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성지도 수퍼비전 (한학기 후기)

예수님과 함께 자유롭고 가볍게

(마 11:28-30, 메세지 성경)

 

나와 함께 길을 나서면 너희 삶은 회복될 것이다.

내가 너희에게 제대로 쉬는 법을 가르쳐 주겠다.

나와 함께 걷고 나와 함께 일하여라.

내가 어떻게 하는지 잘 보아라.

자연스런 은혜의 리듬을 배워라.

나는 너희에게 무겁거나 맞지 않는 짐을 지우지 않는다.

나와 함께 있으면 자유롭고 가볍게 사는 법을 배울 것이다.

( 11:28-30, 메세지 성경)


‘횃불 트리니티’에 입학 하는 과정 자체가 의도하지 않았던 놀라운 과정이었다. 입학 한 그 학기부터 수업에서 ‘유레카’를 외쳤다. 그 동안 머릿속으로 정리하고 의아해 했던 것들이 수업시간에 쏟아져 나왔다. 이로 인해 얻게 된


가장 첫 번째 유익은 ‘내가 이단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서 자유롭고 가벼워 졌다.
두 번째는 내안에 계신 성령님이 나에게 알려주고 계셨다는 확인이 되면서 ‘안정감’이 생겼다.

 

2013년부터 나에게 목표가 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조금씩 구현되고 있었다.
‘횃불 트리니티’와의 만남은 내게 말씀의 구현이다.
 

1. 수퍼비전 소감 및 알아차린 것

첫째 책을 통해 이론적으로 정리되고 알게 된 부분들이 있지만 가장 큰 수확은 교재를 통해서 자유케 된 부분이다.

6장 ‘주어진 것과 선물‘ 부분에서 그동안 어느 책에서도 보지 못했던 하나님의 에로스 부분을 다룬다. 내가 계속 경험했던 것은 성경을 깊이 읽고 말씀 안으로 빠져 들고 있을 때 내 몸을 감싸는 느낌, 부부생활을 하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마다 죄책감이 들었고 죄책감이 들면 하나님께 물어보기 보다 무조건 대적 기도를 했다. 내가 당당하고 성적인 부분이 자유하다면 ’제가 왜 이런가요? 저한테 성적인 필요가 있어서 그런 건가요?‘ 하고 하나님께 물어봤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인지하고 있는 나와, 내 몸이 필요로 하는 것이 달라서 나도 모르게 이런 반응이 오는 건가 싶어서 죄책감이 들었다. 그런데 대부분 그런 반응이 말씀 읽을 때 여서 당황스러웠다. ’말씀의 귀한 선물이 쏟아지는 시간에 이런 역 반응을 하다니’ 이런 죄책감에 하나님께 죄송했고, 대적기도를 했다. 이러한 경험이 있는 기간은 정말 오래 되었다. 그래서 혹자가 ‘독신이 부르심이냐’는 질문에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말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메리 로즈 범퍼스 외. <영성지도자들을 위한 수퍼비전>. 이강학 역. 서울: 좋은씨앗, 2017

그런데 6장을 읽고 나서 놀랐다. 대적기도 할 것이 아니고 내가 고스란히 하나님께 반응하고 감사하면 되는 것이라니.. 대부분의 여성 싱글들이 경험하지 않을까 싶어서 동기 전도사님 중 싱글 여자분께 아무 이야기도 안하고 ‘이 부분만 한번 읽어보세요’하고 건넸다. 그 당시 그분은 다른 과제로 바쁠 시기였는데 그 부분을 다 읽을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 고맙다고 했다. 하나님과 깊은 관계를 갖는 것을 중시하는 대부분의 싱글 성도들이 경험하는 부분일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 이후로는 성경을 읽을 때 그런 반응이 생기면, 너무 기쁘고 감사가 나왔다. 왕상 7-9장 솔로몬의 성전 제작과 봉헌 부분에서 머릿속으로 그림이 자연스럽게 그려지면서 본문에 더 깊이 빠져들면서 읽을 수 있었다. ‘아 하나님의 뜻은 이런 거 였구나...’ 레노바레 성경으로 읽는데 왕상 8:10-11 부분에서 하나님의 임재로 구름 때문에 제사장이 섬기기 힘들다는 11절 말씀을 중심으로 한 적용이 있었다. ‘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가시적, 비가지적 표징들이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제안이 있었는데 이날도 성경을 읽으며 나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의 비가시적 표징을 그동안 몰랐고 잘 못 반응했던 것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나 뿐 아니라 많은 성도들이 이런 경험들이 있을 텐데 ‘이 증상은 무엇인가요?’하고 물어 보기보다 내가 정한 좋은 것과 ‘나쁜 것 같은 것’의 규칙에 따라 반응하고 있지 않을까?

