예

    2.2 여러 이름의 중국 기독

3. 중국에서의 확장

    3.1 당나라 때의 경교

    3.2 원나라 때의 경교

4. 사라진 경교

    4.1 당나라 때의 경교

    4.2 원나라 때의 경교

5. 경교가 사라진 원인의 고찰

    5.1 내부적 원인

    5.2 외부적 원인

6. 마치는 말

7. 참고도서

 

4. 사라진 경교

4.1 당나라 때의 경교

  845년 무종의 회창폐불(會昌廢佛) 사건으로 불교를 탄압할 뿐 아니라 세 종류의 오랑케 종교인 이슬람, 조로아스트교, 네스토리안을 강제로 환속 했다. 기독교인은 대략 2천 여명의 사제를 환속시키고 불교는 약 26만의 불승을 강제로 환속했다. 이후 878년 황소의 난 때는 많이 목숨을 잃었다. 네스토리안은 대략 3만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송나라로 이어지면서 중국인들이 자신의 체면과 자존심 회복의 일환으로 ‘고유 종교 부흥운동’을 함으로 외래 종교를 소멸시킨 이유도 있었다. 더불어 750년 이후 해양 실크로드의 주도권이 이슬람에게 넘어가면서 수로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오는 네스토리안의 교세는 줄고 이슬람이 늘어났을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기독교내 외세의 지원도 줄어들면서 네스토리안은 점차 중국에서 자취를 감추게 된다.  타슈켄트 동북쪽의 이시크 쿨 호수에서 600여개의 네스토리안 비석들이 발견 되므로 네스토리안들이 실크로드를 따라 중앙아시아로 향했을 것으로 예상 된다. 여기에는 시리아어로 씌어진 것으로부터 투르크어 까지 858년부터 1345년까지의 네스토리안 기독교 정보를 발견 할 수 있다. 중앙 아시아에서 초기의 네스토리안 공동체는 시리아어를 사용하다가 소그드어를 사용하고 점차적으로 투르크어를 사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사무엘 H. 마펫,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nbsp; 1996.

 

4.2 원나라 때의 경교

  원나라때 경교가 다시 활발해 진 이유 중에 하나는 몽골제국과 원나라가 모든 종교에 관용정책을 편 이유도 있다. 그래서 중국에서 쫓겨나서 중앙 아시아에서 생명력을 키운 경교가 원나라와 함께 다시 중국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원나라는 모든 종교에 관대 했기 때문에 원나라 세조 이후에 티벳의 라마 불교가 중국에 영향을 펼치기 시작하면서 지배 종교로 정착되었다.

 

5. 경교가 사라진 원인의 고찰

5.1 내부적 원인

  상기의 자료와 시리아 교회의 선교 방법을 보면 계속해서 시리아 어를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중국내에서 외래 종교로 남아서 토착화 되지 못한 것이 경교가 사라진 이유 중 하나로 크게 손꼽힌다. 또한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의 내용에서 보았을 때 타종교의 요소들이 너무 많이 침입되었다. 물론 초기 번역자들이 도교나 불교의 용어를 채택하므로 상황화하여 번역 하려고 노력했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불”(佛) 또는 “천존”(天尊)이라고 번역하는 것은 상황화를 벗어나는 심한 신학적 타협이었다. 또한 선교 방법론에 있어서 지나친 정교밀착(政敎密着)이 있었다. 당대나 원대의 황실과의 지나친 밀착이 교세를 확대하는데 도움을 주었으나 그것이 또한 교세가 죽는데도 큰 영향이 있었다. 경교가 정교밀착(政敎密着) 상황에 있었기에 원대에서 경교가 사라진 원인에 하나로 대두 되는 것은 가족의 개종이다. 기독교 일가족이 중국내에서 성공하기 위해 중국의 전통인 유교로 넘어간 것이다. 오랜 시간동안 경교로 지낸 웅구트족은 칭키스칸의 동족으로 지배 계층임에도 불구하고 중국내에서 사회적 상향(上向)을 유지하기 위해 유교화 되었다.

 

5.2 외부적 원인

  경교가 중국에서 두 번이나 쇄퇴하게된 사회적 원인으로 첫 번째는 회창폐불과 황소의 난으로 인한 전멸과 기독교 공동체의 붕괴이다. 그러나 여기서 더 큰 피해를 본 것은 불교 인데도, 불교는 아직까지 중국에 남아있다. 두 번째 원인은 상기에서 기술한 송나라때 내부지향적인 종교분위기 조성으로 인한 것이다. 당나라때 외부 유입 종교로서 경교가 인정되고 황실에서의 위상이 높아 되면서 자신들이 무시당했다는 자존심의 문제가 있었다. 송나라때 ‘고유 종교의 부흥운동’에 의해 경교가 소멸되었다. 내부적 요인에서 언급한대로 2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토착화에 집중했다면 송나라때의 이런 상황에서 경교가 살아 남아있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한다. 이슬람의 등장으로 수로가 막혀서 더 이상 외부의 지원을 받을 수 없고 교류가 없던 것도 경교 쇠퇴의 원인이 될수 있었다.

 

6. 마치는 말

  경교의 기원과 종말은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은 분야였다. 경교가 두 번이나 중국내에서 사라진 이유들을 다시 정리해 보면 아래와 같다.

