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168페이지 까지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존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1/2, ~168까지)

역자도 서론에서 말했지만 읽는 내내 자연스럽게천로역정 생각났다. 천로역정보다 실제 수도사들의 예화가 많이 나와서 재미있게 읽었다.

처음에는 책 내용이, 너무 억압적이고 현대에 안맞는 것 같다는 비평적인 읽기로 읽었는데 읽다보니 그 깊이에 동화되고 바쁜 일상에서 이책을 보게 된 것이 후회스럽고, 빌려 보는 것이 후회스러워 꼭 소장 하고 자주 봐야 할 책이라 생각되었다.

요한 클리마쿠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최대형 역. 은성 . 2013년.

네번째 계단인 순종이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저자는

순종을 ‘죽는 날 까지 모든 일에 있어서 자아를 신뢰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 했다.

저자가 말하는 자아와 내가 말하는 자아가 다를수 있겠으나 내가 요즘 받는 훈련은 영의 깊은곳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베네딕트규칙서에서도 수도원장의 부담과 그 역할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순종 부분에 나온 수도원장들의 행동은 내가 그라면 저렇게 했을까.. 싶은 행동들도 많았다. 원장들의 어떠함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성숙한 수도사들에게 촛점이 옮겨졌다. 순종하는 메나스, 아바키루스, 회계형제.. 관계에서 오직 하나님께만 집중, 사람을 의지하거나 인정받으려하지 않음등의 내용이 바로 책을 읽는 그날 아침 내가 고민하고 행동하려고 했던 것들에 대한 답이되었다. 이상하게 그날 아침 어떤 사람에게 그들이 나에게 인격적으로 잘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부드럽게 표현할 것인가를 하나님께 물었다. 하지만 예화를 읽으면서 나의 내면(기분 나쁨) 집중하기 보다 내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집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나를 유령인간 취급하던 젊은이와도 맞닥트릴 일이 있었는데 그와 보냈던 6개월 동안더욱 더 하나님의 주권에 집중했던것을 떠올리게 되었다. 미움 받는 사람보다 미워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괴롭다는 것을 알기에 친구를 위해 기도했었고 그렇게 밖에 행동할수 없었던 그의 깊은 아픔들을 아버지께서 알려주시는거 같아서 마음이 안쓰러웠었다. 정서적으로 어려울때는 하나님의 주권을 기다리고 살다가, 어려움이 없는 지금에는나의 반응할뻔했다. 이책을 통해 막아주신거 같아 많이 감사했다. 책에서 말한것 처럼 온전한 순종을 통해 분별의 은사를 얻기를 기대해본다.

<거룩한 등정의 사다리> 목차 (1/2)

비방, 수다, 거짓말은 어쩌면 쭈욱 통하는 이야기 같다. 읽으면서 요즘미투상황이 생각났다. 타인의 깊은 아픔을 안아주기보다 웃자고 하는 농담을 통해 상처들을 주는 상황을 만든 결과인듯 싶다.

 

애통에서는 개인 감정으로 인한 눈물이 아닌 하나님께서 부어주시는 애통을 말한다고 표현했다. 그로인해 세상의 즐거움과 육체의 소욕을 버릴수 있다는 표현이 어쩌면 내가 지금 받고있는 훈련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이책을 읽으면서 강의시간에 제기되었던 "일상에서 수도원처럼 살수 있는가"를 더 깊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로 지금 형식이 아닌 마음으로 수도원에서의 삶과 같이 살기를, 계속 말씀하고 계신것이 아닌가란 생각을 했다. 예수전도단에서 90년대 조이도우슨을 통해 도전되었던 ‘반대정신’도 이미 이 책에서 제안되었던 내용이었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양을 달리 했을뿐이지 시대가 변해도 동일하게 우리에게 말씀하시는거 같다.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나랑 같이 살자!!’

