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촛불>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촛불_영성지도를 조명하는 빛]

은혜의 너른 들판에 있는 흰 들소들

 

횃불트리니티 대학원대학교 ‘기독교 영성’석사과정 입학(면접) 시험의 질문에 왜 입학(?공부?)하려고 하는가가 있었다. 이상하게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나를 더 알고, 하나님을 더 알아 이 땅에서 자유롭고 가볍게 살고 싶다. 이 땅에서 천국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고 싶다.’고 대답했다.

수잔 S 필립스.&nbsp; <촛불> 영성지도를 조명하는 빛.&nbsp; 최상미 역. 에스오에이치피(SOHP). 2015년.

실제로 선교지에 있던 10년 중 앞부분은 나에 대한 고뇌가 많았다. ‘과연 예수님이 안에 계신 사람으로서 나의 이 사고 방식이 맞는 것일까.’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신데 내 안에 있는 이 분노는 무엇인가?’ ‘같은 선교사인데 나는 왜 저 사람을 이해하고 도와주고 싶지 않은 걸까?’ 사역에 너무 집중하고 몸을 돌보지 않았던 것은 어쩌면 자꾸 올라오는 이러한 질문들을 피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 든다.

 

『촛불』을 읽으면서 공통적인 내용에 줄을 쳤다. ‘나의 모든 존재, 나의 평강 그리고 나의 행복이 걸려있는 하나님을 발견하면서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다.’(토마스 머튼, p37), ‘하나님께서 나를 나 되게 하실 것이라고 믿습니다.’(찰스, p247), ‘내 자신을 볼 수 있게 도우시지요’ (짐, p255), ‘내가 나 되게 하는 것’ (레아, p346).. 아홉 명의 피지도자들은 자신들을 찾고자 했고, 자신들을 알고자 했다. 이것은 어쩌면 ‘기독교 영성’을 공부하고자 하는 나의 갈망과 같았고, 내가 앞으로 만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한 이슈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촛불』을 읽던 도중, 『거룩한 초대』 10장을 먼저 펼쳤다. 10장의 앞부분, 아빌라의 테레사의 글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랑하는 자들을 위해서 얼마나 낭비하시는지, 하나님을 경험하는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께 바라는 것보다 더 많이 받게 된다는 글을 보았다. 책을 펴기 전에 한 제자가 하나님 나라를 더 구해야 하는데 자기의 유익을 위해 자기가 면접 시험에서 붙기를 간구 하는게 맞는지 모르겠다는 카톡을 보냈었는데 답변을 안한 것이 기억났다. 사실 레위기의 음식 규정을 예를 들자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바라신다고 말해주고 싶었는데 너무 길게 써야 해서 미뤄두고 있었는데 책을 보고 다시 생각이 나서 테레사의 글을 찍어서 보냈다. 제자가 면접 간다고 기도 부탁 할 때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수치를 당치 아니 할 것이고, 하나님께서 네가 생각한 것 보다 더욱 넘치게 인도하실 것이라는 기대를 전했는데도 그 말은 하나도 먹히지 않고도리어 제자는 ‘이런 것을 기도 해도 되나요?’라고 질문을 했던 것이다. 책을 찍어 보냈더니 학생이 자신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에 줄을 쳐서 다시 나에게 보내면서 지금 까지도 소망한 것 보다 더 많이 받은 것이 사실이라며 면접을 가기 전에 평정을 찾았다. 오늘의 이 경험을 통해 ‘지금’ 내가 읽고 있는 책도(내게 허락하신 학업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했다.

 

사실 『촛불』을 읽고 나서는 가슴이 콩당 콩당 뛰며 영성지도자로서의 나의 부르심을 확신한다고 글을 쓸 뻔 했다. ‘영성지도에 대한 자신의 이해’와 ‘부르심에 대해 성찰’을 정리하는 것이었는데, 주제를 여러 번 읽으면서 과연 책에서 그것들이 나올까 고민하며 읽었다. 『촛불』은 그 주제들을 쥐어 짜지 않아도 그냥 저절로 나로 하여금 ‘영성지도’를 갈망하고 사모하게 만들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곧장 이 글을 완성하지 못하게 하신 것 같다.) 그런데 글 완성이 늦어지면서 ‘혹시.. 아닌가?’ 하는 마음에 겸비하여 더 점검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내가 좋아서 하는 착각은 아닌지.. 나의 존재감을 드러내려는 것은 아닌지.. 나는 왜 영성지도를 하려고 하는 것인지.. 『촛불』을 읽을 때와 마찬가지로 ‘영적분별’과목의 『신앙과 정서』 2부를 읽으면서, "마음에서 성경 말씀이 떠오른다고 해서 그것이 바른 은혜의 정서가 아니다"라는 2부의 다섯 번째 표지에서 나도 모르게 ‘영성지도자로서 조심, 확인 작업’이라고 기록을 하고 있었다. ‘영성 지도’과목이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천적인 부분을 읽을 때 마다 나도 모르게 ‘영성지도자’로서 조심할 것 들, 하지 말아야 할 것 들 을 정리하고 있었다.

 

A. 영성지도에 대한 이해

나의 현재 시간표는 내안의 악과 어두움을 보고 있는 상황이다. 9가지의 사례들을 읽으며, 결론 부분으로 갈수록 ‘인간론’ 수업시간에 만났던 라인홀드 니버의 ‘피조물 인간, 불완전한 인간’이 맴돌았다.

