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 수퍼비전 (한학기 후기)
예수님과 함께 자유롭고 가볍게
(마 11:28-30, 메세지 성경)
나와 함께 길을 나서면 너희 삶은 회복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제대로 쉬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일하여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아라.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 배워라.
나는 너희에게 무겁거나 맞지 않는 짐을 지우지 않는다.
나와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마 11:28-30, 메세지 성경)
‘횃불 트리니티’에 입학 하는 과정 자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과정이었다. 입학 한 그 학기부터 수업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의아해 했던 것들이 수업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얻게 된
가장 첫 번째 유익은 ‘내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자유롭고 가벼워 졌다.
두 번째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에게 알려주고 계셨다는 확인이 되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2013년부터 나에게 목표가 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었다.
‘횃불 트리니티’와의 만남은 내게 말씀의 구현이다.
1. 수퍼비전 소감 및 알아차린 것
첫째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정리되고 알게 된 부분들이 있지만 가장 큰 수확은 교재를 통해서 자유케 된 부분이다.
6장 ‘주어진 것과 선물‘ 부분에서 그동안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을 다룬다. 내가 계속 경험했던 것은 성경을 깊이 읽고 말씀 안으로 빠져 들고 있을 때 내 몸을 감싸는 느낌, 부부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죄책감이 들면 하나님께 물어보기 보다 무조건 대적 기도를 했다. 내가 당당하고 성적인 부분이 자유하다면 ’제가 왜 이런가요? 저한테 성적인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하고 하나님께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서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이 오는 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반응이 말씀 읽을 때 여서 당황스러웠다. ’말씀의 귀한 선물이 쏟아지는 시간에 이런 역 반응을 하다니’ 이런 죄책감에 하나님께 죄송했고, 대적기도를 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기간은 정말 오래 되었다. 그래서 혹자가 ‘독신이 부르심이냐’는 질문에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6장을 읽고 나서 놀랐다. 대적기도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고스란히 하나님께 반응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이라니.. 대부분의 여성 싱글들이 경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동기 전도사님 중 싱글 여자분께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이 부분만 한번 읽어보세요’하고 건넸다. 그 당시 그분은 다른 과제로 바쁠 시기였는데 그 부분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싱글 성도들이 경험하는 부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성경을 읽을 때 그런 반응이 생기면, 너무 기쁘고 감사가 나왔다. 왕상 7-9장 솔로몬의 성전 제작과 봉헌 부분에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본문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 하나님의 뜻은 이런 거 였구나...’ 레노바레 성경으로 읽는데 왕상 8:10-11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구름 때문에 제사장이 섬기기 힘들다는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한 적용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비가지적 표징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날도 성경을 읽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비가시적 표징을 그동안 몰랐고 잘 못 반응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이런 경험들이 있을 텐데 ‘이 증상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 보기보다 내가 정한 좋은 것과 ‘나쁜 것 같은 것’의 규칙에 따라 반응하고 있지 않을까?
둘째, 강의 전에는 정리되지 않은 영성지도가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안정 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한다. 성격상의 문제로 피지도자를 기다려주기 보다 먼저 성급히 이야기 할 경우가 많았다. 이는 피지도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주눅 들게 하고, 더 표현하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피지도자의 반응을 기다려주고 여지(pause)를 줄 때 피지도자가 먼저 반응을 보이고,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 집중해서 물어보고 있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피지도자의 반응과 진행을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으로 하나님께서 피지도자를 많이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피지도자의 진술에 질문이 많이 생긴다. 피지도자의 말을 끊거나 혹은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서 본론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질문이 본인의 궁금함인지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영성지도 중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셋째, 피지도자가 깊숙이에서 꺼낸 문제가 내게도 존재하는 것들을 이번학기에야 인지했다. 항상 피지도자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되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것이 은혜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학기에 성찰보고서와 대화록을 여러 번 작성하면서 인지한 것이 피지도자가 꺼내온 이슈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지도가 피지도자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동일한 부분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넷째, 위에서 인지한 부분을 강의시간에 피지도자 이슈로 가지고 갔다. 영성지도 전에 약 2주 동안 혼자 물어보고 머물 면서 명확하지 않게 답을 받은 듯도 했다. 그런데 영성지도 실습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두 개의 그림이 떠올랐다. 너무 놀랐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아서 이제 그만 기도할까요 묻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 지도자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성지도자가 한마디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마자 두 장의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이 답변을 받고 나서 이 것이 오래기다리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바쁜가’는 질문은 십년도 넘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취업준비를 하느라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느라고 바쁘기는 했다. 그러다가 20대에는 바쁜게 당연한거라 생각했고, 30대 이후 선교지에서 부터 ‘왜 나만 바쁘지’ 묻기 시작했다. 선교지에서는 대개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아무래도 능력이 있던 분들이라 많은 일들을 여유롭게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잘 못 된 건가? 열심히 하는 게 나쁜 건가...“
이 두 그림은 상기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내 삶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그 답으로 기대가 되고 감사했다. 수퍼 비전에서 교수님께서는 나의 이슈('나는 왜 바쁜가')에서, 공생애동안 바쁘셨던 예수님이 떠올랐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환대와 응원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쁜 것은 내 죄의 근원이고 내 열심이고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것이고, 내 열심이라는 상담 쪽의 정죄 메시지를 들어왔다. 그래서 스스로 정죄감이 많이 들었다. 30대 후반에야 그것이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고 정리를 했다. 그래서 ‘바쁨’ 또한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내게 허락된 ‘바쁨’ 가운데서 ‘은혜의 리듬’(마 11:28-30)을 누리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하나님 보다 내가 앞서는가?’하는 긴장감으로 매번 점검 했다. 슈퍼비전을 진행하던 중, 교수님의 말씀에 완전 놀라고 그 이후로 일상과 사역 모두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정말 바쁘게 몰아치는 기말 기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응원을 경험함으로 ‘존재적 안정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성지도의 유익인 것 같다.
