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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성

<인간의 본성과 운명> 6장. 하나님의 형상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by 말씀묵상과 영성지도 2023. 10. 31.

라인홀드 니버 <인간의 본성과 운명>

 

6장. 하나님의 형상과 피조물로서의 인간

 

[keyword] 하나님의 형상, 인간의 자유, 피조물, 유한성, ,   

 

1) 기독교적 인간관은 인간 실존에 관한 3가지 관점을 상호 연관선상에서 해석하는 것이 다른 견해들과 다른 부분이다.

    (1) [생명력과 형식] “하나님의 형상“교리에서 인간의 자기 초월 능력을 강조한다.

    (2) [개체성] 인간의 유한성이 악의 근원이 아니며, 인간의 신성과 피조성이 통일됨을 본질로 하므로 인간은 피조물이면서 하나님의 형상이다.

    (3) [인간의 본성] 인간의 악은 자신의 의존성, 유한성, 존재의 불확실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저항의 결과이다. 이 결과로 불확실성을 더 악화시키게 된다.

2) 기독교적 인간관의 논리를 분명하게 하려는 여러 가지 노력을 검토하고

3) 인간의 문제들에 대해 기독교적 인간관이 제시하는 것들이 적합함을 입증함으로 정당성을 확인해야 한다.

 

 

1. 성서적 근거 Biblical Basis of the Doctrines : 창세기 외에는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토대 없음.

. 구약성경에서는 육체(라우흐, 숨)와 영혼(네페쉬, 바람)이 통일성을 이루는 히브리 사상이 표현된다.

. 신약성경에서는 영혼과 육체, 정신(프뉴마 : 성령, 정신)과 영혼은 분리되어 있지 않다고 한다.

. 사도바울 : 프뉴마(자연적 능력 이상의 어떤 것 의미)와 사르크스(죄의 근원)를 대비해서 사용했다.

 

“하나님의 형상”은 무엇과 관련이 있는가?

.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몸이 아니라 정신이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창조되었기에 인간 정신에 있는 자기 초월 능력에 관심을 두었다. ‘기억’이 시간과 자기 자신을 초월하는 과정을 기술하면서 자아의 한계는 자아 밖에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신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자아의식의 깊은 곳에서 하나님과 가까워 질수 있다고 표현하고, 신비주의도 공유하지만 성서에 바탕을 두므로 자아의식이 하나님을 지향한다. 그는 계시를 강조하고 자신 너머를 지향하지만 그곳에 도달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나님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당연하고 ‘이해하지 않고는 믿지 못하는 것들이 있으며, 우리가 믿지 않고는 이해하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 관련성과 차이) 그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신학은 하나님의 형상을 영혼의 합리적 능력으로 보고 이 능력은 하나님을 아는데 까지 이르는 능력과 삶을 창조자에게 복종하므로 성취하는 능력이 포함된다.

 

. 칼뱅은 “하나님의 형상”이 영혼에 있다고 보았다. 아담이 창조자의 탁월함을 닮았을 때의 완전성(원래는 완전했지만 지금은 사라진 속성)이라고 했다. 몸과 영혼의 통일체로 인간을 이해하여(히브리 인간 이해) ‘인간의 몸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깃들어 있다.‘고 말한다.

 

. 루터는 원죄론 재정립을 위해 하나님의 형상이 지금은 상실되었음을 입증하는데 집중하느라 하나님의 형상은 죄에 의해 손상되고 더럽혀 졌다고 주장했다.

 

.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의 본성을 해석하는데 인간의 합리적 능력 이상을 암시하는 영향을 주었다.

 

. 하이데거는 “자신을 초월하는 존재자라는 ’초월‘개념.. 합리적 존재자 이상의 존재자라는 초월 개념”으로 정의했다.

 

. 막스 셀러는 ’누스‘와 구별하여 ’Geist(정신)‘을 사용하여 사유능력, 개념 파악 등의 독특한 이해방식과 정서적 의지적 능력을 포함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Geist(정신)‘는 인간의 본성과 독특한 자질이라 부를 수도 있다. 인간은 자연의 순환과정을 초월하는 것 뿐 아니라 절대적 목표를 선택하는 것으로 자기를 초월한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선택의 자유“ 이상(이하)의 자유를 갖는다.

궁극적 실체에 못 미치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인간은 자연에 의해 결정적으로 제한되는 피조물이다. 인간은 자연(창조)에 의해 자신에게 설정된 한계를 넘어서는 어떤 것도 선택 할 수 없다.

 

.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절대자이며 영원한 인격체 이며, 자신이 가장 추상적이지만 가장 구체적인 자유라고 했다.

