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형성 훈련의 이론과 실천> 제8장 영적 여정의 동반자

 

메조리 톰슨. <영성형성 훈련의 이론과 실천>. 최대형 역. 은성.

 

20대에 영적 공동체로 부터 분리되어 낮에는 직장, 밤에는 학교를 다니던 시절에,

나는 영적으로 많이 갈급했다.

 

어쩌면 20대에 청년공동체에서 붕 떠서 바쁘게 보냈을 시간을

공동체로부터 떨어져 있었기에 영적 갈급함을 채우기 위해

틈만 나면 말씀을 탐닉했고,

주일에는 예배에 목숨을 걸었다.

 

그 당시에는 멘토를 하나님이 직접 해 주시는 것 같았다.

작년에 한국에 다시 돌아오고 나서 갑작스럽게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20대에 혼자서 광야에서 훈련 받던 내용을 30대에 여러 책들을 통해서 정리해 주셨고,

30대에 또 선교지에서 홀로 훈련 받은 내용을

갑자기 한국에 들어와서 만나는 여러 동역자들을 통해 확인 시켜주셨다.

 

‘당신이 찾는 영적 지도자의 자질과 특성’을 책에서 써 보라고 했다.

인격(예수님을 닮음)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썼다.

 

40대에 만난 멋진 영적인 멘토들은 정말 환상적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자꾸 걸리는 부분이 ‘인격’이었다.

내게 있던 영적 질문들에 답을 주고

하나님 앞에서 확인 하고자 했던 것들을 검증하게 해준 새로운 멘토(?동역자)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이 주시는 답은 나에게 전해 줄 수 있었지만

그들의 삶을 닮고 싶지는 않았다.

 

때로는 그 인격을 통해 전해지는 하나님의 마음을 의심하게 했다.

하나님께서 나를 변화시키시려 하시는 부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눌 때,

그렇게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고 방어벽을 만드는데(플래너리 오코너의 말, p194)한 몫을 크게 했다.

 

Y대에 있을 동안 나의 건강하지 못한 인격 때문에

학생들을 힘들게 했던 경험들을 통해서

나의 모난 자아를 보고

점점 더 예수님 닮아가기를 갈망했다.

 

나의 모난 인격과 내게 있는 상처들이 영혼들에게 복음을 전하는데 방해가 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너무 놀랐고 아버지께 죄송했다.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

그것이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는 삶과 이어진다는 것을 알았다.

 

완벽한 인격을 꿈꾼다는 것이 아니다.

매일 예수님을 닮아가고자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갖다 보면

점점 닮아가지 않을까 하는 기대이다.

자주 만나면 친해지고,

오래 같이 사는 부부는 닮아가는 것 처럼

나도 하나님을 닮아 갈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천국)를 갈망하는 매일매일을 살다가

천국으로 가는 것을 기대한다.

 

이러한 바램을 매주 만나는 청년들과 이야기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의 모임은 매일 아버지를 더 알아가는 나눔이 된다.

학생의 나눔을 통해 나도 경험해 보지 못 했던 아버지의 마음을 경험하고,

또 나의 증거들로 학생들의 경험 속에 녹아있는 아버지의 뜻을 함께 풀어간다.

 

그래서 영적 여정의 동반자는 쌍방에게 서로 유익이 되는 것 같다.

특별히 멘토링을 받고자 만나는 그 순간 까지도 하나님께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말씀하신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래 못 만났던 친구가 건대에서 시간강사를 한다.

금요일 오후에 공강이 있다고 해서 만났을 때 친구가 ‘하나님의 음성은 어떻게 들어?’ 질문을 하고 시간이 없어서 헤어졌다.

 

지난 주 금요일, 해야 할 숙제가 가득했던 특별한 날 아침, 그 친구가 생각났다.

그 친구는 또 같은 시간에 만나자고 했고

만나자 마자 과거의 비밀을 쏟았다.

나에게도 동일한 아픔이 있었다.

그것이 나에게 상처로 남았다가 사십이 넘어서야 내 삶 속에 숨겨 놓은 아버지의 뜻을 알면서 치유 되고 있다.

 

아버지께 따지고 떼구루루 구르고 난리 치던 내 모습을 간증했다.

길을 걷던 친구가 길을 멈추고 물었다.

“하나님한테 그래도 되?”

인격적인 하나님을 알고서야 친구는 자기 삶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해 주시고 인도하셨던 족적을 발견했다.

 

마태복음11:28-30말씀을 나누고 메시지 성경으로도 주었다.

그리고 그 날 sns에서의 에세이도 같은 말씀이어서 보내주었다.

그날은 친구를 위한 날인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알았다.

하나님께서 5월초에 내가 건대에서 신림으로 이사 가는 것을 왜 동의하지 않으셨는지...

아버지의 사랑과 열심에(숙제를 못 해도^^) 뛸 듯이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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