 

. 오랜 시간동안 외래 종교로 남아서 토착화 되지 못함

. 상황화를 훨씬 벗어난 신학적 타협과 표현의 토착화 (예) 하나님의 이름

. 타종교의 요소들과 융화나 타협이 과도했음

. 황실과의 지나친 밀착을 통한 교세 확대 추구 (정교밀착)

. 회창폐불과 황소의 난으로 인한 전멸, 공동체 붕괴 (불교의 경우 살아남음)

.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자존심과 체면과 긍지 회복의 일환으로 ‘고유 종교의 부흥운동’에 의해 소멸 시킴(민족적 자긍심에 의해 희생됨)

. 중국으로 오는 외래인들 중 네스토리안은 줄고 이슬람이 많아짐 (네스토리안 교세 줄어듦, 외세 지원도 줄어들면서 중앙아시아 초원으로 도피)

. 중앙 아시아로 전파 과정 중 각 부족의 소수 민족 종교로 탈바꿈

 

  본 연구와 조직신학 수업을 통해서 네스토리우스에 대한 심각한 오해는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마음속에 복잡한 의문들은 더 많이 남는 것 같다. 네스토리우스에 관련된 책 한권 안 읽고 다른 사람들이 쓰고 말하는 것에 의해서 내가 아는 것처럼 말 한 것도 많이 창피하다. 그러나 또 책한권 제대로 안 읽어보시고 글을 쓰신 분들도 무책임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그래서 사무엘 마펫의 책이 가치있는 고전이 되는지도 모르겠다. 다른 책들에서 찾지 못한 자세한 내용들을 마펫의 책에서 접할 수 있었다.

 

또한 계속해서 생기는 질문은 중앙 아시아로 간 네스토리안 공동체는 시리아어로부터 점차 그 민족의 언어를 사용하게 되었다고 했다. 시리아 교회 선교 방법과 관련된 자료에서 시리아 교회가 선교를 잘 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 중 하나가 시리아어와 현지 어를 모두 사용한 것이라고 했다.(라반 바르 사우마도 여러 개 언어를 했다.) 중앙 아시아로 쫓겨 나갈 때는 이미 중국에서 200년을 지난 시간이었는데 그 동안도 계속 시리아어를 공용으로 사용한 것인지 궁금했다.

회창폐불과 황소의 난으로 인해 경교가 전멸되었다고 볼 수 있겠으나, 수(數)적으로 봤을 때 불교가 받은 타격은 더 컸다 그러나 아직도 불교는 남아있다. 이유는 무얼까? 차이점은 무얼까?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 과정을 보면서 ‘하나님을 신뢰함’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예수님은 우리를위해 이길 수 있는 상황에서 이기지 않으셨다. 40일 금식 후 광야에서 사탄이 유혹하지 않아도 드실수 있었고 가질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사람의 입장이 되어 고스란히 고난을 감당하는 것을 선택하심으로 승리하셨다. 십자가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경교의 중국 진출의 역사에서 (고난이 아예 없다는 것은 아니다.) 황실의 힘을 빌어 성장 했을 때 황실의 쇠퇴와 함께 경교도 쇠퇴했음을 보게 된다. 더불어 네스토리안이 된 가족들이 몇 세대를 거치면서 자신들의 정치 권력을 위해 유교로 넘어가는 것은 초기 선교사들이 자신의 유익에 따라 황실과 손잡고 의지한 모습이 그대로 답습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이러한 과정을 알게 되면서 나또한 지금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고 원하시지 않은, 주시지 않은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이러한 역사를 보고 선교사들이, 목회자들이 배워야 하겠다. 무조건 팽창하는 것이, 거대해지는 것이 좋은 것인지를...

 

  선교에서 항상 대두되는 문제 이지만 어디까지 상황화 하고 어디부터 현지에 이양을 해야 하는가의 문제를 생각해 보게 된다. 첫번 선교사들의 번역의 문제가 있었겠지만 동일한 번역의 문제가 이후에도 계속 되지 않았을까 하는 개인적인 추측이 든다. 당나라에서 중앙 아시아 초원으로 네스토리안들이 퍼저 나갈 때 웅구트 족과 같은 열매도 있었다. 그러나 다른 소수민족들의 경우 그들의 종교와 문화에 기독교가 심하게 상황화 하는 바람에 결국은 그들의 종교와 융합되거나 변형되었다.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이 깨어 있어 항상 주님과 함께 함으로 하늘에서 부어주시는 지혜로 모든 사역을 감당하는 것 밖에는, 항상 은혜를 구하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는 것 같다. 모든 상황을 다시리시고 통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현대에는 기독교를 향한 타종교와 문화의 공격 또한 무시 못 한다. 보이지 않는 큰 적이 힘이 세다고 좌절 한다면 그것은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선택 할 것이 죽음 뿐이라면 주님을 신뢰하며 죽을 수 있는 초대 기독교의 영성. 한 알의 밀알로 썩어지더라도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길 바라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성. 사람 편에서 할 수 있는 노력이라고는 하나님만을 갈망 하는 것 외에는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겠다. 나를 비롯한 기독교 사역자들이 오직 주님만 바라는 삶을 살 수 있기를 응원한다.

 

  더 깊이 많이 공부하고 제대로 표현해 보고 싶었는데 언어의 장애(외국어 실력 부족)와 체력의 부족으로 깊이 공부해 보지 못한 것이 아쉽다.