2. 강점
강점과 약점은 항상 양면이 있다. 경계를 잘 지키면 약점도 강점이 되고 경계를 지나치면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학기 영성지도를 하면서 알게 된 강점은 피지도자의 상황이 빨리 인지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빨리 인지되었다고 먼저 발언하면 안 되고 피지도자가 직접 하나님께 듣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내가 피지도자에 대해 발견한 것을 나누었을 때 아직 피지도자가 받아들일 만한 때가 아닌 경우들이 있다. 내가 먼저 발언해 버리므로 피지도자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나만 민망해 진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그 이후로는 최대한 발언을 줄일 수 있었고 더 기도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로 피지도자를 더 집중해서 도우라고 주시는 은혜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거하는 훈련이 내게 진행되고 있었고, 피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 훈련이 동시에 진행된다. 함께 지어져(엡 2:22) 가고 있었다.
약점 또한 빨리 인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깊이 머물지 않고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화요일에 영성지도(강의시간 실습)를 받고 수요일에 상담을 받았는데 인생의 큰 그림들이 휙휙 그려졌다. 그런데 깊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결국은 상담이 끝날 무렵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상담선생님도 나도 무언가 이상했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은 내가 빨리 인지하는데 깊이, 오래 머물러 숙성시키는 시간이 없어서 결과가 정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3. 도전과제
인생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겠지만 현재 시간표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 변혁이 있는 중요한 시간표인 듯이 느껴진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현재 나는 그에 못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리 저리 튈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본질 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과 나이가 10-20년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하나님 앞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인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진짜 바램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을 알고 가고자 하는 나의 “못 된 안정감”이 나의 진로를 방해 하는 걸까? 또 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하나를 알아가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지만 이 과정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면 어려워도 가야할 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간에 신학교에 두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야 횃불에서 시간은 내가 인큐베이팅 되는 시간 이란 생각이 든다.
‘바쁨’과 연관된 것이 내 안에 ‘화(anger)’와 연관되어 있음을 살짝 인지 했다. ‘화’와 관련된 부분은 30대 초반부터 연구하고 싶던 주제였다. 그것이 내 안에서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 ‘화’라는 주제도 나에겐 10년이 넘은 주제인데 이 주제에 답을 찾게 되고 더 가볍고 자유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년도 새롭게 대두되는 이슈는 성속의 구분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적인 반응이 내 몸에 나타나면, 스스로 ‘잘못된 반응’이라고 결정하고 반응했던 것처럼 내 안에 스스로 잘잘못과 옳고 그름과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과 멘토링을 하는데, 대화중에 매달 반복되는 말씀이 ‘너무 따지지 마세요’였다. 5월이 되어서야 나의 이번년도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4)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과 멘토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앞에서 질풍 노도의 시기처럼 진로를 두고 묻고 있다는 부분이 이것이다.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계속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두 학기가 지날 무렵부터 주변의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은 내가 교회를 하면 다니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홀딱 해서 교회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참 예배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리던 이머징 예배가 현실화 되어 있는 것도 보면서, 예배 공동체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지금도 방학이면 예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3년, 학비 때문에 고군 분투 하는 시간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과연 하나님이 내게 사역하라고 하시는게 맞는가?’란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나올 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사역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지 않는 그림엔 손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현재 강의 하고 있는 학교의 강의도 자연스럽게 먼저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되었고 일부러 더 이상의 강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중의 재정난을 통해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업을 하라고 하시는 건가?‘ 물어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담임 목사님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도 그러실까?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은 무엇일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내게 남겨진 커다란 도전 과제이다. 재정 때문에 진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맘몬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고, Th.M 과정도 듣고, 예배 공동체도 시작한다면 난 다시 ’바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시는 걸까... “예수님과 함께 쉬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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