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도성_14권(1/2)
성 아우구스티누스|조호연·김종흡 옮김/크리스천 다이제스트
■ 개요
. 사람의 죄는 육적 생활과 악한 감정의 원인이 되었다고 주장. 정욕에 따르는 수치감은 불순종에 대한 벌. 죄를 짓지 않았더라면 정욕 없이 자녀를 낳을 수 있었을까?
1. 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많은 사람이 구원을 받지 않았더라면, 처음 사람의 불순종은 모든 사람을 둘째 사망의 영원한 불행에 던져 넣었을 것이다.
. 인류를 한 혈통으로 묶어 단일체를 만드시려고 한사람을 시조로 삼아 인류를 퍼트리셨다. 그러나 첫 조상의 불순종으로 인간 본성에 해로운 영향을 주어 죄의 결박과 불가피한 죽음의 유산을 물려주었다.
. 이분법 : 육체생활을 택한 사람의 도성, 영적으로 살기를 바라는 사람들의 도성은 목적하는 평화의 종류가 다르다.(엡2:19-22, 빌 3:17-20)
2. 육체적 생활은 신체의 결함뿐 아니라, 마음의 결함에서도 온다고 보아야 한다.
.육체에 따라 사는 철학
1) 에피쿠로스파 : 인간 최고선을 신체적 쾌락에 둠, 최고 쾌락은 단순한 생활(쾌락, 고통없는 것이 유일한 선)
2) 스토아파 : 인간의 최고선을 마음에 둠(시조 : 제논 bc300년경) 인생의 목적은 자연과 조화, 행복은 바른 행실로 얻어야 한다고 주장
3) 성경 : 고전15:39, 사람의 본성을 육체로 부름(부분으로 전체 대표하는 표현법)
. “육체적으로 산다는 것은 확실히 나쁘다.” (?)
. ‘육적으로 산다는 문제‘ 갈라디아서로 연구(5:19-20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
. “육체를 따라 산다” : 육체적 쾌락+정신적 결함(마음의 결함)
∴ ‘육신’이라는 부분으로 ‘사람’전체를 가리킴
3. 죄의 원인은 육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 있으며, 죄의 결과인 병적 상태는 죄가 아니라 벌이다.
. 영혼이 악한 이유가 육체의 영향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인간 본성을 신중하게 고찰하지 않은 경우
(-> 전인적 인간론)
. 썩을 몸 : 신체의 썩는 성질 때문이지 본성이나 본질이 아님
∴ 몸을 벗기 원하기 보다, 영생으로 덧입기를 원하는 것이다.
영혼의 모든 악이 신체에서 온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
. [베르길리우스] 욕망, 공포, 기쁨, 슬픔 – 모든 죄의 원인으로 주장 vs [기독교]
. [기독교] 영혼을 압박하는 썩는 몸 : 처음 죄의 원인이 아니라 죄에 대한 벌이다.
∴ 썩는 육체가 영혼을 죄짓게 만든 것이 아니라, 죄 많은 영혼이 몸을 썩게 만들었다.
. 몸 때문에 죄가 자극받기도하지만 악의 원인을 전부 육신에 돌린다면 마귀는 아무 죄도 없게 된다. 마귀는 육신이 없지만 죄에 빠진 자들을 선동하며 충동한다. 모든 악행의 근원은 교만이며, 교만이 신체가 없는 마귀를 지배하고 있다.
. 사람은 사람을 따라 살기 때문에(육체의 일을 따라 삼=사람의 일) 마귀 같이 됨
4. 사람을 따라 사는 것과 하나님을 따라 사는 것에 대하여
. 사람이 하나님(진리, 요14:6)을 따르지 않고 사람을 따라 살 때에 마귀와 같다. (거짓을 따라 사는 것)
. 자기가 창조된 대로 살지 않는 것이 거짓 (모든 죄 = 거짓)
. 죄를 짓는 것은 행복을 원해서 or 불행하게 되고 싶지 않기 때문
. 두 도시 : 육체 따라 사는 사람(사람을 따라 사는 사람) vs 영을 따라 사는 사람
. 육에 속한 animalis (anima, 영혼) + 육신에 속한 carnalis (caro, 육신) = 전체인 사람
. (고전 3:4) “너희가 사람이라” - 너희가 육신에 속하였다.
개역 개정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육의 사람이 아니리요”
개역 한글 “다른 이는 나는 아볼로에게라 하니 너희가 사람이 아니리요”
새번역 “..., 여러분은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 저자의 해석 : “너희는 사람을 따라 살고 하나님을 따라 살지 않는다. 만일 하나님을 따라 산다면 너희는 신들이 되리라”는 것이다.