 

 

7. 참고도서

(1) 김상근,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왜 중국에서 사라졌는가?,” 「신학논단」 43, 2006.2,

(2) 사무엘 마펫, 『아시아 기독교회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3) 이장식, 『아시아고대 기독교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0.

(4) 이재화, “동방 경교와 서방 시리아 고대교회 - 망각과 투쟁의 역사, 랍반 바르 사우마의 생애를 중심으로,” 「Muslim-Christian Encounter」 10(2), 2017.9,

(5) 이현모. "경교는 실패한 선교 모델인가?." 복음과 실천 43.1 (2009).

(6)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7) 편집부, "이야기 교회사/ 경교로 불려진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 교육」 (통권401호(2002년 10월)),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8) 김광수, “경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2293, 2018년 11월 24일 방문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 (1/2)

 

더보기

1. 시작하는 말

2 경교의 기원

   2.1 네스토리우스의 후예

    2.2 여러 이름의 중국 기독

3. 중국에서의 확장

    3.1 당나라 때의 경교

    3.2 원나라 때의 경교

4. 사라진 경교

    4.1 당나라 때의 경교

    4.2 원나라 때의 경교

5. 경교가 사라진 원인의 고찰

    5.1 내부적 원인

    5.2 외부적 원인

6. 마치는 말

7. 참고도서

 

1. 시작하는 말

  아시아 교회사를 수강하면서 알지 못하던 많은 기독교의 역사들을 알게 되었다. 잘 이해하지 못하는 가운데 열심히 찾아가면서 매주 읽기 자료를 읽었고, 이어진 강의 시간에 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그려지지 않았던,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을 이해 할 수 있었다.

 

  알로펜의 이야기나 라반 사우만의 이야기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이야기 였고, 강의를 들은 후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보니, 신라시대에 기독교가 들어왔을 수도 있다는 자료들을 보게 되었다.(물론 강의시간에도 교수님이 언급하셨다.) 600년대에 기독교가 중국에 들어온 자료가 남아있다니.. 그렇다면 그 전에도 들어올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궁금증이 있었다. 특히 중국에 들어온 기독교를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는데 계속 의문이 남았다. 그 기원을 찾아 보고 싶었으나 학기말의 페이퍼로는 역부족일 것 같아, 중국에서 경교의 흥망성쇠를 조금 더 깊이 알아보고 싶었다. 그러면서 경교와 네스토리안의 관계를 조금씩 알아갈 계획이다.

 

  수강 신청할 때 한 치의 고민도 안하고 아시아 교회사를 선택했는데 그 배후에 이렇게 나의 학구열을 자극하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다. 아시아 교회사는 고전 자료가 아니고는 최근의 도서로 출판된 것이 많지 않아서 강의로 듣는 것이 훨씬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이번 과제를 하면서 한국인이 쓴 아시아 고대 기독교사나 다른 자료들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족하지만 여러 책과 논문을 보면서 알게 된 것들을 정리해 본다.

 

사무엘 H. 마펫, 김인수 역, 『아시아 기독교회사』,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용어에 대해서는 중국내에서는 네스토리안 보다는 경교라는 말이 (개인적으로) 익숙해서 주로 경교라고 했다.(물론 중국내에서는 3가지 명칭으로 불렸기에 통일해서 네스토리안이라 불러도 된다고 생각한다.) 경교人일 경우는 네스토리안이 편하므로 중국내에 있는 경교人의 경우는 네스토리안이라고 했다. 용어를 섞어 사용함으로 인해 이해해에 문제가 없기를 바란다.

   

2. 경교의 기원

  국내에 나와 있는 동방 기독교자료나 아시아 기독교 자료들은 경교에 대해서 아래의 두 가지 내용으로 소개한다. 네스토리우스의 후예들이 시련과 박해 속에서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중앙아시아로 향했다는 주장과 네스토리우스 사건 이후로 정치적인 문제로 동방 시리아 교회가 로마 제국내의 교회들과 결별한 이후의 교회들을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는 주장이다.

 

2.1 네스토리우스의 후예

콘스탄티노플 교회 감독이었던 네스토리우스(381∼451)가 그리스도의 양성론을 주장하고 마리아 신모설을 반대한 이유로 이단으로 몰렸다. 431년 에베소 회의에서 이단 판정을 받고 이집트에서 유배 생활 중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그의 이론을 따르던 사람들이 페르시아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그들을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5] 조금더 자세한 내용으로는 페르시아의 열정적인 대감독 바르사우마가 자신의 힘과 권력을 사용하여 네스토리우스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페르시아에 네스토리우스의 신앙고백을 공포하므로 페르시아 교회가 네스토리안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로마제국내의 교회들이 동서 분열이 일어나기도 훨씬 전에 사산왕조 영내에 있는 동방 교회는 로마제국 교회와 나뉜다. 이러한 시리아 교회는 동방 시리아 교회(이하 ‘동방 경교‘)와 서방 시리아 교회로 나누는데, 동방 경교는 중앙아시아, 중국 등으로 동진한 경우이고, 서방 시리아 교회는 페르시아, 터키, 중근동에 현재까지 활동 중인 시리아 교회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열심히 동진한 동방 경교는 왜 사라졌으며 서방 시리아 교회는 어떻게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는가를 공부해 보는것도 가치가 있을 것 같다.

