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ESY_그들은 어떻게 이단이 되었는가 (Alister McGrath)

교회가 신앙을 지켜온 치열한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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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1. 저자소개 

2. 내용 정리

  2.1 이단의 기원

  2.2 이단의 배경 

  2.3 고전적 이단들

  2.4 이단의 발생 원인

  2.5 정통, 이단과 권력 

  2.6 이단과 이슬람의 기독교관

3. 후기

 

 

2.4 이단의 발생 원인

이단이 발생되는 가장 큰 원인은 정통 교리를 현재의 문화안에서 이해하려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공존과 삼위 일체 교리 였다. 문화를 잘 적용한 경우도 있었다. 저스틴은 헬레니즘안에서 공감 할 수 있도록 로고스를 변증용으로 활용하였다. 이를 통해 엘리트들이 접근하기 쉬워졌으나 기독교의 주요 개념들이 플라톤 주의와 대등한 개념으로 전락되기도 하고, 기독교안에서 플라톤주의를 증대시키는 경우도 될 수 있다.

 

인지 종교학은 믿음의 형성과 발전을 연구하여 믿음의 기본 인지 구조 탐구가 목적이다. 이에 의하면 이단발생과 연루된 주요요인을 다섯 가지로 이야기 한다.

첫째는 당대의 사회문화와 동떨어져 있다는 생각이 될 때,

둘째는 시대의 이성과 문화에서 비합리적이라는 생각이 들 때이다. 예를 들어 그리스 철학 문화에서 성육신의 교리가 지적으로 말이 안되는 상황이기에 아리우스주의가 발생하고, 교부시대에는 삼위일체 교리가 문제되었을 뿐 아니라 종교개혁시기에도 논란이 되었다. 16세기에 소키누스주의로 알려진 소치니는 반삼위일체론을 제기했다. 또한 과학자들이 성경을 과학적으로 연구하면서 이단적 사고가 발생되는 등 특정 공동체와의 긴장관계가 발생하기도 한다.

셋째는 도나투스의 경우처럼 사회적 정체감이 종교적 정체성 확립 수단으로 사용되는 경우이다.

네 번째는 기독교의 핵심 사상을 대상 문화의 사람들에게 친숙한 의미와 용어로 바꿔서 말하게 될 때(상황화) 대상 문화에 적용하기 위해서 기독교를 개조 하는 경우이다. 예로, 에비온주의는 유대교에 기독교를 동화시키려했고, 마르키온은 유대교를 버리라고 설득한 경우이다.

다섯 번째는 기독교에서 제시하는 윤리적 기준이 너무 관대하거나, 억압적이어서 ‘자신들의 기준’에 맞지 않을 때 발생하게 된다. 펠라기우스는 엄격한 도덕주의에 맞춰 신학을 변경했고, 터툴리안을 매혹시킨 몬타누스주의도 정통 기독교에 도덕적 결함이 있다고 정의했다. 정통 기독교가 특정 사회에 적응하는 과정에서 발생 될 수 있는 문제들 이다. 터너는 이단에 대한 오중 분석을 제시했다. 희석, 절단, 왜곡, 의고체, 배출의 다섯가지 인데, 적응을 아예 거부하던지(의고체), 여러 가지 모양으로(희석, 절단, 왜곡, 배출) 사회에 동화 되는 것이다. 특정 사회(예. 전도대상 문화)와 관계를 맺고 깊이 들어가는 일은 중요하지만 이단으로 치우 칠 수도 있는 이러한 상황들 덕에 긴장을 늦추지 말고 항상 신학을 점검하며 상황화를 시도해야 한다.

 

알리스터 맥그라스, <HERESY, 교회가 신앙을 지켜온 치열한 역사>, 홍병룡 옮김, 포이에마

 

2.5 정통, 이단과 권력

발터 바우어는 정통과 이단의 판정 사이에 권력관계가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단을 ‘역사적 싸움에서 패배한 정통‘이라고 표현한다. 마르크스주의에서도 정통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일수 있다고 말한다. 크리스찬돔 시대에는 정치, 사회, 경제에 기독교의 겉옷을 입고 있었기에 이들의 주장에 힘을 더 했다. 포스트 모던사회에서 이단을 매혹적으로 생각하게 된 배경이 이러한 이유들이다.

 

교부시대에는 기독교가 억압받았기에 정통을 강요한 것이 아니고 자신들의 견해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그들이 떠났다. (ex. 발렌티누스, 마르키온) 국교화 이후 정리되지 않은 기독교의 분열이 국가의 통일성을 저해 할까 우려한 콘스탄티누스가 도나투스 논쟁과 아리우스 논쟁을 정리하는데 나서게 된 것이 발터 바우어 논지의 배경을 만들어 낸다.