5. 신체와 영혼의 본성에 대한 플라톤 파의 생각은 마니교의 생각보다 나으나, 그것도 모든 결함의 원인을 육신의 본성에 돌리므로, 우리는 그것을 배척한다.
. 죄에 대해 원인을 육신의 본성으로 돌리면 창조주를 욕되게 하는 것이다.
. 육신은 나름 선하다. 그러나 창조주를 버리고 살려고 하면 육신을 따르든, 영혼을 따르든, 전인을 따르든 선하지 않다.
. 영혼은 최고선으로 육신은 악(마니교)이라고 하는 것도 육신적인 일이다. 인간적 허영에서 나온 것이고 하나님의 진리에서 온 것이 아니다.
. 뒷부분 플라톤 논지 설명
6. 사람의 의지의 성격에 대하여. 마음의 성향이 바르고 그름은 의지의 판단으로 결정된다.
. 사람의 의지의 성경이 중요. 잘못되면 감정들이 비난받지 않아도 된다.
ex) 욕망, 기쁨 : 원하는 것에 동감한 의지의 발동
공포, 슬픔 : 원하지 않는 것에 반대하는 의지의 발동
. 의지가 추구하거나 피하는 것들의 성격에 따라 감정의 방향이 변함
. 하나님을 따라 사는 사람은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한다.
. (성선설) 본성이 악한 사람은 없으므로 악한 사람에 대해 미움을 품을 의무가 있다. 그러나 결점은 미워하고 사람은 사랑해야 하지만, 결점이 고쳐지면 사랑만 남고 미워할 것은 남지 않는다.
7. 성경에서는 선과 악에 관해서, 사랑(amor)이라는 말과 애착(dilectio)라는 말을 구별하지 않고 사용한다.
. 하나님을 따라 이웃을 자기 몸같이 사랑하려고 하는 사람을 선의의 사람, 이런 마음을 karitas(사랑), amor(아모르)라고 한다. - 지도자의 요구사항
. 예수님의 질문 : 제가 이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diligere) / (3번째) 네가 나를 amare 하느냐
베드로의 대답 : 사랑하는줄 아시나이다. (amor)
-> 저자는 성경에서 두 단어를 같이 쓴다고 주장 (dilection, caritas, amor 구별하지 않음)
. 좋은 의미로 쓰는 나쁜(?)단어들의 성경 용례 : 공포timor, 슬픔tristitia 등
8. 스토아 파는 현인의 마음에는 세 가지 혼란(? 상태?)이 있으나, 고통이나 슬픔은 없어야 마땅하다고 한다.
. eupatheiai(평온상태들), constantiae(안정상태들) : 현인의 마음에 있는 3가지 안정 상태
. 욕망은 소원으로, 기쁨은 만족으로, 공포는 조심으로 바뀐 상태 : 현인은 고통, 질고의 상태가 없다.
. 혼란한 상태/어리석은 자의 상태 : 욕망, 기쁨, 공포, 슬픔
. 키케로등.. 단어들을 섞어서 사용 : 문제 되지 않음
9. 마음의 동요와 감정 중에서 바른 것만이 의인들의 마음에 있다.
. 정신적 동요의 문제 (9권) :
1) 철학자들 : 사실보다 말을 좋아하고, 진리보다 논쟁을 원하는 이들
2) 그리스도인 : 하나님을 따라 사는 동안 공포, 욕망, 고통, 기쁨 느끼고 바른 사랑을 하므로 감정도 바름
. 성격의 강약에 따라 다름 감정 : 두려움, 슬픔, 기쁨 등..
. 타인을 위한 감정 : 멸망할까 두려워하며, 괴로워하며, 기뻐하며...
. 선을 사랑하고 거룩한 사랑으로 생기는 동요와 감정
. 바른 이유와 바른 모양으로 표현된 감정은 병적인 격정이 아니다.
. 예수님의 감정적 격정의 예 : 노하심, 기뻐하심, 눈물 흘리심, 고민하심....
→ 감정들은 단지 금생에 속한 것(내생에 없음) : 원하지 않는 감정에 쓸리기도 하지만 감정을 느끼지 않는다면 생활은 바르지 않을 것임. 바울과 시편작가도 감정 없음을 비난함(롬1:31, 시69:20)
. apatheia(inpassibilitas, 무감각, 부동심) : 마음에 대해 감정, 마음을 어지럽게 하는 감정 없이 산다는 뜻이라면 바람직한 상태이나 금생에 속한 것은 아님. 사람에게 죄가 없을 때 에만 있는 상태
. 아무 감정도 느끼지 않는 상태? = 마비 상태
→ 곧다고 해서 반드시 바른 것이 아니며, 무감각하다고 해서 반드시 건강한 것이 아니다.
