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영적분별의 길> 4, 5장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
<영적분별의 길> 4장 기억의 안내 & 5장 직관적 지식
4장 “기억의 안내”를 읽으며, 지난 주 분별 시간에 수업과 상관없이 2년 전의 11월이 떠오르며, 지난주 갑작스런 진로 변경이 2년 전과 똑같은 과정으로 이루어진 것을 깨닳았다.
‘톰’의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와 비슷할 것 같다. 2년 전에도 영성지도와 영적 분별 과목을 수강하고 있었고, 그 당시 주변에서 교회사역을 이야기 했을 때 저항감이 있었으나 영성지도 시간을 통해 러브콜 있으면 가겠다고 했는데 정말 먼저 연락 온 곳이 있어서 지원했으나 낙방했다. 그래서 ‘제도적 교회는 내 부르심이 아니다’를 확신했는데 2021년 11월 또 다른 곳에서 러브콜이 왔다. 내게는 2년 전의 기억으로 저항이 있었고 그래서 지원 자체를 하고 싶지 않았다. 딱 2일간의 일정으로 러브콜, 영성지도, 원서접수, 면접이 이어지고 지원한 부서가 아닌 새로운 부서로 합격했다. 그리고 화요일 분별 수업시간이 끝나면서 내안에 2019년과 2021년의 11월이 오버랩 되었다.
내안에 저항이 커서 하나님께서 일을 이루시기 위해 2년의 시간을 기다리시고, 21년에는 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보내주셔서 나의 마음을 만지셨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 교회가 "현재 나의 부르심의 자리"임을 인지하고 동의하게 되었다. 2년 전에도 이 책을 읽었음에도 기억의 실습을 제대로 해보지 않았지만, 지난주 성찬식에서도 지난주 수업에서도 저절로 기억을 통한 은혜를 누린 것 같다.
직관적 사람이 되고 싶어서 스스로 훈련을 많이 하고(스스로가 아니고 하나님의 시간표였을 것 같다^^) 삽질도 많이 해서 현재는 S수치가 많이 줄어든 S가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나에게 있는 S의 성향이 자주 판단을 그르치기도 하고 관계 가운데 실수를 자주 유발하기도 한다. 때로는 직관이 있을 때 조차도 그것을 의심하고 분석하는 나를 본다. 다행히 책(p154)에서 솔크의 경우에서도 과학적 연구나 철학, 신학적 성찰이 수반된 이성의 추론 작용으로 보충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두 번째 문장에서도 ‘직관에만 의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리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라고 하지만 과연 직관만으로 의사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 어떻게 따를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질문] S의 사람이라서 그런건지.. 이분법의 사람이어서 그런지, 직관의 옳고 그름의 여부를 확인하지 못하는 마음이 편치 않다. 책에서도 다른 정보들을(p154) 고려해서 의사 결정하라고 하지만 직관만으로 빠르게 의사 결정해야 하는 수많은 순간에 어떻게 따를 수 있을지...
* 위의 글을 쓴지 2년 후 : 지금에 와서는 위의 질문이 그렇게 크게 동의되지 않게 되었다.
책을 빌려보는 관계로(이 당시에 빌려보다가 결국 구매함^^) 컴퓨터로 내용을 정리하며 읽었는데 p168까지는 정리한 내용이3페이지 분량이었는데, 뒷부분은 읽는 시간도 더 많이 걸리고 정리한 분량이 5페이지가 되었다.
순결에서는 대부분 육적인 것을 죄로 정의 하고 풀어갔다. 수도사라는 특수 상황 때문에 그랬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번역상의 문제였을까…?)
마음이 하나님께 순결한 것, 또 서로에게 신실한 마음도 순결에 포함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음란에 대해서는 억제하고 무시하는 것이 교정 수단이라고 제시하는데 최근 몇 년 청년들의 감정을 살펴보고 연구하면서 감정을 억제하고 무시하는 것보다 인정하고, 밝은 곳에 꺼내놓고 다른 것으로 승화 시키는것이 건강한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대가 달라서 일까…?