 

둘째, 강의 전에는 정리되지 않은 영성지도가 이제는 이전보다 조금 더 정리되고 안정 되어 가고 있음을 인지한다. 성격상의 문제로 피지도자를 기다려주기 보다 먼저 성급히 이야기 할 경우가 많았다. 이는 피지도자의 나이가 어릴수록 주눅 들게 하고, 더 표현하기 힘들게 하는 원인이 되었다. 그런데 피지도자의 반응을 기다려주고 여지(pause)를 줄 때 피지도자가 먼저 반응을 보이고, 깊은 곳에서 끌어 올린 것들을 나누어 주었다. 나에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을 때 하나님께 집중해서 물어보고 있던 도중에 생각지도 못한 피지도자의 반응과 진행을 경험했다. 그러한 경험으로 하나님께서 피지도자를 많이 사랑하시고 기다리신다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또한 나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라 피지도자의 진술에 질문이 많이 생긴다. 피지도자의 말을 끊거나 혹은 주제에서 벗어난 질문을 해서 본론에서 멀리 벗어나는 경우도 많았었다. 그러나, 지도자의 질문이 본인의 궁금함인지 하나님께서 생각나게 하시는 것인지 확인하는 작업을 하다 보니 영성지도 중에 개인적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셋째, 피지도자가 깊숙이에서 꺼낸 문제가 내게도 존재하는 것들을 이번학기에야 인지했다. 항상 피지도자들의 문제에 깊이 공감되고 상황이 이해되었다. 그것이 은혜인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학기에 성찰보고서와 대화록을 여러 번 작성하면서 인지한 것이 피지도자가 꺼내온 이슈가 나에게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성지도가 피지도자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나 자신이 동일한 부분으로 하나님 앞에 머물게 되는 기회가 되었다.

 

넷째, 위에서 인지한 부분을 강의시간에 피지도자 이슈로 가지고 갔다. 영성지도 전에 약 2주 동안 혼자 물어보고 머물 면서 명확하지 않게 답을 받은 듯도 했다. 그런데 영성지도 실습 시간에 기도를 시작하자 마자 두 개의 그림이 떠올랐다. 너무 놀랐다. 그러나 해석이 되지 않아서 이제 그만 기도할까요 묻고 있었다. 마음 한편으로 지도자를 통해서 도움을 주시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성지도자가 한마디의 기도를 했다. 그러자 마자 두 장의 그림이 이해가 되었다. 이 답변을 받고 나서 이 것이 오래기다리신 하나님의 열심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나는 왜 바쁜가’는 질문은 십년도 넘었다. 고등학교때부터 취업준비를 하느라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느라고 바쁘기는 했다. 그러다가 20대에는 바쁜게 당연한거라 생각했고, 30대 이후 선교지에서 부터 ‘왜 나만 바쁘지’ 묻기 시작했다. 선교지에서는 대개가 바빠 보이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아무래도 능력이 있던 분들이라 많은 일들을 여유롭게 하셨던 것 같다.) “내가 잘 못 된 건가? 열심히 하는 게 나쁜 건가...“

 

이 두 그림은 상기에서 언급한 마태복음 11장 28-30절의 말씀이 내 삶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그 답으로 기대가 되고 감사했다. 수퍼 비전에서 교수님께서는 나의 이슈('나는 왜 바쁜가')에서, 공생애동안 바쁘셨던 예수님이 떠올랐다고 말씀하셨다. 그 말씀에 눈물이 났다. 아버지의 환대와 응원이 느껴졌다. 그동안 바쁜 것은 내 죄의 근원이고 내 열심이고 하나님 보다 앞서 가는 것이고, 내 열심이라는 상담 쪽의 정죄 메시지를 들어왔다. 그래서 스스로 정죄감이 많이 들었다. 30대 후반에야 그것이 상처이기도 하지만 그 상처를 허락하신 하나님의 주권 안에 있다고 정리를 했다. 그래서 ‘바쁨’ 또한 부르심이라 생각하고 내게 허락된 ‘바쁨’ 가운데서 ‘은혜의 리듬’(마 11:28-30)을 누리는 훈련을 시작했다. 그래도 항상 ‘하나님 보다 내가 앞서는가?’하는 긴장감으로 매번 점검 했다. 슈퍼비전을 진행하던 중, 교수님의 말씀에 완전 놀라고 그 이후로 일상과 사역 모두에 안정감이 더해졌다. 정말 바쁘게 몰아치는 기말 기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과 응원을 경험함으로 ‘존재적 안정감’으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성지도의 유익인 것 같다.