 

2.2 여러 이름의 중국 기독교

  마테오 리치의 중국 선교시기인 16세기 이전에 중앙아시아와 중국 안에서 파사교(波斯敎), 경교(景敎), 에르케운(也里可溫)이라고 불렸던 기독교 신앙공동체 전체를 통칭하여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파사교(波斯敎), 경교(景敎), 에르케운(也里可溫)의 문헌들을 연구해 봤을 때 이들이 이단으로 정죄된 네스토리우스의 신학과 직접적 연관이 없다는 연구이다. 도리어 상기한 중국의 기독교는 동서방 교회의 분열 이전 ‘원시 기독교’의 모습이 있다는 연구도 있다. 그러므로 중국에 마테오 리치 이전에 전해진 기독교를 통칭해서 부를 때 네스토리우스와 상관없이 네스토리안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3. 중국에서의 확장

3.1 당나라 때의 경교

  635년 페르시아 시리아 교회에서 파송된 알로펜이 당 수도 장안에 도착한다.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에는 당태종의 적극적 지원으로 선교가 시작되었다고 쓰여 있다. 당나라 수도인 장안에 교회를 건립하고 21명의 사제들이 활동했다. 고종때는 경교 사원이 넘쳐났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685년부터 섭정했던 불교도인 측천무후에 의해 경교는 첫 번 시련을 경험한다. 이후 713년에는 도교에 의해 위기를 겪었다. 그러나 현종 즉위 이후에는 아라비아로부터 기독교 사절단이 입국하기도 하는등 중흥을 이룬다. 그러던 중 756년에 당나라 황실의 문제거리였던 안록산의 난을 정벌하는 과정에 경교인 이사 장군이 공을 세운다. 또한 이사 장군은 티벳군대의 공격으로 당대종이 위기에 처했을 때 나라를 구한다. 이것으로 황실에서는 경교에 대한 지원에 적극적이었으며, 바로 이때 이사 장군이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 건립을 계획한다. 그는 경교 선교의 150여년 역사를 기록하게 했다. 이것이 중국 고대 교회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 이다. 이 비문은 주교였던 경정(景淨)이 작성했으며 실재로 경정(景淨)의 존재는 여러 문헌에서도 확인이 된다.

 

3.2 원나라 때의 경교

  경교는 9세기 후반부터 중국에서 사라지고 경교인들은 중앙아시아로 도주하면서, 소그드인과 투르크인에 의해 유지되기 시작했다. 744년에서 842년까지 중앙아시아 평원을 지배했던 위그루는 마니교가 국교였고, 이후 케레이트와 나이만이 중앙아시아를 지배했다. 이들은 이미 중국에서 나온 경교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칭기스칸이 중앙아시아 전체를 재패했을 때는 이미 칭기스칸의 민족인 웅구트 족은 기독교였다.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중국에서 도피한 기독교인들에 의해 개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칭기스칸이 세력을 확장하고 쿠빌라이칸이 원나라를 세울 때 그의 어머니는 기독교있이었고 그들은 에르케운(也里可溫)으로 불렸다. 원나라의 황실이 기독교이므로 경교는 다시 중국으로 진출하게 되었고 13세기 중반 유럽의 수도회 신부들이 원나라에 도착했을때 네스토리안과 다양한 접촉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에서도 네스토리안 존재와 활동 기록이 있다. 그러나 몽골제국과 원나라는 경교만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모든 종교에 관용 정책을 폈기 때문에 경교는 다시 위기를 맞는다.

 

(2에서 계속)

 

[참고도서]

(1) 김상근, “네스토리안 기독교는 왜 중국에서 사라졌는가?,” 「신학논단」 43, 2006.2,

(2) 사무엘 마펫, 『아시아 기독교회사』. (서울: 장로회신학대학교출판부), 1996,

(3) 이장식, 『아시아고대 기독교사』. (서울: 기독교문사), 1990.

(4) 이재화, “동방 경교와 서방 시리아 고대교회 - 망각과 투쟁의 역사, 랍반 바르 사우마의 생애를 중심으로,” 「Muslim-Christian Encounter」 10(2), 2017.9,

(5) 이현모. "경교는 실패한 선교 모델인가?." 복음과 실천 43.1 (2009).

(6) 정수일, 『고대문명교류사』. (서울: 사계절, 2001),

(7) 편집부, "이야기 교회사/ 경교로 불려진 기독교의 전래," 「기독교 교육」 (통권401호(2002년 10월)), 서울: 대한기독교교육협회.

(8) 김광수, “경교,”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사전」,

http://encykorea.aks.ac.kr/Contents/Index?contents_id=E0002293, 2018년 11월 24일 방문

영성지도 실습 소감문
(피지도자로서 영성지도 실습을 통하여 어떤 도움을 얻었는가?)

 

이번 학기 피지도자로 2번의 영성지도 실습을 하였다. 지도자이거나 관찰자 일 때는 모두 열심히 기록했다. 그런데 피지도자로 임 할 때는 기록을 해놓지 않았다. 타인을 관찰 할 때는 엄격하게 하면서 나에게는 관대한 모습을 이것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수업시간을 맞으면서도 계속 떠오르는 단어가 ‘교만’이었다. 기말고사를 앞두고 두주동안 아팠다. 내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고백을 하면서도 내 머릿속에 가득한 것은 ‘내가 참 교만하다’라는 것이었다. 학기 초를 시작할 때도 떠오르는 단어가 ‘교만’이었고, 이제 학기를 마무리 하며 한 학기를 되돌아보면서 ‘교만’을 주의해야 한다는 마음이 든다. 이렇게 교만한 나 임에도 불구하고 한 학기 동안 은혜가 컸다.