★ 아래의 내용은  <영신수련> 3, 4주차를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이냐시오 <영신수련> Spiritual Exercises (3, 4주차)

 

짧은 내용이었지만 며칠에 걸쳐서 들고 다니면서 틈틈이 읽었다. 책의 의도를 안 이상 조금이라도 맞춰서 읽어보고 싶었다. 나의 상황이 현재, 책이 만들어진 용도대로 읽을 수 없는 상황이라면 비슷 하게라도 해보고 싶어서, 시간을 띄엄띄엄 두고 가이드 하는 대로 때때로 묵상하며, 기도하며 읽어 보고 싶었다. 역시 바쁜 일상에서 시도한다는게 쉽지 않았고, 제한 된 시간내에 무언가를 완성 해야 한다는 “조급함”이 나를 묶어서 조금씩 읽어도 이냐시오가 말하는 깊이 까지는 갈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셋째 주간에는 둘째 주간과 동일하게 하면서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오관을 이용하고 이성을 사용해서 마음으로 대화 하라고 한다. 어쩌면 이어지는 넷째 주간에서 계속 예수님의 행적을 따라가는데 둘째 주간에 이은 내용을 셋째 주간에 하면서 방식을은 넷째 주간을 따르면서 넷째 주간의 묵상을 준비하는 것 같다.

 

셋째 주간의 마지막에는 유혹과 식욕에 반대정신으로 대하도록 지침 하는데 넷째주의 부칙에서는 고행 대신 절제와 중용에 집중하라고 지침 한다. 이 깊은 의미는 무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참 궁금한 부분이 많다. 영성의 대가의 깊은 깊이와 나의 얕은 깊이가 보여지는 책이다.

 

그동안에 기술한 것 처럼 사건을 기술하다가 156번에서는 겟세마네 기도 장면에서 자신의 감정이 이입되었는지 예수님의 옷이 피로 흠뻑 젖어 있었을 것이라고 자신의 짐작이 갑자기 나와서 놀랐다.

계속 ‘의식성찰’을 하려고 하고 있는데 247번에서 오관을 고찰하며 기도하라는 말에 도전이 되었다. 과연 가능할까… 의식하나만 가지고 돌아봐도 너무 쉽지 않은데 오관까지 사용하려면 정말 조용히 혼자 해야 할 것 같다. 생각만 해도 부럽고 정말 한번 해보고 싶다.

 

313부터는 영혼의 움직임을 지각하고 알기 위한 것들을 설명한다. 영적 위안과 황폐의 정의, 증상, 주의점, 반대정신(325), 영의 식별(둘째 주에 하면 좋다는 것을 넷째주의 뒷편에서 소개한다. 그만큼 위험할수도 있는 부분이서 일까..)에서 행정(자선 분배 직무)내용까지 설명이되어 있다.

 

싸우는 교회 부분에서는’교회가 검다고 하면 나도 검다고 믿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365)는 부분에서 한참 멈춰서 정리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무얼까.

 

이 부분을 읽는 동안 개인적으로 어려운 상황을 만났다. 지난주 "초연"에 대해서 이야기 할 때 그렇게 살고 있다고 생각 했는데 역시 하나님께서는 나의 아킬레스 건을 아신다. 다행히도 내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아킬레스 건을 건드리신 것 같다. (아마 이렇게 조금씩 나의 믿음을 더 키우시지 않으실까 란 생각을 해봤다.) 상황을 직면하고 알아 가는데 시간이 조금 필요했고, 조금씩 정리되는 순간에 234번의 마지막 부분에서 멈추게 되었다.

 

‘가지소서, 주님, 그리고 받으소서.

모든 저의 자유와 저의 기억과

저의 지성과 모든 저의 의지를,

제가 가진 것과 제게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서 이를 저에게 주셨습니다.

주님, 당신께 이를 돌려 드립니다.

모두 당신 것이오니,

모두 당신 뜻대로 하소서.

제 게는 당신의 사랑과 은총을 주소서,

이것으로 저는 넉넉합니다’

 

결국 지하철 안에서 그 부분에 줄을 그으며 ‘네 그렇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책에서, 나로 하여금 다른 부분의 초연을 고백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말로는 뱉었지만 매순간 그렇게 인정하는 것은 아무래도 계속 연습해야 할 것 같다. 나와 같은 상황에서 믿음을 유지하고 본을 보이고 계시는 목사님이 생각났다. 내가 그런 상황이 되고 나니 목사님의 그동안의 모든 행동이 이해가 되었다. 믿음의 싸움을 하시느라 참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동일한 상황에서 믿음의 싸움을 하게 되니 자주 목사님이 생각나고 기도하게 된다. 세상의 모든 선한 믿음의 싸움을 도와주세요 아버지.. 이미 승리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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