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전통과 영성기도> 10장 자연안에서 기도하기 (관상과 창조)

 

매주 토요일에 Y대 졸업생 몇명과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시작은 성경공부였는데 삶에서 하나님과 함께하는 것을 적용하는 것에 초점을 두고 모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인가 성경공부 ‘교재’보다는 ‘교제’를 더 많이 하고 있다.

 

지난 목요일에 횃불 오는 길에 꽃들이 고개를 드는 것을 보고 토요일에 같이 꽃구경 가는 것을 제안했더니 졸업생들이 양재 시민의 숲으로 일정을 잡았다.

 

컴퓨터 하는 친구들이라 일을 안 할 때도 머리속에서는 계속 일이 돌아가고 있다. 그래서 몸이 항상 피곤한데 그날 한 졸업생이 해외 여행을 온 것 같은 느낌이라고 했다. 자연 속에서 자유함을 누린 시간이었다.

 

대니얼 월퍼트. <기독교전통과 영성기도>. 엄성옥 역. 은성.

 

해외 여행을 온 것 같다고 학생이 말할 때 마다 나는 지금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 이라고 번역했다. 몇 년 전에 동역자들과 함께 내몽골에 간 적이 있다. 푸른 초원을 달리는 내내 우리는 찬양을 틀고 있었다.  4명이 함께 하는 여행에 나는 홀로 예배했고 푸르고 아름다운 초원을 달리던 중 아버지의 선물과 위로 때문에 계속 눈물이 났다. 그 바람에 우리는 차를 멈추고 각자 예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글을 쓰고 며칠동안 "왜 요즘 나는 그때 처럼 길에서 예배하지 못하는 걸까" 고민하게 됬다.

 

바쁜 것, 분주한 것이 우상이 되어 하나님 보다 앞서 있는 것 같다.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나를 바라보고 계신데,

나는 바쁘다고 아버지를 보지 않고,

묻지 않고 혼자 뛰어간다.

혼자서 얼마 못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내힘으로 하려는 나를 보며,

나도 힘들다.

 

 

로마서 1장 20절 말씀을 모른다 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연을 보며 창조자를 기억할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성 프란시스 정도 까지는 아니지만 하늘을 보며 나무를 볼 때 창조주 앞에 조용해 질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여기까지는 개인의 예배이고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이다. 개인이 하나님과 관계가 친밀하다는데, 이상하게도 가족이 불화하고 분열되고 한 교회안에서도 나눔과 분열이 있다. 성 프란시스는 새들, 꽃, 심지어 사람을 공격하는 늑대와도 화목하였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돈독하기에 원수와도 사랑하고 이해하는 관계가 되는 것 같다. 이것이 창조세계에서 인격적으로 내가 직접 하나님을 경험 한 것의 징조이지 않을까.  프란시스 처럼 동물과, 원수와 화해 하는 것까지는 안되더라도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저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것을 아는 만큼 살수 있으면 좋겠다.

대니얼은 사물을 잘 관찰하라고 했다.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사람을 잘 관찰한다. 그래서 각 사람의 삶의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대부분의 크리스찬들에게는 그 사람을 사랑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이 묻어나온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도 그 사람을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럴 때 그를 환대 할 수 있게 되는 것 같다.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 때문에 우리가 모두 한자녀로 형제 자매가 되는 것이 아닐까. 대니얼이 말한 것 처럼 사람도 모두 연결되어 있어서 영적으로 뿐 아니라 실제적으로도 한사람 걸러 아는 사람이거나 나와 관계된 사람인 경우들이 많았다.

요즘 큐티는 출애굽하는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언약을 받으러간 사이 이스라엘은 우상숭배를 한다. 모세는 리더답게 중보자 답게 하나님 앞에 목숨걸고 관계회복을 위해 설득하고, 하나님은 모세가 원하는 모든것에 응답하신다. 나의 죄악중에도 아버지께서 모세에게 하신것 처럼 나를 떠나지 않고 나와 함께 이 세상의 삶에서 함께 해주시길, 또한 특별히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도 아버지께서 함께 해주시길 바라는 기도밖에 할수 없다. 범죄한 이스라엘과 결국 가나안까지 함께 해주시는 아버지께서 우리의 이 땅에서의 삶에서도 버리지 마시고 불쌍히 여기셔서 함께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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