 

첫째, 개인영성 형성 과목의 매주 교재를 읽을 때 마다 주시는 답과 위로가 있었다. 이번학기 너무 많은 과목을 듣는 바람에 교육목회라는 과목의 책을 못 읽었는데 그 과목의 책들을 통해서도 주실 답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읽고 경험하는 모든 것을 통해 알려주시기를 바라시는(아모스 3:7) 하나님을 꾸준히 경험한 한 학기 였다.

 

둘째, 물어보는 모든 것에 답해주신 한 학기 였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은 이번학기 신학교를 휴학할 것이냐에 관한 것이었다. 갑자기 많아진 스케줄로 인해서 체력에 무리가 되었다. 스케줄이 생기고 조정될 때 마다 하나님께 여쭤보고 함께 한다고 했는데 너무 늘어나서 이번학기는 일주일에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학기 휴학신청하기 전에 계속 여쭈면서 학교를 휴학하려는 것이 하나님께서 나를 업그레이드 하시기 위한 시간인데 “내가” 두려워서 피하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정말 하나님께서 내게 쉼을 허락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질문을 했다.

학교 목요 채플시간에 나를 통해 받으시고자 하는 찬양(사 43:21, 찬송가 288장)을 부르게 하시기 위함이고 내가 두려움에 더 이상 노예가 되지 않기를 바라심을 알려주셨다. 더불어 ‘시간’과 엮여 있는 내 안에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 함을 질책이나 혼냄, 권면이 아닌 직면함으로 알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학교 수련회 목요 채플과 세미나가 있던 날 나에게 이러한 은혜가 있었다.

 

이날 이후로 에너지가 확보되어 오늘(기말) 까지 물리적으로 힘들더라도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는 임마누엘을 누리며 지낸 것 같다. 그날 전까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었고 그날이 지나도 체력이 힘든 것이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날 전까지는 체력이 힘들어도 끝까지 책상에 앉아서 무언가 하려고 했다면, 그날 이후로는 아버지의 쉬라는 말씀으로 알고 푹 쉴 수 있었기에 오늘까지 큰 실수 없이 한 학기를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기말고사 인데 밤늦게 까지 깨어 있을 수도 없고, 몸에 계속 염증이 생겨서 통증이 와서 잠을 안 잘 수가 없는 구조이다. 하지만 하나님을 신뢰 하므로 한 번에 하루씩(마태복음 6:34) 사는 것을 연습하는 학기가 될 수 있었다.

 

이런 훈련이 나에게도 유익이지만, 나와 비슷한 상황을 가진 사람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유익도 있다. 그들은 ‘내가 열심히 해야 하나님이 도와주시죠’, ‘시간이 없는데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이에요?’ 질문이 엄청 많이 쏟아진다. 만약 내가 이번학기에 임마누엘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그들에게 왜 순종 안하냐며 정죄하고 답했을 텐데 웃으며, 그들을 안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 마음 나도 알아요. 나도 그랬어요’

 

 

또 기억에 남는 답이 있다. 지난학기 부터 같은 반 같은 나이의 전도사님 중에서 나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이 한명(A) 생겼다. 동갑이어서 나는 그분이 더 편했던 것 같은데, 참 착하고 선해보였던 A는 여전히 다른 분들께는 활짝 웃어주면서 나에게는 찬바람이 쌩했다. 약간 당황했지만 방학이 지나면, 시간이 지나고 나면 혹시 나에게 서운했던 것을 말해 줄 것이라 생각하고 새 학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새 학기가 되어도 동일한 상황이 계속 되었다. ‘관계’의 중요성을 생각하는 나는, 어떤 공동체에서도 이런 경우는 계속 하나님께 묻고 답을 받지 않으면 내가 해결하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대단히 힘들어 한다. 대부분 내가 속한 공동체는 영적인 공동체 인데 공동체 내에서 이렇게 막힌 부분이 있으면 은혜의 파이프가 막힌 듯한 마음이 든다. 다른 사람들이 막혀 있어도 내가 아프게 기도하고 노력하는데, 내가 우리학번 은혜의 파이프의 한가운데를 막고 있었다. 크게 보면 학교라는 파이프이고 더 크게 보면 신학교라는 파이프이고, 더 크게 보면 하늘나라 성도들의 파이프이다. 잘못은 분명히 내가 해서 A가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일 텐데 나는 아버지께 화를 냈다. 이게 무슨 일이냐고 왜 이런 일이 생겼냐고... 알려주시고 이해시켜주시고 풀어주시지 않으면 나 1:1로 대면하겠다고... (상대가 아직 준비 안 됬을 때 내가 이렇게 밀고 들어가는 것은 아버지가 원치 않는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앞에서 거론한 수련회 이후에 건강검진이 잡혀 있었다. 건강검진에는 심리 검사도 포함되어 있어서 MMPI 검사를 하고 건강검진하면서 30분을 심리검사하기로 되어 있었다. 심리 검사에 들어가자 마자 선생님의 질문에 긴 답을 했다. 선생님이 MMPI 검사 결과는 모두 표준 안에 있다고 하시면서 설명을 안 해주셨다. 평균 안에 있으면서도 그래프가 높은 두 개가 있어서 ‘이 두 개는 어떤 항목인데 높은 건가요‘ 질문을 했다. 선생님은 지금 들어와서 내가 나눈 이야기가 이것을 대변한다고 하면서, 하나는 스트레스 반응 지수이고 하나는 자존감 지수라고 했다. 둘다 높아서 다른 사람이 100으로 느끼는 스트레스를 나는 10-20정도밖에 안 느낄 것이라고 하셨다. 많은 일을 감당해야 하는 지금 상황에서 딱 맞는 은혜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내 주변에 두 개 수치가 나와 반대인 사람은 나를 대단히 힘들어 할 수 있고, 잘못의 원인을 모두 나에게 돌릴 수도 있을 꺼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바로 그때 나의 눈을 안쳐다보고 나를 불편해하는 A가 생각났다. 그리고 A가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 다음 부터는 A를 이해하고 내가 피해주고, A를 위해 더 기도했다. 더 놀라운 것은 우리 동기중에서 아버지께서 마음을 주셔서 특별히 자주 만나는 B가 있는데 B가 바로 나를 불편해 하는 A에게 사역을 하고 있었다. B가 기도할 때 A가 생각났고 그래서 둘이 만났을 때 A가 하나님과 관계에 대한 부분을 등한히 하고 하나님과 사역만 했다는 것을 직면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한다. 나도 B도 한 번도 A에 대해 서로 언급한 적이 없는데, 지난주에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나왔다.