 

<영성지도자들을 위한 수퍼비전>. 목차

 

2. 강점

강점과 약점은 항상 양면이 있다. 경계를 잘 지키면 약점도 강점이 되고 경계를 지나치면 강점이 약점이 되기도 한다.

이번학기 영성지도를 하면서 알게 된 강점은 피지도자의 상황이 빨리 인지된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빨리 인지되었다고 먼저 발언하면 안 되고 피지도자가 직접 하나님께 듣도록 최선을 다해 함께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여쭤보지 않고 내가 피지도자에 대해 발견한 것을 나누었을 때 아직 피지도자가 받아들일 만한 때가 아닌 경우들이 있다. 내가 먼저 발언해 버리므로 피지도자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고 나만 민망해 진 경우가 있었다. 이것은 나에게 좋은 경험으로 그 이후로는 최대한 발언을 줄일 수 있었고 더 기도에 집중 할 수 있었다. 결국 내가 먼저 인지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기도로 피지도자를 더 집중해서 도우라고 주시는 은혜였다. 그렇게 하나님의 주권 아래 거하는 훈련이 내게 진행되고 있었고, 피지도자에게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이 더 깊어지는 훈련이 동시에 진행된다. 함께 지어져(엡 2:22) 가고 있었다.

약점 또한 빨리 인지 되는 것인데 그래서 깊이 머물지 않고 ‘휘리릭’ 지나가 버린다. 화요일에 영성지도(강의시간 실습)를 받고 수요일에 상담을 받았는데 인생의 큰 그림들이 휙휙 그려졌다. 그런데 깊이 머물지 않고 지나가 버려서 결국은 상담이 끝날 무렵에 남은 것이 없었다. 상담선생님도 나도 무언가 이상했다. 상담 선생님의 분석은 내가 빨리 인지하는데 깊이, 오래 머물러 숙성시키는 시간이 없어서 결과가 정리가 안 되는 것이라고 했다.  

 

 

3. 도전과제

인생의 모든 시간이 하나님 앞에서 중요하겠지만 현재 시간표는 내 인생에서 무언가 변혁이 있는 중요한 시간표인 듯이 느껴진다. 청소년기를 질풍노도의 시기라고 하는데 현재 나는 그에 못지 않은 상황에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리 저리 튈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더 본질 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답을 정리하려고 하고 있다. 내가 만나는 청년들과 나이가 10-20년 차이가 나지만 비슷한 고민을 하는, 하나님 앞에서 고만고만한 아이들인 것 같다. 내 마음속의 진짜 바램과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그림에 집중하고 있다. 그림을 알고 가고자 하는 나의 “못 된 안정감”이 나의 진로를 방해 하는 걸까? 또 다시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데 하나를 알아가는데 너무 오래 걸려서 힘들지만 이 과정이 예수님을 닮아 가는 과정이라면 어려워도 가야할 길인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간에 신학교에 두신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야 횃불에서 시간은 내가 인큐베이팅 되는 시간 이란 생각이 든다.

 

‘바쁨’과 연관된 것이 내 안에 ‘화(anger)’와 연관되어 있음을 살짝 인지 했다. ‘화’와 관련된 부분은 30대 초반부터 연구하고 싶던 주제였다. 그것이 내 안에서 화두가 되고 있기 때문에 관심이 있었던 걸까... 앞으로 남은 두 번의 상담을 통해 알게 되기를 구하고 있다. ‘화’라는 주제도 나에겐 10년이 넘은 주제인데 이 주제에 답을 찾게 되고 더 가볍고 자유케 되기를 기대한다.

