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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기독교 영성 연구_26장 해석 (2/2)

by 말씀묵상과 영성지도 2024. 1. 24.

기독교 영성 연구_26장 해석 (2/2)

필립 쉘드레이크(Phillp E. Sheldrake) 박사

더럼대학교 신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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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역사에 지혜가 있는가?

2. 정황과 문화의 중요성

3. 정황과 선택

4. 해석과 의식화

5. 영적 “고전”의 본질

6. 해석 과정

7. 의미의 본질

8. 텍스트의 배후에 있는 것

9. 텍스트의 구성

10. 텍스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가?

11. 잠재적 독자 공동체란 무엇인가?

12. 결론

 

 

아서 홀더. 기독교 영성 연구. 권택조 외 역. CLC.

 

6. 해석 과정

  해석의 결과가 적용되는 것을 의미할 경우 문제점은 저자의 의도를 무시하고 오늘날에 맞는 내용으로만 단순하게 해석하는 경우와 저자의 의도에만 집중하고 독자의 상황을 무시하는 경우이다. 이런 경우를 극복하기 위해 ‘텍스트에 대한 수용적인 태도와 비판적 태도를 가지고 텍스트와 대화를 나누는’ 방법을 저자는 제시한다.

 

  텍스트와의 대화를 한다면 텍스트의 역사적 정황은 중요한 출발점이다. 쓰여진 시대와 읽혀지는 시대 사이의 용례도 현 시점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역사적 지식을 이용한 해석이 어느 정도 가이드가 될 수 있지만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노르위치의 줄리안의 ⌜계시⌟의 경우는 실제 경험이후 시간이 흐른 뒤에 ‘사후적 관점‘으로 한 해석의 기록이므로 역사적 지식이 해석에 큰 변수가 아니다.

 

  저자는 해석에 대한 전통적 접근으로 근대 독자들은 이미 고전에 부여한 가치나 경험을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이해에 문제가 된다고 주장한다. 현대 해석학에서는 종교적 세계에 의해 저자의 원래 의도를 넘는 텍스트의 가능성을 독창적인 방식으로 알아가는 다양한 접근법을 연구중이라고 한다.

 

  로완 윌리엄스는 프랑스 신학자 리쾨르가 텍스트의 ‘계시적 본질‘에 너무 집중해서 해석 과정의 ’계시적 특징‘에 대해 다루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현재 독자와의 교감이 이루어지고 있는 텍스트가 계시의 장”이라고 그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종교적 텍스트의 해석을 위해서는 지적 정밀과 인격적 접근이 둘다 필요하다는 것이다.

 

  영적 고전에 대한 해석은 음악에 대한 해석처럼 새로운 연주자를 만날 때 마다 새로운 면이 드러날 수 있다. 원저자의 의도안에서 텍스트에 대한 시야를 확장하므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한다. 이는 ‘해석학적 순환’이라고 하는데 텍스트에 가진 의문을 텍스트에 의해 재형성 하는 것이다. 해석학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가다머는 ‘텍스트는 애초에 독자에게 출발점을 제공한 전제들의 “마법 주문을 깨야”한다’고 강조 한다. 그는 텍스트가 저자의 의도를 넘어 “풍성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데 그것이 고전을 현재적으로 되살리는 것이 된다. 독자의 현재 상황은 텍스트에 영향을 미치고, 텍스트는 독자의 현재 이해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므로 가다머는 이해와 해석, 적용은 ‘순간들’이 아니라 ‘통합된 과정’이라고 주장한다. 지혜가 텍스트로 기록되는 순간 저자와의 ‘거리두기‘가 시작되면서 텍스트 자신이 의미의 매개체가 된다. 텍스트는 동시대(원래적) 청중들에 대해서 ’거리‘를 둠으로 본질적으로 그것을 읽는 자를 위해 사용된다. 텍스트는 원래적 정황에서 ’거리‘를 둠으로(탈상황화) 후대의 다른 정황과 관련 시킬 수 있다.(재상황화) 이러한 텍스트의 ’거리두기‘는 자신의 원래 상황에서의 한계를 초월하게 된다.