 

A는 드러나는 기도사역자 인데 아직도 하나님과 관계 부분은 없이 그저 사역만 했다는 것을 알고 나는 아버지께 죄송했다. 세상에는 나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며 사는 사람이 많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너무 큰데 내가 혼자 누리고 있었다는 마음에 죄송하기도 하고, 어렵게 짜내듯이 사역하는 많은 분들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도 들었다. 이렇게 자세히 알고 나서 A를 위해 기도하고 A를 배려하는게 도리어 A에게 폐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주로 영성지도 입장에 많이 있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도 영성지도처럼 이야기를 나누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주제가 삶속에 주인 되신 하나님으로 넘어간다. 그런데 이번학기 어쩌면 교회 안에서 영성지도에서 피지도자로 내가 두 번 받게 된 것이 나를 돌아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

 

첫 번째 피지도자일 때는 미리 알고 있었기 때문에 미리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영성지도 시간에 은혜를 나눌 수 있었는데 도리어 그것이 해가 된 것 같기도 하다. 15분 동안 너무 내 이야기만 떠들 어서 지도자에게 기회를 안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 피지도자 경험은 갑자기 하게 되었는데, 지도자도 준비 없이 너무 갑자기 하게 된 경우라 지도자가 너무 자신감이 없어 해서 나도 편히 나누지 못했던 것 같다. 그 와중에 피지도자인 내가 너무 교만한 것도 지도자에게 자신감이 없게 만든 것이 아닌가 하는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이번학기 주제가 결국 교만으로 시작해서 교만으로 끝난다. 그 사이 은혜가 아주 많았고 매순간 아버지의 돌보심이 있었으나 그것 때문에 내가 참 교만했다는 마음이 든다. 방학동안 조용한 시간을 내어 다시 한 학기와 일년을 돌아보며 아버지께서 일구시는 새로운 2019년을 준비하게 되길 바란다.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 존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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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영적침체 개관

3. 영적침체 진단 내용

4. 영적침체 처방 내용

5. 사역의 적용 및 마치는 말

-원제 : 영적침제의 원인과 치료- 

마틴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정상윤 역, 복있는 사람

 

4. 영적침체 처방 내용

18장까지의 매 장에서는 영적 침체의 원인들을 자세히 설명하고 그러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고 빠져나올수 있는가가 뒷부분에 조금씩 설명되어 있다.

 

바르지 않은 신학으로 인한 침체는 하나님의 말씀 앞으로 나가 그리스도께 완전히 굴복하므로 침체에서 벗어 날 수 있다. 과거의 일로 인한 후회로 침체를 맞은 경우는 현재를 주신 하나님에 대한 감사로 벗어날 수 있고, 과거의 끊지 못하는 죄에서 허덕이는 경우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의 약속들을 기억해야 한다. 또한 미래 두려움으로 인한 침체일 경우는 자신의 은사를 기억하고 내안에 계신 성령이 어떤 분인지 자신에게 일깨워주라고 제시한다. ‘믿음의 고난’ 가운데서는 모든 판단을 하나님께 맡길 것을 권면한다. 또한 모든 상황에서 가장 많은 침체를 벗어나는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예수님을 바라보라는 것이다. 장난감을 빼앗긴 아이가 결국 자기 부모의 품으로 달려가는 것처럼, 우리도 이해할수 없는 어려운 상황이나 하나님의 징계라고 느껴지는 어려움 상황속에서 우리가 바라 볼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또한 하나님의 초유의 관심은 ‘나‘ 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겠다.

 

19장부터 21장에서 제시하는 처방 방법을 간단히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아래에 내용들은 각장에서 제시하는 처방 방법과 많이 일치한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고 바울의 치료법인 기도, 간구, 감사를 제안한다.(빌4:13)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는 것이 바로 ‘아무것도 염려하지’ 않게 되는 상황이다. 원망이나 불평 등의 상황에서는 내 영혼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집중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환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볼 수 있다. 21장 마지막에서는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4:13) 말씀으로 마무리를 한다. 이 말씀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기반이다. 그러나 침체의 상황에서는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을 계속 시도함으로 매순간 영적 수혈을 받고,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바에 순종하고 방해 되는 것들을 잘라 내고 피해야 한다. 이러한 기본적인 영적 규칙을 세우고 매일의 영적 건강을 유지한다면 바울 같이 핍박 중에서도 평온 할 수 있다고 제시한다.