무감각의 존재 이유를 발견하면 "어미"와 싸울수 있다는 말에 공감이 되었다. 사람마다 다른 "어미"이기에 본인이 무감각해졌다는 것만 발견해도 큰 수확이 있을 것 같다. 요즘 관계 안에 무감각에 대해서 민감하게 고민하고 있는데 대부분 본인들이 원인을 알면서 안풀고 있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입장 바꿔놓고 보니 나도 답을 알면서 안 풀고 있는 경우들이 있었다. 성령님이 알려주시지만 이렇게 무시하고 사니… 이래서 인간 멘토가 필요한거 같다.(수도사와 수도원장 같은 관계? 하지만 현대에 그런 신실한 믿음의 관계가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 이 글을 쓴지 5년 후에 블로그에 올리는 중이다. "가능하다"는 결론을 맺고 그 일에 인생을 걸기로 했다. 그래서 블로그를 시작했다. )
순종에게서 자라나는 통회하는 마음이 아닌 것이 교만이다라는 정의에서 한참을 머물렀던 것 같다. 학기 초에 내게 있던 많은 은혜들 때문에 어쩌면 내 마음에 교만이 있었던것 같다. 그래서 페이퍼를 제출할 때 마다 ‘아? 이상하다?’하고 뭔가 알면서도 안 풀고 넘어갔고 그 무감각이 오늘의 쓰나미를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게 주어진 상황이 어렵지만 이렇게 나로 무감각에서일어나고교만에서나오려는의지가생기게해주신것에감사한다.(하지만마음은어렵다.^^)
겸손과분별에서많은페이지를할애했는데분별은거의정념, 죄죽이기의내용이어서왜그럴지궁금했다.
29번째사다리에무정념이정리되어있어서도전이되었다. 분별을읽는즈음, 담임목사님과멘토링할때 (금식같은) 스스로불편함에처하는것을선택하라는주제가있었는데중복되는내용이었어서책을읽을때내게하시는말씀같았다. 내가즐거이선택한삶자체가고난이라고주장했는데, 나는 그동안 계속해서 세상에한발을들여놓고있었고, 오늘의일이 그 열매였다. 진작에불편함에처하라는조언을들었다면실수가없지않았을까싶다. 하나님이여러번내게경고해주셨는데내가반응하지않은거같다는생각이글쓰는순간생각났다. 아인간이란이리느릴까…
극도의 피로가 육체의 정욕을 일으킬수 있다는 경고,
물질적인 이익을 위해서 영적인 것을 포기하는게 흙과 금을 바꾸는 것,
기도시간과 나의 일(조급한 마음)을 맞바꾸려는 순간 생각이 나서 하나님과의 화목의 시간으로 돌아갔다. 이것이 책읽는 한순간이 아니라 계속 나를 깨워 기도시간에 머물게 하기를 기대한다.
2016년 한국에 돌아와서 계속 도전 된 말씀이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 넘나이다(시18:29)”였는데 무정념 부분에서 종말이 되기전에 성에 도착하지 못 한 사람(성을 넘지 못한 사람은) 사막에서 야영해야 하기 때문에 담을 뛰어 넘어야 한다는 내용으로 정리가 되었다. 놀라웠다. 몇 년간 뛰어 넘을 생각만 했지 왜 뛰어 넘어야 하는지는 정리가 안됬었는데 유레카!!
나는 누구인가?
Who Am I ?
디히트리히 본회퍼
Dietrich Bonhoeffer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감방에서 나올 때의 모습은
마치 거대한 성(城)에서 나오는 성주(城主)처럼
의연하고 유쾌하며 당당했다고.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종종 내게 말한다
내가 나를 지키는 간수들과 이야기할 때의 모습은
마치 사령관이나 되는 것처럼
자유롭고 유쾌하며 확고했다고.
나는 누구인가?
나는 사람들로부터 이런 이야기를 들어왔다.
나는 불행한 나날을 보낼 때에도
마치 승리에 익숙한 사람처럼
침착하고 웃음을 잃지 않으며 당당했다고.
정말 나는 그들이 말하는 바로 그 사람인가?
아니면 나는 내 스스로가 알고 있는 바로 그 사람에 불과한가?