 

  텍스트와 독자의 대화는 새로운 의미의 해석이 되므로 두 상황을 하나로 묶는다. 독자는 이런 만남으로 새로운 자기 이해를 갖게 된다.

 

7. 의미의 본질

  해서의 과정을 통해 이르게 되는 의미를 관찰하자. 로완 윌리암스에 의하면,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은 ‘실재가 드러나고 지속되는 세상의 점진적 형성(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세상?)’이다. 점진적으로 형성되는 실재가 드러나는 세상이 지속된다.

 

  오늘날은 “공감의 해석학”, “의심의 해석학”으로 불리는 해석학적 접근을 한다.

  “공감의 해석학”은 ‘잠재적 독자 공동체’안에서 형성된 공감대가 사적 목적을 위해 텍스트를 임의로 사용 할 수 없게 하는 규범적 역할을 했다는 점에 공감한다.(가톨릭, 성공회의 기도문?)

 

  “의심의 해석학”은 현대적 상황에 의해 야기된 질문이 텍스트의 측면과 그것의 신학적 또는 문화적 가정에 비판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위장된 의미를 해석하려는 것을 “의심의 해석학”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텍스트가 쓰여진 사회의 정황에 대해 많이 알고 있으므로 텍스트에 드러난 내용 뿐 아니라 침묵하고 있는 부분과 배후의 내용, 언급되지 않은 부분이나 배제된 부분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을 회복하려는 시도를 하는 경우 ‘기독교 역사 전체에 대해 근본적으로 의심하는 신학을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신학적 식민지주의, 여성의 영적 지혜를 무시하는 경향, 일상적 영성보다 성직자의 영성을 우위에 두는 것들을 고려해야 한다고 한다.

 

8. 텍스트의 배후에 있는 것

  오늘날의 해석과 관련된 사항들을 검토해 보면, 첫째는 텍스트 배후의 내용에 대한 인식의 중요성이다. 예를 들어 예수회의 ⌜헌법⌟은 그 배후에 ⌜영신수련⌟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둘째 ‘텍스트’를 넘어서는 넓은 이해와 관련되는데 ⌜헌법⌟은 법적인 문서라기 보다 영적 경험을 돕는 문서라는 것이다. 셋째 고전적 텍스트는 원칙대로 사용될 수 없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헌법⌟의 경우에서 보면 이 책은 목회자들을 향한 책이었으나 그들은 별로 관심이 없이 이그나티우스의 경험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하다. 넷째, 누가 ‘잠재적 독자 공동체’를 형성하며 영적 텍스트에 접근할수 있는 자인지 살펴 보는 것이다.

 

  저자는 아시시 프란시스의 “태양의 노래”를 사례로 해석한다. 이 텍스트는 자연에 대한 달콤한 사랑으로 볼 수 있으나 이 노래의 핵심은 모든 피조물이 형제 자매이며 그리스도를 반영한다는 것을 말한다. 프란시스는 창조 자체가 하나님의 계시인데, 만물이 그에 의해 만들어지고, 그는 피조물로 우리에게 오셨다는 것이 프란시스의 사색의 기초이다. 이 시에서 세계는 ‘화해의 공간’이다. 이 시의 배후에 있는 다른 텍스트로 ⌜증언⌟을 기초 할수 있는데 그 책에서 프란시스는 나병환자와 만났던 순간에 대해 말하는데 그것이 이 시에서 말하는 ‘타인’의 특별한 의미이다. 신체적 질병, 영적어두움으로 나병환자는 추방되었지만 프란시스는 그와의 만남을 통해 고통과 소외속에 있는 인간(‘타인’)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하나님의 성육신의 핵심을 깨닳았다.