 

이것이 포스트 모던에서 정통은 억압이고 이단은 자유롭다는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이다. 중세시대에 이단은 교회의 권위에 도전하여 권위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정의 되어 발도파, 존 위클리프, 후스 등이 이단으로 판정되었다. 프로테스탄티즘(이하 개신교) 또한 위의 정의에 의해 이단으로 찍혔으나 개신교 측에서 초기의 성경해석을 회복했으므로 개신교가 정통 신앙과 정통과 이단의 견해까지 회복한 것이라고 주장하여 이후에 발생한 후안 데 발데스의 반 삼위일체론은 이단으로 정죄했다. 역사적 예가 없었던 자콥 아르미니우스의 경우는 투표로 결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단이란 ‘교회가 용납 할 수 없는 것 으로 판단한 가르침’으로 정의된다. 이에 반해 존 밀턴은 개인의 종교적 양심의 자유가 정통을 정의하는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했다.

 

이단 결정 여부가 권력과 관계되는 부분이 있는 것은 인정되나, 권력에 의해 이단이 결정된 것은 아니다. 오늘의 문화가 이단이 덜 도덕적이고 권위주의적이라고 매력을 느끼지만 역사속에서 몬타누스나 영지주의의 경우는 훨씬 권위주의적이고 도덕적으로 엄격했다. 서양에서 이단에 대해 호의적인 이유는 이단 논쟁을 급히 마무리 하려 했다는 의심과 정통이 권력의 결과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2.6 이단과 이슬람의 기독교관

이슬람에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성에 관한 교리를 오해하고 있다. 코란에서는 기독교의 삼위일체가 하나님, 예수, 마리아이며, 그들을 예배한다고 한다. 기독교의 기본 사상에 대한 코란의 설명은 당시 아라비아 반도에 성행했던 변종 기독교들의 영향이다. 나그함마디 문서에서 이런 사상이 들어있는데 나그함마디는 아라비아 반도 가까운 곳에서 발굴 되었다. 결국 코란에서 말하는 기독교는 이단적 견해들이다. 이런 오해들이 정리되면, 두 종교 사이의 오해가 완화 될 수 있지 않을까?

 

3. 후기

책을 읽으며 워드에 정리한 것이 15페이지가 나왔다. 책을 통해 배운 것도 많지만 생각도 많이 했다. 적은 지면에 다 표현 할 수는 없지만 좋은 책을 만났고, 좋은 믿음의 선배를 만난 것 같아 위로가 되고 이 땅에서 남은 삶을 살 용기가 생겼다.

 

홍정길 목사님이 작년 10월 HOPE 선교회 이사장 이임식 말씀에서 ‘인간에게 모두다 설명이 가능하다면 그것이 신인가?’라고 말씀하셨다. 신실하신 하나님이신데, 나의 작은 시각과 사고 안에서, 이해가 안 되서 계속 묻고 조금씩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아간다. 이렇게 우리에게 주어진 만큼 알아가는 게 아니라 내가 아는 것에 하나님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많은 이단의 기원이 된 것 같다.

 

변하는 문화(세상)에 적응하기 위해 혹은 문화의 눈높이에 맞춰 전도하기 위해 기독교의 본질을 잘못 수정하는 경우라는 생각이 들었다. 10년 동안 중국에서 선교사로 있으면서 가장 두려웠던 부분이 상황화 였다. 신학을 하지도 않은 내가 혹여 라도 잘못 전할까 항상 조심했다. 중.고등부때 선생님이, 내가 들어도 아닌 것 같은 삼위일체 설명을 하신 적이 있다. 정확한 것이 무엇인지 설명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선생님께 틀렸다고 지적은 못했지만 내 안에서 ‘저것은 아니다’라는 게 확실했다. 나름 쉽게 잘 설명하려던 선생님이 오류를 범한 것이다. ‘이단과 연류 되어 있는 압박요인들’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어디까지, 어떻게 상황화를 해야 하고 어디까지 동화시키려는 시도를 해야 하는가는, 철저한 신학적 배경으로, 확실한 신학적 멘토(교회)에게 검증을 받아 시도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20-30대 미혼을 주로 만나고 있는 나로서는 ‘특수한 문화 세대’인 그들에게 상황화가 필요하다. 혼전 순결과 미혼모 출산 등은 사회문제이지만 이미 중국에서 받은 문화 충격으로 개인적인 신학의 문제로 안고 고민하고 있는 것들이다. 그런데 이제 한국의 청년들, 교회 안에서도 일반화가 되어 버렸다. 대한민국의 현재의 청년들에게 말씀은 무엇일까? 지금 이 시대에 아버지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씀하시는 걸까?

 

여러 가지 의문점이 있었으나, 저자 소개에서도 언급했던, 왜 알리스터는 이슬람과 기독교의 긴장의 완화를 위해 노력(p332) 하는지가 의문으로 남는다. 또한 기회가 된다면 나그함마디 문서에 관한 기독교의 관점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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