마치 새 장엔 갇힌 새처럼
불안하고 갈망하며 병든 나
마치 누군가가 내 목을 조르는 것처럼
숨을 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나
빛깔, 꽃, 새들의 노래에 굶주리고
친절한 말과 인간적 친밀함에 목마르고
변덕스런 폭정과 아주 사소한 비방에 분노하여 치를 떨고
근심에 눌리고
결코 일어날 것 같지 않은 엄청난 사건들을 기다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못하고
먼 곳에 있는 친구들을 걱정하고
지치고 허탈한 채 기도하고 생각하며 행동하고
연약하여 이런 것들 모두를 포기할 준비가 된 나
나는 누구인가?
이런 사람인가 아니면 저런 사람인가?
그렇다면 오늘은 이런 사람이고 내일은 저런 사람인가?
아니면 내 안에 그 두 사람이 동시에 존재하는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대단하지만 혼자 있을 때에는 애처롭게 우는 비열한 심약자?
이미 승리한 전투를 앞두고
혼비백산(魂飛魄散)하여 도망치는 패배한 군대,
그것과 나의 내면세계가 다를 바는 무엇이랴?
나는 누구인가?
그들은 이런 고독한 질문들로 나를 조롱(嘲弄) 한다
오 하나님, 내가 누구이든 당신은 나를 아십니다
당신이 아시듯, 나는 당신의 것입니다.
글, Dietrich Bonhoeffer / 번역, 김희수목사 (월드비전선교센터장, 서울북노회)
. 7가지 분별 도입 항목 : 기억, 직관, 몸, 상상력, 생각, 느낌 (←인간 내부), (인간 외부 →) 자연
. 자연을 통한 분별 질문의 의미 : 분별의 새로운 각도 (다른 피조물 앞에서, 피조물로써의 질문)
. 10장의 목적 (1) 기도할 때 자연 사용하는 것 편히 하기 (2) 자연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이해 제공
[수련1] 자연 통해 분별에 접근하기 : 자연에 기반 한 분별 실습 (야외 혹은 자연 물체의 활용) (1) 하나님 원하시는 것 갈망, 내적 자유함 구하기 (2) 주변의 사물(생물, 무생물)에 관심 갖고 집중하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기 (3) 분별하려는 결정을 다시 말하기, 물체와 함께 있는 동안 분별 질문도 함께 머물도록하기 : 수련2에서 계속 (4) 자연이 하는 말 들어보기, 영성일지 기록하기 (5) 자연 앞에서의 경험이 나의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는가? (6) 결정에 대해 새롭게 인식하게 된 것을 하나님의 부르심을 따르겠다는 갈망으로 가져가기 (7) 임시 결정을 하나님께 올려드리기 : 7개 중에서 여러개가 같은 결정이면 확증과정의 시작
Ⅰ. 그리스도인은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가? (by Sallie McFague)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연을 사랑하지 않고 지금도 그렇다. (자연에 대한 기독교 양면성과 영성생활과 연관성)
1. 인간과 하나님에 대한 풍성함에 대한 연구 예
(1) 생태학자, 루터목사 Paul Santmire : 자연관점에서 기독교가 취한 두 노선(인간 영의 위치)
A. 자연 보다 위에 : 자연에 덜 호의적
B. 자연 안에 : 자기의식이 체화(embody?)된 자아가 생물학적 질서 안에서 하나님의 임재 축하
(2) 신학자, 종교교수 Mark Wallace
. 기독교인과 자연사이 벌어진 틈 메우기 위해 성령에 대한 성경적 전통을 되살리려 하는 시도
(3) 수학, 철학, 관상가 Beatrice Bruteau : 우주기원 ~ 의식(신경 생물학) 연구 : 성육신과 삼위일체 신학숙고
2. 자연을 사랑해야 한다
: 하나님은 우리가 사는 땅 안에, 땅위에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이다. (by 성육신)
→(성육신 신학 확장) ‘성령이 모든 생명체의 가슴 안에서 그 생명체에 생명을 주는 힘으로 거주‘
(1) 예수님을 통해 나타난 성육신은 지금 여기(HERE&NOW)에서 성령의 체현(embodiment)로 나타남
(2) 본래 부모originary parent(하나님)을 기억나게 함 ∴삼위의 모든 위격들이 창조와의 긴밀한 연결
. 그리스도인들 안에 자연에 대한 인식 (1) 자연의 청지기 (2) 자연사랑? : 무의식적 불편함 (ex) 우상숭배의 장
3. 자연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
: (관점 변화) 자신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옮김→ 피조물의 작은 부분인 나를 알게 함
■ 기독교 영성의 정의 (아서 홀더 편집, 『기독교 영성 연구』 아서 홀더 편집, CLC, 2017)
“자신이 인식하게 된 궁극적 가치를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 (the experience of conscious involvement in the project of life–integration through self–transcendence toward the ultimate value one perceives).