 

피조물인 인간이므로 우리의 불완전함으로 인한 불안정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만 안정을 찾고,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다

 

는 정리를 다시 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 우리의 정체성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지만 여전히 우리는 불완전한 피조물 인간이다. 그래서 우리는 ‘경계선’에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쩌면 ‘경계선’에 있는 그 불안정함이 인간으로 하여금 더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도구가 된다는 생각을 해봤다.(폴 틸리히, <경계선 위에서>) 내 안에 악을 직면하는 시간이 점점 뒤로 미뤄지면서, 어쩌면 이 악을 허락하신 분의 깊은 뜻이 있지 않을까라는 다른 관점도 생겨나고 있다. 어쨌거나 여러 명의 영성지도자들을 통해 하모니를 이루듯 성도의 연합과 오랜 시간을 통해 내 안에 악을 인지하게 되었는데, 현재 인지한 상태에서 직면을 미루고 있다. 의지와 상관없이 미뤄지고 있다. 심지어 이 은혜의 시간에 집중하고자 휴학까지 생각했었다. 피조물인 인간이 내 계획대로 할 수 있을까. 신학 공부를 하느라 내게 주신 은혜의 시간(내면 직면)을 미루고 있는 것은 아닌가란 고민을 하고 있을 때 ‘신학에 집중하는 일은 위로부터 비처럼 내리는 은혜를 주목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p235) 부분에서 이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알았다. 나를 알려주시려는 하나님의 열심에 반하여,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제한 시간 안에 해 내야 할 일들을 해야 하는 상황에 부닥쳐 피조물 인간으로서 제한된 시간에 대한 쫓김 그리고 게으름과 머무름 사이의 전쟁에서.. 멜리사의 복잡한 생각들이나 나나 똑같다는 생각을 했다.(p292) 저자가 멜리사와 같은 어려운 경우들을 나눔으로써, 때로는 빈손으로 피지도자를 기다리는 것이 피조물 인간인 영성지도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론 부분에 가서야 저자는 영성지도는 양방향(p361) 모두에게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교수님의 바쁜 시간을 내가 뺏은 것 같은데 내게 영성지도를 해주시는 교수님은 마칠 때 마다 교수님께도 은혜가 있었다고 말씀해 주시고, 나 또한 내가 만나는 분들과의 대화 가운데 그 분의 문제 때문에 만난 경우 일지라도, 내게 더 큰 울림이 있고, 하나님의 만지심이 있을 때가 있다. 영성지도자와 피지도자는 함께 하나님께 귀 기울이는 것 같다.

 

B. 부르심에 대해 성찰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저자의 영성지도 사례들을 읽으며 나도 모르게 영성지도의 여러 가지 기술들을 체크했다. 감동은 감동대로 받으면서 한편으로 기술들을 챙기는 나를 보며 너무 방법론에 치우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살짝 고민도 되고, 내가 정말 영성지도를 갈망하는가라는 생각도 되었다.

 

나는 지금 사무실이 없다. 집에서 모든 일을 처리한다. 저자의 사무실을 나가는 그렌트의 장면(p241)에서 YUST 내 사무실에서 상담을 마치고 나가는 아이들과 눈인사를 하고 다른 학생이 들어오기 전까지 앞 학생의 상황에 눈물 나던 순간들이 생각났다. 다시 사무실에서 누군가와 단둘이 만나는 일을 할 수 있게 될까...내가 너무 저자에게 투사를 하고 있나... 이 부분에서 한참을 머물렀었다. 내가 진짜 이 그림을 갈망하고 있구나.. 내가 그 감동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구나. 하나님의 일하심을 볼 수 있었던 사무실에서의 그 은혜, 하나님의 숨겨진 큰 사랑을 보고, 짧지만 그 시간에 머물 수 있었던 사무실에서의 그 시간을 내가 너무 갈망하는 것을 발견하고 놀랐다. 완전 향수에 빠졌다.

 

존의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여정이 동부로 가면서 완성되어져 가는 과정에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고(p329), 저자를 통해 존도 데이빗도 영성지도자가 되는 과정을 보면서(p341), 나 또한 많은 만남들을 통해 비슷한 여정을 가는 사람들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만나게 하신다는 마음이 들었다. 앞선 분들을 만나면서 준비 할 수 있었고, 꿈을 꾸고, 기대 할 수 있었고, 뒤에서 오는 분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여정의 앞길이 보여서 기도로 도우려고 노력했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내가 만나는 모든 사람이 다 나와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이 아니므로, 모두가 친밀하지 않은 것을 이해 할 수 있었다.

 

결론 부분에서 특히 눈물이 난 곳이 많았다. 존의 여정(p329), 상황과 상관없이 감사하는 레아에서 눈물에서(p351), 룻의 마지막 성찬에서도(p364), 속을 알 수 없었던 찰스가 결론 부분에서는 자유와 가벼움의 은혜가 표현되는 곳에서도(p357), 칼이 학생들을 대하는 것(p206-208)에서도...

 

내가 영성지도를 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그 감동을 계속, 전적으로 누리고 싶기 때문인 것 같다. 오늘 아침 제자의 두려움과 불안에 나의 공부(책)가 도움이 되어 제자가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자유케 된 것처럼 나도 그를 통해 주님 안에서 치유되고 자유케 되고, 그도 나를 통해 주님의 은혜 안에서 치유되고 자유케 되어 우리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계속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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