10. 처음 사람들은 낙원에서 죄를 짓지 않았을 때에 마음에 동요가 있었다고 우리는 믿을 것인가.
. 죄짓기 전에도 육체의 욕망(죄를 없애 버렸을 때에 영으로는 느끼지 않을 감정)이 있었을까?
. 있었다면 낙원이 행복했을까?
. 금지된 과실을 먹으려는 욕망과 죽을까 하는 두려움이 존재했다면 마음이 어지러웠을까?
→ 사랑하기 때문이 아니라 벌이 무섭기 때문이라면 ‘죄’이기 때문이다.
∴ 죄가 없었다면 모든 인류도 낙원에서처럼 행복했을 것이고, 부활의 때와 같이 살았을 것이다.
11. 선하게 창조된 처음 사람이 타락해서 그 본성이 손상되었고, 창조주만이 그 본성을 회복시키실 수 있다.
. 하나님은 사람이 죄를 지으리라는 것을 아셨을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도성의 교리는 하나님의 예지와 섭리를 기초로 삼아야 한다.
. (성선설) 하나님은 사람을 바르게 만드셨고(전7:29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선한의지를 주셨으므로 선한 의지는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 악한 의지는 결함이다. 본성과 일치하지 않고 반대된다. 그러나 어떤 본성적인 존재 안에서만 결함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본성적 존재는 하나님이 낳으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하신 것이다. “땅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은 무에서 만드셨으며, 사람을 지으셨을 때에 무에서 만드신 영혼을 그의 몸에 주셨다.” (엄청 꼬았지만 결국 질문이 존재하는 논리, 왜? 무에서 만드신 영혼을 굳이? 예정을 이루시기 위해? 그럼 몸은 하나님으로부터 낳고 영혼은 무에서? 하나님의 형상?)
. 악의 존재가 허용되는 것은 하나님의 의로운 예지가 악을 선용할수 있다는 것을 증명 (불멸의 다이아몬드, 가짜 자기도 버릴 것이 아니다.)
. 인간 = 물리적이며 영적인 낙원에서 심신 양면으로 유익하게 하나님의 법을 따라 살다가 교만한 천사가 왔다. 교만함으로 시기했던 사탄은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를 따르게 만들었다.
. 하와는 뱀의 말을 참으로 믿었지만, 아담은 죄를 짓더라도 유일한 동반자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선택했다.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일을 죄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속았다는 것을 우리가 깨달으라고 한다.’
. 두 사람 다 속은 것은 아니었지만 두 사람 다 죄에 사로잡혔고, 마귀가 놓은 올무에 걸린 것이다.
12. 처음 사람들이 지은 죄의 성격에 대하여
. 처음 두 사람의 죄가 사람의 본성을 변하게 함 : 부패하고 죽게 함
. 음식은 나쁘거나 해로운 것이 아니고 금지되었을 뿐이다. 하나님은 낙원에 나쁜 것을 만들어 두시지 않았을 것이다.
13. 아담의 범행에서 악한 행위보다 악한 의지가 먼저 있었다.
. 악한 의지의 시초는 교만이다. “교만은 죄의 시작”(집회서 10:13)
. 의지의 결과로 여인은 뱀의 말을 믿고, 남자는 하나님보다 아내의 뜻을 앞세웠다.
. ‘무에서 창조된 것만이 결함으로 부패할수 있다... 피조물은 하나님이 창조하셨기 때문에 존재하지만, 그 진정한 본성에서 타락한다는 것은 무에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하나님을 버리고 자기 안에 머무는 것 곧 자기의 쾌락을 따르는 것은 무가 되는 데에 가까워진 것이다.
∴ 교만한 자들은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 (벧후 2:10) : 향상의 정신은 좋으나 하나님을 향할 때 순종이 됨
. 겸손에는 마음을 높이는 무엇이 있고, 교만에는 마음을 낮추는 무엇이 있다.
. 하나님보다 더 높은 것이 없으므로 겸손은 하나님에게 순종하게 만듦으로 마음을 향상시킨다.
. 스스로 높아지려는 행동이 이미 몰락하는 행동 (시73:18, 그들이 높여질 때에.. 내던지셨나이다..)
. 자기가 충족감을 갖기 위해 하나님을 버리는 사람은 결핍을 보게 되며, 커지려고 애쓰다가 도리어 작아진다.
ex) 베드로는 자기에 만족하며 너무 자신이 강했던 EO보다. 자기가 싫어져서 통곡한 때에, 그의 상태가 더 건전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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