(a) 궁극적 가치 : 예수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삼위일체 하나님 (b) 통합 : 전체로서의 인간 (영, 정신, 몸, 개인적,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정치적 책임) . 믿음과 제자도의 삶 : 기독교 영성의 실존적 현상을 구성 (c) 경험 : 개인적이지만 내면적이지만은 않다. : 자기(self) 전체가 실재(reality)와 관련
4. 자연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 자연을 사랑하려면 자연을 알아야 한다.(관심, 듣고, 배우고, 존중)
- 한 피조물이 다른 피조물을 대한다는 마음으로 다가가기 → “자연을 통해 분별에 접근“의 기초 제공
- 자연 안에서 자연 통하여 하나님 찾기(실습이 필요한 경우도 있음) :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자체로 알고, 작은 풀잎에도 감사하는데 익숙해지면 이것을 통해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드러내 보여줄 수 있는지 묻기 시작하게 됨
[수련2] 자연으로부터 오는 계시 받아들이는데 초점 (상상력 통해서 대화하기) (1) 물체와 조용히 앉기 (2) 역사에 대해 묻기 : 태생, 어디에 있었나, 누가 만졌나/집었나/스쳐지나갔나, 어떻게 여기에 왔나.. (3) 내적 생활과 영성에 대해 묻기 : 연약함, 부드러움, 밀도, 다른 사물과의 관계 (4) 나에게 하고 싶어 하는 말은 무엇인가? : 나의 직관에 대해, 깊은 내면에 대해 (5) 하나님에 대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
A. 수련2의 요지 : 하나님은 모든 순간마다 창조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신다. ∴ 세계 안에서 우리의 위치 인식하고 받아들일 때 분별의 성질이 달라진다. B. 수련2의 위험 : 실용주의 (무엇을 얻기 위해 자연을 이용함,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로 존중)
Ⅱ. 자연은 정확하게 무엇인가? (자연의 정의)
: 모든 생명이 일어나는 곳, 의존하는 곳 (∴겸손하게 대하기)
. 성경 : 인간은 자연의 일부 (창1:1 하나님이 하늘과 땅을 창조하셨다.)
. 자연(땅) : 하나님에 의해 창조, 피조물들로 구성되는 영역, 인간을 포함 (by 샌트마이어)
→ 자연은 과학에 의해 연구되고 성경적 신학적으로 해석되어 왔으므로 분별 실습의 근거가 될 만함.
Ⅲ. 자연에 관하여 성경 전통이 가르쳐 주는 것 : “다스리다”
. 창세기 : 자연 안에 속한 인간, 독특한 책임 부여 – 질서와 평화 유지 (인간 with 다른 피조물들)
. 노아 이후 하나님과 동물 사이 화평케 하는 자의 역할 정지 : 자신의 보호와 식욕위해 동물 죽임
. 하나님의 본래 의도 : 동물 절대로 죽이지 않는 것
. 자연 안에서 하나님의 돌보심, 비옥함(신명기 약속의 땅, 광야에서 먹이심, 홍해, 시내산, 시편, 묵시, 신약)
Ⅳ. 기독교 신학이 말하는 자연 (자연에 대한 양면성) : 이레네우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
(1) 이레네우스 vs 영지주의자(구원으로 안내하는 특별한 지식 소유함 주장)
. 자연 : 하나님이 인류에게 주신 집 (“좋은 땅으로의 이주“ : land는 창조주가 새롭게 하신 earth)
(2) 아우구스티누스 : 영혼과 자연사이의 위계 구분 “새 땅으로의 이주”
. 피조물 : 하나님의 선하심의 표현, 피조물 통해 하나님의 섭리 관상 ∴분별의 중요한 기초와 도입
(3) 칼뱅 : 죄로 인한 무질서가 창조에 침입했으나 하나님은 피조물에 진실하심
∴ 인간이 누리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합법적 공간
자연 관상 “오랫동안, 진지하고 신실하게 마음으로 살피며 반복해서 숙고“ 하며 하나님 관상으로 천천히..
