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6 궁방 내용의 정리입니다.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제가 오해하거나 오독한 경우는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6궁방 (2/2)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 2011년.

CHAPTER 6. 하나님을 섬길 능력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죽음을 갈망함

. 황홀경 후 증상 : 주님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는 깊은 갈망, 한 영혼이라도 주를 알게 하려는 갈망

. 주의점 : 건강 해치지 않도록 조심,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 눈물, 혹은 환희(찬양)가 가득참(마음의 평안을 확인), 황홀경에 잠겨 영적 위로를 기다리느라고 묵상을 게을리하지 말라(덕이 진보하지 못하고, 기도의 진전이 없다.) 지나친 확신하지 말고 영적 조언자에게 말하라. (무엇보다 주님께 말하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영혼이 거룩하므로 하나님이 모든 문제 심판하심)

 

CHAPTER 7. 죄 때문에 느끼는 슬픔

. 은혜 받을수록 죄로 인한 슬픔이 커진다.(죽음 갈망할 정도)

. 임재에 거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두려워함(임재를 느끼지 못할 때 : 신부(아가서)처럼 주님 기다리고 찾기)

. 주님의 자비를 생각하면서 주님의 삶과 수난을 묵상하기

. 내 의지는 그분을 섬기기로 결단, 그리스도 닮기(시련 때 보여주신 본보기 따르기)

 

CHAPTER 8. 지적환시로 소통하기, 환시가 진짜 일 때의 영향

. 지적환시 : 예수가 자기 옆에 계시는 것 인식 (설명 불가, 묘사 불가) ‘나다. 두려워 말라’

. 지켜보면서 옆에 계심, 말씀 하셔야 할 경우에만 말씀, 항상 함께 하므로 항상 겸손함, 임재에 대한 의식이 없을 때 노력하지만 노력이 아니라 주님의 뜻대로 오심

. 은혜가 진짜인 표지 : 주님께만 생각이 집중되어 있고, 하나님만 기쁘시게 하는 것만 바라고, 영광과 존귀 위해 삶을 내려놓기에 사탄이 마음대로 할수 없음

 

CHAPTER 9. 환시로 영혼과 소통하는 방법 묘사, 소통의 다양한 효과

. 상상의 환시(마음속의 환시) : 사탄이 사용할 가능성이 크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올 때는 유익(임재처럼)

. 주의점 : . 가짜 환시(오래본다면 상상력) / . 착시(지성이나 주를 향한 헌신에 변화 없음)

. 진짜 환시의 결과 (바울) : 평화와 고요(하나님의 지혜로 인함), 사람들의 말에 현혹되지 않음, 겸손과 덕 진보(행함의 열매) : 영적 조언자의 조언을 들어야 함

 

CHAPTER 10. 하나님이 진리를 나타내시는 이유

. 지적환시 : 악마가 흉내 못냄, 감각이 정지되고 하나님안에서 보는 고상한 신비 발견, 죄를 더 깊이 인식,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 더 용서 가능, 환시는 순간이지만 눈에 띄는 은혜 지속, 나에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자아 인식 가운데 살아감.

. 왜 이런 환시 주실까?

 : 신부이며, 그분의 뜻대로 하겠다고 결심을 굳혔기 때문. 모든 면에서 신부를 돕고, 자신의 속성을 드러내길 원하심

 : 완전한 평화 속에 쉴 수 있다.

 

CHAPTER 11. 은혜 입은 사람은 하나님을 더 갈망한다.

. 은혜 받을 때 마다 신랑과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더 커져 고통이 늘어난다.

. 사랑과 갈망과 하나님에 대한 속성에 대한 지식이 늘고 주님을 향한 갈망으로 쓰라린 고통을 겼는다.

. 사랑의 화살 : 영혼 깊은 곳, 중심에 상처 입히고 주님을 향한 갈망의 고통, 열망으로 인해 이성 능력 저하, 이 고통은 영혼을 맑고 순결하게 해서 일곱번째 성채에 들어 갈 수 있게 해준다.

. 두가지 위험 (1) 세상을 경멸하고 죄짓지 않으려고 노심초사 (2) 지나친 희열로 넋이 빠져나간것 같다.

. 마10:22 “너희가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도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수 있느냐?” 용기 필요

. 고전 14:12 “그러므로 너희도 영적인 것을 사모하는 자인즉 교회의 덕을 세우기 위하여 그것이 풍성하기를 구하라”

 

 

★ 아래의 내용은 <내면의 성> 4, 5 궁방을 읽는 동안 일어났던 상황에 대한 나눔입니다.  책의 요약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저의 작은 경험이 여러분의 일상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되시길 바라며...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4, 5 궁방

3궁방 까지 읽을 때는 책을 빌려서 읽었었다. 빌려서 읽는 경우는 기록을 하지 못해서 내내 답답했다. 급히 요단 출판사에서 출판된 버전(제목이 “내면의 성”으로 번역)으로 구매해서 4, 5궁방은 편히 읽을 수 있었다.

