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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하나님의 도성 _6권

by 말씀묵상과 영성지도 2024. 2. 13.

하나님의 도성 _6권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총평

. 현대 우리에게는 신화로 인식되고 있는 것들에 대해 치열하게 싸우고 논리적으로 증명함.

. 바로의 글을 보지 않아서 그냥 저자가 하는 말을 그대로 믿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음. (해석의 해석)

. 문화의 해석(폴 틸리히)... 지금 우리 안에 있는 오류들...

 

■ 머리글

. 5권까지 : 세속의 이익위해 신을 숭배해야 한다는 이론에 반론

. 6권 ~ 10권 : 영생위해 신들을 숭배해야 한다는 이론에 반론, 바로의 견해의 조잡성을 드러냄

. 바로(Varro, 작가, 스토아 학파 지도자인 포시도니우스(BC135-51)의 제자, 스승의 작품은 현존하지 않고 제자인 바로와 키케로의 다작이 남아있음)

 

1. 현재 때문이 아니라 영원한 유익을 위해 신을 숭배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에 대해

. 사람들이 신들을 우상화 했고 꾸며낸 내용을 믿고, 그것을 종교의식과 혼합했다. 그들이 말하는 신은 일부 물질(포도주)를 요구하는 사람들에게 물밖에 가진 것이 없다고 말하는데 그들이 과연 사후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을까 : 익살극의 한 장면과 같이 우스꽝스런 상황임

→신들에게 현세적 일들을 세분해서 분배한 사람들 조차 신들이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수 있다고 하지 않았음

. 엄청나게 많고 다양한 신들 중 ‘어떤 신에게 영생을 위한 간청‘을 해야 하는가(물 신, 불 신...영생의 신?)

. 수염이 자라게 하는 포르투나등 신들이 자신의 제한적 능력을 가진 것 이상으로 추구할수 없다. (EX.영생)

 

2. 신들에 대한 바로의 견해 : 신들에 대해 침묵했더라면 신들에게 더 정중 할 뻔 했다.

. 바로 : 예리하고 주의깊고 학구적으로 신들을 조사하므로 신들을 구제하고 잊혀지지 않게 기록함

(후대에 읽히기에는 적절하지 않고, 종교의 진리에 적대적이라 평가받을 내용, 유창하지는 않았음)

(1) 키케로(아카데미에 관하여) : 의심의 여지 없이 가장 학식있는 자

(2)테렌티아누스(문법학자) : 모든 분야의 학문에 능한 사람

 

3. (동)바로는 자신의 저술에서 신과 인간에 대한 고대 관습을 어떻게 구분했을까

. 고대관습 41권 중 인간의 일 25권, 신적인 일 16권

 

4. (동)신을 숭배하는 자들은 인간적 일을 신적인 일보다 우선시 한다고 주장

(다)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인간적 일들을 신적인 일보다 오래된 것으로 간주한다는 말이 된다.

. 인간적 일들을 선 저술한 이유는 국가가 먼저 존재하고 그 후에 신적인 정의들이 국가에 의해 제정되기 때문이라고 바로가 증언함. 신들의 본성에 관하여는 전혀 쓰고 있지 않음.

. 화가가 그림보다 앞서고 건축자가 건물보다 앞서는 것처럼 신적인 일들에 관한 책보다 인간의 책이 먼저 인 것이 정당하다고 바로는 주장한다. 그러므로 신적인 일들이 인간에 의해 제정되었다고 고백한 것이다.

. 바로는 신적인 본성에 대해 기록하지 않은 것은 지성인들에게 추론하도록 남겨두었다고 말한다.바로가 신적 본성에 대해 저술한다면 인간적 일들 앞에 기록되어야 했을 것이다. 신적 본성의 일부일지라도 로마것 보다 먼저였어야 했다.

∴ 바로는 본성에 속한 진리에 대해서가 아니라 오류에 속한 거짓에 관해 쓰고 있음을 고백한 것임

 

5. 세 종류의 신학 : 신화적, 자연적, 도성적 신학

. 신화적 : 시인들 / 신적 위엄과 본성에 어긋나는 조작된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음 / 대중화(연극)/극장

. 자연적 : 철학자들 / 만물의 기원에 대한 철학자들의 논의, 학교 안에서만 논의 되게 만듦/세상

. 도성적(CIVIL) : 대중 / 도성적 신학이 본성적이지 않으므로, 인간의 일이 먼저, 신적일이 나중에 기술됨, 인간적 제도를 다룰 뿐이다. (∴ ∵ 본성적이지 않음) / 도성 : 도성 특히 신관들이 알고 행해야 하는 신학

. 본성적 (VS 허구적) 신학 :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하는 신학

 

. 신화적 VS 도성적 : 도성이 세상안에 있지만 도성에 있는 모든 것이 세상과 관련 있지는 않다.

