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영의 식별> 후반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영의 식별> (갤러허) 6장-14장

티모시 갤러허. <영의 식별>. 김두진 역. 이냐시오 영성연구소

4장부터는 영적 실망의 상태에 대한 가이드 이다.

6장에서는 실망의 시기에 기도, 묵상, 더 깊은 성찰, 적당한 고행의 4가지 수단을 더 매진하라고 말한다. 나도 정말 그러고 싶다.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시각으로 ‘나는 할 수 있다’고 하고,

 

영적 실망에 빠진 나에서

그런 나를 바라보는 나가 되어

나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에너지가 있으면 좋겠다.

 

머리로는 알지만 쉬운가...싶다. 하지만 지금 나는 영적 실망의 상황이 될 수도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목이 자주 막히는 문제에 걸쳐 있다. 이 상황에서 기독교 영성 공부를 하면서, 육체적 고통 가운데서 더 깊이 기도하고 다양하게 기도하는 과정을 훈련 받는 듯 하다. 그래서 고난이 유익이고, 영적 실망을 통해 회개, 배움, 겸손으로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책에서는 영적 실망이지만 현재 나의 상황에서는 건강의 문제로 자꾸 변형해서 읽힌다.^^)

 

영적 실망의 상태를 통해 ‘온 종일 주님을 찾는 일상(p259)’을 주님이 만들어 가신다고 했는데, 이번학기 중에 나는 통증을 통해서 매순간 주님을 찾을 수밖에 없게 되어서(이전에 아무리 혼자 훈련하려고 해도 안 되던 것이...) 감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지난 학기 『영신 수련』을 읽으면서는 다 맞는 말 인거 같은데 문맥간의 연결 없이 써 있어서 맥락이 이해가 안가거나, 너무 간단해서 ‘이게 쉽나’했었는데 이냐시오의 자서전을 참고 한 것이나 갤러허의 해석이 도움이 많이 되고 있다. 머리로는 알지만 그대로 살기 쉽지 않은 내용이지만, 계속 반복해서 읽다 보면 가랑비에 옷 젖듯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점점 살아가게 되지 않을까?(너무 이상적인 생각일까...)

 

본인은 인식하지 못하고 ‘아직’이루지 못했다는 겸손한 자세로 점차 이루어 가는 생을 살아 갈 수 있기를 바래본다. "큰 바위 얼굴"(나다니엘 호손, Nathaniel Hawthorne) 주인공 처럼...

 

[질문] 『영신 수련』이 오래 읽히고 수도사들에게 정기적으로 훈련된 것으로도 아는데(피정? 등으로?) 그렇다면 개개인의 변화 등에 대해서 기록하거나 『영신 수련』의 반복학습에 대한 장기적 관찰 결과 등에 대한 자료들도 있지 않을까?

 

티모시 갤러허. <영의 식별>.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3, 4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3, 4주차)

 

짧은 내용이었지만 며칠에 걸쳐서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다. 책의 의도를 안 이상 조금이라도 맞춰서 읽어보고 싶었다. 나의 상황이 현재, 책이 만들어진 용도대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슷 하게라도 해보고 싶어서, 시간을 띄엄띄엄 두고 가이드 하는 대로 때때로 묵상하며, 기도하며 읽어 보고 싶었다. 역시 바쁜 일상에서 시도한다는게 쉽지 않았고, 제한 된 시간내에 무언가를 완성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묶어서 조금씩 읽어도 이냐시오가 말하는 깊이 까지는 갈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주간에는 둘째 주간과 동일하게 하면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오관을 이용하고 이성을 사용해서 마음으로 대화 하라고 한다. 어쩌면 이어지는 넷째 주간에서 계속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둘째 주간에 이은 내용을 셋째 주간에 하면서 방식을은 넷째 주간을 따르면서 넷째 주간의 묵상을 준비하는 것 같다.

 

셋째 주간의 마지막에는 유혹과 식욕에 반대정신으로 대하도록 지침 하는데 넷째주의 부칙에서는 고행 대신 절제와 중용에 집중하라고 지침 한다. 이 깊은 의미는 무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궁금한 부분이 많다. 영성의 대가의 깊은 깊이와 나의 얕은 깊이가 보여지는 책이다.

 

그동안에 기술한 것 처럼 사건을 기술하다가 156번에서는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었는지 예수님의 옷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짐작이 갑자기 나와서 놀랐다.

계속 ‘의식성찰’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247번에서 오관을 고찰하며 기도하라는 말에 도전이 되었다. 과연 가능할까… 의식하나만 가지고 돌아봐도 너무 쉽지 않은데 오관까지 사용하려면 정말 조용히 혼자 해야 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부럽고 정말 한번 해보고 싶다.

 

313부터는 영혼의 움직임을 지각하고 알기 위한 것들을 설명한다. 영적 위안과 황폐의 정의, 증상, 주의점, 반대정신(325), 영의 식별(둘째 주에 하면 좋다는 것을 넷째주의 뒷편에서 소개한다. 그만큼 위험할수도 있는 부분이서 일까..)에서 행정(자선 분배 직무)내용까지 설명이되어 있다.

 

싸우는 교회 부분에서는’교회가 검다고 하면 나도 검다고 믿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365)는 부분에서 한참 멈춰서 정리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얼까.

 

이 부분을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지난주 "초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역시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킬레스 건을 아신다. 다행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신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조금씩 나의 믿음을 더 키우시지 않으실까 란 생각을 해봤다.) 상황을 직면하고 알아 가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고, 조금씩 정리되는 순간에 234번의 마지막 부분에서 멈추게 되었다.

