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선교의 이해”(이현모)를 읽고..
일자 : 2009. 2. 12 (목)
370여 페이지의 책이 약 30장의 a4 워드로 정리되었다. 어쩌면 이 자료가 내가 혼돈(혹은 어떤 방법이 필요할 때)에 빠졌을 때 도움이 될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가능하면 그런 나쁜 이유료 이 자료를 찾지 않기를 기대한다.
“왜”가 정리되지 않으면 행동하기 힘든 나에게 ‘선교학 총론‘의 강의와 ’현대 선교의 이해‘는 선교학과 선교신학을 왜해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깨우쳐 주었다. (여기까지 들은 강의와 책으로 만족한다^^ 더 깊이 들어가게 되면 비본질(학문을 숭배)에 빠질 우려가 된다^^)
어쩌면 그래서 더 수업 후에 책을 부리나케 대여했는지도 모르겠다. 네 분의 강의자에게서 들었던 강의들은 책 읽는데 속도와 이해를 더 하여 주었었다.
또, 몇 가지 어렴풋하던 용어들과 상식으로 알고 있지만 명확하지 않았던 주요 선교 역사들도 선교 전략, 정책, 방법론 등에서 다시 분석되고 활용되면서 진정 하나님의 섭리 아래 이뤄지는 모든 것들이 버릴 것이 없음을 깨달았다. 역사에서 나타난 여러 가지 실패 혹은 문제(예루살렘교회의 핍박)라고 생각되었던 것들이나 부적당하다고 생각되었던 것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 아래서 열매 맺는 경우들을 보며 상황을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예수회의 강제 철수등의 사건은... 선교지의 상황에 대한 자세한 정보가 없어서 과연 그렇게 끝난 걸까란 의문도 제기하게 되었다.(예수회가 철수한 그 자리에서 아직도 역사는 계속될 것이라는 확신)
하나님과 인간의 동역차원에서 볼 때 인간의 고의적 범죄와 욕심(예수회 내부 문제들과 타 단체의 시기)들로 인한 결과일 것이란 생각도 해보았다. 하나님의 동역자인 나,
더욱 나를 비우고 예수님으로 채우지 않는다면
예수회와 같은 결과는 누구에게든 나타날 것이다.
선교계에서 많이 들어봤던 ‘상황화’가 기독교 역사에서는 토착화, 상황화등으로 발전했다. 그러나 결국 예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을 중세에 수도사들이 '문화수용'이라는 이름으로 적용 했던 것 들 이었고 어쩌면 이제 와서 새로운 것 인 것처럼 봤던 것이라는 이해도 갖게 되면서 최선의 답은 성경에 있고 우리가 고민하는 대부분은 이미 예수님이 보이신 본에 있었다라는 생각도 해보았다.
결국 선교지로 나가는 내가 먼저 성경을 바로 알아야 하고 매순간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너무도 기초적인 자극이 남았다.
현재 사역하는 곳은 300여명의 선교사라 이름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다. (물론 본교회로부터 후원받는 것 말고는 선교사라는 감이 없는 사람들도 많다.) 책에서는 윌리엄 캐리의 공헌을 크게 4가지를 말하고 있는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캐리의 그 노선을 따라 사역을 준비하고 사역을 일으켰을 사람들을 생각해 본다.
내가 있는 곳 에서도 많은 일들이 요구되고 또 그 일들을 할 때 ‘왜’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주어진 모든 일들을 열심히 할수 있는 이유는 ‘왜’라는 질문에 예수님의 명령을 이루기 위한 infrastructure라는 답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학교(선교지)가 건강하게 유지되고 있지 않는다면 전혀 예수님을 모르던 학생들이 4년 후에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 되어 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가장 best의 예^^)
밤새워 수업준비를 철저히 해서 들어가지 않으면 학생들에게 신뢰를 받을 수 없고, 호감도 받을 수 없다. 당연히 학생들은 나에게 관심도 없어지고, 수업외의 중요한 메시지를 전할 기회도, 전하더라도 둘 사이의 믿음과 사랑이 유통되어 지지도 않는다. 그저 단방향의 메시지만 될 뿐, 학생의 삶이나 사고의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결국 Y대를 통한 사역이 캐리와 같은 결과가 되려면 자기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한사람 한사람들이 사역의 infrastructure를 구성해야 한다.
바로 지금 내가 하는 일로 인해 직접 한영혼이 구원받지 못한다 해도,
지금 당장 열매를 볼 수 없다고 해도
한알의 밀알이 썩어져야 생명이 잉태되듯이
주어진 자리(HERE & NOW)에서
한알의 밀알이 되기를 다시 한번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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