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위르겐 몰트만의 인간 이해 :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해를 중심으로]
이미 창조된 아직 완성되지 않은 전인적 ‘하나님의 형상’
『인간』에서 나타나는 몰트만의 ‘하나님 형상’에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결정되었다는 것은 인간에게 존엄성을 부여하지만 인간의 두려움과 관계의 왜곡으로 인해 하나님의 형상이 비극으로 변하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이라 함은 하나님과 세계사이의 중재자임을 말하는 것이고, 창1:28에 근거하여 피조물을 지배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자유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책임도 강조한다. 여기서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인자(人子)는 인간을 인간적인 존재로 해방하므로 그의 나라에서 인간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완성된다. 이것은 이 땅의 미래를 위한 희망이 된다.
교회는 예수의 인간성을 그의 수난에서 보고, 자신의 새로운 인간성을 예수의 수난과 죽음으로부터 받는다. 인자는 인간의 고통과 죄악과 심판을 친히 감당함으로 나라를 세우고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그에게 세계 지배를 넘겨주셨다. 세상에서 추방된 자들이 인자의 나라의 구성원이 된다. (아둘람 공동체가 생각났다.)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에서 나타나는 몰트만의 ‘하나님 형상’은 창조시 하나님의 특별한 결단으로부터 ‘그의 형상이 되도록’ 인간을 규정하였으며,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닮아가도록 결정 되었으며, 종말론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창조 되었으며, 하나님의 형상인 동시에 죄인이며, 공동체로서의 사회적 형상이라고 정리한다. 인간은 땅위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그러므로 인간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은 어떤 속성이 아니라 인간 전체, 인류 공동체, 자연과 연결된 인류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본다.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의 얼굴에 집약되어 나타난다고 주장하므로 ‘관상학적 이론’이라고도 부른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인간학적 장소는 생육의 축복을 위한 성적인 구별과 사귐이다. 하나님은 인간의 사귐 속에서 체험되므로 인간은 처음부터 사회적 존재이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신자들은 ‘그리스도의 형상’이며 이들은 예수의 뒤를 따름으로 메시아적 형태로 자란다. 칭의는 영화의 현재적 시작이고 영화는 칭의의 미래적 완성으로 칭의와 영화 사이에 ‘성화’가 있다. 성화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새사람으로 갈아입는 것으로 하나님은 선택, 소명, 칭의, 영화로 인간을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은사이면서 임무, 명령인 동시에 약속이다. 인간은 이과정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형상은 모든 인간, 공동체적인 인간이다. 그리스도와 닮은 모습이 되라는 인간의 종말론적 소명이 인간을 종말론적인 새 창조로 인도한다.(소명-칭의-성화-영화의 단계)
몰트만은 ‘하나님의 형상’을 특정 본질이나 기능이 아닌 ‘전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보았고 종말론적 특징을 강조한다. 또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고, ‘하나님의 형상’을 향해, ‘하나님의 형상’이 되도록 창조되었다.(선물이면서 과제) 그러므로 이 땅 위에 현현한 하나님의 형상인 그리스도를 닮는 것이 인간의 소명이며 그것이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는 것으로 본다.
특이하게 기억에 남는 부분은 하나님의 형상이 드러나고 인식되는 부분을 얼굴이라고 했고(347), 하나님의 형상이 나타나는 인간학적 장소를 성적차이와 사귐(347, 348)으로 본 것이, 관계로 해석한 것과 비슷하지만 느낌상으로 크게 다르게 느껴졌다. 하나님의 형상을 되어져 가는 과정으로 설명하므로 부분적으로 동의는 되지만 여전히 명확하지는 않는 듯 하다. 짧은 지면에 깊은 이론들을 소개하시느라 고생하신 저자들의 노고가 귀하고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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