 

이번년도 새롭게 대두되는 이슈는 성속의 구분이다. 성경을 읽을 때 성적인 반응이 내 몸에 나타나면, 스스로 ‘잘못된 반응’이라고 결정하고 반응했던 것처럼 내 안에 스스로 잘잘못과 옳고 그름과 성속을 구분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과 멘토링을 하는데, 대화중에 매달 반복되는 말씀이 ‘너무 따지지 마세요’였다. 5월이 되어서야 나의 이번년도 약속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디모데전서 4:4)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말씀과 멘토링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무엇일까? 앞에서 질풍 노도의 시기처럼 진로를 두고 묻고 있다는 부분이 이것이다. 선교지에서 돌아와서 계속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다. 내가 하는 모든 것에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그래서 사역을 하기로 결정하고 하나님 앞에 머무는 것에 집중하고 있을 때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다. 신학교에 입학하고 두 학기가 지날 무렵부터 주변의 연변과기대 졸업생들은 내가 교회를 하면 다니겠다고 한 친구들이 있었다. 그 이야기에 홀딱 해서 교회를 준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한참 예배학 강의를 들으면서 내가 그리던 이머징 예배가 현실화 되어 있는 것도 보면서, 예배 공동체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지금도 방학이면 예배에 대해서 공부하고 있다.

그런데 3년, 학비 때문에 고군 분투 하는 시간이 여러 번 반복되면서 ‘과연 하나님이 내게 사역하라고 하시는게 맞는가?’란 질문이 시작되었다. 한국에 나올 때 여러 가지 사업 아이템들도 머릿속에서 맴돌고 있었지만 사역으로 진로를 결정하면서 모두 사라졌다. 그리고 내 안에는 하나님께서 그리지 않는 그림엔 손대지 않겠다는 마음이 있었다. 현재 강의 하고 있는 학교의 강의도 자연스럽게 먼저 연락이 와서 시작하게 되었고 일부러 더 이상의 강의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그런데 신학중의 재정난을 통해 ‘혹시 하나님께서 나에게 사업을 하라고 하시는 건가?‘ 물어보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담임 목사님은 내가 어디에 있어도 선교사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다고 강조하신다. 하나님도 그러실까? 하나님이 그리시는 그림은 무엇일까? 내 안에 내가 너무 많아서 정말 하나님의 마음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 이것이 내게 남겨진 커다란 도전 과제이다. 재정 때문에 진로를 바꾼다면 그것은 맘몬에 무릎을 꿇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업도 하고, 강의도 하고, Th.M 과정도 듣고, 예배 공동체도 시작한다면 난 다시 ’바쁨‘을 선택하는 것이다.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함으로 가능하다고 하시는 걸까... “예수님과 함께 쉬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고” 싶다.

 

 

4. 현대인의 삶

  산업과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은행, 행정업무, 쇼핑 등 많은 것들이 편리해지고, 간단하게 처리 할 수 있게 된 반면, 빠르게 증가하는 지식의 발전을 따라잡고, 지식의 발달에 따른 업무량 과다로 현대인들은 더 바빠졌다. 사람들이 바쁘다고 하는 것은 자신이 일한 시간만큼 돈으로 보상 받고 있기에 시간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대도시의 사람들이 소도시의 사람들보다 시간을 절약하고 바쁘게 순간을 지낸다. 이는 결국 시간은 돈이라는 벤자민 플랭클린의 개념이 일반화 되어 경제가 개인의 삶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A)

   이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개인의 삶을 경제가 통치하도록 개인들의 주권을 경제에게 내어준 것이다.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이 통치하시도록 개인의 주권을 하나님께 드린 것이 아니라 경제에게 주었다. 시간과 경제관념이 엮여 지면서 시간에 쫓기게 되고, 그럴수록 정서적인 문제는 더 많아진다. 가족 간의 불화는 이혼율이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나고(B), 개인 정서의 문제는 우울증과 자살률의 증가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현대에서 기독교인 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시도하지 못하는 큰 이유는 상기한 대로, 시간이 부족하다는 생각이다. 이렇게 시간에 지배받고 있는 현대인들이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생각의 뿌리들을 정리해 보았다.

 

(A) 백봉삼, “왜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고 느낄까?,” 「ZDNetKorea」,

http://www.zdnet.co.kr/view/?no=20141226151639&from=Mobile, 2019년 6월 3일 접속.

(B) 존 스토트는 <현대 사회 문제와 그리스도인의 책임>에서 서구에서 이혼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기독교 신앙이 쇠퇴하기 때문이라고 했으나, ‘한국기독교심리상담협회’측에서는 부부간의 갈등이라고 한다. (https://blog.naver.com/kcca7com/221276382687, 2019년 6월 14일 방문)

 

(1) 완벽해야만 기도 할 수 있다. (C)

  지식이 풍성하고 완벽 주의적인 성향이 많은 현대인들의 기본적인 성향은 자신이 모든 것을 통제하는 상황에 있어야 안정감을 갖고 무언가를 실행해 옮긴다. 기도 또한 삶이 안정되어야 하고, 기도하는 법을 잘 배워야 기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리차드 포스터는 기도는 스스로의 무력함을 인정하고 조용히 삶의 고삐를 하나님께 내어드리는 행위라고 했다.(D) 현대인들은 기도마저도 완벽하게 해야 한다는 부담 속에 있으므로, 24시간 하나님과 소통한다는 것은 현대인의 사고의 틀을 깨는 과정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회복하는 과정이다.