 

아빌라의 테레사 <내면의 성> . 황혜정 역. 요단출판사.&nbsp; 2011년.

 

3궁방까지에서의 읽기와 4궁방부터의 느낌이 확연히 다른 것은 내가 책을 바꾼 탓이었을까? 4궁방은 거룩한 선물중의 하나인 영적 위로에 대해 이야기 한다. 그 달콤함과 기쁨, 그리고 그동안 방해 꺼리가 되었던 벌레들이 (여기에 들어 오지도 못하지만) 도리어 도움이 되는 곳이다. 건강상태나 산만함등을 통하여 약간의 방해나 괴롭힘은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계속되는 자아인식을 통해서, 모든 상황들을 통해 배우기를 원하신다. 5궁방에서는 하나님과의 ‘합일’(“영혼의 성”에서는 ‘연합’)을 이야기 한다. 거룩한 합일은 우리 노력으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철저히 하나님께 있다. 하나님이 데리고 가신다고 표현한다. 한가지 있다면 하나님의 뜻에 복종 시킴이다. 이것 없이는 합일에 이를 수 없다.

 

20대 초반에 학업과 직장을 병행하며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보지 못하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많은 의문들이 있었다. 20대 후반에 예전단의 책들(특히 조이도우슨)을 읽으며 그동안 경험한 것들에 대해 정리가 되면서 하나님의 독특한 교수 방식에 놀랐었다. 30대, 연변과기대에서의 10년 동안 많은 경험들이 정리되지 않아서 하나님께 많은 질문을 던졌다. 한국으로 돌아와서 1년만에 횃불트리니티에 입학해서 지난 10년동안 했던 질문들에 대한 많은 답과 그동안의 경험이 학문적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

 

이번 테레사의 4궁방 5궁방은 ‘어 그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4궁방에서도 5궁방에서도 나는 인지 못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테레사가 기억나게 해주었다. (글 잘 쓰시는 분인 것 같다.) 어떻게 그걸 이렇게 표현했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명확히 어떤 문장이 아니라 쭈욱 읽어가면서 ‘어 그건가?’했는데 책을 읽다 자면서 ‘아.. 그게 4궁방인거구나”하고 느꼈다. 나도 정확히 표현 못하겠지만 4, 5궁방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것 같다. 나의 경험으로 이 두 궁방은 사람의 의지나 노력으로 되는것도 아니고 내가 준비됬다고 했으면 좋겠다고 되는것도 아니었다. (책에서도 그렇게 말하지만..) 

 

작은 나의 경험으로,  4궁방은 기도하면서 경험했던 것 같은데 5궁방은 불평이고 근심이고 짜증 가득한 일상에서 훅! 하고 평안과 감사가 밀려들어와서 ‘이런 상황에서 이런 상태일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며 누린 기억도 있다. 밀랍이 알맞은 조건을 갖추고 자신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부드럽고 유연하게 있다가 인이 찍혀지는 것에 조용히 순복하기만 하면 된다고 책에 표현되어 있었는데, 나는 불평 불만 상태라 생각한 그 상황에(‘나 요즘 아부지테 삐딱 모드야’라고 말 할 정도로^^) 말도 안되게 감사와 기쁨이 몰려와서 완전 놀라고 당황했다.

 

테레사의 육체적 고통과 고난 후의 영적 경험이어서 그런건지, 이번 4, 5궁방을 읽으면서는 곳곳에서 제임스 말로니의 ‘금촛대 중보자들’이 생각났다. 그 책의 주인공도 테레사 처럼 육체적인 고통이후에 영적인 친밀함이 깊어졌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스도 고난 후의 영광, 육신을 가진 이 땅의 자녀들 에게도 이 규칙이 적용되는 걸까?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것 같은 아픔과 고통 그리고 ‘너 하나님하고 친하다매? 왜 그렇게 아퍼?’하는 사람들의 공격속에서도(ex.십자가의 예수님) 끝까지 하나님을 신뢰 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선물인 걸까?

 

[더 생각해보기] 이단들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시작했다고 한다. (요즘 신흥종교 학습 중,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 몰몬교, 이슬람, 하나님의교회) 테레사는 5궁방에서도 유능한 영적 조언자를 찾으라 했고[1], 본인도 계속 말씀에 근거 하려고 했다. 나 또한 나에 대해서는 안심할 수가 없어 계속 머리속에 질문이 맴돈다.(그래서 매달 담임목사님께 멘토링을 받는다.) 이단의 시작과의 차이점은 명확히 무엇일까? (고민 해 볼수록, 유익이 되었습니다. ^^)



[1] 이강학 교수님 첫 영성수업에서 한달에 한번 멘토 받으라는 것을 통해서 아직까지도 매달 멘토링을 받고 있다. 너무 감사하다. 연길에 있을 동안, 여러 영적인 경험이나 생각들이 잘못된 것이 아닌지 혼자 점검하는데 많은 에너지가 빨리고 있었다. 다행히 하나님께서 감사한 멘토를 만나게 해주셨다. 가장 확실한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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