→ 영혼에게 초점, 자연은 인간의 활동 무대로 정의 (분별의 도입 항목)
Ⅴ. 공동-창조자로 창조된 인간 (created co-creators) : 인간의 창조성
.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께 의존하는 것과 자유 의지로 주변 환경 안에 다른 것을 만듦으로 자기의 환경을 조성
.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의 계속적인 창조 사역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동역자 (ex) 산업혁명....
. 분별의 목표 : 어떻게 이 창조의 능력을 사용할 것인가? 어떻게 창조주와 뜻을 같이 하여 창조할 것인가?
토론질문1. 자연에서 분별 or 하나님 찾기가 불편한 이유가 교재에서는 우상숭배의 원인에 있다고 했다. 본인에게 무언가 불편한 것이 있다면 어떤 이유일까?
토론질문2. 주변이나 본인이 자연에서 분별 or 하나님 찾기 경험 중 오버 했거나 오해 했던 경험들이 있다면 나누어보자.
. “영신수련”(영적 분별에 대한 고전, “여러가지 영적 영향력들을 구별하기 위한 이냐시오의 원칙들”, #313,#328)
. 이냐시오의 영적 분별 : 믿음, 소망, 사랑을 증진시킴 ∴ 분별에는 시간이 필요함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측면)
. 원칙의 적용을 제한하는 이유 3가지
① ‘성령의 열매’는 내적 기질 혹은 태도인데 선하지 않고도 선한 일을 할 수 있다.
② 영적 위조품과 진품 구별 난이 : 사단이 자신을 빛의 천사로 가장
③ 내면의 연약함과 하나님과의 얕은 인격적 관계 (평소에 하나님과 친밀한 사람들이 분별 가능, 고전2:14-15)
(2) 분별력 있는 그리스도인의 인격
: 하나님과 사랑의 관계에 있어야 가능
. 분별력과 관련된 구체적 특성
① 겸손, 복종 : 자신의 결점 고백은 은폐된 죄악 다루는 확실한 방법 (진짜 분별은 진짜 겸손할 때 얻어짐)
② 용기 혹은 담대함 : 절대적 확신 가질 객관적 토대가 없다. ∴구체적 상황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뜻을 알고자 하는 모험을 행하는 태도 (‘정당한 상황이라는 깊은 내적 확인에 기초’한 담대함으로 θ의 뜻 실현)
③ 균형 유지 : 양극단의 오류 사이에서 양극단을 피함. (극과 극은 통함 : 겸손&교만, 금식&과식, 편견&순진)
. 극단적 태도 = 분별력 결여의 증거, 감정이 기형적으로 불균형, 심한 기복
. 편견(선입관과 일치하지 않는 모든 것 거부) vs 순진(의심하지 않고 변화 수용)
[토론 질문1] ‘② 용기(담대함)’에서의 아들을 번제로 바치는 것은 대단히 극단적인 태도일수 있다. 그런데 ‘③ 균형 유지‘에서 극단적 태도는 분별력 결여의 증거라고 했다. ②번과 ③번은 상충된다. 본인이 이러한 상황을 경험했던 것을 이야기 해보고 두 가지의 차이점을 토론해보자.
2. 공동체적 분별력 : 세례를 통해 형성된 구속적 공동체에 뿌리 둠 (교회)
∴분별은 신앙 공동체의 일
. 성경을 사적으로 해석하더라도 공동체에서 나누고 점검 (공동체와 살아있는 관계 가질 때 하나님 뜻 알 수 있다.)
. 예언의 판단과 분별은 교회 공동체 (고전 14:29, 바울 바나바 파송시 교회 전체금식하고 기도하며 분별, 행13:2)
. 분별을 위해 겸손과 순종, 퀘이커의 ‘침묵 모임’ 공동체적 분별 → 평범한 양무리들 안에서 말씀하신 것을 겸손하게 듣는 법을 먼저 배우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인도할 권리가 없다.
[토론 질문2] 책 p298에서 ‘그리스도인은 공동체와 살아 있는 관계를 가질 때 에야 하나님의 뜻을 알수 있다.’고 말한다. 본인의 삶에서 공동체와 함께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한 경우를 나누어 보자.