 

‘가지소서, 주님, 그리고 받으소서.

모든 저의 자유와 저의 기억과

저의 지성과 모든 저의 의지를,

제가 가진 것과 제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서 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당신께 이를 돌려 드립니다.

모두 당신 것이오니,

모두 당신 뜻대로 하소서.

제 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넉넉합니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그 부분에 줄을 그으며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에서, 나로 하여금 다른 부분의 초연을 고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말로는 뱉었지만 매순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계속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본을 보이고 계시는 목사님이 생각났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되고 나니 목사님의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믿음의 싸움을 하시느라 참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동일한 상황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되니 자주 목사님이 생각나고 기도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선한 믿음의 싸움을 도와주세요 아버지..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1, 2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1, 2주차)

책에 일정 틀이 없이 번호대로 진행하고 있어서 큰 틀을 이해하면서 읽는데 에너지를 쏟게되었다. 역자들이 번역하면서 틀을 좀 만들면 글에 손상이 많이 됬을까…. 영적인 부분에 깊이 집중하지 못하고 형식적인 부분에 신경쓰는 나를 보면서 나의 최근 영적 상태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놀란 것은 성경처럼 이 책에 대한 연구를 많이 해서 주석이 여러 개 있다는 것이다. 카톨릭에서 성경과 같은 권위를 부여한 것일까…

 

깊이 기도하는 시간을 갖는 것의 자세한 설명을 보면서 현재 상담이나 심리학에서 말하는 과정들을 기도하는 단계 단계에서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고로 이 세상의 학문에서 제시되고 있는 것들이 하나님 나라의 방법(하나님의 통치 안에서, 이 책에서는 깊은 기도, 성찰)안에서 다 해결된다는 것에 대한 증명이 아닐까

 

일반성찰[43] 감사, 은총, 나의 모든 생각, 말 행동에 대해 성찰, 용서구하고 나를 고치기를 결심하는 단계를 제시한다. 이 일반성찰 안에 3번째 단계에 매일 하는 시간별로 나누어서 하는 특별성찰[24]이 3번째 단계로 들어간다. 이런 식으로 매일을 보낸다면 정말 매일이 바쁠 것 같지만, 현대의 일상에서도 아주 어려운 업무 일 때를 제외하고는 약간의 훈련만 한다면 가능한 성찰이지 않을까 싶다. 완벽하게 특별성찰에 집중할 수는 없겠지만 일반성찰은 오늘부터 나에게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죄에 대해 집중해서 묵상하는 둘째 수련[55]의 과정이 오랜 시간 나를 관찰하면서 해야 하는 것인데 나(의 죄)를 그렇게 끊임없이 관찰 할 수 있는 은혜를 구해본다. 그나마 죄를 기억하기 위한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다행이다. (집, 관계, 일)

 

첫주는 죄에 대한 묵상으로 지성과 의지를 사용하는 것이 인상 깊었다. 정말 필요한데 개신교에서 약한 부분인 것 같다. 자기 직면과 죄의 묵상, 존재 인식(나는 누구인가!!)등으로 창조목적에 맞게 사는 것에 집중한다.

 

둘째주는 ‘그리스도의 나라’를 묵상하는데, 나같은 경우도 하나님의 이해가 (오래 믿은 것에 비해 갑자기) 깊어진 것이 하나님의 통치, 하나님의 나라 였다. 그리스도의 일에 참여할 사람들을 부르신다는 말이 내게 주어진 사역의 방식과 진행 여부에 대한 나의 고민에 답하는 글이어서 위로가 되었다.

 

매일의 일정에 대해서 자세한 설명이 있는데, 대단히 부럽다. 온종일 기도하고 성찰하다가 휴식시간 사이에 복음서, 성인들의 생애을 읽으라니.. 온 하루를 이렇게 쓸수 있다면.. 아버지의 마음과 많이 가까워 지지 않을까 싶어서 대단히 부러웠다. 나에겐 이런 믿음이 없는것 같다. 나의 삶을 책임지신다고 하면서 내가 무언가를 하려고 하고, 문제있는 타인도 하나님이 주인이시라고 하면서 그 뒤치닥 거리를 내가 하려고 하니 귀한 시간이 자꾸 쪼개진다.

 

둘째주 첫날의 탄생 묵상에서는 마리아와 요셉의 마음의 어려움이 느껴졌다. 하나님이이 주신 아기라고 했는데 태어날 때부터 어려운 상황에서 두 사람은 마음이 어땠을까.. 지금 나 또한 부르심의 과정에서 여러 ‘성벽’을 뛰어 넘는 중에,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른 방식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믿음이 커가는 것 같다. 마리아와 요셉도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해 본다. 그들은 그 깊은 뜻을, 하늘 나라에 가서나 하나님의 진심을 알게됬을까? 신약석의 과목에서 ‘예수님의 생애’부분을 읽으면서 신 으로서의 예수님이 어린시절을 어떤 정서로 지냈을까… 많이 궁금했다. 그런데 이 부분의 묵상 주석에서 이냐시오는 예수님의 생애를 고난으로 정리한다. 책에서는 이부분을 주목하라고 주석이 달려있는데 왜일까..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 그렇게 어렵기만 한 걸까?

 

같은 주제로 여러 번 반복하게 하고 특히 이후에 오관까지 적용해서 관상을 하라고 하는데 이렇게 한다면 더 깊이 묵상하고 알아가게 될 것 같다. 이번에는 깊이 적용해 보지 못하고 읽어서 아쉬웠다. 그래도 이런 훈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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