 

(2)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

  프랭크 루박처럼 하나님과 함께 일하기보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생업을 내려놓고, 일상을 포기하고,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는 생각이 기본적으로 깔려있다. 이것은 우리가 예배와 친교등 교회의 모임이 항상 시간을 따로 내어서 해야 하는 활동이었기에 생길 수 있는 오해이다. 교회의 활동들이 개인 신앙에 많은 진보를 가져오긴 했지만 이러한, 영성과 삶의 분리에도 미친 영향이 크다.

헨리 나우웬은 <영성 수업>에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성경으로 기도하고, 공동체 안에서 용서하며 경험하라는 큰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가 제시하는 예화들에서는 도제식 학습 등으로 온 종일 스승과 함께 하며 배우는 예화가 있다. 그러나 실습으로 제시하는 부분에서는 기도와 묵상을 위한 시간과 장소를 따로 두라고 한다. 또한 도움을 받기 위해 영성지도 등을 받으라는 권면이 있다.(E) 이 또한 여러모로 시간을 따로 내야 한다.

 

(3) 마음의 안식처보다 피부로 느껴는 안정감이 중요하다.

  현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것의 가치를 중요시 한다. 그러다 보니 보여지는 외모가 중요해서 성형수술도 발달하게 되었다. 이는 자신의 안정감을 타인에게 둠으로써 생기는 것인데 이로 인한 정서적인 문제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결국 나의 안정감을 타인에게서 추구하므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보다 보이는 사람, 들리는 음성이 함께 있기를 바란다. 그래서 한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핸드폰 속의 사람들과 영상을 찾게 된다. 현대는, 외롭고 힘들 때 하나님을 찾기보다 나를 기쁘게 해줄 사람을 찾고 내게 도움을 주는 앱을 찾는 것에 많이 익숙하다.

 

(4)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한다.

  모든 이유들 중에 가장 기저에 있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하나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못하게 할 것이고, 내가 하기 싫은 것을 나에게 명령하실 것이라는 부정적 믿음이다. 하나님과 함께 하면 부모님과 함께 있는 것처럼 내가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할 것이고, 내가 하려는 것을 반대할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오해들이 하나님과 친밀하지 못하게 하고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F) 그러기에 프랭크 루박이나 브라더 로렌스가 하나님과 함께 하는 풍성한 삶을 산 것 같이 시도하려는 것 자체를 시작하지 못 한다.

 

(5) 훈련에 필요한 장기적인 대가를 치르기 힘들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거나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연습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자유롭게 누리기 위해서도 연습이 필요하다. 그래서 헨리 나우웬이 <영성 수업>에서 습관을 만들기 위한 훈련으로 묵상과 기도를 위해 따로 시간과 장소를 준비하라고 제안했다. 그런데 빠른 결과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영적 습관을 만들기 까지의 훈련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 훈련의 시기에 현대인들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위해(누군가 위대한 사람을 만날 때 처럼) 내가 미리 준비해야 하고, 따로 시간을 내야한다는 부담과 함께 만남에 따른 빠른 결과가 보이지 않아서 훈련의 시간을 오래 지속하지 못 한다.

  프랭크 루박의 훈련은 시간과 장소를 따로 준비하고 따로 어딘가를 찾아가야 하는 등의 준비를 요구하지는 않는다.(물론 그도 초반에 하나님께 집중하기 위해 일정한 장소인 시그널 언덕을 찾아가긴 했다.) 그러나, <1분 게임>에서 제안한 것처럼 1분 게임을 할 때 치러야 할 대가들이 있다. 매 순간의 인내와 순종, 지인들에게 소문내기와 공동체에서 함께 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러한 대가를 치를 마음의 준비를 할 여력조차 현대인들에게 없으므로 1분 게임에서 이길 때 받는 상을 누리지 못한다.(G)

 

(C) Richard Foster, 『그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조계광 역 (서울생명의 말씀사, 2004), 11-14.

(D) Richard Foster, 『그분 모시고 세상 속으로』, 13.

(E) Henri Nouwen, 영성 수업, 윤종석 역 (서울: 두란노, 2007), 9-15.