 

6. 바로에게 대항한 신화적(허구적) 신학과 도성적 신학(국가적 신학)에 관하여

. 바로자신은 자연적 신들을 숭배하고 싶겠지만 어쩔 수 없이 국가의 신들을 숭배하고 있다.

. 바로자신은 허구적인 신들은 극장, 자연적인 신들은 세상에, 도성적 신들은 도성에 적합하다고 말하고 있음.

. 세상은 신의 작품이며 도성과 극장은 인간들의 작품이다. 극장에서 우스꽝스러운 신들은 신전의 신들이다.

. 극장의 신학은 혐오스런 것을 가르치고 도성신학은 혐오스런 것으로 자신을 치장함 → 영원한 생명의 추구?

⇒ 도성적 신학은 신화와자연적 신학의 혼합물

(두 신학은 차이가 많지만, 양 신학으로부터 도성적 신학이 설명된다.)

 

7. 신화적 신학과 도성적 신학의 유사성과 일치점

. 외설적인 신화적 신학은 도성적 신학안으로 흡수되어 극장에서 보여지는 로마인들이 인간적 형태로 신을 만들고 신은 인간적인 쾌락으로 기쁨을 얻고 있는 것을 바로가 믿은 것으로 보임

. 헤라클레스, 라렌티나, 타르티우스이야기 : 신화적 신학이 아닌 도성적 신학에 속한 내용임

→ 존재하지도 않는 신들의 고상한 성품을 주장함, 신화적 신화보다 더 황당하기도 함

 

8. 이교도 교사들이 보여주려고 시도한 자연적 근원

. 하나님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이지만 모든 자연이 하나님은 아니다. 이들은 신들의 어머니를 땅이라고 하는데 모든 신들이 한때 인간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사실 땅은 하나님의 작품이지, 어머니가 아니다.

. 연극에서 공연되는 혐오스런 것들보다 때로는 종교의식이 더 심할 경우도 있는데 종교의식이 정당화 된다면 시인들의 허구와 공연도 같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

. 예) 사투르누스가 아들을 삼킨 것의 해석 : 사투르누스(시간의 길이)가 자신이 낳은 것들을 먹어치운 것

. 지성인들은 신화적, 도성적 신학 둘다 외설적이고 허영인 것을 알고 신화적 신학에 대해서는 배척했으나 도성적 신학은 비난하기 두려워했다. 결국 둘다 같으므로 여기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능력이 나올 수 없다.

 

9. 신들의 특별한 역할

. 신들의 기능과 역할이 너무 세분되어 있어, 신적 위엄보다 익살에 더 가깝다. (물주는 신, 밥주는 신)

. 박카스 축제(극도 흥분 상태의 광란) - 원로원에 의해 중단될 정도(bc186) : 이것이 신? (극장이 아닌 신전)

. 경건한 사람 : 부모를 존경하므로 신들을 공경 (적으로 두려워하지 않음)

. 미신적인 사람 : 한 신을 막기 위해 3신을 동원함 – 신들이 해를 끼침.. 이신들이 도성을 보호하는가?

. 바로의 구분에 따라 도성 신학과 극장의 신학이 도성적 신학에 속해 있음을 알수 있다. 신화적 신학이 도성적 신학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알면서도 도성적 신학을 비난하지 못한다.

. 둘다 영원한 생명을 기대할수 없다.

. 바른 이해력을 가진 사람들의 판단력에 의해 두 신학이 책망 받고 있음. (자연 신학만 남음)

 

10. 바로는 신화적 신학을 비난, 세네카는 더 격렬하게 국가적 신학을 비난함

. 세네카 : 바울과 동시대 사람, 도성의 신학 비난, 기독교에 대해 적어도 호의적, 자연적 신학에 호의적

. 카피톨 신전에서 행해지는 일들에 대해서 비난함

 

11. 유대인들에 관한 세네카의 견해

. 안식일 공격 : 시간 낭비, 즉각적 주의 요하는 일들에 손상,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음

 

12. 신들은 현재적인 일들에 대해서 조차 아무 도움을 줄수 없으므로 영원한 생명을 부여할 수도 없다.

. 행복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하나님 외에 어떤 신에게 헌신하는가. 신들은 행복을 주는 자가 아니고 추악한 영들이다. (영적존재라고 그냥 박자 맞춰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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