 

9. 텍스트의 구성

  트레이시는 ‘고전’을 문서에만 한정하지 않는다. 인간은 ‘상징’안에 존재 한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건물이나 그림 등은 넓은 의미에서의 ‘텍스트’가 된다. 그러므로 이러한 상징을 읽고 의미를 해석 할수 있다. 중세 성당은 예배를 위한 공간이었지만 그 자체가 예배하는 행위로 인식되고 고딕 양식의 건축물들은 하나님의 본성에 관한 개념을 함축한다. 12세기에는 3층 구조의 삼위일체적 상징이 있었고 고딕의 벽돌 대신 유리를 사용하므로 창을 통해 들어오는 빛으로 빛이신 하나님을 표현했다. 위-디오니시우스나 아우구스티누스의 미학은 하나님의 조화와 질서가 주제였다. ‘질서’는 건물과 예배 공동체 둘 다를 가리키며, 아우구스티누스는 ‘우주의 조화로운 아름다움’을 질서로 표현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통합’을 그리스도의 몸을 구성하는 믿는 사람들의 공동체로서 교회로 이해했다. 이들은 장소가 필요했고 이 장소는 예식을 위한 곳으로 건물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예식을 위한 장소인 건물은 또 하나의 텍스트로서의 역할을 하면서도 그 기능을 만족시킬 수 있어야 했다.

 

10. 텍스트가 무용지물이 될 수 있는가?

  고전의 텍스트는 현대인들의 지식이나 가치관에 맞지 않기도 하다. 14세기에 기록된 ⌜미지의 구름⌟은 여러 가지로 현대인들에게 받아들이기 어색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문제는 앞서 제시한 고전 텍스트와 오늘날 독자 간의 대화로 텍스트의 의미가 읽을 때마다 독자에게 재해석 될 수 있는 것으로 풀어간다. 저자와, 텍스트 시대와 거리를 둠으로써 원래 저작당시의 제약을 벗어나 해석 될 수 있다.

 

  건물을 텍스트로 보는 경우도 중세의 대성당들이 ‘공동체의 기억과 열망을 간직한 곳’으로의 상징이 된다. 그러므로 고전적 텍스트의 ‘의미’는 고정되지 않고 재해석 된다.

 

  ‘고전’이라는 정의를 위해 트레이시가 주장한데로 ‘텍스트가 인간의 기본적 요구를 충족 시키는가’인 적합성의 준거와 ‘텍스트는 존재에 대한 기독교적 이해에 충실한가’(the text is faithful to a specifically Christian understanding of existence)의 적용의 준거에 따르는 것에 저자는 동의하지만 여전히 이 준거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것은 미결인 채로 진행됨을 인정한다.

 

11. 잠재적 독자 공동체란 무엇인가?

  누가 텍스트를 해석할 것 인가에 따라 텍스트의 새로운 의미를 드러내는 결과가 달라진다. 이러한 ‘잠재적 독자 공동체’는 시대에 따라 변하게 된다. 예로 들었던 ⌜영신수련⌟의 경우 작성되던 시기에는 남성이나 성직자 수도회 사람들이었지만 이제는 그 시대에 해석을 받아들이기만 해야 했던 여성들도 해석하고 있다. 결국 ⌜영신수련⌟을 통해서 유익을 얻었던 자들이 모두 ‘잠재적 독자 공동체’에 포함된다.

 

  종교 건물의 경우 현대에 중세 대성당을 방문하는 방문자들까지도 확장된 독자 공동체라고 할 수 있을까?

 

12. 결론

  이 글의 대부분은 고전 텍스트의 해석, 역사의 역할과 관련되고, ‘잠재적 독자 공동체’의 본질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영성 분야에서 해석은 권한의 문제와 관련이 있는데 저자는 일부 학자에게만 허용되어 해석 분야가 신비화 되는 것에 반대한다. 저자는 해독 작업을 ‘신학적 의무’로 정의한다. 교육 철학 및 신학을 아우르며 텍스트와 전통에 대한 통찰력을 잘 전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