3. 영적인 삶의 문제들을 분별하는 것
: 옛 습성이 제거될 때 성장통 및 퇴보 경험하는 공통적 증상(나이테 생성?)
(1) 주의산만과 무미건조 : 운동선수의 슬럼프 같은 ‘경기력 저하’ 기도나 묵상 시 이 부분에 지나친 관심 자제
(2) 과민함: “과장된 도덕적 핑계(율법주의?)에 계속 억압 받을 때”(신경쇠약의 원인) ex) 안전한 극단 선택
. 거룩한 친밀감과 균형이룬 자발적 경외심결여ex) 초보 운전자, 바리새인
(3) 미혹: 특별한 체험(신앙 초기의 ‘사탕과자’)들을 영성의 발전과 혼동 (ex) 자신의 덕에 도취된 수도사의 자살
→ ① 모든 상황 속에서 θ의 뜻을 이루심 신뢰 ② 영적 안내자나 멘토의 도움이 중요 (공동체 통해 검증)
4. 세상에서 영 분별하기
. 역사속에서 하나님의 손길 분별 난이 (실천의 문제 : 섭리가 역사하는 방법에 동반되는 악의 문제)
. 역사적 상황에 대한 대답 : 다양한 형식으로 반응하도록 부름 받음
→ 섭리의 신비에 대한 적절한 반응 : 깨어있음 (영적 기민함, watchfulness) = 기도 (마 26:41)
. 영적 기민성 : θ이 세상에 현존하는 것을 민감하게 유지, ‘영혼과 하나님의 사랑의 관계’통해 생성, 유지
. 분별 : 기도와 행동이 만나는 지점 (하나님께 많은 질문 던지기)
5. 특이한 현상들의 분별
: 특이한 형상에 대해 극단적 경외감 or 극단적 회의주의
. 기독교 전통 : 신중한 태도 – 십자가의 요한, 조나단 에드워즈 “황홀한 체험은 구원 얻는 진정한 증거가 아니다‘
. 에드워즈 “신앙과 정서”
(i) 진정한 감정&거짓감정, 은혜스러운 감정&자연스러운 감정 구별, 외적 증거와 모습으로 단정할 수 없음
- 특정 방식만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유일한 합법적 방법으로 주장하면 안됨.
(ii) 유창한 언어 동반 : 언어는 잎이지 열매가 아니다. (“천로역정“의 ‘수다쟁이‘)
(1) 분별의 신학적 기준 : “신앙과 정서”(조나단 에드워즈), “규칙들(Rules)”(이냐시오)
‘영적이고 은혜스러운’ 감정의 12가지 증거가 확실하지 않을 수 있는 2가지 이유
① 타인의 영적 상태에 대해 절대 확언 할 수 없다. 양과 염소 구별하는 특권은 우리 것이 아님 (ex) 엘리-한나
② ‘은혜안에서 겸손’한 성도들도 자신의 상태 판단 못 할 때가 있음
두 저자의 책에 근거한 분별 방법 제안
① 영적 균형② 인격에 초점(친밀한 사귐을 통해 판단 가능) ③ 현상의 주변 상황 모두 고려
④ 구별하는 증거 : 그리스도인의 인격을 증진 or 파괴
(2) 특이한 현상들의 본질 이해 : 특이한 현상들을 바른 관점에서 이해하기
① 특이한 현상의 기원 : 하나님인가 사단인가 혹은 특별한 기질, 선천적 특징, 자연적 원인의 결과, 심리적 원인
② 도덕적이고, 신학적 기준에 일치하는가? (성자들의 특이한 경험 : 아시시 프란시스, 아빌라 테레사)
- 경험한 사람이 경건, 균형잡히고, 성숙,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사람인가? 생활전반에 진리를 증거하는 사람
③ 사적, 공적 계시 구별 : 십자가의 요한, 사도 바울의 셋째 하늘 경험은 개인적이라 공개하지 않음.
분별
- 그리스도의 몸안에 있는 우리의 삶으로부터 자라, 그 삶을 깊게 하는데 도움을 주는 과정
- 분별 통해 성장, 성장함으로 분별력 향상 (성숙한 그리스도인은 분별, 분별하는 사람은 성숙한 그리스도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