(F) Henri Nouwen, 영성 수업, 85.

(G) Frank C.Laubach, 프랭크 루박의 1분 게임.   

 

5. 현대인의 일상에서 24시간 하나님과 함께하기

  본 장에서는 프랭크 루박이 제시한 하나님과 함께 하는 24시간을 현대인들의 삶에 적용 하고 시도한 사례를 제시한다. 여러 단체에서 시도한 방법들이 있으나, 많은 사람들에게 변화가 있고 그 상황이 공유된, ‘선한목자교회의 영성일기 쓰기 사례를 대표적으로 제시한다. 현대인들이 인터넷과 스마트폰을 이용하는 것을 활용하여 영성일기 공동체들을 온라인으로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적극 활용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필자 본인이 실습한 내용들을 정리한다.

 

1) 공동체에서 영성일기 함께 쓰기 (H)

  ‘선한목자교회’(유기성 목사)에서는 담임목사가 먼저 프랭크 루박의 실험을 시도했다. 그리고 본인이 영성일기를 쓰기 시작했음을 교인들에게 알렸고, 교회의 각 소그룹 모임에서 스마트폰을 통해 영성일기 쓰기가 전파 되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는 공동체에서 영성일기를 쓰는 방법을 현대인에게 맞게 제시한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잘 때 까지 예수님을 얼마나 어떻게 생각했는지, 그때 내 마음이 어떠했는지 일기형식으로 기록한다. 하루 중 기억나는 특별한 일을 기억하고 그때 예수님은 어디 계셨나, 무엇을 하셨나 기록한다.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말씀에 순종과 불순종 했을 때를 기록한다. 이렇게 자신의 매일을 점검하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을 시도한다. 그러므로 이 일기를 통해 예수님과 친밀함을 훈련 할 수 있다. 또한 이것을 소그룹에서 나누고 서로를 위해서 기도하므로 건강한 공동체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타인을 위해 기도하므로 더욱 예수님과 친밀해 질수 있고, 하나님의 시각으로 사람들을 보는 훈련을 할 수 있다.

  ‘선한목자교회에서는 공동체에서 함께 하는 영성일기로 성도들의 은밀한 죄가 없어지고,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무절제한 성향이 점차 고쳐진다는 후기를 전한다. 실수를 유발하게 하는 험한 농담이나 두려움, 염려, 교만 등이 하나님 앞에서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자신의 의식을 부드럽게 누르므로 혈기나 성질이 부드러워지고, 자아의 죽음이 일상이 된다.

  프랭크 루박이 제안했던 것처럼 1분 게임을 한다고 소문을 내고 공동체에서 함께 진행 하라는 제안을 선한목자교회에서는 소그룹 별로 웹()에서 기도 일기를 쓰는 방법으로 진행하고 있다. 매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연습 이므로 시간을 따로 내지 않아도 된다. 또한 스마트폰을 이용하므로, 스마트 폰에서 정서적 안정감을 찾는 것 대신 내가 느낀 것들을 스마트폰으로 기록한다. 영적으로 둔감하게 하는 영상들을 찾아보는 대신에 타인이 쓴 영성일기를 보며 기도 할 수 있다. 또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오는 안정감도 누릴 수 있다. 이렇게 하나님을 조금씩 경험하다 보면 하나님은 무조건 안 된다고 하실 거야라는 오해가 점점 없어지고 하나님을 제대로 더 알아가므로 점차 신뢰 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스마트폰을 이용한 영성일기 쓰기와 소그룹 모임은 스마트폰에 익숙한 현대인들에게 적합한 상황화로 공동체를 영적으로 더 건강하게 하고 각 개인들은 하나님과 더 친밀해 진다.

 

2) 개인 실험

  최근 4-5년 동안 1분 게임을 혼자서 진행했었지만, 최근 1년 동안 프랭크 루박의 저서들을 다시 읽으면서 집중해서 시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실험을 하면서 개인의 성향이 대단히 많이 좌우 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경우는 성격이 급하고 성취욕이 높고, 일에 집중력이 너무 높고, 생각이 너무 많다. 생각이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 가져가는 실험은 오래전부터 하던 실험이라 책을 읽으며 진행할 때 조금 더 집중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관계로 지하철을 타거나 길을 갈 때 주님과 함께 가기보다 나 혼자 달려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길을 급히 가다 보면 사람들을 바라보고 축복하는 경우들이 줄고, 나의 표정도 객관적으로 볼 때 긴장해 있는 표정임을 발견하게 되었다. 인식할 때 마다 실패한 경우였다. 또한 일이나 과제, 공부를 할 때는(주로 지적(知的) 작업) ‘아버지 함께 해요라는 모드로 시작 했다가도 혼자 빠져 들어서 허우적 거리다가 정신 차리고 다시 초대 하는 경우도 많았다.