 

. 니버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속성과 인간의 본성을 둘다 계시하듯이 인간이 표준으로 삼을 수 있는 하나님은 그리스도에게서 계시된 하나님이다. 그리스도는 역사적 인물이면서 역사의 가능성들을 초월하는 역사적 인물 이상의 존재자이다. 그리스도의 삶은 역사 안에서 존재한 이후 십자가 죽음에서 사랑이 구현된다는 의미에서 초역사적이다.

 

. 인간은 자유(정신, 의식)와 자신을 초월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다. 그러나 세계를 초월하는 의미의 원천과 열쇠 없이는 의미를 구축할 수 없다. 종교의 근본적 문제인 의미의 문제는 이성을 초월한다. 해석되어야 할 의미는 그 세계를 초월하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한다. 하위의 원리를 의미의 원리로 사용한다면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다. 자연의 인과율은 하위 원리중 대표적인 예이다. 자연의 인과율을 통해서만 세계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할 때, 세계는 기계적 통일성에 의해 이해되는데, 기계적 통일성은 인간 의식에서 일어나는 자유가 들어설 자리가 없어진다. 또 다른 예로 논리적 일관성을 추구하는 합리적 원리는 인과율보다는 어느 정도 고차원적이긴 하지만 의미를 합리성과 동일시 하려는 모든 노력은 이성을 신격화 하는 것이다. 이성을 신격화 하는 것은 우상숭배이며, 이성과 논리의 법칙들은 세계의 총체적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수 없다.

인간의 자기 초월은 결국 세계를 초월하는 하나님을 추구하게 만든다. 인간의 자유와 유한성의 문제를 기독교 신앙에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피조물의 교리를 상호 연관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2. 피조물로서의 인간 The Doctrine of Man as Creature

. 피조물이 선하다는 기독교의 견해는 창1:31(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절 말씀에 기초 하고 있다. 또한 삶과 역사에 관한 성서의 모든 해석은 창조된 세계는 그의 유한성 때문에 악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인간의 유한성, 의존성, 불완전성은 하나님의 창조 계획에 속하므로 존경과 겸손함으로 반응해야 한다. 이것들은 악이 아니다.

 

. 인간 삶의 단편성이 악은 아니다. 단편들이 전체와 연결되고 하나님의 뜻과 관련이 있다. 악은 자신의 능력과 지혜에 의지할 때 발생한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씀은 죄와 유한성의 관계에 대한 말씀이라고 볼수 있다. 인간이 죄에 빠지게 되는 것은 유한성이나 의존성이나 연약함이 아니라 그것들에 대한 두려움이다.

 

. 세계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되었기 때문에 선하다. 신약에서는 피조물의 유한성과 의존성이 강조되는 것은 (도덕적 선과 악의 문제는 아니다. 인간의 유한성을 강조하는 것은 신적 통일성과 영원성을 상실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자와의 절대적 차이를 말하는 것이다.

 

. 기독교적 인간관 안에서 창조론의 중요성은 개체성에 관한 견해에서 나타난다. 개인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피조물이지만 그 생애동안 가능성을 완전히 성취 할 수 없고 여전히 의존적이다.

 

. 기독교 사상에서 자아의 유한, 의존적, 불완전한 근본적 특성과 자아가 본질적으로 선함을 일관되게 견지하지는 않았다.

  (1) 초기에는 관념론과 신비주의 오류를 기독교 사상과 혼합했다. 오리게네스는 인간이 타락의 대가로 가변적이고 유한적이게 되었고 성욕을 죄의 상징과 결과로 간주했다. 성욕이 육욕적 본능 일 뿐 아니라 생식이 유한한 실존에 필연성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남녀의 불완전함이 그들의 불충분성과 상호 의존성을 보여주며 인간 본성이 자연환경과 필연성에 의해 제한되고 변형되었음을 보여준다.

  (2) 그 영향으로 헬레니즘 기독교의 이단들에 의해 주장된 양성생식이 타락의 결과라는 것은 현대 그리스 정교회에 까지 이어진다.

  (3) 아우구스티누스 이전에는 죄와 악을 가변성과 무지와 동일시 하고 영혼과 육체의 관계에 대해 이원론적이었다.

  (4) 성경은 유한성을 악이라고 하지는 않지만 바울은 죽음은 죄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본다. 이는 대부분 영적인 죽음을 표현한 것(엡2:1, 고전15:56)임에도 헬레니즘의 이원론과 유사한 점들이 있다.

 

. “죽음”에 대해 성경이 특징적으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피조물인 인간의 연약함과 의존성의 차이를 확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육체적 죽음이 인간의 운명의 끝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에 의존하는 유한한 존재 너머에 삶의 완성을 바라는(부활의 소망) 기독교는 세계가 악하지 않다는 성서 해석과 같다.

 

. 죄의 원인은 인간 존재의 유한성이 아니라 그 유한성을 거부하는데 있다. (7장으로의 연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