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론_11장 판넨베르크의 인간에 대한 이해]
역사 안에서 성령을 통해 초월로 향하는 죄인
판넨베르크의 가장 큰 공헌은 학문의 보편적 방법론 안에서 인간의 근원에 관한 질문을 신학적으로 다시 시작한 것이다. 그는 신학이 타학문에서도 보편적이고 타당한 것으로 증명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의 인간학을 ‘기초-신학적 인간학’이라고 하여 타학문의 방법론과 인간에 관한 연구결과를 비판적으로 수용한다. 또한 하나님 형상으로서의 인간을 역사-신학적으로 개념화(298) 하여 ‘되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해석하며,(296-297) 부활을 통해 예수안에서 인간의 운명이 실현되었다. 인간은 예수를 통해서, 부활에 대한 소망 안에서 살수 있으며, 고유한 인격성에 도달하는 것은 예수의 아버지와의 관계에 대한 참여로 가능하다.(305)
쉘러, 플레스너, 겔렌의 철학적 인간학자들의 인간 본성에 관한 개념을 수용하여, 인간을 ‘세계 개방적 존재’로 규정하고 세계 개방성의 근거를 신(Gott)로부터 찾는다. 그러므로 세계 개방성은 핵심은 ‘신 개방성’이고 세계 개방성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형성되는 곳이다. 하나님의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로 인간 운명 및 본성의 완성이다.(294) 인간 운명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을 향한 개방성과 연결된다.
쉘러의 세계 개방적 존재로서의 인간과 헤르더의 인간 이해인 철학적 인간학을 토대로 신학적 인간학을 설립했다. 헤르더는 미숙함에서 형성의 과정을 통과하는 성장하는 인간인데 이것을 ‘되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해석한다.(296-297) 동시에 인간은 ‘죄인’이다. 판넨베르크는 죄를 욕망(죄의 형식, 결과)과 동일시 한다. 세계 개방성과 자기 중심성 사이의 긴장 속에서 하나님이 아닌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죄이지만 이죄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극복된다. 죽음은 죄의 결과이며, 자신을 세상의 중심으로 두려는 욕망에 끌릴 때 죄의 힘이 인간을 지배한다. 죄와 죽음은 상호 연결되어 있으므로 자연적 죽음은 죄의 결과로서의 죽음이다.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므로 죽음은 하나님으로 부터의 분리이다.(295) 인간의 운명의 완성은 미래의 희망을 통해서 가능하다. 희망은 인간의 본질에 속하며, 하나님의 영원에 참여하므로 희망이 가능하다. 이것은 예수의 순종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구원의 미래와 연결된다.(307)
하나하나 보면 떨어져 있는 개념 같은데 결국 세계 개방성-신개방성-죄인-되어가는 하나님의 형상-자기 중심-그리스도에게 자기를 내어드림-성령의 활동-구원(희망)이 쭈욱 연결되는 그림이 그려졌다. 디테일 부분에서는 군데군데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지만 아마도 짧은 지면에 표현하느라 거론되지 않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판넨베르크의 인간이해는 기독교 영성의 개념을 생각나게 하는 부분이 있어서 반가웠다. 기독교 영성(이전의 ‘영성신학‘)의 문자적 정의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음으로 영적 성장을 위해 자발적으로 영성 훈련에 참여할 때 얻는 경험과 그에 대한 개인, 공동체적 반응”이다. “4. 인간과 역사”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인간의 선취로 운명이 결정된다.”는 부분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발동하여 스스로 믿음의 길을 선택하고 훈련하므로 경험하게 되는 기독교 영성과 동일한 언어로 표현되는 부분이 반가웠다. 조금더 연구해보고 싶었으나, 2002년 한국방문 공개 강연회 자료를 나중에 읽어보는 것으로 반가움을 달래야 할 듯 하다.
'영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론>14장_여성∙생태 신학적 인간론 (0) | 2023.10.26 |
---|---|
<인간론> 13장 위르겐 몰트만의 인간 이해 : ‘하나님의 형상’(imago Dei) 이해를 중심으로 (0) | 2023.10.25 |
<인간론> 10장_폴 틸리히의 인간론 연구 (0) | 2023.10.14 |
<인간론> 9장_에밀 브루너의 인간이해 (0) | 2023.10.13 |
<인간론> 8장_칼 바르트의 관계론적 인간론 (2/2) (0) | 2023.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