  성공한 경우들은 주로 사람을 만날 때이다. 지적(知的) 작업과 달리 사람을 만날 때(정서적 작업)는 예수님이 함께 하지 않으시면 할 대화가 없어서 조용히 있을 때가 많다. 단둘이 만나도 조용히 있으면서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나의 생각이 아닌 상대방에게 필요한 대화가 시작된다. 또한 길에서 어린 아이나 임신부들을 볼 때면 저절로 기도가 나오는 경우도 성공한 경우들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프랭크 루박이 제시한 방법인, 영성일기 정확하게 작성하기, 함께 하는 공동체, 소문 내기를 하지 않고 매일 정확히 퍼센트로 계산하지 못했다. 무엇 보다 매일 쓰는 영성일기가 성장의 큰 원인이 된다.(I) 또한 1분 게임에 함께하는 공동체의 역할이 중요한데 함께 하는 공동체 없이 진행 한 것이 진보의 속도를 늦추게 된다.

 

로렌스 형제, 프랭크 루박. <하나님의 임재 연습 플러스>. 생명의말씀사, 2013.

(H) 예수동행일기, “영성일기,” WJM, http://journalwithjesus.org, 2019 6 3일 접속.

(I) 김병호, “청소년 기도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학교여섯 번째 이야기: 기도일기 쓰기,” 교육교회477(2018), 31-35. 32-33.

 

6. 결론

  17세기 하나님의 임재 연습의 브라더 로렌스가 한 방식들을 20세기에 자신에게 맞게 시도하고 기록한 프랭크 루박의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방법들을 연구했다. 또한 21세기인, 현대, 한국에서 이 방법들을 시도한 경우들을 알아보고 필자도 시도한 결과를 나누었다.

 

  기독교에서 영성이란, ‘경험’ 즉 기독교인의 ‘영적인 삶’을 말한다. 학문적으로 기독교영성학이란, ‘자신이 인식하게 된 3위 일체 하나님을 지향하는, 자기 초월을 통한 삶의 통합 프로젝트에, 의식적으로 참여할 때 일어나는 경험이라고 샌드라 슈나이더스는 정의한다.(J) 결국 기독교 영성에서 경험’, ‘이 없이는 기독교 영성이 표현될 수 없다. ‘일상에서의 영성이라는 주제를 논할 때 결국 경험없이 이론만으로는 일상영성을 표현 할 수 없다. 이론만 거론한 논문들은 본 논문을 준비하면서 참고 자료로서 자연스럽게 배제했다. 20세기에, 삶으로 드러난 영성에 집중했을 때 프랭크 루박이 눈에 뜨인 이유는 그의 삶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흔적(경험)이 많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영성일기를 쓰는 분들에게도 나타나는 같은 특징들이다.

  은밀한 죄를 하나님 앞에 드러내어 다루므로 삶에서 지속적으로 저지르는 은밀한 죄가 줄어든다.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가족과 떨어져서 홀로 지내며, 원주민들에게 배척당하는 그 외로움을 하나님 앞에 토로하면서 외로움에 빠져들지 않았다. 또한 모든 회의와 만남에 앞서 기도로 준비하므로 불필요한 실수들을 줄였으며, 떨어져서 지내는 자녀들을 위한 기도로 그들을 향한 불안과 두려움에서 빠져나왔다. 이렇게 두려움, 염려, 교만 등이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 지므로 일상에서 안정감이 생기고, 그로 인해 성품이 온유해 진다. 또한 프랭크 루박 같은 경우는 자신의 모든 업무에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문맹 퇴치 프로그램, 신학교 운영 등 중요한 많은 일들을 처리했다. 이러한 경험은 24시간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도를 몇 년간 진행하고 있는 필자의 삶에서도 부분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필자는 생각이 많아 두려움이 많던 사람이었으나 그 두려움을 하나님 앞으로 가지고 가는 훈련을 했다. 두려움보다 크신 하나님 안에서 두려움이 점점 사그라들면서, 안정감이 생기면 평안이 나를 다스리면서 성정이 온유해 지는 과정을 경험한다. 이런 사이클이 몇년동안 지속되면서 지인들로부터 많이 온유해 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현재 교학과 학업, 사역을 병행하고 있는데 매일의 스케줄을 하나님과 함께 하므로 생각지 못 했던 결과들을 경험한다. 빠듯한 일정 가운데 갑자기 부담되는 스케줄이 사라지기도 하고, 시간 내에 끝내지 못할 일에 은혜를 주셔서 제시간에 끝내는 경험도 한다. 시간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통치 안에 있음을 경험하므로 하나님을 더 신뢰하고 이전보다 시간에 덜 쫓기게 된다.