 

5. 사역의 적용 및 마치는 말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 이 무거운 책을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읽었던 바로 그 다음 날부터 만나는 사람들과의 대화에 화두가 되었다. 내가 일부러 꺼낸 경우는 아니다. 내가 만난 사람들의 상황이 하필이면 읽었던 부분과 연관되어 있었다.

 

처음 만난 20대 청년의 경우는 딱 책의 6, 7장의 내용에 해당되었다. 책의 내용을 소개 했을 때 어떻게 그렇게 답을 잘 알려 줄 수 있냐며 놀랐다. 책을 읽었을 뿐이라고, 이미 오래전부터 선배들이 걸어온 길이고, 수 십년 전에 정답 까지 다 정리해 놓은 것을 사람들이 안 읽는 것 뿐 이라고 알려주었다.

 

아무리 책을 알려줘도 읽을 힘이 없고 의지가 없다.

이 세대는 정말 피리를 불어도 춤추지 않고

슬피 울어도 가슴을 치지 않는 세대 같다.

그래서 참 마음이 아프다.

 

이 책은 설교집이었기에 만연체로 되어 있어서 나 처럼 요지를 빨리 파악하려고 하는 사람은 읽으면서 깔끔하게 정리가 빨리 안 되서 힘들다. 말을 꽈서 하기도 하시고 이론을 돌려서 설명하기도 하셔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는 책이다. 하지만 한번 읽은 내용이 머리에 깊이 남았다. 또한 정리한 내용이 현대인의 삶에서 너무 필요한 내용들이 많았다. 역자는 이런 글을 한국 기독교 정서에 맞게 전달함이 필요하다고 했다. 더 깊이 고전들의 뜻을 알아서 내가 만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라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저자는 심리학을 신뢰하지 않는다. 싫어한다고 정평이 나있다. 그런데 인간의 깊은 심리적 부분을 본인이 많이 직면해서 그런지 참 잘 표현한다. 약간 아쉬운 점은 저자가 정신적 어려움의 어느 정도 깊이 까지 가봤을까 하는 궁금증이다. 내가 아는 목사님은 본인이 우울증을 깊이 앓았다. 그래서 얼마나 아프고 힘든지 안다. 또 그 아픔의 가치도 안다. 하지만 우울증의 깊은 골을 건너는 사람에게 ‘기도하세요’ ‘말씀보세요’라고 함부로 말하지 않는다. 아픈 분이 그 시간을 잘 넘기도록 기다리고 기도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답은 나도 동의한다. 그러나 정서적으로 너무 아플 때는 아무것도 못한다. 체력이 아예 없으면 앉아있지도 못하는 것과 같다. 나는 정서적으로 정신적으로 그렇게 힘든 청년들을 많이 보아 왔다. 그들은 나를 만나면 ‘기도하라고 하겠지’라고 생각하고 나온다고 한다. 그러나 아픈 사람을 만날 때 나는 좋은 것 먹고 기쁘게 놀다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최대한 마련한다. 그리고 그 상황에 하나님께서 은혜로 치유해주시길 혼자 구한다. 아픈 사람이 스스로 앉아 있을 수 있는 힘이라도 생겨야 말씀을 읽을 힘이 생긴다. 말씀이 머리에 들어간다. 그래서 저자의 책이 현대에 맞게 재통역 되야 하는 것 같다.

 

더불어 이번 학기를 지나면서 방향을 정한 부분이 있어 남기고자 한다.

조나단 에드워드는 부흥의 흥망성쇠를 모두 경험했던 사람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임을 인정한다. 부흥의 시기에는 감사하며 급류를 열심히 탔고 쇠퇴기에는 무릎으로 하나님께 간구 했다. 그런데 현대 한국 기독교에는 하나님의 주권이 없는 것 같다. 숫자와 상황에 휘둘리고 사람과 재정에 매여서 사람이 많이 모이면 ‘성공’이라고 부르고 많지 않으면 ‘실패’라고 칭한다. 이번학기 들었던 어떤 과목에서 교수님이 한국교회가 망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셨다. 그분의 의도는 알겠지만 초반에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자꾸 내안에서 ‘화(火)’가 올라왔다. 나는 사춘기 때부터 ‘화(火)’가 많았던 사람이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주인이 되시고 나서는 내면의 화를 인지하면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간다. 그 수업에서도 내게 올라오는 ‘화(火)’의 원인에 대해 여쭤봤을 때 나와 똑같이 한국 교회에 ‘화(火)’를 내고 있는 교수님 모습에 ‘화(火)’가 났다는 것을 알았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기와 같은 모습을 보면 반응한다고 한다.)

 

그리고 정리했다. 한국 기독교는 나의 아군이다. 아군에게 총을 쏘면 안 된다. 이상한데 에너지를 쏟으면 안 된다. 총부리를 정확히 겨냥해서 쏴야 한다. 그래서 이번학기 청교도 수업을 기반으로 크게 내가 방향을 잡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신뢰하기에

함부로 반응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일희일비하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 하는 것이 아니고

상황을 우상으로 삼은 것이다.