 

  프랭크 루박에 대해 관심은 많았으나 그동안 못 읽었던 그의 저서와 관련 자료들을 본 논문을 준비하면서 읽을 수 있었다. 이미 읽었던 책들도 더 깊은 시각을 가지고 다시 읽어 볼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풍성한 시간이었다.

  이미 자신과 교회를 대상으로 실험을 시작한 유기성 목사 외 한국의 다른 사례들을 찾아 볼 수 있어서 실패 사례 뿐 아니라 성공 사례들도 많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프랭크 루박은 홀로 24시간 주님과 함께 하는 길을 시작했으나 현대인의 약한 의지와 바쁜 일상에서는 건강한 공동체가 함께 할 때 더 풍성한 열매를 맺는다. 삼위 하나님께서 본을 보이신 것처럼 성도들에게 공동체가 중요하다.(K) 영성 일기를 공동체에서 함께 할 때, 부작용이 발생 할 수 있는 위험도 있겠으나 이 부분은 앞으로 계속해서 사례 연구 등을 통해 남은 역사에서 채워나갈 부분이 되겠다.

 

  마지막으로, 프랭크 루박 개인에 대한 한글 자료가 많이 없어서 개인의 삶을 더 자세히 연구하지 못한 부분이 아쉽다. 또한 현대인의 정서적 문제에 대한 부분에 대한 근거 자료를 많이 준비하지 못해 근거가 빈약함을 고백한다. 논문 작성법 강의 전에 작성한 각주에 페이지를 정확히 찾을 수 없어서 페이지를 기록하지 못했다.

  ‘일상에서의 영성이라는 주제로 다양한 각도에서 여러 가지로 접근 할 수 있고, 또 그렇게 연구하신 분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러 논문들을 보고나서야, 외곬으로만 생각한, 나의 지식과 생각의 얕음을 알게 된 시간이다. 한국에서 최근에 상담과 영성분야에서 같은 주제로 논문들이 많이 나와 있었다.

  세상 속에서 자신을 보이시고 드러내시는 주님을 더 깊이, 매순간 경험하기를 소망하는 기회가 되었고, 그 즈음에 뉴스를 보고 며칠 동안 울며 다닌 날들이 있었다. 프랭크 루박 처럼 나에게 주어진 선교 대상자들에게 우리 가까이에 계신 하나님을 내 삶을 통해 잘 소개하게 되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이 더 생겼다.

 

(J) 이강학,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신학논총102(2016), 221-245, 223, 227-228.

(K) Dietrich Bonhoeffer. 신도의 공동생활/성서의 기도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25.

 

 

  [참고문헌]

김병호. “청소년 기도교육을 위한 하나님의 기도학교여섯 번째 이야기: 기도일기 쓰기.” 교육교회477(2018) : 31-35.

이강학. “기독교 영성학 방법론과 그 적용.” 한국기독교신학논총102(2016) : 221-245.

이원일, “일상생활에서의 영성을 위한 성인기독교교육,” 신학과 목회33(2010), 89-113.

이해인, “일상에 스민 영성 이야기,” 월간 샘터(2015), 28-30.

Bonhoeffer, Dietrich. 신도의 공동생활/성서의 기도서.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2016.

Laubach, Frank C. 프랭크 루박의 1분 게임. 안정임 역. 서울: 더드림, 2018.

Laubach, Frank C. 프랭크 루박의 일기. 배응준 역. 서울: 규장, 2012.

Laubach, Frank C. 권능의 통로. 유정희 역. 서울: 규장, 2015.

Lorraine & Laubach, Frank C. 하나님의 임재 연습 플러스. 진 에드워즈 엮음. 서울: 생명의 말씀사, 2016.

 

백봉삼. “왜 현대인은 항상 바쁘다고 느낄까?.” ZDNetKorea. http://www.zdnet.co.kr/ view/?no=20141226151639&from=Mobile. 201963일 접속.

영성일기. WJM. http://journalwithjesus.org. 201869일 접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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