 

어렵다는 이 시기에도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를 위해 이 땅의 교회를 위해 열심히 하고 계신 일 들을 보고 싶고, 함께 참여하고 싶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살리는 사역에... 단 한명의 기독교인이라도 침체에서 벗어나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고, 단 한사람을 위해서라도 기도 하는 것이 한국교회를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다. 이번학기 또 큰 방향을 잡을 수 있어서 감사하다.

영적 침체 (마틴 로이드 존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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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들어가는 말

2. 영적침체 개관

3. 영적침체 진단 내용

4. 영적침체 처방 내용

5. 사역의 적용 및 마치는 말

-원제 : 영적침제의 원인과 치료-

 

마틴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정상윤 역, 복있는 사람

 

1. 들어가는 말

신학교에 와서 관심이 커진 분야가 청교도 였다. 그래서 토요일 오후 수업을 피하고 싶었음에도 불구하고 주저 없이 강좌를 선택했다.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은 청교도의 쇠퇴였는데 한국어로 자료를 찾다 보니 적합한 자료를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른 주제로 하려고 하다보니 ‘영적침체’ 발표 당시 할당된 부분이 아닌 다른 부분을 너무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어서 조금 더 자세히 ‘영적 침체’와 관련된 부분을 살펴 보기로 했다. 

 

2. 영적침체 개관

1964년 저자가 웨스트민스터 교회 주일 오전 예배에 썼던 설교를 모든 설교집이다. 자신이 불행하면서 타인에게 전도 할 수 있을까? 저자는 그럴 수 없다고 서두를 시작한다. 그러나 현대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나에게는 선교지에서 이것이 큰 화두였다.

내가 예수님 때문에 행복하고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으로 만족 할 수 없다면

나는 예수님과 어떤 관계인가?

나는 왜 예수님을 전하려고 하는가?

목숨을 내놓고 예수님을 전하려고 하는데

나랑 예수님은 무슨 관계인가?

 

아이러니칼 하게도 선교 훈련에는 이런 과정이 없다. 당연히 선교사 지망생은 이런 것들을 직면하고 인지하고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내가 훈련 받을 당시에도 많은 선교사 지망생들이 자유롭지 못했고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더 필요하지만) 멍에가 무거웠다.

 

저자의 책을 읽으며 속이 시원한 이유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알 것 이라고 ‘치부’하고 지나가는 많은 사항들에 대해서 콕 찝어 준다. 얼렁뚱땅 넘어가고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들을 하나하나 꺼내서 직면하게 도와준다.

 

이 책에서는 저자는 의사 답게 초반에는 영적 침채의 원인을 분석하고, 뒷 부분에서는 치유 방안을 제시한다. 영적 침체의 일반적인 원인으로는 심리적, 기질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본다. 그런데 로이드 존스는 심리학을 ‘감정 억제’정도로 치부한다. 감정을 억제 하는 것이 내적 불안의 상태보다 더 심각하다고 하며 심리학을 신뢰하지 못하고 바울 심리학이라고 본인이 칭하는 방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영적 침체의 또 다른 원인으로 질병으로 인한 육체적인 상태, 그리고 마귀의 존재 때문이라고 제시한다. 마귀가 계속 적으로 영혼을 공격하므로 침체에 빠지는데 저자는 이것을 불신앙으로 정의한다.

저자의 직면하는 자세나 깊은 묵상과 끌어올림 등에는 많이 동의했지만 역자가 말한 것 처럼 우리시대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이 깊은 우물을 먹이기 위해서는 많은 ‘통역’작업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영적침체 진단 내용

영적침체가 발생하게 되는 이유들을 설명한다. 예수님이 구주인 것은 알지만 서두에서 말한 것처럼 기독교에서 말하는 용어들이 정확히 삶에 어떻게 구현되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 또한 알더라도 의지가 (혹은 마음이) 분열되어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로 신약에서 예수님께서 이미 예화로 다 말씀하신 부분이다.

 

결국 이러한 부분은 교리와 관련 되는 부분 인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알려하지 않고, 마음을 닫고 이해하지 않으려 한다. 이해 하더라도 결단하고 따라야 하는데 더불어 결단하지 않는 것도 영적 침체의 원인이다. 이것은 정신과 마음의 의지가 약한 것 으로 연결 되는데 저자는 또한 이것 또한 침체의 원인이 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지은 특정한 죄나 그 죄가 남긴 모습과 결별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원인으로 제시하는데 이것은 또한 바로 앞에서 언급한 의지가 약한 것 과도 연결이 된다. 의지가 약한 사람은 이전의 실수나 결과로 계속된 후회를 하는데 이것은 6장과 7장으로 이어지는 내용이다. 이 원인들은 현대 한국인들에게도 첨예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감정으로 인한 침체 부분에서는 ‘비참한 그리스도인’이라는 공존할수 없는 두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한다. 원론적으로 말하면 4장부터 7장까지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는 내용이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감정’은 사람이 마음대로 만들어 낼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신을 객관적으로 관찰하라고 조언한다.

 

9장부터는 ‘믿음의 시련’으로 인한 침체에 대해 논한다. 12장 부터는 두려운 마음과 거짓 가르침으로 인한 침체, 14장 부터는 다시 ‘믿음의 시련’에 관련된 침체 내용이다. 매 장에서도 침체를 어떻게 벗어날 것인디 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법들이 제시되고 있다. 그러나 19장부터 21장 까지의 내용은 침체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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